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8월 중순의 날씨는 뜨거운 폭염을 벗어나 다닐만 했다. 다음 목적지인 치타까지 약 2100㎞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시베리아 횡단도로를 쭉 달려갈 예정이었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와 길 따라 줄지어 서있는 송전탑 외엔 인공적인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 평원과 언덕을 달리고 달린다. 하루에 700km 달리겠다는 욕심..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끝없는 지평선도 보이고 푸른 나무가 울창한 숲과 들판, 습지와 강을 지난다. 이 넓은 땅에 아무것도 안하다니 좁은 한국 생각에 러시아가 부러워진다. 열흘 넘게 쉬고 출발한 첫날이라 그랬는지 탄이 욕심을 냈다. 이미 깜깜해졌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 10년 전에도 10시간 이상 차로 이동하면 죽을 맛이었는데 벌써 12시간이 넘어간다. 도로상태가 아주 좋더라도 화물차의 승차감으로는 장시간 주행이 쉽지 않은 일인데 이곳 시베리아 횡단도로의 아스팔트는 정비가 잘 안되어 울퉁불퉁하고 누더기같이 기워놓은 자국이 거미줄같다. 툭하면 포트홀을 차가 쿵쾅거리며 지나가 엉덩이가 뻐근하게 배기고 허리가 뼛속까지 아프고 머리까지 흔들려 지끈대는 것이 너무 괴로왔다. 마을같은 곳이 나올때까지 참고 있었는데 그곳도 쌩하니 지나쳐버린다. 계속 저기선 멈추겠지, 멈추겠지 하고 참다가 끝내 언제 잘거냐고 그만 좀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탄은 그제서야 알겠다며 차세울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는데 주변엔 아무것도 없어 또 한참을 가야했다. 깜깜한 길을 차의 헤드라이트빛만 의지해 달리다가 겨우 외진 길가 안쪽의 카페를 발견하고 더듬더듬 들어와서 기절하듯 잠을 청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 나는 심한 몸살로 몸이 완전 나빠진 것을 느꼈다. 편도선이 부어 목소리가 거의 안나오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몸이 축축 쳐졌다. 출발전에 탄에게 아프다고 살살 운전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탄은 왠지 내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제와 다름없이 그저 빠르게 이동하기에만 열중했다. 몸은 부서질듯 뼈마디마디가 아팠다. 너무 괴로워서 아스팔트 구멍이 보이면 피해가달라고 다시 이야기를 했는데 알았다고만 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빠르게 가다보니 미처 피하지 못하고 쿵쾅쿵쾅 차가 빠지기 일수였다. 참다참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어 차를 세우라고 한 뒤 안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그제서야 깨달은 탄은 매우 미안해하면서 자기 혼자 머리속으로 치타까지 2100km를 3일만에 가야겠다는 목표를 정해두고 하루에 700km넘게 가야한다는 생각에 그랬다고 한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건 목표를 세우고 숙제하듯이 달성하곤 했던 패턴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었다. 3일안에 치타에 도착해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도, 빨리 갈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그냥 무리를 한 것이다. 이 후로 우리는 다시한번 "느린 여행"을 하자고 되새겼다. 이번 여행에서 만큼은 스피드, 생산성, 효율성에 사로잡혀 주변의 많은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피할 것을 다짐했다. ★느린 여행의 좋은 점① 몸에 무리가 덜하다 ② 차에 무리가 덜 간다 ③ 유류비가 덜 든다 ④ 앞유리에 곤충사체가 덜 생긴다 ⑤ 차창 밖 풍경을 여유 있게 볼 수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스코보로디노에 가서 쉴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스코보로디노는 작은 소도시였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몇군데 숙소가 있었다. 처음엔 그래도 저렴한 곳을 찾아갔는데 방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을 막론하고 두세군데를 더 가봤지만 모두 빈방이 없다고해서 결국 숙소에서 쉬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났다. 조금이라도 기운나게 밥이라도 잘 먹으려고 길가의 작은 식당에서 초밥과 피자를 시켰다. 한국에서였다면 돈주고 안사먹었을 부실한 계란말이초밥과 밍숭맹숭한 피자였지만 탄도 나도 음식을 만들 기운도 없고 방금 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먹었다. 정차하고 까브리를 보니 유리와 차 앞쪽에 수많은 곤충사체 흔적이 가득한 것이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차역 앞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기 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하바롭스크에서 만나서 도움드렸던 김병복님이 우리와 같은 날, 같은 도시에 묵고있다는 메세지가 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병복님은 바이크 여행자이신데 러시아는 도시와 도시사이 도로에 인터넷이 안되는 구간이 많아 오프라인 지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을 몰라서 큰 어려움을 겪으셨다고해서 우리가 이반네로 오시라고 해서 이반의 와이파이로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 받아준 일이 있었다. 여행 중 길 위에서 만나면 밥한번 같이 먹자고 하고 헤어졌더랬다. 하지만 이미 잘준비를 마친 상태에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만나거나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내일 연락하면 되겠지 하고 그냥 누웠다. 빗소리에 깨어버린 새벽, 또다시 나서는 여행길 또다시 새벽에 길을 나선다. 일찍 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 컨디션이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바로 앞차도 겨우 보일 지경이었지만 빗소리에 깨어버린터라 이동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스코보로디노를 빠져나오며 온도계를 보니 외부온도가 13도이다. 가을이 다가와서인지 북쪽으로 올라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주행하기도 훨씬 편하고 차에서 잠도 잘만하다. 참 다행이다. 길 위에서 병복아저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했노라고 같은 길을 가니 어디서든 만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한참 달리다가 점심때쯤 오토바이 여행자들의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한 카페 주차장에 들렀다. 혹시 병복아저씨도 오시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좀 있었지만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휴게소 없는 시베리아 도로... 어쩌다 만난 재래식 화장실 "으악, 냄새" 장시간 운전을 하다보면 반드시 쉬어야 하는데 시베리아 도로에 휴게소같은 것은 없고 우리나라 졸음쉼터 같이 길 옆에 약간 평평한 공간을 만들어 놓은 곳이 뜨문뜨문 있긴 하다. 하지만 그저 차를 세울 수 있는 공터가 있다는 정도이고 어쩌다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지독하게 냄새나는 재래식이고 거의 다 청소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는 상태라서 마음을 굳게 먹고 볼일을 후딱 보고 오곤했다. 상태가 너무 안좋아 차라리 밖에서 볼일을 보는게 나을 때는 지나가는 차들을 피해 수풀에 숨거나 탄이 차량용 햇빛가리개로 뒤돌아서 나를 가려주었다. 하바롭스크를 떠난지 3일째 되는 새벽, 해가 안떠 어두컴컴한 길을 달린다. 탄에 의하면 우리 차 외엔 다니는 차들이 없어 상향등을 맘편히 켜고 달릴 수 있어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어두울 때 주행이 할만하다고 한다. 동 터오자, 안갯 속의 풍경.. 이 세상 풍경이 아니었다 동이 터오며 점차 밝아지자 안개 낀 주변 풍경이 환상적이다. 이런 풍경을 놓칠 수 없다고 감탄하며 탄이 차를 세웠다. 탄이 드론 촬영을 하는 동안 주변의 안개속 풍경을 감상했는데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나중에 드론이 찍어온 영상을 보자 몽환적인 안개속에서 점점 커지며 다가오는 나무들의 실루엣이 기가막히게 아름다왔다. 이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이 곳은 한번도 사람이 밟아본 적이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 신비하게 느껴졌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당시의 날씨, 시간대, 상황에 따라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 다 다르다. 그것이 우리가 유튜브를 하게 된 이유중 하나였다. 