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한 관광객이 '모델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GB뉴스 제작자 마리아 머피는 지난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경험을 했다”라며 한 장의 사진을 게시했다. 사진을 보면 빨간색 셔츠를 걸치고 검은색 바지를 입은 한 여성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앞 철로에 앉아있다. 여성은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피는 "유감스럽게도 그곳의 모든 이가 그렇게 가슴 아파하진 않는 것 같다"라며 사진 속 여성을 질타했다. 해당 게시물은 30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무례하다", "이 여성은 수많은 사람이 살해된 장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등의 댓글을 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측도 공식 SNS에서 불쾌감을 표시했다. 박물관 측은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방문할 때는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된 수용소의 실제 현장에 들어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라며 "그들의 기억을 존중해 달라"라고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관광객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월에는 한 네덜란드 여성 관광객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상징적인 장소인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가 적혀있는 정문 앞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이 관광객은 경찰에 연행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점령한 이후 설치한 수용소다. 이 수용소는 노동 교화소와는 달리 반나치 성향이 의심되는 세력을 절멸시키기 위한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을 떨쳤으며, 이곳에서만 유대인을 포함한 최소 110만명이 살해됐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2023-04-21 14:34:59[파이낸셜뉴스]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 같은 ‘120시간 노동관’ 발언 한 마디가 정치권에 파장을 몰고 왔다. 이는 그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 정책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스스로 옛 보수에서 탈피하겠다고 밝힌 포부가 무색하게 더욱 진한 보수의 향기를 풍기는 노동관을 내비쳤다. 주 120시간은 주 5일 근무 기준 한 숨도 못 하고 매일 24시간을, 주말 없는 주 7일 근무로 따져도 하루 17시간가량 일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다. 실수라면 준비 부족, 의도가 개입됐다면 비루한 인식의 발로라는 비판이 빗발친다. 특히 정보기술(IT) 업계 악습으로 불리는 ‘크런치 모드(마감을 앞두고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Crunch Mode)’를 두둔하는 뜻으로 읽히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여권은 윤 전 총장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영국 산업혁명 시기 노동시간이 주 90시간,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주 98시간 노동”이라고 윤 전 총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같은 당 강병원 최고위원도 “주 4일제가 정치권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워라밸’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다. 윤 후보는 타임머신을 타고 쌍팔년도(1988년)에서 오셨냐”고 윤 전 총장의 퇴행적 노동 인식을 저격했다. 여권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도 페이스북에 “아침 7시부터 일만 하다가, 밤 1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7일 내내 계속해도 119시간이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라고 반문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도 “윤석열 후보가 주 52시간 근무제에 ‘예외조항’이 전혀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유연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 선택근로제 등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분명히 있다”며 “관련 법률을 충분히 찾아보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우원식 의원은 “이제 대권가도에 올랐으니 (재벌) 저승사자가 아니라 보디가드로 전업하겠다는 공개선언”이라고 쏘아붙였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역시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사람 잡는 대통령이 되시려는 것 같다. 주 5일 동안 하루 24시간씩, 120시간 일하면 사람 죽는다. 이게 말이나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트위터에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24시간 쉬지 않고 일해야 120시간이다. 정말 큰일을 하고 싶으시면 먼저 생각 좀 하고 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윤 정 총장은 지난 19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주 52시간제를 두고 “실패한 정책”이라며 “현 정부는 주 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지난해 중소기업 기준)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제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라며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논란이 거세지자 윤 전 총장은 20일 대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편에서)마치 제가 120시간씩 일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있다”며 말했다. 