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3중추돌 사고.. 일가족 5명 모두 숨지고 2명 부상 전남 화순 3중추돌 사고 / 출처=MBC 뉴스화면 캡처 전남 화순에서 3중 추돌사고로 일가족 5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일 오후 6시께 전남 화순군 이양면 매정리 쌍봉교차로 부근에서 승용차와 사설 구급차, 25톤 탱크로리차가 잇따라 추돌했다. 화순 차량 3중추돌 사고로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일가족 5명은 모두 숨졌다. 일가족은 고흥에 있던 외가에 다녀오던 길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에는 46살 정 모 씨 부부외에도 13살, 10살, 6살인 세 아들들도 타고 있어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또 구급차에 탑승 중이던 구급요원 2명도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현재 경찰은 사고 당시 비가 내리고 있어 도로면이 미끄러웠던 점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하고 있다. onnews@fnnews.com 온라인뉴스팀
2013-11-10 11:13:229일 오전 2시 51분께 경기도 오산시 오산동 롯데마트사거리 도로에서 서모(31)씨가 몰던 그랜저승용차가 신호대기 중인 양모(47·여)씨의 SM3 승용차 후미를 들이받았다. 사고 충격으로 양씨의 SM3 앞에 서 있던 투싼 등 또 다른 승용차 3대가 연달아 추돌하면서 5중 추돌로 이어졌다. 서씨와 동승자, 양씨 등 3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서씨가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khchoi@fnnews.com 최경환기자
2014-09-09 20:21:54"스카우트 정신인 '도전과 개척정신' '협동과 화합'의 의식을 청소년들에게 키워주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임을 맡은 것은 지금까지 쌓였을지도 모르는 허물을 녹여줄 만큼의 봉사 기회를 신이 저에게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스카우트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이찬희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59)의 말이다. 이 총재는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을 거쳐 한국기자협회 자문위원장, 세계한인무역협회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등을 두루 맡으며 '소통과 화합의 아이콘'으로 인식돼 왔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2명. 올해는 0.6명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향후 국가 운영의 중추적 역할로 자라날 청소년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고, 사교육 경쟁 또한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과 협력보다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상황이다. '청소년다운 청소년이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시대가 지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재는 올 초 연맹의 제안을 받고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 2월부터 총재 역할을 수행 중이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다양한 이력에 비춰 뜻밖의 행보라는 의견이 있다. ▲갑자기 총재가 된 것으로 오해들 하시는데 초·중학교 시절 보이스카우트로 활동한 평생회원이고, 직전까지 부총재이자 정관헌장개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역대 총재들은 백낙준, 김종필, 김석원 등을 비롯해 정·재계의 쟁쟁한 분들이다. 이들보다 나이나 경력 면에서 한참 부족한 사람이 총재가 되리라고는 정말 예상치 못했다. 가톨릭 신자인데 항상 신은 공평하다고 믿고 있다. 과분한 영광만큼 많은 수고를 하게 만드신 것이라고 믿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진 일들을 해왔다. 이번에도 그럴 마음이다. ―구체적인 경위는. ▲직전 총재이셨던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 2023년에 새만금에서 세계잼버리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북한법을 연구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입장에서 항상 탈북민 자녀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이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우정을 나누는 경험을 하면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고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 사업도 추진하고 세계잼버리의 다양한 법률 문제를 조언할 필요가 있으니 부총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현재 맡은 일이 적지 않은 데다가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서 완강하게 고사하였으나 위기에 처한 조직에 소통과 화합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니 헌신해달라는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다. 직전까지 총재선거가 치열했는데, 이번에는 총재에게 강력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단독추대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그러고 보면 관운도 있는 것 같다. ―지난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에 대한 논란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이미 1991년 강원 고성 세계잼버리를 개최하면서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다. 또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국격을 높여 왔다. 하지만 새만금 세계잼버리 실패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 부재다. 스카우트에 대한 이해나 대규모 국제행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물론 경험 많은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동조직위원장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대선으로 여야가 바뀌고 재선 의원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이끄는 총재가 몇 년의 준비기간에 조직위원장으로 참여도 못하다가 8월에 잼버리가 시작되는데 그해 2월에서야 5명의 공동조직위원장 중 1인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이제는 소모적인 책임소재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국제적으로 추락한 대한민국과 스카우트연맹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부총재로 활동하면서 열정과 헌신으로 묵묵히 자원봉사 활동하는 스카우트 지도자들을 보면서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 대원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희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두 가지가 이제는 편히 살아도 될 만큼 정신없이 살아온 인생에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든 계기다. ―그렇다면 당면 과제와 향후 계획은. ▲가장 큰 문제는 새로 가입해야 하는 청소년 대원 감소다.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 동안 신입 대원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입시지옥과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감소, 새만금 세계잼버리의 실패로 인한 부정적인 시각이 생긴 것도 문제다. 또 국가나 자치단체의 예산 지원도 전혀 없는 데다 학교에서 지도자로서 청소년 대원을 육성해야 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가산점을 비롯한 지원제도가 전혀 없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때문에 스카우트 활동이 바닥을 쳤다면 이제는 위로 떠오를 시간이다. 행사는 실패했지만 새만금 세계잼버리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스카우트가 있고, 많은 청소년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했다. 현직 대통령이 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이고, 국회 안에도 스카우트의원연맹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는 전국의 수많은 지도자의 열정과 헌신이 있다. 