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했던 여름을 넘어서며 가을을 꿈꿉니다. 위로가 필요한 가을입니다. 이번 가을 여행지는 어디에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갈 수 없는 곳을 택합니다. 첨단의 과학시대를 돌아서서 미사일, 핵, 달나라 여행인 우주적 차원을 뒤로하고 내가 태어난 1940년대를 뒤로하고 책에서도 낯설게 공부를 했던 1920년대로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1920년대를 향해 간다면 오직 그 시대의 문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가을여행은 없을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만나고 싶습니다. 고즈넉한 백담사 작은 방에서 '님의 침묵'을 쓰시는 만해 선생을 만나서 왜 많은 작품을 여성 화자로 썼는지, 그 깊은 백담사 산골에서 달빛과 물소리만 청정했던 야밤에 무섭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고즈넉한 야밤 고요를 흔들며 세차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어떠했는지, 누가 그렇게 그리웠는지, 그 깊고 깊은 산속 달빛이 백담사 마당을 붉게 물들일 때는 어떠하셨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애국과 시의 가치는 어느 쪽이 기울었을까요. 그 무거운 입이 무어라 할지 바짝 다가가 묻고 싶기도 합니다. 만해 선생과 백담사 마당에서 더불어 별을 바라보거나 달을 바라보는 일도 하고 싶은데 제가 그 별이나 달보다는 선생을 더 깊숙이 바라보느라 오히려 하늘은 보는 듯 안 보는 듯했을 것입니다. 그 무거운 입에서 과연 백담사의 찬란한 별을 바라보며 무어라 하셨을까요. 그렇게 한번쯤 야밤 그 마당을 휘적휘적 그분과 함께 손잡고 걷고 싶습니다. 소월도 만날 것입니다. 그렇게 절박한 비탄의 그리움을 담은 '진달래'를 쓰시곤 조금 후련했는지, 그러고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는지 그의 극한 외로움에 대해 묻고 싶어집니다. 불운한 가정에서 시 아니면 붙잡고 죽을 대상도 없었던 소월 선생은 죽을 만큼 핏물로 쓰신 그리움이 있어 그래도 생명 연장을 하신 게 아닐까요. 그 시의 뼈대가 된 슬픔과 그리움과 비탄이야말로 선생의 또 하나의 밥이었을 것입니다. 말없이 소월 선생과 눈물을 닦으며 독한 술 한잔 하고 싶어지는 가을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쓰신 이상화 선생도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 제목 하나로도 충분히 거대한 시인이 될 수 있는, 아니 이미 되어있는 상화 선생도 그리운 분입니다. 대학 시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읽고 당장이라도 찾아가 뵙고 싶었던 시인이었던 마음만 풍선처럼 커지다 터지곤 했습니다. 젊은 내 가슴에 좌절과 절망이 덮치거나 사랑하던 남자가 날 못본 체할 때도 아 내 가슴에도 봄은 올 것인가 하고 일기장에 피 토하듯 하던 그 시절에 상화 선생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를 진정으로 갈 수 있다면 하느님께 빌어서라도 꼭 만나고 싶은 여자 셋이 있습니다.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입니다. 제 석사논문도 이 세 여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세 여자 시인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가면서 새 시대의 자아를 부르짖으며 1920년대를 박차고 산 여성들입니다. 지난 세월의 여성상을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더 더 더 먼 미래를 바로 내 앞으로 당겨 한번쯤 생각에 머무는 일들을 실천하며 산 여성들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그들의 예술은 그 시대의 여성 영웅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가슴에 '신여자'라는 팻말을 달고 다녔습니다. 모두 감정 폭발이 심한 여성들이었지요. 끓는 가슴들의 실핏줄을 뽑아 여성 우위를 부르짖는 그들의 가슴은 불꽃 그 이상들이었습니다.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깃발을 들고 살았습니다. 나혜석의 시와 그림과 소설은 지금 봐도 명구절이 많습니다. 결혼하자는 남자에게 옛 애인의 무덤에 절을 시키는 여자가 과연 지금 시대에도 있을까요? 자식을 낳고 부정한 연애를 하고 이혼을 당하고도 그 삶의 핵심을 무대에 올려 연극을 했던 여자가 지금도 있을까요? 스스로 말했듯이 선각자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나혜석을 만나면 너무 물어볼 말이 많아 차라리 침묵하고 싶은, 그러나 그 인생을 누비고 있는 손은 꼭 잡고 힘을 주고 싶습니다. 김일엽 역시 통 큰 여자였습니다. 무엇이 두려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지요. 신연애란 신문연재를 하면서 누구도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여자입니다. 결국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의 묵인으로 스님이 되었지만 그 가슴의 불은 꺼지지 않았으며 그 당시 수덕사가 불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김명순도 있었지요. 그 당시 그래도 가장 분명한 시집('생명의 과실')을 내고 작품 또한 완성이 보입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일상은 많은 이야기를 퍼트리기도 했습니다. 모두 불행하게 죽었습니다. 김일엽은 스님이라 그래도 품위 있게 눈을 감았다고 볼 수 있지만 두 여자는 어느 한적한 거리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올 가을여행은 가슴 설레게 합니다. 어느 멋진 카페에 그 세 명의 여자를 초대하고 더불어 돈에 관계없이 가장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습니다. 1920년대 그 미지의 시절을 모두 쏟아내지 않겠습니까. 지금 시대 여성 시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어야지요.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보다 미지근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이렇게 좋은 세상에 그렇게밖에 못살아?" 그렇게 빈정거릴 수도 있습니다. 대화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우리는 취기가 돌기 시작할 것입니다. 서로의 사랑이야기도 깊어갈 것입니다. 큭큭 웃다가 짤짤 우는 여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여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23-09-19 18:37:33악전고투의 환경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극한의문이 든다.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은 새로운 시대의 문제점으로 경악스럽게 찾아온다. 심각한 불안과 공포에서 우리들의 선한 노력이 더 앞서 그 난폭한 극한을 이겨내는 인간의 힘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생각하다 눈을 감는다. 우리는 지금 혼란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여름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극한'이라는 단어다. 없으면 더 좋을 말이다. 극한호우라고 하더니 극한폭염, 극한태풍, 극한대결까지 더 이상 올라가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극한까지 오르고 있다. 더욱이 '묻지마 극한사살'이라는 말까지 폭염 속을 오가니 극한고통으로, 극한일상으로 치닫고 있는 형편이다. 가능한 한 어렵게 키우지 않고 부드럽게 자식 키우는 것을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아이들이 이런 악전고투의 환경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극한의문이 든다. 