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영화관 얼음을 몽땅 털어간 얌체족이 목격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5일 방송된 JTBC 사건반장에서는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한 멀티플렉스에서 찍힌 영상이 공개됐다. 같은 날 영화를 보러 간 제보자 A씨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음료수 기계 앞에서 한 남성의 행동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닐봉지 가득 얼음을 털어갔기 때문이다. A씨가 기계에 컵을 댔을 땐 이미 얼음이 동이 나고 없는 상태였다.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오윤성 교수는 "저런 행동을 하면 예전에는 주위에서 개입해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했는데 요즘에는 시비 걸릴까 봐 사람들이 그런 것도 잘 안 한다"며 "우리 사회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 역시 "별 얼음거지도 다 있네" "살다살다 영화관 얼음 훔쳐가는 인간은 처음 본다" "창피하지도 않나?" "저건 절도죄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4-06-26 10:37:15육지담도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합류했다. 여고생 래버 육지담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얼음물과 밀당하는 나. 증명했지. 좋은 일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글과 함께 아이스버킷챌린지 인증 영상을 올렸다. 시원하게 물세례를 받은 육지담은 "다음 타자는 샘 해밍턴, 도끼, 김우빈"이라고 지목했다. 육지담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누리꾼들은 "육지담 아이스버킷 챌린지, 누가 지목해서 한거지?" "육지담 아이스버킷 챌린지, 지목한 사람들이랑은 무슨관계?" "육지담 아이스버킷 챌린지, 누구나 다들 참여하는 분위기?"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쇼미더머니3'에 출연한 여고생 래퍼 육지담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학교에서 학생으로서 적절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주장을 담은 게시물들이 게재돼 논란이 된 바 있다.onnews@fnnews.com 온라인뉴스팀
2014-08-24 14:24:22사방이 꽃으로 가득했던 밤, 제자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 봄을 어쩌면 좋아요" 무슨 사정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취해 우는 그 앞에서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 돼 있었다 제자는 다음날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꽃길을 걸으며 되는 일 없는 자신이 떠올랐다 했다. 아름다움은 상처를 건드린다. 이 꽃이 지고 녹음이 오면 그 마음도 단단해지리라 지난해는 4월에 비가 내렸다. 막 피어 오르던 꽃들이 봄비에 젖어 흘러내려 화사한 봄꽃을 제대로 못 본 것 같다. 젖은 꽃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올해는 너무 화려하다. 여기저기 눈길이 가는 곳에는 꽃이 있다. 올해처럼 완벽한 봄을 보는 일은 큰 행복이다. 우리 동네는 효성고등학교 옆에 벚꽃동산이 있는데, 외출할 때나 산책을 하다 보면 거의 전교생이 나와 선생님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본다. 왜 이리 설레는가. 개나리는 지금도 남아 있고, 조팝나무도 하얗게 고개를 내밀고 멀리서 산벚나무들의 연한 봄빛이 너울거리고 있다. 내 작은 정원에는 할미꽃, 명자나무꽃, 돌단풍, 수선화들이 피어 있다. 모란은 곧 터질 것 같은 봉오리를 지어 올리고 있다. 풀을 뽑다가 꽃 피운 풀은 뽑지 않는다. 그것도 봄의 한가락에 음악의 한 곡조가 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날 밤이었다. 11시쯤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 울리는 것은 위급뿐인데, 서둘러 받았는데 제자 민식군이었다. "선생님 봄이 왔어요. 이 봄을 어쩌면 좋아요." 그는 취해 있었다. 아마도 술에 취하고 봄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봄에는 남자가, 가을에는 여자가 취한다고 듣긴 했지만 그에게 무슨 절박한 사정이라도 있는가 나는 그것부터 걱정했다. 그만큼 나는 현실적이 되어버렸고, 아직 그는 봄에 취해 울었던 것이다.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고 어른들은 가르쳤다. 우리 어머니도 외아들인 내 동생에게 오직 한가지 울면 회초리를 들었다. 울음을 허락받지 못한 남성들은 미세한 감정을 어디다 풀어버리는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은 울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강한 남자로 보이려면 눈물은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남자에겐 거의 철칙이었다. 이 세상에는 절벽 같은 좌절이 있고, 얼음 덩어리 같은 냉대도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은 주고 싶은데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벚꽃잎처럼 후다닥 떨어져 가벼워지면 좋겠지만 온몸을 털어도 달라붙어 있는 홀로라는 외로운 병은 함께 살아가는 몸속의 장기 같기도 한 것이다. 그다음 날 그는 말했다. 온 천지에 꽃들이 피어나고 봄은 온통 사람 마음을 흔들고 있는데 되는 것이라곤 없고 뼛속까지 외로운데 늦게 친구들과 헤어져 잎이 자욱이 쌓인 분홍빛 꽃길이었다고 한다. 한 발짝 한 발짝 걷다가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고 순간 '사나이의 울음'에 대한 내 강의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눈물이 터질 때 그의 운동화에는 연분홍 꽃잎들이 묻어 있었을 것이고, 그의 눈에는 자신의 눈물방울로 보였을 것이다. 꽃잎은 지고 신록이 눈부시다가 곧 녹음으로 변하고 검푸른 녹음으로, 짙푸른 녹음으로 변하면서 민식이도 마음이 단단해지리라 생각한다. 젊은 날 꽃잎 위를 걸으며 봄에 취하고 술에 취해 한번 울었다는 것,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말해 주었다. 그다음 날도 민식이는 다시 전화를 해 죄송했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아니야 내게 잘했어, 그런 순간에 전화하고 싶은 선생이 되어 나는 많이 기뻤어 그리고 걱정도 되고. 세번이나 신춘문예에 떨어졌지만 반드시 기회는 올 거야. 넌 이미 시인이다. 이번엔 그가 웃었다. 술에 취해 언, 골목길을 걷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단다. 가끔 아름다움은 우리들 상처를 건드리지. 외로움을 툭 차기도 하지. 그러면서 그 아름다움을 힘으로 다시 살아가는 거지. 네 가슴속에 쌓인 꽃잎들이 하나하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면 너의 글은 사람들을 위로하게 될거야. 난 널 믿는다. 