[파이낸셜뉴스] 란제리를 입고 열매를 파는 대만의 '빈랑미녀'를 촬영한 뉴욕의 한 사진 작가의 작품이 화제가 되고 있다. 빈랑은 주로 인도나 중국,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여러 사람들이 씹는 열매로 각성 효과와 중독성이 있고 구강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CNN은 사진작가 콘스탄체 한이 지난달 발표한 사진 작품 시리즈 '빈랑 서시(Bing Lang Xi Shi·빈랑 미녀)을 소개했다. CNN에 따르면 대만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빈랑을 판매하는 노점상에서 여성 판매원들이 신체 노출이 있는 복장을 차려 입는 문화가 정착됐다. 빈랑 열매는 주로 장거리 운전을 하는 트럭 운전자나 고령층에서 인기가 높고, 노점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빈랑 미녀'을 고용하는 것이다. 빈랑 가게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대만 일부 빈랑 가게에서 손님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여성 판매원을 고용했고 이러한 문화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한씨의 사진에 등장한 몽슈안씨는 CNN에 "16세부터 ‘빈랑 미녀’로 일했다"라며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외모"라고 말했다. 몽슈안은 빈랑 판매로 한 달에 약 670달러(한화 약 92만원)을 번다. 대만 대졸자 초봉이 월 135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CNN은 유리 부스에서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의 모습은 매춘 업소와 비슷할 수 있지만, 빈랑 판매가 대만의 매춘업과 연관돼 있지는 않다고 보도 했다. 5개월간 빈랑을 팔고 있다는 24살 여성 몰리는 "‘빈랑 미녀’들은 성매매는 하지 않는다"라며 "빈랑을 운전자에게 팔 때를 제외하고 거의 부스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사진작가 콘스탄체 한은 지난달 11일 패션·문화 전문 매체 '데이즈드'와의 인터뷰에서 "사진 작가가 되었을 때 마음 속에서 '빈랑 미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대만 특유의 느낌을 담고 싶어 지난 여름 대만에 돌아갔을 때 빈랑의 아름다움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고 말했다. 한편 대만 지방 정부는 2002년 여성 빈랑 판매원의 복장 규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 2002년 타오위안현에서는 빈랑 판매자는 가슴과 엉덩이, 배를 가리는 복장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4-25 22:35:33[파이낸셜뉴스] 구강암 환자 90%가 복용했다는 열매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빈랑 열매인데 빈랑 열매는 중국 전통 한약재 중 하나로, 냉증을 앓거나 장 기능이 약한 사람에게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복용해왔다. 오늘 10일 중국 국영 CCTV 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 언론 감독 기관인 광전총국은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에서 빈랑 열매를 광고하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중독 문제뿐만 아니라, 빈랑 열매는 이미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암 연구소에 의해 발암물질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빈랑 열매는 주로 중국 허난성에서 재배돼 후난성에서 가공된다. 2019년 3월 후난성 지역 진랑 식품 산업 협회는 모든 종류의 광고를 금지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같은 지역 빈랑 협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열매 씹기가 주는 건강 효과를 홍보하기도 했다. 의학 전문지 랜싯에 발표된 논문에는 후난성에 사는 구강암 환자 82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90%가 빈랑 열매 씹기를 해왔다고 적혀있다. 현지 자체 조사에서도 후난성 내 구강암 발생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30%나 높았다. 논문은 "광고 금지뿐만 아니라 빈랑 열매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 빈랑 열매는 약재가 아니라 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증거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껌을 씹듯 빈랑 열매를 씹는 문화도 있다. 열매를 먹으면 입안이 온통 빨갛게 변하는데 이 모습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중독을 일으키는 아레콜린이 주성분이라 흡연을 하듯 쉽게 끊을 수도 없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2021-10-10 12:31:32[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영조는 평소 위가 약해서 자주 배가 아팠다. 배는 항상 냉하고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의관들은 산증(疝症)으로 진단을 해서 이중탕과 과 같은 처방했다. 산증이란 냉기로 인해서 아랫배가 뒤틀리면서 아픈 증상을 말한다. 크게 봐서 산증은 냉증의 일종으로 기능성 위장장애에 속한다. 