총재가 된 후 기업이나 자치단체에 각종 후원을 요청하러 다니는데 생각보다 훨씬 호응이 좋아서 큰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현재 방만한 스카우트연맹의 인적·물적 조직을 정비하고 청소년을 육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총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청소년을 더 많이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최근 청소년심리상담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스카우트연맹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주춧돌을 놓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끌어나갈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청소년을 육성하는 데 헌신했다는 총재 할아버지로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소망이다. ―스카우트 활동이 청소년에게 주는 영향은. ▲인생관을 형성할 어린 시절에 대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키운다는 것은 그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도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한국 청소년들은 콘크리트로 된 학교와 학원을 셔틀처럼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이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적 지상주의의 압박 속에서 제대로 인성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병폐 때문이다.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이다. 암기나 교과서 위주의 지식에서 벗어나 창조와 융합을 하는 인재가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진 청소년 양성이 필요하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자란 청소년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미래의 대한민국에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정치적 유혹도 있었을 텐데. ▲솔직히 말하면 지난 총선에서도 여러 진영에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전국 조직인 대한변호사협회장과 전 세계 70개국 148개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조직인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정치권에서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치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해 완곡하게 고사했다. 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한변협회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정치권에 발을 담그는 것은 회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 맡고 있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나 SBS시청자위원회, 한국스카우트연맹 모두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리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소개한다면. ▲한국스카우트연맹은 1922년 창립된 국내 최고, 최대의 청소년 단체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의 하나로 청소년을 계몽하자는 취지로 조선소년군과 소년척후단이 모태가 되어 설립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1억명의 지도자와 대원이 가입돼 있다. 우리나라도 최규하 전 대통령 때까지는 현직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했고, 2023년 다시 보이스카우트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고 있다. 당초 보이스카우트로 출발했으나 2001년부터 여성들도 참여하면서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현재는 남녀 대원의 비율이 비슷하다. 18개 지방연맹과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4개의 특수연맹이 있는데, 자원봉사를 하는 지도자와 연령에 따라 비버 스카우트, 컵 스카우트, 스카우트, 벤처 스카우트로 나눠진다. 올해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이사회에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김영미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과 부장판사 출신인 양재호 김앤장 변호사 등이 합류했다. 양 변호사는 유엔대표부에서 근무하는 등 글로벌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 이찬희 총재 약력 △서울 용문고등학교 △연세대 법대 학사·석사·박사과정 수료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사법연수원 30기 수료 △제94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S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 △세계한인무역협회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 △한국기자협회 자문위원장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현)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4-05-19 18:34:05[파이낸셜뉴스] “스카우트 정신인 ‘도전과 개척정신’, ‘협동과 화합’의 의식을 청소년들에게 키워주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임을 맡은 것은 지금까지 쌓였을지도 모르는 허물을 녹여줄 만큼의 봉사 기회를 신이 저에게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동 한국스카우트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이찬희 한국스카우트연명 총재(59)의 말이다. 이 총재는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을 거쳐 한국기자협회 자문위원장, 세계한인무역협회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등을 두루 맡으며 ‘소통과 화합의 아이콘’으로 인식돼 왔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2명. 올해는 0.6명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향후 국가 운영의 중추적 역할로 자라날 청소년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고, 사교육 경쟁 또한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과 협력 보다는 경쟁에서의 승리가 미덕이 되는 상황이다. ‘청소년다운 청소년이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시대가 지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재는 올초 연맹의 제안을 받고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 2월부터 총재 역할을 수행중이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다양한 이력에 비춰 뜻밖의 행보라는 의견이 있다. ▲갑자기 총재가 된 것으로 오해들 하시는데 초·중학교 시절 보이스카우트로 활동한 평생회원이고, 직전까지 부총재이자 정관헌장개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역대 총재들은 백낙준, 김종필, 김석원 등을 비롯해 정·재계의 쟁쟁한 분들이다. 이들의 나이나 경력 면에서 한참 부족한 사람이 총재가 되리라고는 정말 예상치 못했다. 가톨릭 신자인데 항상 신은 공평하다고 믿고 있다. 과분한 영광만큼 많은 수고를 하게 만드신 것이라고 믿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진 일들을 해왔다. 이번에도 그럴 마음이다. -구체적인 경위를 말해 달라. ▲직전 총재이셨던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 2023년에 새만금에서 세계잼버리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북한법을 연구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입장에서 항상 탈북민 자녀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이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우정을 나누는 경험을 하면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고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 사업도 추진하고 세계잼버리의 다양한 법률문제를 조언할 필요가 있으니, 부총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현재 맡은 일이 적지 않은 데다가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서 완강하게 고사하였으나 위기에 처한 조직에 소통과 화합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니 헌신해달라는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다. 