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영적 존재'를 사칭해 불치병 환자와 가족들에게서 16억원을 받아 챙긴 70대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형사6단독 김서영 판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71)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4년부터 약 10년간 기도 모임을 열면서 알게 된 신도 14명으로부터 '너와 가족의 아픈 곳을 치료해주겠다'며 16억7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A씨는 "나는 하늘과 닿아 있는 특별한 영적 존재"라며 돈을 내면 병이 낫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피해자들을 속였다. A씨는 "네가 죄를 지어서 가족이 아프고 안 좋은 일이 생기니 속죄해야 한다"며 "속죄하지 않으면 자손에게까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협박해 '속죄 예물'을 강요하기도 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지난해 4월 교구장 명의의 교령을 통해 A씨를 파문했다. 파문은 교회법상 가장 무거운 처벌로 모든 교회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조치다. A씨는 법정에서도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현금을 봉헌한 것"이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녹취록과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을 근거로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가족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궁박한 사정과 신앙심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해자들에게 현재의 어려움이 악화하거나 대물림된다는 해악을 고지해 거액을 편취한 수법이 매우 악질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자신에게 위안을 얻어 돈을 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피해 복구 노력도 하지 않았고 용서받지도 못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2024-11-20 15:17:59[파이낸셜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심판 본부가 2차 회의 끝에 주술, 권력 농단, 이권 개입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기로 결정했다. 김민석 민주당 김건희 가족비리 및 국정농단 규명 심판본부장은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 2차 김건희 심판본부 회의에서 “김건희 심판이 국가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의 필수 과제가 됐다”며 “국정 감사에 나온 김건희 관련 팩트를 정리하고 산재한 이슈를 전략적 재조정할 필요가 생겼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팀 재조정의 기준으로 든 주술과 관련해서 “명태(균), 천공, 권진(도사), 무정(법사) 등으로 알려진 ‘김건희 영적 대화 그룹’에 대한 조사와 최근 재개되는 마음건강사업 등을 이권 사업을 포함한다”고 전했다. 권력 농단 주제를 다루는 팀에 대해 김 본부장은 “명태균 관련 이외에도 무수히 존재하는 인사, 당무, 공천 개입 등을 포함하고 당연히 그 인사에는 대통령실 인사, 정부 인사가 포함된다"며 "거기에 권력 농단이기 때문에 해병 관련 혹은 마약 수사 관련 부분도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이권 개입 주제를 다룰 팀에 대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다뤄지고 국감을 거쳐 본격적으로 재기된 용산관저 이전을 비롯해 오랫동안 다뤄진 양평 고속도로, 주가 조작, 삼부토건 등을 다룰 것”이라 했다. 김 본부장은 “이러한 이슈 나 명태균 녹취 공개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여당이 이 대표 사법리스크 방탄 (만들기), 정쟁 이슈화라고 느낀다”는 지적에 김 본부장은 “정쟁 이슈로 규정하고 싶은 기대는 있겠으나 김건희의 존재, 윤 대통령의 현존 그 자체가 국가적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각종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답했다. jiwon.song@fnnews.com 송지원 기자
2024-11-08 15:57:42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의 언어인 '할라이트(Halaayt)'는 에스키모인들이 고래를 사냥하러 가는 가족들의 안전과 성공적인 수확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거대한 영적인 힘 또는 신의 강령이라는 뜻이다.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난 작가는 고래뼈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고, 이후 10여 년이 흐른 후 한국의 반구대에 그려진 고래를 보고 나서야 작품으로 구체화하게 된다. 그는 고래뼈와 내장으로 만든 카누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는 원시 이누이트인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는 대담한 붓터치로 화면에 담는다. 작품 속 고래들은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역동적으로 포효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할라이트' 시리즈다. 1941년 대구에서 태어난 작가는 1963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가를 졸업하고, 이화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위미술 단체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1970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 후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롱비치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작업을 시작했고, 1981년 LA시립미술관(LA Municipal Art Gallery)의 전시 '신진 1981(Newcomers,81)'을 통해 미국 화단에 데뷔했다. 그 후 곽훈은 아시아적 정체성을 표현주의적 회화와 실험적인 설치작품으로 선보였고, 1995년에는 김인겸, 전수천, 윤형근과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작가로 참가하였을 뿐 아니라 2021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더욱이 11월 24일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전에 역대 참여 작가 중 한 명으로 출품하였다. 작가는 고래를 간절하게 염원하던 이누이트인들의 모습을 담은 '할라이트' 시리즈 뿐 아니라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찻찬' 시리즈, 동양예술의 성립요소인 기(氣)를 예술화 한 '기' 시리즈, 그리고 인간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흐름을 시각화한 '겁(?)/Kalpa' 시리즈를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작업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가고 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경기도 이천의 작업실에서 꾸준히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이사
