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NYT "핵 개발 지연 수준"
美국방정보국 초기 보고서 인용
"지하 핵심시설은 무너지지 않아"
트럼프 "가짜뉴스 무례한 주장"
나토行 전용기에서 즉각 반박
백악관 "대통령 폄하 의도" 강조
정보당국은 의회 브리핑 미뤄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들과 기념 만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잔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과 지지부진한 비핵화 협상 끝에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던 미국이 휴전 직후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다시 이란과 대화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미국에서는 이란의 핵시설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 핵개발 불씨가 아직 남았다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란 석유 수출 푸나?
24일(현지시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동하던 가운데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이란의 석유 수출을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지금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계속 살 수 있다"며 "그들이 미국에서도 많은 양을 구입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미국 원자재 시장조사기업 케플러에 의하면 이란은 지난해 기준 일평균 330만배럴을 생산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가운데 3번째로 많은 석유를 생산했다. 지난달에는 일평균 184만배럴을 수출했다. 핵무기 개발 문제로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은 수출하는 석유의 약 90%를 중국에 팔고 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이란의 석유 매출을 꺾어 비핵화 협상을 압박한다던 기존 입장과 어긋난다. 트럼프는 1기 집권기였던 2018년에 '이란 핵합의(JCPOA)'에서 탈퇴한 이후 이란을 향한 경제 제재를 복구했으며 올해 2번째 취임 이후에도 각종 제재를 쏟아냈다. 트럼프는 지난 2월에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로(O)'로 줄인다고 예고했으며, 지난달까지 이란 석유를 취급했다고 알려진 중국의 소형 정유사 및 항만 기업들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그는 지난달 1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산 석유 혹은 석유화학 제품을 어떤 형태로든 구입하는 나라는 '2차 제재'를 받을"것이라며 미국과 거래를 금지한다고 예고했다.
미국 백악관의 고위 관계자는 2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접촉해 트럼프가 이란 압박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는 이란의 핵시설 파괴 및 이스라엘·이란 휴전 중재로 (주요 석유 수송로)호르무즈해협이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기 제작, 길어야 6개월 연기
미국의 'B-2' 전략폭격기들은 21일 이란 내 핵시설 3곳에 '벙커버스터'로 불리는 지하 시설 타격용 항공 폭탄 'GBU-57'을 14발 투하했다. 트럼프는 23일 트루스소셜에 이란의 핵시설들이 "완전히 파괴됐고, 모두가 그것을 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미국의 JD 밴스 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현재 이란은 그들이 보유한 장비로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CNN과 뉴욕타임스(NYT)를 포함한 미국 매체들은 24일 미국 국방부 산하 정보 조직인 국방정보국(DIA)의 초기 평가 보고서와 관계자들을 인용, 이란의 핵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2명의 관계자는 NYT에 이란 핵시설 3곳 중 2곳의 입구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지하 구조물이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란의 3대 핵시설(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 가운데 나탄즈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 규모가 비교적 평범한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은 핵시설의 지상 구조물이 파괴되었지만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원심분리기가 상당수 보존되었으며, 이란이 폭격 전에 핵무기 재료로 쓰이는 농축 우라늄 재고를 다른 소규모 시설로 빼돌렸다고 추정했다.
NYT에 따르면 미국 정보 부서들은 이번 폭격 전 분석에서 이란이 당장 핵무기 제조를 서두른다면 3개월 안에 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DIA는 보고서에서 폭격으로 이란의 핵무기 제작 기간이 지연되긴 했지만 길어야 6개월 더 걸린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암반 아래 건설된 지하 핵시설을 파괴하려면 최소 이틀 이상 연속으로 폭격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는 24일 유럽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DIA 보고서 관련 보도에 대해 "언론은 정말 무례하다. '가짜뉴스' CNN은 완전한 파괴가 아닐 수 있다고 하던데 공습은 완벽했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의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도 이날 DIA 보고서가 "일급기밀임에도 당국 내 익명의 '하급' 실패자에 의해 유출됐다"면서 관련 보도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밀 유출은 확실히 대통령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용감한 폭격기 조종사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폭격 성과에 대한 의혹은 미국 정치권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NYT에 의하면 미국 주요 정보기관 수장들은 24일 상·하원 의원들에게 폭격 성과에 대한 비공개 브리핑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정보 당국은 이날 상원과 하원 브리핑을 각각 26일, 27일로 갑자기 연기하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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