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이지연 배우 이병헌과 이지연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게 이병헌 측은 문자대화를 공개한 매체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한 매체는 이병헌과 이지연이 주고받은 SNS 대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SNS 대화 내용에는 이병헌이 "저녁 메뉴가 뭐야?"라고 묻고 이지연이 "뭐 좋아해요?"라고 답하자 "너"라고 답한 내용도 포함돼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병헌은 이지연에게 "핸드폰 미납 요금 1년치를 주겠다"며 먼저 호감을 보였으며, 전화번호를 요청했다. 이지연이 통신비 미납을 핑계로 거절하자 이병헌은 “돈 때문에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 매체는 "이지연은 (이병헌에게) 번호를 주는 게 부담스러워 거짓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병헌 소속사 BH관계자는 "사실 확인 없이 허위조작 보도가 돼 유감이다"라며 "선고를 앞둔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보도가 된 것에 대한 출처를 밝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후 사실 확인 없는 보도와 루머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지연의 부모는 딸이 이병헌에게 금품을 요구한 것을 명백한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돈을 노린 꽃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지연 가족 측은 "지연이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범행을 모의했다고 하던데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며 "큰 부자는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다. 지연이에게 매달 부족하지 않게 생활비도 보내줬다"고 주장했다. 이지연의 외삼촌도 "형님(이지연 아버지)은 재력이 충분하다. 번듯한 상가 건물 2개를 갖고 있고 과수원도 크게 하고 있다"며 "내가 공인중개사라 직접 매입했으니 사실이다"고 주장했다. 또 이지연이 도주하려고 했다는 의혹에 대해 "매년 지연이랑 해외여행을 다닌다. 작년에는 터키를 다녀왔고 올해도 유럽 쪽으로 가보자고 해서 지연이가 그쪽 항공권을 검색해본 것"이라며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경찰이 찾기 어렵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를 알아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지연과 다희는 지난 10월 이병헌이 술을 마시며 성적 농담을 건네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후 50억원을 달라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결심 공판에서 이지연과 글램 다희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fn스타 fnstar@fnnews.com
2015-01-06 10:22:32이병헌 이지연 배우 이병헌과 이지연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며 끝없는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게 이병헌 측은 문자대화를 공개한 매체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한 매체는 이병헌과 이지연이 주고받은 SNS 대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SNS 대화 내용에는 이병헌이 "저녁 메뉴가 뭐야?"라고 묻고 이지연이 "뭐 좋아해요?"라고 답하자 "너"라고 답한 내용도 포함돼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병헌은 이지연에게 "핸드폰 미납 요금 1년치를 주겠다"며 먼저 호감을 보였으며, 전화번호를 요청했다. 이지연이 통신비 미납을 핑계로 거절하자 이병헌은 “돈 때문에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 매체는 "이지연은 (이병헌에게) 번호를 주는 게 부담스러워 거짓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병헌 소속사 BH관계자는 "사실 확인 없이 허위조작 보도가 돼 유감이다"라며 "선고를 앞둔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보도가 된 것에 대한 출처를 밝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후 사실 확인 없는 보도와 루머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연의 부모는 딸이 이병헌에게 금품을 요구한 것을 명백한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돈을 노린 꽃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지연 가족 측은 "지연이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범행을 모의했다고 하던데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며 "큰 부자는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다. 지연이에게 매달 부족하지 않게 생활비도 보내줬다"고 주장했다. 이지연의 외삼촌도 "형님(이지연 아버지)은 재력이 충분하다. 번듯한 상가 건물 2개를 갖고 있고 과수원도 크게 하고 있다"며 "내가 공인중개사라 직접 매입했으니 사실이다"고 주장했다. 또 이지연이 도주하려고 했다는 의혹에 대해 "매년 지연이랑 해외여행을 다닌다. 작년에는 터키를 다녀왔고 올해도 유럽 쪽으로 가보자고 해서 지연이가 그쪽 항공권을 검색해본 것"이라며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경찰이 찾기 어렵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를 알아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연과 다희는 지난 10월 이병헌이 술을 마시며 성적 농담을 건네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후 50억원을 달라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결심 공판에서 이지연과 글램 다희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fn스타 fnstar@fnnews.com