이후 공식 입장문까지 내고 “주 52시간에 대한 현장 목소리와 문제의식을 공감해 그대로 전달한 것일 뿐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다”라고 짚었다. 자신이 강조해 내뱉은 주장이 아닌 스타트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을 뿐이라는 해명이다. 다만 윤 전 총장이 지난 8일 만난 이들은 스타트업 대표들로 정작 크런치 모드를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들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2021-07-20 21:17:15▲ 사진=방송화면 캡처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경비병으로 일한 94세 노인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나치 친위대원(SS)이었던 한닝(94)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집단수용소의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5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할 것임을 밝혔다. 독일 서부 데트몰트에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법원은 17일(현지시간) 아우슈비츠 경비병으로 일하며 17만 명의 체계적인 학살에 조력자로 역할 한 죄를 물어 피고인 라인홀트 한닝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한닝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지낸 건 2년 6개월. 한닝은 재판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그대로 방조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한닝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살해하거나 고문에 가담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hanew@fnnews.com 한은우 기자
2016-06-18 11:10:57독일 사람들 앞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나 아우슈비츠가 아닐까 싶다. 최근 베텔스만 재단의 여론조사 결과 독일인 81%가 홀로코스트를 잊고 싶다고 응답했다. 독일 국민의 목소리는 나치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그 종지부를 찍자는 것인가. 악몽을 잊고 싶어하는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듯 메르켈 총리는 기회가 닿는 대로 독일 국민 모두가 영원히 홀로코스트를 잊어서는 안 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과거사에 대한 직시와 반성을 촉구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지 1월 27일로 70주년이 됐다. 출입문 위에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Arbeit macht frei)'는 구호가 걸려 있는 이 수용소에서 100만여명의 유대인이 학살됐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70주년을 맞아 마치 흑백필름 영사기를 돌리듯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생존자의 증언은 충격 그 자체다. "샤워하러 간다"면서 가스실로 끌려간 엄마의 죽음 앞에서, 엄마를 가스실로 보낸 감시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푸른 다뉴브강의 왈츠'에 맞춰 춤을 춰야 했던 어린 발레리나의 참혹한 심정을 어떻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용소에 같이 들어온 여동생의 꽃신을 신고 있는 감시원을 보면서 오빠의 머릿속에 가득찬 궁금증과 불안의 무게를 어떻게 잴 수 있겠나. 인류문명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나치 만행의 핵심 전범자에 대해 뉘른베르크 재판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 인종이 공존하는 지구촌 세계를 부정하였다' 해서 사형을 선고했다. 1961년에는 학살자 아이히만의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자신의 죄는 국가와 상사에게 충성을 다하는 책임감 강한 보통 공무원이 공무원선서에 복종한 것뿐이라는 아이히만에 대해 판사는 피고인이 수용소로 보낸 수많은 기차는 의도적 학살 참여를 증명해 주는 것이고 이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던지는 것과 진배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미국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으로 이 재판에 참석한 한나 아렌트는 어느 누구라도 아이히만이 처했던 그런 상황에서는 그처럼 행동할 개연성이 있고 사유능력이 없는 꼭두각시 관료가 저지른 평범한 악이라는 이른바 '악의 평범성'을 제기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승전국의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1950년대 말까지 나치 범죄자의 색출과 조사에 대해 독일 스스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독일 내에서 자발적인 나치즘 청산 작업이 본격화됐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독일인 스스로 반성하고 처벌하는 사법절차가 시작됐다. 여기에는 프리츠 바우어 검사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거의 혼자서 나치 전범을 프랑크푸르트 법정으로 끌고갔다. 1963년부터 2년여 동안 1300명 이상이 증언대에 선 매머드 재판에서 검찰은 수용소에서 가스 살포와 화장이 일상화되다 보니 피고인들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학살에 참여했지만 사무적이고 관료적인 무자비함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비난했고, 판사는 지위가 낮은 나치 친위대원들도 계획을 수립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말살 실행에 꼭 필요했던 사람들이라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 후에도 전범자 처벌 범위를 넓히고 더 강력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최근까지 과거사 청산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수용소 경비원, 감시원으로 근무했던 93세의 노인들을 단죄하려 한다. 수용소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행위를 지켜본 것도 살인 방조에 해당하고 공소시효도 없이 끝까지 추적한다는 것이 독일 사법부의 입장이다. 이러한 독일의 참회의 실천이 통일과 경제 최강국에 이른 밑거름이 됐다. 올 3월에 일본을 방문하는 메르켈 총리는 아베 총리에게 이러한 역사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