처음엔 이미 많은 사람이 갔었고 유튜브영상도 많은데 우리까지 올리는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더라도 백사람이 느끼는 것이 다 다를 수 있으니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담백하게 담자는 마음이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은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qKioUEV2Iwg?si=48euvPkp3QHQXnH2>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3-07 15:31:29[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국빈 방한 중인 이반 두케 마르케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정을 재확인하고 협력 확대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대통령님과는 P4G 정상회의를 함께했기 때문에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라고 환영했다. 이어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유일한 한국전쟁 참전국"이라며 "콜롬비아 보병대대는 70년 전 부산항에 도착해 여러 중요한 전투에서 활약했고, 고귀한 희생을 치렀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양국 국민들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함께 피를 흘린 콜롬비아 청년들을 항상 기억한다"며 "참전용사들과 가족, 콜롬비아 국민들께 감사드리며, 한국이 어려울 때 도와준 콜롬비아의 특별한 우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케 대통령의 리더십도 높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콜롬비아는 두케 대통령님의 리더십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오렌지 경제', '콜롬비아를 위한 약속' 정책이 콜롬비아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지난해 OECD 회원국이 되어 중남미를 넘어 세계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와 한국은 내년에 수교 60주년을 맞는다. 문 대통령은 "양국은 상호 보완적인 경제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의 길을 열어왔고, 2011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되어 미래 지향적이고 포괄적인 협력의 모범을 만들어 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한국과 콜롬비아는 2회와 3회로 이어지는 P4G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며 "또한 양국은 식량, 보건,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새로운 도전에 맞서 양국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케 대통령은 "70년 전, 우리 나라가 같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서 힘을 합치고 단결했다면 오늘은 콜롬비아와 한국이 발전, 혁신, 창조성 분야에서 협력을 해 양국 국민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이것은 코로나19와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제가 특별한 우호 그리고 우애의 뜻을 가지고 금번 방한을 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케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중남미 역외로는 최초로 한국을 단독 방문했다. 우리로서는 코로나19 이후 중남미 국가와의 첫 대면 정상외교다. 두케 대통령은 또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 강화도 희망했다. 두케 대통령은 "안보 분야에 있어서 한국이 보여 준 협력에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며 한국의 퇴역함 무상 양도와 기술 전수 등을 언급했다. 이어 "양국은 군 차원에서 그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고 하겠다"며 "앞으로 콜롬비아는 한국과 함께 저희 국내의 안위뿐만 아니라 국제 안보에 있어서도 꾸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분야에 대해선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관련해 "그 결과가 날로 성장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앞으로 더 FTA를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며 △커피 수출 확대 △육류시장 진출 등을 기대했다. 두케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러한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대(對)콜롬비아 한국 수출이 증진되고, 또 투자가 서로 간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협력의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면서 롯데그룹, CJ,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거론했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2021-08-25 15:13:35한국수력원자력 글로벌봉사단 40여명은 지난 6월 체코 남부에 있는 모라브스키 크룸로프시 시청 인근 옛성에서 한국문화 축제를 열었다. 지역 주민들과 청소년, 어린이들이 모인 한국-체코 문화교류 행사다. 부채 만들기, 태권도, K-팝 댄스 시범 공연과 체코의 전통 공연이 펼쳐져 양국간 우호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학교와 복지기관에서 시설 정비, 교육용 과학키트 조립, 문화재 내에 잡초를 제거하는 등 청소 봉사활동도 함께 펼쳤다. 체코 트레비치, 오크르지슈키, 이반지체 등 체코 남부지역에서 2주간 진행된 한수원 글로벌봉사단의 봉사 활동과 문화행사는 지역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곳은 한수원의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인 지역이기도 하다. ■체코·베트남서 글로벌 봉사활동 한수원은 개발도상국 및 해외사업 예상국에 글로벌 봉사단을 파견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28일 한수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체코에서 봉사활동에 나선 해오름동맹대학 글로벌봉사단은 한수원 직원 10명과 대학생, 원자력 협력회사 직원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이는 한수원의 대표적인 글로벌 봉사·문화 활동이다. 베트남 오지마을에도 찾아갔다. 한수원은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베트남 라오까이성 등에 매년 50여명의 봉사단이 찾아가 빗물을 이용한 식수설비를 설치하고, 정수필터를 제작하는 등 환경개선 봉사활동을 했다. 한수원의 사회공헌 비전은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이다. 지난 2004년 6월 사회공헌 전담조직과 '한수원 사회봉사단'이 공식 출범했다. 직원들의 자발적 성금인 러브펀드와 회사에서 후원하는 매칭그랜트를 합해 조성한 '민들레홀씨기금'을 봉사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수원의 사회공헌 활동은 명분보다 '효율'을 우선한다. 크게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안전·행복 △원전 주변지역 지원을 위한 지역사랑 △미래 인재들을 위한 인재육성 △글로벌봉사 등 네가지 영역에서 추진된다. ■안전한 마을 '안심가로등' 호응 주민들의 안전한 귀갓길을 위한 '안심가로등'은 한수원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이다. '안심가로등'은 낮에 충전한 태양광으로 밤에 불을 밝힌다. 한번 충전으로 7일 정도 이용이 가능해 장마철이나 흐린 날씨에도 이용할 수 있다. 가로등에 사용되는 발광다이오드(LED) 램프는 일반 가로등보다 1.5배 이상 밝다. 자정이 넘으면 주변 동식물의 성장을 위해 밝기가 자동으로 조절된다. 지역 주민들은 '안심가로등'을 반긴다. 주민들은 "야간에는 무서워 다니기 힘들었던 곳을 이제는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특히 방범 취약지역의 범죄예방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한수원은 제2회 대한민국 범죄예방 대상(2017년)에서 범죄예방활동 최우수기업으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한수원은 2014년부터 영덕, 고창, 경주, 부산 등 전국에 모두 1371본의 가로등을 설치했다. 일반 가로등에 비해 1본에 연간 2160kwh의 절전 효과가 있다. 한수원은 이달 중 총 6곳의 사업지역을 확정해 9월부터 총 330본의 가로등 설치공사를 진행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안심가로등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회사로서 국민들에게 '빛'을 선물해줄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면서 시작됐다. 안전이 취약한 어둡고 후미진 골목길에 가로등을 설치해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가정 어린이에 '행복더함' 한수원의 '행복더함 희망나래' 사업은 교육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이다. 