2015-01-06 09:03:09[파이낸셜뉴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이미 저 먼 과거로 가버렸다. 이런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중략) 그때처럼 자신의 변변치 않음을 혐오하거나 무작정 감동하는 것이다. 그럴 때 아무런 진보도 없는 자신에 놀라고 동시에 인간에게는 결코 진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새삼 느낀다. (중략) 어른이 된다는 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시키지 않아도 될 영역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두 번째로 다시 읽고 있는 소설 '나는 공부를 못해'를 쓴 야마다 에이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위와 같이 말했다. 지금 이 글(여행기도 기사도 아닌 무언가)을 보고 있는 사람 모두는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 봤을 것이다. 내 나이는 30 혹은 40인데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바뀐 것이 전혀 없구나, 라고. 어릴적 막연하게 생각했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시점을 지나면 훈장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처럼 연속해 흘러가는 시간에 불과한 거라고. 어른이 되었어도 나의 내면, 육체안에 깃든 나를 구성하는 무언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숫자가 하나씩 오를 때마다, 혹은 입고 있는 유니폼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역할극을 아둥바둥 수행하고 있다. 너무도 오래 전에 읽은 글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무라카미 류는 그의 소설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유아적 퇴행'을 하는 현상을 묘사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나이와 직책에 맞는 역할극을 할 필요가 없어 사회적 갑옷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그 자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의미의 또 다른 퇴행일 수 있지 않을까. 기존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본래의 나로 되돌아가는 경험 말이다. 열등감 덩어리였던 20대 무렵 홀로 떠난 타국으로의 여행은 필자에게 새로운 재충전의 기회가 됐다. 나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 그곳에서 사름들은 편견 없이 나를 받아들여줬고,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최악'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지금은 그때처럼 민감한 감수성도, 열등감도 없어지고 둥글둥글 배나 온 아저씨가 됐지만 아직 자신의 인생에서 모서리가 살아 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경험의 측면에서 홀로 떠나는 여행이든 동행이 있는 여행이든 여행은 좋은 선택지 중 하나다. 베트남 속 베네치아 메가 그랜드월드 하노이 하노이 여행 이틀차, 일행의 제안으로 최근에 새로 생긴듯한 명소인 메가 그랜드월드 하노이에 가기로 했다.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갔는데 도착하고 나서야, 하노이 시내와 이곳을 왕복하는 무료 셔틀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택시를 타고 길에 내리자 파스텔톤, 형형색색의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럽의 어느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듯한 건축 양식이었다. 베트남 우기인 7월 이었지만 햇살이 피부를 파고 들정도로 따가워서 우산을 양산 대용으로 들고 다녔다. 가장 먼저 보이는 '콩 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시면서 어디부터 둘러볼지 계획을 세웠다. 그랜드월드 하노이는 물의도시 베네치아를 모티브로 한 대형 쇼핑, 문화 시설이다. 한국의 교외형 아울렛과 작은 놀이동산을 합친 듯한 느낌이었다. 평일 오전 방문이어서 주점과 식당 등 많은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도로변쪽에 '한국'을 모티브로 한 한국거리도 있었는데 카카오 캐릭터를 파는 상점이 정식 오픈을 앞두고 준비 중이었다. 다이소에서 1000원이면 살 수 있을 듯한 카카오 편지지가 현지 가격으로 2000원이 넘는 아주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관세가 붙었다고는 해도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아주 비싼 가격표에 한류 프리미엄 파워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양쪽 상점가를 순서대로 둘러 볼 수 있었다. 옷을 파는 매장, 각종 장식품과 기념품을 파는 매장, 식당과 카페 등 셀수 없이 많았다. 이곳 저곳 둘러 보면 연신 사진을 찍었다. 더운 날씨 탓에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카페에 들려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돌아갈 때는 블로그를 검색해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무료 셔틀버스는 강의 한쪽 끝, 길 건너 정류장에서 탈 수 있었다. 오바마 분짜먹고 호아로 감옥 박물관 무료 셔틀 버스 하차역은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인근이었다. 지도를 검색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하노이 명소인 '오바마 분짜' 식당으로 향했다. 'HUONG LIEN' 분짜라는 식당으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곳 중 하나다. 1층 식당의 벽면에는 오바마 방한 당시 사진이 걸려 있고, 메뉴 중에도 맥주를 포하만 오바마 세트가 있다. 식당 2층으로 올라가면 실제로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앉아서 식사를 했던 테이블이 유리로 차단돼 있어 당시를 기념하고 있다. 분짜의 맛 자체는 베트남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분짜보다는 사이드 메뉴로 시킨 튀김류가 더 맛있었다. 하노이에는 유명한 분짜 집이 셀 수 없이 많으므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숙소 근처 식당에 가길 추천한다. 정보가 없다면 숙소(호텔)의 카운터에 물어봐도 대부분은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분짜를 먹고는 다시 도보로 이동했다. 중간에 더위를 식힐 겸 사파에서 봤었던 '카파' 카페에 들렸다. '카파' 카페가 프랜차이즈였다는 걸 이때 알았는데 사파에서 먹었던 것보다 음료의 맛은 별로였다. 한동안 걸어서 호아로 감옥 박물관에 도착했다. 19세기 말 프랑스 점령군에 의해 건설된 감옥이다. 매우 큰 부지로 1953년에는 2000명 이상이 수용됐다고 한다. 박물관이 초입에는 당시 수용자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동상 모형이 있다. 프랑스군이 물러난 이후 이 감옥은 베트남 전쟁 당시 다시 베트남 인민군의 수용소로 사용됐다. 당시 고문도구와 처형도구 등이 있고 인상깊었던 점은 미군 파일럿의 옷과 장비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전쟁 당시 추락한 미국 파일럿인듯 보였는데 감옥에 넣는 대신 굉장히 극진한 대접을 해준 모양이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점 푸드코트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그랩을 타고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점에 방문했다. 하노이에 지어진 초대형 쇼핑몰로 '서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어 잠실에 있는 롯데몰과 흡사한 분위기였다. 쇼핑몰 고층에 위치한 고급 식당가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하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김밥과 떡볶이 등을 파는 한식관도 있었는데 한국 음식을 찾는 현지인, 외국인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다. 