영조는 즉위하고 나서 평소 반총산(蟠蔥散)과 함께 이중탕(理中湯)을 즐겨서 복용했다. 반총산은 훗날 자신의 주인으로 삼았다고 할 정도였다. 이중탕도 마찬가지로 이중탕으로 효과를 많이 봐서 건공이중탕(建功理中湯)이란 벼슬까지 내렸었다. 이중탕은 인삼, 백출, 복령, 감초로 구성된 처방이다. 역시 냉증으로 인한 복통에 특효한 처방이다. 그런데 반총산이나 이중탕만으로도 영조의 복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조의 위장장애는 시간이 지나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영조 20년(1744년), 영조는 어느 봄날 회충을 토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현기증을 느끼면서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럽더니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 진정이 되었다. 이러한 증상은 예전의 담기(痰氣) 때문에 어지러운 것과는 달랐다. 회충을 토한 이후로는 더욱더 기운이 없고 배는 더 고픈 듯 불편해 졌다. 의관들은 안회이중탕(安蛔理中湯)을 처방했다. 안회이중탕은 이중탕에서 감초를 빼고 포건강, 천초(川椒, 제피열매), 오매(烏梅, 구운매실)를 넣은 것으로 비허증(脾虛症)과 함께 회충으로 인한 복통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안회(安蛔)는 회충으로 인한 증상은 안정시켜준다는 의미다. 이중탕이 기본방이 된 이유는 회충의 증상도 냉증과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조는 안회이중탕으로 복부 불편함은 다소 진정이 되는 듯해서 자주 복용했다. 영조 24년(1748년), 영조는 한 여름에 신하들을 갑자기 불러들였다. “내가 일찍이 회기(蛔氣, 회충의 기운)가 있다고 하교한 바 있다. 무언가 목으로 치밀어 오르는 듯하고 구역감이 있다. 내의원에서 생강차를 올려서 먹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안회이중탕을 복용하면 배가 편한 듯하지만 그때뿐이다. 어찌 이것을 잡지 못하는 것이냐?”라고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한 의관이 “회기(蛔氣)가 도는 것은 위가 냉한 것 때문이오니 사군자나 오매를 차로 마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의관이 거들면서 “사군자나 오매에 추가로 빈랑과 천초를 넣어서 차로 마시면 회충이 저절로 내려가서 방해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또 한 의관이 “무엇보다 천초가 좋습니다. 천초는 여염집에서도 뱃속에 회충이 있을 것을 염려한 까닭에 마땅히 상복하는 약재입니다.”라고 했다. 영조는 “천초는 제피나무의 열매 아니더냐?”하고 물었다. 영조는 평소에 치통으로 고생을 했는데, 그때마다 천초로 치통을 치료한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잘 익은 천초는 색이 붉어서 홍초(紅椒)라고도 부르는데, 껍질을 볶아서 가루내서 물에 타서 먹거나 음식을 조리할 때도 넣었다. 옛날에 민간에서는 천초를 먹으면 회충이 사라진다고 해서 많이 먹었다. 영조는 천초가루를 먹으면 구역감도 줄어들고 복통도 잠잠해졌다. 영조는 천초 이외에도 고추장도 많이 먹었다. 영조 25년(1749년) 영조는 초가을 어느 날, 의관들에게 “내가 요금 콩밥도 싱겁고 보리밥도 싱거워서 몇 숟가락을 먹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천초 같은 것과 고추장을 좋아한다. 이것은 식성이 점차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이냐 아니면 역시 위기가 약해져서 그런 것인가?”하고 물었다. 사실 영조는 배가 냉하고 회충이 있어서 천초와 고추장과 같은 기운이 열(熱)하면서 맵고 자극적인 것들 즐겨 먹게 된 것이다. 영조는 수라상에 수시로 고추장을 진어하도록 했다. 고추장은 음식이기 때문에 임금의 수라를 담당하는 사옹원에서 맡아야 했는데, 영조의 수라상에 올리는 고추장은 내의원에서 맡았다. 내의원에서는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진어했다. 먼저 대두 1말을 푹 삶고 백미 2말을 곱게 갈아 함께 찧어 탱자나 작은 참외 크기만 한 메주를 만들어 솔잎에 놓고 온돌방에 두었다. 메주가 마르면 소금 3되, 고춧가루 3술로 장을 만들어 앞의 재료의 양에 따라 넣고 반죽하여 항아리 속에 담았다. 그 뒤에 찹쌀 1말로 밥을 지어 식으면 달걀만 한 환을 만들어 항아리 안쪽 가장자리에 두고 해가 드는 곳에서 익혔다. 날이 추울 때는 햇볕에 두고, 더울 때는 그늘에 두었다. 그렇게 보관해 놓고 수시로 꺼내서 진어했다. 당시 고추장은 약이었다. 허리나 옆구리, 어깨에 담이 결리고 아플 때 고추장 1숟가락과 꿀 1숟가락을 섞어 물에 타서 따뜻하게 복용하기도 했다. 종기가 처음 생기면 고추장으로 떡을 만들어 종기에 붙였다. 그렇게 하면 종기가 쉽게 화농되면서 빨리 아물었다. 영조는 고추장을 먹으면 입맛이 돌고 뱃속의 냉감도 줄면서 속도 편했다. 수의가 묻기를 “요즘 약방에서 계속해서 고추장이 잘 진어되고 있습니까?”라고 했다. 영조는 “그렇다. 그런데 요즘 내의원에서 만든 것보다 지난달 초에 들여온 고추장이 매우 좋았다. 맛이 다르니 어떻게 된 것인가?”라고 했다. 그러자 의관은 “전하께서 말씀하신 고추장은 조종부집안의 것입니다. 그것으로 다시 들여옵니까?”라고 했다. 영조는 “그렇게 하라.”라고 했다. 영조는 내의원 고추장보다는 사헌부 지평인 조종부(趙宗溥) 집안에서 만든 고추장을 좋아했다. 흥미롭게도 영조가 최고로 여겼던 고추장을 만든 조종부는 순창 조(趙) 씨다. 그렇다고 영조에게 고추장을 순창에서 만들어서 올린 것은 아니다. 당시 조종부는 한양에 살았다. 영조 29년(1753년), 영조의 회충은 여전했다. 심지어 또다시 회충을 토하기도 했다. 어느 봄날, 영조는 입안으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있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토해냈다. 양손에 올려놓고 보니 3~4촌 길이의 회충이었다. 요즘 길이로 하면 10~12cm 정도다. 