직전까지 총재 선거가 치열했는데, 이번에는 총재에게 강력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단독 추대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그러고 보면, 관운도 있는 것 같다. -지난 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에 대한 논란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이미 1991년 강원도 고성 세계잼버리를 개최하면서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다. 또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국격을 높여 왔다. 하지만 새만금세계잼버리 실패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 부재다. 스카우트에 대한 이해나 대규모 국제행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물론 경험 많은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동조직위원장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대선으로 여야가 바뀌고 재선 의원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잼버리에 가장 전문가인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이끄는 총재가 몇 년의 준비기간 동안 조직위원장으로 참여도 못 하다가 8월에 잼버리가 시작되는데 그해 2월에서야 5명의 공동조직위원장 중 1인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이제는 소모적인 책임소재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국제적으로 추락한 대한민국과 스카우트연맹의 위상을 회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부총재로 활동하면서 열정과 헌신으로 묵묵히 자원봉사 활동하는 스카우트 지도자들을 보면서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 대원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희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두 가지가 이제는 편히 살아도 될 만큼 정신없이 살아온 인생에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든 계기다. -그렇다면 당면 과제와 향후 계획은? ▲가장 큰 문제는 새로 가입해야 하는 청소년 대원 감소다.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 동안 신입 대원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입시지옥과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감소, 새만금세계잼버리의 실패로 인한 부정적인 시각이 생긴 것도 문제다. 또 국가나 자치단체의 예산지원도 전혀 없는 데다가, 학교에서 지도자로서 청소년 대원들을 육성해야 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가산점을 비롯한 지원제도가 전혀 없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때문에 스카우트 활동이 바닥을 쳤다면 이제는 위로 떠오를 시간이다. 행사는 실패했지만 새만금세계잼버리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스카우트가 있고, 많은 청소년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했다. 현직 대통령이 스카우트연맹의 명예총재이고, 국회 안에도 스카우트의원연맹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는 전국의 수많은 지도자의 열정과 헌신이 있다. 총재가 된 후 기업이나 자치단체에 각종 후원을 요청하러 다니는데 생각보다 훨씬 호응이 좋아서 큰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현재 방만한 스카우트연맹의 인적, 물적 조직을 정비하고 청소년들을 육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총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청소년을 더 많이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최근 청소년심리상담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한국스카우트연맹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주춧돌을 놓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끌어나갈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청소년들을 육성하는데 헌신했다는 총재 할아버지로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소망이다. - 스카우트 활동이 청소년들에게 주는 영향은 ▲인생관을 형성할 어린 시절에 대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키운다는 것은 그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도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한국 청소년들은 콘크리트로 된 학교와 학원을 셔틀처럼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이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적 지상주의의 압박 속에서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병폐 때문이다.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이다. 암기나 교과서 위주의 지식에서 벗어나 창조와 융합을 하는 인재가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진 청소년 양성이 필요하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자란 청소년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미래의 대한민국에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정치적 유혹도 있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총선에서도 여러 진영에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전국 조직인 대한변호사협회장과 전 세계 70개국 148개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조직인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정치권에서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치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해 완곡하게 고사했다. 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한변협회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정치권에 발을 담그는 것은 회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 맡고 있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나 SBS시청자위원회, 한국스카우트연맹 모두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리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소개한다면 ▲한국스카우트연맹은 1922년에 창립된 국내 최고, 최대의 청소년 단체다. 일제 치하 때 독립운동의 하나로 청소년을 계몽하자는 취지에서 조선소년군과 소년척후단이 모태가 되어 설립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1억 명의 지도자와 대원들이 가입돼 있다. 우리나라도 최규하 전 대통령 때까지는 현직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했고, 2023년에 다시 보이스카우트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고 있다. 그만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이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분야임을 설명하고 있다. 당초 보이스카우트로 출발했으나 2001년부터 여성들도 참여하면서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현재는 남녀 대원의 비율이 비슷한 수준이다. 18개의 지방연맹과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4개의 특수연맹이 있는데, 자원봉사를 하는 지도자들과 연령에 따라 비버 스카우트, 컵 스카우트, 스카우트, 벤처 스카우트로 나눠진다. 