푸드코트의 대형 TV 화면에서는 셰프용 검은 장갑을 낀 주방장이 불고기를 만들고 멋있는 요리를 하다가 마지막에 완성품인 김밥을 심혈을 기울여 자르는 장면이 나왔다. 일류 셰프 복장을 한 사람이 김밥을 심혈을 기울여 자르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는데 베트남에서는 길거리 음식인 김밥이 한류 버프를 받아 고급 요리로 인식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과 초밥 도시락과 닭고기 도시락을 하나씩 먹고 숙소로 복귀했다. 쇼핑몰을 돌아보는 중에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일정 중에는 큰 비가 내리지 않아 럭키비키인 하루였다. #OBJECT0#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11-02 13:34:43<33> 이집트 '카이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마흐멧 가족은 늦은 밤 도착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흐멧의 가족은 아파트의 3층에 살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6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우리는 3층 마흐멧의 집으로 가서 거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소개를 하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태어난지 6개월 되었다는 누나의 아들인 아기 모하메드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안기고 무척 순한 아기였다. 눈이 신기할 정도로 크고 까매서 정말 인형같았다. 물고기 니모인형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친구와 길게 이야기도 못하고 곧 6층으로 가서 잠자리를 안내받았다. 사람이 사용한지 좀 되보이는 공간인 듯해서 치우고 정리한 후 대충 이부자리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해서 바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조심조심 집을 나섰다. 카우치서핑에서 함께 피라미드를 보자고 제안한 미국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6시반에 출발했는데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젯밤 무서워하며 찾아온 동네가 밝을 때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혀 정비라고는 안되있는 맨 흙바닥에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낡은 아파트 건물들이 황량하게 서있는 모습에 이곳이 우범지역은 아닐까 싶어 어젯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멘붕상태였다. 그래도 친구가 생겼고 하룻밤 잘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며 피라미드를 향해 갔다. 친구의 집은 카이로 북쪽이고 남쪽의 피라미드를 가기 위해서는 카이로를 관통해서 2시간 반 가량 가야한다. 카이로에 가까이 가자 집이나 사람들이 잘 안보일 정도로 뿌옇게 보이는 것이 안개라기보다는 스모그가 아닐까 싶었다. 운전도 쉽지 않았던 것이 왕복 8차로의 도로 갓길에 사람들이 태연하게 걸어다니고, 차선이 없는 길도 많았으며 차선이 있어도 다들 별로 신경을 안쓰고 자기 가고싶은 대로 차선을 무시해 달리고 있었다. 카이로의 건물들은 누런 흙색으로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는데 매우 낡아서 지은지 30~40년은 되보였다. 이와중에 탄이는 "지은지 3천년된 아파트는 아니겠지 뭐."라며 농담을 한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저 멀리 피라미드의 실루엣이 동트는 여명 속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차를 가져온 경우에는 일단 표를 먼저 구입하고 동승자는 내려서 도보로 입장하고 운전자는 따로 주차권과 함께 본인표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피라미드를 처음 보는 탄은 많이 신난 모습이다. 사실 나는 28년 전에 이미 와본적이 있어 크게 오고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탄이 꼭 가보고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 당시 카이로 시내의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피라미드에 간다며 출발했는데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얼마 안가 피라미드에 금방 도착한 것이 무척 이상했었는데 이제 카이로시가 점점 커져서 아예 피라미드는 시내 번화가 안에 있게 되었다. 탄은 이런저런 포즈를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주차장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스모그에 덮여 뿌옇기는 했지만 지대가 높아 카이로가 잘 보였다. 우리는 약속시간인 9시를 맞추기 위해 6시에 일어나 2시간반 전에 출발했는데 미국부부인 타냐와 존은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조금 늦겠다고 왓앱으로 연락을 하더니 10시 3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와서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게 끝이었다. 뭐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우리도 그냥 웃으며 지금부터의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근데 오자마자 사전에 이야기가 없던 이집트여성 가이드를 소개하며 20달러를 줘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가 피라미드를 안내하며 유적에 대한 설명을 해줄거라고 했다. 우리랑 사귀고 함께 여행을 즐기려는 것 보다는 가이드비 나눠 낼 사람이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많이 찜찜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한시간 반만에 비로소 입구를 벗어나 피라미드 가까이 이동을 했는데 중간에 이 부부는 또 사라져버렸다. 늦게와서 입구며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느긋하게 찍고 한참 뒤에 합류했다. 가이드분이 우리에게 이 사람들 어디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겨우 다 모여서 드디어 가이드분이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상한 영어 발음을 탄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웬만한 이집트에 대한 것은 다큐멘터리며 책 등을 통해 많이 알고 있어서 그녀의 이야기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시간만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잠시 끊겼을 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당신께 사례를 하고 우리는 따로 다니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타냐가 말한 20달러를 줘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양심적인 가이드는 자기가 한 것이 없다며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약간의 사례를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오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런 일로 오늘 전체의 기분을 망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평생 다시오기 힘든 이집트 피라미드인데, 저 사람들 따라다니며 계속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결단을 내리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우리끼리 기분좋게 피라미드를 구경하며 즐기기로 했다. 