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이지연 배우 이병헌과 이지연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게 이병헌 측은 문자대화를 공개한 매체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한 매체는 이병헌과 이지연이 주고받은 SNS 대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SNS 대화 내용에는 이병헌이 "저녁 메뉴가 뭐야?"라고 묻고 이지연이 "뭐 좋아해요?"라고 답하자 "너"라고 답한 내용도 포함돼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병헌은 이지연에게 "핸드폰 미납 요금 1년치를 주겠다"며 먼저 호감을 보였으며, 전화번호를 요청했다. 이지연이 통신비 미납을 핑계로 거절하자 이병헌은 “돈 때문에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 매체는 "이지연은 (이병헌에게) 번호를 주는 게 부담스러워 거짓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병헌 소속사 BH관계자는 "사실 확인 없이 허위조작 보도가 돼 유감이다"라며 "선고를 앞둔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보도가 된 것에 대한 출처를 밝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후 사실 확인 없는 보도와 루머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지연의 부모는 딸이 이병헌에게 금품을 요구한 것을 명백한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돈을 노린 꽃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지연 가족 측은 "지연이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범행을 모의했다고 하던데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며 "큰 부자는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다. 지연이에게 매달 부족하지 않게 생활비도 보내줬다"고 주장했다. 이지연의 외삼촌도 "형님(이지연 아버지)은 재력이 충분하다. 번듯한 상가 건물 2개를 갖고 있고 과수원도 크게 하고 있다"며 "내가 공인중개사라 직접 매입했으니 사실이다"고 주장했다. 또 이지연이 도주하려고 했다는 의혹에 대해 "매년 지연이랑 해외여행을 다닌다. 작년에는 터키를 다녀왔고 올해도 유럽 쪽으로 가보자고 해서 지연이가 그쪽 항공권을 검색해본 것"이라며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경찰이 찾기 어렵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를 알아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지연과 다희는 지난 10월 이병헌이 술을 마시며 성적 농담을 건네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후 50억원을 달라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결심 공판에서 이지연과 글램 다희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fn스타 fnstar@fnnews.com
2015-01-06 10:22:32이병헌 이지연 배우 이병헌과 이지연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며 끝없는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게 이병헌 측은 문자대화를 공개한 매체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한 매체는 이병헌과 이지연이 주고받은 SNS 대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SNS 대화 내용에는 이병헌이 "저녁 메뉴가 뭐야?"라고 묻고 이지연이 "뭐 좋아해요?"라고 답하자 "너"라고 답한 내용도 포함돼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병헌은 이지연에게 "핸드폰 미납 요금 1년치를 주겠다"며 먼저 호감을 보였으며, 전화번호를 요청했다. 이지연이 통신비 미납을 핑계로 거절하자 이병헌은 “돈 때문에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 매체는 "이지연은 (이병헌에게) 번호를 주는 게 부담스러워 거짓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병헌 소속사 BH관계자는 "사실 확인 없이 허위조작 보도가 돼 유감이다"라며 "선고를 앞둔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보도가 된 것에 대한 출처를 밝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후 사실 확인 없는 보도와 루머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연의 부모는 딸이 이병헌에게 금품을 요구한 것을 명백한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돈을 노린 꽃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지연 가족 측은 "지연이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범행을 모의했다고 하던데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며 "큰 부자는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다. 지연이에게 매달 부족하지 않게 생활비도 보내줬다"고 주장했다. 이지연의 외삼촌도 "형님(이지연 아버지)은 재력이 충분하다. 번듯한 상가 건물 2개를 갖고 있고 과수원도 크게 하고 있다"며 "내가 공인중개사라 직접 매입했으니 사실이다"고 주장했다. 또 이지연이 도주하려고 했다는 의혹에 대해 "매년 지연이랑 해외여행을 다닌다. 작년에는 터키를 다녀왔고 올해도 유럽 쪽으로 가보자고 해서 지연이가 그쪽 항공권을 검색해본 것"이라며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경찰이 찾기 어렵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를 알아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연과 다희는 지난 10월 이병헌이 술을 마시며 성적 농담을 건네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후 50억원을 달라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결심 공판에서 이지연과 글램 다희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fn스타 fnstar@fnnews.com
2015-01-06 09:03:09[파이낸셜뉴스] 종합주류기업 아영FBC는 서울 롯데 에비뉴엘 잠실점에 더 페어링을 신규 오픈한다고 3일 밝혔다. 더 페어링은 1000여 종의 다채로운 와인을 글라스로 즐길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글라스 와인 다이닝이다. 셰프의 퀴진과 전문 소믈리에의 큐레이션 페어링으로 음식과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특히 이번 오픈을 기념해 프리미엄 와인을 부담 없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모션이 진행된다. 웰컴드링크로 샴페인 팔머 브뤼 리저브를 제공한다. 샤토 마고, 라뚜르 등 5대 샤또와 파이퍼하이직 레어 등 초고가 샴페인을 최대 30% 할인된 가격으로 선보인다. 하이엔드 와인을 잔 단위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더 페어링은 단순한 다이닝을 넘어 ‘한 잔의 와인과 한 접시의 음식’이 가장 이상적으로 어울릴 수 있도록 구성했다. 모든 메뉴에는 어울리는 글라스 와인 1종을 함께 제안한다. 상주한 전문 소믈리에가 고객의 취향에 맞춘 오늘의 페어링 와인 추천 서비스를 상시 운영한다. 운영 시간대별로 메뉴 구성도 달라진다. 점심에는 쇼핑을 즐기러 온 고객을 위한 캐주얼한 런치 5코스(3만 9000원) 와 글라스 페어링(2만 9000원)을, 저녁에는 프렌치 감성과 정제된 분위기를 담은 디너 8코스(8만 9000원)와 와인 페어링 코스(5만 9000원)을 운영한다. 상시 300~1000종의 글라스 와인을 기반으로 월별 테마에 따라 다채로운 프로모션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더페어링 관계자는 “최근 주요 백화점을 중심으로 글라스 와인 바가 확산되며 고급 와인을 경험해 보고자하는 수요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한번쯤 맛보고 싶었던 와인부터 특급 5대 샤또 시리즈까지 글라스 단위로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5-07-03 09:06:2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이탈리아 벨루노에서 독일 브레머하펜으로 가는 길. 오스트리아를 경유하는 15시간 거리(1200km)이다. 브레머하펜 항에 가서 까브리를 선사에 넘기고 혹 차량수속에 문제가 있을까봐 브레멘에서 4일 더 머물기로 했다. 그 후 브레멘 공항에서 터키항공 편으로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한국에 귀국할 예정이다. 차안의 짐을 싹 비우라는 선사의 지침 때문에 많이 고민했었는데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짐을 한국으로 부치는 것이 한국같지않게 과정도 복잡하고 비용도 만만치않아 웬만한 것은 스테파노네서 처리하고 나머지 중요한 짐은 귀국시 비행기탈때 캐리어 무게만큼 꽉꽉 채워 가져오고 나머지 짐들은 없어질 것을 각오하고 차에 그냥 두기로 했다. 대신 차량 바닥에 단단히 싸서 걸리적거리는 것은 보이지 않도록 했다. 만약 그래도 통관이나 선적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버리라고 할 셈이었다. 차량을 배에 선적하기 위해 유럽 입국시 받은 까르네 서류(Carnet, 무관세 임시통관 증서)가 필요했는데 최초 유럽 입국한 헝가리 국경에서 그런게 필요한지, 아니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던 상태라서 발급받지를 못하고 그냥 지나쳤었다. 그래서 곤란해하던 중 탄이 어렵게 찾아낸 독일의 대행사가 서류발급 수수료 105유로를 받고 Export customs document를 만들어주어 선적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 달 전부터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었는데 선박을 찾고 여러 과정을 준비하는데 이제야 끝이 보였다. 