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법부,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지키지 못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자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 피고인이 육군본부 계엄 보통군법회의(재판장 김영선 중장)에서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포승에 묶여 걸어오며 웃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형사재판 재심이 16일 시작됐다. 1980년 5월 사형이 집행된 지 45년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김 전 부장의 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에 대한 재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재심을 청구한 김 전 부장의 여동생 김정숙씨는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얻어 "1980년 10·26은 대한민국 사법부에 있어서도 치욕의 역사일 것"이라며 "(당시) 사법부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유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빠가 막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 100만명 이상이 희생됐을 것"이라며 "이번 재심은 대한민국 사법부 최악의 역사를 스스로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김 전 부장 측 변호인단은 당시 군사재판의 절차적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체포 직후 수사기관의 구타와 고문 사실을 언급하며 "당시 재판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무력화했다"면서 "1979년 10월 27일 기소 이후 불과 17일 만에 사형 선고가 났을 만큼 졸속으로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1979년 10월 27일 발령된 비상계엄 자체가 위헌·위법이므로, 당시 보안사령부에는 김 전 부장을 체포·수사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10·26과 지난해 12·3 비상계엄은 45년 만의 데자뷔"라며 "윤석열이 다시 45년 전 김재규를 불러왔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개인에 대한 살인 사건일 수는 있지만 국헌문란은 아니었고, 피고인은 박정희를 살해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며 "당시 신군부는 정권 탈취 의도에서 내란 프레임을 씌우고 사건을 왜곡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성을 따지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찰에 요청했다.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9월 5일 오후 2시 30분으로 정했고, 이날 검찰은 재심 청구 사유에 대한 답변과 기존 증거 정리, 향후 입증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김 전 부장은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5월 사형에 처해졌다.
유족들은 2020년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심리 끝에 지난 2월 19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이 이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5월 13일 유족 측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 서울고법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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