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한국 천주교 첫 세례자인 이승훈의 업적을 기리고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기록한 이승훈 역사공원이 조성돼 문을 연다. 인천시는 한국 천주교의 첫 세례자이자 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자발적인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이승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승훈 역사공원을 조성해 오는 10일 개장한다고 5일 밝혔다. 이승훈 베드로(1756~1801)는 1784년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로 신유박해(1801) 때 정약종 등 여러 신자들과 함께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돼 선산인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의 8 반주골에 묻혔다. 이승훈 역사공원은 기존 이승훈 묘역이 있는 남동구 장수동 산 135의 4 일원 면적 4만5928㎡로 조성됐다. 이승훈 역사공원에는 인천시 지정 기념물 제63호인 이승훈 묘역까지 이어지는 데크로드(일명 십자가의 길)와 4대에 걸친 순교 내력을 상징하는 피에타 연못,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각종 전시회가 열릴 수 있는 이승훈 베드로 광장, 공공정원 개념을 도입한 자수화단 등이 조성됐다. 또 공원 내 위치한 ‘이승훈 베드로 성지기념관'은 (재)인천교구천주교회 유지재단에서 조성한 것으로 지하 2층, 지상 1층, 연면적 1614㎡으로 건립됐다. 다양한 전시와 역사 문화행사를 비롯해 천주교 주관의 순교자 현양 대회도 열릴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이승훈 역사공원이 국내외 대표적인 성지순례지로 각광받고 시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4-09-05 09:25:42【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에 조성되는 한국천주교 첫 세례자 이승훈을 기리는 이승훈역사공원과 한국천주교 역사문화체험관이 9월 개장한다. 인천시는 이승훈 묘역을 공원화한 이승훈역사공원 조성 공사를 마치고 다음 달 중 개장한다고 19일 밝혔다. 이승훈 베드로(1756~1801)는 1784년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로 신유박해(1801) 때 정약종 등 여러 신자들과 함께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돼 선산인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의 8 반주골에 묻혔다. 이승훈역사공원은 남동구 장수동 산 135의 4 일원 면적 4만5928㎡로 조성됐다. 베드로광장, 야외무대, 산책로, 주차장과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건립해 인천시에 기부 채납하는 역사문화체험관(지하 2층, 지상 1층, 연면적 1614㎡)이 조성됐다. 시는 이승훈 역사공원 개장에 맞춰 주변 교통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병목현상이 심한 장수사거리 인근 무네미로 2차로 확장과 백범로 1차로를 확장했다. 시는 이번 도로 확장공사로 병목현상이 심각했던 장수사거리 인근의 교통 흐름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번 도로 확장으로 장수사거리의 교통정체가 해소되는 만큼 이승훈 역사공원에 많은 시민들의 방문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4-08-19 11:16:05【파이낸셜뉴스 제천·단양(충북)=장인서 기자】 그믐달 모양의 지형을 지닌 충북은 위로는 경기와 강원, 좌우 아래로는 충남과 경북, 전북과 맞닿아 있는 한반도의 중심지역이다. 단양팔경과 제천 청풍호 등 자연의 보고나 다름없는 천혜의 환경을 갖췄지만 명성에 휘둘리지 않는 숨은 고수처럼 묵묵한 기세로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충북 관광을 안내하는 소책자에는 단양을 '녹색쉼표'로, 제천을 '자연치유'라는 타이틀로 소개하고 있다. 먹고, 보고, 걸으며 유유자적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힐링이 되는 곳, 제천과 단양을 다녀왔다. 가깝고도 먼 이웃처럼 자세히, 맘먹고 들여다봐야 비로소 보이는 진중한 매력이 그 안에 있다. 지역의 자원 지키는 수산슬로시티 제천은 수산면과 박달재를 중심으로 2012년 10월 국제슬로시티연맹의 공식 인증을 받아 느림의 가치를 실천하는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슬로시티 거점지역인 수산면은 청풍호와 금수산, 가은산, 옥순봉 등 수려한 자연경관이 잘 보존돼 있고, 각종 민물어류와 약초, 잡곡 등을 활용한 슬로푸드를 전승해오고 있다. 제천은 산이 7할을 넘고, 호수가 1할 이상을 차지한다. 다른 지역보다 농토가 적어 잡곡과 과일, 산야초들이 많이 난다. 특히 황기, 당귀, 황정 등의 약초가 많이 재배되는데 그중에서도 수산면 대전리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인기가 좋아 외지로 팔려나갈 틈이 없다. 제천의 약초는 육질이 단단해서 오래 저장할 수 있고, 향과 약효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천시가 운영하는 '가스트로 투어'에 참여하면 약선거리와 전통시장을 걸으며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내륙의 바다 청풍호와 호반케이블카 청풍호는 1985년에 준공된 충주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다. 제천에서는 청풍호, 충주에서는 충주호라 불리는 청풍호는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담수량이 크다. 총면적 67.5㎢, 평균 수심 97.5m, 길이 464m이며, 저수량은 27억5000t이다. 이중 제천시의 담수 면적은 발간 서적마다 수치상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약 48㎢로 호수 전체 면적의 약 51%를 차지한다. 