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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채운 고용률 '착시'...나이 불문 "좋은 일자리 없다"

고용률 역대 최대에도...청년-노인 고용률 역전
생계 내몰린 노인들 "해고 무서워 권리 주장 못해"
"그냥 쉰다"는 통계 밖 청년층도 증가


노인이 채운 고용률 '착시'...나이 불문 "좋은 일자리 없다"
[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15~29세 청년층과 60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률이 역전됐다. 지난 4월 전년동월 대비 35만4000명의 취업자가 늘어나는 동안 60대 이상을 뺀 나머지 연령층에서는 되려 8만8000명이 줄었다. 구직에 실패한 젊은이들의 자리를 노인들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15일 경제학계·산업계 등에 따르면 청년층보다 인구비중이 높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며 고용률은 적정 수준의 자연감소가 예측됐다. 하지만 15세 이상 인구의 전체 고용률은 오히려 4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직 고용시장을 떠나지 못한 60세 이상 고령층 1360만여명이 이를 떠받치는 모양새다. 고령 노동자 비중은 15세 이상 취업자의 22% 수준으로, 전년동월 대비로도 2% 이상 늘었다.

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지키는 노인빈곤율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고령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고용시장에 복귀했다. 중위소득 50% 미만의 노인빈곤율은 꾸준히 40%대를 유지하다 기초연금 지급을 계기로 2020년대에 최초로 30%대로 내려왔다. 허영구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회 대표는 "기초연금 30만원 남짓에 공공일자리 27만원 정도를 더해도 최저생계비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허 준비위 대표는 또 "기초연금 수령 소득 분위가 아니더라도 국민연금을 30년 납입하면 평균 수령액이 65만원 수준인데, 소득이 적었던 노인들은 이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며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못하게 될 때까지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내수 회복의 시그널로 점쳐졌던 고용률 상승 이면에 은퇴하지 못한 노인들의 생계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노인이 채운 고용률 '착시'...나이 불문 "좋은 일자리 없다"
[그래픽] 노인빈곤율 추이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5일 국민연금연구원의 'NPRI(국민연금연구원) 빈곤전망 모형 연구'(안서연·최광성)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38.97%이던 노인빈곤율은 2025년 37.68%에서 조금씩 낮아져 2075년 26.34%까지 내려온 후 다시 상승해 2085년에는 29.80%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zeroground@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끝)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구직시장에 내몰린 고령자가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단순·단기 노동으로 한정된다. 소일거리 수준을 넘어선 만큼 '일 3시간 이내, 평균 11개월 근무'의 공공부문보다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꾸준히 얻을 수 있는 알선·파견 일자리를 선택하고 있다. 어렵게 얻은 건물 청소, 경비 등 서비스업 비정규직에서 노인들은 손쉽게 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자 권리에서 격리됐다.

허 대표는 "오랜 기간 저소득을 유지한 노인들은 법적 지식 등 대항력이 없고, 고용주들도 노인 채용 시 어느 정도 시혜성으로 고용했다고 생각한다"며 "고용주가 계약에서 휴게시간을 길게 잡아 근무 대비 시급을 줄이거나, 추가적인 업무를 지시해도 따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생애 주기 상으로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해야 할 청년층의 상황도 나쁘긴 마찬가지다. 6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는 15~29세 취업자와 더불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쉬었음' 응답자들의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통계에서 제외되는 20대는 지난달 3만8000명(10.8%) 늘었다. 최저치를 기록한 청년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된 이들이다.

이종선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근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엔데믹으로 고용률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직장'이 새롭게 생겨나지 않으며 젊은이들이 이탈해 버리고 불안정한 일자리에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이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 취업 증가에 대해서도 "결국 부족한 사회 안전망을 노인들이 자구책으로 마련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정부에서 15조원을 투입했던 공공일자리도 윤 정부의 재정긴축 기조 아래 줄어들 전망이다.

이 교수는 "제조업 회복을 빠르게 진행해 젊은이들의 취업을 독려하고, 빈곤 노인층은 복지제도 정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쉴 수 있는 사회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 대표 역시 "자녀가 구직에 실패하며 부모 세대가 은퇴 이후에도 일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노년알바노조의 가입 연령도 70대에서 사기업 퇴직 연령인 61세로 낮아질 계획이다. 이어, "자식세대의 안정이 어느 정도 노인 생계에도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