전국 지역아동센터의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희망나래 도서관'을 선물하고, 안전한 귀가 등에 사용할 차량을 지원한다. 지난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지원한 승합차는 총 409대, 도서관은 모두 207곳이 새롭게 조성됐다. 한수원은 건강하고 안전한 주거공간 조성을 위한 '행복나래 집수리'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2년간 저소득층 80가구와 복지시설 2곳의 시설을 개선하고, 87세대의 슬레이트 지붕 개량 작업을 완료했다. '밝은 눈으로 행복한 세상을' 사업은 한수원이 한국실명예방재단과 함께 하는 실명예방 사회공헌활동이다. 농어촌지역 주민을 위해 전문 의료진이 특수검진장비를 갖고 현지에 찾아가 진료하는 무료 안검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술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 눈 수술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한수원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억원을 후원했다. 총 30개 지역 5416명이 무료 안검진을 받았다. 저소득층 1046명의 눈 수술비도 지원했다. 올해도 농어촌 10개 지역에서 무료 안 검진을 실시하고, 개안 수술비를 지원해 저소득층 환자 380여명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할 예정이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들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공기업으로서 국민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함께 나누고자 항상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2019-08-28 19:01:35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봄날의 화사함을 되찾아줄까. 한국을 대표하는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72)를 필두로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78),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3) 등 6070대 대가들이 줄 내한한다. 2030대 클래식계 아이돌들의 협연소식도 반갑다. LA필하모닉 창단 100주년 기념 투어에 동행하는 유자왕(32)과 아르헤리치와 협연하는 임동혁(35), 그리고 조성진(25)이 그 주인공이다. ■'백건우&쇼팽'12일부터 전국 투어2017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독주회를 가졌던 백건우는 올해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 함께 돌아온다. 쇼팽 녹턴 전집 음반 발매를 기념해 12일 마포아트센터를 비롯해 4월까지 11개 도시 투어에 나선다. 작은 살롱에서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며 대화하기를 즐겼던 쇼팽처럼, 백건우도 이번에 "피아노가 지닌 고유의 소리와 울림에 집중"해 청중들과 섬세하게 교감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서 백건우는 쇼팽의 녹턴을 중심으로 즉흥곡, 환상 폴로네이즈, 왈츠, 발라드 등을 연주한다. "내겐 쇼팽의 정수처럼 느껴지는 녹턴은 힘을 안줘도 빛을 발하는 소리다. 쇼팽의 녹턴하면 단지 예쁜 곡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드라마가 있다." 그는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도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고 좋은 음악을 전달하는 게 예술가의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지방공연을 고집해왔다. 4월 2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와 차이콥스키를 연주한다. ■16년만에···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독주회는 2003년 이후 무려 16년 만에 열린다. 첫 내한 공연과 지난해 10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주최한 마스트미디어가 오랜 시간 공들인 결과 마침내 두번째 독주회를 열게 된 것이다. 쇼팽의 고국 폴란드 출신인 그는 19세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금세기 최고의 쇼팽 발라드 연주가로 꼽힌다. 이번 공연에서 대표 레퍼토리인 쇼팽의 스케르초 4개와 브람스 소나타 1·2번을 연주한다. 연주의 완성도를 위해 주문 제작한 전용 피아노로 연주하는데, 작년과 달리 올해는 독주회라 운반 여부가 조율 중이다. 공연장 소음에 대한 지메르만의 까다로운 눈높이는 다 맞춰주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할 때 내부 카메라 및 음향을 다 제거하고, 로비송출 영상도 불허했다. 20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22~2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26일 인천 아트센터인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부흐빈더 오스트리아 출신인 루돌프 부흐빈더(73)는 베토벤의 환생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다. 무려 50회 이상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사이클(연주)을 가졌고,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도 세 차례나 발매했다. 이번 '루돌프 부흐빈더 & 베토벤'은 2013년 이후 6년 만의 내한 독주회로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있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이번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3번 '열정' 등을 연주한다. 주최측은 "때로는 꿈결 같은 선율로, 때로는 장엄한 비극으로, 때로는 몰아치는 감성으로 오리지널 베토벤을 들려줄 것"이라고 전했다. 5월 7일 대구콘서트하우스, 8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0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여제'마르타 아르헤리치&임동혁 실력은 나이순이 아니다. 하지만 24세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래 지금까지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타 아르헤리치(78)는 늘 '최고'였다. 영국의 가디언은 '나이는 그녀의 손가락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녀의 연주는 여전히 눈부시고, 무서울 정도로 정교하다'고 평한다. 2010년 정명훈&서울시향과의 협연 이후 9년만의 내한이라 더 반갑다. 이번 공연은 아르헤리치의 분신인 올해 21년 된 '아르헤리치 벳부 뮤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아르헤리치가 열렬히 후원해온 임동혁(35)과 함께 꾸미는 무대로, 둘은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무곡'을 연주한다. 5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클래식계 아이돌, 유자왕-조성진 중국 출신 스타 연주자 유자왕(32)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LA필하모닉의 협연자로 한국을 찾는다. 거침없는 속주와 파워풀한 타건이 경이로운 그는 실력만큼이나 파격적 옷차림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존 애덤스가 유자 왕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신곡('Must the devil have all good tunes?')을 연주한다. 16일 예술의 전당. 한국인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25)의 신드롬은 올해도 계속된다. 조성진은 6월 24일·25일 이반 피셔가 이끄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11월 10일에는 미국 빅5로 꼽히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각각 협연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19-03-11 17:15:02"내 음악은 위로입니다.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음악 속으로 끌려들어가 함께 방황하고 미움도 받고 사랑도 느끼는 게 바로 음악이 줄 수 있는 위로예요. 그걸 주기 위해 평생 동안 1만% 노력했어요. 왜냐구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게 관객이니까요."감히, '현 위의 인생 70년'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연주자가 몇이나 될까. 자신이 설명하는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이, 오직 이름만으로 전설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사진)가 70세를 맞은 올해, 33번째 앨범으로 돌아왔다. 고희(古稀)와 33. 