그러니 연약한 몸과 정신으로 닥쳐오는 자연 극한을 무슨 힘으로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인지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정신'이란 단어가 이 여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가령 깨어 있는 정신 말이다. 이제는 교육법도 달라져야 하나보다. 적어도 '극한'이 어디로부터 언제 닥칠지 모르니 수능시험에 극한자연으로부터의 적응과 극복이라는 과목을 통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극한사살이라는 문제는 그 동네 이름만 들어도 불안하다. 인연도 없는 관계에서 무차별 죽음의 인연을 도발적으로 갖는 이 극한공포를 도무지 어찌해야 하나. 고통은 생명의 또 다른 이야기다.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제는 이해보다 극복이 필요한 시대인가. 그 극한을 잘 달래는 일이란 인간이 도약으로 더 잘사는 야망으로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높이만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옆과 뒤를 살피며 더불어 공생하는 일이 인간적 소망일 수 있지만, 그래서 정신적 열등감이 사라지는 사회 풍조가 되면 바랄 길이 없겠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정치는 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옆과 뒤를 바라보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식이 중요하겠지만, 그것도 가능하겠는가. 하늘의 푸르른 빛과 상형문자 같은 구름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서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사람이 순간적으로 칼을 휘두를 것 같은 극한공포로 우리의 꿈이 뒷걸음치고, "차라리"를 외치며 집 안에서 자신을 누르는 일이 반복될까 극한적으로 겁이 난다. 서현역 사고가 난 뒤 살인예고를 한 범인은 초등학생이라는 기절초풍할 일도 벌어진다. 이런 경우 공포보다 슬픔이 밀려온다. 도무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고, 나도 어느 가수처럼 테스형에게 묻고 싶어진다. 원시시대의 야생성은 이미 우리 유전자에 희미해졌을 것이나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은 새로운 시대의 문제점으로 경악스럽게 찾아온다. 우리가 누구를 위로할 때 흔히 "좋아질 거야, 넌 착하잖아"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제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기후변화로 다가오는 '극한'의 대처법은 착함으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 아닐지 모른다. 착하고 성실하게 잘 대처하라고 해야 할까. "좋아질 거야"란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기후환경에 대해 무식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왜 없겠는가. 인간이 저질러 놓은 환경 문제에선 눈을 감아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말문이 닫힌다. 늘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도 불행과 행운은 함께 왔었다. 불행인가 하면 그 뒤에 행운이 있었고, 행운인가 '으쌰' 하고 잘난 척을 하면 불행이 그 날개 속에 숨어 있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사회불안 장애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보라, 제아무리 태풍이 와도 8월 햇빛은 아직 그 열기가 식지 않았다. 그 태양의 강열함 속에 모든 곡식들은 익어 가고, 태풍과 극한폭염·폭우에도 그 곡식들은 자기 책임을 다할 것이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들을 보라. 그 찌는 듯한 태양, 생명을 앗아가는 폭우 속에서도 건실하게 매달려 익어 가고 있지 않은가. 그 안에 우리도 겪고 있는 사회 상황에 대한 불안·공포로 극한의 자기통제에 힘이 풀린다면 지금까지 우리 인간 삶에 극한을 헤쳐 나온 역사가 얼굴이 붉어지지 않겠는가. 중학교 2학년 14세 때 일인극을 한 적이 있다. 국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나는 혼자였고, 주인공이었고, 대사를 잊어버리면 혼자 생각나는 대로 무엇인가 말을 해야 했다. 앞에는 친구들, 선배들, 선생님들이 앉아 무대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엿장수가 지게를 지고 가위를 짝짝거리며 농사를 잘 끝낸 농부 아주머니들에게, 하늘에, 땅에 고맙다고 하는 그런 연극이었다.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은 대사 한마디로 웃기지만 인기를 끌었던 연극이다. "농사는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말이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니, 아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대지의 황홀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 무대 아래의 현실이 지금은 무대보다 더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공포증은 불합리하다 생각만 해도 호전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회적 상황에 대한 심각한 불안과 공포에서 우리들의 선한 노력이 더 앞서 그 난폭한 극한을 이겨내는 인간의 힘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생각하다 눈을 감는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불안장애 환자인 스콧 스토셀이 쓴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의 제목이 얼핏얼핏 생각나게 한다. 불안은 풀과 같아서 우리 마음 안에 절로 솟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 불안을 제거하는 안정의 손길이 있다. 계절을 따라 익어가는 열매처럼, 그래 폭풍을 이기고 붉어지는 저 열매들과 눈 맞춰 본다면 "뭐 뭐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다시 힘주어 외쳐야 할 것 아닐는지.
2023-08-15 18:02:39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만난 그림 한 장의 기억이 새롭다. 눈이 내리는 겨울날이다. 앞치마를 두른 개미가 문 앞에 서 있고 베짱이는 문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밥 좀 주세요" 하는 그림이다. 개미 집 안에는 난로 위에 물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따뜻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자, 이런 사진에서 누가 문밖에서 떨며 밥을 구걸하는 베짱이가 되겠는가. 그래서 선생님들은 개미가 되라고 세뇌를 시켰다. 해서 우리는 개미가 되려 했다. 두 손에 힘을 꽉 주며 "그래 우리 개미가 되자"라고 일기장에도 썼던 것 같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굶는다'라는 것 우리는 어디선가 위로를 받는다.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고 문학이 있지만 정작 우리가 어디에서 위안을 받는지 아무도 모른다. 은 그 시절의 명제였지만 개미 이야기는 우리들이 조직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통일 이야기보다 더 시급했던 것이다. '부지런하면 산다'는 인간 삶의 기본 명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부지런한 개미가 자신의 몸보다 큰 먹이를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개미는 힘이 억세게 센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며 생각했다. 