약 10년 전에도 회충을 토한 적이 있었는데, 잠잠하다가 다시 토한 것이다. 영조는 원래 위장이 약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더더욱 비위(脾胃)가 상해서 수라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식욕이 없어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토해낸 회충은 통통하니 내 기혈을 모두 빨아먹었던 것이 아니냐?”라고 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의관들은 걱정하는 영조에게 “민 판부사 또한 회충을 토한 적이 있습니다. 회충을 토하는 일은 빈번하게 있는 일이오니 너무 상념하지 마시옵서서.”라고 했다. 영조는 증상이 불편할 때면 어떤 것도 먹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좋아하던 고추장도 물렸다. 의관들은 그때면 안회이중탕을 조제해서 복용하게 했다. 안회이중탕은 언제나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다. 몇 년 후에도 영조는 회충을 토해서 의관들을 불렀다. 영조는 죽을 먹고 난 직후 연한 홍색의 회충을 토했다. 의관들은 이중탕에 오매를 넣어서 처방을 했다. 안회이중탕보다는 약한 처방이었다. 그러면서 수라상에 반찬으로 다시 고추장을 올렸다. 영조는 무엇보다 고추장을 먹으면 속이 편했다. 영조는 70세가 넘어서도 고추장을 즐겨 먹었는데, 심지어 고추장을 송이버섯, 생복, 새끼 꿩고기와 비견되는 맛으로 평가해서 늙어서도 입맛을 잃지 않은 것을 고추장 때문으로 여겨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영조가 즐겼다는 고추장은 승정원일기 등에 고초장(苦椒醬), 고초장(苦草醬), 호초장(胡椒醬), 초장(椒醬)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붉은 고추는 이미 임진왜란(1592~1598년)을 거치면서 조선 땅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요즘의 우리가 먹는 붉은 고추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천초(川椒)로 만든 것도 초장(椒醬)이라고 했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고추도 초(椒)의 일종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천초(川椒)로 천초장(川椒醬)이나 초시(椒豉)를 만들었다. 천초장은 고추 대신 천초를 이용해서 만든 장이다. 그리고 초시는 천초 열매와 두시(豆豉, 메주콩)를 섞어서 만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천초장이 고추가 유입되면서 빨간색 고추장으로 발전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조가 즐겨 먹었던 것이 천초장이던 고추장이던지 모두 영조의 속이 냉해서 나타나는 복통과 회충에 의한 증상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고추장은 내의원에서도 만들었으니 약이라고 할만하다. * 제목의 〇〇〇은 ‘고추장’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승정원일기> 〇 영조 20년 1744년 4월 14일. 前月晦間, 微有眩氣, 而當其發作時, 必也靜臥以鎭之矣. 今則其症已歇, 而頭部微疼之氣, 亦已盡愈, 但以氣弱之故, 時有痰氣之往來, 而猶不如前日之若烟羃矣. 頃一吐蛔之後, 氣若虛餒, 則胸膈之上, 輒有衝上之物, 似是蛔蟲. (지난달 그믐에 약간 현기증이 있었는데, 그에 발작 시에 당하여 반드시 바른 자세로 편하게 앉아 있으면 진정이 되었다. 지금은 그 증상이 이미 사라지고 머리만 약간 아픈 기운이 있으니 역시 모두 나았으니 단지 기운이 약한 까닭으로 여겨지고 때로 담기가 왕래하고 지난번처럼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지는 않다. 한번은 회충을 토한 후에 기운이 허하고 배가 고픈 듯하더니 흉격 위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회충 때문인 것 같다.) 〇 영조 24년 1748년 6월 15일. 上曰, 曾以蛔氣, 有所下敎者, 而自昨喉間有蛔蟲欲出之氣. 故進御薑茶, 而終無效, 何以則爲好耶? 應三曰, 此是胃冷之致, 使君子·烏梅等物, 作茶飮溫服, 則好矣. 壽烓曰, 此是痰入胃口之致, 不必爲慮. 使君子·烏梅, 加入檳樃·川椒, 以茶飮進御, 則順下而無妨矣. 益河曰, 閭閻家, 或慮腹中蟲盛, 故常食川椒矣. (상이 이르기를 “일찍이 회충의 기운을 하교한 바 있다. 그리고 간간이 목에 회충이 나오려고 하는 기가 있다. 고로 생강차를 진어했지만 결국 효과가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라고 했다. 응삼이 말하기를 “이것은 위가 냉한 소치입니다. 사군자나 오매 등으로 차를 만들어 따뜻하게 해서 복용하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수계가 말하기를 “이것은 담이 위구로 들어간 소치이니 반드시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사군자와 오매에 빈랑, 천초를 넣어서 차로 마실 수 있도록 진어하면 순조롭게 내려가 방해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익하가 말하기를 “여염집에서는 뱃속에 회충이 있을 것을 염려한 까닭에 마땅히 천초를 상복합니다.”라고 했다.) 〇 영조 25년 1749년 7월 24일. 水剌, 則豆飯常有口淡之患, 麥飯則不淡, 而所進, 亦每不過數匙矣. 嘗見昔年進水剌時, 必進鹹辛之物, 今予亦常嗜川椒之屬及苦椒醬. 此乃食性, 漸與少時不同者, 其亦胃氣之漸衰耶? (수라상이 들어와도 콩밥은 맛이 싱거운 경우가 많고 보리밥은 싱거워서 먹어보려고 해서 역시 매번 불과 몇 숟가락만 떠먹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수라상에 반드시 짜고 매운 것들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역시 천초 같은 것과 고추장을 좋아한다. 