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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다 멀고 화성보다 낯선 소행성… 가장 일본스러운 선택[fn 25주년 창간기획 우주시대 궤도에 오르다]

JAXA, 소행성·위성에 심취한 이유
2014년 탐사선 '하야부사2' 발사
3억㎞ 밖 소행성 '류구' 표본 채취
당초 지름 100m 평탄한 착륙지점
계획 바꿔 6m 남짓한 곳 터치다운
고정밀·고완성 기술문화의 결정체

달보다 멀고 화성보다 낯선 소행성… 가장 일본스러운 선택[fn 25주년 창간기획 우주시대 궤도에 오르다]
2014년 12월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체 'H2A'에 실려 발사된 하야부사2. JAXA 제공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의 우주탐사는 '가장 멀고도 작고 어려운 대상'을 향하고 있다. 미국이 달과 화성 본체에 집중하고, 중국이 유인탐사 확대에 속도를 내는 사이 일본은 소행성과 위성이라는 '틈새 궤도'를 공략하고 있다. 그 대표 사례가 '하야부사2'와 '화성 위성 탐사계획(MMX)' 프로젝트다. 둘 다 거대 천체는 아니다. 그러나 탐사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복잡한 궤도 계산, 정밀착륙 기술, 극한환경에서의 샘플 채취 등 우주기술의 총합이 요구되는 심우주 난이도 최상급 임무다. 일본은 이를 정밀성과 응용성의 무대로 삼고, 고유 탐사철학을 정립해가고 있다.

■하야부사2, 6m의 기적

2014년 발사된 하야부사2는 6년간 52억㎞를 비행해 지구에서 3억㎞ 떨어진 소행성 '류구'에 도달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착륙지점이었다. 당초 계획은 직경 100m의 평탄한 지형이었지만, 실제 류구는 바위와 크레이터투성이였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대폭적인 계획 수정 끝에 지름 6m 남짓한 착륙지점을 선택했다.

더 큰 선택은 그다음이었다. 1차 착륙에 성공한 상황에서 2차 착륙을 시도할 것인가. 내부 논쟁은 컸다. 샘플을 확보했는데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느냐는 신중론과 더 깊은 채굴을 통해 과학적 가치를 키우자는 도전론이 맞섰다.

쓰다 교수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팀은 '할 수 있다'고 했고, 그 믿음을 따랐다. 하야부사2는 2020년 지구로 귀환했고, 수백㎎의 류구 암석 샘플은 지금도 분석 중이다.

하야부사2의 추진기술은 일본만의 독자성이 반영돼 있다. 핵심은 '마이크로파 방전식 이온엔진'. 일반적 이온엔진은 전극을 통해 방전하지만 일본은 전극을 없앤 마이크로파 방전방식을 채택해 마모를 줄이고 긴 수명을 확보했다. 미세하지만 지속가능한 이 추진방식 덕분에 장거리·장기 비행이 가능했다. 또한 착륙 과정에서는 사전 투하된 '타깃 마커'를 기준으로, 고해상도 카메라와 거리 측정 레이저를 복합 활용해 무려 10㎝ 단위로 착륙위치를 제어했다. 이는 세계 최초 수준의 정밀도였다.

■MMX, 포보스를 향한 정밀비행

JAXA가 다음 도전 대상으로 택한 건 화성도 달도 아닌 화성의 위성 '포보스'다. 직경 20㎞ 남짓의 이 위성은 중력이 지구의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천체에서의 착륙과 샘플 채취는 기술적으로 가장 섬세한 설계를 요구한다.

MMX 프로젝트는 하야부사2에서 쌓은 샘플 리턴 기술을 바탕으로, 2026년 H3 로켓으로 발사될 예정이다. 탐사선은 '왕복 모듈-탐사 모듈-귀환 모듈'로 3단 분리 설계됐고, 비행 중 불필요한 모듈을 분리함으로써 중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효율을 극대화했다. 착륙 후에는 로봇암을 통해 2㎝ 깊이의 흙을 최소 10g 채취하는 것이 목표다. JAXA는 중력에 가까운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마이크로그래비티 실험을 수차례 수행했다.

■일본은 왜 '작은 것'들을 탐사하나

"일본 우주탐사는 도전적이다. 크지 않지만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과학을 추구해왔다." 쓰다 교수의 이 말은 JAXA의 전략 방향을 요약한다.

일본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자본과 로켓을 앞세운 우주패권 대신 작고 정밀한 기술력을 선택했다. 하야부사2는 탐사 대상과의 거리뿐 아니라 그 미세한 착륙 오차를 극복해낸 고정밀 엔지니어링의 총결산이었다. MMX는 세계 최초로 화성권 샘플을 지구로 가져오려 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도전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정책 차원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정부는 2024년 우주항공청을 신설해 JAXA와 민간기업, 대학연구소 간의 삼각협업을 제도화하고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우주 부품 산업도 글로벌 틈새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형 궤도 위성보다는 큐브샛, 심우주용 통신기기, 극저온 센서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JAXA 내부에서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달에 발을 디딜 때 우리는 먼 소행성에 손을 댔다"는 자부심이 있다. 일본은 우주 기술을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가 가진 기술문화의 집약체로 본다.
이 문화는 효율성보다 책임과 정밀함을 우선시한다. 이제 일본의 우주개발은 단지 기술을 넘어서 국제사회에서 협력을 주도하는 과학외교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향후 국제표준 구축이나 데이터 공유 협정에도 일본 주도의 구상이 담길 전망이다.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