청풍호 주변에는 경치가 빼어난 곳들이 산재해 있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비봉산과 청풍면의 진산인 인지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한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금수산을 비롯해 동산, 대덕산, 부산, 관봉 등 명산들이 펼쳐진다. 청풍호반케이블카는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 구간을 운행한다. 케이블카 정상의 비봉산은 청풍호 중앙에 위치한 해발 531m의 명산으로,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아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다. 청풍호 비봉산 정상에 서면 사방이 짙푸른 청풍호로 둘러싸여 마치 넓은 바다 한가운데 솟은 섬에 오른 기분이다. 오스트리아의 도펠마이어사 퍼스트클래스 10인승 캐빈 46기를 운행하며 투명 바닥으로 만들어진 크리스탈 캐빈에 타면 발아래로 펼쳐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금수강산 구경에는 청풍호유람선도 빼놓을 수 없다. 청풍 나루터에서 단양 장회나루 유람선은 뱃길로 52㎞, 왕복 1시간30분, 편도는 40분가량 걸린다. 걷기만 해도 명상이 되는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다. 신유박해(1801년) 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는데 옹기 장사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황사영(1775~1801)이 당시의 박해 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곳이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 요셉 신학교가 설립되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에 이어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도 여기에 있다. 배론이란 지명은 골짜기가 배 밑바닥 모양을 닮아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으로 불리다가 언젠가부터 배론(排論)으로 바뀌었다. 토굴과 옛 모습대로 재현한 신학교,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한옥 누각성당인 배론본당, 십자가의 길 등이 들어서 있다. 십자가의 길은 뒷산 숲속을 지나도록 만들어졌다. 나무 사이사이로 빛을 받아 반짝이는 조형물들이 인상적이다. 한적한 배론성지에서 차로 20분간 달리면 웰니스 리조트인 '포레스트 리솜'이 있어 하룻밤 묵어가기 좋다. 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온달관광지 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는 수양개 선사유적지로 알려진 적성면 애곡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만학천봉전망대와 짚와이어, 알파인코스터 등 레포츠 시설을 갖춰 액티비티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원형의 전망대에 오르면 소백산과 금수산, 월악산 등 백두대간 명산들이 동서남북 사면으로 펼쳐진다. 남한강의 절경을 한눈에 담으며 구름 위를 걷는 듯 아찔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자연 지형을 따라 설계된 짚와이어는 풍광이 아름다운 금수산 지맥과 남한강 호반을 배경으로 만학천봉 출발지에서 활강하듯 980m 구간을 내려간다. 남한강 수면으로부터 120m 높이의 상공에서 시속 50㎞를 넘나드는 속도로 짜릿함을 선사한다. 또 알파인코스터는 외딴 숲속 길을 960m 길이의 모노레일로 최대 시속 40㎞로 달린다. 단양군 영춘면 남한강 변에 자리한 온달관광지는 고구려 전문 테마 공원이다. '연개소문', '천추태후', '태왕사신기'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온달오픈세트장을 비롯해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760m인 석회암 천연동굴인 온달동굴,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온달산성으로 조성됐다. 온달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한 산성으로 길이 683m, 최고 높이 10m, 두께 4m이다. 굽이굽이 흐르는 남한강, 소백산, 태화산을 호쾌하게 굽어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단양 다누리아쿠아리움으로 향하자.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 생태관으로 국내외 다양한 민물고기와 생물 약 200여종을 자연 서식 환경 그대로 옮겨 전시한다. 한강 귀족 황쏘가리부터 행운을 불러온다는 중국의 최고 보호종 홍룡, 아마존 거대어 피라루크 등 희귀 어종을 만나볼 수 있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중 터널과 대형 수조는 그 자체로 훌륭한 포토존이 된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2024-07-11 18:31:51【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이승훈, 박두성, 고유섭을 아시나요. 인천시는 올해 인천을 대표하는 인물과 기관, 설화 등을 도로 이름으로 명명한 명예도로 9곳을 신설한다. 인천시가 1000만 도시 인천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기업 유치, 국제교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명예도로명 활성화 사업을 실시한다고 29일 밝혔다. 명예도로명은 이미 도로명이 부여된 도로의 전부 또는 일부 구간에 기업 유치 또는 국제교류를 목적으로 군수, 구청장이 추가 부여하는 상징적인 도로명이다. 시는 명예도로명을 활성화해 1000만 도시 인천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인천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시가 지난해까지 부여한 명예도로는 류현진거리(동구·2015년), 유네스코 평생학습의 길(연수구·2021년), 평리단길(부평구·2023년)로 모두 3곳에 불과하다. 