딸이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 왔다. 식탁에 놓으니 집이 환하다. 밤에도 낮에도 전등불 같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밖은 꽃들이 피어나 거리를 환하게 하지만, 아직은 집 안에 두는 꽃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꽃을 자주 사는 편이다. 내가 사는 집 앞에는 언제나 꽃을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눈길을 주게 하였다. 꽃은 혼자 보는 게 아니다. 함께 보고 함께 웃어주는 것이 꽃에 대한 예의다. 꽃을 바라보면서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아주 옛날에 고향 마당 뒤편은 화려한 꽃밭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얼굴이 붉어지고 한바탕 싸움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 시간엔 아버지가, 어느 시간엔 어머니가 그 꽃밭에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화를 다스리느라 그 꽃밭에 계셨다는 것을. 내가 남편과 싸우고 나서 알았다. 내가 마흔쯤이었을 때 우리 집은 한 오십평의 정원이 있었다. 집안이 바위에 짓눌린 듯 무거워지면 때로는 남편이 그 정원에 서 있고, 그가 들어오면 내가 그 정원에 서 있었다. 자신을 견디느라 남편과 나도 그 정원이 어머니 같은 곳이었다.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작약과 모란이 피어나는 그 정원에서 참 오랫동안 눈물을 견디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만 시끄러워도 정원에만 나가면 어머니의 쓰다듬는 손길이 있고, 함께 웃어 주는 어머니의 미소가 있었다. 그 정원을 떠나왔지만, 그래서 아파트에서도 빌라에서도 살았지만 언제나 꽃을 안고 살았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그 견디는 힘을 나는 참 많이도 꽃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는 그를 반려라고 하지만 나는 꽃이 반려다. 너무 시간이 짧다고 친구는 말하지만 꽃이 피려는 준비기간에도, 몽우리로 바시시 얼굴을 내밀려는 순간에도 개화에서 지는 과정이 다 인생사다. 꽃이 지고 그것을 쓰레기봉투에 담을 때도 한바탕 나에게 행복을 안겨준 그 사랑 때문에 빈자리를 견디어 낸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기다림을 배우면서. 지금은 꽃의 계절이다. 민식이가 꽃처럼 피어나는 생의 계절이 오기를….
2024-04-16 18:26:49나는 가구와 카펫 매장에 들어서서 익숙한 가죽과 목재 향을 들이마셨다.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당시 나는 근처 우체국에서 시간제 근무를 했다. 종종 그 가게를 둘러보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남편과 어린 두 아이 그리고 나는 우리가 직접 지은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가구에서부터 형광등에 이르는 모든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는 가진 모든 돈을 집 공사 마무리에 할애했다. 그렇다고 내가 꿈꾸는 집의 모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사를 지연시키는 요인은 부족한 카펫이었다. 집 바닥이 시멘트 슬래브여서 오하이오의 겨울이 찾아오면 바닥이 벌써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판매 제품과 할인 제품을 계속 지켜봤지만, 바닥 전체에 까는 카펫은 우리 예산을 초과했다. 그날은 새로운 홍보 행사가 있었다. 래플(추첨식 판매)이었다. 그 행운의 사람은 상점에서 쓸 1000달러 상금을 받게 된다. "응모하셔야죠."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봤다. 가게 주인이었다. 우리는 여러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특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그가 틀어놓은 기독교 음악을 칭찬한 이후로 그랬다. 목사였던 그는 언제나 친절한 미소를 짓고 신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아무것도 산 적이 없는데요." 내가 말했다. "엄밀히 따지면 저는 고객이 아니에요." "누구나 응모할 수 있어요. 아니타." 가게 주인이 말했다. "해봐요!" 응모 양식을 여러 장 작성했다. 그것은 수백만 장의 응모서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상점을 나오는 길에 출입구에 멈춰서 속삭였다. "주님, 주님은 제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몇 주가 흘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축하합니다!" 우렁찬 목소리였다. 상점 주인의 아들이었다. "방금 추첨을 했어요." 그가 말했다. "고객님이 당첨되셨어요."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큰 이벤트에 당첨되어 본 적이 없었다. 자세한 설명을 마친 후,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타 씨." 그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당첨될 운명이었어요." 상점 아들이 내게 말했다. 공식 당첨자를 뽑기 전에, 자신과 상점 비서가 모의 추첨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응모권이 담긴 금속 드럼통 깊이 손을 넣어 종이 한 장을 꺼냈는데, 내 응모권이었다. 그는 그것을 다시 안에 던져 넣고 종이들을 섞었다. 비서가 다음으로 뽑았다. "또, 당신 응모권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우리 중 아무도 오늘 아침 당신 이름이 뽑혔을 때 놀라지 않았어요. 누군가 당신에게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거지요." ■ 원문으로 읽는 오늘의 이야기 Fortune Like a DestinyI stepped into the furniture and carpet store and breathed in the familiar scent of leather and wood. I found it relaxing. I worked part-time at the post office nearby. I often spent my lunch hour here, browsing. My husband, our two young children and I were set to move into a home we'd built ourselves. We needed everything from furniture to light fixtures. But we'd put all the money we had into finishing the house. Still, that didn't stop me from dreaming of what could be. What was really delaying our move was the lack of carpeting. Our floors were cement slabs; with the Ohio winter settling in, they were already icy cold. I'd kept an eye out for sales and discounts, but wall-to-wall carpet remained beyond our budget. Today brought a new