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하씨 별세· 홍사근씨 상부· 한상철 상현(동화고 교장) 상숙(삼성전자 부사장) 상희씨(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부친상· 장덕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중완씨(DL이앤씨 부장) 빙부상· 이성숙씨(작가) 시부상=26일 서울대병원, 발인 28일. (02)2072-2020
2024-01-26 14:19:59공정거래위원회는 제16대 한국소비자원장에 장덕진 현 부원장(사진)이 승진 임명됐다고 19일 밝혔다. 임기 3년인 소비자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장 신임 원장은 행정고시 31회로 공직에 입문해 공정위 서울사무소장, 기획조정관, 소비자정책국장,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2019년 3월부터 소비자원 부원장을 지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2021-07-19 18:47:46공정거래위원회는 제16대 한국소비자원장에 장덕진 현 부원장( 사진)이 승진, 임명됐다고 19일 밝혔다. 임기 3년인 소비자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장 신임 원장은 행정고시 31회로 공직에 입문해 공정위 서울사무소장, 기획조정관, 소비자정책국장,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2019년 3월부터 소비자원 부원장을 지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2021-07-19 13:55:44한국소비자원 신임 부원장에 장덕진(56·사진)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이 임명됐다. 임기는 2년이다.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장 부원장은 제3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공정위 서울사무소장, 기획조정관, 소비자정책국장,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19-03-11 18:18:41한국소비자원 신임 부원장에 장덕진(56· 사진)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이 임명됐다. 임기는 2년이다. 서울대 경제학을 졸업한 장 부원장은 제3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공정위 서울사무소장, 기획조정관, 소비자정책국장,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19-03-11 09:07:38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2일 이사회를 열고 부사장으로 장덕진 상품부문담당 부사장 대행(사진)을 신규 선임 내정했다. 장 부사장은 1962년 생으로 덕수상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나와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4년 대신경제연구소로 금융투자업계에 입문한 후 신한투자신탁운용, 한국펀드평가 등을 거쳐 지난 2001년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에 입사했다. 신한BNP파리바에서 리스크관리팀 경영지원본부, 전략상품·서비스본부 등을 거쳤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2013-09-02 16:36:34노무현 대통령이 터키를 방문했을 때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일부 한국 사람이 걱정”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또한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더 구체적인 부연설명이 없으니 발언의 깊은 뜻은 알 길이 없으나 ‘민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국인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어떠한 이념을 가진 정치세력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내세우지 않고 성공한 사례는 없다. 우파 보수세력은 물론이고 좌파 정치집단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기치를 배신할지언정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민족을 배신하고는 살아남은 전례가 없다. 오죽하면 북한 정권조차도 ‘우리식 사회주의’를 부르짖었겠는가. 남한의 지나간 정권들도, 그 정권에 반대하던 민주화 운동세력도 민족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현 정권도 적어도 이 점에서는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거기다 일이 되려니 때마침 독도영유권 문제와 교과서 왜곡 문제까지 겹쳐 민족은 다시 한번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이런 마당에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 사람’ 이야기는 평균적 정서를 가진 한국인의 피를 끓게 만든다. 그런데 잠시 감정을 다스리고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민족이란 참으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일뿐더러 결코 보편적 가치가 될 수도 없는 개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천년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건만 그렇다 해서 이민족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섞이긴 했지만 많이 섞이지는 않았다는 뜻인가. 얼마나 많이 섞여야 많이 섞인 것이고 얼마나 조금 섞여야 아직까지 단일민족이라고 인정해줄만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더 나아가서 민족이란 도무지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같은 민족인지 아닌지는 출생시에 결정되는 것이고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속한 민족을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출생시에 귀속적으로 결정되고 본인의 노력과 성취에 의해서도 바뀔 수 없다는 점에서 민족은 과거의 신분제도와 마찬가지로 전근대적인 개념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일단 민족을 배신했다는 낙인이 찍히면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친미’라는 단어는 민족적 자존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단어의 본 뜻이야 미국과 친하다는 말이니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 함의는 ‘민족을 배신하고 힘센 놈 편에 붙는’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냥 친미도 아니고 ‘미국 사람보다도 더 친미적’이라니 적개심의 크기는 더욱 커질만 하다. 다시 한번 감정을 다스리고 찬찬히 생각해 보자. ‘친미’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과 다른 나라가 축구경기를 할 때 친미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미국을 응원할 터인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때 혈맹이라고까지 했던 오랜 우호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축구경기를 하는데 미국을 응원하는 경우다. 아무리 오랜 동맹이기로서 이 상황에서 미국을 응원한다면 한국 감독은 속이 탈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같은 장소에서 노대통령이 스스로 말했듯이 현 정권은 “한·미동맹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다른 말로 지금의 상황은 한국과 미국이 맞붙어 경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친미가 왜 문제가 되나. 친미적인 한국 사람이 문제라는 주장과 한·미동맹에 이상이 없다는 주장은 동시에 양립할 수가 없다.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주한미군 문제부터 시작해서 최근 잇달아 불거지고 있는 한·미관계의 마찰음, 그리고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들로 인한 불편한 심기가 그 배경이 된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친미’나 ‘반미’의 문제가 아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싼 여러 비판들도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과연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방법론’의 문제이고 ‘정책’의 문제이지 ‘친미’나 ‘반미’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을 친미라고 낙인찍는 것은 더구나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화두인 ‘민족’을 들먹이며 낙인찍는 것은 균형을 잃은 처사다. 더구나 한국은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지 않은가.