브레머하펜 항구로 가는 길에 알프스를 넘는다. 알프스는 동서로 800km 크기에 초승달 모양으로 너비가 200km이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리히텐슈타인, 슬로베니아 총 여덟개 나라가 맞닿아있는 거대한 규모이다. 이탈리아에서 북쪽 알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로 가는 200km의 알프스 산맥구간을 달린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알프스의 경치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따로 알프스를 구경하려고 드라이브 코스를 알아볼 필요가 없다. 어디를 가던 도로가 워낙 잘 되어있고 아름다운 자연과 그림같은 마을들이 계속해서 볼거리를 선사한다. 알프스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넘어오니 하늘이 흐리다. 20년만에 온 오스트리아는 궂은 날씨로 기억될 듯 하다. 잠깐잠깐 휴식을 취하며 계속해서 북쪽으로 달려 해지기 전 독일까지 왔다. 하루만에 3개국을 지나는 거다. 알프스 산맥을 넘으니 고속주행이 가능한 아우토반이 나온다. 세달만에 다시 방문한 독일. 와본 곳이라고 반가운 기분이 든다.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면 모든 차들이 정해진 차선에서 질서정연하게 달린다. 큰 트럭과 화물차는 맨 오른쪽에서, 중간 차선에는 일반 승용차들이, 그리고 1차로에는 추월하는 차들이 달린다. 위험하게 차선을 바꾸거나 특별히 느리거나 빠른 차가 없는 것이 좋아보이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웬지 마음 한켠에 편치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바로 지적이나 비난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문화적인 차이가 이런게 아닌가 싶다. 너무 어두워지기전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박을 하기 위해 들어갔다. 역시 믿고 쉬는 독일 대형트럭 쉼터. 깨끗하게 잘 정돈된 쉼터 맨 안쪽에 까브리를 주차하고 내일을 위해 푹 쉬기로 했다. 무료 화장실도 있어 운이 좋다. 다음날 아침, 독일을 남에서 북으로 종단하는 날이다. 1년의 여행을 마무리짓는 드라이브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 아쉬운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한다. 우선은 까브리를 한국으로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한 숙제다. 코로나 이전, 유럽에서 한국으로 차량을 보낸 정보들은 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정보가 없어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최종 결정된 것은 선적비용 3430유로(488만원)으로 출항 후 40일 뒤인 10월 6일 평택항에 도착한다고 한다. 배에 까브리와 함께 동승하는 것이 아니어서 여러가지가 염려되었지만 잘 되겠지 긍정의 마음으로 진행한다. 오늘은 독일 북부 하노버까지 약 8시간(600km)을 주행한다. 스페인에서 구입한 심카드로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에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데 문제가 없다. 이제는 스마트기기와 인터넷 없는 여행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동 중에도 인터넷 검색 및 이메일과 왓츠앱 사용이 가능하니 좋은 시대에 편하게 여행하는 복받은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도 아우토반에 있는 쉼터에서 보낸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차박지이다. 비가 오지만 대형트럭들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문제없다. 독일 마트에서 산 꼬치와 소세지로 소소한 저녁을 먹었다. 평범한 이 순간이 그리울 것 같다. 다음날 브레멘에 도착해서 예약한 숙소에 이른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로 가져갈 짐들을 숙소에 두고 까브리와 브레머하펜으로 향한다. 바다가 나오고 저 멀리 차량 운송용 대형 선박이 보인다.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있는 항구. 이곳이 브레머하펜(Bremerhaven) - "브레멘의 항구"라는 뜻이다. 이메일로 알려준 표지판을 찾아 지정된 장소에 가서 작은 사무소의 사람에게 까브리를 맡겼다. 넓은 주차장 정해진 곳에 까브리를 주차해놓았다. 마지막으로 빠진 것이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고 까브리에게 인사를 했다. "까브리 안녕! 두달 후 한국에서 보자~!" 항구에서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왔다. 다행히 숙소에서 머무는 나흘 동안 연락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남은 음식들로 야무지게 식사를 만들어 먹으며 독일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보냈다. 드디어 한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걸어서 15분정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숙소를 얻었지만 전날 한번 둘이 공항까지 걸어가보니 인당 32kg의 짐을 가지고 가기는 쉬운 길이 아니어서 고민하다가 숙소주인께 부탁을 해서 시간맞춰 택시를 불렀다. 야무지게 싼 짐들을 숙소앞에 내리고 택시를 기다린다. 비도 조금 부슬부슬 내려 택시 부르기를 잘했다 싶었다. 곧 택시가 도착해서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일년만에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간다. 너무너무 기쁘다. 한국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낯익고 편안하다. 독일에서 열심히 인터넷으로 부동산을 알아보았지만 새로 살 집을 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직접 보고 결정을 해야할 것 같아 몇가지 후보만 마련해놓았다. 우선 대전에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맡겨둔 차를 찾아 춘천으로 왔다. 하루 3만5천원짜리 모텔에서 묵으며 하루에 서너곳씩 집을 보러 다녔는데 한여름에 전세집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생각한 것보다 좀 크지만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를 계약하고 일주일 후 모텔을 나와 새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둘이 살기엔 많이 넓은 집이었지만 오랜 여행을 해보니 나그네들에 대한 마음이 커져서 방 한칸을 손님을 위한 곳으로 꾸며놓았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싶어 낯선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이 곳이 전 세계 친구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기를 바란다. 9월 중순 춘천역에 독일에서 온 커플이 내렸다. 카우치서핑으로 방문신청을 해서 초대를 한 것이다. 서울과 속초 중간에 위치한 춘천에 오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의 첫 게스트는 베를린에서 온 친구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신청을 해서 우리집에 재워주지는 못하지만 만난 미국친구와 함께 김유정역에 있는 레일바이크를 타러 함께 왔다. 안내원의 안전수칙을 통역해주고 세사람을 배웅했다. 밝은 얼굴로 즐거운 모습이었다. 한시간 반 정도 걸리는 춘천의 레일바이크는 내리막 구간이 많아 크게 힘들지 않고 중간중간 테마가 있는 터널들을 지나는 재미와 길가 풍경이 한국 시골을 볼 수 있는 좋은 액티비티이다. 중간에 강옆에 쉼터에 도착하면 내려서 잠시 풍경을 감상하다가 다시 예쁜 관광열차로 갈아타서 강촌까지 가고 강촌에서 관광버스로 출발한 김유정역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아이들도 어른도 어르신들도 누구나 좋아한다. 춘천에 왔으면 빠질 수 없는 먹거리 닭갈비를 먹으러 왔다. 닭갈비가 손님을 대접하는 메뉴로 좋은 것은 이슬람이건 기독교건 힌두교건 누구나 마음편히 먹을 수 있고 심하게 맵지 않아 다들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테이블 위 커다란 철판에서 눈앞에서 요리되는 닭갈비는 처음이지? 닭갈비와 볶음밥 모두 다들 맛있게 잘 먹어서 기뻤다. 외국 친구들이 볶음밥 누른 것을 긁어먹으려 애쓰는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저녁에는 독일 친구들과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한국어, 음식, 여행, 분단과 통일 등 여러가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흘동안 함께 지내며 즐거운 추억을 만든 독일커플이 떠날때가 되었다. "독일에 올때 연락해요. 함께 판타지아 랜드에 가도 좋겠네요." 속초행 시외버스를 타러가는 그들을 터미널까지 바래다주었다. 까브리가 예정보다 열흘 일찍 도착했다. 대중교통으로 평택항까지 가서 까브리를 춘천으로 데려왔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캐빈을 여니 매트리스며 모니터며 바닥 짐칸의 짐들 모두 그대로이다. 안도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이제 이번 여행의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되었다. 기나긴 여행동안 큰 사고없이 건강하게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어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지금까지 까브리랑 함께 여행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참 즐거웠고 타민족과 문화속에서 삶의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 본 우리를 환대해준 많은 나라의 많은 친구들께 감사하고 세상구경 실컷해서 추억거리를 한가득 만든 시로와 탄의 여행 이야기를 여기서 마칩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Ss-tFRIseI0?si=fdWcxP6uHPzJg_kX>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6-26 15:47:16<53> 룩셈부르크-프랑스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아이슬란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와서 기차를 타고 친구집이 있는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다. 