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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종기에 ○○○를 물리자 묘한 효과가 나타났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종기에 ○○○를 물리자 묘한 효과가 나타났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기침법(蜞鍼法, 거머리침법)과 약용동물학에 그려진 말거머리(왼쪽)와 참거머리 그림.

과거 한 사내의 오른 바깥쪽 허벅지에 종기가 났다. 처음에는 작은 붉은 콩만한 결절이 단단하게 잡히더니 점차 커졌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름이 잡히고 터져서 저절로 아물기도 했다. 이렇게 작은 종기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종기는 사라지지 않고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마을 의원에게 탕약도 써 보고 침도 맞아보고, 도침(刀針)으로 째 보기도 했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다. 마치현(馬齒莧)으로 만든 고약도 붙여 봤지만 여전했다. 마치현은 쇠비름으로 훗날 유명해진 이명래 고약의 원재료로 사용되기도 한 약초다.

사내는 종기의 통증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의 종기를 치료할 방법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던 끝에 거머리를 물려서 치료하는 의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내는 전에 논일을 하다가 거머리를 물려본 적이 있지만 징그러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거머리라도 물려보기로 했다. 사내는 거머리요법을 한다는 약방을 찾았다.

의원이 진찰을 해 보더니 “이렇게 큰 종기는 옹절(癰癤)이라고 하는데, 거머리요법이 특별한 효과를 나타낼 걸세. 살아있는 거머리를 물리는 것으로 마치 침처럼 놓는다고 해서 의서에는 기침법(蜞鍼法)이라고 기록되어 있네. 두세 번 정도 시술을 하면 될 걸세.”라고 설명하면서 안심을 시켰다.

그럼에도 사내의 심장은 벌렁거렸다. 침도 무서운데 거머리를 침처럼 놓는다니. 망설임과 두려움이 여전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약방 안을 둘러보니 거머리들이 들어있는 단지들이 여러 개 있었다. 논이나 강에서 보이는 거머리들보다 작은 것을 보니 이미 잡아 놓은 지 오래되어 굶주린 듯했다.

거머리 단지의 물은 자주 갈아 주는지 깨끗하고 맑았다. 그리고 단지 옆에는 붓관이 크기별로 여러 개 있었다. 붓관은 붓의 자루로 사용하는 대롱이다. 벌써 저쪽 방안 구석에서는 몇몇이 누워서 거머리를 물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자신의 차례가 왔다.

의원은 먼저 사내를 옆으로 눕히고 종기가 난 부위를 깨끗한 물로 몇 차례 씻어 냈다. 거머리는 매우 예민해서 냄새나 맛에 민감하기 때문에 땀이나 이물질을 잘 닦아내야 했다. 의원은 가장 큰 종기 위에 물에 적신 한지 종이를 덮어두었다. 그러자 가장 높이 솟은 부위 한 곳 먼저 마르기 시작했다. 종기는 후끈거리는 열감이 있는데, 종기에 젖은 종이를 덮어 가장 열독(熱毒)이 심한 부위를 찾는 나름의 비책이었다.

의원은 거머리를 물릴 부위를 확인한 후에 종이를 제거하고 해당 부위를 정확하게 짚어 큰 붓관을 직각으로 세웠다. 그리고 붓관 안으로 거머리 한 마리를 집어넣고 이어서 붓관 안으로 거머리 단지 안의 물을 채워 넣었다.

사내는 “으~~~~” 소리를 내면서 징그러움에 몸서리쳤다. 붓관 때문에 거머리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 두려움은 더욱 컸다. 아마도 거머리는 붓관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결국 붓관이 세워진 종기부위를 물게 될 것이다.

“종기 부위가 따끔거리면 말을 하게나.” 의원은 사내에게 거머리가 무는 순간 따끔거릴 것이니 그 순간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붓관에 거머리를 넣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사내는 “아~ 따끔하면서 뭔가 깨무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얏!~ 아픕니다요.”라고 부잡스럽게 떠들었다.