promotion: a raffle. The lucky person would win $1,000 in store credit. "You should enter," a voice said. I turned around. It was the store owner. We'd had several conversations, especially after I complimented him on the Christian music he played over the speakers. He was a pastor, always ready with a kind smile or a touching story about his congregation. "But I've never bought anything here," I said. "Technically I'm not even a customer." "Anyone can enter, Anita," the store owner said. "Go ahead!" I filled out multiple entry forms. They were among hundreds of entries. But it was worth a shot, I supposed. On my way out, I stopped in the doorway and whispered, "Lord, you know my needs. I leave this up to you." Weeks passed. Then my phone rang. "Congratulations!" boomed a voice. It was the son of the store owner. "We just held the drawing," he told me, "and you won!" I couldn't believe it. I'd never won anything that big before! After giving me details, he paused. "Anita," he said, his tone serious, "you were meant to win this contest." Well before picking the official winner, the son of the owner told me, he and the store secretary had held a test run. He reached deep into the metal drum of entries and pulled out a slip. My entry form. He tossed it back in and mixed up the papers. The secretary picked next. "Again, it was yours," he said. "Neither of us was surprised when your name was drawn this morning. Someone knew you needed this."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3-08-15 18:09:43텍사스주 팰로 듀로 캐니언의 12월은 말도 못하게 춥다. 새벽 3시45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취사용 마차에서 나오자 두 손과 온몸이 얼어붙는다. 북풍이 불어오고 성냥을 랜턴까지 가져가기도 어렵다. "하나님, 여기 불 좀 붙여주세요"라고 중얼거린다. 카우보이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지만 조만간 소란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가장 먼저 일어나서 '버사'(무게 175㎏에 나무를 때는 캠프용 난로)에 불을 지피고, 소규모 부대를 먹일 달걀과 베이컨을 충분히 준비하는 게 요리사로서 내가 할 일이다. '군대는 위장에 든 걸로 움직인다'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소몰이도 다르지 않다. 모든 게 내게 달려 있다. 보수가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포기하고 취사용 마차 요리사가 됐다. 당시에는 그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아침이면 당연히 따뜻한 침대에 마음이 끌린다. 커피 끓일 물을 가지러 큰 통에 가보지만 꽝꽝 얼어 있다. 여과식 커피메이커에 물을 담으려면 얼음을 깨야 한다. "주님, 제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요?" 바로 그때, 바람에 랜턴이 꺼지고 만다. 나는 평생 카우보이 주변에 있었다. 나는 형제 넷 중 막내였으며, 아버지는 하나님의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쓸쓸한 땅인 오클라호마주 남서부에 있는 작은 목장에서 소 250마리 정도를 몰았다.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소몰이를 나가서 무리를 16㎞ 이동시켰다. 바로 여기 같은 협곡이었고, 아직 동이 트기 전 말에 안장을 얹어서 우리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잠시 멈춰 서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모두 옆에 '누군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말을 타고 가는 동안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지. 그러니 두려움에 맞서서 해내자." 그날은 길고 힘든 하루였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그날은 좀 더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 때문에 근육통이 더 심해지기는 했지만. 그러다 또 다음 날이 되었고, 일어났을 땐 기온이 영하 15도였다. 바람이 매서웠다. 아버지와 다른 카우보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과를 시작했지만, 어머니가 날 붙잡았다. "우리는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게 어떨까?" 밖을 한번 더 살펴보니 남자들은 추위에 맞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어머니에게 동의했다. 어머니는 내가 찾아야 할 재료를 일러주고, 숟가락으로 밀가루와 설탕을 퍼서 그릇에 담았다. "얼마나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아세요?" 내가 물었다. 무엇을 요리하든 어머니가 조리법을 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모든 재료는 쓰임이 있지. 함께 일하는 팀처럼 말이야. 그건 올바른 균형을 찾는 일이란다. 처음에는 실수하겠지만, 그렇게 배우는 거야." 곧 진하고 부드러운 초콜릿의 달콤한 향이 집에 가득했다. 오븐의 열기가 따스하고 아늑했다. "이다음에는 뭔지 아니?" "먹는 거요!" 어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치우는 일이 먼저야." 어머니는 싱크대에 뜨거운 비눗물을 가득 받았다. 음, 재미있는 일에도 힘든 일이 따르는구나. "요리의 즐거움은 먹는 게 아니야. 사람들의 얼굴에 뜬 미소를 보는 거지." 나이를 몇 살 더 먹고 나서야 미소가 어떻게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이기는지 깨달았다. 열다섯 살 때 일이다. 아버지와 형, 나는 친구의 목장에서 두 팔 걷어붙이고 일을 돕고 있었다. '네이버링 업'이라고 부르는 연례 행사였다. 정오쯤, 얼굴에 구슬땀을 흘리던 나이 든 사내가 얘기하는 걸 들었다. "오늘 좀 두둑하게 받겠는데." '와, 현금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차가 줄지어 진입로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아내들과 엄마들이 닭튀김, 빵가루를 묻혀서 튀긴 돼지고기, 온갖 샐러드, 케이크, 파이를 담은 큰 접시를 가지고 왔다. 