시는 올해 이승훈 베드로길을 비롯 송암 박두성길, 고유섭길, 재외동포청로, 윤영하소령길, 공양미삼백석길, 해양경찰로, 최기선로, 수인선 바람숲길 등 9곳의 도로에 명예도로명을 붙이기로 했다. 이승훈 베드로길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을 기리기 위해 남동구 백범로 일원에 지정된다. 시는 많은 시민과 천주교 신자가 순례 명소로 찾을 수 있도록 올 하반기 이승훈 역사공원 준공일에 맞춰 도로명을 부여할 예정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것을 기리기 위해 도로구간을 1801m로 지정한다. 송암 박두성길은 훈맹정음 창시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423번길 일원에 지정된다. 올 하반기 준공하는 신설 도로에 명예도로명이 부여될 예정이다. 시는 현재 추진 중인 송암 박두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내년 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고유섭길은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고유섭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출생지인 중구 우현로 90번길 일원에 지난 4월 지정됐다. 시는 일제 강점기 국내에서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수학하며 우리 미술을 처음으로 학문화한 학자로서 선생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고 지역 관광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이번에 새롭게 부여한 명예도로에 명예도로명판, 조형물 등 안내시설물을 설치해 시민과 방문객을 안내하고 관광객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상품 개발 및 홍보를 실시할 방침이다. 최태안 시 도시계획국장은 “초일류 도시 인천을 알릴 수 있는 명예도로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국제교류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4-04-29 10:22:38[파이낸셜뉴스] "추사가 유배돼 지내던 제주 거처에는 언제나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닥쳤다. 아내와 내가 찾았던 그날도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이 당시 추사의 삶을 돌아보라는 듯 매섭게 날아들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나는 여리여리 흔들리면서도 모진 시련을 견뎌 핀 수선화를 고요히 마주해 그 인내를 되새겼다."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꽃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꽃을 통해 살피게 된 세상사를 담은 에세이집 '꽃은 무죄다'를 출간했다. 부제 '검사 이성윤의 검(檢) 날수록 화(花)내는 이야기'를 단 이 책은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장을 역임한 뒤 정권 교체 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나면서 느낀 회한 대신 아내와 함께 주말 뒷산을 오르며 꽃과 꽃말을 찾고 아내는 그 꽃을 화폭에 옮겨 담았다. 이 전 고검장은 드넓은 진천연수원을 둘러보며 풀꽃을 들여다보고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를 떠올린다. 천주교인이라는 죄목으로 유배형을 받고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서, '자산어보'를 남긴 큰형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또 작은형 정약종은 신유박해 당시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자신을 대한민국의 검사이지만 '무도한 자들의 훼방으로 눈을 잃었다'고 탄식한 이 전 고검장은 "불과 한 두 해 만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도되는 무뢰한 자들의 무도한 행태를 보며 불현듯 복수(復讐)를 떠올리게 된다"면서도 "나는 얼음을 뚫고 나오는 복수초의 강인함에서 절제와 인내를 배워가며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복수(福壽)를 꿈꾼다"고 말한다. 전북 고창에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 전 고검장은 1994년 초임 검사로 부임 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2부장, 광주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반부패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과 서울고검장을 역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3-12-01 13:05:02【신안(전남)=정순민 기자】 수국은 여름을 알리는 꽃이다. 6월 중하순 꽃망울을 터뜨려 7~8월까지 오랜 기간 꽃이 피어 있다. 매년 이맘때 쯤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수국축제가 열린다. 부산에서 열리는 태종대 수국축제를 비롯해 울산 장생포 수국축제, 제주 휴애리 수국축제, 충남 태안 수국축제, 전남 해남 수국축제 등이다. 관내에 1000여개의 무·유인도가 있어 '1004섬'으로 불리는 전남 신안에서도 수국축제가 열린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54.5㎞ 떨어져 있는 도초도에서 열리는 '배로 가는 섬수국축제'(16~25일)다. 원래 도초서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도초도 수국공원에는 15종 3만여주의 수국이 심어져 있어 지금 이곳은 '꽃대궐'을 이루고 있다. 또 같은 기간 도초도의 명물 간재미(가자미의 전남 방언)를 테마로 한 미식축제가 함께 열려 볼거리·즐길거리·먹거리가 넘쳐난다. 주낙어법으로 잡아 싱싱한 신안 간재미는 식감이 좋아 간재미 무침, 찜, 매운탕 등으로 인기가 좋다. ■'자산어보' '슈룹' 촬영지가 있는 도초도 서울에서 1000리(약 392㎞)나 떨어져 있는 도초도는 최근 영화 '자산어보'와 드라마 '슈룹'으로 유명세를 탔다. 