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올해 GP(운용사) 와 LP(투자자)는 지정학적 갈등과 높은 밸류에이션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전 세계 기관 및 펀드매니저 235곳을 대상으로 '2024년 사모시장 진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응답자들은 지정학적 갈등(61%), 높은 밸류에이션(40%), 경기침체(35%) 순이 거시경제 최대 리스크라고 언급했다고 22일 밝혔다. 지난해 응답자들은 거시경제 최대 리스크로 경기침체(48%)를 꼽았다. 올해 LP는 높은 밸류에이션, 경기침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하방 리스크를, GP는 금리와 규제를 각각 더 우려한다고 답했다. 제프 파인(Jeff Fine) 골드만삭스 대체투자사업부 얼터너티브 캐피탈 포메이션 글로벌 공동 총괄은 "심지어 지난 2 년 간 악재에 시달렸던 부동산에도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면서 "작년에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때문에 거시경제 리스크가 LP 의 최대 관심사였는데, 올해는 높은 밸류에이션과 거래물량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는 "설문조사 참가자들은 거시경제가 비교적 안정적이면서도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자산군에 걸쳐 낙관론이 확산하고 있다"며 "LP 와 GP는 모두 코로나19 팬데믹 후 정상화 과정이 아직 진행 중이지만 사모시장의 장기적 성장 궤도는 여전히 견고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올해 대체투자 시장을 지난해보다 더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댄 머피(Dan Murphy) 대체투자 포트폴리오 설루션 부문 총괄은 "지난해 설문조사는 '현행 고수'의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대체자산군 전반에서 낙관론이 힘을 받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사모신용(크레딧), 인프라, 세컨더리, 코인베스트먼트(공동투자) 등 사모시장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시장 전체 자산군에 걸쳐 투자전망이 밝은 가운데 LP보다 GP가 더 낙관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사이클을 거치면서 계속 성과를 낼 것이란 기대로 사모펀드와 인프라에도 적극적인 투자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LP는 크레딧 부문 투자도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올해 LP는 크레딧과 인프라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절반 정도는 세컨더리와 공동투자에 참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LP 중 39%는 자금집행을 확대하고 있으며, 21%만이 축소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LP의 투자는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LP는 크레딧(34%), 사모펀드(18%), 부동산(10%) 및 인프라(10%)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출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GP 세 곳 중 한 곳은 포트폴리오 기업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혹은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인해 LP의 투자금 회수가 늦춰지고 있어, GP가 밸류에이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포트폴리오 기업의 매출 성장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GP 중 63%는 기존 영업 및 마케팅 채널, 52%는 새로운 채널을 통한 매출 신장으로 기업가치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 외 가치창출 방안으로 GP는 M&A(45%), 기술 또는 효율성 제고를 통한 수익률 향상(35%), 신상품 또는 서비스 추가(27%)라고 답했다. 올해 사모시장에서 최대 화두는 유동성으로 조사됐다. GP는 시장과의 밸류에이션 격차로 투자금 회수가 지연되자 유동성 마련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LP는 기존 유동성 관리 외에도 추가적인 자금 확보를 위해 세컨더리 시장에도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금 회수를 위해 전략적 자산매각이 가장 선호(81%)되는 방안으로 꼽혔다. 이어 스폰서 매각(70%) 순이다. 기업공개(IPO)는 상대적으로 덜 고려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임시 유동성 확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데, 배당 리캡(54%)이 가장 인기 있으며, 컨티뉴에이션 펀드(52%)와 우선주(44%) 순서로 나타났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2024-10-22 08:04:16[파이낸셜뉴스] 현재 국제질서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성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국제질서 규정도 쉽지 않다. 냉전기처럼 블록(Bloc)이라는 세력권을 주도하는 초강대국(Superpower)이 현재는 부재하고, 탈냉전기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사실상 패권지위를 자랑하던 당시의 미국은 2024년 현재의 미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점에서 현 국제질서는 단극체제도 양극체제도 아니며 그렇다고 러시아와 북한이 목표로 설정한 다극체제와도 거리가 멀다. 이런 점에서 현재는 과도기적 국제체제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고 이것은 신냉전 질서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신냉전의 또 다른 특징은 특정 지역의 지정학이 그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의 지정학에 연결되고 심지어 융합되는 기제가 있다는 점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는 인도-태평양 지정학 관리에 치중하던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킬 뿐 아니라 한국 등 인도-태평양지역 국가의 안보 및 경제 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지정학적 융합의 가장 큰 추동력을 제공한 계기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우 전쟁은 단지 두 국가만의 전쟁이 아니다. 