6세에 바이올린을 잡은 뒤 70세까지 거의 평생을 바이올린과 함께한 그에게 33개의 앨범 숫자는 어찌보면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구한 클래식 역사에서 33번째 음반을 낸 연주자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그럼에도 정경화는 최근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제 이름 앞에 자꾸 '레전드(전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그때마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끔찍하다"며 크게 웃었다. 오랜 기간 '레전드'로 남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는 "어쩌다보니, 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며 눙쳤다.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6세 바이올린을 잡은 그는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두 번의 레슨만에 한 번 들은 모든 곡들을 현 위에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9세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을 협연했고 13세의 나이에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했다. 1967년 당시 최고 권위의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1970년 영국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앙드레 프레빈 지휘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하며 단번에 유럽 클래식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당시만 해도 유럽 클래식 무대에서 동양인 연주자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음색으로 '동양에서 온 마녀'라는 수식어가 붙은 정경화는 그렇게 유럽 클래식계 커다란 돌풍이 됐다. 이후 클래식의 명문 레이블인 '데카'와 EMI에서 서른장이 넘는 앨범을 발매하는 동안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은 그는 어느새 많은 이들의 기억과 현재 속에서 거장으로 각인됐다.그런 그에게 2005년 갑작스러운 왼손 손가락 부상은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였다. 은퇴를 선언하고 5년간 줄리아드에서 교수로 생활하다 2010년 무대로 복귀했는데, 정경화는 이를 '기적'이라고 불렀다. 화려하게 재기한 정경화의 행보는 여전히 거침없었다. 2016년 평생 숙원으로 남아 있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녹음한 데 이어 2년 만에 새 앨범 '아름다운 저녁'을 내놨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레와 프랑크, 그리고 드뷔시의 작품들이 담긴 프렌치 앨범이다. 처음으로 시도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비롯해 포레의 '자장가',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 '아름다운 저녁' 등이 실렸다. '음악적 동반자'로 불리는 케빈 케너가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매번 앨범을 내니까 익숙하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이렇게 힘들어서 죽겠다' 싶을 정도로 모든 앨범에 온 기력과 정성을 들인다. 레전드면 뭘 해도 쉽게 쓱쓱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뭘 해도 아직도 이렇게 기를 써야 하고 힘이 든다"고 했다.평생을 바이올린과 함께했지만, 여전히 그는 현 위에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온 마음과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 체력이 떨어지니까 음이 빠지고 활에서도 지저분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수치스러움에 머리를 쥐어뜯던 시기는 지났다. 항상 '이게 마지막 연주다'라는 마음으로, 그 안에서 있는 감정을 다 전달하려 노력한다. 어떻게든 내 속에 있는 걸 다 빼내서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평생 계속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거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18-03-29 17:13:30말레이시아 사라왁주 미리시에 위치한 이스트우드 밸리 골프&CC. 이 골프장은 파이낸셜뉴스와 골프여행 전문지 '골프트래블'에 의해 '아시아 100대 골프코스'에 선정된 곳이다. 【 미리(말레이시아)=정대균 골프전문기자】시야가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공기는 연거푸 폐부 깊숙이 긴 호흡을 하고 싶을 정도로 상쾌했다. 수십, 수백 킬로미터까지 떨어져 있는 곳도 금세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바다는 에메랄드 빛 그 자체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원시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푸르름의 향연에 몸서리치게 했다. 휴대전화 카메라에 잡힌 피사체가 푸른색은 더욱 푸르고 하얀색은 더욱 하얗게 보이는게 당연했다. 한 마디로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말레이시아 사라왁주에 위치한 미리시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속한 본토와 보르네오섬이 있는 동말레이시아로 나뉜다. 아마존과 함께 '세계의 산소 탱크'로 불리는 보르네오섬에는 세 개의 나라가 있다. 섬의 남쪽은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북쪽은 동말레이시아, 그리고 섬 가운데는 브루나이 왕국이 자리 잡고 있다. 동말레이시아는 동쪽의 사바주와 서쪽의 사라왁주로 나뉘는데 사바주의 유명 휴양지가 코타키나발루다. 그중 주도가 쿠칭인 사라왁주는 여러 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우선 말레이시아인들도 사라왁을 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허가된 체류 기간을 지나게 되면 추방되는 말레이시아 내의 또 다른 국가인 셈이다. 주의 면적은 말레이시아 본토보다도 크다. 석유를 포함해 지하자원이 풍부해 국민소득이 말레이시아 평균을 훨씬 웃도는 곳이다. 주민 구성은 이반족을 비롯한 원주민이 20%, 말레이계 30%, 그리고 중국계인 화교가 50%를 차지한다. 사라왁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미리'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다. 이곳은 원유 생산지다. 캐나다인 거주 지역인 '캐나다 힐'에서 우물을 파다가 처음 석유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곳이 말레이시아 내에서 개인소득이 가장 높은 것은 바로 석유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교민은 거의 없다. 프로펠러 비행기로 30분 가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10대 경관 중 하나인 구눙 물루 국립공원이 있다. 해발 2378m의 구눙 물루에 위치한 동굴은 길이 278㎞다. 물루 공항에 내려 카누를 타고 강을 20분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동굴을 만날 수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클리어 워터 동굴, 레이디 동굴, 바람 동굴이 개방돼 있다. 억겁의 세월을 걸려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낸 장관에 연신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곳은 골퍼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미리 시내에는 현재 이스트우드 밸리 골프&CC, 미리GC 등 2개의 골프장이 있다. 하지만 석유 의존도가 컸던 시가 점차 관광 수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국제적 규모의 새로운 골프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스트우드 밸리 골프&CC는 파이낸셜뉴스와 골프트래블이 공동으로 실시한 '아시아 100대 골프코스'에 선정된 명문 골프장이다. 이스트우드 밸리 골프&CC는 공항에서 5분, 시내에서 5㎞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골프장 내에 리조트가 있어 체류형 골프장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전체적으로 코스는 플랫하다. 페어웨이 한 가운데 IP지점에 벙커가 도사리고 있는데다 주변에 자연 상태의 워터 해저드가 많아 난도가 높은 골프장이다. 일단 티샷시 벙커를 넘기느냐, 벙커를 비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 좋다. 벙커 등 트러블 지역만 피한다면 휴양지 골프장에 걸맞게 좋은 스코어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일랜드 파3홀인 3번과 8번홀 공략이 묘미가 있다. 9번홀(파5)은 전장이 긴 편이다. 호수를 2번 넘겨야 하므로 드라이버 비거리가 공략의 관건이다. 한편 미리GC는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영국이 점령했을 당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리 해변과 강 사이에 위치해 있다. 미리시 다운타운과 아주 가까워 숙소에서 접근성이 좋다. 탄탄대로의 평지이지만 좁은 페어웨이, 페어웨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아름드리 나무, 그리고 긴 전장으로 공략이 쉽지 않다. 현재는 회원들이 운영중이어서 관리가 다소 허술하다. 코스 중간중간에 원주민들의 거주지가 들어서 있는 것도 이채롭다. 원주민들의 가게가 그늘집으로 이용된다. 미리 시에서 국경을 넘어 자동차로 1시간30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브루나이 엠파이어 호텔CC도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 중 하나다. 내달 28일부터 브루나이 항공이 직항으로 취항하게 되면 접근성이 대폭 개선된다. golf@fnnews.com