이것은 식성이 점차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이냐 아니면 역시 위기가 약해져서 그런 것인가?) 〇 영조 27년 1751년 윤5월 18일. 若魯曰, 苦椒醬近日連爲進御乎? 上曰, 連進御矣。向日初入之苦椒醬, 甚好矣. 若魯曰, 此趙宗溥家物也. 更入之乎? 上曰, 唯. (약노가 말하기를 “고추장은 근래에 연속에서 진어가 되었습니까?”라고 했다. 상이 이르기를 “연속에서 진어가 되었다. 지난번 초에 들여온 고추장이 매우 좋았다.”라고 했다. 약노가 말하기를 “이것은 조종부집안의 것입니다. 다시 들여옵니까?”라고 했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라고 했다.) 〇 영조 29년 1753년 4월 22일. 上曰, 중략. 久不吐蛔蟲, 近又吐之, 而恐或挨口, 大開口而使之抉出, 則其長如許矣. 仍擧兩手, 示三四寸許. 若魯曰, 吐蛔何日爲之乎? 上曰, 十七日間爲之, 而腹部如有其氣矣. 중략. 上曰, 蛔蟲上來時, 川椒, 勝於生薑耶? 文秀曰, 頗勝矣. 若魯曰, 蛔旣始上來之後, 則無還爲下去之事矣。上曰, 閔判府事, 亦爲吐蛔云矣。若魯曰, 然矣, 而頻數多吐矣. (상이 이르기를 “중략. 오랫동안 회충을 토하지 않다가 근래에 또 토했으니 두렵고 혹은 입 가까이 올라오면 입을 크게 벌리고 빨리 빠져나오게 해서 그 길이를 알 수 있었다. 손에 들고 보니 3~4촌 정도 되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약노가 말하기를 “회충을 토한 날은 언제였습니까?”라고 물렀다. 상이 이르기를 “17일 전이었던 것 같고 배에 그 기운이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중략. 상이 이르기를 “회충이 위로 올라올 때 천초가 생강보다 좋으냐?”라고 했다. 문수가 답하길 “약간 좋습니다.”라고 했다. 약노가 말하기를 “회충이 이미 비로소 위로 올라온 이후에는 다시 되돌아 아래로 내려갈 일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상이 이르기를 “민 판부사도 역시 회충을 토했다고 하더냐?”라고 했다. 약노가 답하기를 “그렇습니다. 빈번하게 많이들 토합니다.”라고 했다.) 〇 영조 33년 1757년 5월 7일. 上曰, 予旣別無所損, 但痰氣, 有時升降而且吐蛔, 故今日召卿等矣, 卿等實過慮矣. 중략. 傳敎曰, 參橘茶停止, 加減理中湯五貼製入, 問候, 湯劑繼進日爲之事, 下敎. 出榻敎 晩曰, 饌饍中苦椒醬好矣. 上曰, 然則入之, 可也. (상이 이르기를 “내가 이미 손상된 바가 별로 없고 단지 담기가 있고 때에 따라서 오르내리면서 회충을 토하는 때가 있어 지금 경들을 부른 것이다. 경들이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중략. 전교에 따라 인삼귤차를 정지하고 가감이중탕 다섯첩을 지어서 들이고 문후하고 탕제는 계속해서 날마다 해야 할 일로 하교하였다. 만이 이르기를 “반찬으로는 고추장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들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〇 영조 44년 1768년 7월 28일. 上曰, 松茸·生鰒·兒雉·苦椒醬, 能有四味, 以此善食, 以此觀之, 口味非永老矣. (상이 이르기를 송이, 생복, 어린 꿩, 고추장은 능히 4가지 맛이 있으니 이것은 맛있는 음식이다. 이것을 보면 내 입맛이 영영 늙지는 않은 것 같다.) <의휘(1871년)> 椒醬法. 假令大豆一斗爛烹, 白米二斗細末, 同擣作燻造, 如枳子大如小苽大, 安於松葉上, 置于溫房. 待乾以鹽三升, 苦椒末三槡匙爲醬, 量入拌匀, 納于缸中, 後粘米一斗作飯, 候冷, 打丸如鷄子大, 揷于四邊置之, 陽照處待熟. 食甘如蜜. 寒則置陽處, 熱時置陰處. (초장법. 대두 1말을 푹 삶고 백미 2말을 곱게 갈아 함께 찧어 탱자나 작은 참외만 한 메주를 만들어 솔잎에 놓고 온돌방에 둔다. 마르면 소금 3되, 고춧가루 3술로 장을 만들어 앞의 재료의 양에 따라 넣고 반죽하여 항아리 속에 담은 뒤에, 찹쌀 1말로 밥을 지어 식으면 달걀만 한 환을 만들어 항아리 안쪽 가장자리에 두고 해가 드는 곳에서 익힌다. 맛이 꿀처럼 달다. 추울 때는 햇볕에 두고, 더울 때는 그늘에 둔다.) <동의보감(1610년)> 椒豉元. 治浮腫神方. 椒目 一錢, 豉 二七粒, 巴豆 一箇, 去皮心熬. 右硏細, 滴水和丸菉豆大. 溫水呑下三丸或五丸, 以微注爲度. (부종을 치료하는 신방이다. 초목 1돈, 두시 14알, 파두, 껍질과 심을 버리고 볶는다. 1개를 곱게 가루내고 물로 반죽하여 녹두대로 환을 만든다. 따뜻한 물에 3알 또는 5알씩 약간 설사할 정도로 먹는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7-17 16:46:19대만의 겨울은 습도가 높아서 춥다. 타이베이의 중앙연구원 아파트에서 겨울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벽에서 흘러내리는 곰팡이가 무서워 남쪽의 핑동현 우타이향(屛東縣 霧台鄕) 루카이(魯凱)족 지대로 피신하였다. 대만의 선주민들은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오스트로네시안이다. 10여종의 선주민들 중에서도 루카이의 인구수가 가장 적고(약 2만명), 목자르기(馘首)로 이름난 종족이었다. 해발 1000m의 산으로 오르자 선주민들이 산에서 거주하는 이유를 알았다.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을 맞이하였다. 곳곳에 지진으로 무너진 산사태가 심각하였고, 동네 전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찾아간 우타이촌도 산비탈에 제비집처럼 대롱거린다고나 할까. 지붕부터 벽채와 바닥까지 몽땅 산에서 채취한 석판을 이용하였다. 돌집의 처마 밑 장식은 사람 얼굴로 둘렀다. 1897년 대만을 찾았던 동경제국대학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보고서에는 잘라 온 사람의 산발머리를 마당의 거치대에 올려두고 입에 밥을 넣은 사진이 선명하다. 수호신을 모시는 방법으로 동네 입구에는 해골들을 가득히 진열한 두골가(頭骨架) 사진도 있었다. 불과 백 년 전까지도 이러한 관습은 지속되었다. 방바닥은 한 장의 크기가 50×30㎝ 정도의 직사각형 석판으로 정교하게 짜여져 장기판처럼 반들거린다. 루카이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실내장(室內葬)을 하던 사람들이다. 