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말단 공무원들이 사비를 걷어 국장·과장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공직사회의 이른바 '모시는 날'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연차 공무원들의 공직 이탈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는 가운데,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의 탁상행정이 7일 국정감사의 표적이 될 전망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성곤 의원(제주 서귀포시)이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직사회 '모시는 날' 관행에 대한 공무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모시는 날'은 팀별로 순번이나 요일을 정해 소속 부서의 과장, 국장 등 상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이다. 설문에 응한 지방공무원 1만2526명 중 75.7%인 9479명이 '모시는 날'을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 중 5514명은 최근 1년 이내에 모시는 날을 직접 경험했거나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 공직자들이 최근 1년 내 경험한 '모시는 날'은 주로 점심시간(커피 제외 57.6%, 커피 포함 53.6%, 중복응답 포함)에 이뤄졌다. 저녁식사(7.2%)와 술자리(10.4%)를 진행한다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모시는' 대상은 대부분 소속 부서의 국장과 과장이었다. 둘 다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응답 비중이 44.9%로 절반가량 차지했다. 이어서 과장 35.5%, 국장 17.0% 순으로 높았다. 식사비용 부담 방식(중복선택)은 소속 팀별로 사비를 걷어 운영하는 팀비에서 지출한다는 응답이 55.6%로 가장 많았다. 사비로 지출하되 당일 비용을 갹출하거나 미리 돈을 걷어놓는다는 응답도 21.5%에 달했다. 근무기관 재정을 편법·불법으로 사용한다는 답변도 4.1%로 조사됐다. 국·과장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주로 업무추진비(31.1%)를 이용했다. 조사에 참여한 공무원 10명 중 7명은 모시는 날을 '부정적'(69.2%)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매우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44.7%로 많았다.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43.1%)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다'(25.8%)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모시는 날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사유로는 '시대에 안 맞는 불합리한 관행'이라는 응답이 84%(3189명, 중복응답)로 가장 많았다. '부서장과 식사자리가 불편함'(57.7%·2191명), '금전적 부담'(43.4%·1648명),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음'(39.8%·1510명), '준비 과정이 수고스러움'(38.5%·1462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기술해달라'는 질문은 선택항목임에도 불구하고 2085명이 의견을 제출했다. 제출된 의견에 따르면 "9급 3호봉인데 매달 10만원씩 내는 게 부담스럽다", "월급 500만원 받는 분들이 200만원 받는 청년들 돈으로 점심 먹는 게 이상하다", "차라리 본인몫의 식사비만이라도 지불했으면" 등 박봉의 하급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위성곤 의원은 "젊고 유능한 공직자들이 느끼는 무력감이 가장 큰 문제"라며 "현장 실태를 모르는 중앙부처 담당자들은 수박 겉핥기 식 탁상행정으로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2024-10-07 09:59:02민간기업에 불어닥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공무원 사회 저변에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MZ세대가 불러온 변화의 바람을 따라 관가도 체질개선에 나섰다. 권위적 사고를 일컫는 일명 '꼰대'가 되지 않도록 관리자 스스로 점검하고, MZ세대를 이해하는 공직사회 근무여건 조성에 나선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올해 48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이 같은 지침을 구체적으로 담은 '2021 근무혁신 지침'을 내놨다. 17일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인사처는 '2021 근무혁신 지침' 외에도 MZ세대 공무원과 소통하는 '역으로 지도하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역으로 지도하기'는 MZ세대(1980~90년대 공무원)가 상담자(멘토)가 되어 선배직원에게 조언하고 상담하는 것을 말한다. MZ세대의 생각 및 가치관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지난 7월에는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이 직접 참여했다. '2021년 근무혁신 지침'은 공직사회가 MZ세대 맞춤형 관리방식으로 변화를 준비하는 데 방점을 뒀다. '시보떡'과 같이 MZ세대 공무원 입장에서 비합리적 관행을 사무관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청년 중역 회의(주니어보드)'나 익명게시판 등 공식·비공식 소통채널을 통해 정기적으로 조사·발굴하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도록 했다. 하지만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직사회 특성상 변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MZ세대 공무원이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한 시보떡, 국·과장님 모시는 날 등의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MZ세대 공무원들이 체감하는 변화도 크지 않았다. 일부 기성세대 공무원은 오히려 신세대 후배 공무원들이 공직자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주의 성향을 앞세운 탓에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빡빡한 인력구조와 막중한 업무부담이라는 현실적 개선 없이 조직문화 개선을 요구해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정부의 지침이 업무 일선에서 쳇바퀴 도는 모양새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이달 초 공무원 719명을 대상으로 익명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5.51%는 시보떡, 출산·육아휴직 답례와 같은 조직문화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719명 중 95.69%가 근속연수 10년 미만의 젊은 세대 공무원이다. 또한 '국·과장님 모시는 날 등의 조직문화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도 51.6%가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기관장, 상급관리자들은 평소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8.93%는 '노력이 부족하다', 26.15%는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오은선 기자
