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4월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서울교통공사의 민사손해배상 소송 청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서울 지하철 승강장에서 탑승 시위를 이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상대로 서울교통공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4년여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이동권 관련 조례안이 통과되며 사회적 불씨가 됐던 '탑승 시위'는 멎었지만 5년여간의 투쟁으로 말미암은 법적 공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과 박경석 대표 등 관계자 14명을 상대로 낸 6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오는 11월 4번째 변론기일을 맞이한다. 과거 법원이 제시했던 강제조정안이 깨진 뒤 본안 심리가 본격화되면서 양측의 법리 대립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탑승 '시위'로 인한 '불편' 1000회 이상
2001년 경기 시흥시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이 숨진 사고를 계기로 시작한 시위는 2021년 세계장애인의 날을 시작으로 무대를 출근길로 옮겼다. 올해 1월 19일을 기준으로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1000회를 넘어섰고, 시민들의 불편 역시 비례해 커져왔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장연 관련 민원은 4532건으로 2023년(1104건)보다 4배 이상 급등했다.
시위를 시작한 지 1년여 무렵공사는 2023년 1월 6억145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공사 측은 전장연 활동가들이 출근 시간대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휠체어를 세워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아서는 등의 방식으로 고의로 열차를 지연시켰다고 주장한다. 열차 운행 지연에 따른 손실금, 승차권 환불액, 대체 수송비, 현장 안전 관리를 위한 추가 인력 투입 비용 등이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왔다.
특히 출근길 불특정 다수 시민의 이동권을 장시간 침해한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 한계를 벗어난 불법행위라고 봤다.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전장연 구성원들이 연대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3년 1월을 전후로 공사는 지속적으로 전장연에 손배소를 제기해왔다. 약 5000만원 가량의 1차 손배소를 포함해 2023년 스티커 제거·청소 비용을 포함한 1억2780만원의 손배소, 2023년 하반기와 2024년 혜화역 등지에서의 운행 방해를 이유로 제기한 3억8760만원 등 총 11억6800여만원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장연 "시민께 죄송...'입막음 소송' 대응"
반면 전장연 측은 해당 시위가 헌법상 기본권 행사이자 정당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공사가 주장하는 손해액 역시 시위를 벌인 개개인의 구체적인 행위와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기업이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지렛대 삼아 소수자의 권리 옹호 활동과 의사표현을 위축시키려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앞서 법원은 2022년 말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동선을 확보하고, 전장연은 열차 운행을 5분 초과해 지연시키는 시위를 할 경우 1회당 500만 원을 공사에 지급하라는 강제조정안을 낸 바 있다. 전장연은 수용 의사를 밝혔으나, 서울시와 공사가 "단 1분의 열차 지연도 허용할 수 없다"며 이의를 신청해 조정은 결렬됐다. 이후 손배소를 유지하며 전장연 구성원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소송이 활용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장연 관계자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행위를 막기 위한 전략적 소송"이라며 "민사소송 변론지원단을 구성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민 불편에 대해서는 늘 무겁고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향후 열차를 멈춰세우는 방식의 탑승 시위는 멈추고 역사 내 선전과 대화 요구를 위주로 행동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치·행정 영역에서 정책과 대화로 풀어야 할 복지 문제가 민사 손배소 등 사법적 영역으로 번지며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게 됐다. 최강용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일반 시민의 이동의 자유와 사회적 소수자의 집회·시위의 자유가 정면으로 충돌할 때, 두 기본권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이 헌법재판소가 기본권 충돌 상황을 해결하는 하나의 원칙"이라며 "양측의 권리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화롭게 보장될 수 있도록 사법적 판단과 제도적 중재가 정밀하게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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