개미가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먹이를 끌고 뙤약볕 속을 끙끙거리며 갈 수 있었던 극복의 힘은, 그래서 한겨울의 먹이까지 저축해 둘 수 있었던 도전의 힘은 개미의 힘만이 아니라 제3의 힘이 작용했을 거라는 것이다. 개미박사 최재천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개미의 매력은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인간을 뺨칠 정도로 조직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그들의 정신세계에 있다고 했다. 언뜻 보아 우리보다 훨씬 전체주의적 정치사상을 지닌 그들이지만 민주주의적 틀 속에 개인의 권익을 중시하는 걸 보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400만년 정도이고, 개미는 약 8000만년이라고 하니 그 시행착오의 역사와 전진은 놀라울 것이다. 그러나 개미의 역사보다 우리가 개미를 성공의 주인공으로 가슴에 새겨야 했던 것은 바로 "배불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배불리는 일이 그렇게 어려워지지 않을 때 대학생이 되고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넓어질 때 개미의 반대편에 선 베짱이를 생각했던 것이다. 개미의 제3의 힘은 베짱이의 노래였다고 나는 단정했다. 그 노래가 개미의 힘이었던 것이다. 개미가 자신의 본래 에너지보다 놀라운 힘을 부풀린 것은, 그렇다. 그것은 베짱이의 노래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베짱이는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놀고먹은 것이 아니라 베짱이도 만약 가수였다면 일을 한 것은 아닐까. 예술을 돈으로 지불하지 않는 무지한 시대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어디선가 위로를 받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고 문학이 있지만 미술치료, 음악치료, 시치료가 있지만 정작 우리가 어디에서 위안을 받고 우리가 고통스럽고 상처 많은 시절을 견디며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푸르른 하늘일지도 모르고, 초록이 넘실거리는 한여름 숲이었을 수도 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친구가 "너는 잘할 것 같아"라고 한 한마디에서 두 손에 힘이 주어지는 일이 왜 없었겠는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고 밥을 먹고 돈으로 호사를 하지만 외롭고 쓸쓸하여 내상(內傷)이 심한 사람들의 위안은 정작 돈을 지불하지 않고 소위 문화라는 아주 작은 계기에서 죽음을 삶으로 전환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쓸쓸히 걷는 길에서 들리는 상점의 음악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듣던 노래를 입으로 따라 흥얼거리다 웃어버리는 그런 일…. 사실은 널려있는지 모른다. 한옥 기와집 처마 밑에 흐르는 가을 햇살이나, 한강의 묵묵한 흐름이나,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새벽에 등교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도 보통의 일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위안과 응원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움직임은 중요한 예술의 모티브가 되는 것인데 바로 그 움직임이야말로 리듬의 가락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주어진 공용의 자산을 무시한다. 푸른 하늘이나 구름 숲 그리고 거리의 나무들…. 바람이나 꽃들은 사실 무상으로 주어진 우리들의 공용자산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공용자산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니 그 자산을 키우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잠시 "좋다"라거나 "아름답다"라거나 생각하지만 내 것이라는 책임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생명인 환경을 내던지고 살았는지 모른다. 환경생명은 단지 나무나 숲이나 강만은 아니다. 인간의 의식이다. 우리의 것이라는 공용자산을 아끼고 가꾸고 돌보는 심성이 바로 환경보호의 우선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베짱이의 노래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워한다. 감상에 젖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내일 강의 약속도 하나 있고, 내일까지는 먹을 사과가 남아 있는데도 어깨가 이리도 시려서 영 힘이 나지 않는 나도 어디엔가 베짱이의 노래가 있다고 믿고 있다. 베짱이는 책일 수도, 노래일 수도, 그림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다. 한편의 시가 베짱이일 수 있다. 저 하늘, 구름, 바람, 숲, 나무가 베짱이일 수 있다. 자신의 베짱이는 책일 수도, 노래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힘을 만들어 내는 일은 바로 예술이며 환경이다. 능력을 극복하여 더 큰 힘을 만들어 내는 일은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며, 바로 환경이라는 점을 오늘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사유(思惟)의 원천은 바로 리듬감각이다. 내 몸의 마지막 피 한방울 마음의 여백까지 있는 대로 휘몰아 너에게로 마구잡이로 쏟아져 흘러가는 이 난감한 생명이동 '그리움'이란 졸시다. 이 시대의 베짱이는 너무 몸을 불려 절제와 선택이 필요하게 되었다. 베짱이의 노래로 개미가 기적의 힘으로 겨울 준비를 하는 것처럼 지금도 미래를 위한 문화적 위로를 누구나 소유할 과제를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2023-07-18 18:28:33시대는 우리를 바쁘게 한다. 이 시대는 우리를 번거롭게 한다. 그렇다. 이 시대는 우리를 방황하게 만든다. 이 세상은 너무나 할 것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뭐든 해서 될 것처럼도 보인다. 하나를 딱 선택하기가 너무나 어려워 보인다. 광고, 홍보 뭐 이런 것 때문일까? 어디를 봐도 좋다고, 이것이면 인생은 모두 다라고 떠들고 있다. 날마다 우리는 과도하고 황홀한 홍보를 들으며 살고 있다. 문제는 사람의 의식이고 판단이다. 지금 이 시대는 가장 인간의 올바른 판단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하나의 선택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재미'를 따진다. 인생에 재미가 없으면 그것은 인생이 아니라고 말이다. 과연 재미있는 생이란 뭘까.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재미를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심하게, 덤덤하게 사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 정도만 살아도 재미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적당히'보다 더 어려운 말은 없다. 맛을 따진다. 건강을 셈한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가장 뚜렷한 화두다. 우리들 나이쯤 되면 자식들을 모두 혼인시켜 보내 놓고 부부가 안정적으로 사는 친구들이 많다. 여기서 안정적이라는 말은 자식 다 혼인시키고 얼마만큼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고 주변에 이렇다 할 걱정거리가 적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내 친구들은 거의 그렇게 산다. 부부가 감동적으로 눈부시게 살지 않는다고 해도 집 안에서 마주치면 눈웃음 한번 치지 않고 살고 있지만 그들은 나쁘지 않다. 그들은 말한다. 심심하다고. 늙은 아내를 바라보는 일과 늙은 남편을 바라보는 일이 싱겁다고. 아니 귀찮다고까지 한다. 그러면서 담담하게 웃는 그들이 행복하게 보인다. 그 편안한 행복이(나는 행복으로 보인다) 젊은 날 오직 하나의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그 평범한 행복이 젊은 날 오직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은 짜릿한 게 아니고 오히려 덤덤하다고 말하면서 재미없다고 말한다. 