2021-10-17 18:08:22[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태국 파병군 의무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고(故) 롯 아사나판의 유해가 태국 참전용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다고 7일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롯 아사나판의 유해봉환식은 8일 오후 6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열린다. 유해봉환식에는 이희완 보훈부 차관, 지다파 루묭 주한태국대사관 공관 차석, 유족 등이 참석한다. 행사는 국방부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함을 향해 예를 표한 후 봉송 차량까지 모시는 의식으로 진행된다. 이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됐다가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인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주한태국대사관 주관으로 안장식이 열린다. 이번 유해봉환은 지난해 11월 보훈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롯 아사나판의 가족들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개최된 영국과 콜롬비아 참전용사 안장식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더욱 영예롭게 기리겠다"며 유엔기념공원 안장을 결정하면서 이뤄졌다. 롯 아사나판은 태국 수라나리 병원에서 간호부대의 분대장으로 복무하던 중 6·25전쟁 참전을 지원했다. 그는 1952년 11월 18일부터 1953년 10월 28일까지 상주지구 전투, 평양진격 작전 등에서 활약한 공로로 태국 정부에서 '승리 메달'을 수여받았다. 롯 아사나판의 딸인 쏨송 차로엔퐁아난은 "70여 년 전 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켰던 대한민국에 이제 영원히 잠들게 됐다"며 "아버지도 전우들과 함께하게 돼 기쁘실 것 같다"고 유해봉환 소감을 전했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롯 아사나판 용사님께 깊은 추모와 경의를 표한다"며 "용사님께서 지킨 자유와 평화의 땅 대한민국에서 편히 잠드실 수 있도록 예우를 다하는 것은 물론, 영웅들의 참전 역사를 대한민국과 참전국 미래세대에게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엔 참전용사의 부산 유엔기념공원 사후 안장은 2015년 5월 레몽 베르나르 프랑스 참전용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7명이 이뤄졌다. 롯 아사나판은 28번째로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사후 영면에 들어가게 된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11-07 10:07:47[파이낸셜뉴스] "9급 3호봉인데 매달 10만원씩 내는 게 부담스럽다", "월급 500만원 받는 분들이 200만원 받는 청년들 돈으로 점심 먹는 게 이상하다", "차라리 본인 몫의 식사비만이라도 지불했으면…“ 공직 사회에서 하급 공무원들이 사비를 걷어 국·과장들에게 밥을 대접하는 소위 '모시는 날'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직사회 '모시는 날' 관행에 대한 공무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지방공무원 1만2526명 중 9479명(75.7%)이 '모시는 날'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44%에 해당하는 5514명은 최근 1년 이내 모시는 날을 직접 경험했거나,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모시는 날'은 주로 점심 식사(57.6%)에 이뤄졌다. 저녁 식사(7.2%), 술자리(10.4%)를 함께했다는 답변도 있었다. '모시는' 대상은 대부분 소속 부서의 국장과 과장이며, 둘 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비중이 44.9%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이어 과장 35.5%, 국장 17.0% 순이었다. 식사비용 부담 방식으로는 소속 팀별로 사비를 걷어 운영하는 팀 비에서 지출한다는 응답이 55.6%로 가장 많았다. 사비로 당일 비용을 갹출하거나 미리 돈을 걷어놓는다는 답이 21.5%, 근무 기관 재정을 편법·불법 사용한다는 답변도 4.1%였다. 국·과장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주로 업무추진비(31.1%)를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시는 날'에 대해 조사에 참여한 지방공무원 69.2%는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며, 이중 '매우 부정적'이라는 반응이 44.7%에 달했다. 또한 '모시는 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가 43.1%, '별로 필요하지 않다'가 25.8%로 나타났다. 이유는 '시대에 안 맞는 불합리한 관행'(84%)이 가장 높았다. 한편 설문조사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기술해달라'는 질문이 선택형 답변 항목이었음에도 무려 2085명의 응답자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서장의 호불호, 제철 음식을 파악하고 다른 팀과 겹치지 않는 메뉴를 골라야 한다"거나 "식당을 고르고 승인받고 예약하고 미리 가서 수저 세팅까지 하느라 오전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말 못 할 고충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제발 없애달라"는 호소가 담긴 의견이 수백 건 제출됐고 소속 기관의 실명을 거론하거나 구체적인 혐의 감사를 요구하는 응답도 다수 있었다. 위 의원은 지자체뿐만 아니라 경찰청, 보건소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젊고 유능한 공직자들이 느끼는 무력감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장 실태를 모르는 중앙부처 담당자들은 수박 겉핥기식 탁상행정으로 방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10-07 07:15:31[파이낸셜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80여일 만에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고모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깍듯하게 모시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 고모 김여정이 허리 숙이고 안내하며 예우 지난 5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평양에서 진행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 인계 인수식에 김정은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TV는 행사 참석자로 김주애를 별도로 호명하진 않았지만 이날 김주애는 정장을 갖춰 입은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상에는 김정은을 뒤를 따라 단상으로 걸어 올라가는 김주애에게 김여정이 다가와 자리를 안내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여정은 허리까지 살짝 숙이고 팔을 뻗으며 안내를 했고, 김주애는 꼿꼿하게 서서 이를 바라봤다. 김여정이 행사에서 누군가를 이처럼 예우하는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김여정은 김정은에 대한 의전도 지난 6월 평양 북러 정상회담 당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할 당시 옆에서 펜을 가져다주거나 협정서를 챙기는 등 정상회담 같은 굵직한 행사 때만 챙겼다. 