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성관계 중 실수' 주장에 의문 제기
피해자 신체에 DNA 및 정액 반응 없어
"재물 강취하려 고의로 살해한 것 아닌가"
과거에도 목 졸라 살해한 전과 있어
1심 재판부 징역 25년에, 위치추적장치 부착 15년
서울 은평구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을 숨지게 한 남성이 지난 3월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서울 은평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인터넷 방송인(BJ)을 숨지게 한 40대 남성이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4일 오전 살인, 재물은닉, 절도 등 혐의를 받는 김모씨(44)에 대해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 15년을 명령했다.
김씨는 살인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재물은닉 혐의와 절도 혐의를 포함해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합의 하에 가학적인 성관계를 하다가 실수로 피해자를 죽게 만들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객관적 증거에 따르면 성관계 자체가 있었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 신체에서 피고인의 DNA 및 정액반응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피해자에게 실수라고 보기 어려운 강한 외력에 의한 상해가 남아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또 피고인이 재물을 빼앗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짚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처와 위장 이혼을 할 정도로 경제적 곤궁 상태에 있었다. 당시 1억5000만원 상당의 빚을 지게 된 것도 주로 인터넷 방송 BJ에게 선물할 하트를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음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 이틀 전부터 피해자의 전과관계, 카드소지 여부, 운전면허소지여부 등 피해자의 경제 상황에 관한 개인 정보를 확인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재물을 강취하려고 했거나 선물한 돈을 돌려받으려는 과정에서 다툼이 발생해 확정적 고의로서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성관계 도중 피해자의 중단 요청과 피해자의 몸이 늘어지는 상황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며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인식하고도 쾌락을 위해 이를 용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피고인의 과거 살인 전과도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서 피고인이 목을 조르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살인 등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다"며 "피해자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했으며, 피해자의 유족과 지인들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과거 유사한 수법의 살인 전과가 있고, 그 외에 폭력범죄로 두차례의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자중하지 않고 이 사건 범행으로 피의자의 생명을 빼앗았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강압적 성관계 도중 세이프워드를 외치지 않아 목을 조르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거나 과거 살인전과 때문에 119신고를 못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지난 3월11일 오전 3시30분께 서울 은평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 BJ인 A씨와 가학적인 성관계를 하다가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앞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신입 BJ로 활동하던 피해자에게 약 1200만원을 후원해줬고, 지난 3월 초부터 만남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살인 전과가 있었으며, A씨가 사망하자 강도살인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피해자의 물건을 서울 각지에 나눠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열린 결심 공판에서 김 씨에게 징역 30년과 전자발찌 부착 명령 15년을 구형했다.
한편 김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씨의 전 아내 송모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송씨는 김씨의 도피를 도울 목적으로 김씨에게 290만원을 송금하고 '옷을 바꾸라' '칼을 쓰면 안 된다' 등의 조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김씨의 범행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가 범행 나흘 만에 잡혀 형사·사법의 집행을 방해한 정도도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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