친구와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우리는 까브리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났다. 룩셈부르크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다.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다. 이 작은 나라가 GDP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들렀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라 거리는 우중충해보였다. 높은 빌딩은 찾기 힘들고 현대적인 10층 아래의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시내의 건물과 다니는 차들, 사람들 모두 유럽 여느 도시들과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20대때 많이 듣던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 노래가 떠올랐다. 룩, 룩, 룩셈부르크에 왔다. 제주도의 1.4배 크기이고 인구는 약 64만명으로 경기도 안산시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서비스업, 금융업의 비중이 높으며 비밀보장, 절세 등의 이유로 다국적 기업들이 이곳에 자회사를 설립한 경우가 많아 GDP가 그렇게 높다고 한다. 한국이 3만5000불, 룩셈부르크는 13만 5000불, 거의 4배가까운 차이가 나는데 길에 다니는 미래에서 온 것 같은 고급스러운 트램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물가까지 서너배 비싼건 아니라 다행이다.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룩셈부르크에서는 '휘발유·담배·술' 등 3가지가 싸다고 한다. 휘발유는 독일이 1.7~2.1유로 정도였는데 여기는 1.4 유로 정도로 저렴하다. 기름이나 빵빵하게 넣고 프랑스로 넘어가야겠다. 만날 친구도 없고 딱히 볼 것도 없어 우리는 계속해서 남쪽 프랑스로 향했다. 지방도로로 다니면 고속도로보다 속도는 느리고 길을 잘 찾아야 하지만 길가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멋진 가로수가 길게 이어진 길을 지나고 유럽의 농가를 구경한다. 노란 꽃밭도 지나고 오늘의 쉴 곳 캠핑장에 도착했다. 유럽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숙소를 잡을 엄두를 쉽게 못낸다. 대신 캠핑장이 잘돼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여행 후 처음으로 캠핑장을 찾아왔다. 넓은 캠핑장에 캠핑카들이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고 우리도 예약된 사이트를 찾아 잘 주차했다. 조용하고 쉬기에 좋았지만 역시 씻거나 세탁을 하기에는 많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자연 속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나왔다. 프랑스는 남한의 5배크기라고 한다. 산도 많고 숲도 우거지고 마을도 많아 참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내가 나무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 나무들이 많이 보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리옹(Lyon)에서 가까운 스키리조트에 저렴한 숙소를 찾아내어 그곳으로 향한다. 아이슬란드에서 걸린 감기가 낫지를 않아 숙소를 잡고 몇일 쉬고 싶었다. 하지만 프랑스 물가가 워낙 높아서 겨우 찾은 저렴한 숙소는 시즌이 끝나 사람들이 잘 찾지않는 스키리조트의 콘도였다. 산길을 차로 오르고 올라 해지기 전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19층이었는데 아주 작은 원룸 스타일로, 방은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최대 4명이 잘 수 있는 이층침대와 싱크대,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세탁기 등 부족함이 없는 좋은 곳이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예술이었다. 기대하고 온 것이 아니라 더 놀라운, 산 위에 지어진 높은 리조트 19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의 풍경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가까이 작은 스위스풍의 집들에서 저 멀리 설산이 겹겹히 보이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자연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아 잘 회복할 수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안티베(Antibes)로 카우치 서핑 친구를 만나러 간다 맥도날드에 아침을 먹으러 들렀다. 우리나라에선 아침엔 맥모닝 메뉴만 가능한데 프랑스의 맥도날드에서는 아침에도 빅맥을 먹을 수 있다. 프랑스는 어느 곳을 다니던 풍경이 참 아름다웠는데 남부의 국립공원을 지나는 드라이브를 할 때 특히 멋진 바위 산과 숲과 나무들 그리고 시골 마을 등 볼 것이 많아 더 기억에 남았다. 탄이 카우치서핑에서 호스트를 검색하다가 한국을 여행했다는 베르나르씨를 발견하고 메세지를 보냈더니 감사하게도 우리 요청을 받아주셨다. 베르나르씨가 사는 안티베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로 니스와 매우 가깝다. 안티베가 가까워지자 '오늘 오후에 도착하겠다'고 베르나르씨께 문자를 보냈다. 생각지 않은 저녁을 준비해주신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에 가게에 들러 와인을 한 병 샀다. 프랑스인이니 와인을 좋아하시겠지 하는 마음이다. 베르나르씨 집앞에 도착하자 거대한 철문 앞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이곳에 차를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며 베르나르씨의 차를 옮기고 그 자리에 우리 까브리를 주차하라고 배려해주신다. 호스트가 주차까지 신경써주시는 것은 처음이다. 너무너무 감사했다. 베르나르씨는 철문 안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자리가 있는데도 우리 자리를 맡아주기 위해 바깥에 차를 대셨던 것이다. 알고보니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이신 머리가 하얀 노인이셨다. 외국 사람은 다 키크고 코가 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베르나르씨는 탄이보다도 아담한 키에 귀여운 노인이셨다. 주차를 한 후에 우리는 함께 철문을 지나 넓은 정원 끝 빌라에 갔다. 방이 하나밖에 없는데 우리에게 더블베드가 있는 방을 내주시고 자신은 거실 쇼파에서 주무신다고 한다. 우리가 말도 안된다고 만류하고 "카우치 서핑이란 쇼파를 빌리는 건데 왜 주인이 쇼파에서 자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끝끝내 그렇게 잠자리를 정하셨다. 할아버지를 쇼파에서 주무시게 하는 것이 편치 않았지만 워낙 뜻이 확고하셔서 친절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흘정도 머물기로 했다. 첫날엔 베르나르씨가 만든 라따뚜이로 저녁을 먹었다. 프랑스 가정식 라따뚜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몸도 마음도 편해지는 좋은 음식이었다. 재료도 훌륭하고 맛도 있었다. 여행을 매우 사랑하는 베르나르씨는 일본과 한국을 가장 좋아한다 베르나르씨는 비행기를 매우 사랑하는 굉장한 여행가였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젊은 시절 프랑스항공에 다니셔서 여행할 기회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셨지만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일본과 한국이라고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한국은 자꾸 가고 싶은 곳이라고 한다. 어떤 여행지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어떤 여행지는 새로운 것은 없어도 자꾸 가고싶어지는 곳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그렇다고 했다. 한국에는 총 5번인가 방문하셨다는데 다행히 한국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계셨다. 베르나르씨의 거실에 한국 돗자리가 깔려있었는데 전라도를 여행할 때 숙소에 깔려있는 돗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호스텔에 구입방법을 물어보고 사오셨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사는 집 거실에 한국 돗자리가 깔려있다니, 무척 반가웠다. 우리처럼 베르나르씨도 대도시보다 소도시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한국의 소도시 여행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몇가지 이야기해주셨는데 25년 전 첫 한국여행 때도 서울을 거쳐서 국내선 환승으로 바로 부산에 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부산도 큰 대도시이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번잡하지 않아보였다고 했다. "산위에 있는 어떤 큰절에 갔어요. 그때 그 곳에 외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 밖에 없었지요. 그 절에 어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고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줄을 서있었어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저도 줄을 섰습니다. 줄을 따라가다가 입구에 다다랐을 때 정원은 없고 복도가 나왔어요. 그 곳에서 음식을 나눠주고 있더라구요. 얼떨결에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줄이 음식을 받는 줄인줄 몰랐었어요. 