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펙투스컴퍼니가 ‘버터크림 라떼’로 유명한 프리미엄 디저트 카페 하프커피에 70억 원을 투자한다고 13일 밝혔다. 펙투스PE는 자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하프커피의 글로벌 사업 진출을 도모하며, 양사 파트너십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펙투스PE 관계자는 “하프커피의 우수한 현금흐름 창출 능력과 F&B 프랜차이즈 운영 노하우를 높이 평가해 이번 투자를 진행하게 됐다.”며, “앞으로 양사의 파트너십과 시너지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프커피는 2018년 푸드테크 전문기업 여덟끼니가 론칭한 프리미엄 커피&디저트 카페이다. 론칭 이후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한 결과, 현재 전국 11개 직영 매장을 운영 중이다. 올해 12월에는 부산에 1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하프커피는 매장 상권에 따라 공간 구성에 변화를 주는 전략적인 피트인(Fit-in) 시스템을 통해 주 고객층에게 특색있고 효율적인 매장을 선보인다. 하프커피의 대표 메뉴인 ‘버터크림라떼’는 커피와 크림이 반반 조화롭게 어우러진 음료로, 매장에서 당일 생산하는 부드러운 버터크림의 풍미와 최고 등급 스페셜티 커피빈의 향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2018년 첫선을 보인 버터크림라떼는 일명 ‘스카치 캔디 맛 커피’로 SNS에서 인기를 끌며, 하프커피의 킬러 메뉴로 자리 잡았다. 지난 5월에는 버터크림라떼 단일메뉴로만 누적 판매량 150만 잔을 돌파하면서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입증했다. 하프커피는 크림 노하우를 살린 크림도넛과 샌드위치, 구움 과자 등 다양한 베이커리 메뉴를 제공한다. 한편, 펙투스는 미국 및 중국에서의 글로벌 경험을 보유한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사모펀드 운용사이다. 이를 바탕으로 푸드테크 전문기업 ‘여덟끼니’, 스마트팩토리 자동화 솔루션 업체 ‘로보콘’ 등 우수역량을 지닌 업체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헬스&뷰티케어 전문기업 ‘그레이스인터내셔날’에 80억 원을 투자하며, PE로서의 투자 역량을 강화 중이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2-10-13 10:14:39텍사스주 팰로 듀로 캐니언의 12월은 말도 못하게 춥다. 새벽 3시45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취사용 마차에서 나오자 두 손과 온몸이 얼어붙는다. 북풍이 불어오고 성냥을 랜턴까지 가져가기도 어렵다. "하나님, 여기 불 좀 붙여주세요"라고 중얼거린다. 카우보이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지만 조만간 소란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가장 먼저 일어나서 '버사'(무게 175㎏에 나무를 때는 캠프용 난로)에 불을 지피고, 소규모 부대를 먹일 달걀과 베이컨을 충분히 준비하는 게 요리사로서 내가 할 일이다. '군대는 위장에 든 걸로 움직인다'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소몰이도 다르지 않다. 모든 게 내게 달려 있다. 보수가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포기하고 취사용 마차 요리사가 됐다. 당시에는 그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아침이면 당연히 따뜻한 침대에 마음이 끌린다. 커피 끓일 물을 가지러 큰 통에 가보지만 꽝꽝 얼어 있다. 여과식 커피메이커에 물을 담으려면 얼음을 깨야 한다. "주님, 제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요?" 바로 그때, 바람에 랜턴이 꺼지고 만다. 나는 평생 카우보이 주변에 있었다. 나는 형제 넷 중 막내였으며, 아버지는 하나님의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쓸쓸한 땅인 오클라호마주 남서부에 있는 작은 목장에서 소 250마리 정도를 몰았다.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소몰이를 나가서 무리를 16㎞ 이동시켰다. 바로 여기 같은 협곡이었고, 아직 동이 트기 전 말에 안장을 얹어서 우리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잠시 멈춰 서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모두 옆에 '누군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말을 타고 가는 동안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지. 그러니 두려움에 맞서서 해내자." 그날은 길고 힘든 하루였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그날은 좀 더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 때문에 근육통이 더 심해지기는 했지만. 그러다 또 다음 날이 되었고, 일어났을 땐 기온이 영하 15도였다. 바람이 매서웠다. 