올해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이사회에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김영미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과 부장판사 출신인 양재호 김앤장 변호사 등이 합류했다. 양 변호사는 유엔 대표부에서 근무하는 등 글로벌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4-05-19 11:51:42[파이낸셜뉴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지난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 재계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조 명예회장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중시 경영...글로벌 소재 리딩기업 자리매김 조석래 명예회장은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 화학공학과 석사를 마치고 대학교수를 준비하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의 부름을 받고 1966년 효성의 모태인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건설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효성그룹 2대 회장으로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을 이끌며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섬유, 첨단소재, 중공업, 화학, 무역, 금융정보화기기 등 효성의 전 사업부문에서 한국을 넘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다. 조 명예회장은 기술 중시 경영을 펼치며, '경제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력에 있다'는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이는 효성그룹의 핵심 DNA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전의 토대가 됐다. 기술에 대한 집념으로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신기술 개발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이는 향후 효성그룹이 독자기술 기반으로 글로벌 소재 시장에서 리딩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조 명예회장은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1975년 효성중공업 설립을 주도하며 조홍제 창업주 회장 때부터 줄곧 강조해온 '산업입국'의 경영철학을 실현했다. 특히 '섬유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스판덱스는 조석래 명예회장이 축적기술이 없던 상태에서 '독자 개발'을 결정하고 연구개발을 직접 지시한 것이다. 효성은 1990년대 초 당시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보유하고 있던 스판덱스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타이어코드와 함께 오늘날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효성그룹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이후에도 소재산업에 대한 꿈을 이어가며 2011년에는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탄소섬유 역시 독자기술 개발에 성공해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육성해 왔다. 조 명예회장은 1990년대부터 중국의 성장세를 눈여겨 보고 '글로벌 시장에 대한 수출확대만이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으로 효성을 경쟁사들보다 한 발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켰다.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전력기기 등 주력사업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과 인도, 터키, 브라질 등에 이르기까지 현지에 생산공장을 만들어, 전세계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했다. 이를 기반으로 효성은 2000년 이후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2010년 이후 스판덱스 섬유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며 세계1위 위상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민간 외교부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까지 이끈 재계 큰별 조석래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와의 경제협력 강화에 기여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하며 민간 외교부문에서 한미FTA 체결에도 큰 공헌을 했다. 한미FTA 체결 당시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에 기여하고 대일 무역 역조 해소, 한일간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한일경제공동체 추진 등 한국 경제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앞장섰다. 조 명예회장은 2007~2010년까지 31·32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국제교류 활성화, 여성일자리 창출 및 일·가정 양성 확립 등에 기여했다. 특히 전경련 회장 재임 당시 "물고기가 연못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데 조약돌을 던지면 사라져버린다. 돈도 같은 성격이어서 상황이 불안하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기업의 투자 환경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조 명예회장은 한미재계협회장, 한일경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 경제외교 활성화를 견인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허례허식 없이 소탈한 경영인으로도 손 꼽혀왔다. 겉치레로 격식 차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고, 회장이라고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정에 홀로 움직였다. 중국에서 귀국하는 길에 마중 나온 임원들이 가방을 대신 들어주려고 하자, "내 가방은 내가 들 수 있고 당신들이 할 일은 이 가방에 전략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라고 한 일화도 유명하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삼남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이 있다. 장례는 효성그룹장으로 다음달 2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명예장례위원장을,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영결식은 4월 2일 오전 8시 열릴 예정이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2024-03-29 20:01:06지난 주말 우여곡절 끝에 100년 만에 복원한 광화문 월대를 다녀왔다. 월대를 복원하면서 전통 바닥돌인 박석을 깔지 않고, 황토를 발라놓은 게 마음에 걸렸다. 월대 안팎이 황토 일색이다.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황토는 주로 공원에 시공하는 범용 바닥재가 아닌가. 황토 포장의 품격과 격조가 문제다. 박석은 얇고 편평한 화강암 재질의 돌판이다. 두께는 보통 12㎝이고, 넓이는 구들장이나 빨래판의 두 배 정도다. 박석은 5대 궁의 월대와 안뜰, 종묘의 진입로와 정전의 월대 등에 쓰였다. 박석은 삐뚤빼뚤하고 울퉁불퉁하지만 불규칙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성이 뛰어난 우리 고유의 바닥돌이다. 강화도산이 유명하다. 우리는 광화문광장의 조성과 재구조화를 놓고 극심한 국론 분열을 겪었다. 반대론자들도 광장은 수용하되 월대 복원의 필요성은 의심했다. 월대 복원은 그만큼 논쟁적 사안이었다. 이제 찬반을 떠나 복원의 가치와 완전성에 의문이 생길 판이다.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한 월대의 권위와 전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도심의 중추 교통로인 세종대로와 율곡로~사직로를 틀어막은 뒤 월대 놓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그 난리를 친 지금까지의 사회적 비용과 공사 과정의 불편이 심사를 뒤틀리게 한다. 경복궁과 광화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맛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에 올라갔다. 역시나 주변 아스팔트 도로와 황토 콘크리트 속에서 월대의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20년 가까이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난리 블루스'를 쳤는가 싶을 정도다. 