저는 자리를 잡고 음식을 받았습니다. 노인과 은퇴한 사람들이 음식을 받으러 왔던 것 같아요. 평일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간 시간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어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소리에 졸음이 몰려오더군요. 그곳에서 잠이 들었어요. 몇 분 후에 잠에서 깨고 나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베르나르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의 상황이 어땠을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눈에 그려지는 그 상황이 너무도 재미있었고 작은 외국아저씨가 절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음식을 먹고 잠이 든 것을 본 부산아지매들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서 계속 웃음이 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베르나르씨도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한번 행복해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베르나르씨의 집에 머물며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많은 대화와 깊은 마음을 나누었다. 베르나르씨는 손수 만든 음식으로 우리를 정성껏 대접해주셨고 전세계를 여행한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1층에 위치한 베르나르씨의 집에는 집보다 더 넓은 정원이 있어서 잔디며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매일아침 그의 정원에 비둘기 비슷한 새가 찾아온다. 가끔 여러 마리가 오기도 하는데 특히 목 뒤에 무늬가 있는 새는 베르나르씨의 친구였다. 그 새를 위해 모이와 예쁜 그릇을 준비놓고 매일 조금씩 주는 것이 일과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그 새가 날아와서 모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정말 신기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NUkqBFtVuUc?si=tZUeB5xZ8DkV6uTO>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3-06 11:10:37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독일을 향해 가던 중 폴란드 남동부의 브로츠와프를 지나게 되었다. 예전에 한 TV 여행프로에서 이 도시에 작은 난쟁이 동상들이 있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매우 신이 났다. 브로츠와프에는 2005년 처음 등장한 약 600여 개의 작은 난쟁이 동상들이 있는데 그 중 6개는 도시외곽의 LG 공장에 있다고 한다. 까브리를 타고 2차로의 좁은 돌바닥길을 지나다가 탄이 먼저 발견을 하고 "엇! 여기! 여기!"라고 한다. 나는 "우왓, 나도 보고싶다아~!"하며 열심히 두리번거리는데 탄이 차를 세워주었다. 내리다가 또다른 동상도 발견. 뛰어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맨처음 발견한 것은 높이 약 30~40cm정도의 청동으로 만든 작은 공중전화기 모양의 조형물 안에 난쟁이 3명이 무심하게 앉아있는 동상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고 너무 귀여웠다. 다음 것도 건물벽 가까이 붙어있었는데 이번엔 헤드랜턴을 쓰고 한 손에는 곡괭이를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광석을 들고 있는 광부 난쟁이였다. 난쟁이들을 찾는 전용 앱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현실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있을 만한 곳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세 번째 난쟁이들을 발견한 순간 다른 외국 관광객들도 우리와 비슷한 타이밍에 발견해 다가가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도면통과 설계도를 든 건축가 난쟁이들이었다. 이번엔 아주 현대적인 건물 앞에 홀로 서있는 난쟁이를 발견했다. 이 건물에 쓰여있는 것과 같은 글자가 새겨진 캠샤프트를 안고 서있다. 너무 귀엽다. 우리는 30여분 만에 난쟁이 동상들을 몇 개 발견한 것에 매우 만족해하며 브로츠와프 관광을 마치고 계속해서 베를린으로 향했다. 점심때가 되어 주차장이 잘 되있는 KFC를 발견했다. 오래간만에 치킨을 먹을 생각에 매우 즐거웠다. 좋아하는 메뉴를 잔뜩 시켜 든든히 잘 먹었다. 2시간 정도만 더 가면 독일에 입국한다. 독일도 한때는 우리나라처럼 분단 국가였다가 통일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러운 나라이다. 그 역사적 증거인 베를린의 무너진 장벽을 보러 가고 있다. 독일에 넘어온 후 베를린으로 가는 중 날이 어두워져 고속도로 옆 휴게소에서 대형 트럭들과 함께 차박을 했다. 4월 초순이지만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떨어진다. 독일의 휴게소에는 우리나라처럼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파는 곳은 없지만 그래도 유료가 아닌 화장실이 있어 잘 사용하고 잘 쉴 수 있었다. 파란 하늘이 흰 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베를린에 도착했다. 베를린의 상징 동물이 곰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오자마자 여기저기에 곰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색깔의 손을 번쩍 든 곰 동상이 매우 눈길을 끈다. 도시 이곳저곳에 곰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 많다고 한다. 어제는 난쟁이 찾기를 했는데 오늘은 베를린에서 곰 찾기를 해야 하나.ㅎㅎ 독일의 도시는 환경 관련 규제가 심해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차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Low Emission zone(저공해지역)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여행 중 요소수 찾아넣는 부담을 덜려고 요소수가 필요 없는 2016년형 포터를 샀기 때문에 까브리는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없어서 독일 도시를 다닐 때마다 매우 신경써야 했다. 차 유리창에 친환경 녹색 스티커가 없으면 저공해지역에서는 100유로의 벌금을 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무너진 장벽이 있다는 마우어 파크 또한 까브리로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그 선 밖에 차를 주차하고 20여분을 걸어가기로 했다. 베를린 거리를 탄이와 걷는 것도 천천히 이것저것을 볼 수 있어 좋았는데 그 지역이 좀 외곽이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독일의 수도인데 낡고 정비되지 않은 모습들이 조금 의외였다. 헤매지 않고 마우어 파크를 잘 찾아왔는데 공원은 꽤 넓었다. 공원 한쪽에 있는 가장 장벽 같은 곳으로 다가갔는데 내 머릿속에 있던 베를린 장벽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국경 이라기엔 별로 높지도 않고 길게 이어진 벽에 빼곡히 그래피티가 빈틈없이 그려져 있어 매우 어지럽고 지저분해 보였다. 1989년 동-서 독일이 통일되며 기념물로 남은 베를린 장벽. 이곳 마우어 공원의 mauer는 독일어로 장벽을 뜻한다. 나는 장벽에 손을 대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기를,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본 탄이 "우리에게도 그 날이 오겠지요"라고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베를린을 나와 서쪽 쾰른으로 향한다. 속도 무제한으로 유명한 독일에 아우토반을 달린다. 생각처럼 그렇게 쌩쌩 달리는 차는 많지 않다. 그리고 아우토반이라고 모든 길에서 무제한이 아니라 그 중 약 20% 정도만 무제한 속도 구간이라고 한다. 통행료를 걱정했으나 12톤 이상의 화물차에만 통행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단 아우토반의 주유소는 도시에 비해 20% 이상 비싸니 주유는 꼭 도시에서 하고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트럭들이 주로 다니는 맨 오른쪽 차로로 다녔는데 시속 80~90km 정도로 느리지않아 운전이 매우 편안하다. 쾰른이 가까워 오자 마음이 설렌다. 오늘 우리는 쾰른 인근의 놀이공원 판타지아 랜드(Phantasia land)에 가기로 했다. 나는 놀이공원을 무척 좋아하는데 외국의 놀이공원을 방문할 흔치 않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어젯밤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찾아 예약한 입장권 바코드를 입구에서 스캔하니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61유로(8만8000원). 동화 속에 들어온 듯 예쁜 건물들과 아기자기 꾸며진 길들을 따라 롤러코스터로 향했다. 첫번째로 탄 것은 RAIK.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빠르게 옆으로 지나가는 롤러코스터 위의 사람들 환호성이 즐겁게 들린다. 시작하자마자 뒤로 움직이는 롤러코스터. 얼마간 뒤로 이동하더니 덜컹 하며 멈추고 바로 굉장한 속도로 앞쪽으로 출발했다. 마치 그네를 뒤로 힘껏 땡겼다가 놓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빠른 속도로 앞으로 한참 가다가 또다시 뒤로 가는 특이한 롤러코스터였다. 무난하다 생각하며 다음은 이곳의 인기 라이드인 타론(Taron)을 타러갔다. 입구에서 사람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여 별생각없이 들어와보니 인기가 많다더니 역시 안쪽 줄이 어마어마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기는 처음인 것 같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탄은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즐겁다며 그 시간도 나름 즐기며 보냈다. 