2015-02-12 16:50:59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의 크라쿠프에서 약 60㎞ 떨어진 아우슈비츠 외곽에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나치의 대학살이 자행된 강제수용소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저지른 가장 잔혹한 '인간도살장'의 뼈아픈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런 생지옥이 있을까 눈을 의심하게 된다. 학살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유대인을 실어 나른 철로, 고문실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1940년 나치의 친위대 총사령관인 하인리히 힘러는 이곳에 붉은 벽돌의 단층건물로 강제수용소를 세웠다. 처음에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아돌프 히틀러가 대량학살시설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약 3년간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유대인 600만명 중 최소 100만명을 단지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처참하게 살해했다. 학살에는 총살과 가스실, 고문은 물론 심지어 인체실험까지 동원됐다. 그것도 모자라 희생자의 머리카락으로 카펫을 짜고 뼈는 갈아서 비료로 쓰기도 했으니 이런 생지옥은 없었다. 당시의 참상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4년에 만든 영화 '쉰들러리스트'에 잘 묘사돼 있다. 유네스코는 1979년에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 인간 말살의 현장인 아우슈비츠가 27일로 해방 70주년을 맞았다. 전범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6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독일은 수백만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우슈비츠는 항상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깨운다"고 진심 어린 반성의 말을 전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반성은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에 무릎을 꿇은 데서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비슷한 제국주의 침략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안하무인식 과거사 대응과는 180도로 대비된다. 지난 25일 일본 아베 총리는 종전 70주년을 맞아 오는 8월 발표할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문구를 넣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륜말살 행위에 대한 참회는커녕 이전 정권 수준의 반성마저도 거부하겠다는 의도다. 과거사 역주행으로 외줄타기하고 있는 일본 총리의 이런 뻔뻔스러움에 대해 우리 국민은 차치하더라도 메르켈과 독일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2015-01-27 16:34:25하얼빈은 우리 역사와 관계가 깊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한반도를 집어삼키던 당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곳이 하얼빈 역이다. 또 하얼빈 시내에서 20여㎞ 떨어진 교외에 일본의 악명 높았던 731부대가 있었다. 최근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하얼빈 시를 찾았다. 짬을 내 두 곳을 다 둘러보았고 731부대에서 문득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를 떠올려 봤다. 두 곳 모두 일본과 독일 군국주의의 악행을 기록한 '기억의 장소'지만 매우 달랐다. 2004년 2월 초 폴란드 크라코시에서 1시간 달려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를 방문했다. 영하 15도가 넘는 데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 훨씬 더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곳곳에 새겨진 안내판과 그곳에서 사망한 유대인들의 유품(안경·옷·신발 등)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고 인간의 잔악함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유독 한 군데에서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독일인이 방명록에 써놓은 참회의 글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런 역사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인종주의를 배격하며 인권을 존중하겠습니다.' 등 많은 독일 사람이 역사를 되새기며 사죄와 반성의 글을 남겼다. 안내인은 폴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방문객들이 오고 특히 독일 중·고생들이 단체로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귀띔해 줬다. 반면에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해 최소한 3000여명이 숨진 731부대에선 중국 학생들만 눈에 띄었다. 이곳을 안내한 조선족 여행 가이드는 중국 각지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애국 교육을 받는다고 알려 줬다. 그러나 이곳 어디에서도 일본인 관광객이나 일본인들이 남긴 방명록의 글을 찾을 수 없었다. 군 성노예나 731부대를 역사책에서 배우지 않는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을 리가 없다. 731부대를 아는 일본인들은 극소수일 터이고 이들 가운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눈 씻고 보려 해도 볼 수 없을 듯하다. 지난 3일부터 이틀간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시 주석은 우리에게 일본의 역사왜곡에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은 우리가 역사문제와 안보를 분리해 일본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 국내에서도 이런 정책 지지자들이 꽤 있다. 중국의 부상 견제를 국익이라고 보는 미국의 현실주의 정치인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정책이다. 