2024-11-04 18:19:32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열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음유시인. 그가 바로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주인공 탄호이저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논해온 모순을 고스란히 내면에 품은 탄호이저는 예술가이자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분열된 세계에서 헤매는 인물이다. 탄호이저는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와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그녀의 애인이 됐지만 마음 한편에는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베누스가 주는 끝없는 쾌락을 뒤로 하고 기쁨과 고통의 변화가 있는 인간세계로 돌아가려고 한다. 베누스는 그를 붙잡으며 세상에서 구원을 찾지 못하면 다시 쾌락의 세계로 돌아오라 한다. 탄호이저는 구원이 성모 마리아에게 있다며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에게 베누스는 모든 것을 주는 존재였지만, 결국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영혼의 구원과 진정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영적 순수와 육체적 관계 사이에서 고뇌하며 끝내는 한쪽만 보는 평범한 이들을 경멸하기까지 한다. 작품 속 음유시인들이 '사랑의 본질'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순수한 사랑을 예찬하는 볼프람을 비롯해 다른 음유시인들과 달리 탄호이저는 감각적 쾌락을 옹호하고 갈등은 극으로 치닫는다. 이때 그를 사랑한 여인, 엘리자베트가 음유시인들을 막아서고 그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하자 그는 로마로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탄호이저는 로마에서도 구원받지 못하고 다시 베누스에게 돌아가려 한다. 이때 엘리자베트의 희생이 담긴 기도가 그를 구원하고 그녀의 죽음은 탄호이저에게 마지막 해답을 주며 그의 고통스러운 여정 역시 끝이 난다. 베누스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자 한 탄호이저의 여정은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그대로 반영하며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상반된 가치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는 둘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쪽 끝에 있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리는 것 대신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 균형을 택해야 한다.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단순한 오페라를 넘어 인간 본성의 모순과 그로 인한 고뇌를 철저히 탐구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완전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자문하게 된다. 탄호이저가 결국 도달한 결말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남기며 진정한 행복은 결국 우리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2024-09-30 18:18:33[파이낸셜뉴스]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열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음유시인. 그가 바로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주인공 탄호이저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논해온 모순을 고스란히 내면에 품은 탄호이저는 예술가이자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분열된 세계에서 헤매는 인물이다. 탄호이저는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와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그녀의 애인이 됐지만 마음 한편에는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베누스가 주는 끝없는 쾌락을 뒤로 하고 기쁨과 고통의 변화가 있는 인간세계로 돌아가려고 한다. 베누스는 그를 붙잡으며 세상에서 구원을 찾지 못하면 다시 쾌락의 세계로 돌아오라 한다. 탄호이저는 구원이 성모 마리아에게 있다며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에게 베누스는 모든 것을 주는 존재였지만, 결국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영혼의 구원과 진정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영적 순수와 육체적 관계 사이에서 고뇌하며 끝내는 한쪽만 보는 평범한 이들을 경멸하기까지 한다. 작품 속 음유시인들이 ‘사랑의 본질’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순수한 사랑을 예찬하는 볼프람을 비롯해 다른 음유시인들과 달리 탄호이저는 감각적 쾌락을 옹호하고 갈등은 극으로 치닫는다. 이때 그를 사랑한 여인, 엘리자베트가 음유시인들을 막아서고 그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하자 그는 로마로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탄호이저는 로마에서도 구원받지 못하고 다시 베누스에게 돌아가려 한다. 이때 엘리자베트의 희생이 담긴 기도가 그를 구원하고 그녀의 죽음은 탄호이저에게 마지막 해답을 주며 그의 고통스러운 여정 역시 끝이 난다. 