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후보보다 먼저 보인다…현수막의 힘
현수막, 후보자 정체성 등 상징적 신호 압축
선거 끝나고 쏟아지는 폐현수막은 '골치'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에 대선 후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6·3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각 후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유권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생활 현장을 찾아 시민과 직접 만나며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는가 하면, 배우자는 조용하지만 뚜렷한 존재감으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전 선거에서 활발했던 밈과 쇼츠 등 온라인 콘텐츠는 자취를 감췄고, 대신 거리 곳곳에 내걸린 전통적인 현수막과 슬로건이 메시지 전달의 주요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본 기획을 통해 후보 전략부터 선거 커뮤니케이션의 변화까지, 이번 대선의 풍경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신고 먹고 안고…후보들의 '메시지' 전략
②말 한마디 신중하게…선거판에 선 배우자
③밈·쇼츠 어디에…조용한 대선 알고리즘
④후보보다 먼저 보인다…현수막의 힘
강렬한 메시지 담긴 현수막…후보자 공약·철학·메시지 압축판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비정상적 상황 속에서, 지난 대선에서 활발하게 활용됐던 자극적 ‘밈’과 짧은 ‘쇼츠’ 영상은 눈에 띄게 줄었다. 초유의 계엄령 여파로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후보들도 절제된 전략을 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통적인 홍보 수단인 현수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거리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은 단순한 안내물이 아니라, 후보자와 정당의 정체성, 정책 방향, 시대 인식이 압축된 메시지판이다. 공약이 명확히 드러난 문구를 통해 유권자들은 후보가 지향하는 국정 운영 철학과 국가 비전의 윤곽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선택을 유도하는 한 문장, 색상과 배치 하나하나가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특히 현수막에는 상대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은 '이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현수막에 반영,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은 '정정당당'이라는 말을 넣어 사법리스크가 있는 이 후보를 직격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측은 이 후보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미래 지향적인 인물임을 강조한다.
현수막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서울 종로 한 번화가에서 만난 50대 남성 직장인 김모씨는 "현수막 하나만 보면 그 사람(후보자)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좋다"면서 "복잡한 유튜브 영상이니 다른거 보다 훨씬 눈에 확 들어온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30대 회사원 박모씨 역시 "현수막이라는 작은 공간에 자기 생각을 알려야 하니까, 가장 중요한 말(메시지)을 담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현수막을) 보는 재미도 있다"거 덧붙였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지금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이번 선거운동 현수막에 내 건 슬로건은 '이제 부터가 진짜 대한민국'이다. 민주당은 해당 슬로건이 12·3 계엄 사태를 극복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김영호 민주당 중앙선대위 홍보본부장은 지난 9일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 대한민국 재도약, 통합된 대한민국이 '진짜 대한민국'"이라며 "이 후보만이 이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부터'라는 표현은 현 정부의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는 유권자들에게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나 피로감을 공감하며 새로운 시작을 제안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또 이 후보 현수막에서 주목할 시각 요소는 우측 하단의 적색 삼각형이다. 민주당의 상징인 파란색과 국민의힘의 빨간색을 조합해 여야 화합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현수막에 사용된 글꼴은 굵고 간결한 형태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특히 현수막에서 보여지는 얼굴과 함께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은, 자신의 대선 공약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2교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롭게 대한민국, 정정당당 김문수'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의 슬로건은 노동운동가, 개혁 정치인, 능력 있는 행정가, 원칙 있는 리더의 길을 걸어온 김 후보의 진정성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그의 좌우명인 '청렴 영생 부패 즉사'의 정신과 약자 보호의 뜻이 담겼다. 여기에 경기도지사 시절 성과인 GTX 사업, 무한돌봄센터 등 국민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갖게 하겠다는 신념이 더해졌다.
'새롭게' 라는 표현은 현 정부의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대한민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정정당당'은 이 후보 비판 성격과 함께 공정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김 후보가 보수 진영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이는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신뢰성과 도덕성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슬로건의 의미는 선거 운동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김 후보 배우자 설난영 여사는 지난 21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정정당당 여성본부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해 "이번 대통령 선거는 청렴과 정직의 '정정당당' 김문수 (후보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부패와 비리·거짓말·막말하는 후보를 선택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 '미래를 여는 선택 이준석'
이준석 후보의 슬로건은 개혁신당 선대위 소속 전성균 홍보본부장과 곽대중 메시지 단장이 도맡아 탄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선을 '과거와 미래의 대결'로 정의했다. 현수막에 반영 된 메시지는 '새로운 시대', '미래를 여는 선택'이다. 그는 지난 12일 21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된 직후 새벽 전남 여수를 찾아 "생산성 없는 정치가 아니라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경쟁하는 정치로 탈바꿈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는 이번 선거를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미래로 갈 것인가'의 선택으로 규정, 자신이 미래형 후보임을 자임했다.
"우리 동네는 왜 현수막 안보이나요"
이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 현수막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이는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후 현수막 설치 개수가 제한된 데에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현행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 투표를 호소하는 후보의 현수막은 읍·면·동 수의 2배 이내로 설치해야 한다.
면적이 넓은(100㎢ 이상) 경우에는 1개를 추가 설치할 수 있다. 다만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교통 신호기·도로 표지 가림 지역, 보행자 통행 및 운전자 시야 방해 장소에는 현수막 설치가 금지돼 있다. 현수막 난립과 혐오 표현으로 인한 시민 피로 등을 줄이기 위해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은 지난해 1월 12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평상시와 선거운동 기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선거철 골칫거리 '폐현수막' 대책은 숙제
/사진=연합뉴스
선거가 끝난 뒤 전국 곳곳에 쌓이는 폐현수막은 해마다 수천 톤에 이르며 환경오염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환경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전국적으로 약 1700톤 정도의 폐현수막이 발생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는 1100톤 그리고 그해 있었던 지방선거에서도 1600톤 정도의 폐현수막이 버려졌다. 2024년 제22대 총선 이후 발생한 폐현수막은 2574톤에 달했다. 이 중 재활용된 양은 769톤으로, 재활용률은 29.9%에 불과했다.
현수막은 보통 폴리에스터·PVC 계열 합성수지로 만들어지며 표면에는 강한 잉크가 인쇄돼 있어 재활용이 쉽지 않다. 보통 소각이나 매립 방식으로 처리돼 환경 부담도 크다. 예를 들어 선거 현수막 1장이 제작 및 소각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는 약 6.28kg 배출된다.
이는 20년생 소나무 한 그루의 1년치 이산화탄소 흡수량과 비슷하다.
권민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은 "폐현수막은 기본적으로 자치구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비정기적이고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특성상 보관 장소가 마련되지 않은 자치구는 보관 등 관리가 어려워 대부분 소각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에서 공용집하장 설치를 통해 폐현수막을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고, 물질재활용(업사이클링, 부직포생산 등), 화학적재활용(원사추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폐현수막의 고품질 재활용도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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