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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그 시절 입시 일타강사들

[기업과 옛 신문광고] 그 시절 입시 일타강사들
커져만 가는 사교육 시장 속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거액을 버는 '일타 강사'가 있는데, 예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과거에도 학원 강사로 시작해 학습서를 집필하고 출판사까지 차려 대기업 못지않은 매출과 수익을 올린 이들이 여럿 있다.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수학의 정석'의 저자 홍성대는 책 판매로 돈을 벌어 전북 전주 상산고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에도 투자한 대표적 인물이다. 영어에서는 송성문의 성문(정통)종합영어가 독보적 교재였다.

'해법수학'을 쓴 최용준도 홍씨와 쌍벽을 이루며 수학 학습서 시장을 양분한 사람이다. 수학의 정석이 범용 학습서라면 해법수학은 대학 본고사에 맞춘 난도가 높은 수학 교재였다(조선일보 1978년 12월 29일자·사진). 1980년 2월의 어느 기사를 보면 수학에서는 수학의 정석과 해법수학이 시장의 90%를, 성문종합영어가 단독으로 60%를 점유하고 있다고 씌어 있다.

해법수학은 1970년대에 매년 1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수학의 정석은 한 해 판매량이 해법수학보다 많은 150만부 이상이었고, 누적 판매량이 5000만권으로 추정된다. 중상위권 수험생을 겨냥한 해법수학은 1981년 본고사 폐지로 큰 타격을 받았다.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는 객관식 대입학력고사에 맞춰 개편해 명성을 이어갔지만, 난제 풀이 위주의 해법수학은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

최용준은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과외로 경력을 쌓아 졸업 후 EMI학원 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폐결핵에 걸려 강사보다는 학습서 집필에 전념해서 내놓은 교재가 해법수학이다. 해법수학 판매량이 떨어졌지만 최용준은 이에 굴하지 않고 출판의 보폭을 공격적으로 넓혀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다. 해법수학을 학력고사에 맞게 개정하고 1981년 천재교육을 설립, 직접 해법수학을 출판해 판매한 것이다.

또 대입 학습서 중심에서 벗어나 중학교와 초등학교 수학 참고서 시장을 공략했다. 천재교과서를 세워 검인정 교과서 발행에도 눈을 돌렸다. 2024년 6월 기준 1974책의 교과서 합격 기록을 세웠다. 최용준의 아들 최정민이 승계한 천재교육의 2023년 연결기준 매출은 1594억원에 이르고 있다. 출판사로서는 작지 않은 매출 규모다.

EMI학원은 중고교 입시가 있던 시절인 1960년대에 종로학원이나 대성학원에 앞서 사교육 시장을 주름잡은 학원의 원조였다. 설립자는 1세대 학원 강사이자 영어 학습서 저자 안현필(1913~1999)이다. 안현필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경기고 영어과 주임, 한국외국어대 교무과장 등을 거쳐 학원을 열었다. 와세다대 영문과를 나온 국문학자 양주동 선생도 영어 강사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안현필은 1950년대 중반부터 '영어실력기초' '영어오력일체' 등 영어 학습서를 8권이나 집필했는데, 특히 영어실력기초는 5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마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듯이 중간중간에 '잔소리'를 넣어 상세히 설명하는 등 책의 구성이 이채로웠다. 1967년 성문종합영어가 나온 뒤 판도가 바뀌었지만, 그 후에도 영어실력기초가 10여년간 성문종합영어와 경쟁하는 등 오랫동안 안현필의 학습서들은 계속 발행되어 학원 교재로도 사용됐다.

본고사 폐지로 교재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영어의 경우 전통적인 문법 위주 교재들은 판매부수가 떨어졌고, 맨투맨 영어 같은 새 교재들이 등장했다. 집필과 강의로 건강을 해친 안현필은 만년에 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소를 세워 건강 전도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안현필은 큰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1999년 사망했다.

그의 사후 2016년 현대적 감각으로 재편집된 뉴영어실력기초가 후학들에 의해 발간됐다. 이 책은 오디오 강의용으로도 나와 이용자가 10만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