재미? 그것은 너무 과분한 욕심이다. 그들이 말하는 재미는 그들이 젊은 날에 모두 까 먹은 밤이다. 하얀 속살을 다 파 먹은 밤 같은 것이라고 내가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하나를 위해 잠을 줄이고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늘렸다. 지금은 다른 재미를 찾아야 한다. 젊은 날에는 고생만 했으니 무슨 재미가 있었느냐고 말하지만 결국 생의 재미는 누구에게나 고르게 나누어져 있다. 젊은 날이라고 하늘이, 햇살이, 꽃이, 새가 없었겠는가. 그저 정신 놓고 사느라 그런 무상의 선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아 온 그 엄청난 예술을 이제야말로 넉넉히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노년은 결코 나쁘지 않은 것이다. 다 끝낸 것처럼 보내는 친구들 사이에 보석같이 아름답게 사는 내 친구 부부가 있다. 이들 부부는 다 퇴직을 하고 앞으로의 설계도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돈 많이 안 주고 가장 즐거운 것을 많이 하자는 것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모았다고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까운 산에 가고, 자연의 변화를 보고, 식사는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뭐든 해내고, 맛이 없어도 웃으며 먹는다. 오후는 돈 안 주고 구경할 수 있는 그림 전시회를 일주일에 두 번은 꼭 간다는 것이며, 젊은이들이 노는 대학로를 걷고, 때로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한국의 가 보지 않은 도시를 구경하는 일이란다 그러나 그중에 내가 가장 놀라워 한 것은 두 사람이 꼭 지키는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책이다. 책 목록을 정하고 읽고, 독후감도 써 보고, 서로 웃고, 잘 쓰지 않아도 되고, 부족하면 그런대로 다시 웃고 그렇게 사는 부부가 있다. 더욱 예뻐 보이는 것은 자식들에게 전화보다 편지를 더 많이 쓴다는 사실이다. 언제 우리가 자식들에게, 친구들에게 고요히 마음을 다듬고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는가. 퇴직 후는 그런 시간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남들이 하기 어려운 고시를 서로 읽는 것인데, 이달에 읽은 시가 이옥봉의 그 아름다운 절창의 노래였다고 한다. 근래의 안부는 어떠신지요 사창에 달 떠오면 하도 그리워 꿈속 넋 만약에 자취 있다면 문앞 돌길 모래로 변하였으리 1550년에서 1600년 사이의 생을 살다간 아름다운 이옥봉은 보고 싶은 애인의 창가를 너무나 많이 밟아서 돌이 모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눈물나는 절창을 노래한 것이다. 얼마나 님을 그리워 했으면 돌이 모래가 되도록 님의 창가를 맴돌았을 것인가. 과장법이겠지만 그 애타는 그리움은 잘 전해 오는 시다. 나는 시를 서로 주고받고 서재에 가서 없는 시는 서점에도 가서 사기도 하며 사는 내 친구 부부가 가장 명품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라고 견디어야 할 것이 없겠는가, 속 터지는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훌훌 털고 가끔은 하늘을 보며 다시 시작하는 것이리라. 소주도 가끔 거나하게 마시는 이 늙은 부부가 그렇게 함께하는 것은 어느 예술품보다 훌륭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향, 앞선 선조들까지 빛나 보이게 하는 힘이 있어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귀찮으면 한 달쯤은 아무것도 안하고 각자 알아서 산다는 대목이다. 그 친구는 내게 새로운 힘을 부여했다. 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명품을 찾게 하는 힘을…. 신달자 시인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2023-06-20 18:16:09말(言)은 인간의 특권이라 사람들은 날마다 말을 하고 산다. 사실 눈만 뜨면 하는 것이 말 아닌가. 상대와 의견 소통도 말이고, 가르치는 교육도 말이고, 사회가 도덕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일도 모두 말로 이루어진다. 말이 없다면 인간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진정하게 반드시 해야 하는 말에는 우리가 너무 인색할 때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침묵을 금(金)으로 지정해두고 말하는 것을 상스럽게 생각한 때도 있었다. 말이 많으면 방정맞다고 야단맞았고 밥 먹을 때는 말이 금기(禁忌)인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본심은폐증(本心隱閉症)이 한국 사회에는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왜 좋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따지면 마음에는 있다고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 사랑이나 정(情)을 혼자 생각만으로 만족해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그래서 윤기(潤氣)가 없었다. 팍팍하고 가파르고 날이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말에 뼈가 있다"는 말도 사용했다. 한국 사람들의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만 쌓아둔 말은 북한산보다 높을지 모른다. 그 세월을 살면서 어디서 위로를 받았을까. 위로는 없었고 포기가 많았다. 그래서 특히 내 어머니 시대의 여성들은 한숨이 많았고, 한숨이 길었고, 한숨을 들이켰다. 누구 하나 "힘들지요?"라고 위로한 사람이 없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믿고 모든 불만과 억울함을 꿀꺽 삼키는 일에만 능하였던 것이다. 왜 사랑한다 고맙다 말하지 않느냐 물으면 마음속에 다 있다는 당신, 하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아요. 그걸 보여주는 것이 말 아닐까요. 그래서 위장병이 많았고, 그래서 "속 터져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정말 배가 터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오죽 답답하게 혼자 삼키고만 살아서 속이 터지는 불상사가 났겠는가. 그것이 한국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시대는 놀랍게 달라졌다. 스마트폰 문자로 하루에 백번도 더 넘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마음의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말해야 맛인가요? 나도 마음에는 다 있거든요." 아내와의 싸움 끝에 답답하여 내게 상담 겸 이야기한 어느 남자의 말이다. 부부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짧다. 마음만 믿으라고 하면 그것은 무리한 요구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게 하는 것이 말인지 모른다. 이 세상에 완벽한 행복은 없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행복도 없다. 이 세상에 단 한 개의 걱정이 없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사실 말만 적당히 잘 표현하면 웬만한 어려움은 잘 지나갈 수 있는지 모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그런대로 잘 끌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선가 발목을 잡는 빌미의 따스한 손길이 필요하다. 종일 스트레스 속에서 부딪치며 사는 남자에게도, 종일 자잘한 집안일로 비슷한 일들과 싸우는 여자도 속이 터질 것 같은 것은 마찬가지다. 