독특한 염색을 하거나 복장이 특이한 희안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 시스템 중 특히 좋은 것이 롤러코스터에 맨 앞자리를 앉고 싶은 사람들은 탑승 직전 따로 줄을 또 선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확실하게 맨 앞자리를 탈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우리는 기꺼이 기다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시작과 함께 바로 뿅하고 굉장한 속도로 발사하듯 튀어나갔다. 속도와 커브가 장난이 아니다. 가다 보면 중간중간 갑자기 더 빨라지는 가속 구간도 있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스피드를 즐기자 어느새 코스가 끝나 있었다. 아드레날린 최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줄 서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인생 롤러코스터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라이드가 멈춘 뒤에도 한동안 물개 박수를 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판타지아 랜드는 각 구역을 아프리카, 라틴 등 세계 여러 문화권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는데 점심은 멕시코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멕시코를 여행 할 때 많이 본 색색깔의 종이장식과 스페인어로 된 메뉴판이 반가웠다. 단지 내가 잘 못 먹는 고수가 또 많이 들어가 있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들어있지 않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잉카, 마야 문화를 테마로 한듯한 라이드가 멈춰 서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인터넷에서 이걸 보고 판타지아랜드에 꼭 가야겠다고 했었는데 하필 오늘 점검 중이라니. 에버랜드의 더블 락스핀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행되는데 위에서는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고 아래에선 불길이 뜨겁게 올라와 굉장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라이드였다. 아쉬웠지만 어김없는 머피의 법칙을 뒤로 하고 "이것 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스스로 위로하며 다른 것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 탈 것은 아프리카 분위기 블랙맘바. 25분 기다려서 탑승한 블랙맘바는 레일이 머리 위에 있고 다리가 붕 떠서 가는, 예전 에버랜드의 독수리 요새와 비슷한 방식의 놀이기구이다. 빠른 속도로 어두운 동굴도 지나고 빙글빙글 돌며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코스며 속도며 모든 것이 근사하다. 역시 독일제라 잘 만든 것 같다. 분수의 물줄기가 발밑까지 아슬아슬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회전 그네도 탔다. 판타지아 랜드에 2층짜리 회전목마는 보자마자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살면서 본 회전목마 중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하지만 타기에는 좀 시시하게 느껴져서 구경만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놀이공원을 너무 좋아해서 어릴적에는 항상 공원 오픈 시간에 맞추어 뛰어들어가 하루에 열댓가지가 넘는 놀이기구를 타고는 오늘은 몇번탔는지 자랑하곤 했는데 이제 체력이 딸려 그렇게 놀 수가 없다. 이제 서너 개를 탔을 뿐인데 벌써 힘이 든다. 마지막으로 크레이지 배트 라는 라이드를 타고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VR 헤드셋을 쓰고 타는 특이한 라이드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눈으로는 VR 영상을 보는 컨셉인데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막상 타보니 너무너무 실감나고 엄청나게 몰입되면서 완전 새로운 차원의 놀이기구를 경험했다. 나오면서 완전 감탄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라이드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과학이 발달하고 앞으로의 문화, 여가 생활은 이렇게 될것이라고 평소에 상상했었던 바로 그대로의 놀이기구가 이미 실현되어 있었다. 쾰른의 판타지아랜드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놀이기구를 경험하고 아름답고 편한 공원속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고 롤러코스터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탄이도 즐거웠다고 이야기해주어서 더욱 좋았다. 놀이공원에서 나와서 쾰른 시내로 갔다. 한 달 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만났던 마리아가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약속 장소가 저공해지역이어서 우리는 또 도시 외곽에 차를 주차하고 걷기엔 좀 먼 거리라서 이번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유로 현금이 없어서 요금을 어떻게 지불을 해야 할지 걱정을 했었지만 다행히 버스에 탑승하자 버스 내에 신용카드로 요금을 낼 수 있는 기기가 있어 잘 해결했다. 독일에서 무사히 대중교통을 타고 약속 시간에 잘 맞춰 마리아를 만났다. 독일에서는 꼭 학센을 먹어 보리라 별렀던 차에 마리아에게 학센 맛집을 소개받아 함께 식사를 했다. 지역 맥주도 맛있었고 고기도 푸짐하게 잘 먹었다. 식사 후 함께 라인강변을 걸으며 쾰른 대성당에 갔는데1880년 완공된 고딕양식의 어마어마한 웅장한 성당이었다. 40층 건물과 같은 높이라고 한다. 마침 석양이 성당 윗부분을 붉게 물들여 환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리아 덕분에 쾰른시내 구경을 잘 하고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또다시 길을 떠났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kuBZHf7Uxs?si=5gt9FdA4bcVzzZXh>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1-08 13:49:07<43> 튀르키예 '코니아'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메르신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잔뜩 안고 코니아를 거쳐 수도인 앙카라로 가기로 했다. 코니아로 가는 길. 튀르키예는 신기하게 어떤 길로 가도 멋진 풍경이 나온다.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코니아는 내륙이라 산길을 지나야하는데 높은 산들이 이어지고 숲도 멋있게 우거져있다. 멋진 절벽 바위산이 길 옆에 병풍처럼 이어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넓은 초원과 언덕도 아름다웠다. 메르신에서는 여름이 다가오나 싶게 더웠는데 또 갑자기 설경이 펼쳐진다. 눈 쌓인 산길을 탄이는 반팔티를 입고 운전하고 있다. 산을 지나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어두워지기 전 코니아(Konya)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사한 스테이크하우스를 발견했다. 외관이 마치 UFO같이 생긴 건물이었다. 들어가서 메뉴를 보니 와! 가격도 완전 착하다. 스테이크를 먹고싶어 했었는데 오늘 저녁 소원을 풀게 되었다. 탄이는 뼈에 붙은 양갈비를, 나는 송아지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각종 소스와 함께 너무 예쁘게 플레이팅해서 나왔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막 식사를 하려고 하자 직원이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나는 드라이아이스가 든 무언가를 식탁에 놓아주었다. "이거 먹는 건 아니겠지? 하핫" "그냥 분위기 있으라고 놔주셨나봐." 기분도 좋고 음식 맛도 좋고 가격이 착해 한층 더 좋고. 둘이 3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훌륭한 스테이크를 배부르게 잘 먹었다. 오늘 밤은 식당 근처의 공원 주차장에서 차박. 왕의 식사, 나그네의 잠자리이다. 크게 시끄럽거나 방해받지 않고 잘 자고 다음날 아침 앙카라로 향한다. 북쪽으로 올라가니 해가 오른쪽에서 뜨겁게 비친다. 이럴때를 대비해 달아놓은 커튼이 매우 유용하다. 이케아에서 산 커튼봉과 커튼집게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천을 길이에 맞게 잘라 재봉했다. 까브리 옆창문이 네모 반듯하지가 않아 완전히 가릴 수 있도록 찍찍이도 달아놓았다. 탄이 앙카라 가는 길에 소금호수가 있다고 한다. "정말? 남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튀르키예에도 소금호수가 있다고?" 그곳에 들르기로 했다. 길 옆에 낮은 지대에 바다가 말라버린 듯한 모래사장과 히끗히끗한 소금이 말라붙은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연 것이 보이네. 소금호수 맞나봐." 10년전 아메리카여행 때 볼리비아의 우유니에 가서 보리라 꿈꾸었던 소금호수를 여기 튀르키예에서도 볼 수 있다니. 길 옆에 관광지인 듯한 곳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기념품을 파는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식당도 있고 실물크기의 홍학모형이 두개나 있다. 호수에 홍학도 사나보다. 호수까지 가는 길을 매우 잘 닦아놓아서 당연히 입장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받지 않는다. 오우 완전 개꿀이다. 따뜻한 남쪽에서 오다보니 옷입는 감각이 완전 헷갈려서 홑겹 남방에 급히 작은 무릎담요 하나를 뒤집어 썼다. 귀가 시려울 정도로 춥다. 해도 강하고 호수가 눈이 부셔서 썬그라스도 꼈다. 희안한 패션이다. 호수쪽으로 한참 걸어들어가 드디어 물이 있는 곳을 만났다. 물가에는 하얗게 얼룩져있는 결정들이 보이는 것이 바로 소금인 것 같았다. "눈이나 얼음이 아니라 소금 결정인 것 같아." 