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가장 중요한 것은 홍보입니다. 장기실종 아동은 누군가 제보해 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고, 대중들이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사회와 언론의 주목이 필요합니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58· 사진)는 17년째 이어 온 본지의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국민적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종아동찾기협회는 199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통과를 위한 실종가족 부모 모임으로 출발했다. 친목모임이던 단체를 서 대표가 정비해 협회로 만들고, 현재는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현재 400여명의 실종가족이 등록돼 있다. 서 대표도 1994년 10살 외동딸인 희영양(35·실종 당시 9세)과 헤어지며 삶이 바뀌었다. 골프연습장까지 운영하던 건실한 사업가였던 그는 협회를 운영하며 빚만 수억원을 졌다. 국가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활동비의 90%는 서 대표의 사비에서 충당한다. 서 대표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홍보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가장 아쉽다고 전했다. 그는 "실종아동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예산이 지난해 기준 약 14억원이었다"며 "실종아동 1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현재 기준으로 약 10억원 가까운 돈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아이 한 명도 안되는 예산으로 실종아동 관련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방송사의 실종 아동찾기 방송은 수년 전 폐지됐다. 다른 언론에서도 가정의 달인 5월에만 실종아동 문제에 잠시 관심을 가질 뿐이다. 서 대표는 "장기실종 문제는 제보를 통해 단서를 제공받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며 "홍보가 여전히 부족하고, 창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실종아동 관련 조직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일원화되며 효율성을 높이고, 올해는 5월 25일 '실종아동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실종아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다. 서 대표는 이같은 움직임에 다소 고무되면서도, 지속적인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 담화문이나 공익광고 등을 통해 실종아동의 현실을 더 인식시키고, (국민에게) 동참을 권하길 바란다"며 "5월 이후 관심이 떨어지는데, 실종아동의 가족들은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서 대표는 마지막으로 지속적으로 실종아동 캠페인을 진행 중인 본지에도 감사를 표했다. 그는 "17년간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의 리더 역할로 국민에게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며 "국민적 관심과 홍보의 주도적 역할을 해 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2020-05-25 13:54:09"올해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일하는 데 필요한 돈도, 사람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이 부족해요. 더 많은 사람이 실종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51·사진)는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쉬움과 서러움으로 가득 찬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실종가족에 대한 지원 확대, 실종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보호시설 수색 강화 등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실종가족 지원 확대가 당면과제 서 대표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돈이라야 연간 5회 정도 전단지·플래카드를 만드는 비용과 심신이 허약해진 실종가족들의 의료비 등 가구당 130만원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정도면 무관심이 아니라 '방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식적으로 파악된 실종가족이 전국에 900가구가량 되는데 지원예산은 연간 5000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하루빨리 '실종가족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종아동 관련 업무를 위탁할 전문기관 선정을 위해 해마다 입찰을 실시합니다. 그런데 하겠다는 곳이 없어서 지금까지 줄곧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맡고 있어요. 예산지원은 10억원이 안 되는 데 들어가는 돈은 15억원 가까이 됩니다.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채워넣는 구조예요. 그나마 예산도 지난 2006년 첫 지원 이후 조금 올랐다가 다시 깎여 지금은 8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서 대표는 실종 및 아동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아이가 실종된 후 공소시효가 바로 시작되는데 실종아동의 부모 입장에서는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는 것이다. 서 대표는 "공소시효가 당장이라도 폐지되면 좋겠지만 최소한 새로운 단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공소시효가 중단돼야 한다"며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없어졌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아울러 전국의 보호시설 등에 대한 일제 수색을 벌일 때 정신병원도 포함할 것을 주문했다. 대부분의 시설은 문을 열었지만 정신병원은 아직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등을 근거로 비협조적이라는 설명이다. 