김주애는 이날 행사장 입장과 퇴장도 김정은과 함께했다. 이전 행사에선 김주애가 김정은의 전용차를 함께 타고 오더라도 김정은이 내리는 장면 위주로 화면에 잡혔지만 이번에는 김정은과 김주애를 동시에 보여주며 카메라의 동선이 김정은이 아닌 부녀를 따라가는 듯한 모습 담겨 눈길을 끌었다. 김주애 존재감은 이전만 못해.. 행사장 두번째줄 착석 의전은 깍듯했지만 김주애의 존재감은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옅어졌다. 간 북한 매체들은 김주애를 '존경하는 자제분' 등으로 호명하며 참석 사실을 공개했지만 TV를 포함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행사 참석자로 김주애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주애는 이번 행사에서 단상 두 번째 줄에 최선희 외무상과 김여정 사이에 앉았다. 과거 열병식 등의 행사에서 주석단 맨 앞줄에 김정은 나란히 앉아있던 것과 비교하면 밀려난 듯 보인다. 이를 두고 김주애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지만 과도한 관심을 피하기 위해 노출 빈도를 줄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9일 "북한은 김주애를 현시점에서 유력한 후계자로 암시하며 후계자 수업을 진행 중"이라며 "김주애에 대한 주민 반응을 의식해서 선전 수위 및 대외 노출 빈도를 조절하면서도 비공개 활동 병행을 안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8-09 08:15:02[파이낸셜뉴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 행정관의 해명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고 의원은 1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 여사 지시를 행정관이 깜빡 잊어버려 돌려주지 못했다는 해명에 대해 "그게 말이 되냐"며 "그 행정관이 갑자기 인터뷰하다가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변호사가 정리한 내용이 아니냐, 어떻게 깜박이란 단어를 쓸 수 있냐"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만약 대통령과 영부인을 모시는 사람이 깜빡해서 일을 잘 못했다는 게 진실이면 이미 그 사람은 파면 조치가 됐어야 맞다. 지금도 여전히 현직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뭔가 다른 이유를 대야지 깜빡이라는 단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 의원에게 진행자가 "혹시 청와대에서 일할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냐"고 묻자 고 의원은 "(지시를 했는데 불이행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면 조치가 취해진다"며 "저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 날 짐 싸서 나가신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대통령과 영부인의 지시를 그것도 어마어마한 이 지시를 불이행한 것"이라고 꼬집으며 "그게 어떻게 용납이 되느냐"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건 결국 김건희 여사님께서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 그 사람이 이 모든 걸 짊어지는 모양새로밖에는 읽혀지지 않는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서 진위가 감별돼야 한다고 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7-18 09:57:52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때는 가을이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구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와셔액으로 에탄올 제품 대신 물을 넣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타슈켄트 가는 길에 고산지역에서 퍼붓는 눈발을 만났다. 와이퍼로 닦아지지가 않아 와셔액이라도 뿌려야 하는데 얼어버렸는지 전혀 나오지 않아 낭패였다. 차를 멈추고 히터로 얼어버린 앞유리를 한참 녹인 후에야 겨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휴우~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겠다. 우즈벡의 산지에서 또 터널을 만났다. 와 이번엔 조명도 밝고 편도2차로인 꽤 그럴듯한 터널이다. 서울에서 집인 춘천을 오갈 때 지나던 수많은 터널들이 생각났다. 우즈벡 도로를 달리다 보면 종종 톨게이트도 아니고 검문소도 아닌 길 위에 지붕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stop' 사인이 있고 차들은 그 앞에서 속도를 줄이고 가다가 잠시 멈춘 후 통과한다. 처음 볼 때엔 전쟁 대비로 무너뜨려 길을 막는 시설인가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지역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을 때 만든 검문소라고 한다. 우즈벡이 나라 안에서도 왕래가 자유롭지 않은 공산국가였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세계를 마구 돌아다니는 우리로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우즈벡에서는 디젤이 있는 주유소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유소인가 싶어 반가워 가보면 커다랗게 METAN이라고 쓰여있기 일수였는데 아마도 가스를 넣는 차들을 충전하는 곳인 것 같았다. 우즈벡에는 가스차가 휘발유나 디젤차보다 많은 것 같다. 이 나라에 가스매장량이 많아 가스값이 싸서 그런가보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찾아 큰 어려움은 없이 디젤을 주유하고 다닐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길가에 과일 파는 가판상점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키르기스와는 달리 진열도 예쁘게 해놓고 크게 글도 써놓고 뭔가 열심히 팔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키르기스에서는 대충 쌓아놓은 느낌으로 '살려면 사던지'의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석류를 즉석에서 짜주는 쥬스 파는 곳도 많았는데 위생이 걱정되어 그냥 지나쳤다. 과일 말고도 이곳의 주식인 "난"이라는 둥근 빵을 파는 상점이 여럿 모여있는 곳도 있었고 길거리에 이것저것 파는 것이 많았다. 가는 길에 ATM을 찾아서 걱정반 기대반으로 출금을 시도했다. 촤라락 하고 돈 나오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작은 가게에 들러 식료품을 조금 샀다. 계란을 낱개로 사는게 어색했지만 조심조심 깨지지않게 비닐봉지에 담아 받아들고 돈을 냈더니 거스름돈과 작은 포장의 젤리를 한개 준다. 외국인에게 주는 뜻밖의 선물인가 기뻐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에서는 잔돈 대신 성냥이나 젤리를 준다고 한다. 괜히 좋아했다. 종일 운전해서 오후 7시가 다되어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왕복 8차로, 10차로의 넓은 길에 차와 사람도 많고 완전 큰 대도시이다. 