2016-11-16 17:46:47【 미리(말레이시아 사라왁주)=정대균골프전문기자】시야가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공기는 연거푸 폐부 깊숙이 긴 호흡을 하고 싶을 정도로 상쾌했다. 수십, 수백 킬로미터까지 떨어져 있는 곳도 금세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바다는 에메랄드 빛 그 자체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원시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푸르름의 향연에 몸서리 치게 했다. 휴대 전화 카메라에 잡힌 피사체가 푸른 색은 더욱 푸르고 하얀색은 더욱 하얗게 보인 게 당연했다. 한 마디로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 말레이시아 사라왁주에 위치한 미리시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속한 본토와 보르네오 섬이 있는 동 말레이시아로 나뉜다. 아마존과 함께 '세계의 산소 탱크'로 불리는 보르네오 섬에는 세 개의 나라가 있다. 섬의 남쪽은 인도네시아 칼리만탄(Kalimantan), 북쪽은 동 말레이시아, 그리고 섬 가운데는 브루나이 왕국(Brunei)이 자리 잡고 있다. 동 말레이시아는 동쪽의 사바 주와 서쪽의 사라왁 주로 나뉘는데 사바 주의 유명 휴양지가 코타키나발루다. 그 중 주도가 쿠칭인 사라왁 주는 여러 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우선 말레이시아인들도 사라왁을 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허가된 체류 기간을 지나게 되면 추방되는 말레이시아 내의 또 다른 국가인 셈이다. 주의 면적은 말레이시아 본토보다도 크다. 석유를 포함해 지하자원이 풍부해 국민소득이 말레이시아 평균을 훨씬 웃도는 곳이다. 주민 구성은 이반족을 비롯한 원주민이 20%, 말레이계 30%, 그리고 중국계인 화교가 50%를 차지한다. 사라왁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미리'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다. 이 곳은 원유 생산지다. 캐나다인 거주 지역인 '캐나다 힐'에서 우물을 파다가 처음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곳이 말레이시아 내에서 개인 소득이 가장 높은 것은 바로 석유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교민은 거의 없다. 프로펠러 비행기로 30분 가면 유네스코 헤리티지가 지정한 세계 10대 경관 중 하나인 구눙 물루 국립공원이 있다. 해발 2378m의 구눙 물루에 위치한 동굴은 길이 278km다. 물루 공항에 내려 카누를 타고 강을 20분 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동굴을 만날 수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클리어 워터 동굴(Clear Water Cave), 레이디 동굴(Lady Cave), 바람 동굴(Wind Cave)이 개방되어 있다. 억겁의 세월을 걸려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낸 장관에 연신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 곳은 골퍼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미리 시내에는 현재 이스트우드 밸리 골프&CC, 미리GC 등 2개의 골프장이 있다. 하지만 석유 의존도가 컸던 시가 점차 관광 수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국제적 규모의 새로운 골프장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그 중에서도 이스트우드 밸리 골프&CC는 금번 본지와 골프트래블이 공동으로 실시한 아시아 100대 코스에 선정된 명문 골프장이다. 공항에서 5분, 미리 시내에서 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골프장 내에 리조트가 있어 체류형 골프장으로는 안성마춤이다. 전체적으로 코스는 플랫하다. 페어웨이 한 가운데 IP지점에 벙커가 도사리고 있는데다 주변에 자연 상태의 워터 해저드가 많아 난도가 높은 골프장이다. 일단 티샷시 벙커를 넘기느냐, 벙커를 비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 좋다. 벙커 등 트러블 지역만 피한다면 휴양지 골프장에 걸맞게 좋은 스코어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일랜드 파3홀인 3번과 8번홀 공략이 묘미가 있다. 9번홀(파5)은 전장이 긴 편이다. 호수를 2번 넘겨야 하므로 드라이버 비거리가 공략의 관건이다. 미리GC는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영국이 점령했을 당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리 해변과 강 사이에 위치해 있다. 미리시 다운타운과 아주 가까워 숙소에서 접근성이 좋다. 탄탄대로의 평지이지만 좁은 페어웨이, 페어웨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아름드리 나무, 그리고 긴 전장으로 공략이 쉽지 않다. 현재는 회원들이 운영중이어서 관리가 다소 허술하다. 코스 중간중간에 있는 원주민들의 거주지가 들어서 있는 것도 이채롭다. 원주민들의 가게가 그늘집으로 이용된다. 미리 시에서 국경을 넘어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브루나이 엠파이어 호텔CC도 반드시 들러야할 명소 중 하나다. 내달 28일부터 브루나이 항공이 직항으로 취항하게 되면 접근성이 대폭 개선된다. 7성급 호텔 브루나이 엠파이어 호텔에 있는 이 골프장은 지난 2012년에 아시아와 유럽간 남자골프 대항전인 로얄 트로피가 개최되었던 곳이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16-11-16 14:51:36지휘자 이반 피셔(65.사진)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가 6년 만에 내한공연을 펼친다. 이번 공연을 이끄는 이반 피셔는 거장 반열에 올라선 세계적인 지휘자로, 일각에선 전성기의 카라얀에 빚댈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베토벤 심포니 전곡 연주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거장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준 바 있다. 25세 나이로 런던 루퍼트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시작된 그의 지휘 행로는 굴곡없는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1983년 LA필하모닉 데뷔 무대에 이어 베를린 필, RCO, 뉴욕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에서 객원지휘를 맡았고,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지휘자와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피셔는 각 악단의 전통과 강점을 부드럽게 이끌어내는 섬세한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이반 피셔는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지휘자'라는 평가에는 몸을 낮췄다. 그는 파이낸셜뉴스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지휘는 지휘자의 능력이나 스타성과는 무관하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협력을 위해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자리"라며 그의 평소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지휘자로 입문할 당시 "작품의 구조가 중요하고 이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라는 원칙을 가슴에 담았다고 했다. 헝가리 출신인 그의 이력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도 "가족같은 관계"라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1983년 BFO를 창단한 이반 피셔는 무려 33년간 BFO와 함께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드문 케이스인 피셔와 BFO의 끈끈한 관계는 시간이 빚어낸 조화로움을 묵묵히 드러낸다. 그 결과, 냉전 시기 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BFO는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성취도를 높이며 2000년대 중반 최정상권 오케스트라 리그에 합류했다. 고전 작품에서는 급변하는 템포에 대한 민첩한 반응력과 일사분란한 합주력, 낭만주의 음악에서는 악기 하나하나의 움직임과 즉흥성, 동유럽 작품에서는 몸에 배인 선율 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 개인적.감정적으로 통한다. 다른 오케스트라가 멈추는 시점에서 BFO는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단원들은 나의 기대 이상을 충족시켜주며 나도 그들에게 얼마나 요구해야 하는지 안다. 이와같은 관계가 다른 오케스트라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 협연하는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에 대해서도 "그녀는 타고난 음악가이자 뛰어난 인간미를 갖고 있다. 그녀의 친절함과 따듯한 이해심은 연주에서도 빛이 난다"고 평가했다. 이번 공연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줄 피르스는 소박하지만 담백하고 깊이 있는 해석으로 청중의 마음을 적실 예정이다. 공연은 10월 10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조윤주 기자