실종자들을 찾을 때만이라도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다른 법보다 우선 적용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서 대표는 "실종 문제 해결에 정부도 더욱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문 등을 미리 등록했다가 실종 시 이를 활용해 신속하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등록제' 역시 '할 수 있다'(임의법)가 아니라 '해야 한다'(강제법)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서 대표의 생각이다. ■실종가족 위한 쉼터 만들 것 서 대표는 한때 전북 남원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던 건실한 사업가였다. 평범하지만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의 인생에 폭풍이 몰아친 것은 지난 1994년 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우 열 살이던 외동딸 희영이가 실종된 것이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오겠다며 집을 나간 것이 희영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서 대표는 그 후로 몇 달 동안 희영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는 "아이가 실종되면 부모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헤매면서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곧 가정 파탄, 가족 해체로 연결된다"며 "특히 (실종아동 이외에) 남은 아이들의 경우 결손가정에서 자라게 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서 대표도 힘든 시기를 겪었다. 소소한 말다툼이 계속되면서 부인과 멀어졌고 희영이 할머니는 손녀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서 대표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06년 신학 공부를 시작해 2010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경기 과천의 새빛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다. 하지만 교회와 협회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교회에 소홀해지고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지금은 협회 업무에만 매진하고 있다. 서 대표는 희영이를 찾으러 다니면서 만난 실종가족들과 교류를 이어오다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2006년 실종아동찾기협회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기에 서 대표가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협회는 아이를 잃어버린 가족들을 위로하고 아이를 찾는 방법 등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 서 대표는 "실종부모들이 협회를 많이 의지하고 있어 이제는 도망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여건이 되면 실종가족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은 쉼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2014-01-09 16:57:14파이낸셜뉴스에서는 지난 8년 동안 지면을 통해 실종아동 찾기와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를 진행해 왔습니다. 실종아동과 가족들이 부모 형제를 만나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뤄 밝고 명랑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뜻에 실종가족들의 대표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표합니다. 잃어버린 가족 찾기와 관련해 파이낸셜뉴스가 자문위원회 구성 및 위촉, 구체적인 실종자 찾기 방법과 연구를 점진적으로 진행해 나간다고 합니다. 더불어 자문위원들도 실종가족들의 어려움과 슬픔, 가족들의 지원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 정책만으로는 실종가족과 헤어진 가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파이낸셜뉴스를 통해 국민 모두가 '실종'이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의 일, 내 가족의 일, 내 이웃의 일로 생각하며 느끼도록 자문위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또 사회 약자인 실종아동 가족들과 헤어진 가족들의 고통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보건복지부와 경찰의 찾기에 있어 공조되도록 중간 역할자의 소임도 병행하겠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잃어버린 가족 찾기 자문위원들은 그동안 실종과 관련해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분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실종 아동과 성인, 장애인, 치매노인에 이르기까지 헤어진 가족을 찾는 데 있어 자문위원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서기원 대표=새빛교회 부목사, 보건복지부 실종아동찾기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10-05 16:45:02지난 1994년 4월 27일 오후. 학교에 다녀온 뒤 “놀다 오겠다”며 집앞 놀이터로 달려나간 딸아이(서희영·당시 만10세·사진)는 해가 진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디선가 놀고 있겠지 생각하고 싶었지만 서기원씨(46)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곧바로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3일 정도 지켜본 뒤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외동딸 희영이의 모습을 본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는 경찰을 보다 못한 서씨는 지인의 소개로 한 방송사를 찾아갔다. 서씨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전파를 탄 것은 희영이가 실종된 지 4일 뒤인 그해 5월 1일. 