순조 1년(1800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1758~1816)과 청년 어부 창대의 이야기를 그린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가 이곳에서 촬영돼서다. 이 감독은 흑산도가 거리상으로 너무 먼 데다(도초도에서 뱃길로 40여㎞를 더 가야 한다), 도초도의 풍광이 영화를 찍기엔 더욱 안성맞춤해 이곳을 촬영지로 정했다고 한다. 도초도 발매리 바닷가 언덕 위에는 아직도 당시 영화를 찍었던 가거댁 초가집 세트가 남아 있다.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됐지만 세트장에 도착하면 총천연색의 자연풍광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세트장 아래쪽으로는 가는게 해변이 펼쳐져 있고, 푸른 바다 저 너머로는 어슴푸레하게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는 실제로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했던 소흑산도(우이도)도 보인다. 영화 '자산어보'를 찍었던 이 세트장에서는 지난해 tvN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돼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슈룹'의 명장면도 촬영됐다. 세자시험 미션을 완수해 나중에 세자가 되는 성남대군에게 세자빈 청하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세자빈은 바로 이곳에서 "근데 그쪽만 보면 (가슴이) 쿵쿵, 쿵쿵 뜁니다. 제가 좋아한다고요, 선비님을요"라는 '심쿵' 대사를 날린다. 여행객들이 꼭 카메라를 꺼내드는 인증샷 명소다. '환상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팽나무 10리길도 도초도에 왔다면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도초면 지남리 일원에 약 4㎞에 걸쳐 조성된 팽나무 10리길에는 전국 각지에서 기증받은 수령 100년 안팎의 팽나무 700여그루가 폭 3m의 길 양쪽을 따라 길게 도열해 있어 장관을 이룬다. 또 그 아래로는 서로 빛깔이 다른 형형색색의 여름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이 길은 지난 2021년 산림청이 주관하는 '모범 도시 숲' 가로수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이세돌의 고향 비금도에는 ○○이 있다 도초도와 비금도는 지난 1996년 개통된 서남문대교로 연결돼 있어 같은 섬이나 마찬가지다. 도초도 쪽에 있는 선착장인 화도(火島)와 비금도 쪽에 있는 선착장인 수도(水島)가 서로 마주보고 있어 꼭 의좋은 형제 같다. 비금도는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한 바둑기사 이세돌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세돌은 비금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비금중학교에 다니다 중퇴한 뒤 프로기사의 길을 걸었다. 비금도 안에는 폐교된 옛 비금 대광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관한 이세돌바둑기념관이 있어 바둑 동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세돌의 고향 비금도의 3대 명소는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하트 해변 그리고 시조 염전이다. 이세돌바둑기념관 뒤편에 있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 길이가 무려 4.2㎞에 이르러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는 똑같은 이름의 해수욕장이 여럿 있지만 이곳의 규모를 보고나면 다른 명사십리 해수욕장들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비로소 알 수 있다. 이곳의 모래 입자는 밀가루처럼 곱고 가늘어 물에 젖으면 바닥이 시멘트 포장을 한 것처럼 단단해져 차를 가지고 해변을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을 정도다. 본래 이름이 '하누넘(하늘 너머라는 의미)'인 하트 해변은 고갯길에서 바라본 해변이 영락없는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이렇게 불린다.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길에는 전망대와 쉼터가 있어 환상적인 노을과 함께 인증샷을 남기기에 좋다. 지난 2006년 KBS 드라마 '봄의 왈츠'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비금도는 천일염으로도 유명하다. 섬에 발을 딛는 순간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광활한 염전이다. 비금도는 해방 후 민간이 최초로 천일염 생산에 성공한 섬이다. 1946년 비금도 주민들이 처음으로 천일염전을 조성한 곳이 바로 시조염전이다. 하지만 시조염전은 태양광 발전단지 조성 사업에 밀려 폐염될 위기에 놓여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3-06-15 18:11:52【신안(전남)=정순민 기자】수국은 여름을 알리는 꽃이다. 6월 중하순 꽃망울을 터뜨려 7~8월까지 오랜 기간 꽃이 피어 있다. 매년 이맘때 쯤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수국축제가 열린다. 부산에서 열리는 태종대 수국축제를 비롯해 울산 장생포 수국축제, 제주 휴애리 수국축제, 충남 태안 수국축제, 전남 해남 수국축제 등이다. 관내에 1000여개의 무·유인도가 있어 '1004섬'으로 불리는 전남 신안에서도 수국축제가 열린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54.5㎞ 떨어져 있는 도초도에서 열리는 '배로 가는 섬수국축제'(16~25일)다. 원래 도초서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도초도 수국공원에는 15종 3만여주의 수국이 심어져 있어 지금 이곳은 '꽃대궐'을 이루고 있다. 또 같은 기간 도초도의 명물 간재미(가자미의 전남 방언)를 테마로 한 미식축제가 함께 열려 볼거리·즐길거리·먹거리가 넘쳐난다. 