2016-09-26 17:33:23휴가철이 막 시작되던 무렵, 강원도 횡계의 한 작은 성당에서 그를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사진). 한때는 '무대 위의 암사자'로 불리던 음악가다. 자신이 완벽히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면 세계 최고의 무대도 거절하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평상복 차림으로 자그마한 성당 무대에 서 있었다. 지난 7월26일 오후 2시, 강원도 횡계 대관령성당에서 열린 '제 12회 대관령 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횡계' 공연에서 정경화가 연주하고 있다. 연주를 시작하려는 정경화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잡음을 줄이기 위해 에어콘을 끈 성당에서 관객은 연신 부채질을 했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부산스러움 속에서 연주가 시작됐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 C장조. 그가 열아홉살이 되던 해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던 곡이다. 순간, 잡음은 모두 사라지고 그의 바이올린 소리만 성당 안을 꽉 채웠다. 모두 집어삼킬 듯한 카리스마와 열정, 일흔을 바라보는 노장의 선율은 여전했다. 소름이 오스스 돋아났다. 며칠 후, 정경화를 다시 만났다. 인터뷰 장소로 강아지 두 마리가 먼저 뛰어들었다. 그의 반려견, 클라라와 요하네스. 정경화는 내 아들, 딸이라고 소개했다. 클라라를 품에 안은 그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4년 전 작고한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게 여섯살이 채 되기도 전인데. 피아노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까 어머니가 바로 바이올린을 사다 주셨어요. 그리고 딱 2주 후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조회시간 때 단상에 올라가 연주를 했어요. 어머니가 교장선생님을 설득해 나를 거기에 올려 세웠죠." 그는 아홉살이 되던 해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멘델스존 협주곡을 연주했고, 열세살에는 미국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이반 갈라미언의 제자가 된다.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 ▲통찰력, 설득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열성적인 교육가, 말도 못하는 애국자였다. 독립운동가였던 외할아버지 피를 물려받아서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했다. 아이들을 음악가로 키운 것도 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어머니는 실력을 몸에 붙여준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디라도 몸만 가져가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줬다. 나는 평생 "엄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살았다. 그는 열아홉살이 되던 1967년, 미국의 권위 있는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한다. 누구나 주커만의 우승을 확신하던 때였다. 무명인데다 동양 여성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등장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만들었다. 파이널에서 흔들린 주커만이 실수를 저지르며 정경화의 우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심사위원장은 주커만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줬고, 사상 유례없는 두 번의 파이널 끝에 공동 우승이 결정됐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동양인 여성으로 힘든 환경이었을 것 같다. ▲열여섯살에 연주를 시작했을 때,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그들에게 누구보다 신비한 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절대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했다. 관객이 기립박수를 쳐도 미쳤다고 화를 낼 정도였다. 외롭고 고단했다. 그래도 그렇게 산 덕에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년 후 기회가 찾아왔다. 1970년 5월 런던 페스티벌 홀에서 정경화는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협연했다. 그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연주가 끝나자 엄청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프레빈은 그 자리에서 다음 협연을 제안했고 무명이던 그녀는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 ―그날 연주도 운이었나. ▲콩쿠르에 우승하고 2년이 지나면서 무대가 사라지던 중이었다. 다시 콩쿠르를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때 만난 찬스다. 내가 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있다. 운이 너를 찾아올 때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선생님이 늘 하신 말씀이다. "다이아몬드는 흙 속에 있어도 광채를 잃지 않는다. 조급해하지 마라. 늘 빛을 지니고 있으면 된다." 그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유대인이 주름잡던 국제 음악계에 오로지 실력만으로 빛을 발한 한국인 바이올린니스트. 무대에서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열정은 다른 연주자들을 압도했다. 그에게는 '현의 마녀' '무대 위의 암사자' 같은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정경화의 열정에 제동이 걸린 건 지난 2005년이다. 게르기예프-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와 연주회를 준비하던 중 손가락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이후 2011년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6년이란 오랜 슬럼프를 겪었다. 그 사이 그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화가 복이 된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고 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전의 나는 스스로를 항상 몰아부쳤다.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숨도 쉴 수 있는건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많은 것을 내려놨다. 완벽한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전처럼 완벽을 따지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 요즘은 "꾸준히,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무대를 내려온 '암사자'의 열정은 이제 어린 연주자들에게 옮겨갔다. 2007년 줄리아드 음악원의 교수직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2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의 석좌교수가 됐다. 2011년부터는 첼리스트인 언니 정명화와 함께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를 키워내는 일을 '사명'이라고 했다. 인터뷰의 많은 시간을 영재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썼다. "'금나와라 뚝딱' 하는 방망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재도 기르고, 불쌍한 사람도 돕게." ―60년대와 비교하면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나는 음악이 좋아서 했고,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꿈을 쉽게 가질 수가 없다. 성공하려면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고 콩쿠르에서 1등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들어가면 진도부터 묻는다. 내가 "너는 뭘 느끼니? 뭘 표현하고 싶니?"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진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는거다. 