러-우전쟁은 주권이라는 확고한 국제원칙을 무너뜨린 러시아의 현상변경시도에 대처하는 차원의 국제문제 성격이 있다. 따라서 유라시아 지정학에 인도-태평양 국가 등 다른 지정학적 공간의 행위자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 비살상 무기 지원 등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정학적 융합이 북한과 러시아라는 두 왕따의 불법적 밀착으로 실체화되면서 단지 담론을 넘어 정책화를 통해 대처해야 하는 상황으로 붉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설정하며 양국관계를 신동맹으로 격상했는데 최근에는 부상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이 10월 18일 국가정보원의 확인으로 실체화되었다. 1500명의 북한군이 이미 러시아에서 도착해 전장 투입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 규모가 1만2000명에 달한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 세계의 지정학적 공간을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멀리 유라시아 지정학적 전선에 참전한다는 사실은 유라시아와 인도-태평양의 지정학적 공간을 융합시키고, 유럽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선을 융합시키는 강력한 기제를 추동시킨다. 따라서 변화하는 지정학적 융합 기제를 냉철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단순히 외교적 주도권 뿐 아니라 전략적·지정학적 주도권마저 잠식될 수 있다. 어느 일방이 지정학적 전선을 융합시켜 세력화하는데 다른 일방이 지정학적 공간을 분리한 채로 방치한다면 융합된 지정학의 공간은 전자의 차지가 되고 만다. 지정학적 융합 기제를 정책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조치가 가능할까? 첫째, 북한군 파병의 불법성을 국제사회 차원에서 명확히하는 성격 규정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기에 그 자체로 불법이다. 따라서 이런 불법행위를 북한이 도와준다는 것은 당연히 불법행위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강도 제재를 받는 북한과 러시아가 불법밀칙을 통해 규칙기반 질서를 와해하려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현상변경 행위다. 문제는 러시아가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이러한 성격 규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장 유사입장국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규탄성명 등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둘째, 북한군 파병 현황, 전장 투입 상황 등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하는 다국적 정보팀을 구성하여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러-우전쟁이 북한과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하도록 상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과 러시아가 적용하려고 하는 회색지대전략이 가동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파병된 북한군이 가짜 신분증을 받아 지역 주민처럼 위장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국정원의 언급을 보면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시 적용한 회색지대전을 북한군 파병 활동에 일부 적용하려는 시도한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다국적 정보팀을 매개로 서로 간 정보를 공유·축적하고 이를 외부에 알려 회색지대전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유사입장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나 강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북한군이 파병된 상태에서 유럽 전체를 대신해 대리전 성격으로 홀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그대로 유지시킬지 여부가 도마에 오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당장 유럽의 파병 혹은 추가 무기지원 등의 후속조치가 없으면 북한군 파병을 문제 인식없이 수용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에 정책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러북 신조약 체결 후 한국은 러시아에 레드라인을 넘지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군 파병이 그 레드라인을 넘은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유라시아 전장에 북한군이 투입된 상황에서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현 상태를 유지한다면 북한의 행태가 불법이 아닌 것처럼 묵인해주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이 레드라인을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의 도래는 공이 한국에 넘어왔다는 의미이므로 대러시아 레버리지 제고의 기회로 삼는 지략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가 대리전 전장이 되지 않도록 원천 차단하는 지략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군 파병은 향후 러시아의 한반도 파병 가능성도 높이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이 당장 이 문제에 정교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유사시 한반도가 북한과 러시아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리전 지대로 전락하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과 유사입장국 공조 플랫폼을 전격 가동해 대처에 나서야 할 결정적 모멘텀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때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10-21 12:07:03[파이낸셜뉴스] 끊이지 않는 지정학 리스크가 수출기업들의 경영 위험이 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17일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수출제조업 448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 영향과 대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중 갈등·러우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영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66.3%를 차지했다. 