제일 큰 푸쿠왕의 피라미드에는 돈을 추가로 더 내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들어가본적이 있는 나는 탄에게 "들어가봤자 안에 유물이라곤 다 가져가서 볼거 하나도 없고 무지 낮은 통로를 생고생하며 들어가야해."라고 얘기해주었더니 미련없이 포기한다. 두번째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있는 낮은 건물유적이며 길가에 쌓여있는 돌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게 보인다. 피라미드 공원에는 큰 피라미드가 3개, 스핑크스가 하나 있는데 조금 힘들긴 하지만 걸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도보가 어려운 사람들은 낙타나 마차를 타기도 했다. 날씨가 매우 맑고 겨울이라 낮에도 햇빛아래에서 걸을 만 한 기온이라 피라미드 사이를 산책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고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한참 걷다가 언덕위에 뭔가 현대적인 건물과 광장같은 것이 있어 궁금해서 가보았다. 피라미드와 잘 어울리는 멋진 석조건물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다. 많이 걸어서 피곤하던 차에 커피한잔 하며 쉬기 좋겠다 싶어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고 메뉴를 보자 가격이 예상보다 그리 비싸지 않아 우리는 아예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안내된 자리는 피라미드 3개가 한눈에 보이는 야외테라스였다. 날씨도 좋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 편안히 피라미드를 보며 이집트 음식을 먹다니 이거야말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최고의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주문한 이집트 정식은 빵을 주식으로 하고 콩과 감자, 계란등으로 간단하게 요리한 것들이었는데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해 먹을만 했다. 손님도 많지 않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종업원들도 모두 매우 친절해서 오전에 상했던 기분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듯 했다. 이곳에서의 식사와 피라미드를 앉아서 편히 구경한 기억은 평생 남을 것 같다. 식사 후에는 공원이 생각보다 많이 넓어 계속 걸어다닐 엄두가 안나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도로도 있고 군데군데 주차할 곳도 있어 차를 가져온 사람들은 공원 내부를 차로 타고 다니는 것을 파악했다. 피라미드를 실컷 구경했으니 이제 스핑크스를 찾아볼 차례. 조금 헤메다가 드디어 어떤 언덕을 내려가는 중 스핑크스 뒤통수를 발견했다. 스핑크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젯밤 마흐멧이 반드시 가보라고 추천해준 2017년 개관한 이집트국립문명박물관이다. 이곳은 나도 한번도 안가본 곳이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지하 주차장이 잘 되어있다. 이집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현대적인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검색대를 통과해서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조형물이며 조경이 너무너무 이집트스럽고 멋지게 잘 되어있는 박물관 광장이 나왔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기프트샵 앞의 파라오 상이 나를 유혹했지만 나올때 가기로하고 일단 전시를 구경하러 들어갔다. 내국인과 외국인 표값이 많이 차이가 난다. 외국인은 약 1만원 정도 했고 이집트사람들은 4분의 1가격이었다. 주차비도 함께 계산했다. 터널같은 복도를 지나 드디어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박물관에 들어가면 촬영을 못하게 하겠지 싶었는데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이야, 개꿀!"하며 마음껏 촬영을 했다. 매우 깨끗하고 훌륭한 전시장에는 내가 정신못차릴 정도로 아름답고 역사적인 고대 이집트 유물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무덤에서 나온 각종 인형, 장신구, 토기 등 하루종일 보라고 해도 질리지 않을 흥미진진한 물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열심히 구경했다. BC1000년경의 어떤 공주의 천 발다킨(제단이나 왕좌 위에 덮어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데 사용되는 독립형 캐노피)은 그 색과 질감이 크게 삭지 않고 남아있어 당시의 화려함에 감탄이 나왔고, 나무관, 석상, 부장품등에 섬세하게 조각되고 채색된 그림과 상형문자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문명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지하의 미이라관이었다. 인기 장소답게 줄을 서서 천천히 들어갔는데 어두운 전시실에 유리관에 누워있는 실제 파라오와 왕비들의 미이라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책으로 영상으로 들어온 유명한 몇천년전 이집트왕들의 미이라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한 한편,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최고의 기술로 미이라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지나왔는데 결국은 전세계 사람들의 구경거리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착잡했다. 카이로 관광을 마치고 다시 마흐멧네로 돌아왔다. 저녁에 친구와 함께 외출을 했다. 마흐멧의 핸드폰을 우리 렌트카에 블루투스로 연결해 그가 좋아하는 이집트 음악을 함께 들었다. 내가 영화에서 본 이집트 옷을 사고싶다고 말하자 마흐멧은 우리를 옷가게 있는 곳으로 데려가주었다. 몇군데를 가보았지만 내가 보았던 옷위에 걸칠만한 샤방샤방 얇은 천으로 된 아랍식 드레스는 찾을 수 없고 매우 두껍고 무거워보이는 긴 원피스만 보였다. 마흐멧에게 이야기하니 보통 아랍여자들은 절대 그런 샤방한 옷을 안입는단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판타지같은거라며 그런 것을 일반적으로 사기는 힘들거라고 했다. 옷구입은 포기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 마흐멧은 어디서 배웠는지 "환.영.하.다."라는 한국말을 우리에게 자꾸 한다. 스마트 폰 번역기를 활용한 듯 하다. 이집트 시골동네에서도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타진(작은 도기그릇에 고기, 야채, 소스등을 넣고 오븐에 구운 음식)과 마흐멧의 추천음식 몇가지를 시켰다. 현지친구가 있으면 식당에서 헤메지 않아 너무 좋다. 