사진에 진심인 탄이는 만류할 새도 없이 양말을 신은채 크록스 여름샌들로 철퍽철퍽 물에 걸어들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하늘이 내려온 듯 투명한 호수에 하늘과 탄이 반영되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후가 두려운 나는 물이 거의 없는 곳까지만 조심히 들어가서 물에 비친 사진은 못찍었지만 꽤나 만족했다. 우리 말고도 관광 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어디서 오셨냐고 서로 묻고 사진도 찍어주며 짧은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중국에서 왔다는 한 친절한 청년과 잠시 나그네의 동병상련을 나누었다. 호수는 매우 넓었고 깊은 곳까지 멀리 드론을 날려보니 바람한 점 없어 거울같은 호수에 하늘이 그대로 비쳐서 물과 하늘의 구별이 안 되었다. 멋진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차로 돌아왔다. 너무너무 추운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또 오게 된다면 소금호수는 여름에 오는게 좋겠다. 참 튀르키예는 대단한 것이 세계 모든 관광지가 다 있는 것 같다. 알프스같은 눈쌓인 아름다운 산맥들에, 지중해 남부의 이국적인 풍경과 풍부한 음식에, 가파도키아의 기묘한 바위들과 파묵칼레의 석회석 온천, 그리고 소금호수까지. 정말 없는게 없는 종합 관광지가 바로 튀르키예 아닌가 싶다. 차로 돌아온 탄이는 젖은 양말을 벗고 귀한 생수로 발과 크록스신을 씻고 차에 탔다. 시로의 작은 쿠사리와 함께.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 https://youtu.be/dcBtNe4sJ-0?si=Z_QDRP4Dwz4Qgkju>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2-12 10:39:45[파이낸셜뉴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이미 저 먼 과거로 가버렸다. 이런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중략) 그때처럼 자신의 변변치 않음을 혐오하거나 무작정 감동하는 것이다. 그럴 때 아무런 진보도 없는 자신에 놀라고 동시에 인간에게는 결코 진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새삼 느낀다. (중략) 어른이 된다는 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시키지 않아도 될 영역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두 번째로 다시 읽고 있는 소설 '나는 공부를 못해'를 쓴 야마다 에이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위와 같이 말했다. 지금 이 글(여행기도 기사도 아닌 무언가)을 보고 있는 사람 모두는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 봤을 것이다. 내 나이는 30 혹은 40인데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바뀐 것이 전혀 없구나, 라고. 어릴적 막연하게 생각했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시점을 지나면 훈장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처럼 연속해 흘러가는 시간에 불과한 거라고. 어른이 되었어도 나의 내면, 육체안에 깃든 나를 구성하는 무언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숫자가 하나씩 오를 때마다, 혹은 입고 있는 유니폼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역할극을 아둥바둥 수행하고 있다. 너무도 오래 전에 읽은 글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무라카미 류는 그의 소설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유아적 퇴행'을 하는 현상을 묘사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나이와 직책에 맞는 역할극을 할 필요가 없어 사회적 갑옷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그 자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의미의 또 다른 퇴행일 수 있지 않을까. 기존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본래의 나로 되돌아가는 경험 말이다. 열등감 덩어리였던 20대 무렵 홀로 떠난 타국으로의 여행은 필자에게 새로운 재충전의 기회가 됐다. 나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 그곳에서 사름들은 편견 없이 나를 받아들여줬고,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최악'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지금은 그때처럼 민감한 감수성도, 열등감도 없어지고 둥글둥글 배나 온 아저씨가 됐지만 아직 자신의 인생에서 모서리가 살아 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경험의 측면에서 홀로 떠나는 여행이든 동행이 있는 여행이든 여행은 좋은 선택지 중 하나다. 베트남 속 베네치아 메가 그랜드월드 하노이 하노이 여행 이틀차, 일행의 제안으로 최근에 새로 생긴듯한 명소인 메가 그랜드월드 하노이에 가기로 했다.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갔는데 도착하고 나서야, 하노이 시내와 이곳을 왕복하는 무료 셔틀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택시를 타고 길에 내리자 파스텔톤, 형형색색의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럽의 어느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듯한 건축 양식이었다. 베트남 우기인 7월 이었지만 햇살이 피부를 파고 들정도로 따가워서 우산을 양산 대용으로 들고 다녔다. 가장 먼저 보이는 '콩 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시면서 어디부터 둘러볼지 계획을 세웠다. 그랜드월드 하노이는 물의도시 베네치아를 모티브로 한 대형 쇼핑, 문화 시설이다. 한국의 교외형 아울렛과 작은 놀이동산을 합친 듯한 느낌이었다. 평일 오전 방문이어서 주점과 식당 등 많은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도로변쪽에 '한국'을 모티브로 한 한국거리도 있었는데 카카오 캐릭터를 파는 상점이 정식 오픈을 앞두고 준비 중이었다. 다이소에서 1000원이면 살 수 있을 듯한 카카오 편지지가 현지 가격으로 2000원이 넘는 아주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관세가 붙었다고는 해도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아주 비싼 가격표에 한류 프리미엄 파워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양쪽 상점가를 순서대로 둘러 볼 수 있었다. 옷을 파는 매장, 각종 장식품과 기념품을 파는 매장, 식당과 카페 등 셀수 없이 많았다. 이곳 저곳 둘러 보면 연신 사진을 찍었다. 더운 날씨 탓에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카페에 들려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돌아갈 때는 블로그를 검색해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무료 셔틀버스는 강의 한쪽 끝, 길 건너 정류장에서 탈 수 있었다. 오바마 분짜먹고 호아로 감옥 박물관 무료 셔틀 버스 하차역은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인근이었다. 지도를 검색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하노이 명소인 '오바마 분짜' 식당으로 향했다. 'HUONG LIEN' 분짜라는 식당으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곳 중 하나다. 1층 식당의 벽면에는 오바마 방한 당시 사진이 걸려 있고, 메뉴 중에도 맥주를 포하만 오바마 세트가 있다. 식당 2층으로 올라가면 실제로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앉아서 식사를 했던 테이블이 유리로 차단돼 있어 당시를 기념하고 있다. 분짜의 맛 자체는 베트남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분짜보다는 사이드 메뉴로 시킨 튀김류가 더 맛있었다. 하노이에는 유명한 분짜 집이 셀 수 없이 많으므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숙소 근처 식당에 가길 추천한다. 정보가 없다면 숙소(호텔)의 카운터에 물어봐도 대부분은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분짜를 먹고는 다시 도보로 이동했다. 중간에 더위를 식힐 겸 사파에서 봤었던 '카파' 카페에 들렸다. '카파' 카페가 프랜차이즈였다는 걸 이때 알았는데 사파에서 먹었던 것보다 음료의 맛은 별로였다. 한동안 걸어서 호아로 감옥 박물관에 도착했다. 19세기 말 프랑스 점령군에 의해 건설된 감옥이다. 매우 큰 부지로 1953년에는 2000명 이상이 수용됐다고 한다. 박물관이 초입에는 당시 수용자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동상 모형이 있다. 프랑스군이 물러난 이후 이 감옥은 베트남 전쟁 당시 다시 베트남 인민군의 수용소로 사용됐다. 당시 고문도구와 처형도구 등이 있고 인상깊었던 점은 미군 파일럿의 옷과 장비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전쟁 당시 추락한 미국 파일럿인듯 보였는데 감옥에 넣는 대신 굉장히 극진한 대접을 해준 모양이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점 푸드코트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그랩을 타고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점에 방문했다. 하노이에 지어진 초대형 쇼핑몰로 '서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어 잠실에 있는 롯데몰과 흡사한 분위기였다. 쇼핑몰 고층에 위치한 고급 식당가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하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김밥과 떡볶이 등을 파는 한식관도 있었는데 한국 음식을 찾는 현지인, 외국인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다. 