주낙어법으로 잡아 싱싱한 신안 간재미는 식감이 좋아 간재미 무침, 찜, 매운탕 등으로 인기가 좋다. '자산어보' '슈룹' 촬영지가 있는 도초도 서울에서 1000리(약 392㎞)나 떨어져 있는 도초도는 최근 영화 '자산어보'와 드라마 '슈룹'으로 유명세를 탔다. 순조 1년(1800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1758~1816)과 청년 어부 창대의 이야기를 그린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가 이곳에서 촬영돼서다. 이 감독은 흑산도가 거리상으로 너무 먼 데다(도초도에서 뱃길로 40여㎞를 더 가야 한다), 도초도의 풍광이 영화를 찍기엔 더욱 안성맞춤해 이곳을 촬영지로 정했다고 한다. 도초도 발매리 바닷가 언덕 위에는 아직도 당시 영화를 찍었던 가거댁 초가집 세트가 남아 있다.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됐지만 세트장에 도착하면 총천연색의 자연풍광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세트장 아래쪽으로는 가는게 해변이 펼쳐져 있고, 푸른 바다 저 너머로는 어슴푸레하게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는 실제로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했던 소흑산도(우이도)도 보인다. 영화 '자산어보'를 찍었던 이 세트장에서는 지난해 tvN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돼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슈룹'의 명장면도 촬영됐다. 세자시험 미션을 완수해 나중에 세자가 되는 성남대군에게 세자빈 청하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세자빈은 바로 이곳에서 "근데 그쪽만 보면 (가슴이) 쿵쿵, 쿵쿵 뜁니다. 제가 좋아한다고요, 선비님을요"라는 '심쿵' 대사를 날린다. 여행객들이 꼭 카메라를 꺼내드는 인증샷 명소다. '환상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팽나무 10리길도 도초도에 왔다면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도초면 지남리 일원에 약 4㎞에 걸쳐 조성된 팽나무 10리길에는 전국 각지에서 기증받은 수령 100년 안팎의 팽나무 700여그루가 폭 3m의 길 양쪽을 따라 길게 도열해 있어 장관을 이룬다. 또 그 아래로는 서로 빛깔이 다른 형형색색의 여름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이 길은 지난 2021년 산림청이 주관하는 '모범 도시 숲' 가로수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이세돌의 고향 비금도에는 ○○이 있다 도초도와 비금도는 지난 1996년 개통된 서남문대교로 연결돼 있어 같은 섬이나 마찬가지다. 도초도 쪽에 있는 선착장인 화도(火島)와 비금도 쪽에 있는 선착장인 수도(水島)가 서로 마주보고 있어 꼭 의좋은 형제 같다. 비금도는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한 바둑기사 이세돌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세돌은 비금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비금중학교에 다니다 중퇴한 뒤 프로기사의 길을 걸었다. 비금도 안에는 폐교된 옛 비금 대광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관한 이세돌바둑기념관이 있어 바둑 동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세돌의 고향 비금도의 3대 명소는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하트 해변 그리고 시조 염전이다. 이세돌바둑기념관 뒤편에 있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 길이가 무려 4.2㎞에 이르러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는 똑같은 이름의 해수욕장이 여럿 있지만 이곳의 규모를 보고나면 다른 명사십리 해수욕장들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비로소 알 수 있다. 이곳의 모래 입자는 밀가루처럼 곱고 가늘어 물에 젖으면 바닥이 시멘트 포장을 한 것처럼 단단해져 차를 가지고 해변을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을 정도다. 본래 이름이 '하누넘(하늘 너머라는 의미)'인 하트 해변은 고갯길에서 바라본 해변이 영락없는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이렇게 불린다.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길에는 전망대와 쉼터가 있어 환상적인 노을과 함께 인증샷을 남기기에 좋다. 지난 2006년 KBS 드라마 '봄의 왈츠'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비금도는 천일염으로도 유명하다. 섬에 발을 딛는 순간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광활한 염전이다. 비금도는 해방 후 민간이 최초로 천일염 생산에 성공한 섬이다. 1946년 비금도 주민들이 처음으로 천일염전을 조성한 곳이 바로 시조염전이다. 하지만 시조염전은 태양광 발전단지 조성 사업에 밀려 폐염될 위기에 놓여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3-06-14 11:00:06[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때는 조선 후기, 1801년에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정약전은 천주교를 믿고 포교를 했다는 이유로 남쪽 끝에 있는 섬인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이에 함께 연루된 동생 정약용 또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 둘은 그나마 참형을 면한 것이 다행이었다. 정약전은 암담했다. 흑산도(黑山島)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이름도 검은 산이라니 불길한 느낌마저 있었다. 그래서 유배지에 도착해서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에는 흑산(黑山)이란 이름 대신 자산(玆山)이란 이름으로 대신했다. 