타슈켄트에서 박사라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오는길에 유심을 살 수가 없어서 연락할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이럴 땐 도움을 구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차를 길에 세우고 지나가는 분중 친절해보이는 분을 찾아 일단 영어하냐고부터 물어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가는 사람들 뒤에 한분이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겨우 소통을 하며 도와주신다. 사라선생님 전화번호를 보여주며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연결이 되었다. 겨우 연락이 닿아 목소리를 듣자 너무 반갑고 기뻤다. 선생님과 한국음식점과 상점이 모여있는 가스삐딸리 시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할 수 있었다. 박사라 선생님은 키르기스에서 알게된 분의 소개로 찾아가게 되었는데 타슈켄트에서 1시간반정도 떨어진 스르다리오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국어학원을 운영하신다. 첫만남이지만 전혀 어렵지 않았고 만나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이도 비슷했고 이야기도 잘 통했다. 앞으로 몇주정도 선생님댁에 머물면서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몇일 후 박선생님과 함께 타슈켄트의 명물 철수시장에 왔다. 실제 이름은 Chorsu 초르수라고 하는데 페르시아어로 "교차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푸른 돔이 매우 인상적이다. 시장주변은 차가 매우 많아서 주차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조금 걸어야하는 곳이지만 꽤 좋은 장소를 발견하고 잘 주차할 수 있었다. 돔 밖에도 넓게 시장이 형성되어 식료품, 의류, 신발, 잡화 등 여러가지를 팔고 있었다. 시장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다니다가 편해보이는 도톰한 추리닝바지가 눈에띄여 가격을 물어보니 6000원 정도해서 얼른 구입했다. 재봉질이 군데군데 어설퍼보였지만 편하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싸니까 용서가 된다. 꽤 넓은 곳에서 화덕에서 직접 구운 난을 판다. 여러개의 화덕에 계속해서 난을 넣고 빼는 모습이 신기하다. 화덕의 열기로 안이 매우 따뜻하고 빵냄새도 무척 좋아서 그곳을 떠나기 싫었다. 얼굴보다도 훨씬 큰 빵이 몇백원 밖에 안한다 이곳의 전통음식들과 먹음직스런 과일들을 파는 곳에서 과일과 호두 등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좀 더 걸어가자 푸른 돔이 아름다운 철수시장이 나타났다. 1층에는 치즈나 육류등이 많이 보였고 2층에는 견과류나 말린과일등을 팔고 있었다. 2층에서 보니 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딱히 사고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해 그냥 구경으로 만족했다. 무지 크고 넓고 곳곳에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 재미난 곳이었다. 타슈켄트에서 가장 맛있었던 식당은 조지아 레스토랑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먹었던 그 하차푸리와 닭요리 등을 시켰는데 정말 너무너무 맛있어서 조지아는 반드시 가서 오리지날을 먹어보리라 다짐했다. 이케아같은 커다란 쇼핑몰도 구경했는데 확실히 키르기스보다 물건도 많고 훨씬 잘산다는 느낌이 든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와서 그런지 트리와 장식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조금 이상해서 물어보니 타슈켄트에는 외국인도 많고 이슬람이라도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 외에는 홀리데이를 즐긴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적당한 크기의 저렴한 냄비를 발견하고 매우 만족스럽게 구입했다. 다음날 박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스르다리오의 어학센터를 방문했다. 스르다리오에는 마을을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있는데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건널목도 육교도 없어 사람들이 길을 건너야 할때는 정말 목숨을 걸고 건너는 듯 아슬아슬하다. 차로 가더라도 유턴해서 들어오는 곳이 무척 멀어서 집에서 학원을 오갈 때마다 한참 먼 유턴지점까지 항상 빙 돌아오곤 해서 안타까다. 학원은 하얀 건물에 파란 간판이 예쁘게 달려있다. 입구가 한국의 보통 상가처럼 유리문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치안이 괜찮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한다. 안에 좋은 책상과 의자, 빔프로젝터와 책 등 물건도 꽤 있는데 손을 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나 정작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셨다. 학생들과 함께 한국어 선생님을 모시는 모집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이 하키켓 어학센터는 현재는 청소년을 대상으로하는 한국어교실만 운영중인데 곧 음악교실, 러시아어교실도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수도인 타슈켄트와 달리 지방은 교육기회가 현저히 적다고 한다. 수도에 사는 한국사람은 많아도 지방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러 편의시설이며 음식점 등도 없고 해서 지방에 내려오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교실이며 다른 교육프로그램을 더 확장하고 싶어도 선생님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NGO운영으로 돈이 매우 부족해서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센터를 위해서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을 모시는 모집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학생들이 진심을 다해 "선생님, 공부하고 싶어요! 빨리 와주세요!"를 외치는 영상을 만들었다. 다들 흔쾌히 즐겁게 참여해주었다. 또 수업시간에 동의를 구하고 방해안되게 주의하면서 수업장면을 촬영하였는데 학생들의 대단한 열의가 느껴졌다. 학생모집을 위한 포스터도 다니는 실제 학생들의 얼굴을 넣어 몇가지를 만들어 드렸다. 일요일에는 박선생님과 함께 고려인들이 모이는 현지교회에 갔다. 가보니 실내가 어두운 곳인데 하필 정전이 되어 다들 난감해하고 있던 상황. 탄이 까브리에 전기를 연결해서 실내를 밝혀드렸더니 모인분들이 무척 신기해하고 고마와하셨다. 무사히 예배를 잘 드릴 수 있게 되어 우리도 매우 흐뭇했다. 예배후에는 아이들이 우리 까브리를 궁금해하길래 차를 오픈했더니 우르르 올라가 이것저것 만져보며 너무너무 즐거워했다. 어디건 아이들은 캠핑카를 참 좋아한다.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스르다리오에 머무는 동안 선생님댁 옆의 공간에서 밥도 해먹고 잘 지냈는데 식사를 위해 근처 코르진카라는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구입하곤 했다. 식품 물가가 놀랄만큼 저렴해서 고기며 쥬스며 야채, 과일등등 먹고싶은것을 마음껏 먹었다. "식품 물가가 놀랄만큼 저렴하다" 혼자 먼 타국에서 이곳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시는 박선생님께 위로와 격려의 마음으로 한국음식을 종종 해드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등의 재료로 닭볶음탕도 만들고 비빔국수도 같이 해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즈벡에서 외국인이 머물려면 돈을 내고 무슨 등록증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일주일 단위로 돈을 받는 듯하다. 