세계적인 건축가와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가가 인정한 월대와 박석의 미학은 이번 광화문 월대 복원 과정에서 철저하게 거부됐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세계문화유산 종묘를 찾은 그는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우주의 기운과 영감을 느낀 곳은 정전과 박석이 촘촘하게 깔린 월대였다. 파르테논 신전과 비견된 종묘의 장엄함이 바로 월대와 박석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박석에 대한 찬사를 읊었다. 일찍이 유 전 청장은 "그동안 박석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기능과 미학을 폄하해왔는데, 이것을 복권시키고 싶었어요. 수소문한 결과 강화에 박석광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채취해 2010년 8월 15일 경복궁 광화문 월대 복원에 사용하게 됐답니다. 박석의 부활이었지요"라고 말했었다. 박석이 다시 사망한 꼴이다. 15세기 세종실록에도 "돌을 채취하여 쌓고, 양쪽 곁에 난간석을 둘러야 하며, 강화도산 전돌로 바닥을 포장해야 한다"고 광화문 앞 월대 조성과 박석 사용을 요청하는 상소문이 등장한다. 광화문 월대를 복원한다기에 박석이 바닥돌로 쓰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가 월대와 박석에서 전통미를 느끼듯 경복궁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한국미를 느낄 것이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아름다운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이런 건축물이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한다"고 프랭크 게리가 말했듯.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려고 서울시 조직에 한양도성도감과를 만들 정도로 열성적이었지만 서두르다가 등재에 실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광장의 화룡점정인 광화문 월대를 제대로 복원할 기회를 잡았지만 조악한 불량품을 만드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 고유 전통미를 나타내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란 여덟 글자가 있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유감스럽지만 현재의 광화문 월대는 누추하고, 광화문광장은 미완성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고문
2023-10-25 18:28:48[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때는 조선 1800년(정조 24년) 음력 6월 10일. 정조의 머리와 등에 종기가 생겼다. 정조는 7년 전에도 종기가 났었는데, 그때도 내의원 어의들이 고치지 못했던 것을 피재길이라는 지방 의원이 고약을 올려 고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잠잠하던 종기가 다시 재발한 것이다. 정조의 종기에는 열감도 심했다. 두통과 함께 등쪽에서 열감이 오르는 것을 정조는 스스로 가슴 속의 화기(火氣) 때문이라고 여겼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대체로 나에게 생긴 열은 전적으로 가슴 속 화기가 오래 머물러 있어서 생긴 지병인데, 요즘 더 심해진 것은 과거의 억울함을 풀어 버리지 못한 것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가미소요산(加減逍遙散)을 복용하기를 청했다. 가미소요산은 간화(肝火)로 인한 분노를 잠재우는 처방이다. 정조는 일찍이 있었던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서 죽은 일 때문에 화가 쌓인 것이다. 사실 발열은 종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었지만, 평소에 화기가 치받쳐 오르는 증상이 있었기에 열감은 더욱더 심하게 나타났다. 음력 6월 21일, 발병 11일째. 정조의 증상은 날로 악화되었다. 정조는 정신까지 오락가락했다. 종기가 난 곳이 당기고 통증은 고통스러웠으며 오한발열이 있었고, 무엇보다 정신이 흐릿해져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6월 23일, 발병 13일째. 정조의 종기는 터진 곳에서 고름이 흘러나왔고 척추와 등에서부터 후두부 머리카락 난 부위까지 여러 개의 종기가 부어올랐다. 큰 것은 연적(硯滴)만 했다. 이것을 보면 종기가 상당히 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조의 열은 더욱 심해졌다. 종기에 있어 발열 증상은 세균감염에 의한 증상이 분명했다. 내의원에서는 기력이 쇠하기 때문에 경옥고(瓊玉膏)를 처방하고자 했지만, 정조는 경옥고에 들어간 인삼을 걱정했다. 일전에도 인삼이 들어간 처방을 복용하고 열로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력 6월 24일, 발병 14일째. 정조는 밤에 열이 너무 심하게 나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양력으로 치면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니 날이 습하고 더워서도 힘들었겠지만 열까지 나니 설상가상이었다. 정조는 일어나 앉아 신하들을 소접(召接)할 수도 없어 계속 누워만 있었다. 정조의 열은 수면 중에 특히 심했다. 정조는 열은 났다가 다시 낮아졌다가 하면서 다시 발열이 반복되는 이완열과 간헐열의 특징을 보였다. 종기에 의해서 흔하게 감염되는 흔한 균은 황색포도상구균인데, 이러한 열형은 세균에 의한 혈액감염인 패혈증을 의심할 수 있는 열형이다. 정조는 증세가 악화되자 연훈방(煙熏方)과 성전고(聖傳膏)를 들이라고 명하였다. 연훈방은 심환지가 추천한 자신의 친척인 심인에 의해서 고안된 처방이었다. 그러나 신하들은 연훈방 처방은 경면주사(鏡面朱砂)를 사용하고 성전고는 파두(巴豆) 등의 독약을 사용하므로 섣불리 시도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렸다. 그러나 정조는 내의원들의 실력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그래서 연훈방조차도 어의들의 여러 약이 효과가 없자 마침내 써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연훈방을 사용하고 나서 종기에서 흘러 내린 피고름이 몇 되가 되었다. 신하들은 피고름을 많이 쏟은 것은 종기의 근(根)이 녹은 것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다른 증상들은 여전했다. 음력 6월 25일, 발병 15일째. 정조는 이상하게 배가 부풀어 오르는 창만감을 느끼면서 갑자기 식욕을 느끼지 못했다. 피고름도 많이 쏟고 기력이 쇠해있는데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함을 의아하게 생각해서 내의원 신하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도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정조의 급격한 식욕부진은 아마도 연훈방에 의한 수은중독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수은중독은 식욕부진, 두통, 전신권태, 떨림, 불안 등의 정신이상 등이 나타난다. 수은이 중추신경계, 특히 시상하부의 식욕중추의 활성을 억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도 연훈방을 의심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전날 연훈방을 시술하는 동안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연훈방을 시술한 다음 날 정조는 “지금 이렇게 방문을 굳게 닫아 놓고 있으니 도리어 너무 답답하다.”라고 하기도 했다. 환기가 되지 않는 곳에서 연훈방을 시술했기에 호흡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은이 흡입되었을 것이다. 열은 더더욱 심해졌다. “열은 점점 더 견딜 수가 없다. 지금은 열을 다스릴 약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약을 의논하는 의관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어의 이시수가 몇 명을 언급하자, “탕제(湯劑)를 의논하여 정할 때 약성(藥性)을 잘 아는 의관이 전혀 없으니, 나라의 체모로 볼 때 또한 어찌 말이 되겠는가?”라고 하면서 어찌 자신의 열을 잡을 수 있는 의관이 없음을 탄식했다. 정조는 여전히 식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또한 갈증조차 느끼지 못해서 찻물 또한 마시지 않게 되는 증상을 괴이하게 생각했다. 열이 나면 탈수에 빠지면서 갈증을 느껴야 하는데, 발열증상이 있으면서도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갈증중추의 기능에도 문제가 생긴 듯했다. 한의학에서는 열사(熱邪)가 기분(氣分)을 침범했을 때는 갈증을 느끼지만 영분(營分)을 침범하면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영분을 침범했다는 의미는 사기가 몸속 깊이 들어와 심해졌다는 의미다. 음력 6월 26일, 발병 16일째. 심환지와 심인 등이 다시 진찰에 나섰다. 이들은 증상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다시 연훈방을 사용하고자 했다. 이시수와 같은 어의들도 연훈방을 사용하면서 종기가 현저하게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연훈방을 처방했다. 음력 6월 27일, 발병 17일째. 