조상 시신 한 분 한 분이 석판 한 장 밑에 굴신으로 매장되었다. 과거에는 동네 하나의 규모가 작았다. 산비탈의 손바닥만 한 땅에서 화전을 일구어 조와 고구마를 심었기 때문에, 사자 공간의 별도 마련은 상상도 못했다. 멧돼지로부터 보호를 위해서도 실내장이 안성맞춤이다. 과거에는 수십년 또는 백년에 한 번씩 동네 전체가 이동하였다. 방바닥의 무덤이 꽉 차는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과 일치기(日治期)의 위생정책이 그 풍습을 정지시켰고, 모두 기독교도가 된 루카이 사람들은 교회 옆에 방바닥처럼 조성한 공동묘지를 이용한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가 옆에서 몸서리를 친다. 한쪽 벽에는 멧돼지의 해골을 진열한 수골가(獸骨架)가 자리하는 게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 해골이 집의 안팎과 동네에 가득하다. 수령(獸靈)에 의지하는 토템신앙이다. 집주인은 평생 동안 120여마리밖에 잡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한다. 루카이족 내에서 으뜸 사냥꾼은 사십대 중반인데, 평생 천마리를 잡았고, 최근 사냥 중 맷돼지의 공격으로 사망하였다. 남자들의 위세는 잡은 멧돼지의 숫자로 가름된다. 집주인의 루카이 이름은 띠부랑안느(1927년 8월 10일생)인데 일치기에는 기도 코지(木藤宏二)로, 1946년 대륙으로부터 국민당이 온 후 커어꽝얼(柯廣二)로 변하였다. 전동 휠체어를 탄 84세의 혼다 아키코가 다가와서 자신의 일본어 실력을 뽐낸다. 아키코의 남편이 토무(頭目)였다고.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가 집집마다 외벽 처마에는 사람 얼굴 부조와 벽채에는 멧돼지 해골을 가득하게 걸어 두었다. 그녀의 마당에는 내 키보다도 훨씬 큰 석판에 무장한 루카이 남성이, 옆으로는 백보사(百步蛇)와 항아리의 부조로 장식하였다. 결혼식으로 동네 전체가 들썩거린다. 한족의 친영(親迎) 흉내도 내고, 신부를 가마에 태운 신랑친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축하연의 군무는 거룩하다 못해 성스럽다. 남녀노소가 하나의 커다란 동그라미를 형성하고, 서로의 팔을 겹쳐 잡아서 연결된 원무(圓舞)다. 미끄러지듯이 사뿐히 내딛는 두 발의 박자와 율동에 감동한다. 여성들의 옷장식에 달린 조개들의 살랑거리는 소리뿐 아니라 멧돼지 상아들을 걸어올린 남성용 장식모자의 모습은 위엄스럽다. 전문외식업체가 음식을 대접하고, 한쪽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도 혼례 축원의 연출로 전해진다. 13마리의 돼지가 이미 분배되었고, 두 마리가 철망에 갇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하객들을 위한 빈랑과 생고기를 담은 비닐주머니가 즐비하다. 동네 전체가 결혼식으로 들썩거림에는 이유가 있다. 인구가 늘어갈 계기를 축원함이다. 잠자리에 누웠더니, 지붕을 마당 삼은 쥐들의 축제가 벌어졌는지 요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다음날 아침 띠부랑안느에게 불평하였더니, 그날 저녁 주메뉴로 잘 구운 고기가 꼬리를 매단 채 통으로 나왔다! 루카이족의 인구수는 지난 백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일정하다. 동네의 규모와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전체 인구수는 그대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호미오스테시스(항상성)를 유지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상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루카이족 내부에서는 여태까지 인구수가 준다고 걱정해본 적이 없다. 숫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위험수위에 달했다. 임계치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아슬아슬하다. 과거 타스마니아의 경험이 떠오른다. 인구절멸 위기를 처음 감지했던 1824년에 340명, 1834년에 111명, 그리고 1942년에 51명, 현재 타스마니아 섬에는 소위 '순종' 타스마니아 사람은 없다. 백년 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알프레드 크로버 교수가 마지막 남은 인디언 집단의 '이시(Ishi)'에 대한 기록은 인류학 교과서의 한 페이지다. 마지막 남았던 청년 남녀 한 쌍을 매개로 재생산을 시도하였지만, 두 사람은 한마디의 교환으로 서로는 결혼할 수 없는 구조적 관계임을 알았다. 세상의 인구절멸사(人口絶滅史)를 들여다보면 외부든 내부든 외세 간섭이 관건이었고, 그 외세는 근대국가란 괴물의 권력을 말한다. "저출산 저주" "인구절벽" "돈은 있는 대로 부어라". 호들갑 짱이다. 1970년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캠페인은 정부의 창작이었다. 그 여파로 아이가 셋이면 셋방 얻기가 어려웠다. 임신을 두려워해야 하는 부부 잠자리의 왜곡도 국가권력 개입 때문이다. 우리 세대가 체험한 바다. 40년 만에 정부가 앞장서서 돈다발을 흔든다. 언제는 "낳지 마라" 했다가, 이제 와서는 "낳으라"고 한다. 사람이 기계인가? 국민이 졸인가? 국권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중독된 어리석음이렷다. 대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고 혈세 낭비의 방자함이 드러났는데, 이 방자함의 입증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 결자해지라고 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 의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 첫 단추다. 감히 '자연을 거스르고 사람을 농락한 죄'임을 고해야 저출산망국 문제의 물꼬가 트일 것 같다. 