연주자들은 무대에 올라갈 때 관객에게 뭘 전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 영혼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찾아서 전달해야 한다. 그걸 숨쉬듯 느끼며 사는 것이 예술인의 삶이다. 목표를 딱딱하게 세우면 영혼을 키울 여유가 없어진다. ―왜 영재 교육에 그렇게 관심을 갖나. ▲한국 애들 실력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을 뒷받침할 시스템이 부족하다. 나는 가족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음악가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면 60대까지도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는 실력은 좋은데 돈이 없어 묻히는 안타까운 아이들이 너무 많다. ―영재교육 시스템의 문제는 뭔가. ▲무대에 설 기회가 부족하다는 거다. 유럽에서는 콘서트홀 D-C-B-A 순서로 무대 경험을 쌓는다. D는 지역 무대들, A가 런던, 뉴욕, 암스테르담 등 세계 주요 무대다. D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다보면 A는 저절로 된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국제 콩쿠르를 나가면 아무리 실력이 좋은 아이들도 파이널 무대에서 제 기량을 못 펼친다. 처음 서보는 큰 무대를 전날 한번 훑어보고 어떻게 연주가 되나.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콩쿠르를 나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크레딧 스위스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 키우는 아이들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데뷔 무대를 갖는다. 우리도 정부와 기업이 재단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앞으로 아이들을 위해 연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되물었다. "내 나이가 칠순인데 할 수 있을거라고 보세요? 성당 연주도 사실 주제 파악 하려고 한건데. 어땠어요? 그래도 한게 안하는 것보다 나았죠? 아직은 한게 더 낫죠?" ―앞으로 연주 계획은. ▲바흐 바이올린 무반주 전곡 녹음도 하고 싶고, 글로벌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사실 굉장히 조심스럽다. 예전처럼 완벽한 연주를 원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나서보려고 한다. 글로벌 투어를 하면 관심도 모일테고 스폰서도 받기 쉬워지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그에게 바이올린과 함께 한 인생은 행복했는지 물었다. 요하네스를 끌어안으며 정경화가 웃었다. "말이 60년이지, 아직 시작도 안한 기분이예요. 음악의 깊이, 예술의 깊이는 그만큼 상상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살면서 너무 많은 축복을 받았어요. 기가 막힌 부모님, 형제들, 스승을 만났고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뤘죠. 그래도 쉽진 않았어요. 얼마나 몸부림을 치고 살았는지. 이젠 주제 파악도 다 했고, 아무 눈치도 안보고 사니 너무 좋아요. 관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연주하고, 집에 오면 이 아이들(클라라, 요하네스)에게 사랑받고 사는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하하" 지면을 빌어 그에게 못다한 대답을 하려 한다. 대관령 성당 공연은 정말 좋았다. 한여름 오후 2시, 에어콘이 꺼진 실내에서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한 건 계속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클래식의 미래는 정경화, 당신을 가져서 참 다행이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2015-08-17 18:34:46\r \r "바이올린을 60년 했지만, 시작도 안한 기분이에요 음악의 깊이는 그만큼 상상 할 수 없는 거예요"평생 하는 말 "엄마, 감사합니다"나는 살면서 너무 많은 축복을 받았어요. 기가 막힌 부모님, 형제, 스승.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뤘죠. 쉽진 않았어요. 얼마나 몸부림을 치며 살았는지…. 완벽주의자의 '행복한 변신'완벽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르지 않았어요. 관객의 기립박수에도 화가 났죠. 언제나 나 자신을 몰아붙였죠. 그러다 찾아온 손가락 부상은 스스로를 만날 기회가 됐죠.영원한 숙제, 음악과 예술연주자는 무대에서 영혼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찾아 전달해야 해요. 그걸 숨쉬듯 느끼며 사는 게 예술인의 삶이죠. 이젠 세계적 연주자를 키우는 게 '사명' 이라 생각해요. \r \r \r \r \r \r \r \r \r \r \r '무대 위의 암사자'라고 불리던 정경화는 이제 세계적인 음악가를 키워내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작은 무대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r \r \r \r \r \r 휴가철이 막 시작되던 무렵, 강원도 횡계의 한 작은 성당에서 그를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한때는 '무대 위의 암사자'로 불리던 음악가다. 자신이 완벽히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면 세계 최고의 무대도 거절하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평상복 차림으로 자그마한 성당 무대에 서 있었다. 연주를 시작하려는 정경화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잡음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을 끈 성당에서 관객은 연신 부채질을 했고,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부산스러움 속에서 연주가 시작됐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 C장조. 그가 열아홉살이 되던 해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던 곡이다. 순간, 잡음은 모두 사라지고 그의 바이올린 소리만 성당 안을 꽉 채웠다. 모두 집어삼킬 듯한 카리스마와 열정, 일흔을 바라보는 노장의 선율은 여전했다. 소름이 오스스 돋아났다.며칠 후, 정경화를 다시 만났다. 인터뷰 장소로 강아지 두 마리가 먼저 뛰어들었다. 그의 반려견, 클라라와 요하네스. 정경화는 내 아들, 딸이라고 소개했다. 클라라를 품에 안은 그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4년 전 작고한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게 여섯살이 채 되기도 전인데. 피아노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까 어머니가 바로 바이올린을 사다주셨어요. 그리고 딱 2주 후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조회시간 때 단상에 올라가 연주를 했어요. 어머니가 교장선생님을 설득해 나를 거기에 올려 세웠죠."그는 아홉살이 되던 해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멘델스존 협주곡을 연주했고, 열세살에는 미국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이반 갈라미언의 제자가 된다.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통찰력, 설득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열성적인 교육가, 말도 못하는 애국자였다. 독립운동가였던 외할아버지 피를 물려받아서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했다. 아이들을 음악가로 키운 것도 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어머니는 실력을 몸에 붙여준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디라도 몸만 가져가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줬다. 나는 평생 "엄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살았다.그는 열아홉살이 되던 1967년, 미국의 권위 있는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한다. 누구나 주커만의 우승을 확신하던 때였다. 무명인데다 동양 여성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등장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만들었다. 파이널에서 흔들린 주커만이 실수를 저지르며 정경화의 우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심사위원장은 주커만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줬고, 사상 유례없는 두 번의 파이널 끝에 공동 우승이 결정됐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동양인 여성으로 힘든 환경이었을 것 같다.▲열여섯살에 연주를 시작했을 때,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그들에게 누구보다 신비한 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절대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했다. 