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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차 팔까? 아니, 애 힘들게 할 수는 없잖아"… 리터당 2천 원을 버티는 가장들 [얼마면 돼]

카푸어 조롱에 가려진 아빠들의 '움직이는 요새'
차 없는 주말 외출, 달콤한 휴식이 '행군'이 되는 이유
리터당 2천 원, 낡은 구두로 버텨내는 잔혹한 명세서
가족의 곤한 잠을 위해, 오늘도 묵묵히 핸들을 쥔다


"우리 그냥 차 팔까? 아니, 애 힘들게 할 수는 없잖아"… 리터당 2천 원을 버티는 가장들 [얼마면 돼]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루 생성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퇴근길, 주유소 전광판에 선명하게 찍힌 '휘발유 2,000원'이라는 숫자를 보며 40대 직장인 C씨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가득 주유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결제 알림이 울린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달은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자동차 보험 갱신 달이다. 가벼운 접촉 사고라도 한 번 났다 치면 훌쩍 오르는 보험료에, 엔진오일 교체와 타이어 점검 비용까지 더해지면 C씨의 얇은 지갑은 쉴 틈 없이 털린다.

"여보, 기름값도 비싼데 주말엔 차 두고 지하철 탈까? 우리 집은 차가 상전이야."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핀잔 섞인 농담에 C씨는 쓴웃음을 짓지만, 결코 운전대를 놓을 생각은 없다. 백미러 너머로 고된 학원 픽업을 마치고 뒷좌석 카시트에 기대어 곤히 잠든 10살 아들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3040 가장들에게 자동차는 과연 사치일까.

10화에서는 카푸어라는 가벼운 조롱 뒤에 가려진, 가족의 안전과 아이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가장들의 무거운 '모빌리티 계산서'를 들여다본다.

◇ '과소비'라는 오해… 40대에게 차는 '움직이는 요새'다


"우리 그냥 차 팔까? 아니, 애 힘들게 할 수는 없잖아"… 리터당 2천 원을 버티는 가장들 [얼마면 돼]
지난 10일 오후 6시쯤 광주 도시철도 2호선을 이용하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뉴스1

최근 도로 위에 늘어난 고가의 패밀리카나 수입차를 보며 일부에서는 '하차감(차에서 내릴 때 타인의 시선에서 느끼는 만족감)'에 중독된 과소비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가정을 책임지는 40대 남성들의 현실을 절반만 이해한 단편적인 시각이다.

이들에게 차는 출퇴근길 1분 1초의 피로를 줄여주는 유일한 휴식 공간이자, 무엇보다 '아이를 위한 필수 생존템'이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차량 유무는 삶의 질을 극명하게 가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전하게 등하원을 시켜야 하고,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서는 것 역시 아빠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 그냥 차 팔까? 아니, 애 힘들게 할 수는 없잖아"… 리터당 2천 원을 버티는 가장들 [얼마면 돼]
11일 오후 김해 연지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뉴스1

차가 없는 외출은 당장 집 근처 공원만 가더라도 엄청난 피로도를 양산하며, 가족 모두의 달콤한 휴식을 고역으로 만들어버린다. 대중교통의 인파 속에서 아이가 겪을 피로도와 위험을 생각하면, 가장에게 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더 깊은 곳에는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싶은 부모의 서글프지만 현실적인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또래 문화가 형성되는 시기, 친구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차종으로 평가받는 차가운 현실을 아빠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튼튼하고 좋은 차에서, 어깨를 펴고 내리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허세가 아니라,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방패를 쥐여주고 싶은 아빠의 본능이다.

◇ 삼겹살 외식을 포기하게 만드는 숨 막히는 '유지비'

"우리 그냥 차 팔까? 아니, 애 힘들게 할 수는 없잖아"… 리터당 2천 원을 버티는 가장들 [얼마면 돼]
중동 전쟁 여파로 기름값 상승세가 지속된 지난 7일 부산의 한 주유소에서 유류 가격 표시판 뒤로 승용차 주유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뉴시스

하지만 이 방패를 유지하는 대가는 혹독하다.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며 리터당 2,000원을 위협하는 기름값은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 지출이 되었다.

단순히 주유비가 끝이 아니다. 매년 돌아오는 수십만 원의 자동차 보험료와 세금, 주기적으로 갈아주어야 하는 타이어와 엔진오일 등 소모품 비용은 가계부의 숨통을 조인다. 주차하다 벽에 살짝 긁히기라도 하면,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수리비 청구서가 날아든다. 한 달 생활비의 상당 부분이 '길바닥'에 뿌려지는 구조다.

결국 이 거대한 유지비를 감당하기 위해 가장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허리띠를 졸라맨다.

주말 저녁 가족들과 오붓하게 구워 먹으려던 프리미엄 삼겹살 외식을 포기하고 집에서 찌개를 끓이며, 자신의 낡은 구두 밑창 교체 시기를 한 번 더 미루는 식이다. 차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굴러가는 셈이다.

◇ 묵묵히 가족의 목적지로 핸들을 꺾는 당신을 응원하며

"우리 그냥 차 팔까? 아니, 애 힘들게 할 수는 없잖아"… 리터당 2천 원을 버티는 가장들 [얼마면 돼]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의 이미지입니다.

누군가는 그 돈을 모아 투자를 하거나 노후를 대비하라고 쉽게 충고한다.

하지만 경제적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가족을 향한 40대 가장의 책임감이다.

백미러로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며 핸들을 쥐는 아빠의 손목에는 단순한 쇳덩어리가 아닌, 가족의 평온한 일상이 얹혀 있다. 비록 주유기 터치 패널 앞에서 매번 숫자를 확인하며 주춤할지라도, 가족이라는 가장 소중한 VIP를 태우고 묵묵히 내일을 향해 시동을 거는 대한민국 모든 운전자 가장들에게 따뜻한 지지와 건투를 보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