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계절은 날로 푸르러 갔지만 서씨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만 갔다. “방송이 나간 후 제보가 있었지만 대부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몇몇 제보는 장난 전화였던 걸로 판명나기도 해서 참 마음이 착잡했죠. 그 이후 경찰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4년이 지나가버렸네요.” 희영이의 실종 이후 서씨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전북 남원에서 하던 작은 여행사와 골프연습장 사업도 몇 년 뒤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경기 과천 새빛교회 준목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씨가 뒤늦게 신학대학에 입학한 것도 사실은 딸아이를 잃어버린 것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살아 생전 잃어버린 손녀 녀석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으셨는데 돌아가시면서 하느님의 아들이 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미아 부모들은 한 인간의 힘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고통을 떠안고 살아가게 마련인데 인생의 고비마다 하느님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서씨는 얼마 전부터 미아 가족들의 모임인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 임시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초대 회장을 맡고 있던 실종아동 모영광군의 어머니 박혜숙씨가 개인적인 이유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돼 한동안 비어있던 자리를 서씨가 떠맡고 나섰다. 14년 전 잃어버린 희영이의 나이는 이제 24세.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있을 딸아이를 혹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교적 차분하고 씩씩했던 서씨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제 다시는 헤어질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줘야죠.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 너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말할 것 같아요.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준 이 세상에 뭔가 되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지난 1994년 4월 27일 전북 남원시 향교동 집앞에서 행방불명된 서희영양은 왼쪽 눈 위에 넘어져서 다친 흉터가 있으며 양쪽 귀 윗쪽에 옴폭 파인 자국이 있다. 귀 위쪽에 있는 자국은 일종의 유전으로 서씨의 한쪽 귀 윗부분에도 똑같은 자국이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2008-10-05 21:10:36지난 1994년 4월 27일 오후. 학교에 다녀온 뒤 “놀다 오겠다”며 집앞 놀이터로 달려나간 딸아이(서희영·당시 만10세·사진)는 해가 진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디선가 놀고 있겠지 생각하고 싶었지만 서기원씨(46)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곧바로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3일 정도 지켜본 뒤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외동딸 희영이의 모습을 본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는 경찰을 보다 못한 서씨는 지인의 소개로 한 방송사를 찾아갔다. 서씨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전파를 탄 것은 희영이가 실종된 지 4일 뒤인 그해 5월 1일. 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계절은 날로 푸르러 갔지만 서씨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만 갔다. “방송이 나간 후 제보가 있었지만 대부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몇몇 제보는 장난 전화였던 걸로 판명나기도 해서 참 마음이 착잡했죠. 그 이후 경찰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4년이 지나가버렸네요.” 희영이의 실종 이후 서씨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전북 남원에서 하던 작은 여행사와 골프연습장 사업도 몇 년 뒤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경기 과천 새빛교회 준목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씨가 뒤늦게 신학대학에 입학한 것도 사실은 딸아이를 잃어버린 것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살아 생전 잃어버린 손녀 녀석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으셨는데 돌아가시면서 하느님의 아들이 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미아 부모들은 한 인간의 힘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고통을 떠안고 살아가게 마련인데 인생의 고비마다 하느님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서씨는 얼마 전부터 미아 가족들의 모임인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 임시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초대 회장을 맡고 있던 실종아동 모영광군의 어머니 박혜숙씨가 개인적인 이유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돼 한동안 비어있던 자리를 서씨가 떠맡고 나섰다. 14년 전 잃어버린 희영이의 나이는 이제 24세.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있을 딸아이를 혹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교적 차분하고 씩씩했던 서씨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제 다시는 헤어질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줘야죠.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 너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말할 것 같아요.