자(玆) 또한 검다는 뜻이기 때문에 흑산과 서로 뜻이 통했다. 자산이라고 하니 그나마 암담함이 덜 했다. 정약전은 시간이 될 때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산책을 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나마 답답한 마음이 풀렸다. 게다가 서학(西學)을 공부했기에 바다 저편의 문명이 더욱더 궁금함과 애틋함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도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바닷가에 나갔다. 바닷가에는 많은 크고 많은 고깃배들이 드나들었다. 빈 배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배는 모두 만선으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들을 잡아 왔다. 정약전이 한 어부에게 물었다. “이 물고기 이름은 뭐요?” 그러자 어부는 “물괴기 이름은 모르겄지만 맛이 달달하고 맛있응게 탕으로 끊이면 일품이지라.”라고 하는 것이다. 정약전은 “아니 오랫동안 어부 일을 했으면서 맨날 잡는 물고기의 이름도 모른단 말이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 어부는 “아따매 괴기 이름이 뭐땀시 필요하다요. 우리는 그냥 간재미라고 헌디, 그냥 잡아서 묵거나 시장에서 팔문 그만잉게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정약전은 “저쪽 어부는 다른 물고기를 보고 간재미라고 하던데 말이요?”라고 의아해야 했다. 간재미는 가자미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홍어를 부르는 전라도 사투리다. 이렇듯 이름들이 서로 섞여 있었다. 다른 어부들에게 물어봐도 생선 이름을 정확하게 아는 이들이 드물었다. 정약전은 평소에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귀양살이 동안에 중구난방으로 정리되지 않은 바다 물고기의 족보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정약전은 동생 정약용에게 편지를 쓰면서 물고기의 그림과 설명을 함께 보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어류족보를 만들어 볼 생각이네. 내가 보니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 많아 이것을 이렇게 그림으로 그리고 동시에 글로 설명을 한다면 좋을 것 같네.”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약용은 “형님, 문자가 단청(丹靑)보다 나은 법입니다. 그림이라는 것이 제대로 그리지 않으면 한눈에 보기에는 좋으나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림은 빼고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자산어보가 기존의 의서나 서적에도 볼 수 없는 사실적으로 자세하게 설명된 이유는 이와 같은 정약용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림까지 더해졌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당시 조선후기에는 사실주의 화풍으로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마치 사진처럼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그림을 덧붙이고자 했더라도 그 장소가 흑산도였기에 제대로 변변한 화가를 불러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약전은 붓을 들고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어부들에게 물고기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나 어부들이 같은 물고기를 부르는 이름이 모두 달랐다. 심지어 사투리들이 많아서 정확하게 문자로 쓰는 것도 애를 먹었다. 그래서 정약전은 붓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늙은 어부가 “정 궁금허믄 창대한테 물어보슈”라고 하는 것이다. 마을에는 창대(昌大)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성은 장(張)씨며 자는 덕순(德順)이었다. 자(字)가 있는 것을 보면 양반가 자손인 것을 같지만 창대의 집은 가난했다. 정약전은 창대의 집을 찾았다. 창대는 집안에 틀어박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읽을 만한 책이 적어서 몇 권을 번갈아 가면서 읽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창대가 읽고 있는 '소학(小學)'이나 '논어(論語)'들은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창대는 성품은 조용하고 치밀한 성격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섬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 견문은 박식하지 못했지만 총명했다. 한번 본 초목(草木)과 섬 곳곳의 어류(魚類)를 세세하게 관찰하고 사고했으며 한번 보거나 들었던 것들은 결코 잊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말이라면 가히 사실로 믿을 만했다. 정약전은 창대에게 “자네가 나를 좀 도와줘야겠네. 섬사람들이 부르는 이름과 설명이 천차만별이라 붓의 먹물이 말라버리기 일쑤네. 모두들 자네한테 물어보라고 하니 부탁하네.”라고 했다. 창대도 흥미가 있었는지, “아따 그 귀한 책을 없는 내용으로 새로 만드신 당게 대단하시구만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구만이라.”라고 답했다. 정약전은 창대를 집으로 불러서 숙식을 함께 하며 머무르게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바닷가로 나가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살폈고. 창대가 젓는 배를 타고 직접 낚시도 하고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아서 관찰했다. 창대와 같은 명석한 친구가 옆에 있으니 헷갈리는 법이 없었고 차곡차곡 어류의 족보가 쌓였다. 정약전은 정리한 내용을 3권으로 나눠서 비늘이 있는 물고기, 비늘이 없는 물고기, 그리고 잡다한 바다생물 등으로 구성했다. 