집에 가면 볼 것이지만 신선한 아침에 목소리라도 듣거나 문자라도 날리며 "당신 오늘도 힘내요"라고 서로 마음을 전달하면 픽 웃겠지만 그 마음은 피로해소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날 알아준다는 그 믿음 하나가 하루의 피로를 푸는 출발점이 된다면 누가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마음에만 두지 말고 마음을 꺼내어 상대에게 안겨야 한다는 것을 한번 더 다짐해야 할 것 같다. 대화가 보약이라고 해서 옛날 어느 날 남편과 늦은 밤에 와인 한 잔을 하다가 내가 한 마디, 남편이 두 마디 세 마디 하다가 우리는 큰 소리로 싸움이 났다. 우리는 다 같이 "우리는 안 돼, 다른 부부 다 돼도 우리는 안 돼"라고 단정을 지었다. 지금은 후회스럽다. 내가 그의 약점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거 아닐까. 약점 지적보다 위로가 먼저다. 가끔은 서로 마음을 트라고 나는 말한다. 이제 그 마음을 꺼내 상대에게 보여주자 다짐하면 어떨까요. 한바탕 지껄이고 나면 쌓이고 쌓였던 감정의 두께가 얇아지는 걸 느낄거예요. 사람마다 혹은 다정한 부부라도 마음의 벽이 있다. 사실 그 벽을 터야 더 친한 관계가 된다. 자식을 낳고 살아도 그 벽을 트지 못하면 그만큼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살게 된다. 그것을 상대가 모르겠는가. 말하지 못하는 고립을 서로 안고 산다면 그것은 잘못된 그림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서로의 본심을 무리 없이 말하는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잘사는 부부라는 생각을 부부의 날을(5월 21일) 앞에 두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 속에는 무수한 인간의 역사가 숨어 있다. 부부의 행복이 가정을, 사회를, 국가를 들어올리는 힘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누가 말했다. "요즘 여자들 카페나 식당 차지하고 종일 떠들어대는데 속이 답답하다고?" 그만큼 떠들고도 답답하다면 이유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서 조금씩 말이 줄었다. 그것이 슬프다. 밥 먹고 차 마시고 이것저것 몇 마디 하다가 피곤하다며 일어선다. 그것이 슬프다. 한때는 우리도 서로 말하기 대회라도 나온 듯 각자 밥 먹다가도 일어서서 연설을 하다가 조금 민망했을까 "수다의 수자는 목숨 수(壽)야!"라고 속웃음까지 끌어낸 친구도 있었다. 친구끼리 만나면 지치지도 않고 없던 힘도 치솟아서 할 말 안 할 말 하고 몸의 정신의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리라. 한바탕 지껄이고 웃고 집에 가면 집안의 불편한 점도 대충 지나갈 만한 것이다. 쌓이고 쌓인 심층 감정의 두께가 얇아지는 걸 느낀다. 한번 털어내었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는 치유라고 부른다. 그렇게 감정 억압을 풀면 집안의 문제도 어쩐지 쉽게 풀 것만 같은 것이다. 부정적 감정을 깊이 숨기지 말고 드러내 표현하는 관계 유지야말로 우리들 가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고, 행복한 인간 관계로 나가게 되지 않을까요.
2023-05-16 18:33:10지난 3월 죽은 듯 아득히 멀었던 나뭇가지들이 새의 혀 같은 새순을 내밀었을 때 나는 살아 돌아온 어머니같이 소리를 질렀다. 와, 아아, 얘 살아 왔네, 우리 엄마 같아. 나는 좀 과하게 소동을 피웠다. 봄이 왔다. 눈엽(嫩葉)이라고 했다. 이 눈엽이 신록이 되고, 그 신록이 녹음이 되고, 그다음은 낙엽이 된다. 계절은 약속의 신이다. 그 겨울의 영하를 녹이고 우리 집엔 모란이 꽃잎을 열고, 그 겨울의 20도를 녹이고 기어이 고광나무의 하얀 꽃을 피우게 했다. 꽃은 차례대로 피우지 않았다. 땅 위로 가지 위로 새순을 밀어올리는가 싶더니 산수유, 영춘화, 생강나무, 목련, 매화도 지고 개나리도 아득히 지고 철쭉과 명자나무가 뜰을 밝히고 있다. 벚꽃이 철 이르게 활짝 피우다가 또한 멀어져 갔다. 4월 꽃이 아니라 3월 꽃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봄꽃들의 아름다움은 무리 지어 피는 데 있다. 조금 마음이 외로운 사람들도 무리 진 꽃들 앞에 서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꽃이 지면 잎이 온다. 자연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왜 실수를 하지 않겠니. 가족은, 친구는, 동료는, 이웃은 '이해'라는 거대한 감정으로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 3월에 동네 벚꽃을 친구들과 보다가 한 친구가 말했다. 그것도 시큰둥하게 자기를 비하하며 말한다. "넌 좋겠다. 시인이라서 늙어도 시인은 살아 있잖아. 난 뭐하고 살았는지 몰라." 꽃을 보다가 그 친구는 자신을 되돌아 보았을까. 나는 꽃 앞에서 실례라고 꽃 앞에서 나이 불문 꽃이 되어 보라고 웃으며 말했다. 공직자의 아내로 3남매를 길러 결혼 잘 시키고, 손주 봐주고, 손주 결혼시킨 그 업적을 바닥으로 내모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기분은 알겠다. 우리 나이에 돌이켜 보면 뭘 했는지 희미하고, 시집을 낸다는 친구가 좀 다르게 보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절대로 자기 자신의 지난날에 왕관을 씌우진 못해도 자기 비하는 금물이다. 꽃을 보고 놀라고, 향기를 맡고 꽃 앞에서 자신을 불러내어 자기 모습을 보았다면 너도 시인이야. 아, 80의 강을 건너 왔네. 비오는 날 커피를 마시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전화로 낮게 이야기해주던 너는 시인이야. 이 세상에 엄마만 한 시인이 어디 있겠니. 사랑, 희생, 기도 이것을 완벽하게 실천한 엄마는 아무래도 시인이라고, 예술가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다만 문자로 남기거나 등단의 절차를 밟지 않은 것뿐이다. 침묵의 예술가라고나 할까. 가족으로 살아 보았다면 너는 시인이야. 가족은 사랑으로 존재하지만 가끔은 그 사랑에 금이 그이기도 하는 거지. 사랑도 때로는 헛딛고 지칠 때가 있는 거야. 표현할 수 없는 금이야 아프고 절망감도 있지만 그런 빗금이 수만개 온몸에 그려지지만 사랑이라는 지우개로 천천히 지우면서 자기 손으로 자기 아픔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거, 그러다가 아주 작은 가족의 기쁨으로 수만개의 빗금이 사라지는 체험을 했다면 너도 시인이야. 가족이란 사랑 더하기 미움이 존재할 수 있는 거야. 그럼 백번 그렇지. 인간이니까. 인간과 인간이 왜 실수를 하지 않겠니. 그래서 가족은, 친구는, 동료는, 이웃은 '이해'라는 거대한 감정으로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깨닫는다. 지루함을 벗어야 하지. 세상에 바라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아름다움과 음악을 찾는 너는 분명 시인이라고. 가족으로 살아 보았다면 너도 시인이야. 어느 순간 사랑의 기둥으로 세워져 있다는 그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사랑이 잘 보이지 않아 사랑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롭다가도 어느 한순간 어느 가족이 "엄마!" 하고, "여보!" 하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간절히 부르면 아무것도 없고 사랑만 보이는 이상 경험을 했다면 너는 시인이야. 가족 누구도 모르게 홀로 어떤 문제를 안고 괴로워한다면 실제로 가슴이 아프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아프다가 세상은 참 외로운 것이구나 생각했다면 너도 시인이야. 그래 맞아. 가족이 아니라 인생이, 삶이 외로운 것이지. 왜냐하면 인생이, 삶이 너무 거대하고 살아갈수록 잘 모르는 것이기도 해서. 사실 그래서 가족은 가장 필요한 것인지 몰라. 수수께끼투성이이지만 조금은 자기를 낮추고 배우는 심정으로 인생에 다가가면, 그러다가 느끼는 수만가지의 감정이 있다면. "이 감정은 뭐지?"라고 생각했다면 너도 시인이야. 홀로 울어 보았다면 너도 시인이야. 그리고 툴툴 털고 운 흔적을 지우며 방긋 웃으며 가족을 대한다면 너도 시인이야. 인생은 대광야라고 한다. 나는 인생을 용서하는 사람이야. 그래 이 정도면 좋은 거지, 이 정도면 탁월한 거지, 참을 만한 거지. 그렇게 덤을 준단다 인간에겐 인간이 해명할 수 없는 함정이 있어. 마음과 몸과 생각이 다르게 돌아가는, 그래서 스스로도 놀라는 행동에 갇히는 경우도 있지. 슬프기도 해. 쓸쓸하거든. 