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준 이 세상에 뭔가 되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지난 1994년 4월 27일 전북 남원시 향교동 집앞에서 행방불명된 서희영양은 왼쪽 눈 위에 넘어져서 다친 흉터가 있으며 양쪽 귀 윗쪽에 옴폭 파인 자국이 있다. 귀 위쪽에 있는 자국은 일종의 유전으로 서씨의 한쪽 귀 윗부분에도 똑같은 자국이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2008-10-05 16:56:03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서기원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3시25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75세. 지난 1930년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복중학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졸업은 하지 못했다. 공군 대위로 예편한 뒤 1956년 동화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으며 서울신문 주일특파원,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 73년부터는 공직자로 변신해 경제기획원 대변인과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을 지내다가 10·26 사태후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되면서 청와대 공보수석 비서관을 맡았다. 그 뒤로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서울신문 사장, 한국신문협회장, KBS 사장, ‘문학의 해’ 조직위원장, 한국공연예술 진흥협의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두루 거쳤다. 고인은 소설가로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지난 1956년 ‘현대문학’에 단편 ‘암사지도’를 발표해 이듬해 소설가 황순원씨의 추천으로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했고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받은 바 있다. 유족으로는 성기원 여사와 서동숙(주부), 동준(미국 연방기상청 책임연구원), 동한(도시공영 이사), 동철(서울신문 사업기획부장) 등 3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02-2072-2016), 발인 2일 오전 7시며 장지는 충북 옥천 선영이다.
2005-07-31 13:32:29대한민국예술원(회장 이준)은 9일 정기총회를 열어 제49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자로 문학부문에 소설가 서기원(74), 미술부문에 동양화가 민경갑(71), 음악부문에 바이올리니스트 이재헌(전 연세대 음대학장·71), 연극·영화·무용부문에 영화배우 황정순씨(79)를 각각 선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휘장, 상금 3000만원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오는 10월5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예술원은 이날 시인 신경림(69), 소설가 박완서(73), 서양화가 윤명로(68), 동양화가 이종상(66), 국악인 이재숙씨(서울대 음대교수·63)를 신입 회원으로 선출했다.
2004-07-09 11:30:01[파이낸셜뉴스] 28살 나이에 시내버스 기사가 된 청년의 사연이 관심을 끌고 있다. 1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튜브 채널 '탐구생활 - 돈이 되는 삶의 이야기'에 지난해 9월 공개된 인천의 한 시내버스 기사 서기원씨의 인터뷰 내용이 공유돼 뒤늦게 화제가 됐다. 그는 영상에서 20대 초반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를 중퇴한 뒤 버스 기사 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대학교를 중퇴한 이유는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까지 대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였다고 한다. 진행자가 "관광버스, 고속버스 등 버스에도 종류가 많은데 왜 시내버스를 운행하게 됐냐"고 묻자 서씨는 "원래는 별다른 꿈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는 삶이었는데 아버지가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제게 '버스 기사를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태권도 사범님이었던 아버지 지인 중에 현직 버스 기사분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에 저도 버스 운전에 대해 좋은 시선이 아니었다. 버스 기사라고 하면 운전 난폭하게 하고, 성격 나쁘고, 할 게 없는 사람들이 한다고 생각했다"면서도 "그런데 알아보니 그건 다 옛날 말이었다. 지금은 성격 좋은 기사님도 많고 월급도 많이 주더라"라고 이야기했다. 공휴일에 일하면 특근수당 붙어 월급 430만~450만원까지 버스 기사가 되기로 한 서씨는 대형면허와 버스 운전종사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1년간 셔틀버스를 몰며 경험을 쌓다가 2년 전쯤 시내버스 기사로 취업했다. 셔틀버스 운전 경력 덕분에 경기 화성교육센터에서 받아야 하는 버스 운전자 양성 교육은 건너뛸 수 있었다. 그는 영상에서 "여긴 처음 들어오고 6개월, 1년, 2년 단위로 월급이 올라간다. 세후 기준으로 보통 처음엔 270~275만원을 받는다. 6개월 차엔 300만~310만원을 받는다"며 "2년부터가 진짜인데, 2년이 딱 넘어가면 400만원은 무조건 받는다. 그다음 추석이나 설날 등 공휴일에 일하면 특근수당이 붙어 430만~4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라고 버스 기사로 근무하면서 받는 월급도 공개했다. 하지만 2년이 넘어가면 매년 5~6만원 수준으로 급여가 오른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버스 기사의 장점으로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것 ▲시내버스 경력을 쌓으면 공항버스와 같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다는 것을 뽑았다. 반면 서씨가 밝힌 버스 기사의 단점은 ▲3시 30분께 일어나는 등 일찍 기상해야 한다는 것 ▲졸음운전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승객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는 것 등이었다. 서씨는 "어른들은 말렸다. 