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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에세이] 위로가 필요한 계절, 1920년대로 떠나 3인의 여류시인 만난다면

<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가을여행을 떠납니다

[신달자에세이] 위로가 필요한 계절, 1920년대로 떠나 3인의 여류시인 만난다면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신달자에세이] 위로가 필요한 계절, 1920년대로 떠나 3인의 여류시인 만난다면
불안했던 여름을 넘어서며 가을을 꿈꿉니다. 위로가 필요한 가을입니다. 이번 가을 여행지는 어디에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갈 수 없는 곳을 택합니다.

첨단의 과학시대를 돌아서서 미사일, 핵, 달나라 여행인 우주적 차원을 뒤로하고 내가 태어난 1940년대를 뒤로하고 책에서도 낯설게 공부를 했던 1920년대로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1920년대를 향해 간다면 오직 그 시대의 문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가을여행은 없을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만나고 싶습니다. 고즈넉한 백담사 작은 방에서 '님의 침묵'을 쓰시는 만해 선생을 만나서 왜 많은 작품을 여성 화자로 썼는지, 그 깊은 백담사 산골에서 달빛과 물소리만 청정했던 야밤에 무섭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고즈넉한 야밤 고요를 흔들며 세차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어떠했는지, 누가 그렇게 그리웠는지, 그 깊고 깊은 산속 달빛이 백담사 마당을 붉게 물들일 때는 어떠하셨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애국과 시의 가치는 어느 쪽이 기울었을까요. 그 무거운 입이 무어라 할지 바짝 다가가 묻고 싶기도 합니다. 만해 선생과 백담사 마당에서 더불어 별을 바라보거나 달을 바라보는 일도 하고 싶은데 제가 그 별이나 달보다는 선생을 더 깊숙이 바라보느라 오히려 하늘은 보는 듯 안 보는 듯했을 것입니다. 그 무거운 입에서 과연 백담사의 찬란한 별을 바라보며 무어라 하셨을까요. 그렇게 한번쯤 야밤 그 마당을 휘적휘적 그분과 함께 손잡고 걷고 싶습니다.

소월도 만날 것입니다. 그렇게 절박한 비탄의 그리움을 담은 '진달래'를 쓰시곤 조금 후련했는지, 그러고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는지 그의 극한 외로움에 대해 묻고 싶어집니다. 불운한 가정에서 시 아니면 붙잡고 죽을 대상도 없었던 소월 선생은 죽을 만큼 핏물로 쓰신 그리움이 있어 그래도 생명 연장을 하신 게 아닐까요. 그 시의 뼈대가 된 슬픔과 그리움과 비탄이야말로 선생의 또 하나의 밥이었을 것입니다. 말없이 소월 선생과 눈물을 닦으며 독한 술 한잔 하고 싶어지는 가을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쓰신 이상화 선생도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 제목 하나로도 충분히 거대한 시인이 될 수 있는, 아니 이미 되어있는 상화 선생도 그리운 분입니다. 대학 시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읽고 당장이라도 찾아가 뵙고 싶었던 시인이었던 마음만 풍선처럼 커지다 터지곤 했습니다. 젊은 내 가슴에 좌절과 절망이 덮치거나 사랑하던 남자가 날 못본 체할 때도 아 내 가슴에도 봄은 올 것인가 하고 일기장에 피 토하듯 하던 그 시절에 상화 선생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를 진정으로 갈 수 있다면 하느님께 빌어서라도 꼭 만나고 싶은 여자 셋이 있습니다.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입니다. 제 석사논문도 이 세 여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세 여자 시인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가면서 새 시대의 자아를 부르짖으며 1920년대를 박차고 산 여성들입니다. 지난 세월의 여성상을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더 더 더 먼 미래를 바로 내 앞으로 당겨 한번쯤 생각에 머무는 일들을 실천하며 산 여성들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그들의 예술은 그 시대의 여성 영웅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가슴에 '신여자'라는 팻말을 달고 다녔습니다. 모두 감정 폭발이 심한 여성들이었지요. 끓는 가슴들의 실핏줄을 뽑아 여성 우위를 부르짖는 그들의 가슴은 불꽃 그 이상들이었습니다.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깃발을 들고 살았습니다.

나혜석의 시와 그림과 소설은 지금 봐도 명구절이 많습니다. 결혼하자는 남자에게 옛 애인의 무덤에 절을 시키는 여자가 과연 지금 시대에도 있을까요? 자식을 낳고 부정한 연애를 하고 이혼을 당하고도 그 삶의 핵심을 무대에 올려 연극을 했던 여자가 지금도 있을까요? 스스로 말했듯이 선각자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나혜석을 만나면 너무 물어볼 말이 많아 차라리 침묵하고 싶은, 그러나 그 인생을 누비고 있는 손은 꼭 잡고 힘을 주고 싶습니다.

김일엽 역시 통 큰 여자였습니다. 무엇이 두려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지요. 신연애란 신문연재를 하면서 누구도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여자입니다. 결국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의 묵인으로 스님이 되었지만 그 가슴의 불은 꺼지지 않았으며 그 당시 수덕사가 불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김명순도 있었지요. 그 당시 그래도 가장 분명한 시집('생명의 과실')을 내고 작품 또한 완성이 보입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일상은 많은 이야기를 퍼트리기도 했습니다. 모두 불행하게 죽었습니다. 김일엽은 스님이라 그래도 품위 있게 눈을 감았다고 볼 수 있지만 두 여자는 어느 한적한 거리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올 가을여행은 가슴 설레게 합니다. 어느 멋진 카페에 그 세 명의 여자를 초대하고 더불어 돈에 관계없이 가장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습니다. 1920년대 그 미지의 시절을 모두 쏟아내지 않겠습니까. 지금 시대 여성 시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어야지요.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보다 미지근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이렇게 좋은 세상에 그렇게밖에 못살아?" 그렇게 빈정거릴 수도 있습니다.
대화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우리는 취기가 돌기 시작할 것입니다. 서로의 사랑이야기도 깊어갈 것입니다. 큭큭 웃다가 짤짤 우는 여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여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