그러나 의원은 “자네는 논에서 거머리를 물려 본 적이 있지 않나. 그때 일을 다 마치고 나와서야 거머리가 물려 있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텐데,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아프다고 하니 논일을 할 때는 왜 거머리가 물었을 때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 지금 자네는 거머리가 문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긴장이 된 것뿐이네. 사실 거머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몰래 빨아먹어야 해서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깨물어 마취를 시킨다네. 그래서 거머리가 무는 순간은 약간 따끔거리지만 바로 감각이 무뎌질 테니 호들갑은 그만 떨게나.”
의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말 거머리가 문 곳의 감각이 없어지고 따끔거리는 통증도 사라졌다. 의원은 붓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살짝 보이는 종기 부위에는 거머리가 물려 있었고, 거머리의 반대쪽 끝은 붓관 아래의 안쪽에 달라붙어 있었다.

의원이 붓관을 서서히 들어 올리자 거머리는 마치 실처럼 늘어졌고 그러다 결국 붓관에 붙인 빨판을 스스로 떼어냈다. 종기를 문 부위는 여전히 단단하게 깨물고 있는 듯했다. 거머리가 한번 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거머리가 배불리 먹으면 저절로 떨어질걸세. 그때까지 약 한 식경(食頃) 정도 걸릴 테니 편안하게 누워있게나. 나는 다른 환자를 진료하고 있을 테니, 만약 거머리가 떨어지면 이 종을 흔들어서 나를 부르게나.” 의원은 이렇게 설명을 하고선 자리를 일어났다.

거머리는 작은 몸통을 꿈틀꿈틀 열심히 피고름을 빨아먹었다. 그런데 마치 거머리가 땀을 흘리듯 거머리 피부가 반짝거렸다. 사실 이것은 거머리가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피를 빨아먹기 위해서 자신의 체액을 피부로 몰아내서 배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말 30분 정도 지나자 거머리는 스스로 떨어져 나왔다. 거머리가 떨어진 부위는 마치 삼릉침으로 찌른듯한 상처가 있었고 그곳에서 피가 뭉클하고 방울처럼 솟아오르더니 주르륵하고 흘러내렸다. 마치 산속의 아주 작은 옹달샘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피고름이 그렇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사내는 ‘아~ 시원해. 이렇게 낫는구나’라고 다행스러워했다.

의원은 “자네의 옹절이 너무 커서 이렇게 해서 두 번을 더 물리도록 하겠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거머리들이 더 쉽게 피를 빨아먹을 수 있을 테니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걸세.”라고 하면서 다시 동일한 방법으로 거머리를 물렸다.

세 번째 거머리까지 배불리 먹고 마저 떨어지자 의원은 “출혈을 좀 시키는 것이 옹절의 열독을 배출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 이렇게 좀 피를 빼낸 후에 내가 붕대로 감싸주면 그렇게 집으로 귀가하면 되네. 3일 후에 다시 오게나. 그때까지 너무 힘든 일을 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고 술이나 기름진 음식을 삼가게나.”라고 일러 준 후 여러 겹의 베를 겹쳐서 출혈 부위에 대고 다시 붕대로 감아서 지혈을 시켰다.

3일 때 되는 날 사내가 다시 약방에 왔다. 의원은 붕대를 벗겨 보더니 다행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붉고 탱탱했던 종기가 쭈글거리면서 살빛이 창백한 듯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내도 깜짝 놀랐다. “와! 정말 좋아졌습니다. 붕대를 감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종기가 사그라들었네요. 거머리를 물리고 나서 통증이 줄어서 효과가 있구나 정도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육안으로 확인을 하니 효과가 더욱 놀랍습니다.”하면서 좋아했다.

의원은 아직 약간의 통증이 있고 종기의 뿌리가 다 빠진 것 같지 않으니 한번 더 거머리요법을 하자고 했다. 사내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효과가 없던 종기가 이렇게 거머리요법 한 번만으로 좋아졌으니 말이다.

사내는 지난 번 왔을 때 거머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징그러워했는데, 이제는 의원이 거머리를 물리는 과정을 목이 빠져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제는 거머리가 고마운 존재로 느껴졌다.

사내는 연신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한낱 미물로만 알았던 거머리가 이렇게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다니요. 지난번에는 좀 일찍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좀 오랫동안 제 피를 빨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제가 거머리요법을 어떻게 하는지 봤으니 앞으로 제가 직접 논에서 거머리를 잡아서 붙여 봐야겠습니다요.”라고 들떠 있었다.