끈적끈적한 초록색 스프가 나왔는데 공중에서 길게 늘이며 섞는다. 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진다고 한다. 뭔가 메생이같기도 하고 좀 생소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꽤 입맛에 맞았다. 탄은 비둘기요리에 도전했다. 통째로 들고 망설임없이 중간을 '앙' 뜯어먹는 모습이 산적같다. 한입 뜯으니 속이 노란 밥알로 채워져있는 것이 보였다. 맛있게 잘 먹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차와 흘러내리는 듯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었다. 너무 달지않을까 걱정했지만 따뜻하고 찬 온도차와 크게 달지 않은 맛이 조화롭게 느껴져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희안한 담배같은 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우리가 궁금해하자 마흐멧은 주문을 했다. 바로 물담배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물담배가 좀 두렵기도 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랴 싶어 한모금 훅 들이켰는데 뭔가 희안한 향과 거부감이 들어 두번은 사양했다. 탄이도 별로 안맞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마흐멧 덕분에 현지체험을 제대로 잘한 즐거운 저녁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AcZAm4-qGqI?si=tWg9xvjqo3vg2O9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03 16:44:22[파이낸셜뉴스] 온가족이 즐기는 1등 배달메뉴인 치킨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교촌의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다. 조리부터 포장까지 교촌치킨의 전반적인 제조과정을 체험할 수 있어 평소 교촌치킨을 즐겨먹던 팬이라면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 이태원 교촌필방에서 진행된 이날 체험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기획돼 4살 딸과 함께 동행했다. 어린이 들과 소통하며 추억을 쌓고 교촌치킨에 대한 브랜드 친밀도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교촌필방의 출입구부터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좋았다. 보통의 출입문과 달리 출입구 옆에 걸린 커다란 붓을 당기면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출입문인지 모를 정도로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연출을 했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은 먼저 교촌필방 투어를 시작했다. 각각의 공간으로 이동할 때마다 출입문들이 벽처럼 되어있어 마치 '비밀의 방'을 찾아가는 컨셉트로 진행돼 아이들이 매우 즐거워했다. 본격적으로 치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기 위해 조리실로 향했다. 닭 숙성 작업, 교촌치킨 특유의 얇고 바삭한 튀김옷을 위한 두 번의 튀김 과정, 성형 작업 등 조리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치킨이 튀겨지는 과정을 눈으로 관람했다. 안전을 고려해 아이들은 조리대 뒤쪽에서 설명을 들었는데 모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각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겐 튀겨진 닭이 제공됐다. 교촌치킨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치킨 조각에 소스를 바르는 소스 붓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시간이었다. 치킨에 소스를 바를 때는 너무 많이 바를 경우 짤 수 있으니 골고루 바르는 것이 중요했는데 아이들은 모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각자의 치킨을 완성하기 위해 애썼다. 4살 아이도 충분히 붓으로 치킨에 소스를 바르는 것이 가능했는데 바르면 바로 먹어볼 수 있어 더욱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엄마, 내가 만든 치킨 먹어봐. 맛있어"라며 연신 맛보기를 권유했다. 소스를 다 바른 치킨은 교촌치킨 박스에 넣어 포장하는 작업까지 거쳤다. 각자 집에 갈 때 직접 만든 치킨을 들고 가며 "오늘 저녁은 내가 만든 치킨으로 먹자"며 종알거렸다. 이날 참여한 한 가족은 "늘 시켜 먹던 교촌치킨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브랜드 히스토리까지 알게 돼 흥미로웠다"면서 "직접 소스 도포 체험을 해보니 제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제품이었다"며 감탄했다. 한편, 교촌1991스쿨은 소비자가 직접 치킨의 조리, 포장 등 제조 과정 전반을 체험하며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당초 기존 본사 신규 임직원 및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하던 실무 교육이었지만 고객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2024-09-09 10:19:15[파이낸셜뉴스] 사파에서 맞는 첫 날 아침 메뉴는 쌀국수로 정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매일 아침 쌀국수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과거 인터뷰를 진행한 남준영 셰프는 서울 남영동에 베트남 쌀국수집 '남박'을 오픈한 것도 이런 베트남의 문화를 반영한 것 이라고 말했다. '남박'은 매일 아침 8시에 오픈해 오후 3시30분에 문을 닫는다. 사파 호텔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포 민(Pho MinH)이란 식당에 갔다. 구글에서 찾아본 리뷰에는 "한국 돼지국밥 '옥동식'보다 맛있다"거나 유튜브 후기에서도 "사파 1등 쌀국수 맛집"이라는 호평이 많았다. 5만동(2500원)에 가장 기본인 소고기 쌀국수를 시켰다. 잔뜩 기대를 하고 먹어서 그런가 약간 실망했다. 깔끔하고 담백한 쌀국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이 여겨졌다. 쌀국수라는 음식 자체가 보통 5~7점사이에 있다. 맛의 최고점과 최저점의 편차가 적어서 기대를 하고 가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아무 기대 없이 들어갔다 값도 싸고 맛있으면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음식도 그렇지만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기대를 하면 실망하게 되고 실망하면 화가 난다. 나는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어릴적부터 타인에게 기대를 하지 않도록 훈련해 왔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타인에게 실망할 일도 없게 된다. 지금처럼 감정이 매마르기 전인 20대 후반 30대 초반 무렵에는 "길거리에서 소리 높여 싸우는 커플이 가장 부럽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거리에서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둘만의 세계에서 화를 뿜어내는 관계란 '사전에 서로 간에 기대를 하고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콩카페에 들려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가져왔다. 