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호암미술관이 개최한 동아시아 불교미술 기획전이 흥행을 거두면서 삼성그룹 오너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재조명되고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30여년간 수집한 고미술품을 기반으로 세워진 호암미술관에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기증한 미술품들이 다수 전시된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국내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쏟은 아낌없는 투자가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경기 용인시 소재 호암미술관에는 지난 3월 27일부터 진행 중인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기획전을 감상하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5월 말까지 일 평균 관람객 수만 1000명이 넘어 누적 6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기획전은 한국·일본·중국 등 3개국의 불교미술을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본격 조명한 세계 최초 전시다. 호암미술관은 세계 유수의 불교미술 명품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5년의 시간을 투자해 전시를 준비했다. 실제 전시에 포함된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고서화인 '수월관음보살도'는 자국 소장처에서도 자주 전시하지 않고, 한번 전시되면 상당 기간 작품 보존을 위해 의무적인 휴지기가 있다. 그만큼 전시되는 기회 자체가 드물다. 해외에서 중요 작품 1~2점을 대여해 전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국, 일본, 미국, 유럽 소재 27개 컬렉션에서 불교미술 걸작품 92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극히 이례적이다. 92점 중 한국에 처음 들어온 작품만 47점에 달한다. 호암미술관이 해외 개인 소장가에게 대여한 일명 '백제의 미소',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국내에서 일반인에 최초로 공개됐다. 수만개의 자개 조각으로 촘촘하게 이뤄진 불교경전을 담는 상자인 '나전 국당초문 경함'은 전 세계에 단 6점만 남아있는 고려시대 국보급 작품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궁중숭불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등도 전시됐다.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아미타여래도', '석가여래설법도' 등 4점도 일반에 최초 공개됐다. 이재용 회장은 이번 전시를 5차례나 둘러볼 만큼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특히 이 회장은 비즈니스 미팅차 한국을 찾은 해외 주요 인사들을 전시에 초청해 한국 전통 문화를 소개하고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삼성의 노력과 기여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함께 방문한 일행들에게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확대해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창업회장이 30여년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1982년 4월 22일 개관했다. 이병철 창업회장은 개인적으로 모은 국보·보물 10여점을 포함한 문화재 1167점을 1978년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재계의 유명한 예술애호가였던 이건희 선대회장은 한국의 소중한 문화재가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를 모아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지난 2021년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삼성 오너 일가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개인 소장품 2만30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오너가 3대에 걸친 미술 사랑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국민들에게 명작의 힘과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해줬다"며 "국내 미술문화 부흥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2024-06-04 19:01:12[파이낸셜뉴스] 삼성 호암미술관이 개최한 동아시아 불교미술 기획전이 흥행을 거두면서 삼성그룹 오너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재조명되고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30여년간 수집한 고미술품을 기반으로 세워진 호암미술관에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기증한 미술품들이 다수 전시된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국내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쏟은 아낌없는 투자가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경기 용인시 소재 호암미술관에는 지난 3월 27일부터 진행 중인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기획전을 감상하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5월 말까지 일 평균 관람객 수만 1000명이 넘어 누적 6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기획전은 한국·일본·중국 등 3개국의 불교미술을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본격 조명한 세계 최초 전시다. 호암미술관은 세계 유수의 불교미술 명품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5년의 시간을 투자해 전시를 준비했다. 실제 전시에 포함된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고서화인 '수월관음보살도'는 자국 소장처에서도 자주 전시하지 않고, 한번 전시되면 상당 기간 작품 보존을 위해 의무적인 휴지기가 있다. 그만큼 전시되는 기회 자체가 드물다. 해외에서 중요 작품 1~2점을 대여해 전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국, 일본, 미국, 유럽 소재 27개 컬렉션에서 불교미술 걸작품 92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극히 이례적이다. 92점 중 한국에 처음 들어온 작품만 47점에 달한다. 호암미술관이 해외 개인 소장가에게 대여한 일명 '백제의 미소',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국내에서 일반인에 최초로 공개됐다. 수만개의 자개 조각으로 촘촘하게 이뤄진 불교경전을 담는 상자인 '나전 국당초문 경함'은 전 세계에 단 6점만 남아있는 고려시대 국보급 작품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궁중숭불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등도 전시됐다.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아미타여래도', '석가여래설법도' 등 4점도 일반에 최초 공개됐다. 