그중 23.7%는 ‘사업 경쟁력 저하 수준’, 3.1%는 ‘사업 존속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응답했다. 수출기업들 ‘긴축경영’(57%) 우선 고려... ‘대체시장 개척’(52%), ‘공급망 다변화’(37%) 등 모색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영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응답한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 유형을 조사한 결과, ‘환율 변동·결제 지연 등 금융 리스크’(43.1%)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물류 차질 및 물류비 증가’(37.3%)가 뒤를 이었다. 이외에 ‘해외시장 접근제한·매출 감소’(32.9%), ‘에너지·원자재 조달 비용 증가’(30.5%), ‘원자재 수급 문제로 인한 생산 차질’(24.1%), ‘현지 사업 중단 및 투자 감소’(8.1%) 순으로 실제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주요 교역국별로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중국 교역기업의 경우 ‘해외시장 접근 제한 및 매출 감소’가 30.0%로 가장 많았다. 미·중 갈등으로 대중국 수출이 대폭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 러시아 대상 수출입 기업들은 모두 ‘환율 변동·결제 지연 등 금융 리스크’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미국 30.2%, 러시아 54.5%), 특히 러·우 전쟁 발발 당시 해당국과 거래하고 있던 기업들의 수출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금융제재로 외화 송금이 중단되는 피해가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서 EU 및 중동으로 수출입하는 기업들은 ‘물류 차질 및 물류비 증가’를 피해 유형으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EU 32.5%, 중동 38.0%). 해당 기업들의 경우 중동전쟁 이후 홍해 운항을 중단하고 남아프리카로 우회 운항을 시작하면서 물류비 부담이 커졌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묻는 말엔 40.2%의 기업들이 ‘지금 수준의 영향이 지속될 것’이라고 답했다. 상의, “새로운 기업부담 규제 없애고, 핵심 원부자재에 대한 공급망 안정화대책 필요” 대한상의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규제 정책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출 증가세가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가운데, 향후 지정학 리스크가 더욱 심화하면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기업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전략산업 정책 강화에 대응해 첨단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 존재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앞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무엇인지 식별하고, 이에 대한 경고를 우리 수출 기업의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공급망 훼손이 기업들의 생산 절벽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핵심 원부자재에 대한 대체 조달 시장 확보 및 국산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시 단기적으로는 유가·물류비 상승으로 피해를 보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수출 바우처 등 정책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민관 협력을 통해 자원개발을 주도하고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 안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4-10-17 10:35:25[파이낸셜뉴스] 세계 경제가 지정학적 위협을 받고 있으며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고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이 경고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CNN과 폭스뉴스 등 미 언론들은 다이먼 CEO가 JP모건의 3·4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공개한 보도 자료에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하마스·헤즈볼라 전쟁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것이 단기적으로 경제에, 장기적으로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다이먼은 지난 1년여간 세계 지정학적 불안이 글로벌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며 심각성을 경고해왔다. 다이먼은 미국 경제에 대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고 침체를 피했지만 대규모 재정 적자, 인플라 확충, 무역 구조 재조정, 세계 재무장화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상의 결과를 기대하면서도 어떠한 환경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이먼은 미국 경제 전망이 일부 불투명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회복력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올해 미국 연방 재정 부채가 35조달러를 넘은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으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빠르게 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이먼은 그동안 미국 경제가 예산 부족으로 인한 사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올해초에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상승) 가능성을 가장 경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발표한 JP모건의 3·4분기(7~9월) 실적에서 순익이 전년 동기비 2% 떨어졌으나 주가는 11일 오전 거래에서 4.5% 상승했으며 올해 현재까지 약 30% 높아졌다. 