이것도 무슨 공산주의 잔재로 통행의 자유를 통제하고자하는 그런 것의 일환이 아닐까 싶었다. 암튼 박선생님의 도움으로 잘 등록했고, 또 우즈벡에서 유심사기가 쉽지 않았는데 학원에서 일하는 현지 친구가 함께 가주어서 속지않고 적당한 것을 잘 구입해서 다닐 수 있어 좋은 도움을 받았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G85qdMHDuHM?si=iKCbW47_29vK5aVG>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7-11 14:59:22대만의 겨울은 습도가 높아서 춥다. 타이베이의 중앙연구원 아파트에서 겨울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벽에서 흘러내리는 곰팡이가 무서워 남쪽의 핑동현 우타이향(屛東縣 霧台鄕) 루카이(魯凱)족 지대로 피신하였다. 대만의 선주민들은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오스트로네시안이다. 10여종의 선주민들 중에서도 루카이의 인구수가 가장 적고(약 2만명), 목자르기(馘首)로 이름난 종족이었다. 해발 1000m의 산으로 오르자 선주민들이 산에서 거주하는 이유를 알았다.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을 맞이하였다. 곳곳에 지진으로 무너진 산사태가 심각하였고, 동네 전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찾아간 우타이촌도 산비탈에 제비집처럼 대롱거린다고나 할까. 지붕부터 벽채와 바닥까지 몽땅 산에서 채취한 석판을 이용하였다. 돌집의 처마 밑 장식은 사람 얼굴로 둘렀다. 1897년 대만을 찾았던 동경제국대학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보고서에는 잘라 온 사람의 산발머리를 마당의 거치대에 올려두고 입에 밥을 넣은 사진이 선명하다. 수호신을 모시는 방법으로 동네 입구에는 해골들을 가득히 진열한 두골가(頭骨架) 사진도 있었다. 불과 백 년 전까지도 이러한 관습은 지속되었다. 방바닥은 한 장의 크기가 50×30㎝ 정도의 직사각형 석판으로 정교하게 짜여져 장기판처럼 반들거린다. 루카이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실내장(室內葬)을 하던 사람들이다. 조상 시신 한 분 한 분이 석판 한 장 밑에 굴신으로 매장되었다. 과거에는 동네 하나의 규모가 작았다. 산비탈의 손바닥만 한 땅에서 화전을 일구어 조와 고구마를 심었기 때문에, 사자 공간의 별도 마련은 상상도 못했다. 멧돼지로부터 보호를 위해서도 실내장이 안성맞춤이다. 과거에는 수십년 또는 백년에 한 번씩 동네 전체가 이동하였다. 방바닥의 무덤이 꽉 차는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과 일치기(日治期)의 위생정책이 그 풍습을 정지시켰고, 모두 기독교도가 된 루카이 사람들은 교회 옆에 방바닥처럼 조성한 공동묘지를 이용한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가 옆에서 몸서리를 친다. 한쪽 벽에는 멧돼지의 해골을 진열한 수골가(獸骨架)가 자리하는 게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 해골이 집의 안팎과 동네에 가득하다. 수령(獸靈)에 의지하는 토템신앙이다. 집주인은 평생 동안 120여마리밖에 잡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한다. 루카이족 내에서 으뜸 사냥꾼은 사십대 중반인데, 평생 천마리를 잡았고, 최근 사냥 중 맷돼지의 공격으로 사망하였다. 남자들의 위세는 잡은 멧돼지의 숫자로 가름된다. 집주인의 루카이 이름은 띠부랑안느(1927년 8월 10일생)인데 일치기에는 기도 코지(木藤宏二)로, 1946년 대륙으로부터 국민당이 온 후 커어꽝얼(柯廣二)로 변하였다. 전동 휠체어를 탄 84세의 혼다 아키코가 다가와서 자신의 일본어 실력을 뽐낸다. 아키코의 남편이 토무(頭目)였다고.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가 집집마다 외벽 처마에는 사람 얼굴 부조와 벽채에는 멧돼지 해골을 가득하게 걸어 두었다. 그녀의 마당에는 내 키보다도 훨씬 큰 석판에 무장한 루카이 남성이, 옆으로는 백보사(百步蛇)와 항아리의 부조로 장식하였다. 결혼식으로 동네 전체가 들썩거린다. 한족의 친영(親迎) 흉내도 내고, 신부를 가마에 태운 신랑친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축하연의 군무는 거룩하다 못해 성스럽다. 남녀노소가 하나의 커다란 동그라미를 형성하고, 서로의 팔을 겹쳐 잡아서 연결된 원무(圓舞)다. 미끄러지듯이 사뿐히 내딛는 두 발의 박자와 율동에 감동한다. 여성들의 옷장식에 달린 조개들의 살랑거리는 소리뿐 아니라 멧돼지 상아들을 걸어올린 남성용 장식모자의 모습은 위엄스럽다. 전문외식업체가 음식을 대접하고, 한쪽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도 혼례 축원의 연출로 전해진다. 13마리의 돼지가 이미 분배되었고, 두 마리가 철망에 갇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하객들을 위한 빈랑과 생고기를 담은 비닐주머니가 즐비하다. 동네 전체가 결혼식으로 들썩거림에는 이유가 있다. 인구가 늘어갈 계기를 축원함이다. 잠자리에 누웠더니, 지붕을 마당 삼은 쥐들의 축제가 벌어졌는지 요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다음날 아침 띠부랑안느에게 불평하였더니, 그날 저녁 주메뉴로 잘 구운 고기가 꼬리를 매단 채 통으로 나왔다! 루카이족의 인구수는 지난 백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일정하다. 동네의 규모와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전체 인구수는 그대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호미오스테시스(항상성)를 유지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상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루카이족 내부에서는 여태까지 인구수가 준다고 걱정해본 적이 없다. 숫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위험수위에 달했다. 임계치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아슬아슬하다. 과거 타스마니아의 경험이 떠오른다. 인구절멸 위기를 처음 감지했던 1824년에 340명, 1834년에 111명, 그리고 1942년에 51명, 현재 타스마니아 섬에는 소위 '순종' 타스마니아 사람은 없다. 백년 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알프레드 크로버 교수가 마지막 남은 인디언 집단의 '이시(Ishi)'에 대한 기록은 인류학 교과서의 한 페이지다. 마지막 남았던 청년 남녀 한 쌍을 매개로 재생산을 시도하였지만, 두 사람은 한마디의 교환으로 서로는 결혼할 수 없는 구조적 관계임을 알았다. 세상의 인구절멸사(人口絶滅史)를 들여다보면 외부든 내부든 외세 간섭이 관건이었고, 그 외세는 근대국가란 괴물의 권력을 말한다. "저출산 저주" "인구절벽" "돈은 있는 대로 부어라". 호들갑 짱이다. 1970년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캠페인은 정부의 창작이었다. 그 여파로 아이가 셋이면 셋방 얻기가 어려웠다. 임신을 두려워해야 하는 부부 잠자리의 왜곡도 국가권력 개입 때문이다. 우리 세대가 체험한 바다. 40년 만에 정부가 앞장서서 돈다발을 흔든다. 언제는 "낳지 마라" 했다가, 이제 와서는 "낳으라"고 한다. 사람이 기계인가? 국민이 졸인가? 국권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중독된 어리석음이렷다. 대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고 혈세 낭비의 방자함이 드러났는데, 이 방자함의 입증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 결자해지라고 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 의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 첫 단추다. 감히 '자연을 거스르고 사람을 농락한 죄'임을 고해야 저출산망국 문제의 물꼬가 트일 것 같다. 