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고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는 아카이빙 전시회가 지난15일부터 4월 30일까지 울산 중구 문화의 거리 울산민예총 부설 '아트스페이스 민'에서 열리고 있다. '민중예술가 백기완 노나메기 그림마당'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백기완 선생 관련 시각매체, 인쇄매체, 상품매체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됐다. 서울, 부산, 울산 작가들의 작품을 프린트하거나 직접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여러 자료들을 모았다. 민족미술인협회 울산지회, 아트스페이스 민이 주관하고 곽영화, 김상화, 김시영, 김천일, 박경열, 박경효, 박은태, 신학철, 이윤엽, 전기학, 정봉진이 참여했다. 울산민예총은 "고 백기완 선생의 걸어오신 길을 보면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길이나 쉼없이 행진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민중, 민족, 민주와 낮은 자들을 위해 살아오신 선생의 추모자리인만큼 많은 관심 부탁한다"고 밝혔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2021-03-18 15:52:49[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유영민 비서실장, 유연상 경호처장, 탁현민 의전·신지연 제1부속비서관 등과 함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은 것은 2019년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 이후 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묵념 후 영전 앞에 국화 놓은 뒤 "술 한 잔 올리고 싶은데요"라며 술잔을 올리고는 절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유족에게 걸어가 목례 후 위로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장남 백일 씨를 바라보며)아버님하고는 지난 세월 동안 여러 번 뵙기도 했고, 대화도 꽤 나누었다"며 "집회 현장에 같이 있기도 하고 그랬었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 모든 일에 서실 때 이제는 진짜... 후배들한테 맡기고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녀 백원담씨는 문 대통령에게 "세월호 분들 아버님이 가장 가슴아파하셨다. 구조 실패에 대한 해경 지도부의 구조 책임이 1심에서 무죄가 되고 많이 안타까워하셨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정부는 특별히 더 할 수 있는 조치들은 다 하고 있는데, 유족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진상규명이 속시원하게 아직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백기완 선생이 입원한 뒤 문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통일에 대한 당부 말씀을 담은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 속에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로 가기 위한 노력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역사에 주체적인 줄기였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 주도했던 한반도 평화 운동의 그 맥락 위에 섰다는 깨우침을 가지시길 바란다"는 백기완 선생의 육성이 담겨 있었다. 문 대통령은 영상 시청 후 유족들에게 "(영상을)보내달라"며 탁현민 비서관에게 "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백기완 선생이 남긴 선물 하얀색 손수건과 책 1권을 전달받았다. 백원담씨는 "이것은 아버님이 문재인 정부의 평화 통일 노력에 굉장히 찬사를 보내시면서 통일열차가 만들어지면 꼭 이 하얀 손수건을 쥐고, 황해도가 고향이시니까, 꼭 가고 싶다고 이걸 전달해 드리라고 하셨다"며 "이건 마지막에 쓰신 책이라서, 이것은 아버님의 모든 사상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에…"라고 선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고인은 진보진영의 원로이자 '임을 위한 행진곡' 작사가로 지난 15일 오전 서울대학교 병원 입원 도중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생 농민과 통일·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왔다. 1979년 'TMCA 위장결혼 사건',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대회' 주도 혐의 등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2021-02-17 13:42:35【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는 통일·민주화운동의 거목인 백기완 선생을 애도하기 위해 인천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16일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에 따르면 인천시청 앞 광장인 인천애뜰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시민분향소는 오는 18일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는 고인의 뜻에 따라 모든 조화·조기를 받지 않기로 했다. 백기완 선생은 지난 15일 오전 4시 45분(향년 89세)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백기완 선생은 1950년대부터 도시빈민운동, 농민운동, 통일운동, 한국진보운동에 전념하며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 투쟁에 앞장섰고, 1973년에는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다가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구속됐으며 2000년대에도 세월호 진상규명, 국정원 댓글 사건, 광화문 촛불집회 등에 참가해 목소리를 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1-02-16 11:40:28【파이낸셜뉴스 수원=장충식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5일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추모하며, "선생께서 평생 맞섰던 철옹성같은 기득권의 벽, 두려움없이 마주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고문으로 앙상해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쩌렁쩌렁한 기백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래서 늘 정정하게 곁에 계실 것만 같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삶 자체가 대한민국 현대사 이셨던 분.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의 선두에서 온갖 모진 고난을 감내하셨던 분. 그러면서도 늘 우리 사회 보통사람들, 낮은 자들의 유쾌한 연대를 꿈꾸셨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이 지사는 "선생께서 작사하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삿말처럼, 그리고 전 생애로 실천하셨던 것처럼, 앞서서 나가시는 님을 산 자로서 충실히 따르겠다"며 "영원한 스승 백기완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1932년 황해도 출생인 백 소장은 1950년대부터 사회운동을 시작해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한 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옥고를 치렀다.1979년과 1986년에도 'YWCA 위장결혼 사건'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대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된 바 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한 백 소장은 1987년 대선에서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으며, 이후 본인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운영했다.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2021-02-15 12:48:09[파이낸셜뉴스] 여권이 15일 타계한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을 추모했다. 