반면에 일본의 역사왜곡을 좌시할 경우 이는 중국의 공세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 우리의 국민정서를 고려해 두 문제의 분리가 적합한 정책이 아니라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 두 정책 가운데 무슨 정책을 취할지는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우리의 안보에 매우 필요하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 강화와 좋은 관계 유지도 북한 핵문제를 감안할 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동맹과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 모두 다 필요하고 이를 잘 유지하는 게 우리의 국익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이런 두 국익을 분명하게 저해한다. 이는 단순하게 과거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는 일본을 어떻게 가치 동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이 문제는 점점 더 우리에게 정책적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역사를 망각하면 역사가 되풀이될 뿐이다. 역사문제와 안보를 분리해 다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2014-07-24 17:03:32“내 남편한테 말하면 너 따위 아무도 모르게 재로 만들 수 있어.”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파이낸셜뉴스]거슬리는 가정부에게 날린 진심 100%의 경고. 은유로 넘실대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인공 헤트비히 회스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경고다. 한 번만 더 거슬리면 담장 너머 가스실에 집어넣겠다는 말에 유대인 가정부는 머리를 조아린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아우슈비츠의 소장 루돌프 회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 집단 학살지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엄마' 헤트비히는 아우슈비츠 소장 사택에 딸린 텃밭을 정원으로 가꿨다. 3년 동안 골분비료로 뿌려가며 해바라기와 포도나무, 라일락을 키워냈다. 담장의 저쪽은 홀로코스트, 전쟁 중 나치가 자행한 대학살의 현장이다. 이쪽은 회스 가족의 낙원 같은 집. 식물로 담벼락을 가려도 치솟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불길과 연기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함소리도 마찬가지. 새빨간 불빛과 ‘우웅, 쿵쿵’대는 소음을 의식하는 이는 처음 이 집을 ‘낙원’같다고 말하던 할머니 뿐이다. 소음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들은 번쩍이는 금니를 가지고 놀고 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은 희생자의 금니를 녹여 금괴로 만들었다. 직접 말하지 않고 말하고 싶은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최고의 예술이 ‘시(詩)’라면 이 영화는 시 같다. 감독은 영화 내내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고 은은하게 들려준다. 흑·백·적·점으로 이어지는 암전 때문일까. 영화는 때로 연극처럼도 느껴진다. 마지막 씬에서는 다시 시일 수 있다고 느꼈다. 영국 시사주간지 ‘스펙테이터’는 “이 영화가 어쩌면 평생 당신을 괴롭힐 것”이라고 평했다. 6일 새벽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영화를 봤다. 스릴러 장르 영화도 아닌데 온몸은 차갑게 식고, 멀미가 몰려왔다.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관객의 행렬과 반대 방향으로 청소노동자 한 명이 '저벅저벅' 들어왔다. 그의 머리는 헤드 랜턴이 꽉 쪼이고 있었다. 그의 손엔 영화가 끝난 뒤 캄캄해진 영화관 의자 사이에 떨어진 팝콘을 주워 담을 쓰레기통이 들려 있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적막한 쇼핑몰에서 탑승식 바닥물청소기에 올라탄 청소노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대리석 바닥에 광을 내고 있었다. 청소차가 내뿜는 소음은 웅장했다. 영화를 보러 오는 길, 팝콘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시간에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삶의 무대 뒤편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옷맵시가 어떠했는지, 그들의 작업이 발생시키는 소음이 얼마나 컸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영화에서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는 헤트비히는 유대인 가정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말 그대로 해고가 살인인 공간에서 가정부의 고용 안정성은 ‘0’다. 나치는 치솟던 실업률을 해결할 수 있다는 구호로 집권했다. 유대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포로, 집시, 정치사범, 퀴어, 장애인들을 강제노역시키던 수용소 입구에도 구호를 걸어뒀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나치는 전쟁과정에서 군수산업을 일으켜 실업률 0%, 안전 고용을 달성했다고 선전했다. 고용률·실업률 지표가 노동시장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은 오래됐다. 특히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 화물차 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 캐디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 비중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발전소 같은 하청도 일상화 됐다. 여성의 비경제활동인구 비중까지 높아 체감과 달리 실업률은 언제나 낮고 변동도 크지 않다. 통계청에서 매월 작성하고 있는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노동가능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일할 의사가 없(거나 없다고 비춰지)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애초에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일할 의사가 없다면 실업자가 아니라는 것. 국제노동기구(ILO)도 이같은 고용률·실업률 지표와 국민 체감도 사이의 괴리를 잘 알고 있다. 통계청도 지난 2014부터 공식 실업률 지표가는 노동시장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고용보조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고용보조지표에는 영화관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시간관련 추가취업 가능자)들은 물론, 구직활동을 못(안)하고 있을 뿐 취업 의사가 있고 취업 가능성이 있는 사람(잠재구직자)도 포함된다. 