부분적 선택과 집중의 기능적 사고가 아니라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7-08 18:47:40[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한국전쟁(6·25전쟁)에 네덜란드군으로 참전한 유엔 참전용사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다고 26일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고(故)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네덜란드 참전용사의 유해 봉환식을 오는 29일 오후 4시 40분쯤 유해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5시 30분부터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모시겠습니다'란 주제로 유해 봉환식이 거행된다. 유해 봉환식은 국방부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함을 향해 예를 표하고 추모사 후 봉송 차량까지 모시는 간결한 의식으로 진행된다. 유해 봉환식엔 강정애 보훈부 장관,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 대사, 고인의 배우자와 손녀 등 유족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모사는 강 장관과 페이터 반 더 플리트 대사, 고인의 배우자가 차례로 낭독한다. 유해 봉환식을 마치면 유해는 5월 1일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되며, 안장식은 유족과의 협의에 따라 그 다음 날인 5월 2일 오후 2시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주관으로 거행된다. 강 장관은 "보훈부는 앞으로도 유엔 참전용사님들에 대한 사후 국내 안장은 물론 재방한 초청과 현지 감사·위로 행사 등 다양한 국제보훈 사업을 통해 참전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은 1953년 4월 3일부터 이듬해 4월 23일까지 약 1년간 네덜란드군 반호이츠 부대 소속 이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고인은 21살의 나이에 자원해 6·25전쟁 참전을 결심했다. 참전 일주일만에 오른쪽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으나 다시 전장으로 복귀했고, 정전 하루 전날인 1953년 7월 26일 전개된 묵곡리 전투(340고지 전투)에서 여러 명의 전우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6·25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1984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정부 훈장을 받았고, 은퇴 후엔 반호이츠 부대 역사박물관에서 20년간 봉사하며 네덜란드군의 6·25전쟁 참전의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고인의 배우자 마리아나 티탈렙타 씨는 "남편이 생전에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기를 희망했다. 남편의 유언대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게 돼 기쁘다"라고 말했다. 유족을 포함한 방한단은 유해 봉환식과 횡성전투기념식, 안장식 등에 참석한 후 다음 달 3일 출국한다. 이번 일정엔 고인과 생전에 인연이 깊은 페트뤼스 호르메스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협회장과 반호이츠 부대원들도 방한해 함께한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엔 이날까지 총 26명이 사후 안장돼있으며, 이들 가운데 네덜란드 참전용사는 5명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4-26 14:30:19[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장손황후가 임신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출산을 하지 못해 중병으로 앓아누웠다. 황후는 의식도 명료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태의(太醫)들이 진료를 했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태종은 매일매일 안절부절못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은 국정을 처리한 후에 대신 중 서무공에게 “황후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 태의들이 계속해서 치료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하오. 경은 어디에 명의가 있는지 아시오?”라고 물었다. 서무공은 그 말을 듣고 곧 이어서 손사막(孫思邈)을 태종에게 추천하였다. “신은 일찍이 듣기로 화원현(華原縣) 민간 의사로 손사막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종종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약을 수집하는데, 특히 부인과와 소아과에 능숙하다고 합니다. 난치병은 일단 그가 손을 대면 묘수를 되찾을 수 있고 약으로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인의 견해로는 그를 궁으로 불러들여 황후를 치료해 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라고 했다. 서무공의 말을 들은 당 태종은 수긍했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어 밤을 새워 화원현으로 보내 손사막을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당 태종은 손사막이 도착하자마자 즉시 그를 불러 “손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 만인을 회생시키는 공이 있다고 들었소. 황후가 중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져 특별히 선생을 부른 것이니 호전되면 반드시 큰 상을 내리겠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봉건사회로 남녀가 친(親)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례와 가르침에 따라 어의라도 궁내 부녀자를 진찰할 때 대부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구술에 따라 처방을 받아야 했다. 손사막은 게다가 민간 의사로 무명베 옷차림으로 옷을 평범하게 입고 있었다. 그래서 황후의 봉체(鳳體)에는 더더욱 접근할 수 없다. 손사막은 제대로 진료가 안 될 것을 미리 간파하고서는 황후를 모시는 궁녀를 불러냈다. 그래서 궁녀에게 황후의 병세를 자세하게 물었다. 더불어서 담당 어의가 지금까지 작성해 놓은 병력과 처방전을 받아서 꼼꼼히 검토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근거하여 이미 황후의 병세를 거의 파악하였다. 손사막은 황후의 내실에 들어왔다. 그러나 짐작대로 황후를 마주할 수 없었다. 황후의 내실에는 큰 발이 쳐져 있었고, 손사막은 발과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야 했다. 그러니 진맥을 할 수 없었다. 황후는 의식도 명료하지 않아 물음에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진찰을 해야했다. 손사막은 붉은 실을 꺼냈다. 그리고 궁녀에게 실의 한쪽 끝을 쥐여 주고 황후의 오른쪽 손목에 매라고 부탁했다. 그러고서는 나머지 한쪽을 발에 통과시켜 자신의 앞쪽까지 당겼다. 손사막은 실을 팽팽하게 당긴 후 손가락을 실에 대고 진맥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진맥법이었다. 이것을 인선진맥(引線診脈) 혹은 현사진맥(懸絲診脈)이라고 한다. 손사막은 실 끝에 손가락을 대고 마치 사람의 손목에 진맥하듯이 정신을 집중했다. 