이번 어닝콜은 11월5일 미국 대선 이전 마지막으로 다이먼은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대선 관련 언급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차기 행정부 입각설에 대해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현재 하는 일에 대한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24-10-13 12:27:31[파이낸셜뉴스] 최근 글로벌 공급망 내에 지정학적 블록화·지역화가 나타나면서 2010년대 들어 시작된 상품교역 증가세 둔화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데 반해 서비스 교역은 증가세를 유지하는 등 교역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향후 첨단 제조업 측면에서 기술 우위를 지키고 수입 공급망 안정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27일 한국은행은 ‘BoK 이슈노트: 글로벌 공급망으로 본 우리경제 구조변화와 정책대응’을 통해 미래 공급망 변화 요인과 한국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이같이 밝혔다. 한은에 따르면, 앞으로 △지정학적 긴장 △AI 주도 디지털 혁신 △서비스 교역 확대 △기후변화 대응 등의 요인이 미래 공급망의 모습을 형성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참여한 우리나라는 이러한 공급망 변화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공급망 관점에서 우리나라 경제는 △생산구조가 제조업에 치중돼 있고 △수출의존도가 높으며 △서비스 수출은 높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세가 더딘 모습인 데다가 △일부 신산업 중심으로 원자재 수입 안정성이 요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산업별로 보면, IT제조업(반도체 등) 공급망에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전방(upstream)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0년대 이후 부가가치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공급망 내 중요성이 더욱 높아져 현재 중국, 미국 다음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다만 2018년경부터는 IT제조업 공급망에서 한·중 생산구조가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에는 하방요인으로, 중국의 대한국 수출에는 상방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IT제조업의 대중 수출연계생산는 지난 2018년 이후 생산구조적으로 급격히 위축된 반면 같은 시기 중국의 대한국 수출연계생산은 과거보다 빠르게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 IT제조업의 중간재 수입의존도가 정체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글로벌 IT제조업에 투입되는 중국산 중간재의 비중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IT제조업의 대중 연계성 약화도 이같은 중국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수출연계생산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여타 주요국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내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전기차 전환과 함께 향후 자동차 산업의 지위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전기차의 핵심 기능이 될 자율주행 시스템과 관련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화웨이가 시장을 선점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련 광물 및 소재의 공급망이 취약하고, 중국과의 경쟁도 치열하므로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노력과 함께, 배터리 제조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나아가 미래의 공급망은 중간재 상품에 비해 중간재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공급망 변화와 우리 경제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산업 전략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이아랑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팀장은 "첨단제조업에서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국제적인 전략적 협력을 통한 수입 공급망 안정성 강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서비스 수출 확대 전략은 제조업 내재 서비스와 디지털 서비스라는 투트랙(two-track)으로 전개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급망으로의 전환도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공급망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도 제시됐다. 먼저 반도체 산업에서 초격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국제 R&D협력체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으며 배터리·전기차 산업의 경우 수입선 다변화, 핵심광물 비축을 다방면으로 강화하는 한편, ESG 기준에 맞춰 수입국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팀장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내수와 수출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에서 기술 간 융합을 저해하는 업종별 구분에 근거한 규제를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2024-09-27 11:16:15[파이낸셜뉴스] 인공지능(AI) 붐과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반도체 시장이 2차 공급 대란을 겪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겪었던 심각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이제 AI용 반도체 수요 폭증과 지정학적 갈등 속에 다시 반도체 부족 사태를 부를 것이란 예상이다.