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영 교수
[파이낸셜뉴스] “사람은 누구나 존재 자체로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한국인 최초’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소아청소년정신과 지나영 교수가 청소년 심리처방전 ‘들숨에 긍정 날숨에 용기’(자음과모음)를 펴냈다. 전작 ‘본질육아’(2022)가 육아의 궁극적 목적을 간과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우리사회 양육문화를 돌아보게 했다면 이번 책은 내면이 건강한 청소년이 되기 위한 조언을 건넨다. 사회가 정한 성공방정식을 무작정 쫒기보다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면서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돼야 행복한 어른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신간 출간에 맞춰 귀국한 지나영 교수를 만났다. 지 교수는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네 있는 모습 그대로 귀하고 존중받을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며 “인간에게 이 말만큼 가슴을 채우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엄마 말 잘 들어야해, 공부 잘해야 해, 공부 못하면 사람구실도 못한다’와 같은 말들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사랑받는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게 된다”며 “이런 말들은 ‘사람이 잘나면 가치 있고 존중받고, 그렇지 못하면 무시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갑질 문화나 학교폭력 문제도 연장선상에 있다고 봤다. “한국의 갑질문화는 미국에서도 ‘Gapjil’이라는 단어로 알려져 있다”며 “한국사회 만의 두드러진 문화다. 이는 구걸하는 사람도 무직자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뭔가 잘해야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반대로 (공부 등을) 못하면 가치 없고 무시당해도 되는가? 이런 생각이 만연하니 학교에서도 (공부건 운동이건) 잘하거나 힘이 센 아이들이 자신보다 어리숙하거나 부족한 애를 존중하지 않고 괴롭히게 된다.” 그러니까 학교폭력 또한 갑질 문화와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달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장안의 화제였다. 이 드라마에서 학폭 가해자 연진은 ‘학창시절 피해자가 (너한테) 뭘 잘못 했냐’며 가해 이유를 묻는 남편의 질문에 “뭘 잘못해야 해”라고 응수했다. 현실판 ‘더 글로리’로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위공직자 아들의 학폭 사건도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단지 동급생이 제주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등으로 지속적인 언어폭력을 가했다.
지 교수는 “아이와 청소년의 정신이 아픈 것은 우리사회와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며 “아픈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른으로서 늘 미안하다”고 아파했다.
출처: 지나영 교수 인스타그램
우리나라의 행복도는 현재 심각한 수준이다. 2021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1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45%)이다. 전체 자살률 또한 높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2020년 기준 10만 명당 27.5명이다. 이는 미국의 자살율(10만명당 14명)과 타살율(10만명당 7.5명)을 합한 숫자(21.5명)보다 높다.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생명을 잃을 확률은 미국에서 총기사고(10만명당 6.1명, 2020년 기준)로 사망할 확률보다 4배 이상 높다.
“개개인의 다양성 인정해야”
지교수는 “많은 부모가 불안에 휩싸인 나머지 근시안적인 육아를 하고 입시교육에 몰입한 결과가 어떠한가”라고 반문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도는 경제수준에 비해 월등히 낮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국 청소년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로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문화”를 꼽으며 “저마다 가진 다양성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가르치지 않고, 어떤 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추려 한다”며 입시 위주의 교육을 비판했다.
“예건대 좋은 대학교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가르친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끌어안는 건 열등감이다. 다양성이 죽은 곳에 열등감이 자란다. 열등감은 낮은 자존감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입시교육의 승자는 어떠한가? “정작 그 길을 잘 따라가서 성인이 된 소위 상위 1%의 경우는 우월감이나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된다. 동시에 그들 역시 남이 제시한 길로 살다보니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부연했다.
“마흔살 쯤 되면 시쳇말로 현타가 온다. 청소년기 여러 경험을 하면서 자신을 알아가야 하는데, 무엇이 제 삶의 의미를 주고 행복을 주는지 모르고 어른이 된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국사회는 10대들에게 오직 한 길을 가라고 하는데, 사실은 엄청 많은 길이 있다. 세상을 제한된 시각으로 보면, 꿈도 제한된다.”
지나영 교수 인스타그램
본질육아 책
“우리사회는 저마다 가진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고려하지 않고, 공정성을 내세워 획일적인 지식을 학습하고 획일적인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한다. 이는 모든 동물을 나무 타는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다. 원숭이도 물고기도 같은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바보인줄 알고 살아갈 것이다.”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 내면 건강 중요”
지교수는 “청소년기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나르시시즘이 강한 영유아기와 달리 외모나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여기에 외모나 성적 등으로 부정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면 아이들이 힘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챗GPT가 나날이 발전하는 4차산업혁명의 시기, 한국의 교육제도는 미래인재상을 길러내는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시대를 역행 중이라고 지적한 그는 “미국 교육계에서는 21세기 진짜 필요한 능력을 4Cs로 명명하며 창의력, 비판적 사고, 협력, 소통을 강조한다”며 “아이들을 어떤 틀에 가둬놓고 교육하면 창의력은 오히려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나영 교수 인스타그램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은 미래에서 왔다”고 강조했다. 2050~2090년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2020년대를 살고 있는 부모가 (자신들의 청소년기인) 1980년대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의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회복탄력성과 적응력이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 실패해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화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스스로 단단히 설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나를 지탱해주는 건강한 마음(정신)이 필요하다. 건강한 마음을 바탕으로 한 선택과 행동이 청소년의 미래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사회 중요한 기로, 내면건강 챙길 때”
지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긍지가 있다”면서도 “우리사회가 한강의 기적을 통해 아무리 (외적으로) 이룬 게 많아도 우리의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정말 많이 이룬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작금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내면이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출처: 지나영 교수 인스타그램
“잘못된 육아와 교육으로 건강하지 못한 핵심 신념을 가진 청년들을 계속 길러낸다면? 그런 청년들이 자라 우리사회의 리더가 된다면? 한국사회의 미래가 심히 우려된다. 나는 지금 우리사회가 흥망과 성패의 기로에 있다고 본다.”
“부모님들께 두 가지를 당부 드린다. 아이들에게 ‘(개성·장단점 다 포함한)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 넌 가치 있는 사람이야 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다.”
흔들리는 사춘기 청소년을 둔 부모라면 내 아이를 기본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며 “조건 없이 사랑하고, 제대로 성장할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믿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소망하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대한민국 학부모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타이틀을 가진 지나영 교수는 한인 2세도, 명문대(SKY) 출신도 아니다. 대구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인 그는 봉제공장에 다니던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대구카톨릭대학 의과대학 졸업 후 원하던 정신과 레지던트 프로그램에 떨어지면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의사국가고시를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하면서 눌러 앉았다.
하버드 의과대학 뇌영상연구소를 거쳐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에서 정신과 레지던트와 소아청소년정신과 펠로우 과정을 이수했다. 그 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과 연계병원인 케네디크리거인스티튜드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진에 합류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와 연구, 교육에 열중하던 지난 2017년 자율신경계장애와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난치병에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작가로 변신, ‘마음이 흐르는 대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를 펴냈다. ‘들숨에 긍정 날숨에 용기’는 지교수의 세번째 책이다. 유튜브 ‘닥터지하고’를 운영하며 "라이즈투게더"운동을 펼치고 있다.
출처: 지나영 교수 인스타그램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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