굶주린 느낌도 들거든. 이런 것을 정서적 허기라고 부르지. 아마도 우리 나이면 다 경험의 이름으로 통과된 지난 길이었을 것이고 우리 앞에 남아있기도 해. 정서적 허기는 약이 없어. 약이 있다면 좋은 일을 하는 거야. 사물과 친해지는 거야. 부정적 사고를 버리고 긍정의 사고로 오늘 이 하루의 이 시간을 바라보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너는 그래서 시인이야. 나는 깨닫는다. 지루함을 벗어야 하지. 세상에 바라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하늘이 가진 것, 땅이 가진 것, 허공이 가진 것, 계절이 가진 것 그리고 사람들 그 사람들과 귀한 책들…. 너는 아침 라디오 음악을 듣다가 내게 전화한 적이 있지. 나는 생각했다. 지루함에서 벗어나서 아름다움과 음악을 찾는 너는 분명 시인이라고 말이다. 모두 말 잘하는 것을 배우는데 너는 언제나 침묵도 배워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래! 너야말로 시인이야. 그럼! 너는 대시인이야.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2023-04-18 18:19:22한국 사람들은 마음을 먹는다. 마음까지 먹는다고 구차한 현실로 끌고 가면 안 된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하루의 변화와 삶의 새로운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 아프다" "마음에 든다" "마음 쓰라리다"라는 표현도 쓴다. 우리나라는 특별히 마음으로 내면표현을 한다. 마음으로 우리 내면의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풍경을 표현한다. 그리고 잘 알아듣고 잘 통한다. 마음 안에 육신과 정신이 다 모여 있고, 실수와 이득이 마음 안에서 비롯되어 있는 것으로 인지되어 있다. 마음이 신격화되어 있는 것일까. "마음이 시키는 대로"라는 말도 여기서 출발할 것이다. 마음은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큰맘 먹는다고도 하지 않는가. 자신이 좀 과다한 의욕으로 무엇인가를 해 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세상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 하나를 굳은 결심으로 철벽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마음 아프다, 마음에 든다, 마음 먹는다, 마음이 오고 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을 빼앗겼다, 마음을 훔친다는 말도 사용한다. 그 사람에게 매혹 당했다든가 한눈에 반해 버린 경우도 마음을 들먹인다. 그 말이 듣기 좋았다. 마음이 아주 비싼 것인지, 무슨 보석이라도 되는 것인지 "마음이 오고 있다"라는 표현도 은근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말이다. 우리는 다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 보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마음병이란 말도 사용한다. "마음이 멀어져 간다"라는 말은 그 대상이 누구라도 마음 아프다. 사랑이 갈 길을 잃거나 하고 싶은 일이 몇 번이고 실패로 돌아갈 때 흔히 마음병에 걸렸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 마음병을 결국 마음이 해결하는 것으로 인지한다. "마음 다져 먹고"는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마음을 꾹꾹 누르며 마음을 다져 먹으며 일어서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마음병은 정신의학에서 전 세계가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일로 오래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순수영역으로 존재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마음을 모든 대화의 연결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멋진 일 아닌가. 나는 은근히 마음으로 표현되는 대화들이 마음에 든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우리는 이 말을 한다. 한국 사람들은 마음주의자들이다. 마음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안"의 주인공이 마음이다. 우리는 '안'을 귀하게 생각한다. "마음 안에…"라는 표현도 자주 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안에 먹을 마음이 있기 때문에 든든하다. 나는 내 마음을 대화자로 생각한다. 마음도 이젠 늙어서 내 걸음의 넓이를 잘 이해해서 내가 좀 과다한 일을 하면 마음이 먼저 지치고 드러눕는다.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까.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들었다 놓아도 한 티끌 겨자씨보다 작은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시조시인 조오현 스님 글이다. 내 마음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은 자기가 경험하고 생각한 대로 내면의 잠재된 모양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내 마음은 내가 만든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에게 기댄다. 약간의 모순이 깔려 있지만 마음은 한 사람에게 아주 소중한 정신적 힘을 모은 주머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먹는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도 마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의지하고 먹기까지 하는 마음을 위해, 마음건강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타인을 돕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물질적인 것도, 마음이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도, 우리가 인간적 후원을 가지는 일도 모두 내 마음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초심(初心)이라고 말하는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잠시 멈추고 들여다보면 그 마음은 분홍빛일 것이다. 언제라도 변할 것 같지 않은 그 분홍빛이 조금씩 변화하고 검은 빛이 도래하면 우리는 그 변화된 빛을 "삶"이라는 짧은 단어로 대신하려 한다. 삶은 누르는 힘이 있었으니까. 청심(淸心)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삶이 결코 변색되지 못하게 하는 우리들의 단호한 의지는 노력과 배움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마음을 우리 자신과 분리해서 우리들의 내면표현을 저 하늘에 걸린 해나 달처럼 생각하며 먹기도 하고 내려놓기도 하는 마음관리는 정말 지혜롭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마음은 결단코 쇠락하지 않는 영원의 힘인가. 내 마음을 먹기 위해 내 마음에게도 먹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영성적 기도요, 독서요, 좋은 강의를 듣는 일이며, 질 좋은 대화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며, 식물들의 침묵과 견딤을 배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은 쇠락하지 않는 영원의 힘인가. 내 마음을 먹기 위해 내 마음에게도 먹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마음이 언제나 맑고 깨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에서, 나무를 바라보는 일에서 나를 내려놓는 일을 배운다. 마음을 내려놓는다. 달달 볶는 마음을 내리고 고요히 자연을 감상하는 마음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어릴 때 자주 뭘 잃어버리면 어머니는 "마음을 도대체 어딜 두고 다녀!"라고 하셨다. 