창대와 함께 정리를 마친 후 서문을 적었다. “이 책은 바다의 어류와 해초를 곁들어서 바다의 어류와 해초를 아울렀으니 후세사람들이 고증과 경험에 자료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병을 치료하고 이용함에 이치에 맞게 활용하게 하고 여러사람들이 마땅히 응용함에 있어 자료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산어보를 지은 이유를 적었다. 서문을 보면 결코 시간이 남아 돌아서 저술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문을 쓰고 난 정약전은 책의 이름을 '자산어보(玆山魚譜)'라고 지었다. 그런데 책은 단 한권 밖에 없었다. 정약전은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한 권 더 필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창대 또한 자산어보가 완성된 후 학문에 뜻을 두고 육지로 나간 지 오래되었다. 안타깝게도 자산어보의 유일한 초고(礎稿)이자 완성본은 방안 한 구석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동생 정약용은 이미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하고 있었고 완성이 되었다는 것을 편지를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 완성되었다고 했던 책을 받아 보지 못해 의아해 했다. 정약전이 죽은 후 정약용은 제자 이청(李𤲟)과 함께 흑산도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형님이 저술한 자산어보 책장이 흑산도 어느 섬 집의 벽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부는 이 책이 자신의 섬에 유배를 왔던 정약전의 저술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정약용은 이 상황을 슬퍼하며 제자 이청(李𤲟)에게 벽지로 사용된 자산어보 종이를 잘 뜯어내고, 뜯어지지 않는 것들까지 해서 모두 필사를 하게 했다. 이청은 당시에 정약용과 함께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을 함께 공부해서 의원만큼이나 본초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이청이 읽어보니 자산어보는 해양 어류의 곁모양, 내부장기 모습, 먹이 습관과 생태, 사람들이 먹는 방법 등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감탄을 했다. 그런데 이미 기존 학자들에 의해서 익히 밝혀진 내용들이 누락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청은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 등의 내용을 추가했다. 이청은 처음으로 기록된 민어나 조기 등을 적을 석수어(石首魚) 편을 시작으로 해서 한자 한자 빠짐없이 필사했다. “큰 것은 길이가 1장(丈) 정도 되고 몸통은 한 뼘 정도나 되는 것도 있어서 대면(大鮸)이라고 부른다. 속명으로 ‘애우치’라고 한다.....”라고 빠짐없이 적었다. 그리고 말미에 ‘청안(𤲟案)’이라고 덧붙이고 나서 기존 의서의 내용을 추가했다. “청(𤲟)이 고찰하니, 정자통(正字通)에 의하면 석수어는 일면 민어(民魚)라고 하며....” 또한 “본초강목에 의하면 상어(鯗魚)라 함은 석수어를 말린 것을 말하며 사람의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고 해서 양(養)자가 상(鯗)자로 발전했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회어(鮰魚)를 민어(民魚)라고 기록하고 있다. 진장기(陳藏器)에 의하면 외(鮠)를 면(鮸)이라고 잘못 전하고 있는데....”라고 보충했다. '정자통'은 명나라 때 장자열의 저술이며, '본초강목'은 명나라때 이시진의 본초서이고, '동의보감'은 조선의 허준의 의서다. 진장기는 당나라 때 '본초습유'를 저술한 이다. 이청은 당시로서 참고할 만한 서적의 내용을 모두 덧붙여서 '자산어보'의 가치와 위엄을 더 했다. 이청은 필사를 하면서도 당시까지 저술된 기존 서적에도 없는 항목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정약전 선생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구나. 기존의 내용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없는 내용까지 모두 새롭게 담고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라고 되뇌면서 필사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결국 '자산어보'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정약전의 붓글씨 필체는 아니지만, 그나마 필사본이라도 다행이었다. 자칫 '자산어보'는 어느 흑산도 섬 집의 벽지 속으로 감춰져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기 때문이다. * 제목의 ○○은 ‘벽지’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자산어보(茲山魚譜)> 茲山者, 黑山也, 餘謫黑山, 黑山之名, 幽晦可怖, 家人書牘, 輒稱茲山, 茲亦黑也, 茲山海中, 魚族極繁, 而知名者鮮, 博物者, 所宜案也, 餘乃博訪於島人, 意欲成譜, 而人各異言, 莫可適從, 島中, 有張德順, 昌大者, 杜門謝客, 篤好古書, 顧家貧少書, 手不釋卷, 而所見者, 不能博, 然性恬靜精密, 凡草木島魚, 接於耳目者, 皆細察而沈思, 得其性理, 故其言爲可信, 余遂遨而館之, 與之講究, 序次成編名之, 曰茲山魚譜, 㫄及於海禽, 海菜, 以資後人之考驗, 顧余固陋, 或已見本草, 而不聞其名, 或舊無其名, 而無所可考者, 太半也, 只憑俗呼, 俚不堪讀者, 輙敢創立其名, 後之君子, 因是而修潤之, 則是書也, 於治病, 利用理, 則數家, 固應有資, 而亦以稱, 詩人博, 依之所, 不及云爾. 嘉慶甲戍, 洌水, 丁銓, 著.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도에 유배를 왔는데, 흑산의 이름은 아득하게 멀고 어두운 느낌이어서 집안 사람들은 편지에 문득 자산이라고 불렀다. 자(玆) 역시 검다는 의미다. 자산바다에는 어족이 아주 풍성했는데, 그 이름을 아는 자가 드물었다. 사물에 밝은 자라면 마땅히 살펴봐야 한다. 