부분적 선택과 집중의 기능적 사고가 아니라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7-08 18:47:40[파이낸셜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2급 발암물질로 지정해 중국도 판매를 금하고 있는 열매 '빈랑'이 5년간 국내에 100t(톤) 넘게 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국내에 수입된 빈랑은 103t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18년 11t서 2019년 26t, 2020년 23t, 2021년 13t으로 줄었다가 올해 8월 현재 30.3t이 수입되며 지난해 전체량 대비 1.42배 증가했다. 빈랑 열매에 함유된 ‘아레콜린’ 성분은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에 2급 발암물질로 등록됐다. 흔히 구강암을 유발하고 중독·각성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랑을 기호품처럼 소비하는 중국에서는 이미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2020년 식품 품목에서 제외했고 지난해부터는 온라인 홍보·판매 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진열된 제품을 수거하는 조치까지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한약재로 분류되는 탓에 수입통관 제재 없이 5년간 103톤 넘게 수입된 것이다. 빈랑 수입량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당국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관세청은 빈랑이 약사법에 따른 한약재로 관리되고 있어 검사필증을 구비하면 수입통관에 별다른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는 2025년까지 안전성평가를 진행키로 했지만, 아직 주관연구기관 선정도 안 된 것으로 파악됐다. 홍 의원은 “애초에 안전성평가가 실시되지 않아 위험성 여부가 담보가 안 되는 가운데, 식약처와 관세청이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며 “신속한 안전성평가 등 주무부처의 신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
2022-10-26 08:50:49[파이낸셜뉴스] 암을 유발해 '죽음의 열매'로 불리는 빈랑(비틀넛)의 판매를 금지하는 중국 지방 정부가 늘고 있다. 23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저장성 이우시와장시성난창시 시장감독관리국은 지난 20일 빈랑 가공식품 판매를 금지하고, 판매대에 진열된 제품을 수거하도록 했다. 지난 5월 구이저우성 준이시를 시작으로 10여 곳이 빈랑 식품 판매 금지령을 내렸으며 점차 늘고 있다고 인민일보는 전했다. 중국은 지난 2020년 빈랑을 식품 품목에서 제외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방송과 인터넷 등을 통해 빈랑을 식품으로 홍보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한바있다. 최근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난 중국 가수 보송은 지난 6월 SNS를 통해 자신이 빈랑 열매를 약 6년 동안 즐겨 씹었다며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통해 빈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리고 싶다"고 말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빈랑은 중국을 비롯한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냉증 치료, 기생충 퇴치 약재로 사용해왔다. 또 일종의 각성효과를 얻을 수 있어 일부는 식사 후나 휴식 때 껌처럼 씹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빈랑은 아레콜린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구강암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암연구소는 2003년 빈랑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기도 했다. 중국도 2017년 아레콜린 성분을 구강암 유발 물질로 규정했다. 실제 수년 전 후난성에서 구강암 환자 8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90%가 빈랑을 섭취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규제에도 중국 내 빈랑 생산량과 소비량은 오히려 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매체 식품잡지에 의하면 지난 2020년 중국 내 소비량은 10만3378만톤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중국 시장감독관리국이 집계한 결과, 2011년 558억 위안(약 11조원)이었던 빈랑 시장 규모는 2018년 781억 위안(약 16조원)으로 커졌고, 2025년에는 1000억 위안(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2-09-23 13:45:54\r \r \r \r \r \r \r \r \r \r \r \r \r 쿠알라룸푸르 잘란알로 야시장 전경 사진=조용철 기자 \r \r \r \r \r \r 【 페낭·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조용철 레저전문기자】 말레이시아 북서해안 도시 페낭.