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진 지구가 바꾼 재난 조건]
온실가스 농도 최고치, 대기와 바다에 쌓인 열
폭염·폭우·가뭄·산불로 번진 극한 날씨
더위에 햇볕 가리는 프랑스 파리의 관광객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온실가스로 대기와 바다에 쌓인 열은 폭염과 폭우, 가뭄과 산불의 조건을 바꾸고 있다. 산업화 이전보다 더워진 지구에서 재난의 강도와 피해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지구가 더워진 뒤 재난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폭염은 더 오래 이어지고, 많은 수증기를 품은 대기는 짧은 시간에 강한 비를 쏟아낸다. 비가 끊긴 지역에서는 토양과 식생이 빠르게 마르고, 뜨거운 바다는 태풍과 허리케인에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한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3월 공개한 '2025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2025년까지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11년이었다고 밝혔다. 2025년의 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보다 약 1.43도 높았다. 2024년은 1.55도 높아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로 남았다.
평균기온 상승은 한 해의 순위 문제가 아니다. 대기와 바다, 얼음, 육지에 열이 쌓이는 방식이 달라지면 극한 날씨도 달라진다. 같은 비라도 좁은 지역에 더 강하게 쏟아질 수 있고, 비가 오지 않는 기간에는 땅과 숲이 더 빨리 마른다. 해수면이 높아진 해안에서는 폭풍해일 피해도 커질 수 있다.
온실가스 농도 최고치, 무너진 지구의 열 균형
지구 온난화의 직접 원인은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다. 석탄·석유·가스 사용, 시멘트 생산, 산림 훼손 등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는 지표에서 우주로 빠져나가야 할 열을 붙잡는다. 이 과정이 강해지면 지구에 들어오는 에너지와 빠져나가는 에너지의 균형이 무너진다.
WMO의 '온실가스 연보' 21호에 따르면 2024년 전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23.9ppm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52% 높았다. 메탄은 1942ppb, 아산화질소는 338.0ppb로 각각 산업화 이전보다 166%, 25% 높았다. WMO는 세 온실가스 농도가 모두 관측 이래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배출량도 줄지 않았다. 국제 연구 네트워크인 글로벌카본프로젝트는 '2025년 전 지구 탄소 예산'에서 2025년 화석연료와 시멘트에서 나온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81억t으로 전년보다 1.1% 늘어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보급이 늘었지만 전 세계 에너지 수요 증가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바다에 쌓인 초과 열, 높아진 해수면
온실가스가 붙잡은 열은 대부분 바다로 들어간다. WMO는 인간 활동으로 더해진 초과 열의 91% 이상이 바다에 저장된다고 설명했다. 육지가 저장하는 열은 약 5%, 얼음을 녹이는 데 쓰이는 열은 약 3%, 사람이 체감하는 지표 부근 대기 온도 상승은 약 1%로 분석했다.
해양 열용량은 2025년 다시 최고치를 경신했다. WMO는 2025년 수심 2000m까지의 해양 열용량이 1960년 관측 시작 이후 가장 높았고, 최근 9년 동안 매년 새 최고치를 보였다고 밝혔다. 2005~2025년 해양 온난화 속도는 1960~2005년보다 2배 이상 빨라졌다.
바다가 데워지면 해수면도 오른다. 물은 따뜻해질수록 팽창하고, 빙하와 빙상이 녹은 물이 바다로 흘러든다. WMO는 2025년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이 1993년 위성 관측 시작 때보다 약 11㎝ 높았다고 밝혔다. 해수면 상승 속도도 2012년 이후가 1993~2011년보다 빨랐다.
해양 온난화는 태풍과 허리케인 같은 열대저기압에도 영향을 준다. 뜨거운 바다는 폭풍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개별 태풍의 진로나 피해는 기압계, 지형, 방재 수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높은 해수면 온도는 강한 비와 바람이 만들어지는 배경이 된다.
수증기 품은 대기, 짧아진 폭우 시간
독일 자르브뤼켄 인근 클라인블리터도르프 마을이 불어난 물에 잠겨 있다.사진은 2024년 모습. 사진=연합뉴스
폭우는 기후변화를 설명할 때 가장 분명하게 체감되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대기가 따뜻해지면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을 수 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 포화수증기량은 약 7% 증가한다는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론 관계가 기초 설명으로 쓰인다.