베누스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자 한 탄호이저의 여정은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그대로 반영하며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상반된 가치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는 둘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쪽 끝에 있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리는 것 대신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 균형을 택해야 한다.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단순한 오페라를 넘어 인간 본성의 모순과 그로 인한 고뇌를 철저히 탐구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완전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자문하게 된다. 탄호이저가 결국 도달한 결말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남기며 진정한 행복은 결국 우리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9-30 08:56:09'박테리아와 냄새, 튀긴 꽃...' 유기적이고 일시적인 재료를 사용해 인간의 감정과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더 나아가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는 '감각의 실험실'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삼성문화재단은 오는 12월 29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아니카 이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전(展)을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산과 여성주의 등 사회적 이슈를 담아낸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아니카 이의 아시아 첫 미술관 전시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10여년간 제작된 작품 33점이 출품된다. 전시명은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사용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에서 사용되는 화두의 특성을 차용했다. 명상적이고 영적인 전환을 반영하는 이 구절은 작가가 초기부터 각종 비인간 생물과 기계, 그리고 협업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저자성(著者性)과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해 온 작업이 결국 '나와 타자의 경계 없음'에 대한 탐구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2세에 미국으로 이민 간 아니카 이에게 이번 전시는 특별하다. 선사 인류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가설과 조류 및 균류의 이동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은 전시의 이론적 기반을 구성한다. 이처럼 물질적, 시간적, 정서적 차원을 아우르는 두 갈래의 탐구는 한인 교포로서 개인적 여정을 반영하고, 나아가 이주와 상호 연결성이라는 작업의 주제를 부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인 영상 작품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2024)는 죽음 이후를 탐구하는 작가의 대규모 프로젝트 '공'(空)에 속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사후에도 작업이 계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아니카 이 스튜디오가 생산한 기존의 작업물을 데이터 삼아 훈련된 알고리즘이 작가 스튜디오의 '디지털 쌍둥이'로 기능하며, 공동의 연구와 협업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아니카 이 스튜디오의 유기적인 작업 방식을 반영한다. 아니카 이는 이 작품에 대해 "우리의 경험은 3차원의 존재에 묶여 있지만, 인식이 높아지면 5차원의 양자장, 즉 순수한 의식과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신작인 '또 다른 너'(2024)는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끝없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인피니티 미러 형태의 작품 속에는 해양 유래 형광 단백질을 발현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미생물이 자라면서 연하게 색을 발한다. 평범한 미생물이 합성생물학을 통해 해파리나 산호와 같은 해양생물의 유전질을 계승하는 과정은 고대의 바다와 현재의 우리 사이의 연결지점을 드러낸다. '너의 손은 전자레인지에 데운 베개 같아'(2015)도 미생물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을 표현했는데, 코로나 등 보건 위기 상황에서 격리라는 불가피한 조치가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튀긴 꽃으로 만들어진 신작 '생물오손 조각'(2024) 연작은 2000년대 작업에서부터 등장한 튀긴 꽃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튀겨진 꽃의 기름진 외형과 시큼한 부패한 냄새는 일반적으로 꽃이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충돌한다. 이번 전시의 실험성을 잘 반영한 '방산충'(2023) 연작은 고생대 캄브리아기 화석에서도 발견되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인 해양성 플랑크톤인 방산충류를 참조한다. 방산충의 형태를 닮은 모습과 마치 숨을 쉬듯 고동치는 조명,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렸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촉수는 유기체와 기계의 소통을 상상하는 작가의 '기계의 생물화' 개념을 반영한다. 이밖에 '공생적인 빵'(2014)은 장내 미생물군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부드럽게 빛나는 비누 조각에는 박테리아의 모습이 투사되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명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05 18:34:29[파이낸셜뉴스] ' 박테리아와 냄새, 튀긴 꽃...' 유기적이고 일시적인 재료를 사용해 인간의 감정과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더 나아가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는 '감각의 실험실'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삼성문화재단은 오는 12월 29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아니카 이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전(展)을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산과 여성주의 등 사회적 이슈를 담아낸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아니카 이의 아시아 첫 미술관 전시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10여년간 제작된 작품 33점이 출품된다. 