오전 10시에 전날 호텔 프런트를 통해 예약한 기사가 오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도 기사는 오지 않았다. 전날 기사를 예약해준 여행사 관계자는 라인 메시지에 답이 없었다. 호텔 프론트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여행사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그제서야 일어난 모양인지 기사를 보내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20여분을 기다리자 한 택시 운전기사가 왔다. 여행사와 연결된 기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예약을 받으면 여행사가 알고 있는 기사에게 일을 맡기는 방식인듯 싶었다. 오전 10시부터 6시간 동안 차를 빌리는 가격으로 전날 120만동(6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여행의 시작부터 뭔가 틀어지나 싶어 살짝 화가 날뻔했다. 지상 2000m 글라스 브릿지 탐험 한동안 차를 몰아 글라스 브릿지에 도착했다. 글라스 브릿지로 가는 길은 올해 초에 갔던 치앙마이의 '먼쨈'과도 비슷했다. '안개의 도시'라는 별칭 답게 고지대로 올라가니 하얀 연기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베트남의 7~8월은 우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동할때는 한국에서 가져 온 접이식 우산을 항상 들고 다녔다. 글라스 브릿지 입구에서 작은 벤을 타고 언덕길을 올랐다. 벤에서 내려 엘레베이터를 타고 다시 글라스 브릿지에 가는 코스다. '롱머이 유리다리'라고 불리는 이 곳은 해발 2200에 위치한다. 한라산이 해발 1947m에 있으니 한라산 정상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셈이다. 무지개 계단이 보이는 초입에서 오른쪽길로 들어갔다.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유리다리를 지난다. 추적추적 이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껴 있어서 경치가 보이지는 않았다. 유리다리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100m쯤 되보이는 흔들 다리를 만날 수 있다. 일정 비용을 내면 안전 장비를 걸치고 흔들다리를 건널 수도 있다. 하지만 약간의 고소공포증과 다리가 후들거릴 것 같아 직접 건너지는 않았다. 이곳 저곳 둘러보고, 사진을 찍다 보니 2시간 정도가 후딱 지나갔다. 한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니 무지개 계단을 내려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론리트리, 실버폭포 둘러보기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선에 있는 '론리 트리'라는 사진 명소에 잠시 들렸다. 500원~1000원인가 입장료가 있었다. 입구에 들어가면 작은 카페 겸 가게가 있고 절벽 위에 수많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리잡고 있다. '론리트리'는 이름 그대로 덩그러니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론리 트리 밑에서 론리 맨 컨셉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어 다시 차를 타고 실버폭포로 향했다. 실버폭포에 도착할 즈음에는 빗줄기가 꽤 세져서 우산을 들고 올라야 했다. 실버폭포 입구 초입에 있는 금빛 용 동상을 보고 우산을 쓰고 산을 올랐다. 입장료가 있었는데 코스가 나름 길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폭포는 꽤나 웅장하고 장엄했다. 동물과 자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장 먼저 들렸던 글라스 브릿지보다 개인적으로 더 인상 깊은 장소였다. 실버 폭포와 인근에 있는 러브 폭포를 함께 둘러보는 원데이 여행 프로그램이 있는데 비용대비 별로인 듯 싶었다. 차라리 그랩을 통해 둘 중 한 곳만 보거나, 차를 대여하는 편이 나을 듯 싶었다. 다만 사파의 경우 하노이와 달리 그랩이나 택시 기사들이 미터기를 켜지 않고 가격 협상으로 훨씬 더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모아나 사파, 호박 삼계탕, 슈바인 학셀까지 실버 폭포를 보고 안개를 뚫고 차를 몰았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었었는데 기사 분이 오늘 일정을 마쳤으니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영어로 소통이 잘 안 돼 잠시 실랑이를 한 뒤에 전날 예약을 했던 여행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픽업에 늦은점과, 원래 오후 4시까지 였던 점을 이유로 한 곳 정도 더 둘러볼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합의를 보고 마지막 장소로 '마오나 사파'라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여러가지 조형물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팟이 많은 관광객 대상의 카페였다. 카페에 도착하고 나서 줄곳 비가 내렸기 때문에 우산을 쓰고 카페내 스팟 몇몇에서 사진을 찍었다. 거대한 여신의 동상과 백조, 돌로 만든 손 모양의 조형물, 힌두교 스타일의 석문까지 과거 여행지에서 한 번쯤 봤던 여러가지를 짬뽕해 가져온 듯 싶었다. 이후에는 호텔 근처에 있던 식당인 'Nhà hàng Ô Quý Hồ'란 곳에 들렸다. 1층은 카페 2~3층은 식당을 운영하는 관광객 대상의 식당 같았다. 거대한 호박 안에 검은 토종닭을 넣은 요리를 하나 시켜 먹었다. 별 기대 없이 시켰는데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호박의 속살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가 싱거운 카레 혹은 짭짜름한 호박 스프에 담궈진 토종닭 백숙을 먹는 듯한 맛이었다. 밥을 먹고는 한동안 사파 시내를 산책하고 카파 카페(KAFA cafe)란 곳에 들렸다. 잔 위로 수북하게 쌓아주는 산더미 스무디가 유명한 카페였다. 일행과 함께 코코넛 스무디와 망고 스무디를 하나씩 시켰다. 비가 내렸지만 날씨는 굉장히 후텁지근했다. 카페를 먹고 휴식을 취하며 다음날 일정인 파시판 산의 케이블카, 모노레일 및 입장권을 클룩 앱을 통해 예약했다. 1인 기준 약 6만원 정도였다. 호텔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기전까지 약간 휴식을 취했다. 저녁은 구글 검색을 통해 알아 본 '아니스 레스토랑(Anise Restaurant)'에서 먹었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으로 생일을 맞은 유럽인 테이블이 있었는데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고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을 받을 수 있었다. 식당은 구글 평점도 높았고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은 이곳의 슈바인학센(독일식 족발)이 괜찮다는 평을 남겼다. 생전 처음 먹어본 슈바인학센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나쁘지 않았다. 둘이 먹기에는 양이 꽤 많아서 많이 남았는데 호텔 근처의 길고양이가 생각나서 직원에게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카운터를 보는 여자 직원 분은 베트남어는 물론이고 영어, 한국말, 태국어까지 능숙했다. 