나는 이내 섬사람들을 두루 방문하여 어류의 족보를 만들어보고자 하였으나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달라서 가히 적절히 따를 수 없었다. 섬에는 장덕순, 창대라는 이가 있었으니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오로지 고서만을 좋아했으나 생각건대 집은 가난하고 책은 적었음에도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견문은 능히 박식하지 못했다. 그래도 성품은 조용하고 치밀한 성격이어서 무릇 초목과 섬의 어류를 듣거나 보면 모두 세세하게 관찰하고 사고가 깊고 그 사물의 성정과 이치를 얻은 까닭에 그의 말이라면 가히 믿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불러 놀면서 집에 머무르게 하고 함께 해석하고 연구하여 서문과 목차, 편명을 지은바 이름하여 자산어보라고 지었다. 곁들어서 바다의 어류와 해초를 아우렀으니 후세사람들이 고증과 경험에 자료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생각건대 나는 견문이 적어 혹은 이미 본초서에서 본 것도 있겠고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것도 있고, 예로부터 부르는 이름이 없어서 가히 고찰할 수 없었던 것이 태반이었다. 단지 세속에서 부르는 이름과 속된 이름으로 차마 읽을 수 없는 것들은 과감히 그 이름을 새롭게 지었다. 후세의 군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고치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병을 치료하고 이용함에 이치에 맞게 활용하게 하고 여러 사람들이 마땅히 응용함에 있어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박학다식한 지성인들에게는 의지하는 바 미쳐 이르지 못한 부분까지 넓힐 수 있게 할 것이다. 가경 갑술년(1814년) 열수 정약전 저술함.)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05-16 08:47:20[파이낸셜뉴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16일 완주 바우배기(초남이성지) 한국 최초 천주교 순교자 유골 발견지 현장에서 발굴 착수보고회를 개최하고 초남이성지의 진정성 회복을 위한 학술발굴조사를 시작한다. 이번 발굴조사는 초남이성지에 대한 중장기 학술조사의 하나로 2021년 확인된 한국 최초 순교자 윤지충 등의 유골 발견지역에 대한 추가 확장조사다. 조사는 바우배기 일원에 대한 추가 매장자 확인과 순교자들의 최초 매장지 추적을 위한 토양 표본 확보가 목적이다. 바우배기(초남이성지)는 2021년 9월 한국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의 유골과 유품이 확인되어 주목받은 바 있다. 발견 유골에 대해 해부학적 감식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과학적 방법이 동원되어 피장자의 외상 소견, 나이, 성별 등을 추정, 발견 유골을 윤지충, 윤지헌, 권상연 순교자로 특정했다. 발견된 유골과 유품은 조선 후기 혼란한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서학으로 주목받던 천주교가 전파되는 과정에 발생한 박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초남이성지는 순교자가 묻혀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바우배기 일대를 포함해 순교자 유항검 생가터 등 신해박해, 신유박해와 관련한 유적이 다수 존재하여 이전부터 조사·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의견들을 반영하여 처음 시행되는 학술발굴로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초남이성지를 포함한 전북지역의 주요 종교유적에 대한 현황조사도 시행할 예정이다. 또 바우배기 순교자 매장지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순교자 유항검(1756~1801)의 생가에 대한 중장기 발굴조사도 계획중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2-03-15 09:01:47【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에 한국천주교 첫 세례자 이승훈을 기리는 역사공원이 조성되고 한국천주교 역사문화체험관이 건립된다. 인천시는 시 지정기념물 제63호인 이승훈 묘역과 그 주변을 공원화하는 이승훈역사공원 조성공사를 착공했다고 17일 밝혔다. 이승훈 베드로(1756~1801)는 1784년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로 귀국 후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형성시킨 주역이다. 그의 행보로 한국천주교회는 외국 선교사가 아닌 자발적으로 시작된 세계 유일의 교회가 됐다. 그 후 이승훈은 신유박해(1801) 때 정약종 등 여러 신자들과 함께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돼 선산인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의 8 반주골에 묻혔다. 시는 이승훈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승훈 묘역을 2011년 인천시 기념물 제63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승훈역사공원은 남동구 장수동 산 135의 4 일원 면적 4만5928㎡로 총사업비 161억원(시비 111억원, 인천교구 50억원)이 소요된다. 시는 베드로광장, 야외무대, 산책로, 주차장 등 편익시설을 조성하고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건립해 기부 채납하는 역사문화체험관(지하 2층, 지상 1층, 연면적 1614㎡)이 들어서게 된다. 내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이승훈 역사공원이 조성되면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 명소뿐 아니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 역사문화 유적 및 시민 여가 휴식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1-11-17 14:0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