황후의 요골동맥이 뛸 때마다 실을 통해서 느껴지는 진동을 파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황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서 “손사막은 신의(神醫)로다.”라고 놀라워했다. 손사막은 진맥을 마친 후 “이것은 난산(難産)입니다. 황후의 태실 속의 태아의 심장이 약하고 위치가 불순(不順)한 것이 원인으로 그래서 10개월이 넘도록 태아가 나오지 않으니 중병에 해당합니다.”라고 했다. 당 태종은 “그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손사막은 “궁녀에게 대나무 발 가까이에 왕비의 손을 잡도록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침을 찌르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손사막은 궁녀를 시켜서 황후의 왼손을 발 가까이 대게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발 사이로 내밀게 했다. 손사막은 침으로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끝에 있는 중충혈(中衝穴)을 강하게 찔렀다. 황후는 아파서 비병을 지르면서 온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그러자 잠시 후 갓난아이 소리가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궁녀가 급하게 뛰쳐 나왔다. “황제 폐하, 황후께서 손사막에게 침을 맞은 후 황자(皇子)도 무사히 태어났고 황후 의식도 되돌아왔습니다.”라고 했다. 훗날의 당 고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당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손사막에게 “손 선생은 과연 의술이 심오하고 회춘(回春)케 하는 묘수가 있으니 확실히 당대의 명의로소이다! 오늘의 치료는 대단하오.”하고 말했다. 태종은 손사막에게 좋은 말 한 필과 비단 백 척, 천 냥의 황금을 선물했고, 벼슬을 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손사막은 금은 보화는 물론이고 벼슬 또한 사양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손사막의 현사진맥은 의사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래서 이후로 궁의 어의들은 왕비와 후궁을 진찰할 때는 현사진맥을 시도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청나라 건륭제 때 일이다. 건륭제의 공주가 병에 걸렸다. 그런데 건륭제는 어의들이 현사진맥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공주를 진찰하기 전에 어의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우선 발을 몇 겹을 쳐 놓고 어의가 안쪽을 보지 못하게 했다. 어의는 단지 얼마 전 혼례를 올린 공주를 진찰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의는 길게 늘어뜨려진 실을 통해서 진맥을 하고 나서는 황제를 기쁘게 하려고 웃으면서 “황제 폐하께 아뢰옵니다. 이것은 분명 희맥(喜脈)입니다.”라고 했다. 희맥은 임신맥을 뜻한다. 건륭제는 어의의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가는 실로 진맥을 했다는 것인가? 지금 희맥이라고 했는가? 짐은 이를 믿지 못하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어의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은 지금껏 진맥을 했지만 한 번도 착오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건륭제는 내시를 시켜서 발을 걷어 올리고 어의를 이끌고 안을 살펴보도록 했다. 그런데 명주실은 공주의 손목이 아니라 걸상다리에 매어져 있었다. 어의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 이것은 황제를 속인 것으로 필경 죽임을 면치 못할 불경죄였다. 어의는 당황해하면서 바닥에 황급히 엎드렸다. 엎드려서 보니 걸상 다리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였다. 어의는 노련했기에 침착하게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황제 폐하, 이 걸상 다리를 쪼개면 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건륭제는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서도 즉시 내시에게 명하여 날카로운 도끼를 꺼내 걸상다리를 쪼갰다. 그랬더니 곁에서 봤던 구멍이 있는 곳 안쪽에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의는 다시 급히 무릎을 고쳐 꿇고서는 “이것 보십시오. 이것은 목(木)의 임신이기에 제가 희맥(喜脈)이라고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서야 황제는 어의에게 비로소 병든 공주를 진찰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어의는 땀을 뻘뻘 흘려 옷자락까지 흠뻑 젖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어의는 공주를 현사진맥을 통해서 진맥했고 진맥 결과를 황제께 고했다. 어의의 진단은 거의 들어맞았다. 어의는 역시나 평소에 내시와 궁녀들을 통해서 후비나 공주의 생활습관, 식습관, 대소변 상태, 수면상태 등을 파악해 왔기 때문에 현사진맥을 통해서 병세를 알아낸 것처럼 말할 수 있었다. 어의는 이렇게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당나라 때 약왕(藥王)으로 칭송받던 손사막이 실제로 손목에 실을 매달아 진맥했는지를 알 수 없다. 설령 실제로 시도를 했던 진맥법이라 할지라도 병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의문이다. 그의 저서인 <천금방> 등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손사막 시대의 옛날의 의사들은 진맥하는 능력이 요즘보다 탁월했을 것은 분명하다. 촉각과 집중력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사진맥(縣絲診脈)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진맥법으로 봉건적 남녀유별(男女有別)한 시대가 만들어 낸 웃지못할 촌극(寸劇)에 불과하다. * 제목의 ○은 ‘실’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중국고사> ○ 長孫皇後與懸絲診脈. 唐貞觀年間太宗李世民的長孫皇後懷孕已十多個月不能分娩, 反而患了重病, 臥床不起. 雖經不少太醫醫治, 但病情一直不見好轉. 太宗每日愁鎖眉頭, 坐臥不寧. 有一日, 唐太宗理完朝政以後, 留大臣徐茂公問道:“皇後身患重病, 經太醫不斷診治, 百藥全無效果. 卿可知哪裏有名醫? 請來爲她繼續治療才是” 徐茂功聞言, 便將孫思邈推薦給太宗說道:“臣早聽說華原縣(今耀縣) 有位民間醫生孫思邈, 常到各地采藥爲群眾治病, 對婦兒科尤其擅長. 疑難之症一經他手, 都能夠妙手回春, 藥到病除. 以臣之見, 還是將他召進宮來, 爲皇後治療才好!” 唐太宗聽過徐茂功的一番話後, 表示同意. 便派遣使臣馬不停蹄, 星夜奔赴華原縣, 將孫思邈召進了皇宮. 唐太宗見孫思邈已經來到, 便立即召見了他, 說道:“孫先生醫術超群, 有起死回生之功, 皇後身患重病, 昏迷不醒, 特請先生前來治療, 若能好轉, 寡人定有重賞.” 但是, 在封建社會, 由於有男女授受不親的禮教束縛, 醫生給宮內婦女看病, 大都不能夠接近身邊, 只能根據旁人的口述, 診治處方. 孫思邈是一位民間醫生, 穿著粗布衣衫, 皇後的鳳體他更是不能接近的. 於是他一面叫來了皇後身邊的宮娥采女細問病情, 一面要來了太醫的病曆處方認真審閱. 他根據這些情況, 作了詳細的分析研究, 已基本掌握了皇後的病情. 然後, 他取出一條紅線, 叫采女把線系在皇後右手腕上, 一端從竹簾拉出來, 孫思邈捏著線的一端, 在皇後房外開始 ‘引線診脈’了. 沒有多大工夫, 孫思邈便診完了皇後的脈. 原來, 孫思邈醫術神奇, 靠著一根細線的傳動, 竟能診斷清人體脈搏的跳動. 這就是他被群眾稱爲神醫的原因. “萬歲! 民醫已對病症經過了查問診脈, 診斷其爲胎位不順, 民間叫做小兒扳心, 故而難產十多個月不生, 致使皇後身患重病.” 孫思邈診斷完畢, 向太宗稟告了病因. 唐太宗聽完以後, 問道:“孫先生言之有理, 但不知你打算怎樣治療?” 