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25일(현지시간) AI용 반도체와 AI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등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 세계가 2차 반도체 공급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했다. 팬데믹 당시 반도체 부족으로 PC부터 가전제품, 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 현장 곳곳에서 생산 차질이 빚어졌던 것처럼 이번에는 AI 관련 수요 폭증 속에 반도체가 부족해질 것이란 예상이다. AI 붐 미국 빅테크 업체들은 주로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반도체(GPU)를 시장에서 빨아들이고 있다. 현금이 풍부한 빅테크들은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고가의 엔비디아 GPU를 싹쓸이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 같은 AI 모델 훈련에 필수적인 데이터센터 구축에 이 GPU가 투입된다. 퀄컴 반도체도 인기다. 퀄컴 반도체는 온라인에서 AI를 구동하는데 필요한 엔비디아 GPU와 달리 오프라인에서도 AI가 돌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AI 스마트폰에 퀄컴 반도체가 들어간다. CNBC에 따르면 베인은 이날 보고서에서 GPU와 AI 소비자 가전 수요로 인해 반도체 부족 사태가 촉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인의 미국 기술관행부문 책임자 앤 호커는 CNBC에 “GPU 수요 급증세가 반도체 가치 사슬의 특정 부문에 공급 부족을 촉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커는 “GPU 수요 증가에 AI가 탑재된 전자기기 물결이 더해지면 PC 업그레이드 사이클이 가속화된다”면서 “반도체 공급에 더 광범위한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요 20% 이상 증가하면 시장 균형 깨져 베인은 AI용 기기 수요가 얼마나 증가할지 분야별로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수요 증가세가 시장 수급 균형을 깰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베인은 반도체 공급망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면서 “수요가 약 20%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하면 시장 균형을 뒤흔들 가능성이 높고, 결국 반도체 공급 부족을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최종 시장 전반에서 AI 폭발이 현실화하면 시장 수급은 쉽사리 이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공급망에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공급망은 각 단계에서 병목현상을 유발할 수 있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일례로 엔비디아는 강력한 GPU를 설계하지만 이는 주로 대만 TSMC에서 생산된다. TSMC가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네덜란드 ASML 등 세계 각국의 반도체 장비가 필요하다. 각 단계에서 공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나아가 첨단 반도체 대량생산은 오직 TSMC와 삼성전자만이 가능하다는 점도 공급 차질을 부를 수 있는 주된 배경 가운데 하나다. 지정학적 긴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정학적 요인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촉발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각국이 팬데믹 이후 반도체를 전략 기술로 보고 통제에 들어간 탓이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반도체에 온갖 규제를 가하고 있다. 또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반도체 산업을 다시 유치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베인은 “지정학적 긴장, 수출 규제, 다국적 기업들의 중국 공급망 이탈 지속이 반도체 공급에 심각한 위험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베인은 이어 “공장 건설 지연, 소재 부족, 기타 예측 불가능한 요인들이 반도체 공급망에 병목 구간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2024-09-26 01:41:34[파이낸셜뉴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서울 용산구 로카우스 호텔에서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국가전략'을 주제로 '제63회 KIDA 국방포럼'을 25일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포럼에선 김정수 KIDA 원장이 개회인사를 하고 난 뒤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연설 및 질의응답을 할 예정이다. KIDA는 "이번 포럼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국방, 외교, 안보, 경제 등 폭넓은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조망해보기 위해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9-24 14:20:11[파이낸셜뉴스] 법무법인 세종은 '격변의 중동: 지정학, 리스크 관리 및 비즈니스'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세미나는 오는 30일 서울 종로구 D타워의 세종 23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된다. 세종 해외규제팀은 세미나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의 지정학적 상황을 비롯한 중동지역 전반의 비즈니스 환경을 살펴보고, 국제 관계 및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에 유익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중동지역에 대해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박준용 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와 지난 5월 세종에 합류한 윤강현 전 주이란대사 및 외교부 관계자 등 전현직 외교관들이 발표자로 참여한다. 