마음은 방향이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와 같은 것이었다. 과욕으로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그런 마음에서 마음의 향기는 멀리서도 피어나지 않을는지…. 이제라도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며 산 마음을 보호하고 사랑해야겠다. 과욕으로, 악담으로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아야겠다. 그래야 그 마음을 먹고 오늘도 기력을 다해 일어나지 않겠는가. 잠들기 전 내 마음에게 한마디 던진다. 마음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2023-03-14 18:00:12우리 동네에는 300년이 넘은 보호수가 있다. 산책길에 몇 마디 인사를 건네는 일은 일상이다. 그는 늘 80살의 내게 "아가야!"라고 부른다. 나는 선생이라 부른다. 호칭은 선생이지만 이미 몸은 상할 대로 상해 껍질은 투박하여 쪼개지고, 속은 시멘트로 채워져 있다. 그런 몸으로 봄이면 시퍼런 잎들과 그늘을 만들어 낸다. 그의 호칭은 다시 '투지'가 되고, 나는 스스로 격상되어 투지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내가 날 부르는 정직한 호칭은 보통 여자다. 우리 동네 300년 넘은 보호수 찾아갈 때마다 투정하는 나에게 "그래 그것뿐이야? 그럼 됐어" 바람 불어 내 어깨를 토닥여준다 이 투지의 스승에게 나는 많은 말을 한다. 요즘 잘 안 풀리는 이야기, 그나마 이 정도는 행운이라는 이야기, 속이 터질 듯하다가 겨우 넘겼다는 이야기와 무능에 대해서, 과한 욕망에 대하여. 때론 어떤 친구 욕도 하고, 어떤 남자 흉도 보면 그 스승은 대답한다. "그래 겨우 그것뿐이야? 터지다가 견디었으면 너는 잘살고 있는 거야. 수백 번 터진 사람도 많아. 아가야, 너는 지금 산책 중이잖아. 그럼 됐어. 됐다니까." "나는 힘든데 왜 내 마음은 몰라주세요." 하면 그는 바람을 불러 내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심심하다고 했고 고독하다고 말하였으나 외로움이란 말은 발음하지 않았다. 움직이면 외로움의 은빛 날에 내 몸이 베인다. 그 무게는 없는 듯 안으로 감당하며 살아간다. 외로움은 생명의 그늘인가. 누구도 제외되는 법이 없는가. 외로움은 가는 비처럼 오기도 하고, 구름처럼 누르기도 하고, 때론 천둥처럼 소름이 돋게도 한다. 외로움은 온 몸을 조여 통증까지 느끼게 할 때도 있다. 스스로 그 날에 베이지 않으려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다. 아니면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영국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흑백사진은 거의 모두 홀로 선 나무들이다. 눈밭, 벌판, 절벽에 홀로 서서 자연의 골수 깊은 고통을 견디며 지극히 차가운 아름다움을 연출해 낸다. 외로움이 아름다움으로, 빛으로, 예술의 극치로 변화하는 것은 나무 내면의 고통이 승화된 결과일 것이다. 그 나무들이 정겹다.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묵언수행과 간절한 기도로 오직 자신의 길을 가는 나무와 겨누면 인간의 외로움이란 간지럼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할지 모른다. 이 시대의 외로움은 반드시 홀로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배는 부른데 마음은 굶주리는 정신적 허기가 핵심이다. 소망이 빗나가고 관계는 무너지고 자신은 시선 밖에 머문다고 생각될 때 우울은 깊어지고, 외로움은 질병 수준으로 추락한다. 문제는 그런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도 허기는 있다. 인간 삶이란 미끄럼틀이 아니다. 잘 흘려 내리는 것이 아니더라. 걸림돌에 자주 넘어진다. 삶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아픈 두 다리로 아득한 층계를 스스로 오르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다 다리가 아프다. 여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남자들은 울어선 안 된다고 가르쳤다. "사나이의 눈물은 패배"라고 우겼던 것이다. 그렇게 견디다가 결혼을 하고 울적할 때 그 외로움을 아내에게 위로받을 수 있을까. 가장(家長)으로 더욱 울어서는 안 되는 입장으로 위치 격상되어 있는 남자들은 사실 늘 마음이 허기져 있다. 평범한 여성에게도, 뛰어난 유대감과 사회성을 가져 '독종'이라 불리는 여자에게도 과다한 외로움이 존재한다. 이 외로움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캄캄한 어둠을 피할 수가 없다. 사람 내부에 외로움이 하나의 장기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를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세계는 이 외로움을 철거하려는 정치적 여론까지 확산되고 있다. 2018년 영국은 최초로 외로움담당장관을 뽑았다. 트레이시 크라우치다. 2021년 일본도 고독장관을 임명했다. 개인의 외로움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돕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외로움을 질병 차원을 뛰어넘어 새로운 의욕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작은 지원이 아니라 대화일 것이다. 소통 그리고 자존감이다. 할 수 없는 일로 고민하지 말고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외로움이라는 심장은 다스려진다 결국 내가 나를 대접하는 게 '삶'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아름다운 걸 포착하는 능력, 그래서 상처를 새로운 의미로 부여하며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힘. '나는 잘못되고 있다는 고독의 경고음'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둘레를 정확하게 이해해서 조금도 과다하지 않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일이다. 외로움을 녹이는 위로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외로움의 땅이 넓어지면 투시의 눈이 멀고 감각의 촉매가 둔해진다. 외로움이 작아지고 힘을 얻으며 의욕이 팽창하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자기가 자신을 대접하는 일이 소득이게 하는 …. 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무엇이라도 일을 할 때 운명의 지배를 덜 받는다는 생각을 나는 너무나 오래 해왔었다. 외로움은 이상현상이 아니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자연현상과 같이 꽃이 피었다 지고 다시 피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은 생명을 가진 자들의 육신 그 한 부분이다. 하나의 장기라고 말해 두자. 그러므로 잘 사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노력이 정서적 근육을 다지는 일이 되지 않을까. 외로움을 생명의 그늘이라고 수용한 것처럼 외로움은 살아있음의 신호다. 그러므로 한 몸으로의 소통이 필요하다. 나는 나에게 이런 교과서적인 말을 되풀이한다. 빗나가는 나를 세우기 위해서다. 취약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우리 동네 '투지 선생'도 이 문제에 대해선 만족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땅에 뿌리를, 하늘에 머리를 둔 300년을 넘어 산 보호수도 외로움은 잘 풀지 못하는 문제일까. 외롭다고 말하려면 금기처럼 뒷말이 흐려진다. 이 시대의 변화에 몸을 실어 인생이라는, 삶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외로움'은 바로 나 자신의 심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면 안 될까. 당신은 심장을 어떻게 다스리나요? 지금 이 시간에 주어진 일을, 쓰거나 읽거나 먼 산을 바라보거나 아무튼 무슨 일이건 진심으로 하는 것. 말이 될까요?