왜 그 젊은 나이에 버스 기사를 하냐, 많은 도전을 하고 나이가 많아지면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면서도 "그런데 저는 버스 기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이 길을 선택한 데 대해 후회한 적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제 등대가 돼주신 분이 아버지인데, 이 길도 아버지가 알려주셨고, 또 제 취미와 특기가 이런 것에 적합하다 보니 매 순간 이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 큰 차를 제가 핸들을 잡고 변속하면서, 액셀을 밟으면서 시민의 발이 되어준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라고 밝혔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1-13 05:14:49[파이낸셜뉴스] 폭염과 열대야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 저녁의 쌀쌀함은 약간 어색하기도 합니다. 매일 같이 기후변화, 탄소배출, 대기오염 등 이런 것들이 우리와 상관없다고 했었지만 올해는 이러한 변화들을 체감했죠. 이런 기후변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남극의 변화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영국 엑서터대 토마스 롤랜드 박사가 4일(한국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식물이 자라는 남극 대륙의 면적을 조사해보니 2021년까지 40년간 10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또 우리나라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서기원 교수는 남극의 얼음이 2020년까지 18년간 매년 1200억t이 사라졌다고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200억t은 올림픽 정규 수영장을 약 8억6000만개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남극 이끼 서식지 매년 40만㎡ 확장 엑서터대와 허트퍼드셔대, 영국 남극 조사팀은 기후변화로 인해 남극이 얼마나 녹화되고 있는지를 위성 데이터를 사용해 살펴봤습니다. 그결과, 남극 전역의 식생 면적은 1986년 1㎢ 미만에서 2021년에는 거의 12㎢까지 증가했습니다. 또 2016년에서 2021년까지의 기간 동안 녹화 경향이 연구기간 전체(1986년에서 2021년) 대비 30% 이상 가속화됐으며, 이 기간 동안 매년 40만㎡ 이상이 확장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롤랜드 박사는 "남극의 풍경은 여전히 눈, 얼음, 암석으로 덮여 있으며, 극히 일부만 이끼 등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이 작은 부분이 급격히 확장됐으며, 이는 이 광대하고 고립된 남극조차 인위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허트퍼드셔대 올리 바틀렛 박사는 "이러한 생태계가 더 자리 잡게 되고 기후가 계속 따뜻해지면서, 녹지화의 범위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앞서 바틀렛 박사는 "남극 토양은 대부분 열악하거나 바위가 뒤덮고 있지만, 식물이 증가함에 따라 유기물이 더해지고 토양 형성을 돕게 될 것이며,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매년 수영장 8억6000만개 채울 물이 불어난다 서울대 연구진은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 수십 ㎞ 공간 규모의 작은 빙하 변화까지 정확하게 파악해냈습니다. 남극 얼음의 높이를 측정하는 인공위성 고도계와 중력을 측정하는 인공위성 중력계 관측 자료를 수학적으로 최적화해 계산했다고 합니다. 이를 계산해보니 남극 전체 얼음은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8년간 매년 약 1200억t씩 사라졌습니다. 특히 서남극에 위치한 파인아일랜드 빙하와 스웨이트 빙하는 남극 전체 면적의 3%에 불과하지만, 연간 845억t의 얼음을 바다로 흘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는 남극 전체의 연간 얼음 방출량의 약 70%에 해당합니다. 또 연구진은 빙하 감소의 원인을 정량적으로 밝혀냈습니다. 파인아일랜드 빙하와 스웨이트 빙하는 줄어든 빙하의 90% 이상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늘어났다고 합니다. 반면 동남극은 눈이 많이 내린 탓에 매년 얼음이 약 500억t씩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온난화로 남극이 변해 해수면 상승 불러온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역임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아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쓰는 전기와 각종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로 퍼진 것이죠. 이는 남극이 지구 평균보다 빠르게 온난화되고 있으며, 남극에서 극심한 열파 현상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기원 교수는 "남극 얼음 질량 변화의 정밀 관측과 그 원인 규명은 지구 온난화가 유발하는 해수면 상승을 이해하고 상승된 해수면에 의한 미래 재해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남극의 얼음이 다 녹는다면 전세계 해수면을 약 57m 정도 상승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해수면이 올라가면 바닷가에 있는 마을은 다 잠기고 지도 모양이 바뀌면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들겠죠. 한 과학자는 해수면 상승 시나리오에 따른 세계 지도를 보면 일본은 후지산만 남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끔찍합니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생횔하기에도 불편해지고, 경제에도 타격이 오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삶을 위협하게 될겁니다. 생활문화, 산업 등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만드는 모든 것들을 바꿔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앞장서야 겠습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4-10-04 16:12:18▲ 남차남씨 별세 김승규 기호(전 경북매일신문 대표) 필규 종규씨 모친상· 황태식(포항 황씨금방 대표) 서기원씨(포스코와이드 근무) 빙모상· 김향희씨 시모상=10일 포항국화원 장례식장, 발인 12일 8시. (054)272-4444
2024-04-10 12:2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