우선 외교부 관계자가 '중동 지정학 및 비즈니스의 최신 동향'을 주제로 중동 지역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어 무슬림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라고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대해서는 박준용 전 사우디 대사와 윤강현 고문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각 나라의 정세, 비즈니스 환경과 기회 등을 설명한다.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거쳐 지난해 3월 세종에 합류한 신상명 변호사(변호사시험 1회)는 '중동 법률, 시장 동향 및 비즈니스 기회'를 주제로 발표한다. 신 변호사는 프로젝트 기반의 국제 금융·에너지 거래 등 해외 법무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지막으로 세종 해외규제팀을 이끌고 있는 이용우 변호사(사법연수원 28기)가 패널 토론 및 세미나 참석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오종한 세종 대표변호사는 "중동은 다양한 부문에서 산업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유망 시장이자 전략적 요충지"라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중동 지역의 최신 정보와 비즈니스 기회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2024-08-21 14:39:32지난달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대결 고착화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부의 '미국 편향 가치외교'가 우리 안보에 치명적인 러북 군사동맹을 낳았고, 북중러 진영화를 고착시켰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중간국'인 한국은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말고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이 최선이란 논리다. 하지만 이번 러북 밀착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탄약과 포탄이 동이 난 러시아와 국제적 고립에 처한 북한의 단기적 이해가 맞은 '일시적 결탁'에 가깝다. 내구성을 가진 군사동맹으로 보기 어렵다. 또 '반미'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러북 밀착으로 중국은 오히려 북중러 연대에서 멀어지고 있다. 미중 경쟁구도에서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켜 힘을 빼는 카드로 러시아와 북한을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하고 활용하려는 중국에 이들의 돌출적 행동은 전략적 이익이 아니라 부담이다. 현재의 미중 경쟁은 과거 냉전기 미소 진영대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과 소련이 각자 독자적 경제블록으로 분리되어 대결하던 냉전기와 달리 현재 미중 양국은 무역, 투자 및 제조업 공급망 등을 통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과거 소련의 전략은 서방진영과 외교적·경제적 연계를 차단·최소하고 독자적 경제권을 구축하여 서방과 체제경쟁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세계 경제체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복잡한 공급망과 네트워크로 얽혀 있는 중국의 전략은 글로벌 경제에서 파이를 더욱 키워 미국에 대적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다. 현재 미중전략 국면에서 종합 국력이 열세인 중국이 러북과 진영을 구축해서 얻을 이익은 거의 없다. 반미진영 구축으로 미국과 선명한 대립전선이 그어지면 중국의 전략적 입지는 커지기보다 오히려 더 축소된다. 미국과 서방이 더욱 강력한 무역제재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려 할 수도 있고, 현재는 북한의 위협만을 타깃으로 삼고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반중 안보연대로 진화될 수도 있다. 다수의 국가들이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회색지대에 남아있는 것이 반미진영 구축보다 글로벌 질서의 현상변경을 지향하는 중국에 훨씬 더 유리하다. 아세안 국가들이 '지정학적 중간국'으로 행동하며 보인 애매모호한 태도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적으로 장악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다. 한국도 중국에는 미중경쟁 구도에서 반드시 끌어당기거나 최소한 중립화시켜야 할 '지정학적 중간국'이다.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한국이 노골적인 친중국가가 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틀 내에서라도 미중 간 등거리를 유지하도록 한국을 압박하거나 유도하는 것이 중국의 중요한 전략목표이다. 최근 인도의 외교적 행보를 보면, 미중 진영대결론을 근거로 미중 간 등거리 외교가 우리의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는 주장이 과연 우리의 국익과 전략적 활로를 위한 최선의 방책인지 의문이 든다. 인도 모디 총리는 이달 초 러시아를 방문, 푸틴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주적이 된 러시아와 끈끈한 연대를 과시했다. 단순한 이분법적 진영논리로 보면 쿼드(Quad) 등을 통해 미국과 전략적 협력을 대폭 심화하고 있는 인도의 이러한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남아시아에서 점차 세력확장을 하며 히말라야 국경까지 넘보고 있는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인도로서는 중국에 기우는 러시아를 견인하고 동시에 미국의 대중견제에 동참하는 것이 결코 모순된 전략이 아니다. 고도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복잡한 산업공급망으로 얽혀 있는 미중 전략경쟁의 지정학적 단층선은 친중 대 친미의 이분법적 진영대결로 수렴되지 않는다. 