전시명은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사용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에서 사용되는 화두의 특성을 차용했다. 명상적이고 영적인 전환을 반영하는 이 구절은 작가가 초기부터 각종 비인간 생물과 기계, 그리고 협업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저자성(著者性)과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해 온 작업이 결국 '나와 타자의 경계 없음'에 대한 탐구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2세에 미국으로 이민 간 아니카 이에게 이번 전시는 특별하다. 선사 인류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가설과 조류 및 균류의 이동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은 전시의 이론적 기반을 구성한다. 이처럼 물질적, 시간적, 정서적 차원을 아우르는 두 갈래의 탐구는 한인 교포로서 개인적 여정을 반영하고, 나아가 이주와 상호 연결성이라는 작업의 주제를 부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인 영상 작품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2024)는 죽음 이후를 탐구하는 작가의 대규모 프로젝트 '공'(空)에 속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사후에도 작업이 계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아니카 이 스튜디오가 생산한 기존의 작업물을 데이터 삼아 훈련된 알고리즘이 작가 스튜디오의 '디지털 쌍둥이'로 기능하며, 공동의 연구와 협업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아니카 이 스튜디오의 유기적인 작업 방식을 반영한다. 아니카 이는 이 작품에 대해 "우리의 경험은 3차원의 존재에 묶여 있지만, 인식이 높아지면 5차원의 양자장, 즉 순수한 의식과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신작인 '또 다른 너'(2024)는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끝없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인피니티 미러 형태의 작품 속에는 해양 유래 형광 단백질을 발현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미생물이 자라면서 연하게 색을 발한다. 평범한 미생물이 합성생물학을 통해 해파리나 산호와 같은 해양생물의 유전질을 계승하는 과정은 고대의 바다와 현재의 우리 사이의 연결지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 '너의 손은 전자레인지에 데운 베개 같아'(2015)도 미생물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을 표현했는데, 코로나 등 보건 위기 상황에서 격리라는 불가피한 조치가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튀긴 꽃으로 만들어진 신작 '생물오손 조각'(2024) 연작은 2000년대 작업에서부터 등장한 튀긴 꽃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튀겨진 꽃의 기름진 외형과 시큼한 부패한 냄새는 일반적으로 꽃이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충돌한다. 이번 전시의 실험성을 잘 반영한 '방산충'(2023) 연작은 고생대 캄브리아기 화석에서도 발견되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인 해양성 플랑크톤인 방산충류를 참조한다. 방산충의 형태를 닮은 모습과 마치 숨을 쉬듯 고동치는 조명,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렸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촉수는 유기체와 기계의 소통을 상상하는 작가의 '기계의 생물화' 개념을 반영한다. 이밖에 '공생적인 빵'(2014)은 장내 미생물군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부드럽게 빛나는 비누 조각에는 박테리아의 모습이 투사되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명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아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는 "지난 10년간 아니카 이의 주요 작업을 망라하고 작업의 큰 전환을 보여주는 신작을 처음 공개하는 전시"라며 "현재까지의 작품 세계를 톺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05 08:02:56수림문화재단(이사장 전경희)은 오는 8월 30일부터 10월 19일까지 기획전시 《전시장의 유령》을 김희수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기슬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동시대 사진작가로서 ‘응시’라는 시각적 경험에 대한 시선을 담은 거울 연작을 발표한다. 사진과 거울을 결합한 이번 신작은 모두 김희수아트센터의 방대한 전시 공간에 맞춰 세심한 사전 테스트를 거친 후 제작되었다. 전시작들은 반사체가 만드는 반영과 왜곡의 작용을 사진으로 재현하는 동시에, 거울의 속성을 전면으로 보여준다. 한편, 전시를 찾은 관객은 거울 안의 대상과 물성, 그리고 공간의 겹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피사체는 거울이 미치는 공간의 반영 범위 안에 여러 시점으로 존재하고, 관객은 그 공간을 점유하는 시간 동안 작품의 요소로 얽혀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전시장의 ‘가이스트’는 기슬기의 구성사진 연작이 제시하는 환영이자 ‘찍은 자’인 작가의 시선이 영구적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가두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전시 제목의 ‘유령’은 영어 ‘Ghost(고스트)’ 대신 독일어 ‘Geist(가이스트)’를 의미하는데, ‘가이스트’는 단지 영적인 존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마음, 지성, 분위기 등의 뜻을 포괄하는 철학적인 용어로 넓게 쓰인다. 본 전시는 가이스트라는 단어가 지닌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과 능력이라는 개념을 기슬기 작가가 작업한 사진과 사진의 물성, 그리고 공간을 결합한 시각적 경험에 대한 은유로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본 기획전시는 수림문화재단이 40대 유망작가를 조망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사진을 주 매체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온 작가 기슬기와 함께 한다. 