정조는 고통스럽게 하룻밤을 넘겼고 간간이 인사불성 상태가 되었다. 신하들이 보기에 자는 것 같기도 하고 깨어 있는 것 같기도 했으면 정신이 흐릿해 보였다. 진맥을 해 보면 맥은 너무 약했고 정신과 기운이 모두 미약해져 있었다. 정조는 간간이 신하들과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몽롱하게 잠이 들려고 했다. 이시수는 정조의 정신이 흐릿한 것이 혹시 연훈방 때문이 아닐까 우려했다. “연훈방은 종기를 치료하는 약제이지만 성상의 체후가 혼미하신 때 연기가 방안에 퍼져 정신에 방해가 될까 두렵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심인 등은 연훈방은 우선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어의들은 정조가 기력이 너무 쇠약해져서 결국 인삼을 적극적으로 처방하기로 했다. 그래서 인삼 5돈을 넣은 속미음(粟米飮)과 1냥을 넣은 속미음을 두차례나 올렸다. 인삼을 극히 꺼렸던 정조에게 과량의 인삼을 처방한 것은 의아하지만 그것을 허락한 정조의 판단력 또한 정신이 흐릿해진 결과일 것으로 추측된다. 음력 6월 28일, 발병 18일째. 신하들은 궁궐 밖에서 의원들이 진찰을 청하자 가까스로 진료 마치고, 다시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신하들은 자리에 누워 있는 정조의 앞에 엎드렸다. 신하들이 “신들이 대령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정조는 “수정전(壽靜殿)......”이라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뒤에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수정전은 왕대비(王大妃)가 있는 곳이다. 정조는 왕대비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자 했을까. 신하들은 다시 “신들이 대령하였습니다.”라고 했지만, 정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의들이 풍병(風病)을 의심해서 성향정기산을 숟가락으로 해서 입에 집어 넣었지만 토해했다. 인삼차와 청심원을 갈아서 넣었으나 삼키지 못하고 입안에만 머물고 있었다. 강명길이 진맥을 마치고 “맥의 상태로 보아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모든 신하들이 곡(哭)을 했다. 이날 유시(酉時, 17~19시), 정조는 종기를 앓은 지 18일 만에 승하했다. 정조가 승하한 후 독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겼다. 바로 수은과 인삼이다. 특히 연훈방의 수은으로 독살했다는 주장을 보면 연훈방으로 치료하자고 했던 이들이 이시수의 중간에 연훈방 치료를 잠시 중지하자고 한 의견에 동조하는 것을 보면 수은 독살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설령 단시간에 수은에 중독되거나 다량의 인삼을 복용했다고 할지라도 결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왕이 어의들의 치료를 받다가 죽었으니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독살설은 정치적인 주장일 뿐으로 정조는 의학적으로 병사한 것이 맞다. 정조는 종기에 의한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제목의 ○○○은 패혈증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승정원일기> 正祖 24年 庚申 6月 14日 乙丑/上, 自是月旬前, 有癤候, 連進傅貼之劑, 久未奏效, 召見內醫院提調徐龍輔于便殿. 龍輔問候, 上曰: “夜來寢睡, 全未穩着, 而日前傅藥處, 今旣膿潰矣.” 6月 23日. 召見藥院諸臣. 時秀曰: “午後則熱候之升降, 果若何?” 上曰: “今亦方有熱候矣.” 6月 24日. 命進沈鏔所製烟熏方聖傳膏. 其方用鏡面朱砂, 聖傳膏, 用巴豆等藥, 諸臣言不可輕試, 至是, 諸藥罔效, 上, 欲一試烟熏, 遂至進用. 6月 25日. 上曰: “今曉以後, 尙未進食, 而神氣則惺惺, 口味則終不開者何也?” 鏔曰: “神氣旣勝, 則口味自當漸開矣.” 上曰: “烟熏方, 今日亦當試用乎?” 鏔曰: “今日則姑爲停止, 更觀夜來動靜而試之似好矣.” 6月 27日. 時秀曰: “烟熏方, 雖是癤候當劑, 而聖候昏沈之時, 烟氣若或發散於房闥之內, 則恐或有妨神氣矣.” 柳光翼, 沈鏔等 奏曰: “烟熏方, 姑爲時時間斷, 徐觀動靜試用, 亦無妨矣.” 進人蔘五錢重粟米飮。召見藥院諸臣. 命煎入人蔘一兩重粟米飮. 6月 28日. 時秀又令命吉診候, 命吉診候訖, 退伏曰: “脈度已無可望矣.” 諸臣竝遑遑罔措, 環坐號泣. 是日酉時, 上, 昇遐于昌慶宮之迎春軒, 是日日光相盪, 三角山鳴. (정조 24년 경신(1800) 음력 6월 14일. 상이 이달 초열흘 전부터 종기가 나 붙이는 약을 계속 올렸으나 여러 날이 지나도 효과가 없으므로 내의원 제조 서용보를 편전으로 불러 접견하였다. 용보가 안부를 묻자 상이 이르기를 “밤이 되면 잠을 전혀 깊이 자지 못하는데 일전에 약을 붙인 자리가 지금 이미 고름이 터졌다.”라고 하였다. 6울 23일. 내의원의 신하들을 불러서 보았다. 이시수가 아뢰기를 “오후 들어 열이 오르내리는 증세가 어떠합니까?”하니 주상이 말하기를 “지금도 열이 나고 있다.”라고 하였다. 6월 24일. 심연이 조제한 연훈방과 성전고를 들여보낼 것을 명하였다. 그 처방은 경면 주사를 사용하였고 성전고는 파두 등 약을 사용하였으므로 신하들이 섣불리 시험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으나 이때에 와서는 모든 약이 효과가 없어 상이 연훈법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하므로 마침내 가져다가 써보기에 이른 것이다. 6월 25일. 주상이 말하기를 “오늘 새벽 이후로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정신은 말짱한데 입맛은 끝내 돌지 않으니 어째서 그런 것인가?”라고 하자 심인이 아뢰기를 “정신이 좋아지셨으니 입맛도 저절로 점점 돌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상이 말하기를 “오늘도 연훈방(煙熏方)을 써 볼 것인가?”하니 심인이 아뢰기를 “오늘은 우선 정지하고, 밤에 병세가 어떠한지 다시 살펴보고 나서 써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6월 27일. 이시수는 아뢰기를 “연훈방은 종기를 치료하는 약제이지만 성상의 체후가 혼미하신 때 연기가 방안에 퍼지기라도 하면 정신에 방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하고 유광익과 심인 등은 아뢰기를 “연훈방은 우선 수시로 중단했다가 천천히 경과를 살펴 가며 써도 무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인삼 5돈쭝을 넣은 속미음을 들였다. 상은 내의원의 신하들을 불러서 보았다. 인삼 1냥쭝을 넣은 속미음을 끓여 들이라고 명하였다. 6월 28일. 시수가 또 명길에게 진맥하게 하였는데 명길이 진맥을 한 뒤에 물러나 엎드려 말하기를 “맥도로 보아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제신이 모두 어찌할 줄 모르며 둘러앉아 소리쳐 울었다. 이날 유시에 상이 창경궁의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는데, 이날 햇빛이 어른거리고 삼각산이 울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06-02 17:25:40[파이낸셜뉴스] 신현준 한국신용정보원 원장은 새해 신년사를 통해 중석몰촉(中石沒鏃) 정신으로 매진하여 신용정보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중석몰촉은 돌 가운데 화살촉이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여 온 역량을 다하여 일을 추진하면 놀라운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 원장은 이를 위해 5대 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금융부문 핵심 데이터 인프라·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견고하고 스마트하게 수행하고 합리적인 데이터 거버넌스 구축 및 운영, 지속가능한 선순환 데이터 생태계 형성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용정보 집중·관리기능의 양적·질적 고도화 및 정보주체의 실질적 권리보장 강화, 미래·혁신기업에 대한 새로운 금융공급 체계를 효과적으로 지원해 기술력 기반 기업·산업의 성장 촉진, 날로 지능화되고 있는 정보보호·보안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철저한 정보보호 및 보안체계 수립 등도 제시했다. 특히 신 원장은 "마이데이터 지원센터, 데이터 전송 플랫폼 등을 고도화하고 금융, 공공 마이데이터 연계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데이터 포럼을 활성화하고 금융 빅데이터 개방시스템(CreDB)과 연계해 금융회사·핀테크 등 데이터 분석 역량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원장은 "지난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전진하자는 의미에서 '마부정제(馬不停蹄)'의 자세로 업무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2021-12-31 16:36:44[파이낸셜뉴스]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표방하며 야심 차게 출범한 신생 국가 조선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연이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왕권주의(王權主義)와 신권주의(臣權主義)가 극심하게 대립했고, 이는 왕자의 난으로 이어져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비극이 초래됐다. 