2005-04-20 13:01:39증권선물거래소의 분석에 의하면 지난해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에서 이뤄진 2536건의 사외이사 참여 의결 건수 중 반대는 5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보다 1주일쯤 앞서 같은 기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외이사의 평균 보수는 연간 4500만원이고 연평균 이사회 개최 건수는 12회다. 그렇다면 간단히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사외이사는 한 달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해 무조건 찬성해주고 그 대가로 월 400만원 가까운 돈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사외이사는 대부분 자신의 본래 직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로 월 400만원은 이들의 총수입이 아니라 추가 수입이다. 한 달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하고도 이보다 적은 보수에 만족해야 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고 행여 해당 기업의 주식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내 돈 들여 99% 찬성률의 거수기를 구입한 셈이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본래 사외이사 제도는 영미에서 발달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지난 19세기 말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기업혁명(주식회사의 폭발적 증가), 20세기 초반에 이미 상당히 진척됐던 소유의 분산, 주식시장에 주로 의존하는 기업금융 방식, 그리고 신용심사에 의한 여신 기능을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중심적 역할 등이 자리잡고 있다. 기업이 주식회사가 된다는 것은 남의 돈을 받아서 사업을 한다는 뜻이니 투자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소유가 분산된다 함은 대주주가 적어지고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생겨난다는 뜻이니 누군가가 이들을 대신해 경영을 감시해줘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주식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엉터리 사외이사를 선임할 경우 받게 될 시장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기업의 신용만을 보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해당 기업에 사외이사를 파견해 경영을 감시할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발달한 영미의 사외이사 제도조차도 그 실효성 여부에 대해 아직도 상반된 증거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의 사외이사 제도 도입 배경은 어떠했는가. 한국에서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소액주주의 권익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다가 97년 경제위기와 더불어 사외이사제의 도입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즉각적인 법 개정을 통해 98 회계연도부터 상장사의 사외이사 선임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새로 도입된 제도가 잘 기능하기 위한 환경은 거의 마련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한국에서 영미와 같은 주식회사의 폭발적 증가가 일어난 적은 한번도 없다. 지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후반에 비슷한 현상이 있기는 했으나 그 증가 폭은 미미한 수준이고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및 종목 수는 90년대 중반 이후 정체 내지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대주주의 내부 지분율은 미국에 비해 2배 이상 높고 시가총액의 증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게 얽힌 내부지분 관계로 시장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기색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채의 출자전환으로 졸지에 대주주가 돼버린 금융기관은 기업의 경영을 감시하기보다는 그러한 전환을 강요했던 정부를 향해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사외이사가 최대주주이자 경영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의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될 정도의 튀는 행동만을 자제하면서 적당히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는데 따르는 처벌은 없고 보상은 많기 때문이다. 이제 곧 식목일이다. 나무를 옮겨 심을 때도 토양과 온도·습도·일조량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자칫 죽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하물며 사외이사와 같은 중요한 제도를 옮겨 심는데 따라야 할 세심한 배려는 두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해서 무조건 옮겨 심었다간 추가비용만 초래할 뿐이라는 점을 한국의 사외이사 제도 운용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논란이 늘 그래왔듯이 해당 기업이나 사외이사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경제의 제도와 역사에 잘 맞는 경영감시 기구를 찾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2005-03-22 12:46:11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뭐라 단정적인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의 지나간 역사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한 시민단체는 교과서에 반영된 우리 역사 서술을 두고 ‘자학적 사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좀 지나친 표현이라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지적이기도 하다. 90년대 이후에만 해도 우리는 ‘역사 바로 세우기’와 ‘제2의 건국’을 했고 지금도 ‘과거사 규명’을 하고 있으니 우리 역사에 문제가 있기는 단단히 있는 모양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역사 청산에 대한 국민 지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나간 역사의 잘못된 부분을 깨끗이 털고 가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원론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원론이 옳다고 해서 그 부작용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부작용 중의 하나는 우리 역사에 ‘위인’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은 누구인가.