이재용 회장은 이번 전시를 5차례나 둘러볼 만큼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특히 이 회장은 비즈니스 미팅차 한국을 찾은 해외 주요 인사들을 전시에 초청해 한국 전통 문화를 소개하고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삼성의 노력과 기여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함께 방문한 일행들에게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확대해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창업회장이 30여년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1982년 4월 22일 개관했다. 이병철 창업회장은 개인적으로 모은 국보·보물 10여점을 포함한 문화재 1167점을 1978년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재계의 유명한 예술애호가였던 이건희 선대회장은 한국의 소중한 문화재가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를 모아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지난 2021년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삼성 오너 일가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개인 소장품 2만30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오너가 3대에 걸친 미술 사랑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국민들에게 명작의 힘과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해줬다"며 "국내 미술문화 부흥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2024-06-04 16:21:53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들의 번뇌와 염원, 공헌에 초점을 맞춘 대규모 전시가 국내 최초로 열린다. 호암미술관은 오는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이 같은 내용을 주제로 하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전을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1부에서는 불교미술 속에 재현된 여성상을 인간, 보살, 여신으로 나눠 지난 시대와 사회가 어떤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봤는지를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불교미술품 너머 후원자와 제작자로서 여성을 발굴해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기로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을 살핀다. 호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국내외 27개 컬렉션에서 불화와 불상, 사경과 나전경함, 자수, 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의 불교 미술품 90여건을 한데 모았다. 국내 소장품으로는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중앙박물관 등 9곳 소장처의 국보 1건과 보물 10건 등 40건이 출품됐다. 이중에는 '이건희 컬렉션' 9건도 포함돼 있다. 해외에 있는 불교 미술품도 대거 전시된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보스턴미술관 등 미국의 4개 기관과 영국박물관 등 유럽의 3개 기관, 도쿄국립박물관 등 일본의 11개 소장처에서 빌려온 일본 중요문화재 1건, 중요미술품 1건 등 52건이 전시에 나온다. 전시작 중 7세기 중반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개인 소장)과 고려시대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리움미술관 소장), 고려 '아미타여래삼존도'(리움미술관 소장) 등 9건은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라고 호암미술관은 소개했다. 해외에 흩어져 있던 15세기 조선 불전도(석가모니 일생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 세트의 일부인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 소장)와 '석가출가도'(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소장)를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전시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석가여래삼존도' 등 해외 소장품 47건도 한국에서 처음 전시된다. 이승혜 호암미술관 큐레이터는 "시대와 지역, 장르 구분을 벗어나 여성의 염원과 공헌이란 관점에서 불교미술을 조명하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전통미술 속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3-25 16:00:00[파이낸셜뉴스] 조선시대 건립된 오대산 사고(史庫)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으로 탈바꿈한다. 조선왕조실록·의궤 등 관련 유물 1207점을 만나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실록박물관 개관으로 우리나라 기록유산인 오대산 사고본 등 조선왕조실록·의궤와 관련 유물을 효과적으로 보존하게 됐다"며 "연구·전시·교육 등을 통해 그 가치를 확산할 것"이라고 9일 밝혔다. '사고(史庫)'란 국가의 주요 서적을 보관하는 장소를 말한다. 서울에 있는 것을 내사고(內史庫), 지방에 있는 것을 외사고(外史庫)라 칭했다. 오대산 사고는 강원권을 대표하는 사고로 1606년(선조 39)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 북쪽에 설립됐다. 앞서 실록과 의궤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 실록 전량과 의궤 일부가 일본으로 반출됐다. 실록의 경우 전체가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됐는데,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10여년 후인 1932년 5월 남아있는 실록 오대산 사고본 중 일부 27책이 경성제국대로 반환됐다. 1973년 국보로 지정된 오대산 사고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민간과 불교계, 정부는 지속적인 반환 노력 끝에 2006년(도쿄대, 서울대에 47책 반환)과 2017년(일본에서 1책 추가 매입 환수) 실록을, 2011년에 의궤를 국내로 환수했다. 현재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75책, 환수된 의궤는 82책이 전해진다. 실록과 의궤는 국내로 환수된 후 줄곧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오다가 원 소장처인 오대산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지역의 오랜 염원에 따라 문화재청이 오대산에 설립한 실록박물관에서 소장, 관리하게 됐다. 오대산 사고에 있던 실록과 의궤가 기나긴 '타향살이'를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1913년 실록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10년 만이다. 박물관 건물은 기존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운영했던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새로 단장해 사용한다. 