카우보이들은 입이 귀에 걸렸다. 아침에 열심히 일하고 난 뒤 먹은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그날 오후 카우보이들은 웃고 장난치면서 두 배 더 열심히 일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얘기한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넉넉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건 꽤 특별해 보였다. 소몰이에 필요한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건 알았다. 어떻게 나도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팰로 듀로 같은 소몰이 지대에 있게 되었다. 이제 랜턴에 다시 불이 붙었고, 난로가 메스키트 목재를 연료 삼아 내어주는 온정 덕분에 공기도 훈훈해졌다. 카우보이들이 커피가 담긴 컵으로 손을 녹이며 식탁 둘레에 모이자 내가 말한다. "고개를 숙입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음식을 축복해 주시고 저희가 오늘 하루 나쁜 사고 없이 지낼 수 있게 살펴주십시오. 아멘." 사람들은 순식간에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모자를 약간 올리며 인사를 건넨다. "엄청 맛있었어요." 한 카우보이가 얘기해 준다. 그들이 말에 올라타자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얼핏 드러난다. 사람들이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자 조금 슬퍼진다.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무리에서 떨어지자 우울한 기분이 든다. 달걀과 베이컨을 담은 접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카우보이를 위한 요리를 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다. 뉴멕시코주에서 사냥 가이드로 일하던 삼촌이 고객들을 위해 요리해 달라며 날 불렀다. 그 기회에 선뜻 달려들었다. 내가 땅에 판 구덩이 위에서 요리를 했다. 바람에 먼지가 날리고 잉걸불이 내게 불어왔다. 요리를 얼마나 몰랐는지 삽시간에 깨달았다.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데 고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야영하는 곳은 해발고도 914m 이상이었다. 어느 아침에는 어머니가 알려준 방법대로 조식용 비스킷을 만들었다. 하지만 비스킷은 거의 부풀지 않았고, 구두가죽 같은 맛이 났다. "이거 플랫브레드야?" 나이 든 이가 물었다. 대답하면서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실수도 배움의 일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재료를 만지작거렸고, 다음에는 더 나은 결과가 나왔다.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훨씬 더 비스킷이라고 알아볼 만했다. 요리는 고된 일이지만, 사람들이 아침밥을 맛있게 먹을 때 짓는 미소를 바라보며 그들과 나누는 동료애가 무척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연로해졌고, 목장에서 내 도움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갔다. 요리할 짬이 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목장을 운영하는 일이 내게 떨어졌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고 애쓰느라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는 날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게 지워진 부담은 커져만 갔다. 수지 균형을 맞춰 보려고 군(郡) 고속도로 부서에서 도로용 중장비를 운전하는 일을 시작했다. 보수도 좋았고, 퇴직연금도 있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카우보이 문화와 요리에서 얻던 즐거움이 그리웠다. 하지만 어떻게 꿈을 좇느라 정부 관련 일자리가 주는 안정성을 포기한단 말인가. 게다가 소몰이는 이제 흔치 않았다. 나는 그저 때를 잘못 타고 났는지도 몰랐다. 어머니에게 내가 씨름하는 모든 문제를 털어놓았다. 현명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가 행복해지는 일을 해야지. 나머지는 하나님을 믿고 맡기면 된단다. 그분께서 목장 일을 도와주실 거야." 팰로 듀로의 황혼이 가까워졌다. 우리 모두에게 긴 하루였다. 무리를 16㎞ 이동시켰는데 얼어붙을 듯이 추운 날씨에서는 대단한 일이다. 멀리서 카우보이들이 텐트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통나무가 탁탁 타오르고 난로는 어마어마한 열기를 내뿜는다. 버사는 곧 치킨 프라이드 스테이크를 완벽하게 요리해 줄 거다. 감자와 블루베리 파이는 이미 주철 냄비에 넣어 두었다. 뻥 뚫린 구덩이에서 요리하던 뉴멕시코 시절 이래, 내 메뉴는 한층 세련되어졌다. 내 세상은 극적으로 변했다. 소문이 퍼졌고, 나는 카우보이들을 위해 요리하며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전역을 돌아다닌다. 주지사는 '오클라호마 공인 취사용 마차'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그래도 요리하는 매 끼니가 새로운 시험대 같다. 이런 날씨라면 한층 더 그렇다.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들어온다. 그중 한 명이 말에서 내리더니 허공에 대고 킁킁거리면서 발을 끌며 다가온다. 다른 이들은 그의 인도를 따른다. 예고도 없이 그가 내 목에 팔을 두르더니 말한다. "당신 덕에 집에 온 듯한 기분이 확실히 나겠어." 집.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는 문명이 주는 안락함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통해 가족 같은 느낌과 소속감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잊지 않게끔 다시 일러주자면, 팰로 듀로의 차가운 12월에도 우리에게는 말을 타고 나아가는 동안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 어머니의 얘기처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0-11-17 17:03:13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입니다.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시대가 곧 눈앞에 펼쳐질 예정입니다. 최근 잠실의 한 대형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분주히 움직이는 로봇팔을 보게 됐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로봇팔은 열심히 '커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 '바리스타 로봇'이라더군요. 언젠가 직접 이용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지나가던 쇼핑객 눈길 사로잡는 '바리스타 로봇' 영등포의 복합 쇼핑센터에 입점해 있는 로봇 카페를 방문해 봤습니다. '로미'라는 이름이 붙은 바리스타 로봇이 저를 반겨줬습니다. 