프리즈 서울, 키아프, 광주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 등 굵직한 미술계 행사가 동시에 열리는 시기에 맞춰 다양한 국내외 미술 전문가, 애호가, 일반 관객을 맞을 계획이다. 또한 전시 기간에는 작가와 연구자 패널이 함께하는 대담 프로그램과 일반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 프로그램이 제공될 예정이다. 기슬기 작가는 사진 미학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동시대에서 이미지를 경험하는 방식에 대한 매체 실험적인 작업을 한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층위로 압축된 사진, 종이가 아닌 새로운 지지체 혹은 물성으로서의 사진, 사진이 공간에 개입하거나 일체화되는 설치 작업 등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전시장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대면하는 관객의 감각을 끌어올리는 공간 활용 및 설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김희수아트센터에서 갖는 《전시장의 유령》에서는 방대한 공간의 장소성에 부합하는 사진과 거울을 결합한 대규모 신작을 제작, 발표한다. 《전시장의 유령》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정오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운영한다. 전시 기간 중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하며 자세한 전시 정보는 수림문화재단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4-08-28 10:10:13[파이낸셜뉴스]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파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9일 투자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파묘'가 2024년 한국영화 최고 사전 예매량을 기록하며 흥행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파묘'는 18일 오후 8시 20분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개봉 4일을 앞두고 전체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사전 예매량 10만5913장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 한국영화 최고 사전 예매량이다. 이로써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웡카'의 예매율을 훌쩍 뛰어넘고 정상에 올랐다. 여기에 현지시각으로 지난 16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파묘'는 Q&A 세션에서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모두 망라한 영화”, “모든 배우들의 존재감이 매우 뛰어나다” 등 호평을 이끌어내 기대감이 높아졌다. 풍수와 이장 등 무속적 소재와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 등 스타 배우들의 출연도 관심을 끈다.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22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2-19 08:00:02[파이낸셜뉴스] 북한 내에서 금성을 의미하는 '샛별'은 미래의 지도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돼 왔는데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조선의 샛별 여장군'으로 불리고 있다고 대북 매체가 보도했다. 자유아시아 방송(RFA)은 지난 27일 평양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3일 당 조직지도부가 당과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간부들을 모아 놓은 위성 성공 기념 강연회에서 우주 강국의 미래가 조선의 샛별 여장군에 의해 더 빛날 것이라는 언급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9월에도 대북 전문매체 NK 타임즈도 당 중앙위 내부에서 김주애를 샛별 여장군으로 부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화성 17형 발사 때 처음 등장한 주애는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불렸고 이후 '존귀하신 자제분'으로도 불렸는데 이제는 후계자를 의미하는 샛별로 호칭이 격상됐단 관측이 나온다. 국정원은 이날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김주애 후계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적하고 있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도 “통일부 차원에서 현재까지 확인해 줄 내용은 없다”며 “관계기관과 함께 북한의 후계 구도 상황을 면밀히 보고 있다”고 답했다. 김주애가 샛별 여장군으로 불리고 있다면 김정은의 후계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북한이 김주애로의 후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인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은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김주애를 '조선의 샛별 여장군'이라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무슨 업적으로 받은 명칭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임을 예고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짚었다. 반 센터장은 "김주애를 4대 수령으로 등극시키기 위한 여정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샛별”은 김일성과 김정은에게 사용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수령의 후계자로서 절차를 시작한 것임을 발표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이은 3대 부자세습으로 북한에서 인권은 유린되고 경제는 파탄에 직면했는데 4대 세습까지 나섰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발전을 역행하는 퇴행적 모습"이라며 "김씨 일가를 영적 존재처럼 신성시하는 오랜 기간 북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고 한반도의 안보불안은 가중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주애를 내세워 4대 세습까지 공식화하는 것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며 "북한의 무력도발, 인권유린, 자격에 미달된 국가 모습 등을 제대로 알려서 버젓이 국제규칙을 위반하고 몰상식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3-11-30 10:5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