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이곳에선 화려한 건축물과 다양한 먹거리, 여유로운 자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시아의 진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양의 전통과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현대적인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 동서양의 문화가 완벽하게 공존하는 페낭의 중심지 조지타운은 지난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 다음으로 붐비는 국제적인 도시인 페낭은 풍부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 아름다운 해변 리조트, 맛있는 음식이 모두 갖춰져 있어 매년 수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현지가이드 허태경씨는 "페낭은 물놀이를 하는 휴양지의 성격보다는 관광지에 더 가깝다"며 "페낭이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이유는 과거 서양에서 동양으로 바닷길을 이용할 때 쉴 수 있는 중간 지점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 \r \r \r \r \r \r \r \r \r \r 쿠알라룸푸르 메르데카 광장 앞 분수 \r \r \r \r \r \r ■ 초록숲· 말라카해협 푸른 바다… 지역민 삶 담긴 벽화거리 등 볼거리도 풍성 페낭 다채로운 미식 문화로 잘 알려진 페낭은 주변 동남아 젊은이들이 가볍게 놀러오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어 세련된 카페 문화도 함께 발달했다. 페낭에는 독특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음식의 하나는 야채와 납작한 쌀국수를 볶은 '차퀘이테오'다.페낭은 285㎢의 면적으로 본토인 세브랑퍼라이와 3㎞ 넓이의 해협으로 나뉘어 있다. 페낭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지난 1985년에 현대건설이 지은 13.5㎞ 길이의 페낭대교와 지난해 완공된 제2페낭대교를 이용하면 된다.페낭이라는 이름은 '풀라우 피낭'이라는 말레이어로 섬이라는 뜻의 풀라우와 빈랑나무에서 유래됐다. 페낭은 1786년 영국 선장 프란시스 라이트가 설립한 영국의 동남아시아 첫 전초기지로 오랜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립하며 말레이시아에 편입됐다. 150만명이 조금 넘는 인구 중에는 말레이시아, 중국, 인도, 태국, 버마, 유라시아, 일본인 등 다양한 인종이 포함돼 있다.숙소인 샹그릴라 라사 사양 리조트의 아침은 맑은 새소리로 시작한다. 호텔방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트 페링기 해변과 푸른 바다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r \r \r \r \r \r \r \r \r \r \r \r \r \r 페낭의 중심지인 조지타운은 마스지드 카피탄 켈링 거리에 우뚝 솟은 첨탑과 중국인 수상가옥인 클랜 제티 등 독특한 문화유산이 공존하고 있다. 최근엔 거리의 예술과 거대한 와이어 조각이 이 일대에 특별함을 더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화가 어니스트 자카레빅의 '자전거 타는 아이들'은 이 지역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벽화 작품으로 여행자들이 즐겨찾는 장소 중 하나다. 거리를 걷다보면 처음엔 만만하게 봤지만 5분 정도 지나면서 온 몸에 땀이 흐르고 머리 위로는 불덩이가 떨어지는 듯하다. 숨쉬기 힘들만큼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문득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엄청난 거리 예술의 향연이 여행의 순간을 풍성하게 해준다. 페낭 전경을 살펴보려면 페낭힐로 올라가면 된다. 후니쿨라(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페낭힐로 올라가면 조지타운의 아름다운 전망과 말라카 해협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페낭힐 꼭대기 곳곳에서는 사진을 찍는 여행객이나 연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페낭힐의 정상은 섬과 본토의 환상적인 전경과 초록의 숲, 기이한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과 낮은 온도로 시원함을 제공한다. 페낭힐 주위의 곳곳에선 영국 점령 당시의 방갈로를 찾아볼 수 있다. 기차에서 내려 계단과 오르막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지금의 벨뷰호텔인 보안관 윌리엄 해링버튼의 집과 우드사이드 방갈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하얀집 등 오래된 방갈로를 볼 수 있다. ■ 다채로운 문화 공존· 미식가 입맛 사로잡는 잘란알로 야시장 먹거리 강추 쿠알라룸푸르페낭에서 항공편인 에어아시아로 1시간가량 이동하면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할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는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황홀한 전망을 자랑하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우리나라의 인사동과 같은 센트럴 마켓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자랑한다. \r \r \r \r \r \r \r \r \r \r \r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야경 \r \r \r \r \r \r 쿠알라룸푸르하면 떠오르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정유회사 페트로나스사의 사옥이다. 