푸드코트의 대형 TV 화면에서는 셰프용 검은 장갑을 낀 주방장이 불고기를 만들고 멋있는 요리를 하다가 마지막에 완성품인 김밥을 심혈을 기울여 자르는 장면이 나왔다. 일류 셰프 복장을 한 사람이 김밥을 심혈을 기울여 자르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는데 베트남에서는 길거리 음식인 김밥이 한류 버프를 받아 고급 요리로 인식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과 초밥 도시락과 닭고기 도시락을 하나씩 먹고 숙소로 복귀했다. 쇼핑몰을 돌아보는 중에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일정 중에는 큰 비가 내리지 않아 럭키비키인 하루였다. #OBJECT0#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11-02 13:34:43<33> 이집트 '카이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마흐멧 가족은 늦은 밤 도착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흐멧의 가족은 아파트의 3층에 살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6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우리는 3층 마흐멧의 집으로 가서 거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소개를 하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태어난지 6개월 되었다는 누나의 아들인 아기 모하메드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안기고 무척 순한 아기였다. 눈이 신기할 정도로 크고 까매서 정말 인형같았다. 물고기 니모인형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친구와 길게 이야기도 못하고 곧 6층으로 가서 잠자리를 안내받았다. 사람이 사용한지 좀 되보이는 공간인 듯해서 치우고 정리한 후 대충 이부자리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해서 바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조심조심 집을 나섰다. 카우치서핑에서 함께 피라미드를 보자고 제안한 미국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6시반에 출발했는데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젯밤 무서워하며 찾아온 동네가 밝을 때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혀 정비라고는 안되있는 맨 흙바닥에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낡은 아파트 건물들이 황량하게 서있는 모습에 이곳이 우범지역은 아닐까 싶어 어젯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멘붕상태였다. 그래도 친구가 생겼고 하룻밤 잘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며 피라미드를 향해 갔다. 친구의 집은 카이로 북쪽이고 남쪽의 피라미드를 가기 위해서는 카이로를 관통해서 2시간 반 가량 가야한다. 카이로에 가까이 가자 집이나 사람들이 잘 안보일 정도로 뿌옇게 보이는 것이 안개라기보다는 스모그가 아닐까 싶었다. 운전도 쉽지 않았던 것이 왕복 8차로의 도로 갓길에 사람들이 태연하게 걸어다니고, 차선이 없는 길도 많았으며 차선이 있어도 다들 별로 신경을 안쓰고 자기 가고싶은 대로 차선을 무시해 달리고 있었다. 카이로의 건물들은 누런 흙색으로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는데 매우 낡아서 지은지 30~40년은 되보였다. 이와중에 탄이는 "지은지 3천년된 아파트는 아니겠지 뭐."라며 농담을 한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저 멀리 피라미드의 실루엣이 동트는 여명 속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차를 가져온 경우에는 일단 표를 먼저 구입하고 동승자는 내려서 도보로 입장하고 운전자는 따로 주차권과 함께 본인표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피라미드를 처음 보는 탄은 많이 신난 모습이다. 사실 나는 28년 전에 이미 와본적이 있어 크게 오고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탄이 꼭 가보고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 당시 카이로 시내의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피라미드에 간다며 출발했는데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얼마 안가 피라미드에 금방 도착한 것이 무척 이상했었는데 이제 카이로시가 점점 커져서 아예 피라미드는 시내 번화가 안에 있게 되었다. 탄은 이런저런 포즈를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주차장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스모그에 덮여 뿌옇기는 했지만 지대가 높아 카이로가 잘 보였다. 우리는 약속시간인 9시를 맞추기 위해 6시에 일어나 2시간반 전에 출발했는데 미국부부인 타냐와 존은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조금 늦겠다고 왓앱으로 연락을 하더니 10시 3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와서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게 끝이었다. 뭐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우리도 그냥 웃으며 지금부터의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근데 오자마자 사전에 이야기가 없던 이집트여성 가이드를 소개하며 20달러를 줘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가 피라미드를 안내하며 유적에 대한 설명을 해줄거라고 했다. 우리랑 사귀고 함께 여행을 즐기려는 것 보다는 가이드비 나눠 낼 사람이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많이 찜찜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한시간 반만에 비로소 입구를 벗어나 피라미드 가까이 이동을 했는데 중간에 이 부부는 또 사라져버렸다. 늦게와서 입구며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느긋하게 찍고 한참 뒤에 합류했다. 가이드분이 우리에게 이 사람들 어디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겨우 다 모여서 드디어 가이드분이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상한 영어 발음을 탄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웬만한 이집트에 대한 것은 다큐멘터리며 책 등을 통해 많이 알고 있어서 그녀의 이야기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시간만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잠시 끊겼을 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당신께 사례를 하고 우리는 따로 다니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타냐가 말한 20달러를 줘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양심적인 가이드는 자기가 한 것이 없다며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약간의 사례를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오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런 일로 오늘 전체의 기분을 망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평생 다시오기 힘든 이집트 피라미드인데, 저 사람들 따라다니며 계속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결단을 내리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우리끼리 기분좋게 피라미드를 구경하며 즐기기로 했다. 제일 큰 푸쿠왕의 피라미드에는 돈을 추가로 더 내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들어가본적이 있는 나는 탄에게 "들어가봤자 안에 유물이라곤 다 가져가서 볼거 하나도 없고 무지 낮은 통로를 생고생하며 들어가야해."라고 얘기해주었더니 미련없이 포기한다. 두번째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있는 낮은 건물유적이며 길가에 쌓여있는 돌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게 보인다. 피라미드 공원에는 큰 피라미드가 3개, 스핑크스가 하나 있는데 조금 힘들긴 하지만 걸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도보가 어려운 사람들은 낙타나 마차를 타기도 했다. 날씨가 매우 맑고 겨울이라 낮에도 햇빛아래에서 걸을 만 한 기온이라 피라미드 사이를 산책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고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한참 걷다가 언덕위에 뭔가 현대적인 건물과 광장같은 것이 있어 궁금해서 가보았다. 피라미드와 잘 어울리는 멋진 석조건물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다. 많이 걸어서 피곤하던 차에 커피한잔 하며 쉬기 좋겠다 싶어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고 메뉴를 보자 가격이 예상보다 그리 비싸지 않아 우리는 아예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안내된 자리는 피라미드 3개가 한눈에 보이는 야외테라스였다. 날씨도 좋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 편안히 피라미드를 보며 이집트 음식을 먹다니 이거야말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최고의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주문한 이집트 정식은 빵을 주식으로 하고 콩과 감자, 계란등으로 간단하게 요리한 것들이었는데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해 먹을만 했다. 