또 구직노력을 했으나 육아로 당장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잠재취업가능자)도 들어간다. 고용보조지표는 포괄범위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작성되고 있지만, 아직도 고용시장의 현실을 드러내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한국은행은 고용 형태, 근로 시간 등이 반영된 새 고용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현행 고용지표가 보여주지 못하는 고용의 질적 측면을 살펴 통화 정책 전망에 반영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 ‘고용의 질을 고려한 고용지표 개발’ 연구용역을 공모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고용상황이 경기 상황에 따라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노동시간, 임금 등)에서도 변화하기 때문에 고용의 질을 고려한 실업률, 고용률 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정부가 제공한 공공근로 일자리의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 고용보조지표로는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고용의 질’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서류 미비(불법 체류)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누구도 알 수 없다. 제대로된 통계도 없다. 이들도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직접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핑계로, 국적이 다르다니까 그래도 된다는 착각때문에 고용안정성이 ‘0’다. 텅텅 빈 내 통장 ‘투자 수익’으로 채우고 싶은데 낯선 경제용어들이 어려우신가요? '경제뉴스의 행간 읽기'를 도와줄 '영화로운 텅장탈출' 시리즈를 읽어보세요. 영화 한편과 경제 용어 하나를 쉽게 풀어 드립습니다. 아래 기자 구독을 눌러주세요. 매주 토요일 시리즈 기사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2024-06-06 15:55:44[파이낸셜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교전이 엿새째로 접어든 가운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인근 자국민에게 대피령을 내리면서 지상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36만 예비군 소집.. 두 아들과 자원입대한 아버지 특히 이스라엘은 현재까지 약 36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중 예비군 복무 연령을 훌쩍 넘긴 95세 노인도 입대한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노인 에즈라 야친(95·남)은 군에 합류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준군사조직인 '레히'에서 전투병으로 활동한 인물로, 군인들에게 "지금이라도 포기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군대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고령의 나이 탓에 직접 교전은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 학살이 벌어졌던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등 과거 경험을 공유하면서 동기를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업가 노암 라니르(56)도 예비군 소집 대상이 아니지만 두 아들과 함께 자원입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니르는 "욤키푸르 전쟁에서 아버지와 삼촌, 사촌을 잃었다. 이제는 내 차례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는"이스라엘로 오려는 이들에게 개인 제트기를 보내주고 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았고 욤키푸르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이번에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가자지구 인근 자국민 대피시킨 이스라엘.. 지상전 임박 한편 전날 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인근 지역의 자국민에게 72시간을 보내는데 필요한 음식과 물, 다른 물자를 충분히 마련한 채 대피할 준비를 하라고 알렸다. 매체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지상군 투입을 곧 시작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로 해석했다. 현재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와 레바논과의 국경 주변에 탱크와 중화기를 밀집시킨 채,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과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날 오전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조너선 콘리커스 중령은 브리핑에서 30만명의 예비군이 가자지구와 인접한 이스라엘 남부에 투입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helpfire@fnnews.com 임우섭 기자
2023-10-12 08:54:11검사의 실수로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음에도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기소됐다 벌금까지 받은 황당한 일이 대법원에서 바로잡혔다. 40대 A씨는 만취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경찰의 음주단속에서 적발됐는데, 그의 음주운전에 따른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공소장에 적힌 이는 60대 동명이인 B씨였다. 공소장에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 사항이 잘못 기재된 사실을 법원은 모른채 B씨에게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고, 이는 B씨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 상황을 바로잡은 것은 검찰총장의 비상상고 제도를 통해서다. 비상상고는 형사판결이 확정된 후 판결이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일종의 비상구제 절차다. 이때 대법원은 단심재판으로 사건을 다시 심리한다. 형사소송법 제441조에 규정된 비상상고는 확정판결에 대한 비상구제 수단이라는 점에서 재심과 같지만, 피고인의 구제가 아닌 법령의 해석·적용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점이 다르다. 