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박 전 대통령은 경제적 공(功)과 정치적 과(過)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릴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현실 정치에 대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으니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대한민국의 대표 위인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도 더 기다려 보아야 알 일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한다고 믿었던 이순신 장군조차도 광화문 동상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더니 급기야 문화재청장의 ‘부적절한’ 발언까지 이어져 그 명예에 흠집이 생기고야 말았다. 이제 그나마 세종대왕 정도가 근근이 위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인가. 우리 역사에 위인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우선 지나간 시대를 살아냈던 어른들 세대에게 그 시대 인물에 대한 폄훼는 세대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비록 지나간 역사가 완벽하지는 못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이름도 명예도 없이 묵묵히 희생하고 땀 흘렸던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부정하려는 시도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현재의 청장년 세대는 무엇보다 ‘공익’을 위해 희생하려는 인센티브를 잃어버리게 된다. 좋은 재능과 노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큰 뜻을 품고 정치에 헌신하거나 대기업을 일군다면 그는 언젠가 낱낱이 파헤쳐질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청산’의 대상이 될 것이라면 우리는 조만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끔찍한 세상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자라나는 미래의 세대에 미칠 영향이다. 어린 세대에게 위인은 곧 역할 모델이요 자부심의 원천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를 바라보며 ‘자랑스럽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장차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여러 문화예술인들과 단체들이 찬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아직 단정해서 말할 수 없으나 보도된 바에 의하면 역사 사실인 다큐멘터리 장면과 함께 편집된 ‘픽션’ 부분의 수준은 기대 이하인 듯하다. 설사 코미디의 성격을 띤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그 시절 역사에 대한 진지한 다시 보기라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고인의 시신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해프닝 등 보도된 몇몇 장면들은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기보다는 옳든 그르든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개인에 대한 인격 침해라는 느낌에 더 가깝다. 10·26 당시 현장에 있었던 가수 심수봉씨는 “불쾌하지만 이 영화가 원본대로 상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영화는 감독이 연출한 원본대로 상영돼야 한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고나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지나친 희화화에 불쾌해하는 관객이 많기를 바란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되 그것이 균형을 잃었을 때에는 성숙하게 불쾌함을 표현하는 관객이 많아질 때 비로소 표현의 자유와 역사적 자부심은 공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dukjin@snu.ac.kr
2005-02-02 12:31:34[파이낸셜뉴스] 2019년 9월 일론 머스크와 마윈이 상하이 인공지능 컨퍼런스에서 토론을 나눴다. 마윈 역시 이전까지 알리바바를 창업한 전설적인 기업가로 존경을 받고 청년들의 멘토 역할도 했다. 하지만 해당 토론 이후 일론은 '천재 혁신가'로, 마윈은 '우연히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를 얻는데 그쳤다. 토론의 주제가 인공지능(AI), 뉴럴 링크, 화성 탐사 등 마윈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도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님과 중학생 정도의 토론을 보는 것 같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특이점을 넘어선 AI의 위험성에 대한 주제에 마윈은 "자기는 컴퓨터(AI)와는 체스와 바둑을 두지 않는다"거나 "AI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등의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놨다. 내연 기관차 시대를 끝내고 전기차 시대를 열고, 인간의 뇌와 AI를 결합해 정보를 전송하고, 스타링크를 통해 전세계를 연결하고, 화성을 개발해 지구를 벗어나 우주 시대를 연다는 생각이 모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 천재 한 명이 과거에 수만명, 수십만명의 몫을 했다면 현재는 그 이상의 몫도 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과연 한국에서 이러한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저보면 적어도 2023년 현재는 매우 부정적이다. 아니, 지금의 한국에서는 마윈과 같은 사업가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기초과학보다 '보다 높은 수입'이 우선시되는 현실 최근 우연히 '아파트투미'가 만든 하나의 통계표를 봤다. 