메뉴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아메리카노, 라떼, 카푸치노 등의 커피와 초코 음료 등을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따뜻한 음료와 차가운 음료도 선택이 가능했습니다. 주문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키오스크에서 마시고 싶은 음료를 선택하고 결제하기만 누르면 됐습니다. 결제 방법으로는 카드 결제, 삼성페이, 앱 카드 결제가 있었습니다. 주문이 들어가자 로봇팔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컵을 꺼낸 후 커피머신 아래에 두고 버튼을 눌러 음료를 제조하더군요. 차가운 음료의 경우 얼음을 받는 과정이 추가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음료 제조에 2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안내됐지만, 대기인원이 없어서 그런지 체감 시간은 1분가량이었습니다.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주변을 서성거리며 구경을 시작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실제로 음료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로봇팔이 다 만들어진 음료를 한구석에 두고 얌전히 기다리길래 '어쩌라는 거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핀번호를 입력해야 수령할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영수증에 적힌 핀번호를 입력하니 로봇팔이 컵을 집어 기계 밖으로 꺼내줬습니다. 수령 후에는 로봇 뒤편에 마련된 서비스 테이블에서 뚜껑과 빨대, 컵홀더 등을 셀프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 신기하고 편리하지만.. 디테일과 맛은 글쎄? 바리스타 로봇에게 직접 음료를 주문해본 소감은 한마디로 '신기하다'였습니다. 카페에서는 당연히 인간(?)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로봇이 그것을 대체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특히, 로봇팔이 생각보다 더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점과 작은 버튼 하나하나를 직접 눌러 음료를 만드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주문과 결제 과정도 간편했습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을 해도 된다고 하던데, 키오스크 이용이 편리해 굳이 앱을 설치할 필요까진 없어 보였습니다. 카페의 기능뿐만 아니라 시선을 사로잡는 '볼거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음료를 건네주고 나서는 손을 흔들어 인사까지 해주는 친절한 로봇이었습니다. 물론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얼음의 양이나 음료의 당도를 조절하는 것, 샷을 추가하는 것과 같은 커스텀 주문이 불가능했습니다. 현금결제가 되지 않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주문 과정에서 질문이나 불만사항이 생기면 어디에 문의해야 할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기대에 비해 음료의 맛이 훌륭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20대 여성 A씨는 "영화를 보러 왔다가 로봇이 신기해보여서 주문을 해봤다"고 말했습니다. 결제가 간편해서 좋았고, 제조 과정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네요. 커피의 맛을 물어보니 묘한 웃음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과거 바리스타 로봇 이용 경험이 있다는 30대 남성 B씨는 "언젠가 일을 관두게 되면 바리스타 공부를 해볼까도 생각해봤는데,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것을 보며 꿈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고 농담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 길 안내부터 음식 배달까지.. 로봇에게 맡겨봐 '바리스타 로봇'처럼 실제로 활용되고 있거나 앞으로 도입될 예정인 로봇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많이 알려진 로봇은 아마도 인천국제공항 안내로봇일 것입니다. 인천공항은 지난해 7월 자율주행, 음성인식 기능을 갖춘 안내로봇 '에어스타'를 도입했습니다. 에어스타는 공항 곳곳을 누비며 길 안내를 하고, 원하는 경우엔 직접 에스코트를 해주기도 합니다. 길 안내 외에도 기내 반입 금지 물품을 공지하고 회수하는 기능, 여객 기념사진을 촬영해 전송해주는 기능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천공항공사 스마트공항팀은 "에어스타는 세계 최초의 상용화된 공항 안내로봇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다른 공항에서 시범 운영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운영되는 로봇은 에어스타가 처음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천공항을 방문했다가 사람들을 이끌고 길을 알려주는 로봇을 본 적이 있는데, 얼굴 모양이 달려 꽤 귀여웠던 기억이 납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자율주행 배달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딜리'라는 이름의 이 로봇에는 위치추정센서와 장애물감지센서 등이 장착돼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까지 자율주행이 가능합니다. 지난해 천안의 백화점 푸드코트와 서울 목동의 피자가게에서 시범 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우아한형제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음식점에서 고객이 원하는 곳까지 인간을 대신해 배달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로봇 #바리스타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 sunset@fnnews.com 이혜진 인턴기자