아버지와 다른 카우보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과를 시작했지만, 어머니가 날 붙잡았다. "우리는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게 어떨까?" 밖을 한번 더 살펴보니 남자들은 추위에 맞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어머니에게 동의했다. 어머니는 내가 찾아야 할 재료를 일러주고, 숟가락으로 밀가루와 설탕을 퍼서 그릇에 담았다. "얼마나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아세요?" 내가 물었다. 무엇을 요리하든 어머니가 조리법을 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모든 재료는 쓰임이 있지. 함께 일하는 팀처럼 말이야. 그건 올바른 균형을 찾는 일이란다. 처음에는 실수하겠지만, 그렇게 배우는 거야." 곧 진하고 부드러운 초콜릿의 달콤한 향이 집에 가득했다. 오븐의 열기가 따스하고 아늑했다. "이다음에는 뭔지 아니?" "먹는 거요!" 어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치우는 일이 먼저야." 어머니는 싱크대에 뜨거운 비눗물을 가득 받았다. 음, 재미있는 일에도 힘든 일이 따르는구나. "요리의 즐거움은 먹는 게 아니야. 사람들의 얼굴에 뜬 미소를 보는 거지." 나이를 몇 살 더 먹고 나서야 미소가 어떻게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이기는지 깨달았다. 열다섯 살 때 일이다. 아버지와 형, 나는 친구의 목장에서 두 팔 걷어붙이고 일을 돕고 있었다. '네이버링 업'이라고 부르는 연례 행사였다. 정오쯤, 얼굴에 구슬땀을 흘리던 나이 든 사내가 얘기하는 걸 들었다. "오늘 좀 두둑하게 받겠는데." '와, 현금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차가 줄지어 진입로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아내들과 엄마들이 닭튀김, 빵가루를 묻혀서 튀긴 돼지고기, 온갖 샐러드, 케이크, 파이를 담은 큰 접시를 가지고 왔다. 카우보이들은 입이 귀에 걸렸다. 아침에 열심히 일하고 난 뒤 먹은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그날 오후 카우보이들은 웃고 장난치면서 두 배 더 열심히 일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얘기한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넉넉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건 꽤 특별해 보였다. 소몰이에 필요한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건 알았다. 어떻게 나도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팰로 듀로 같은 소몰이 지대에 있게 되었다. 이제 랜턴에 다시 불이 붙었고, 난로가 메스키트 목재를 연료 삼아 내어주는 온정 덕분에 공기도 훈훈해졌다. 카우보이들이 커피가 담긴 컵으로 손을 녹이며 식탁 둘레에 모이자 내가 말한다. "고개를 숙입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음식을 축복해 주시고 저희가 오늘 하루 나쁜 사고 없이 지낼 수 있게 살펴주십시오. 아멘." 사람들은 순식간에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모자를 약간 올리며 인사를 건넨다. "엄청 맛있었어요." 한 카우보이가 얘기해 준다. 그들이 말에 올라타자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얼핏 드러난다. 사람들이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자 조금 슬퍼진다.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무리에서 떨어지자 우울한 기분이 든다. 달걀과 베이컨을 담은 접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카우보이를 위한 요리를 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다. 뉴멕시코주에서 사냥 가이드로 일하던 삼촌이 고객들을 위해 요리해 달라며 날 불렀다. 그 기회에 선뜻 달려들었다. 내가 땅에 판 구덩이 위에서 요리를 했다. 바람에 먼지가 날리고 잉걸불이 내게 불어왔다. 요리를 얼마나 몰랐는지 삽시간에 깨달았다.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데 고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야영하는 곳은 해발고도 914m 이상이었다. 어느 아침에는 어머니가 알려준 방법대로 조식용 비스킷을 만들었다. 하지만 비스킷은 거의 부풀지 않았고, 구두가죽 같은 맛이 났다. "이거 플랫브레드야?" 나이 든 이가 물었다. 대답하면서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실수도 배움의 일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재료를 만지작거렸고, 다음에는 더 나은 결과가 나왔다.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훨씬 더 비스킷이라고 알아볼 만했다. 