제목은 '2022 의대 진학률 상위권 고등학교 TOP 30'였다. 1위 휘문고·서울 강남구 대치동·151명, 2위 상산고·전북 전주시 완산구·126명, 3위 세화고·서울 서초구 반포동·96명. 이런 식으로 고등학교와 주소, 의대에 진학한 학생의 숫자가 나와 있는 표였다. 한국의 천재들(혹은 될 수 있었던 천재들)은 모두 의대에 간다. 수년전 봤던 한 칼럼에서 1%의 천재들은 물리학, 수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의사라는 직업은 지능 상위 5%~10% 정도 되는 사람이 택해도 충분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수백명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도 소중하지만, 위대한 과학적 발견과 성취는 전 인류에게 그 혜택을 나눠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한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는 '보다 높은 수입'에 초점이 맞춰져 정신과, 피부과 선호 현상이 지나친 상황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10여 년전 한 대학의 공개 강연에서 도서관에서 토익 문제집을 풀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토끼 무리'가 생각난다고 했다. 수십 마리의 토끼 무리에게 사자가 달려오는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보다 무리 속에 파묻혀 떨고 있는 토끼 무리 말이다. 대학생들 입장에서야 불안한 현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 하에서 택할 수 있는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 토익 문제를 열심히 풀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일 수 있다. 또, 한국의 천재들이 모두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인풋 대비 아웃풋(수입)이 가장 뛰어난 직업을 택하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의 보상 시스템일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일부 천재들은 의사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천재들은 기꺼이 나사에 들어가고, 테슬라에도 들어간다. 그만큼의 보상이 뒷받침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교육, 혁신을 만든다 지난 2월 27일 28일 양일간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제1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열렸다. 급변하는 대전환기의 시대 문화예술 교육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조명하는 토론회였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장덕진 서울대 사화학과 교수겸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한국에서 어쩌면 천재를 발굴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하나의 힌트를 던져줬다. "서울대에 도서관이 9곳, 책이 520만권 있다. 본관인 중앙도서관과 분관인 사회과학 도서관, 법학 도서관 등등이다. 학생들의 대출 패턴을 보면 음대생은 음대도서관에서, 생명공학과 학생은 공학도서관에서만 책을 빌린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최첨단 분야의 훌륭한 학자는 많이 나오지만 노벨상은 안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혁신이나 커다란 부가가치는 대게 서로 다른 분야들 사이에 놓여 있다. 서울대 도서관은 지난 8년간 학생들의 250만권의 대출 이력을 빅데이터 분석해 분야를 넘나들며 독서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할 계획이다. 향후 3~4달 후에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머스크 이전에 아이폰을 만들며 혁신의 아이이콘이 된 스티브 잡스는 "내 인생의 전환점은 파이포그래피 수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공학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명상을 통해 분야를 넘나드는 사유를 확장해 혁신을 이룩한 것이다. 어쩌면 문화와 예술 교육의 역할도 각각의 분야들 사이에 끊어진 다리를 연결해 섬이 아닌 세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 체계 하에서 가장 먼저 없어지는 수업이 체육과 음악과 같은 수업이라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고영선, 신영준이 쓴 '완벽한 공부법'에 보면 '운동이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캘리포니아대 칼 코트만 교수는 우리가 운동할 때 신경세포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인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가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BDNF는 새로운 신경세포를 생성하고 기존 신경세포를 보호하며 뇌 신경인 시냅스의 연결을 촉진한다. 쉽게 말해 운동하면 똑똑이 세포가 증가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83페이지에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 아울러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련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유산소운동이란 수영이나 조깅 같은 장시간에 걸친 적당한 운동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난 뉴런도 그대로 두면 28시간 뒤에는 별 쓸모도 없이 소멸해버립니다. 정말 아깝지요. 하지만 막 태어난 뉴런에 지적인 자극을 주면 그게 활성화해서 뇌 내의 네트워크와 이어져 신호 전달 커뮤니티의 유기적인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학습과 기억 능력이 높아집니다. 어쩌면 적절한 체육과 문화 예술 교육은 바로 표가 나지는 않지만 의사가 되는 것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더 뛰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2023년 대한민국의 기성세대가 듣기 좋은 말로 바꿔 말하면 "체육 수업, 문화 예술 수업을 더 많이 하면 아이가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부자가 되는데 더 효과적일지도 모릅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3-02-28 19: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