2019-03-14 11:18:56신혜선은 살얼음 재벌가 삶을 시작했고, 박시후와 신혜선이 오누이로 맞대면했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2 ‘황금빛 내 인생’ 7회에서는 해성그룹 재벌가로 첫 발을 내딘 지안(신혜선 분)이 은석이 되어 재벌가 적응기를 시작하는 모습과 함께 최도경(박시후 분)과 오빠-동생이 되어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가하면, 미정의 딸 바꿔치기 전모를 알게 된 태수(천호진 분)는 변기를 부여잡고 오열하며 앞으로 두 집안에 휘몰아칠 대변화를 예고했다. 이날 방송에서 지안이 은석이 돼서 해성그룹에 첫 발을 내딛은 날, 지안과 도경은 입구에서 마주친 후 혼비백산하고 만다. 악연으로 똘똘 뭉친 가해자와 피해자에서 이제 오누이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도경은 어색하지만 친절한 오라버니로 변신,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도경은 "우리 집에서 컸으면 도도하게 컸을텐데..."라며 "널 그렇게 만들었구나. 좋다. 나 최도경 널 동생으로 접수하마"라고 다짐하며 젠틀한 오라버니 코스프레를 시작했다. 이어 "난 최도경 너의 오빠야"라며 "팩트! 너 잃어버린 내 동생 최은석, 나 니 오빠 최도경. 이게 바뀌어? 안 바뀌잖아. 그래서 모두 포용하고 수용해준다고"라고 악수를 청하지만 지안은 "지금 절 놀리세요?"라며 철벽을 쳤다. 지안의 재벌가 수업은 첫날부터 첩첩산중이었다. 지안은 '3000만원을 백화점에 가서 하루 만에 쓰기'를 명희에게 숙제로 받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손 큰 쇼핑을 시작하지만, 백만원 수표에 난감해 하고 만다. 눈에 밟히는 건 모두 가족들을 위한 물건뿐이었다. 이에 가족들을 위한 물건들을 쇼핑하기 시작한 지안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전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집에서 만난 동생 서은수(지수 분)는 "다신 이런 거 갖고 오지마. 우리집 거지 아니니깐"라며 언니를 내쫓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쫓겨난 지안에게 엎친데덮친 격으로 도경의 확인 전화까지 오자 집에 갔다는 말도 차마 못한 채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수는 "집에 왔다는 말도 못하면서"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한편, 쇼핑이 끝난 후 명희는 영수증 확인을 하며 지안에게 "너 물건을 사라고 했는데 절반은 너희 가족들 물건이구나. 돈은 돈 주인이 원하는 대로 쓰여져야 하는 거야"라며 재벌가 수업을 했다. 이에 아무 말도 못하는 지안의 모습을 보며 도경은 집에서 선물을 안 받았다는 말을 못하는 모습에 의구심을 갖는다. 심지어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명희의 말에 지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했다. 결국 도경은 아무도 모르게 밖에 나가서 우혁(이태환 분)과 통화를 하던 지안의 모습을 남자친구와 통화하는 모습이라고 오해했다. 이에 도경은 지안에게 "서지안이라고 했지 너! 우리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모습으로 엔딩을 장식해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기대를 한층 높였다. 한편 ‘황금빛 내 인생’은 흙수저를 벗어나고 싶은 3無녀에게 가짜 신분상승이라는 인생 치트키가 생기면서 펼쳐지는 황금빛 인생 체험기를 그린 세대불문 공감 가족 드라마다. 매주 토, 일요일 오후 7시55분 방송된다. /lshsh324_star@fnnews.com 이소희 기자 사진=KBS2 ‘황금빛 내 인생’ 화면 캡처
2017-09-24 12:09:36한겨울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뼈 시린 겨울바다도 마다 않고 물속을 들락거리며 무언가 퍼 올리는 이들이 보였다. 제주 해녀다. 발만 담가도 찌릿함이 느껴지는 추위에 별다른 장비도 없이 어찌 저리 자유롭게 드나들까 궁금했다. 어떤 신비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다.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비결은 뭔 놈의 비결이야. 어제도 들어갔으니까 오늘도 들어갈 수 있는 거지." 흔히 '혁신'을 생각할 때 마법 같은 순간을 기대한다. 불현듯 찾아오는 '유레카!'의 순간처럼 갑작스러운 계기로 변하고, 파격적으로 개조해야 성공의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혁신은 해녀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는 꾸준함이 지속됐을 때 비로소 시린 겨울바다도 두렵지 않게 된다. 정치권이 또 혁신 타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조만간 '매머드급 혁신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로써 원내교섭단체 4당이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모두 혁신위를 구성하게 됐다. 이미 구성된 각 당 혁신위는 급진적 개혁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대선 패배로 정권을 내준 자유한국당은 '뚜렷한 극우화'를 선언했다. 제보조작 파문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국민의당은 '최고위원회 폐지'를 제안했다. 바른정당도 스탠딩 회의를 도입하는 등 '탈권위주의'를 위한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근본적 체질 개선이라기보다는 위기탈출을 위한 단기처방에 가깝다.조심해야 한다. 자극적 형태의 혁신안일수록 그저 보여주기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두 달 여론의 관심을 끌다 이내 소리없이 사라지곤 했다. 정당 위기 때마다 늘 혁신이 등장했지만 언제나 실패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정당개혁을 위해 서서히 바꿔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먼저다. 조급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해결하려 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100점짜리 혁신안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좋다. 10점짜리일지라도 지속 가능한 혁신안이 나왔을 때 국민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국민 마음속으로 단숨에 들어갈 방법은 없다. 아서라. 당분간 욕먹을 각오는 해야 한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바뀌어야 한다. golee@fnnews.com 이태희 기자
2017-07-24 17:27:32인터뷰 일정을 잡기까지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서너 번 약속 날짜와 시간이 바뀌었다. 엄홍길 대장과 일대일로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는 바빠도 너무 바쁘다. 원래도 1년 365일 중 단 하루를 집에서 쉬지 않는 그이지만 '인생 17좌' 도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다. 최근 그의 실화를 다룬 영화 '히말라야'가 흥행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들끓었고 인터뷰나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했지만 모두 뒷전이었던 이유다. 정치권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최근 비례대표를 제안한 새누리당에 그는 "정치할 때가 아니다"라며 딱 잘랐다. "주변에서 저를 가만 놔두지를 않네요. 하하. 인터뷰도 웬만하면 잘 안 해요. 다 할 수 없으니까…." 지난달 28일 서울 장충동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짐짓 미안한 기색을 띠며 웃어 보였다. 빛나는 미소였다. 그러고보니 산 타는 사람 맞나 싶을 만큼 피부도 하얗고 깨끗했다. 새카만 얼굴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생전 스킨, 로션을 안 발라요. 현지에 가서 선크림을 발라 본 적도 없어요. 산을 열심히 다니면 좋은 기운을 받거든. 타든 트든 얼든 신경 안 써요. 그냥 다 순응하고 적응하는 거예요."엄홍길은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 고봉 16좌 완등의 대기록을 세운 산악인이다. 