孫思邈答道:“只需吩咐采女, 將皇後的手扶近竹簾, 民醫在其中指紮上一針即見效果.” 於是采女將皇後左手扶近竹簾, 孫思邈看准穴位猛紮了一針, 皇後疼痛, 渾身一顫抖. 不一會兒, 只聽得嬰兒呱呱啼哭之聲, 緊接著采女急急忙忙跑出來說道:“啟稟萬歲, 皇後被孫醫師紮過一針後,產下了皇子, 人也蘇醒了!” 唐太宗聞言大喜, 對孫思邈說道:“孫先生果真醫理精深, 妙手回春, 確實是當代名醫!” (장손황후을 현사진맥하다. 당나라 정관 연간에 태종 이세민의 장손황후가 임신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출산을 못하고 중병에 걸려 앓아누웠다. 많은 태의의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태종은 매일 미간을 찌푸리고 안절부절못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이 조정의 일을 마치고 나서 대신 서무공에게 물었다. “약은 효과가 없다. 유명한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계속 치료하도록 하라.” 서무공은 이 말을 듣고 손사막을 당 태종에게 추천하면서 말했다. “화원현에 민간의사 손사막이라는 의사가 있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는 종종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수집했고, 특히 산부인과와 소아과에 능숙합니다. 그 사람은 치료할 수 있을 텐데, 소인의 생각에는 그를 궁궐로 불러내어 왕비를 치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서무공의 말을 듣고 당 태종은 이에 동의하여 별이 빛나는 밤에 화원현에 쉬지 않고 사신을 보내 손사막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손사막 당신은 의술이 뛰어나고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고 들었다. 왕비가 중병에 걸렸고 의식도 없어서 특별히 당신을 불러 치료를 받고자 한다. 만약 능히 호전이 되면 과인이 큰 상을 내리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봉건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친밀해서는 안 된다는 예법 때문에 궁궐에서 여자를 진료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들과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단지 타인의 설명과 진료기록 등을 보고서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손사막는 민간의사로서 거친 옷을 입고 있어서 왕비의 봉황 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왕비 옆에 있는 궁녀에게 연락해서 상태를 자세히 알아보고 동시에 어의의 진료기록부와 처방전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이를 바탕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연구를 진행한 결과 왕비의 상태를 기본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는 붉은 실을 꺼내서 채녀에게 왕비의 오른쪽 손목에 실을 묶고 대나무 커튼에서 한쪽 끝을 당겨달라고 요청했다. 손사막은 실의 한쪽 끝을 잡고 실을 잡고 맥을 잡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사막은 진단을 시작했다. 손사막의 의술은 너무나 신기해서 실의 파동을 통해 사람의 맥박을 진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에게 기적의 의사로 불렸다. “황제 폐하, 민간인 의사인 제가 병을 살펴보니 맥박을 진단한 결과 태아의 위치가 이상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태아의 심장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 결과 왕비는 10개월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는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손사막은 진단을 마친 후 당 태종에게 병의 원인을 알렸고, 이 말을 들은 당 태종은 “손 선생의 말씀은 일리가 있지만 어떻게 치료할 생각인 지 모르겠다.”라고 물었다. 손사막은 “채녀에게 대나무 발 가까이에 왕비의 손을 잡도록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침을 찌르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채녀가 왕비의 왼손을 대나무 발 가까이에 대고 손사막은 혈점을 찾아 침을 놓자 왕비는 온몸을 아파하며 떨었다. 잠시 후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채녀가 급히 달려가서 말하기를 “황제께 아뢰옵니다. 황후가 손사막에게 침을 맞은 후 황자를 낳고 의식도 깨어났습니다.”라고 했다. 당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손사막에게 “손 선생은 과연 의술이 심오하고 묘수가 회춘하니 확실히 당대의 명의다.”고 말했다.) ○ 乾隆皇帝與懸絲診脈. 一日乾隆皇帝宣禦醫看病, 禦醫不知那位妃子染恙, 心想先討吉利再說. 於是就在懸絲上診了一會兒脈後, 喜形於色地說 : “啟稟萬歲, 喜脈!” 乾隆一聽, 暗地笑了, 說道“憑這根細絲診脈看病?朕不信!” 禦醫忙磕頭道:“臣診脈, 從未有過差錯.” 乾隆命太監帶禦醫去看懸絲另一頭. 原來, 皇帝想試試禦醫的本領, 絲線的另一端並未系上病人的手腕, 而是系在凳腿上. 禦醫看了大吃一驚, 險些嚇暈——這可欺君之罪啊! 但他不愧有經驗的老禦醫, 稍定了一下神, 他搬起凳子細細查看一遍後, 說:“敢請劈開凳腿, 便知微臣講的真假.” 乾隆立即命太監取出利斧劈開凳腿, 只見凳腿中有一小蛀洞洞內有只小蟲正蠕動, 禦醫忙跪奏:“萬歲請看此爲木之孕也, 叫喜脈.” 皇上一聽, 面露喜色點頭表示認同, 這才命其給正生病的格格診治. 此這位禦醫已嚇得大汗淋漓, 連衣襟都濕透了. (건륭황제와 현사진맥. 어느 날 건륭제가 어의에게 진찰을 부탁했는데, 어의는 후비가 아픈 것을 모르고 먼저 행운을 빌고 싶어서 현사진맥을 통해 확인했다. “황제 폐하께 아뢰오. 임신맥입니다!”라고 했다. 건륭은 이 말을 듣고 몰래 웃으며 “이 얇은 실로 맥박을 진단할 수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자 어의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는 맥박을 통해 판단하는 데에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사옵니다.” 건륭제는 내시에게 명령하여 어의를 데리고 실의 묶인 반대쪽 끝을 보게 하였는데, 알고 보니 비단실의 반대쪽 끝은 환자의 손목이 아닌 의자 다리에 묶여 있었다. 어의는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것은 황제를 속인 범죄다. 그러나 그는 노련한 황실 어의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그는 잠시 진정한 후 의자를 들어 올려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감히 의자 다리를 쪼개면 신이 말씀드린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건륭은 즉시 내시에게 명령하여 날카로운 도끼를 꺼내 의자 다리를 쪼개어 보니 의자 다리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속에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의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황제 폐하, 이것은 나무의 임신이기에 이 또한 임신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에게 병든 공주를 진단하고 치료하라고 명했다. 어의는 너무 겁에 질려 땀을 많이 흘리고 옷까지 흠뻑 젖었다.) * 상기 관련 고사 출처 : 중국 <백도백과(百度百科)> 사이트의 ‘懸絲診脈’ 관련 내용임.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3-08 10:4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