우리의 국가정체성과 국익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중심에 놓고 외교적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현실과 괴리된 진영대결론을 근거로 우리의 좌표를 미중 사이에 끼여 있는 '지정학적 중간국'으로 규정하며 전략적 상상력과 외교적 선택의 폭을 스스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2024-07-25 18:13:46[파이낸셜뉴스] 일각에서는 미국이 하드파워 측면에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패권국 지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규정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여전히 미국은 군사력, 경제력에서 부동의 1위다. 사실 패권지위 도전의 직접적인 추동체는 미국의 쇠퇴가 아니라 중국의 빠른 추격이다. 다시 말해 패권국 미국과 도전국 중국의 힘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 간의 힘의 격차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심지어 힘이 전이되는 상황까지 진행될까?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피크 차이나(Peak China)’ 담론이 현실화된다면 힘의 격차 축소는커녕 다시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드파워 측면에서 미국이 도전국에 패권의 지위를 내어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이 상당 기간 그 위상을 유지할 가능성도 시나리오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도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는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을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하드파워 약화’가 아니라 ‘지정학적 위기’가 미국의 패권 지위 유지에 발목을 잡고 있다. 복합위기 시대에 지정학적 위기는 특정 국가만의 도전이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는 도전이다. 그런데 이를 넘어 지정학적 위기가 미국의 소프트파워 위상을 흔들면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수호에도 적신호가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는 미국을 “이중 잣대 딜레마(Double Standard Dilemma)”로 내몰고 있다. 이 딜레마의 요체는 본질적으로 ‘동맹’을 지키려다 자칫 ‘국제질서’를 지키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는 상황이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행동 및 무차별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지지를 이어가고 있다. 가자지구 남단에 위치한 라파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미국은 ‘라파 공세’가 자신이 정한 레드라인(Redline)을 넘어서지 않은 것이라며 이스라엘을 우회적으로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정한 레드라인은 ‘라파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라는 주장을 통해 사실상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입장을 봐주는 듯한 ‘높은’ 레드라인 설정은 미국이 두 개의 전장에서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감행하면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규탄을 이어가면서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무차별적 공격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취하는 모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미국의 소프트파워을 심하게 훼손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키는 책임국가로서 미국에 대한 신인도를 약화시키고 나아가 가치연대를 지향하는 유사입장국 협력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이중 잣대는 수정주의 국가들의 규칙 파괴 행위 정당화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의 대목이다. 한편 ‘이중 잣대 딜레마’는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이스라엘 경도로 인해서 미국 내에서 시위가 확산하는 것은 이중 잣대 딜레마가 사회적 혼란까지 초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중 잣대 딜레마’ 해소를 위해서는 일방적인 동맹 두둔이 아닌 예외 없는 규칙·원칙 준수라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원칙이 상대방이 누구이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하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이는 인류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수호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 그 자체에서 처방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 요소다. 그 처방의 근원은 미국이 민주주의 선도 국가라는 점에 있다. 즉 그 딜레마를 야기시킨 국가의 정치제도라는 내부에서 ‘이중 잣대 딜레마’ 완화 해법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문제를 바로잡는 복원력에서 탁월하다. 지난 6월 4일 미 하원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제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행보는 ‘이중 잣대 딜레마’를 이어가는 행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 작동한다. 마찬가지로 제도와 절차에 기반한 정치 공식도 작동한다. 이 법안이 현실화되려면 상원과 대통령이라는 다음 단계를 모두 통과되어야 하는 프로세스는 문제를 바로잡는 기회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정치공식의 선물이다. 이런 점에서 불합리한 상황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정치제도로서의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을 보여줄 시점이다. 이는 결국 ‘이중 잣대 딜레마’를 완화시키고 나아가 소프트파워 쇠락의 역학도 막아줄 것이다. 지정학적 위기가 패권국 미국을 흔들고 있지만 이를 극복할 기제를 미국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진행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6-19 1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