요리는 고된 일이지만, 사람들이 아침밥을 맛있게 먹을 때 짓는 미소를 바라보며 그들과 나누는 동료애가 무척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연로해졌고, 목장에서 내 도움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갔다. 요리할 짬이 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목장을 운영하는 일이 내게 떨어졌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고 애쓰느라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는 날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게 지워진 부담은 커져만 갔다. 수지 균형을 맞춰 보려고 군(郡) 고속도로 부서에서 도로용 중장비를 운전하는 일을 시작했다. 보수도 좋았고, 퇴직연금도 있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카우보이 문화와 요리에서 얻던 즐거움이 그리웠다. 하지만 어떻게 꿈을 좇느라 정부 관련 일자리가 주는 안정성을 포기한단 말인가. 게다가 소몰이는 이제 흔치 않았다. 나는 그저 때를 잘못 타고 났는지도 몰랐다. 어머니에게 내가 씨름하는 모든 문제를 털어놓았다. 현명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가 행복해지는 일을 해야지. 나머지는 하나님을 믿고 맡기면 된단다. 그분께서 목장 일을 도와주실 거야." 팰로 듀로의 황혼이 가까워졌다. 우리 모두에게 긴 하루였다. 무리를 16㎞ 이동시켰는데 얼어붙을 듯이 추운 날씨에서는 대단한 일이다. 멀리서 카우보이들이 텐트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통나무가 탁탁 타오르고 난로는 어마어마한 열기를 내뿜는다. 버사는 곧 치킨 프라이드 스테이크를 완벽하게 요리해 줄 거다. 감자와 블루베리 파이는 이미 주철 냄비에 넣어 두었다. 뻥 뚫린 구덩이에서 요리하던 뉴멕시코 시절 이래, 내 메뉴는 한층 세련되어졌다. 내 세상은 극적으로 변했다. 소문이 퍼졌고, 나는 카우보이들을 위해 요리하며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전역을 돌아다닌다. 주지사는 '오클라호마 공인 취사용 마차'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그래도 요리하는 매 끼니가 새로운 시험대 같다. 이런 날씨라면 한층 더 그렇다.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들어온다. 그중 한 명이 말에서 내리더니 허공에 대고 킁킁거리면서 발을 끌며 다가온다. 다른 이들은 그의 인도를 따른다. 예고도 없이 그가 내 목에 팔을 두르더니 말한다. "당신 덕에 집에 온 듯한 기분이 확실히 나겠어." 집.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는 문명이 주는 안락함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통해 가족 같은 느낌과 소속감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잊지 않게끔 다시 일러주자면, 팰로 듀로의 차가운 12월에도 우리에게는 말을 타고 나아가는 동안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 어머니의 얘기처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0-11-17 17:03:13민들레는 문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다. 꽃은 길 모퉁이, 사람 사는 곁 '가장 낮은 곳'에 핀다. '민들레국수집'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 소외된 사람들 곁에 있다. 지난 1월 말, 노숙인을 위한 무료 밥집 민들레국수집을 찾았다. 동인천역 광장을 지나 완만한 고갯길을 올랐다. 언덕배기 끝자락 작은 상가, 변변한 간판도 없었다. 베로니카(민들레국수집 대표의 아내, 세례명)가 문을 열어 두리번거리는 기자를 반겼다. "여기예요. 민들레국수집". 국수집 안은 따뜻했다. 갓 지은 밥냄새가 났다. 이곳 주인장은 서영남씨(65)다. 민들레국수집, 인천시 화수동 달동네 고갯길에 있는 작은 '밥집'이다. ■"사랑받으면 조금씩 변하지요" 이날 오전 노숙인 송모씨(62)가 민들레국수집에서 밥을 먹고 나왔다. 하루 두 끼를 먹는데, 첫 끼니다. 송씨는 서울역, 남대문지하도 등에서 10년 넘게 노숙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하던 장사가 망했다. 가족과도 헤어졌다. 돈을 내밀며 도와주겠다고 다가온 낯선 사람의 꾐에 속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송씨는 침낭을 매단 낡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추운 겨울 없어서는 안될 침낭은 민들레국수집 서 대표가 줬다고 한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 걸려 밥먹으러 온 겁니다. 몇 곳에 무료 급식소가 있는데 급식 인원이 줄어 배불리 먹지를 못해요. 이곳에선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요." 민들레국수집은 10여명이 앉을 만한 식당이다. 목요일, 금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이 열려 있다. 하루 150~300명의 노숙인들이 찾는다. 자원봉사자와 한때 노숙인으로 이곳에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함께 밥과 반찬을 준비한다. 