수증기가 많아진 대기에서 상승기류가 강해지면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릴 수 있다. 강한 비가 도시의 배수 능력을 넘어서면 지하차도와 반지하 주택, 저지대 도로가 먼저 잠긴다. 산지에서는 물이 계곡으로 몰리면서 토사와 나무, 바위가 함께 내려올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전 지구 규모의 고온 극한 현상을 늘렸고, 여러 지역에서 강한 강수의 빈도와 강도도 커졌다고 평가했다. 폭우 피해에는 도시화, 배수시설 한계, 산지 개발, 하천 주변 거주 같은 지역 요인도 함께 작용한다.
한국에서도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장마철 전체 강수량보다 시간당 강수량, 좁은 지역에 집중되는 비, 야간 폭우가 피해를 좌우하는 사례가 늘었다. 같은 비라도 하천 정비 상태와 대피 시간, 지하 공간 이용 방식에 따라 인명 피해 규모가 달라진다.
마른 토양과 강한 바람, 커지는 산불 위험
기온 상승은 비가 오지 않는 기간의 위험도 키운다. 강수 공백이 길어지면 높은 기온은 토양 수분을 더 빨리 빼앗는다. 식물과 낙엽, 나무줄기가 마르면 불이 붙기 쉽고, 바람이 강한 날에는 불길이 산 능선과 주거지 주변으로 빠르게 번질 수 있다.
IPCC는 인간 영향이 1950년대 이후 복합 극한 현상의 가능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전 지구적으로 폭염과 가뭄이 함께 나타나는 일이 늘었고, 남유럽·북유라시아·미국·호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산불 기상 조건이 더 위험해졌다는 분석도 냈다.
산불은 숲만 태우는 재난이 아니다. 연기는 호흡기 질환 위험을 높이고, 송전선과 도로, 주택, 관광·농업 피해로 이어진다. 대형 산불 뒤에는 비 피해도 커질 수 있다. 식생이 사라진 산지는 토양을 붙잡는 힘이 약해지고, 강한 비가 내리면 흙과 재가 하천으로 쓸려 내려간다.
폭염과 가뭄 뒤에 산불이 나고, 산불 뒤에 비가 내려 토사 피해가 생기는 식의 연쇄 피해는 복구 시간을 줄인다. 한 지역이 폭염, 가뭄, 산불, 폭우를 차례로 겪으면 주민과 지방정부의 대응 여력도 빠르게 소진된다.
줄어드는 빙하와 해빙, 달라지는 물길
빙하와 적설, 해빙은 지구의 열을 반사하고 물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얼음이 줄면 어두운 바다와 땅이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한다. 산악 지역에서는 빙하가 물러나며 지형과 물길이 달라진다.
WMO는 2024~2025년 수문연도에 기준 빙하의 질량 손실이 관측 이래 최악의 5개 해에 들었다고 밝혔다. 북극 해빙의 2025년 연평균 면적은 위성 관측 이후 최저 또는 두 번째 최저 수준이었다. 남극 해빙의 연평균 면적도 2023년과 2024년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았다.
빙하가 줄면 고산 지역의 하천 흐름도 바뀐다. 단기적으로는 녹은 물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기 수자원이 줄어든다. 빙하호가 커지거나 얼어 있던 지반이 약해지면 산사태와 홍수 위험도 커질 수 있다. 히말라야와 안데스 산맥 등 산악 지역에서 빙하 변화는 물 공급과 재난 대응의 문제가 됐다.
개별 재난 원인과 달라진 기후 조건
벨기에 산불. 사진=연합뉴스
기후변화만으로 개별 재난의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홍수와 산불, 태풍은 당시 기압 배치와 비구름의 이동, 지형, 토지 이용, 배수·방재 시설, 대피 여부에 따라 피해가 달라진다.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산지 계곡에서는 급류와 산사태가, 도심 저지대에서는 침수와 지하공간 고립이, 해안 도시에서는 폭풍해일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다만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진 지구에서는 재난이 커질 조건이 달라진다.
대기와 바다에 쌓인 열은 폭염을 오래 머물게 하고, 수증기가 늘어난 대기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비를 쏟아낼 수 있다.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과 산악 하천 흐름이 바뀌고, 비가 끊긴 지역에서는 마른 토양과 식생이 산불 확산의 배경이 된다.
셀레스테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일상적으로 우리의 날씨는 더 극단적으로 변했다"며 "2025년 폭염, 산불, 가뭄, 열대저기압, 폭풍, 홍수가 수천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백만명에게 영향을 줬으며 수십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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