진보진영 원로인 백기완 선생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인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로 잘 알려졌다. 이날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화운동가 겸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께서 오늘 새벽 우리 곁을 떠나셨다"며 "치열했던 삶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SNS에 "선생님이 계시던 대학로부근 아담한 연구소로 아주 오래전 찾아뵈었던 일은 이제 선생님의 젊음이 담긴 추억이 되었다. 통일에 대한 애끓는 열정을 토로하셨던 선생님"이라며 "참 고생 많으셨다. 선생님 영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시를 바친다"고 적었다. 우상호 서울시장 예비후보 역시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항상 앞에 서 계셨던 것 같다"면서 "시대의 등불을 이렇게, 또 잃었다"고 애도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안부 피해자 수요 집회 때 늘 함께 했던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선생께 빚진 게 많다"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지치지 않은 투혼을 빚졌고, 통일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빚졌다"고 말했다. 이어 "백기완 선생님의 치열함과 열정은 저희가 이어가겠다"면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선생의 뜨거운 맹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선생께서는 젊은 청년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힘이 있으셨다. 독재와 불의에 맞서던 그분의 용기와 시대를 가르는 사자후로 청년들을 움직이게 하셨다"면서 "그분의 연설을 들을 때면 용기가 솟았고, 나태함이 부끄러워졌다. 그분의 격려 덕분에 두려움을 떨치고 한 걸음을 더 내딛었던 많은 청년들 중에 저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오늘 아침 그분의 선거운동원으로 뛰었던 92년 대선의 겨울과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각성을 호소하던 명연설들의 장면이 떠올랐다"면서 "오늘 이 시대 청년들에게 장벽이 되고 있는 많은 기득권들과 맞서 제 몫의 용기를 내고 두려움을 떨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선생님의 뜻을 기리겠다"고 했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
2021-02-15 10:40:40【파이낸셜뉴스 안산=강근주 기자】 윤화섭 안산시장은 18일 민주노총 안산시지부 1층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윤화섭 시장은 이날 주정귀 전국공무원노조 안산시지부 지부장과 함께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뜻을 기린 뒤 “고인이 남기신 사명 잊지 않겠다”며 “편안히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2021-02-19 08:12:54[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조문했다. 고 백 소장은 진보진영의 원로이자 '임을 위한 행진곡' 작사가로 지난 15일 오전 서울대학교 병원 입원 도중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생 농민과 통일·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왔다. 1979년 'TMCA 위장결혼 사건',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대회' 주도 혐의 등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2021-02-17 09:27:46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사진)이 1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오던 중 이날 오전 영면했다. 백 소장은 지난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백 소장은 시, 소설 등 문학작품을 읽고 영어사전을 모두 외우는 등 독학으로 학업에 매진했다. 이후 분단으로 여덟 식구가 흩어지는 상황에 이르자 갈라진 집안을 하나로 잇기 위해 통일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하고 인식을 넓혔다. 백 소장은 문맹퇴치를 위해 야학을 이끌던 중 1960년 4·19혁명에 참여했고 1964년 함석헌, 장준한, 계훈제, 변영태 등 재야 운동가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다. 백 소장은 여러 사회운동을 주도하다 끊임없이 투옥 생활을 하고 고문 후유증을 겪었다. 지난 1974년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이후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백 소장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다. '항일민족론'(1971),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7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두 어른'(2017) 등 다수의 저작도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백미담, 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2021-02-15 17:58:49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오던 중 이날 오전 영면했다. 백 소장은 지난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백 소장은 시, 소설 등 문학 작품을 읽고, 영어사전을 모두 외우는 등 독학으로 학업에 매진했다. 이후 분단으로 여덟 식구가 흩어지는 상황에 이르자 갈라진 집안을 하나로 잇기 위해 통일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하고 인식을 넓혔다. 백 소장은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이끌던 중 1960년 4·19혁명에 참여했고, 1964년 함석헌, 장준한, 계훈제, 변영태 등 재야 운동가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다. 백 소장은 여러 사회 운동을 주도하다 끊임없이 고문과 투옥 생활을 지내야 했다. 지난 1974년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이후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른 바 있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최근까지도 여러 운동을 통한 사회적 참여는 멈추지 않았다.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 용산참사 투쟁, 이명박 정권퇴진운동을 비롯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23차례 모두 참여했다. 백 소장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다. '항일민족론'(1971),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7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두 어른'(2017) 등 다수의 저작도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백미담, 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2021-02-15 11:06:22[파이낸셜뉴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89세 나이로 15일 별세했다.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오던 중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다. 1932년 황해도 출생인 고인은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해왔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에 참여한 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1974년 2월에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 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백기완 소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7시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2021-02-15 08: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