모두가 '민들레 가족'이다. "밥먹을 때마저 줄을 세우며 경쟁하게 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요. 선착순이 아니라 꼴찌부터 식사를 하도록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밥을 드실 수 있어요. 노숙인들에게 충분히 식사를 하도록 하면 더 욕심내지 않아요. 밥을 무료로 준다는 이유로 종교를 강요하거나 하는 조건을 달아도 안됩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서 대표가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연 것은 2003년 4월 1일. 그의 전 재산 300만원으로 4~5명 앉을 식탁 하나를 놓고 노숙인을 위한 무료 밥집을 열었다. 지금의 민들레국수집 바로 옆이다. 처음엔 국수를 삶았다. 며칠씩 굶은 노숙인들이 국수보다 밥을 원했다. 서 대표는 하루 7~8시간씩 혼자서 밥을 짓고 반찬을 해 노숙인들에게 줬다. 매일 60~70명이 찾아왔다. 서 대표도 가난했다.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여덟살 때 부친을 잃고, 스무세살 때 수도회에 입회했다. 25년이 되던 2000년 그는 수도복을 벗고,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나왔다. 가톨릭 수사 때부터 20여년 해왔던 교도소 장기수를 돕는 일(교정 사목)은 지금도 하고 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는 이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줄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삶에 지쳐 희망마저 버렸던 외톨이였어요. 사랑을 체험하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나보다 귀한 남이 있다는 것을, 돈보다 귀한 것이 세상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16년 전 처음 핀 '민들레'는 작았다. 작은 꽃씨 하나가 더 많은 나눔이 됐다. 이곳에서 밥을 먹었던 노숙인들이 다시 찾아왔다.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봉사를 자청했다. 다문화가족도 있었다. 더 어려운 이웃에 써달라며 힘들게 번 돈을 내밀었다. 가난한 이들은 차별없이 모두 '민들레 식구'가 됐다. 작고 느슨한 공동체를 이뤘다. 국수집 고갯길 아래에 노숙인의 쉼터이자 옷가지와 건강을 챙겨주는 민들레희망센터, 민들레진료소, 민들레가게를 열었다. 근방 몇 곳에 노숙인들이 살 수 있도록 월셋방도 내줬다. ■필리핀에 핀 민들레 꽃 민들레는 필리핀의 가장 가난한 곳에도 피었다. 지난 2014년 서 대표는 칼로오칸시티의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 빈민촌 등 3곳의 빈민가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었다. 공부방도 만들었다. 국수집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밥과 장학금을 주고, 가족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만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러면 8~9명이 넘는 가족들이 전부 다 밥을 먹으러 오는 일도 있어요. 그때는 그 집에 쌀이 떨어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체면이 있어요. 그들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나는 작은 언덕입니다" 민들레국수집 16년, 마음 고생도 많았다. 서 대표의 선행이 TV(인간극장)에 방송됐고, 상(2011년 국민훈장 석류장 등)도 받았다. 후원자는 많아졌다. 하지만 없던 오해가 생겼다. 시기도 있었다. 기대하지 않은 정부후원금을 받았다가 이를 모두 포기하기도 했다. 천주교 교구 명의로 건물을 매입해 노숙인 쉼터(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열었는데, 작은 오해가 쌓이면서 건물을 교구에 돌려준 일이다. 서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처럼 '비인가(비제도)' 민들레국수집으로 남기로 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이다. 또 몇해 전엔 정부가 공장 부지를 마련해줄테니 국수공장 협동조합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서 대표는 "그때는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고 했다. " '돈을 좇다가는 사람을 잃는다. 나 자신이 사람답게 사는 것', 초심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서 대표는 이후 방송 출연도, 인터뷰도 사양했다. '민들레'는 흔들리면서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 "이 세상에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가난은 없습니다. 행복을 위해 양손 가득 많은 것을 움켜쥘 수도 있지요. 하지만 한 손 쯤은 남을 위해 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누고 난 빈손엔 더 큰 행복이 채워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손은 빈손입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우리 함께' 주인공을 찾습니다. 나눔을 통해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이들의 감동적인 사연을 찾습니다. 파이낸셜뉴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메일 wetogether@fnnews.com