관객이 기립박수를 쳐도 미쳤다고 화를 낼 정도였다. 외롭고 고단했다. 그래도 그렇게 산 덕에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3년 후 기회가 찾아왔다. 1970년 5월 런던 페스티벌 홀에서 정경화는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협연했다. 그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연주가 끝나자 엄청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프레빈은 그 자리에서 다음 협연을 제안했고 무명이던 그녀는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그날 연주도 운이었나.▲콩쿠르에 우승하고 2년이 지나면서 무대가 사라지던 중이었다. 다시 콩쿠르를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때 만난 찬스다. 내가 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있다. 운이 너를 찾아올 때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선생님이 늘 하신 말씀이다. "다이아몬드는 흙 속에 있어도 광채를 잃지 않는다. 조급해하지 마라. 늘 빛을 지니고 있으면 된다." 그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유대인이 주름잡던 국제 음악계에 오로지 실력만으로 빛을 발한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무대에서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열정은 다른 연주자들을 압도했다. 그에게는 '현의 마녀' '무대 위의 암사자' 같은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정경화의 열정에 제동이 걸린 건 지난 2005년이다. 게르기예프-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와 연주회를 준비하던 중 손가락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이후 2011년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6년이란 오랜 슬럼프를 겪었다. 그 사이 그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화가 복이 된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고 했다.―어떤 변화가 있었나.▲이전의 나는 스스로를 항상 몰아붙였다.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숨도 쉴 수 있는 건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많은 것을 내려놨다. 완벽한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전처럼 완벽을 따지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 요즘은 "꾸준히,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무대를 내려온 '암사자'의 열정은 이제 어린 연주자들에게 옮겨갔다. 2007년 줄리아드 음악원의 교수직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2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의 석좌교수가 됐다. 2011년부터는 첼리스트인 언니 정명화와 함께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그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를 키워내는 일을 '사명'이라고 했다. 인터뷰의 많은 시간을 영재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썼다. "'금나와라 뚝딱' 하는 방망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재도 기르고, 불쌍한 사람도 돕게."―1960년대와 비교하면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나는 음악이 좋아서 했고,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꿈을 쉽게 가질 수가 없다. 성공하려면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고 콩쿠르에서 1등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들어가면 진도부터 묻는다. 내가 "너는 뭘 느끼니? 뭘 표현하고 싶니?"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진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는거다. 연주자들은 무대에 올라갈 때 관객에게 뭘 전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 영혼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찾아서 전달해야 한다. 그걸 숨쉬듯 느끼며 사는 것이 예술인의 삶이다. 목표를 딱딱하게 세우면 영혼을 키울 여유가 없어진다. \r \r \r \r \r \r \r \r \r \r \r 지난 7월 26일 오후 2시, 강원도 횡계 대관령성당에서 열린 '제12회 대관령 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횡계' 공연에서 정경화가 연주하고 있다. \r \r \r \r \r \r ―왜 영재 교육에 그렇게 관심을 갖나.▲한국 애들 실력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을 뒷받침할 시스템이 부족하다. 나는 가족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음악가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면 60대까지도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는 실력은 좋은데 돈이 없어 묻히는 안타까운 아이들이 너무 많다.―영재교육 시스템의 문제는 뭔가.▲무대에 설 기회가 부족하다는 거다. 유럽에서는 콘서트홀 D-C-B-A 순서로 무대 경험을 쌓는다. D는 지역 무대들, A가 런던, 뉴역, 암스테르담 등 세계 주요 무대다. D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다보면 A는 저절로 된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국제 콩쿠르를 나가면 아무리 실력이 좋은 아이들도 파이널 무대에서 제 기량을 못 펼친다. 처음 서보는 큰 무대를 전날 한번 훑어보고 어떻게 연주가 되나.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콩쿠르를 나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 키우는 아이들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데뷔 무대를 갖는다. 우리도 정부와 기업이 재단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그는 앞으로 아이들을 위해 연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되물었다. "내 나이가 칠순인데 할 수 있을거라고 보세요? 성당 연주도 사실 주제 파악하려고 한 건데. 어땠어요? 그래도 한 게 안하는 것보다 나았죠? 아직은 한 게 더 낫죠?"―앞으로 연주 계획은.▲바흐 바이올린 무반주 전곡 녹음도 하고 싶고, 글로벌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사실 굉장히 조심스럽다. 예전처럼 완벽한 연주를 원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나서보려고 한다. 글로벌 투어를 하면 관심도 모일테고 스폰서도 받기 쉬워지지 않겠나.마지막으로 그에게 바이올린과 함께한 인생은 행복했는지 물었다. 요하네스를 끌어안으며 정경화가 웃었다. "말이 60년이지, 아직 시작도 안한 기분이에요. 음악의 깊이, 예술의 깊이는 그만큼 상상할 수가 없는 거에요. 나는 살면서 너무 많은 축복을 받았어요. 기가 막힌 부모님, 형제들, 스승을 만났고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뤘죠. 그래도 쉽진 않았어요. 얼마나 몸부림을 치고 살았는지. 이젠 주제 파악도 다 했고, 아무 눈치도 안보고 사니 너무 좋아요. 관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연주하고, 집에 오면 이 아이들(클라라, 요하네스)에게 사랑받고 사는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하하." 지면을 빌려 그에게 못다한 대답을 하려 한다. 대관령 성당 공연은 정말 좋았다. 한여름 오후 2시, 에어컨이 꺼진 실내에서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한 건 계속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클래식의 미래는 정경화, 당신을 가져서 참 다행이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정경화는? △68세 △서울 출생 △미국 뉴욕 줄리아드 음대 학사 △1967년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 우승 △1970년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런던심포니와 데뷔 연주 △1980년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 △1988년 EMI그룹 아티스트 △1996년 실내악단 정경화체임버 대표 △2007년 줄리아드 음대 교수 △2011년 제8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2012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 전공 석좌교수 \r \r
2015-08-16 17:3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