각종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면서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밤이 되면 보석처럼 빛나는 눈부신 조명으로 인해 한층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며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83층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쿠알라룸푸르 시가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 독립의 상징인 메르데카 광장 주변엔 시청, 중앙은행, 경찰청, 관광청, 역사박물관 등 주요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r \r \r \r \r \r \r \r \r \r \r 왼쪽부터 페낭 수상가옥, 겐팅 케이블카와 겐팅하이랜드로 가는 옛길, 페낭힐 러브락 펜스 \r \r \r \r \r \r 현대적인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을 찾아볼 수 있는 장소다. 부킷빈탕역에서 거리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쿠알라룸푸르의 대표적인 야시장인 잘란알로 야시장을 만나볼 수 있다. 중국 화교 중심으로 형성된 중화 야시장 거리다. 다양한 씨푸드요리, 말레이.싱가폴.중국.태국식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코를 자극하는 육포, 열대과일과 함께 맥주, 중국술로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북동쪽으로 58㎞ 떨어진, 자동차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는 '고원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는 겐팅하이랜드가 있다. 해발 1800m의 울루칼리산 정상에 있는 켄팅하이랜드는 호텔과 카지노 등이 들어서 있는 말레이시아 최고의 위락도시로 독특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산 중턱에서 정상까지 연결돼 있는 케이블카는 겐팅하이랜드의 울창하고 멋진 열대우림의 장관과 스릴을 동시에 선사한다. 현지가이드 허태경씨는 "겐팅 케이블카는 장장 14.5㎞에 이르는 거리로 약 20분간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겐팅하이랜드에 오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면서 "고원지대로 날씨가 선선한 편이어서 말레이시아인들의 여름 휴가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yccho@fnnews.com \r \r
2015-07-16 18:22:11마두령, 마편초, 목단비 등 15종의 식물성 원료와 동물성원료인 오공 등 16종의 원료가 건강기능식품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건강기능식품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건강기능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은 마련, 입안예고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지금까지 건강기능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는 75종이었으며 이번에 16종의 원료가 추가됨으로써 총 91종의 원료가 건강기능식품 사용금지 원료로 규정됐다. 이번에 사용 금지 원료로 규정된 것은 마두령, 마편초, 목단피, 목방기, 목통, 백굴채, 백부자, 빈랑자, 스코폴리아, 위령선, 천초근, 초오, 키나, 행인, 황백 등 식물성 원료 15종과 동물성원료인 오공 등 16종이다. 식약청 김명철 영양기능식품국장은 “이번 규정 개정을 통해 독성이 강한 원료의 사용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건강기능식품의 안전성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식약청 홈페이지(http://www.kfda.go.kr> 정보마당 > 법령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talk@fnnews.com조성진기자
2008-12-22 10:19:29㈜코리아나 화장품의 송파기술연구소 이건국 연구소장이 19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진행된 제 43회 발명의 날 기념식에서 국가 산업발전에 공이 큰 발명자로서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건국 연구소장은 1989년 최초 발명 특허를 출원한 이후 현재까지 97건의 특허 발명과 국내ㆍ외 논문 41건을 발표하며 대한민국의 화장품 과학 발전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특히 빈랑자, 예덕나무피, 노니 등 한방 및 천연 약재로부터 주름개선 기능성 소재를 국내에서는 최초로 과학화, 객관화하여 식약청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꾸준한 천연 식물 연구로 2003년 과학기능 유공대통령 표창과, 2004년 동암 연구개발 대상도 수상했다. 이건국 연구소장은 “천연 식물 원료에서 연구개발한 새로운 화장품 원료로 부가가치를 높여 자사 제품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원료를 수출하는 등 매출성장과 국위선양, 과학기술 발전에 앞으로도 더욱 노력할 것”이라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박신영기자
2008-05-19 11:19:57◇케이씨피드=계열사에 농업회사법인 케이씨팜 추가 ◇토비스=화상표시부가 구비된 데이터 입력장치 특허취득 ◇유비트론=일본 ISHIIYOKI社와 기술이전 양해각서 체결 ◇에피밸리=USB DATA MODEM 18억원 규모 공급 계약 체결 ◇코리아나화장품=빈랑자 추출물을 함유하는 약용 화장료 조성물 특허 취득 ◇컴투스=3분기 매출액 46억7600만원 달성 ◇바이오톡스텍=비임상 및 임상을 위한 분석센터 신축
2007-10-26 1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