오는 12일 개관하는 실록박물관은 실록의 원본을 상시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실록과 함께 오대산 사고본 의궤 원본도 전시된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매주 화요일은 휴관일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3-11-09 13:14:48[파이낸셜뉴스] 정부가 국가 소유권을 인정받은 국보급 문화유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반환해달라고 소장자에게 18번째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소장자는 이번에도 반환 의사가 없다며 거듭 거부 중이다. 25일 학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최근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씨에게 조속한 반환을 촉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문화재청은 해당 문서에서 ‘상주본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으며, 올해 12월 20일까지 자진 반환하거나 반환 의사를 밝히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이 배씨에게 반환 요청 문서를 보낸 것은 이번이 18번째다. 한때 배씨는 상주본이 1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며 반환 조건으로 1000억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배씨는 반환을 거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017년부터 반환 요청 문서를 보내고 배씨와 수차례 면담하면서 상주본을 회수하고자 했다. 올 들어서는 반환 요청 공문을 처음 발송했다. 앞서 상주본은 경북 상주에 거주하는 배씨가 2008년 서울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과 다른 해례본을 찾아냈다며 일부를 공개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해례본은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관련 해설, 용례를 담고 있어 가치가 매우 높다. 상주본은 서문 4장 등 일부가 빠져 있지만, 전반적인 상태는 나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배씨가 소장처를 밝히지 않으면서 1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대법원은 상주본의 국가 소유권을 인정했지만, 유물 반환과 금전적 보상 요구 논란 등이 얽히면서 뚜렷한 해결책 없이 여전히 공전 중이다. 현재 문화재청은 누리집의 ‘도난 문화재 정보’를 통해 상주본이 2012년 5월부로 국가 소유가 됐다는 사실을 명시하며 도난 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3-08-25 14:08:14【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가천문화재단과 (사)한국출판학회는 가천박물관 소장 창간호를 대상으로 학술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가천박물관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창간호와 잡지 등의 출판물을 2만여점 넘게 소장해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으며, 한국출판학회는 다년간 출판학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역량을 쌓아왔다. 이번 MOU를 통해 가천박물관 창간호에 대한 깊이있는 학술적 접근과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창간호에 담긴 시대정신을 고찰하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양 단체는 이번 MOU를 바탕으로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하고 올해 5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41회 한국출판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가천문화재단은 한국 전통문화를 발굴·보전하고자 지난 1991년에 설립됐다. 재단에서 무료 운영 중인 가천박물관은 국내 최대 의료사 전문 박물관으로 소장자료는 총 10만점에 달하며, 인천 유일의 국보소장처이다. 지난 1997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창간호를 보유한 박물관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국출판학회는 1969년에 발족된 학술단체로 KCI 등재학술지 발행·정기학술 대회 개최 등 다양한 학술활동을 펼치며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윤성태 가천문화재단 이사장은 “가천박물관의 창간호는 재단 설립자이신 이길여 가천대 총장께서 창간호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수집한 것에서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모아온 2만633점의 창간호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전 세대와 향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2-02-14 15:09:37[파이낸셜뉴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동의보감’(25책)과‘자산어보’(1책) 2건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주관하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과학기술사-3-2(2020) 호와 과학기술사-7(2020) 호로 등록됐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동의보감’은 1614년 2월부터 오대산사고에 보존된 내사본(內賜本)으로, 이용이 되지 않은 영구보존용이었기 때문에 최상의 보존상태를 유지하여 현재 보아도 감탄할 정도로 초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지식문화유산이다. 2009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5년에 보물 제1085-1호에서 국보 제319-1호로 승격되었으며, 올해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도 등록되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동의보감’은 선조의 명을 받은 허준(1539~1615)이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아시아의 의서 200여 종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편찬한 자료이다. 병의 치료에만 그치지 않고 예방과 건강 도모까지 다룬 혁신적인 종합의학서로서, 이와 같은 의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간행 후 우리나라, 중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간행되는 등 국제 의학서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정약전 자필의‘자산어보’는 현재 전해지고 있지 않으며, 소수의 후대 필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산어보’는 1946년에 필사되었지만 원본소장자, 필사자, 교정자의 이름과 필사 시기 등의 정보가 분명하게 적혀 있다. 이에 과학기술에 대한 역사적,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되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1758~1816)이 귀양 가 있던 흑산도 연해의 어류를 조사하여 1814년에 정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백과사전이다. 1권은 비늘이 있는 물고기인 인류(鱗類), 2권은 비늘이 없는 물고기인 무인류(無鱗類)와 껍질이 딱딱한 바다 생물인 개류(介類), 3권은 그 밖의 바다 생물인 잡류(雜類)로 나누어 다루었다. 