그러자 의원은 깜짝 놀라며 “큰일 날 소리 하지 말게나. 논에서 거머리를 함부로 잡아서 물리면 자칫 진흙 속의 충(蟲)과 사기(邪氣)가 기육과 혈맥을 파고 들어가 물린 자리가 더 곪거나 열이 나면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네. 이 약방에 있는 거머리들은 6개월 이상 깨끗한 물을 날마다 갈아 주면서 깨끗하게 관리해서 시술하고 있네. 약방이 아니고서는 절대 함부로 물려서는 안 될 터인데, 병세가 악화되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있겠는가?”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사내는 겸연쩍어하더니 조심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사내의 허벅지에 난 큰 종기는 거머리요법으로 완치가 되었다. 이후에도 종기가 나면 악화되기 전에 거머리요법의 도움을 받았기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의원에게는 ‘거머리의원’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거머리요법으로 종기뿐만 아니라 관절염에 의한 부종이나 통증, 탈저(脫疽, 요즘의 버거씨병)에 의한 조직의 괴사, 봉와직염과 같은 잘 낫지 않는 피부의 상처나 궤양, 편두통, 머리에 난 원형탈모 등에 다양한 질환에 시술을 해왔다.

거머리요법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어떤 명방(名方)이나 침법보다 탁월한 효과가 눈앞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치료는 의원이 아닌 거머리의 역할이었다. 거머리는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치료도구이자 자연의 의사였다. 거머리요법은 묘한 효과가 있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동의보감> ○ 蜞鍼法. 癰癤初發漸大, 以濕紙 一片, 搭瘡上, 其 一點先乾處, 卽是正頂. 先以水洗, 去人皮醎, 取大筆管 一箇, 安於正頂上, 却用大水蛭 一條, 安其中, 頻以冷水灌之, 蛭當吮其正穴膿血, 皮皺肉白, 是毒散無不差. 如毒大蛭小, 須用 三四條方見效. 若吮着正穴, 蛭必死, 用水救活. 累試奇效. 如血不止, 以藕節上泥塗之.(거머리침범. 옹절이 처음 생겨 점점 커질 때 물에 적신 종이 한 장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먼저 마르는 곳이 바로 옹절의 꼭지이다. 먼저 물로 피부의 땀과 염분을 씻어 내고 붓의 자루로 쓰는 큰 대롱 하나를 꼭지에 세운다. 큰 거머리 한 마리를 그 속에 집어넣고 자주 찬물을 부으면 거머리가 그 구멍에 대고 피고름을 빨아낸다.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살빛이 희어지면 독이 빠져나간 것이니 낫지 않는 것이 없다. 피고름의 독이 심한 데 거머리가 작을 때에는 3~4마리를 쓰면 효과를 본다. 만약 제대로 된 구멍을 빨아대면 거머리는 반드시 죽게 되는데, 물에 넣으면 살릴 수 있다. 몇 번 시험해 보았는데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만약 피가 멎지 않으면 연뿌리에 있는 진흙을 바른다.)
○ 小兒丹毒, 及赤白遊疹, 用蜞鍼法. 取水蛭, 吮出惡血, 最妙.(소아의 단독 및 붉거나 흰색의 피부발진에는 거머리침법을 쓴다. 거머리를 취해서 나쁜 피를 빨게 하면 가장 묘한 효과가 있다.)

< 본초강목> 赤白丹腫. 以水蛭十餘枚, 令咂病處, 取皮皺肉白爲效. 冬月無蛭, 地中掘取, 暖水養之令動. 先淨人皮膚, 以竹筒盛蛭合之, 須臾咬咂, 血滿自脫, 更用飢者.(적백단독으로 붓는 증상에 거머리 십여 마리를 환부에 대고 빨아들이게 하는데, 살갗이 쭈글쭈글해지고 살이 희게 되면 효과가 난 것이다.
겨울철에는 거머리가 없으니 땅을 파서 잡고 따뜻한 물에 길러서 움직이도록 한다. 우선 사람의 피부를 깨끗이 한 다음 거머리를 담아 둔 대나무통을 환부에 대면 잠시 뒤에 빨아들이다가 피가 가득 차면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다시 쓸 때는 굶주린 것으로 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