지난 2007년 네팔 로체샤르(8382m)를 마지막으로 히말라야를 졸업했다. 부상의 여파로 움직이지 않는 발목을 이끌고서였다. 더 이상의 목숨 건 도전은 없다. "다 이루었으니까요. 애초에 갈망하던 목표가 16좌였으니…. 신이 나에게 허락해 준 한계점이죠. 정도를 알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요. 넘어서면 탈이 나요. 22년간 16좌에 오른 세월을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것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나는 얼음 속에 잠들어 있어야 할 사람이에요. 제2의 인생을 살고있는 거지."그렇다고 인생의 도전을 멈춘 것은 아니다. "산악인으로서 히말라야 16좌 완등의 꿈을 이뤘지만 인간 엄홍길의 삶은 끝난 게 아니잖아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도전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꿈이 없고 희망도 없도 도전도 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게 아니죠. 저는 제 인생의 17좌가 있어요."―'인생 17좌'가 무엇인가.▲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이다. 크게 두 가지다.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산에 오르며 꿈과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일, 히말라야 16좌에 오른만큼 현지에 16개의 학교를 짓는 일이다. 2008년에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교육, 의료 봉사에 집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 중인가.▲매달 두 번째 주 토요일 서울 강북구청 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희망원정대'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문제아' '모범생'을 한데 모아서 근교 산에 오른다. 여름과 겨울에 캠프도 간다. 여름엔 군부대 체험, 땅굴 견학도 하고 겨울에는 높은 산을 오른다. 지난해 12월에 태백산 등정으로 4기 활동이 마무리됐다. 이 가운데 모범 학생 남녀 각 1명씩 뽑아서 히말라야 등반 체험과 현지 봉사활동 기회도 준다. 히말라야 현지 학교는 지난해 11월에 10번째 학교를 완공했다. 오는 22일 네팔 건지 마을에 열한번째 학교 준공식이 열리고, 현재 열세번째 학교가 착공에 들어갔다.―왜 이런 일을 하는가.▲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16좌에 오르면서 항상 '살아서 내려가게만 해주시면 제가 받은 은혜를 베풀며 살겠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티끌만큼도 안되겠지만 그렇게 살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라고 신께서 나를 살리신 것이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하는 도전이기에 더 고통스럽고 두려운 16좌였다. 38번의 도전 가운데 20번을 완등했지만 18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후배 대원 6명과 안내자 역할을 하는 현지 셰르파 4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자연스럽게 영화 '히말라야' 얘기가 나왔다. '히말라야'는 지난 2005년 에베레스트에서 하산 중 생을 마감한 후배 대원 박무택의 시신을 찾기 위해 엄홍길 대장이 '휴먼원정대'를 꾸려 등반에 나선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이 숨진 대원의 시신의 수습을 목적으로 한 등반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영화에서 배우 황정민이 엄 대장을 연기했다. 엄 대장은 이 영화를 모두 여섯 번 봤고 볼 때마다 울었다고 했다.―당시 생각이 많이 났겠다.▲영화가 실제와 100% 같을 순 없지만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서 놀랐다. 사실 평소에도 혼자 있을 때 늘 생각이 난다. 아직도 너무 뚜렷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황정민이 연기한 엄 대장과 실제 엄 대장은 얼마나 닮았나.▲평상시와 산에서의 모습이 많이 다른 것은 실제 나와 비슷하다. 산에서는 내가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장이다. 대원들의 생사가 나에게 달려있으니 평소보다 굉장히 날카롭고 냉철해질 수밖에 없다. 강해져야 하고 희생정신도 있어야 한다. ―극한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도 많았을 것 같다.▲정상을 코앞에 두고 발길을 돌린 적도 여러번 있었다. 눈앞에서 동료를 잃었을 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더 치밀하게 대비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기도 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갑작스런 사고를 예견할 수도 없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많다.엄 대장은 이 대목에서 말을 줄였다. 영화 개봉에 앞서 만난 황정민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 준비하면서 엄 대장님과 술 자리도 여러번 했거든요. 속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끝까지 안하시더라고요.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이 처참했다고만 하시지 자세한 얘기는 안하시는 것처럼요."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맺어진 인연의 농도는 속세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그는 "죽어서도 이어질 인연이다. 떠난 이들을 대신해 재단을 통해 유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숨진 현지 셰르파 자녀들 학자금도 책임진다. 살아남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해야 할 일이 참 많다"는 그가 요즘 가장 집중하는 것은 청소년 교육 사업이다. 네팔을 '제2의 고향'처럼 다니다보니 그 나라의 환경과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전세계에서 거의 가장 최빈국이라고 할수 있는 국가예요. 그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가난을 물려받으며 살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전쟁 이후 폐허가 됐지만 60여년만에 초고속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뭡니까. 바로 교육의 힘이에요. "―산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산에 다니면 성격부터 바뀐다. 요즘 청소년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공동체 의식의 결여다. 산행은 경쟁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면서 동료애, 희생정신을 배운다. 친화력도 생긴다. 도시에서는 관계를 맺는 게 쉽지가 않은데 산에서는 스스럼이 없다. 