비록 오늘날의 과학적 분류법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류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여 이해하려는 과학적 사고가 잘 담겨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국가도서관이자 최대의 고문헌 소장처 중 한 곳으로서, 이번‘동의보감’과‘자산어보’의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등록을 계기로 과학기술사적 가치가 높은 소장 고문헌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는 일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1-03-01 09:54:18[파이낸셜뉴스] 문화재청은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하게 남아 있고 24m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인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사찰목판, 전적.불교문화재 등 12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국보 제335호)는 1680년(숙종 6) 8월 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 중 개국공신부터 보사공신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회맹제가 거행된 시기와 이 회맹축을 조성한 시기가 15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숙종 재위(1674~1720년) 중 일어난 여러 정치적 변동 때문이었다. 당시 남인과 더불어 정치 중심세력 중 하나였던 서인은 1680년 경신환국을 계기로 집권해 공신이 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공신으로서 지위가 박탈됐다. 이후 서인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다시 집권하면서 공신 지위를 회복하였고 이때 1등~3등까지 총 6명(김만기, 김석주, 이입신, 남두북, 정원로, 박빈)에게 ‘보사공신’ 칭호가 내려졌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회맹축은 숙종 연간 보사공신이 있기까지 공신으로 지위 부여(녹훈)와 박탈(삭훈), 회복(복훈)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물자료이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 종묘에 올리는 축문(제사 때 신에게 축원하는 글)과 제문으로 구성됐으며,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시명지보’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 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1646년(인조 24)년과 1694년(숙종 20) 제작된 회맹축, 1728년(영조 4) 분무공신 녹훈 때의 회맹축이 그것이다. 이 중 영조 때 만들어진 이십공신회맹축의 실물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1646년에 제작된 ‘이십공신회맹축-영국공신녹훈후’(보물 제1512호)는 국새가 날인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어람용이자 형식상·내용상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회맹축은 이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유일하다. 이 회맹축은 17세기 후반 숙종 대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을 거치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서도 역사·학술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왕실유물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제작되어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의 백미(白眉)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하므로 국보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 지정 대상에는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이 포함되었다. 이는 문화재청이 사찰 문화재의 가치 발굴과 체계적 보존관리를 위해 (재)불교문화재연구소와 연차적으로 시행하는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의 성과다. 2016년에 조사한 경상남도 지역 사찰에서 소장한 목판 중 완전성, 제작 시기, 보존상태, 희소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총 3건을 지정대상으로 선정했다. 지정 대상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선원제전집도서 목판’(보물 제2111호)은 지리산 신흥사 판본(1579)과 순천 송광사 판본을 저본(底本)으로 해 1603년(선조 36) 조성된 목판으로, 총 22판 완질이다. 이밖에 고려 시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자료인 ‘고려사’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 처음으로 보물 지정했다. ‘고려사’의 보물 지정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나라 고대와 조선 시대사 관련 중요 문헌들이 모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상황에서, 그동안 고려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사서인 ’고려사‘ 역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새롭게 역사·학술·서지적 가치를 검토한 결과다. 보물 지정 대상은 현존 ‘고려사’판본 중 가장 오래된 을해자 금속활자본과 목판 완질본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을 비롯해, 연세대학교 도서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등 3개 소장처에 보관된 총 6건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1-02-18 09:04:39[파이낸셜뉴스] 고려시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자료 '고려사(高麗史)'가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22일 고려사 6건에 대해 이같이 예고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은 이미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상태다. 하지만 고려사는 지금껏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다. '고려사' 역시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돼왔다. '고려사'는 당대 고려시대에는 정식으로 편찬된 적이 없다. 조선시대 들어 1449년(세종 31) 처음 편찬되기 시작했다. 1451년(문종 1)에 완성됐고 1454년(단종 2)에 반포됐다고 한다. 총 139권으로 편찬된 '고려사'는 세가(世家) 46권, 열전(列傳) 50권, 지(志) 39권, 연표(年表) 2권, 목록(目錄) 2권으로 구성됐다. 1455년(세조 1) 을해자로 간행된 금속활자 판본이 있었고 그 뒤 중종 연간(1506~1544) 을해자 판본을 목판에 다시 새겼다고 하나, 지금은 1482년(성종 13)에 을해자로 간행한 판본, 1613년(광해군 5)에 을해자본을 번각해 새긴 목판본의 초간본, 1613년에 을해자본을 번각한 목판본의 후쇄본(17~18세기 추정)이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상은 현존 '고려사' 판본 중 가장 오래된 을해자 금속활자본과 목판 완질본으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해자 2건/ 목판본 2건), 연세대 도서관(목판본 1건), 동아대 석당박물관(목판본 1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4호) 등 총 3개 소장처에 보관된 6건이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2020-12-23 11:32:17[파이낸셜뉴스] 첫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 원고' 등 한글사전 2종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8일 열린 제5차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 결과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 '말모이 원고'와 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 '조선말 큰사전 원고' 등 2종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학술적 가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지난해부터 자문회의 등에서 국가등록문화재를 대상으로 이를 검토했다. 