더 나아가 아버지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 사이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자 간 참극마저 발생하게 된다. 군신유의(君臣有義)와 부자유친(父子有親) 등으로 대변되는 유교(儒敎) 국가 조선에서, 그 언급조차 금기시됐던 이 정변을 역사는 '조사의의 난'이라고 부른다. ■태종 즉위, 이성계의 함흥행 제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이방원은 곧 세자(世子) 자리에 오른 데 이어 1400년 자신의 형인 2대 왕 정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아 '태종'으로 즉위(卽位)했다. 태종이 즉위하자 태조 이성계(당시 태상왕(太上王))의 분노와 상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방원이 자신이 그 누구보다 아꼈던 세자 이방석과 삼봉 정도전 등을 척살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 왕위까지 꿰찼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총애하던 신덕왕후 강씨도 잃었다. 이성계는 더 이상 이방원이 지배하는 궁궐에 있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부자지간(父子之間)이었지만, 사실상 원수지간(怨讎之間)이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결국 이성계는 궁궐을 떠나 자신의 고향인 함경도(동북면)의 함흥 별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낼 계획이었다. 이성계는 추후에 전갈(傳喝)을 통해 이방원에게 "내가 즉위한 이래로 조종(祖宗)의 능에 한번도 참배하지 못한다고 일찍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행히 한가한 몸이 되었으니 동북면에 가서 선조의 능에 참배한 뒤에 금강산을 유랑코자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방원은 당초 이성계의 함흥행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성계가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궁궐로 환궁(還宮)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머지않아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사의의 접근 함흥에 안착한 이성계에게 조사의라는 사람이 접근했다. 조사의는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으로 1393년(태조 2년)에 형조의랑이 됐고, 그 뒤 순군(巡軍)과 첨절제사를 거쳐 안변부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조사의와 더불어 신덕왕후 강씨의 조카인 강현도 있었다. 이들은 이방원의 정적(政敵)이었던 신덕왕후 측의 사람들이었던 만큼 자연스레 이방원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했다. 그런데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는데 때마침 이성계라는 거대한 우군(友軍)이 알아서 자신들의 구역으로 왔던 것이다. 조사의 등은 이방원에 대한 분노와 상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이성계를 찾아가 그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자극시켰다. 바로 1차 왕자의 난 때 무참히 살해된 이방석과 이방번 등의 원수를 갚고, 역적(逆賊) 이방원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척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사의는 정변에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도 충분하다고 봤다.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 지역에는 대대로 이성계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고, 지역민들도 이성계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나아가 우호 세력인 여진족이 참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1402년(태종 2년), 이성계는 조사의의 의도대로 군사를 일으키는 것에 동의했다. 역사는 이를 '조사의의 난'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상 조사의의 배후에 있었던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의 부자 간 전쟁이었다. ■함흥차사의 전설 한편, 이방원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도 이성계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이방원은 이성계를 회유하기 위해 함흥으로 사람을 보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박석명, 성석린, 박순이었다. 박석명은 지금의 비서실장인 도승지였고, 성석린은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부판윤과 재상인 영의정부사를, 박순은 중추부의 종1품 관직인 판중추부사를 역임했다. 특히 성석린은 이성계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는데, 성석린이 회유했을 때 이성계는 이를 수락하며 잠시 개경으로 환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이성계는 다시 함흥으로 돌아갔다. 이 때 이성계가 잠시 환궁한 것은 기실 조사의가 거병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고 개경의 동태를 살펴 조사의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석린의 회유도 결국 실패로 끝나자 이방원은 성석린만큼 이성계와 친분이 두터운 박순을 함흥으로 보냈다. 그런데 박순은 실제로 이성계를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고, 대신 함경도 일대의 동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직감해 도순문사 박만과 함께 이 지역 수령들에게 "조사의를 따르지 말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조사의 등은 박순이 자신들의 거병 준비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조사의 등은 이성계에게 박순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이성계는 고민에 빠졌다. 옛 정을 생각해 박순을 살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거병이 탄로 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이성계는 조사의 등에게 박순이 안변 아래쪽에 흐르는 용흥강을 건너갔으면 죽이지 말고, 건너지 못했으면 죽이라고 명했다. 박순은 불운하게도 용흥강을 건너지 못한 상태였고, 결국 조사의가 급파한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이방원이 함흥에 차사(差使)로 보냈던 사람들이 모두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해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함흥차사의 전설'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으며, 실제로 죽임을 당한 사람은 박순 한 명 뿐이었다. 함흥차사의 전설은 후대의 일부 역사가들이 조사의의 난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포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야사(野史)로 보인다. ■조사의의 난 이성계와 조사의가 거병했을 때, 예상대로 함경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성계 측에 가담했다. 거병 소식을 전해 들은 이방원과 조정의 대신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대응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현 임금의 아버지이자 조선을 건국 한 태조 이성계였기 때문이다. 반란군이 평안도의 덕천·안주 방면을 거쳐 한양 쪽으로 밀고 내려오려 하자 이방원은 마지못해 이천우 등을 보내서 이를 방어하도록 했다. 하지만, 반란군의 위세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고맹주 지역에서 이천우의 군대가 격파 된 것이다. 반란군은 전장에서 '태상왕' 이성계의 권위를 앞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는데, 이성계를 나타내는 깃발 등을 흩날리며 앞으로 진격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관군은 적지 않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관군의 선발대가 패배하고 반란군의 남하(南下)가 이어지자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방원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전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자 간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현실화 됐다. 