친구도 금방 사귀게 되고 성격도 활발해진다. 자신감과 인내심도 커진다. 고통을 참고 정상에 올라 섰을 때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 것이다. ―실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본 사례가 있나.▲뚜렷한 목표가 생기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학생들이 많다. '싸움짱'이던 아이가 공부를 시작한 경우도 있고, 130등 하다가 46등으로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부모님들도 간증을 한다. 집에서 말 한마디 안 하던 아이가 이젠 대화가 된다고.누구보다 산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엄 대장 스스로가 증인이다. 경기도 의정부 원도봉산 중턱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식당과 숙박업을 하시던 부모님 덕분에 세 살 때부터 산이 삶의 터전이자 놀이 공간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산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산이라는 존재를 자각하고 나서부터 그 세계에 확 빨려들어갔다"고 했다. 엄 대장이 고2 때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씨의 소식은 결정타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예 입산을 결심하고 한라부터 설악까지 온 산을 누볐다. 산은 그에게 인생 최고의 정신적, 육체적 스승이었다. "교육을 통해서 지식을 터득하고 지혜를 터득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잖아요. 그보다 더 큰 깨달음, 감정, 감동을 안겨준 것이 산이에요. 위대한 스승이죠."―산에서 배운 것 중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죽기살기로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흙수저, 금수저 얘기가 나온다. 노력만으로 되는 세상이 아니라고들 한다.▲그러면 낮은 산부터 천천히 도전하면 된다. 500m도 못 올라가 본 사람이 히말라야를 어찌 오르겠는가. 실패해도 괜찮다. 나도 많이 실패해봤다. 빨리 인정하고 보완해서 다시 도전하면 된다. 다 똑같이 힘들다면 긍정적으로 마음을 바꾸고 한 번이라도 더 도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내 좌우명이 자승최강(自勝最强)이다.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란 뜻이다. 부모도 형제도 내가 올라야 할 산을 대신 올라가 줄 수 없다."산에 왜 오르는가?" 그가 산악인으로서 가장 많이 받는다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처음에는 그저 도전의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내 의욕과 자신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구나. 자만심을 버려야겠다. 산의 순리에 따라가야겠다. 이제는 산에 오르는 이유가, 내가 산이고 산이 나이기 때문이에요. 산이 있음으로 내가 존재하고 산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죠. 그걸 깨달았기 때문에 산에 올라요."며칠 뒤 엄 대장의 권유로 북한산 등반을 함께했다. "유비무환"이라며 여벌 옷, 음식, 물 등을 꽉꽉 채워 10㎏이 넘는 그의 배낭엔 몽골 사람들이 귀한 손님에게 준다는 행운의 매듭이 양쪽으로 하얗게 매달려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발목 때문에 까치발로 걷는 걸음은 사뿐사뿐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노라니, 언뜻 백발 신선이 스쳐가는 듯했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엄홍길 대장 △56세 △경남 고성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1988년 네팔 에베레스트 등정 △1989년 체육훈장 거상장 △1993년 중국 초오유 등정 △1995년 네팔 마칼루, 파키스탄 브로드피크, 네팔 로체 등정 △1996년 네팔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등정, 체육훈장 맹호장 △1997년 파키스탄 가셔브룸1·2봉 등정 △1999년 네팔 안나푸르나,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등정 △2000년 네팔 칸첸중가, 파키스탄 K2 등정 △2001년 중국 시샤팡마 등정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 대한민국 산악대상, 체육훈장 청룡장 △2004년 네팔 얄룽캉 15좌 완등 △2005년 에베레스트 휴먼원정대 등반대장 △상명대 자유전공학부 석좌교수 △2007년 네팔 로체샤르 등정으로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 16좌 완등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현) △밀레 기술고문 및 상무이사, 대한산악연맹 자문위원(현) △2009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선정 올해의 인물 △2012년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 △대한민국 창조경영인상
2016-02-14 18:27:49'썰전' 허지웅이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8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이하 썰전)'에서는 예능심판자 김구라, 박지윤, 강용석, 허지웅, 이윤석이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썰전' 출연진들은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한 멤버들로, 각자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을 해 눈길을 껄었다. 이날 허지웅은 "원래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캠페인을 하다가 굳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놓고 엄숙주의를 강요하는 것은 대중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좋은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허지웅은 "나는 진중권 씨의 지목을 받았다. 사실 그 전에 5명에게 지목을 받았어서 기부로 이미 동참했었다"며 "그런데 지목 전 진중권 씨와 SNS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꽁해 보일 것 같아서 얼음물을 뒤집어쓰게 됐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썰전' 허지웅의 발언을 접한 네티즌들은 "썰전 허지웅,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썰전 허지웅, 아이스 버켓 챌린지에 대한 생각 나와 같아요", "썰전 허지웅, 이번 캠페인으로 루게릭병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그걸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fn스타 ent@mainnews.kr
2014-08-29 06:4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