그 결과 '말모이 원고' 등 총 9건의 문화재가 지정조사 대상으로 선정돼 올해부터 조사를 실시해왔으며 그 첫 결실로 이번에 우리말과 관련된 국가등록문화재 2종이 보물 지정 예고 대상으로 결정됐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두 건 다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 아래 우리 말을 지켜낸 국민적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는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과 그의 제자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의 원고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사전을 의미를 하는 순우리말이다. 주시경과 제자들은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말모이' 편찬에 매진했다. '말모이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된 이래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루어졌으며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말모이 원고'는 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체로 썼고 '알기', '본문', '찾기', '자획찾기'의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알기'는 범례에 해당하는 6개 사항을 표시해 괄호 속에 품사를 제시했으며 뜻풀이는 한글 또는 국한문을 혼용해 서술했다. '찾기'는 색인 본문의 올림말을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했고 '자획 찾기'는 본문에 수록된 한자의 획수에 따라 낱말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한자어와 외래어 앞에는 각각 '+', '×'를 붙여 구분했다. '말모이 원고'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러한 체제가 한 눈에 보일 수 있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 형태의 판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마치 옛것과 새것이 혼합된 듯 고서의 판심제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 라는 서명을 새겼고 원고지 아래 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안내되어 있다.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1916년 김두봉이 이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문법책인 '조선말본'을 간행하기도 했으나, 김두봉이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 상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원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편찬으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간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됐다. '말모이 원고'는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 국어사전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라는 점, 단순한 사전 출판용 원고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의의가 매우 크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에서 1929년부터 1942년에 이르는 13년 동안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한글학회에 8책, 독립기념관에 5책, 개인 소장 1책 등 총 3개 소장처에 분산되어 있다. 특히 개인 소장본은 1950년대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故)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말 큰사전 원고'의 '범례'와 'ㄱ'부분에 해당하는 미공개 자료로 이번 조사 과정에서 발굴해 함께 지정 예고하게 됐다. '말모이 원고'가 출간 직전 최종 정리된 원고여서 깨끗한 상태라면, 이 '조선말 사전 원고' 14책은 오랜 기간 동안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집필 및 수정, 교열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손때가 묻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8일 지금의 서울역인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돼 이를 바탕으로 1957년 6권의 '큰 사전'이 완성되는 계기가 됐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철자법, 맞춤법, 표준어 등 우리말 통일사업의 출발점이자 결과물로서 국어사적 가치가 있지만 조선어학회 소속 한글학자들 뿐 아니라 전국민의 우리말 사랑과 민족독립의 염원이 담겨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29년 10월 31일, 이념을 망라해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결성해 사전편찬 사업이 시작됐고 영친왕이 후원금 1000원(현재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했으며 각지의 민초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오는 등 계층과 신분을 뛰어넘어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 맞선 범국민적 움직임이 밑거름이 됐다. 문화재청은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독립을 준비했던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로서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실체이므로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역사·학술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국민에게 그 의의를 널리 알리고 지속적으로 보존·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말모이 원고' 및 '조선말 큰사전 원고'의 보물 지정 예고를 시작으로 역사·학술적 중요성이 널리 인정된 국가등록문화재 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해 이를 국보·보물 지정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말모이 원고' 등 2종 4건에 대해서는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20-10-08 18: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