이방원이 관군을 진두지휘하면서 전황(戰況)에 차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관군의 사기가 드높아졌고, 이를 기반으로 관군은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기본적인 양과 질에서 관군은 반란군보다 크게 앞섰다. 그리고 관군은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반란군을 난관에 빠뜨렸다. 각 고을의 군사를 효율적으로 동원해 반란군의 진로를 저지하는 한편 회유책도 구사해 반란군을 분산시키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청천강 전투에서 이숙번이 이끄는 관군이 반란군을 대패시키면서 반란군의 전의(戰意)는 땅에 떨어졌고 탈영병이 속출하면서 안변 쪽으로 퇴각하게 된다. 관군은 조사의와 그의 아들 조홍 등을 신속하게 추격해 체포, 주살(誅殺)했다. 조사의와 반란을 함께 한 측근들은 죽거나 귀양을 갔고, 반란의 태동지였던 안변 대도호부는 감무 파견지역으로 강등(降等)됐다. ■이성계의 거취 조사의의 난이 완전히 진압된 후 이성계는 반란군의 주둔지였던 평양에서 아들 이방원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조선을 건국 한 '태조'치고는 상당히 처량한 모습이었다. 이방원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끊임없이 사람을 보내 이성계를 개경으로 모셔오고자 했다. 이성계는 한동안 거부하다 마지못해 개경 궁궐로 환궁했다. 야사에서는 이성계의 오랜 정신적 스승이었던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이성계가 마침내 돌아왔다고 전하고 있다. 이방원은 직접 교외로 마중 나가 이성계를 맞이했다. 일각에서는 이성계가 환궁할 때 노여움을 버리지 못해 현재의 성동구 한양대학교 뒤쪽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부근에서 이방원을 향해 화살을 쐈고, 그 화살이 급히 몸을 피한 이방원을 벗어나 정자의 나무기둥에 꽂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화살이 꽂힌' 장소라는 데에서 유래해 해당 돌다리는 '살곶이 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궁궐이 한양이 아닌 개경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야기의 신빙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또한 환궁 잔치가 열린 자리에서 이성계가 소매 안에 철퇴를 감추고 이방원의 목숨을 노렸는데, 최측근이었던 하륜의 기지(機智)로 이것이 무위(無爲)에 그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성계는 이방원이 자신에게 직접 술을 따를 때 철퇴로 내리치려고 했지만, 하륜이 이성계의 의도를 미리 눈치채고 예법을 거론하며 환관으로 하여금 대신 술을 따르게 했던 것이다. 이후 이성계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비로소 이방원에게 옥새를 넘기며 왕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환궁한 이성계는 여생을 조용히 궁궐에서 보내다 1408년 5월(태종 8년)에 승하(昇遐)했다. 일개 변방 장수에서 출발해 조선의 건국자로 올라섰던 풍운아 이성계는 결과적으로 말년(末年)이 좋지 못했다. 아버지를 향한 회한(悔恨) 때문이었을까. 이성계가 승하하자 아들 이방원은 "소자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짐승처럼' 슬피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성계의 능호는 건원릉(健元陵)이며 단릉(單陵)이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
2021-06-05 03:33:08봄철 수요가 많은 어린이제품 및 전기·생활용품 상당수가 유해물질 초과, 온도상승 과다, 내구성 미달 등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2월부터 약 3개월간 백화점·대형마트·온라인 등 시중에서 유통 중인 어린이제품 및 전기·생활용품 1236개를 조사한 결과,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86개(7.0%) 제품에 대해 리콜명령을 했다고 밝혔다. 이들 제품은 5월 가정의 달 및 봄나들이 계절을 맞이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들이다. △완구, 유모차, 인라인스케이트 등 안전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20개 품목(698개) △전기찜질기, 전동킥보드, 고령자용 보행차 등 전기·생활용품 32개품목(538개)이다.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어린이 완구는 태성상사 '도리스돌(DORIS DOLL)' 등 15개 제품에서 기준치보다 최소 1.3배에서 최대 2473.3배나 높은 납, 카드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등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특히 태성상사가 중국에서 제조 수입한 인형완구 '도리스돌' 제품의 경우, 플라스틱 머리띠 진주에서 검출된 총 납 함유량은 기준치의 1.8∼610.3배, 금속목걸이와 리본에서 검출된 총 카드뮴 함유량은 1.1∼2473.3배를 초과했다. 카드뮴에 노출될 경우 신장, 호흡기계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간·신장 등의 손상 유발 가능성이 있다. 납에 노출될 경우 피부염·각막염·중추신경장애 등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매몬스튜디오가 중국에서 제조 수입한 '최현우의 마술교실' 완구에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DBP, DEHP)가 11.8배나 초과 검출됐다. 삼우힐링라이프가 판매한 중국산 게임완구 '에디슨컵쌓기(모델명)'는 카드뮴 함유량 5.4배, 프탈레이트계 가소제(DEHP) 49배 초과 검출됐다. 코니아이엔씨가 베트남에서 제조 수입한 봉제완구(모델명 꼼에스타꼬마곰베베)에선 인형의 플라스틱 흰색 단추에서 납 함유량이 6.9배 초과 검출됐다. 유모차는 3개 제품이 내구성(불규칙한 표면) 시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태건씨앤에스(모델명 BS001) 등 2개 제품은 차양막 부위에서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최대 207배나 초과 검출됐다. 어린이용 인라인 롤러스케이트는 스키드온코리아(모델명 NS COMBO), 퍼니스포츠(모델명 YH-002) ,에스디스피드(모델명 MATRIX-S)등 3개 제품의 표면 인조가죽 부위에서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최대 137~352배나 초과 검출됐다. 자석나라가 국내에서 제조 판매한 자석완구(모델명 NEW MAGNET FUNNY PUZZLE FRUIT&VEGETABLE)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DBP, DEHP)가 8배 초과로 검출됐다. 아이엠제이에스가 중국에서 제조 수입한 운동완구 '라켓볼'에선 총 카드뮴 함유량이 1.3 배 초과 검출됐다. 어린이들이 쓰는 '중국산' 학용품 지우개에도 유해물질에 대량 검출됐다. 점프가 중국에서 제조 수입한 학용품 '지우개(모델명 500네온칼라지우개)'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DEHP가 187.0~208.6배나 초과로 검출됐다. 크리스탈팬시도 국내에서 판매한 중국산 지우개(4B네온지우개)가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DEHP 199.9~ 214.9배 초과 검출됐다. 카라멜팝콘의 지우개(모델명 몰랑 네온컬러 지우개)도 DEHP 201.9 ~ 228.6배나 초과됐다. 아동용 섬유제품의 경우, 에스씨코리아(모델명 72BG04911-1)의 가방류 등 8개 제품에서 단추, 큐빅, 고무장식 등 부속품 부위에서 납, 카드뮴 등 유해물질이 최대 39.6배나 초과 검출됐다. 2개 제품은 끼임 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코드 및 조임끈이 불량했다. 전기찜질기는 온열벨트, 발열조끼 등 12개 제품이 사용 중 화상이 우려되는 부적합 제품이었다. 선일전기(모델명 SI-2017-1) 등 전기찜질기는 온도상승 폭이 기준치 대비 최대 65K 초과했다. 전기오븐기기의 경우, 홈니즈(모델명 HNZ-QK2000MAF) 등의 에어프라이어를 포함한 4개 제품에서 전원코드 등의 온도상승 폭이 최대 37.9K 초과하는 등 화재가 우려됐다. 고령자용 보행차는 2개 제품이 안정성시험에서 부적합했다. 기준 기울기 미달로 고령자가 사용시 넘어짐 등으로 인한 상해 위험이 있었다. 특히 보성메디케어(모델명 BS-301) 제품은 측방 안정성시험에서 0.1도의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운동용 안전모는 2개 제품이 내관통성, 충격흡수력 부적합 등 내구성 미달로 사용 중 충격 시 머리 부상 가능성이 있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번에 리콜명령을 받은 86개 제품의 판매를 원천 차단조치하기 위해 5월1일자로 제품안전정보센터 및 행복드림에 공개한다. 아울러 전국 유통매장과 온라인 쇼핑몰과 연계된 위해상품판매차단시스템에 등록할 계획이다. 수거되지 않은 리콜제품이 발견되면 국민신문고 또는 한국제품안전관리원으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리콜제품을 사용 중인 소비자는 제조·수입·판매사업자로부터 수리·교환·환불 등의 조치를 받을 것을 주문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2019-04-30 10:5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