소화도 시킬 겸 사파의 골목 이곳 저곳을 둘러 본 뒤에 다음날 이른 아침 일정을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08-20 18:47:40[파이낸셜뉴스] 일기를 쓰거나, 일상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라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거다.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때 '만약 이걸 하게 되면 오늘의 일기(블로그)에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조금 더 과감한 도전을 하는 것 말이다. 필자 역시 타국의 여행지를 떠돌며 방문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입장료를 요구 받았을 때 그랬다. '어차피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일기에도 쓸 수 있으니 한번 들어가 볼까'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는 단순히 해당 사건에 대한 추억을 저장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사유의 깊이를 더해준다. 또 해석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며 사후적으로 특정 사건과 기억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기도 한다. 더 나아가 '기록한다'는 행위는 (사후적으로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리스 신탁의 예언처럼 기록을 전제로, 한 사람의 행동에 과거 선언적 예언처럼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어렵게 말했는데 쉽게 풀자면 "오늘의 일기에 한 줄 더 쓰기 위해 깨어 있는 동안의 행동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이라 일기와 블로그 얘기를 꺼냈지만 요즘이라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무리해서 비싼 호텔에 묵거나, 오마카세를 먹는 사치를 부리는 마음과 비슷하다. 때때로 인스타의 사진 한 장을 위해 실제 삶이 인스타그램 속 아바타의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 말이다. 철학에서 말하는 '시뮬라크르(가상, 거지스,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에서 유래)'가 실제의 나를 잡아 먹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오로지 사진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실제의 삶과 동떨어진 일을 하거나, 사치를 부리는 것은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어렸을 때나 철이 들기 전,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서는 의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동남아시아의 국가지만 이전까지 태국, 베트남을 여러번 갔던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여행 후보지에 올랐던 적이 없었다. 특히 그 중에 발리는 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발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과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입에 주먹을 넣고 우는 장면(한 예능에서 '주먹 울음'을 패러디한 것이고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조인성이 주먹을 입에 넣고 우는 장면이 없다고 한다)이 됐다는 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7박 8일 발리를 여행하고 나서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라고 생각을 고쳐 먹게 됐다. 해양 레저, 정글 트레킹, 인스타 명소, 요가와 명상, 자연 탐험 등 동남아에 있는 도시 2~3곳의 장점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한 도시였다. 깨끗하지 않은 물과 베트남과 인도 저리가라 할 정도의 교통 체증은 짜증났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붓, 누사페니다, 그리고 꾸따 발리 총 7박의 일정 중 4박은 우붓, 1박은 누사페니다(근교 섬), 2박은 꾸따에 묵었다. 한국의 제주도나 태국의 푸켓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발리는 생각보다 광대하다. 제주도의 3배~4배 사이즈라고 한다. 그래서 발리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고 발리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의 후기도 무궁무진하다. 발리 여행을 하고 여행을 마친 현재까지도 몇 가지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다. 여행자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피부병에 걸린 개'다. 발리 시내 곳곳에는 들개와 집개의 중간쯤 되는 개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덥고 습한 날씨,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 탓에 많은 개들이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서열 싸움에 밀린 몇몇 수컷 개는 피부병이 걸린 피부에 물어 뜯긴 상처로 인해 딱지가 붙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서 대량의 진드기 퇴치제를 산 뒤 발리의 개들에게 뿌려주고 싶었다. '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지만 발리는 '신들의 나라'라는 별명에 걸 맞게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 혹은 박물관 같았다. 힌두교는 물론 민간 종교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로 지어진 화려한 건물, 동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주 작은 호텔에도 기도를 올리는 신단 같은 곳이 있었다. 스님에게 보시를 하는 태국 불교와 달리 발리에서는 미물인 개미에게도 먹을 것을 나눴다. 짜낭사리(야자수 잎으로 만든 작은 바구니에 담긴 꽃) 옆에는 개미를 위해 밥알을 두는 경우도 많았다. 발리의 사람들 역시 아침, 점심, 저녁 등 시간을 가리지 않고 기도를 드리는 장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발리는 태국, 베트남처럼 1년 내내 더운 곳이었다. 1년 내내 따뜻한 기후로 인해 1년에도 3번의 벼농사가 가능했다. 4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온 필자로서는 마치 발리 한 공간에 일년이라는 시간이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논에서는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한국의 봄 풍경이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벼가 가장 짙은 녹색을 뽐내는 한국의 여름이, 그 다음 곳에서는 추수를 기다리는 한국의 가을이 있었다. 신을 섬기고, 자연의 한 가운데 있는 발리였지만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상업화가 지나치게 진행된 점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정 관광지에 갈 때마다 입장료는 기본이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약 5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점은 별로였다. 