손님도 많지 않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종업원들도 모두 매우 친절해서 오전에 상했던 기분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듯 했다. 이곳에서의 식사와 피라미드를 앉아서 편히 구경한 기억은 평생 남을 것 같다. 식사 후에는 공원이 생각보다 많이 넓어 계속 걸어다닐 엄두가 안나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도로도 있고 군데군데 주차할 곳도 있어 차를 가져온 사람들은 공원 내부를 차로 타고 다니는 것을 파악했다. 피라미드를 실컷 구경했으니 이제 스핑크스를 찾아볼 차례. 조금 헤메다가 드디어 어떤 언덕을 내려가는 중 스핑크스 뒤통수를 발견했다. 스핑크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젯밤 마흐멧이 반드시 가보라고 추천해준 2017년 개관한 이집트국립문명박물관이다. 이곳은 나도 한번도 안가본 곳이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지하 주차장이 잘 되어있다. 이집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현대적인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검색대를 통과해서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조형물이며 조경이 너무너무 이집트스럽고 멋지게 잘 되어있는 박물관 광장이 나왔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기프트샵 앞의 파라오 상이 나를 유혹했지만 나올때 가기로하고 일단 전시를 구경하러 들어갔다. 내국인과 외국인 표값이 많이 차이가 난다. 외국인은 약 1만원 정도 했고 이집트사람들은 4분의 1가격이었다. 주차비도 함께 계산했다. 터널같은 복도를 지나 드디어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박물관에 들어가면 촬영을 못하게 하겠지 싶었는데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이야, 개꿀!"하며 마음껏 촬영을 했다. 매우 깨끗하고 훌륭한 전시장에는 내가 정신못차릴 정도로 아름답고 역사적인 고대 이집트 유물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무덤에서 나온 각종 인형, 장신구, 토기 등 하루종일 보라고 해도 질리지 않을 흥미진진한 물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열심히 구경했다. BC1000년경의 어떤 공주의 천 발다킨(제단이나 왕좌 위에 덮어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데 사용되는 독립형 캐노피)은 그 색과 질감이 크게 삭지 않고 남아있어 당시의 화려함에 감탄이 나왔고, 나무관, 석상, 부장품등에 섬세하게 조각되고 채색된 그림과 상형문자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문명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지하의 미이라관이었다. 인기 장소답게 줄을 서서 천천히 들어갔는데 어두운 전시실에 유리관에 누워있는 실제 파라오와 왕비들의 미이라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책으로 영상으로 들어온 유명한 몇천년전 이집트왕들의 미이라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한 한편,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최고의 기술로 미이라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지나왔는데 결국은 전세계 사람들의 구경거리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착잡했다. 카이로 관광을 마치고 다시 마흐멧네로 돌아왔다. 저녁에 친구와 함께 외출을 했다. 마흐멧의 핸드폰을 우리 렌트카에 블루투스로 연결해 그가 좋아하는 이집트 음악을 함께 들었다. 내가 영화에서 본 이집트 옷을 사고싶다고 말하자 마흐멧은 우리를 옷가게 있는 곳으로 데려가주었다. 몇군데를 가보았지만 내가 보았던 옷위에 걸칠만한 샤방샤방 얇은 천으로 된 아랍식 드레스는 찾을 수 없고 매우 두껍고 무거워보이는 긴 원피스만 보였다. 마흐멧에게 이야기하니 보통 아랍여자들은 절대 그런 샤방한 옷을 안입는단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판타지같은거라며 그런 것을 일반적으로 사기는 힘들거라고 했다. 옷구입은 포기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 마흐멧은 어디서 배웠는지 "환.영.하.다."라는 한국말을 우리에게 자꾸 한다. 스마트 폰 번역기를 활용한 듯 하다. 이집트 시골동네에서도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타진(작은 도기그릇에 고기, 야채, 소스등을 넣고 오븐에 구운 음식)과 마흐멧의 추천음식 몇가지를 시켰다. 현지친구가 있으면 식당에서 헤메지 않아 너무 좋다. 끈적끈적한 초록색 스프가 나왔는데 공중에서 길게 늘이며 섞는다. 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진다고 한다. 뭔가 메생이같기도 하고 좀 생소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꽤 입맛에 맞았다. 탄은 비둘기요리에 도전했다. 통째로 들고 망설임없이 중간을 '앙' 뜯어먹는 모습이 산적같다. 한입 뜯으니 속이 노란 밥알로 채워져있는 것이 보였다. 맛있게 잘 먹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차와 흘러내리는 듯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었다. 너무 달지않을까 걱정했지만 따뜻하고 찬 온도차와 크게 달지 않은 맛이 조화롭게 느껴져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희안한 담배같은 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우리가 궁금해하자 마흐멧은 주문을 했다. 바로 물담배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물담배가 좀 두렵기도 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랴 싶어 한모금 훅 들이켰는데 뭔가 희안한 향과 거부감이 들어 두번은 사양했다. 탄이도 별로 안맞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마흐멧 덕분에 현지체험을 제대로 잘한 즐거운 저녁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AcZAm4-qGqI?si=tWg9xvjqo3vg2O9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03 16:44:22[파이낸셜뉴스] 온가족이 즐기는 1등 배달메뉴인 치킨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교촌의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다. 조리부터 포장까지 교촌치킨의 전반적인 제조과정을 체험할 수 있어 평소 교촌치킨을 즐겨먹던 팬이라면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 이태원 교촌필방에서 진행된 이날 체험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기획돼 4살 딸과 함께 동행했다. 어린이 들과 소통하며 추억을 쌓고 교촌치킨에 대한 브랜드 친밀도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교촌필방의 출입구부터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좋았다. 보통의 출입문과 달리 출입구 옆에 걸린 커다란 붓을 당기면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출입문인지 모를 정도로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연출을 했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은 먼저 교촌필방 투어를 시작했다. 각각의 공간으로 이동할 때마다 출입문들이 벽처럼 되어있어 마치 '비밀의 방'을 찾아가는 컨셉트로 진행돼 아이들이 매우 즐거워했다. 본격적으로 치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기 위해 조리실로 향했다. 닭 숙성 작업, 교촌치킨 특유의 얇고 바삭한 튀김옷을 위한 두 번의 튀김 과정, 성형 작업 등 조리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치킨이 튀겨지는 과정을 눈으로 관람했다. 안전을 고려해 아이들은 조리대 뒤쪽에서 설명을 들었는데 모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각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겐 튀겨진 닭이 제공됐다. 교촌치킨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치킨 조각에 소스를 바르는 소스 붓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시간이었다. 치킨에 소스를 바를 때는 너무 많이 바를 경우 짤 수 있으니 골고루 바르는 것이 중요했는데 아이들은 모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각자의 치킨을 완성하기 위해 애썼다. 4살 아이도 충분히 붓으로 치킨에 소스를 바르는 것이 가능했는데 바르면 바로 먹어볼 수 있어 더욱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엄마, 내가 만든 치킨 먹어봐. 맛있어"라며 연신 맛보기를 권유했다. 소스를 다 바른 치킨은 교촌치킨 박스에 넣어 포장하는 작업까지 거쳤다. 각자 집에 갈 때 직접 만든 치킨을 들고 가며 "오늘 저녁은 내가 만든 치킨으로 먹자"며 종알거렸다. 이날 참여한 한 가족은 "늘 시켜 먹던 교촌치킨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브랜드 히스토리까지 알게 돼 흥미로웠다"면서 "직접 소스 도포 체험을 해보니 제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제품이었다"며 감탄했다. 한편, 교촌1991스쿨은 소비자가 직접 치킨의 조리, 포장 등 제조 과정 전반을 체험하며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당초 기존 본사 신규 임직원 및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하던 실무 교육이었지만 고객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2024-09-09 10: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