2019-02-14 16:20:21동치미 김미화 (사진=MBN) 방송인 김미화가 첫 번째 결혼에 실패 후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15일 방송되는 MBN ‘동치미’에서 김미화는 ‘내 인생의 걸림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혼 후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모진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김미화는 “지난 2004년 이혼 당시, 아이들과 내가 버려졌다는 생각에 순간 겁이 났다. 어린 마음에 ‘혹시 내가 아이들의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닌가,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안 좋은 생각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때 친정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스물 여덟 살에 과부가 돼 홀로 우릴 키워주셨는데,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셨다. 한 번은 어릴 적 살던 곳의 주인집 할머니께서 내 입양을 권했었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김미화는 “젊은 새댁 혼자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많이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구두로 입양을 결정하고 미군들이 집으로 찾아 왔고, 어머니가 ‘도저히 안되겠다’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제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놔 스튜디오를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입양이 안돼 내 팔자가 결국 이렇게 됐다. 그때 내가 미국으로 입양을 갔더라면 지금쯤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정도는 됐을 것”이라며 농담을 던져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았던 스튜디오에 웃음을 자아냈다. 또 김미화는 “어린 시절 무허가 집에서 살면서 끼니도 제때 못 챙겨 먹었다. 또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대학교는 아예 갈 엄두도 못냈고,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코미디언이 돼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만약 남자로 태어났으면 코미디언으로 더 크게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래서인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공부했고 현재 박사과정 수료가 눈 앞에 있다. 가난은 본인 스스로만 즐길 수 있다면 절대 걸림돌이 아니다”라고 당부의 말도 전했다. 한편 김미화의 솔직한 고백은 금일 오후 11시에 방송되는 ‘동치미’에서 공개된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hyein4027@starnnews.com김혜인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4-11-15 12:15:3920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 ‘열여덟,열아홉’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린 가운데 엄현경, 유연석, 백진희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날 언론/배급시사회에는 배광수 감독을 비롯하여 배우 유연석, 백진희, 이영진, 엄현경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란성 쌍둥이 남매 호야(유연석 분)와 서야(백진희 분)사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뜨겁고 당돌한 청춘 스캔들을 담은 영화 ‘열여덟 열아홉’은 오는 3월 1일 개봉 예정이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kowel@starnnews.com김한준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관련기사 ▶ [포토] 비스트 윤두준-손동운 '정말 나라고 생각해?' ▶ [포토] 비스트 '옷잘입는 패셔니스타들' ▶ [포토] 윤두준 '당첨되어서 축하드려요' ▶ [포토] 카라 구하라 '다함께 소리질러~' ▶ [포토] 카라 한승연 '더욱 더 강렬히~'
2012-02-20 16: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