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2023-02-14 18:08:03화해와 치유의 작가 신달자 시인이 매달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고단한 삶에 아프고 지친 이들을 위한 위로의 글을 전해드립니다. 시인은 시뿐 아니라 수필, 소설까지 넘나들며 많은 사랑을 받은 국내 대표적 여성 문학인입니다. 삶의 지독한 고통 속에서 끌어낸 절절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팍팍한 시대 시인과 함께 따뜻한 걸음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은 '타인의 생각'이다. 인간의 성장은 타인의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타인의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아기, 어린이, 학생, 청소년, 처녀, 아줌마, 선생님, 노인, 어른, 할머니까지 오는 데 가장 많은 영양분은 '타인의 생각'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모두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익히고 배우는 과정이다. 자신의 생각 하나로 인간 사회 안에서는 생활이 어렵다.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일 때 내 생각이 설 자리가 생긴다. 그것이 사회인이 되는 과정이고, 그것을 인간의 품성이고 인격이라고도 한다. '타인의 생각'으로 성장한 우리, 남을 존중할 때 내 설자리도 생겨 그것이 인간의 품성이고 인격 타인의 생각을 가장 편안하고 내 것으로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책과 신문이었다. 한 달에 책 3권, 하루에 3개의 신문만 읽어도 하루의 영양은 벅차고 넘친다. 좋은 생각, 알아야 할 지식, 반드시 나도 실천해야 할 일들이 책과 신문 안에는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나면 신문값을 더 내고 싶어진다. 이렇게 '타인의 생각'으로 정신의 영양을 채우면서 산 결과 중에 중요한 하나는 '삶의 너울'이다. 생명은 물속에서 태어나서일까. 삶에는 분명 파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뼈대가 고통이다. 우리는 기쁨, 즐거움, 환희를 좋아하고 그것이 왔을 때 오는 미소, 웃음소리, 벅찬 충만감을 좋아하고 그것을 갖기 위한 '희망'이란 말, '소망'이란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인생사는 기쁨, 즐거움, 환희가 절대로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밤 다음에 아침이 오고, 겨울 다음에 봄이 오고, 고통 그다음에 생명을 얻듯이 내가 무엇인가 견디고 이를 악물었을 때 그다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환희가 온다는 것은 거의 철칙처럼 보였다. 그리고 인간에게 누구나 반드시 죽음이 온다는 것도 사무치게 두려운 경고라는 것을 신문에 실리는 부고란이나 책에서 많이 보아 온 사례인 것이다. 누가 신문을 잘 차려진 밥상이라고 했던가. 이 밥상에서 밥과 국은 기쁨과 고통이라고 생각된다. 기본 주제라는 이야기다. 우리 삶에는 분명 파도가 있어 고난 뒤 '철칙'처럼 따라오는 건, 기쁨이라는 벅찬 충만감 '부잣집 딸' '장미집 딸'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성장했고 여고 시절을 부산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다니며 시골 여학생이었던 나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빼고는 고통이라는 것을 몰랐다. 용돈은 넉넉해서 여고 시절 부산의 부자 냄새가 나는 청탑 그릴에서 친구들을 데리고 함박스테이크를 먹었고 신나게 돈을 냈다. 그러나 그렇게 잘나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와르르 무너졌고, 우리 가족도 더불어 무너졌다. 결혼생활도 막막했다. 아이 셋을 낳고 막내가 두 살 때 남편이 쓰러졌고, 우리 가족은 모두 땅바닥을 기어야 했다. 다음 해 시어머니가 쓰러져 내 옆방에 누우셨고, 나는 거대환자 두 명과 아이들이 있는 집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장(家長)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내게 그런 악몽의 시간들이 없었으면 내 자신의 삶의 진로에 대해 어려운 것은 슬쩍 피했을 수 있다. 삶을 싸움이라고 인식할 때 단 한 번도 남에게 이겨 본 적 없는 무능한 내 도전력에 근육이 붙기 시작한 것도 무너져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이 팍팍한 사막이었을 때도 물줄기가 있다는 확신 버리지않아 그 믿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 '타인의 생각'으로 성장하면서 얻은 지식은 금덩어리하고는 무게가 달랐다. 보이지 않는 도전 속에 목표설정이 이루어지고, 지금의 부끄러움을 허용하고, 내일 미래의 부끄러움을 용서치 않는 경건한 자기약속을 쌓아가는 것이다. 한때 나는 6인용 입원실 변기 위에서 글을 썼고 한 시간 안에 적어도 열 번은 더 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갔다. 그래도 썼고 그래도 희망을 믿었다. 이상하지. 그 캄캄한 시간에도 빛이 존재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운명의 뺨을 내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뺨을 치는 에너지를 그런 것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린 삶의 길이 팍팍한 사막이었지만 반드시 물줄기가 흘러 올 것이라는 확신에 매달렸다. 그 확신이 내가 바라는 지점에 데려다줄 것을 나는 믿었던 것이다. 그래도 푸른 하늘이, 그래도 시퍼런 나무들이, 그래도 태양이, 그래도 달이 별이, 그래도 찬란한 꽃들이, 그래도 처절함으로 작은 생명들에게 위로를 주는 예술품이 함성을 지르고 있거니. 그래도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며 믿고 가는 사회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밥을 씹었다. 그러니'타인의 생각'의 주인공들의 경험이야말로 말로, 글로 남긴 그 소중한 자산이야말로 살이 으스러지도록 간절함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를 나는 지금도 눈물겹도록 되새긴다. 타인의 생각이여! 스승이여! 생명으로 태어나 가장 존귀한 인연들이여! 감사합니다. ■신달자 시인은...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재등단했다. 평택대 국문과 교수,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 등을 지냈다.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화려한 문학상 수상 경력이 있다. 시집 '봉헌문자' '아가' '겨울축제' 등을 냈다. 수필집 '백치애인',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은 선풍적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2023-01-17 18:10:19'First-Class 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가 새해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변화에 나섭니다. 먼저 신문 28개면 체제(본지 기준)가 올해 1월부터 32개면 체제로 공식 전환됩니다. 그 일환으로 이슈&면이 신설됩니다. 매일 화제의 디지털 뉴스를 풍부한 그래픽으로 지면에 선보이기 위한 취지입니다. 경제종합면도 신설됩니다. 매일 다양한 경제뉴스를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금융면, 정책·전국면, 사회면, 스포츠면 등도 지면을 추가로 늘릴 예정입니다. 특히 1월 셋째 주부터 '화해와 치유의 작가' 신달자 시인의 힐링 에세이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를 정기적으로 지면에 싣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올해 1월부터 매월 한미재무학회(KAFA)와 공동으로 글로벌 경제·재무분야 핵심 이슈에 대해 집중 분석하는 기획면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2023-01-02 18:2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