즉 재심의 결과에 따라 이미 확정된 판결의 결과를 유죄에서 무죄로, 또는 무죄에서 유죄로 뒤집을 수 있지만 비상상고는 원칙적으로 기존 판결의 위법사항을 바로잡는 절차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법령해석과 법령적용의 통일이 목적이라 피고인의 이익은 본질적 문제가 아닌 부차적으로 고려 대상이 된다.비상상고의 대상은 모든 확정판결이다. 형사소송법 제44 1조는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상상고 신청이나 제출기한은 제한이 없다. 판결 확정 후 언제든지 가능하다. 비상상고 사건은 보통 잘못 부과된 벌금이나 폭행 합의했음에도 형사 처벌, 법정형을 초과하는 벌금형 등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과잉 처벌을 정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때로는 사회적 주목도가 큰 사건도 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꼽히는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성폭행, 사망과 실종이 자행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1987년 불법 감금 혐의 등으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을 재판에 넘겼지마 법원은 1989년 7월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2018년 검찰 과거사위원회 사건 재조사 권고에 따라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박씨 사건을 비상상고했다. 그러나 결론은 기각이었다. 대법원은 박 원장이 헌법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다는 중대한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이 비상상고는 법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비상상고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 20조를 근거로 박씨에게 무죄가 선고된 만큼 법을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비상상고는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돼도 이미 확정된 박씨의 무죄 효력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이에 따라 피해자들의 국가손해배상 청구 가능여부가 걸려 있어 대법원 결론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23-04-13 18:16:15[파이낸셜뉴스] 검사의 실수로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음에도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기소됐다 벌금까지 받은 황당한 일이 대법원에서 바로잡혔다. 40대 A씨는 만취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경찰의 음주단속에서 적발됐는데, 그의 음주운전에 따른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공소장에 적힌 이는 60대 동명이인 B씨였다. 공소장에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 사항이 잘못 기재된 사실을 법원은 모른채 B씨에게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고, 이는 B씨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 상황을 바로잡은 것은 검찰총장의 비상상고 제도를 통해서다. 비상상고(非常上告)는 형사판결이 확정된 후 판결이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일종의 비상구제 절차다. 이때 대법원은 단심재판으로 사건을 다시 심리한다. 형사소송법 제441조에 규정된 비상상고는 확정판결에 대한 비상구제 수단이라는 점에서 재심과 같지만, 피고인의 구제가 아닌 법령의 해석·적용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점이 다르다. 즉 재심의 결과에 따라 이미 확정된 판결의 결과를 유죄에서 무죄로, 또는 무죄에서 유죄로 뒤집을 수 있지만 비상상고는 원칙적으로 기존 판결의 위법사항을 바로잡는 절차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법령해석과 법령적용의 통일이 목적이라 피고인의 이익은 본질적 문제가 아닌 부차적으로 고려 대상이 된다. 비상상고의 대상은 모든 확정판결이다. 형사소송법 제44 1조는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상상고 신청이나 제출기한은 제한이 없다. 판결 확정 후 언제든지 가능하다. 비상상고 사건은 보통 잘못 부과된 벌금이나 폭행 합의했음에도 형사 처벌, 법정형을 초과하는 벌금형 등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과잉 처벌을 정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때로는 사회적 주목도가 큰 사건도 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꼽히는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성폭행, 사망과 실종이 자행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1987년 불법 감금 혐의 등으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을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은 1989년 7월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2018년 검찰 과거사위원회 사건 재조사 권고에 따라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박씨 사건을 비상상고했다. 그러나 결론은 기각이었다. 대법원은 박 원장이 헌법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다는 중대한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이 비상상고는 법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비상상고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 20조를 근거로 박씨에게 무죄가 선고된 만큼 법을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비상상고는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돼도 이미 확정된 박씨의 무죄 효력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이에 따라 피해자들의 국가손해배상 청구 가능여부가 걸려 있어 대법원 결론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23-04-13 13: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