동물 애호가인 필자로서는 발리의 자연에서 만난 다양한 동물 친구들은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친 원숭이들, 루왁 커피 매장에서 만난 사향고양이, 힌두 사원에서 본 수천, 수만 마리의 잉어와 물고기, 래프팅을 하는 동안 흐르는 급류에서 본 제비 같기도, 나비 같기도 한 작고 검은새 등 한국과는 다른 동물 여럿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몸이 고생하면 항공권 싸진다..왕복에 43만원 추천하진 않지만 직항을 포기하고 경유 항공권을 택하면 항공료가 많이 싸진다. 항공권은 '스카이스캐너' 검색 당시 직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왕복 티켓이 120만원이었다. 경유 티켓 중 가장 저렴한 편인 티켓을 골라 예약했다. 베트남 저가 항공사인 '비엣젯항공'사의 티켓으로 왕복 43만에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갈 때는 '인천→호찌민→발리', 올 때는 '발리→하노이→인천' 노선이었다. 수화물 무게가 7kg 제한이 있어 짐은 최대한 줄였다. 한국에 올 때도 기념품은 포기했다. 5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9시15분 인천을 출발, 다음날 00시30분에 호찌민 공항에 도착했다. 호찌민 공항에서 거의 밤을 새우고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다음날인 토요일 정오쯤 발리에 도착했다. 한국인은 발리에 입국할 때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사전에 온라인을 통해 돈을 내고 사전 발급도 가능하지만 현지에서 발급(Visa on Arrival) 받는 것도 가능하다. 절차가 복잡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비행기에 내려 순서대로 걷다 보니 눈에 보이는 창구 여러곳이 있었다. 비자 발급에는 35달러가 드는데 미리 준비해 둔 100달러를 건네자 남은 돈은 현지 화폐로 돌려 받을 수 있었다. 환전 환율도 시중 환전소와 비교해 크게 나쁘지는 않은 듯 했다. 이후 QR 코드가 찍힌 종이를 주는데 그게 비자 역할을 한다. 비자를 발급 받으면 전자 세관 신고서(ECD)를 작성해야 한다. 컴퓨터가 여러대 있는데 '한국어'로 설정하면 어렵지 않게 절차를 마칠 수 있다. 동행이 있을 경우 대표로 1명만 작성하면 된다고 한다. 3~4분이면 금방 할 수 있다. 비자와 세관 신고서 증명서를 내면 발리 입국 절차가 끝난다. 입국을 마치고는 눈에 보이는 통신사에서 현지 유심을 샀다. 2만원 정도면 한 달짜리 유심을 살 수 있다. 보통은 공항 근처 도시에 숙소를 잡지만 공항에서 한참 떨어진 '우붓'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그랩 자가용을 불러 우붓으로 향했다. 거리로는 40km지만 교통 체증이 심해 보통 2시간이 걸린다. 숙소는 우붓 시내 중심에 있는 '그레이 하우스 몽키 포레스트'에 잡았다. 우붓 대표 관광지인 '원숭이 숲'을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숙소였다. 짐을 풀고 발리에서의 첫끼는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다. '메구나 우붓(Meguna Obud)'이란 곳으로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나시고렝(볶음밥)과 면 요리 등을 시켰다. 구글 평점은 높았지만 메뉴 선택에 실패한 탓인지 음식은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밥을 먹고는 한동안 산책을 하다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갔다. '세니만 커피(Seniman Coffee)'란 곳으로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를 맛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커피 가격이 한국과 비슷했는데 개인적으로 커피 맛도, 추천을 받아 시킨 녹차 크레이프 디저트도 별로였다. 저녁은 '노스티모 그릭 그릴 우붓(Nostimo Greek Grill Ubud)'이라는 그리스 식당에서 해결했다.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가 한 접시에 나오는 플래터를 시켰는데 이날 갔던 식당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소스로 나온 그릭 요거트, 감자, 돼지고기 사태와 구이 등을 인도네시아 대표 맥주인 '빈땅'과 함께 가득 채워넣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서는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오토바이를 빌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국제 운전면허 교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엄밀하게 발리에서 운전을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대부분 관광객들이 발리에서 오토바이를 이동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심하고 먼지도 많기 때문에 반드시 헬멧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발리에서 생긴 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빈땅 #누사페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06-07 18:23:00[파이낸셜뉴스] #.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퇴근길, 김 모씨(54)는 가족과 함께 ‘치맥’을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매주 금요일마다 야식으로 간편하게 치킨을 먹는 것은 김 씨네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다. 이때 빠질 수 없는 게 시원한 맥주다. 특히 김 씨는 맥주를 좋아해서 퇴근 후 편의점을 들러 4개 묶음 캔맥주를 사는 것이 평소 습관일 정도였다. 그날도 집 앞 편의점에서 자주 마시던 캔맥주 4개를 바구니에 담던 김 씨. 갑자기 울리는 아내의 전화가 그를 멈추게 한다. 건강을 생각해서 오늘부터 치킨과 맥주를 먹지 말자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이었다. 최근 받은 건강검진에서 김 씨의 요산 수치가 이전보다 많이 높아진 것이 그 이유다. 자칫 통풍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진단이 기억난 김 씨는 ‘아차’ 싶어 부랴부랴 맥주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빈손으로 편의점을 나선 김 씨는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관리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진다. 최근 방송인 박명수 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통풍을 앓게 된 계기를 고백했다. 그는 “금요일 저녁에 밖에 잘 안 돌아다니는 대신 맥주 8캔을 사서 치킨, 오징어랑 같이 먹었다”며 “그렇게 10년을 먹었더니 통풍이 왔다. 맥주를 많이 마시고 운동을 안 하면 위험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야식 메뉴는 통풍을 유발하는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퓨린이 다량 함유된 소고기, 돼지고기 등과 같은 붉은 고기류와 곱창을 비롯한 육류 내장류에 맥주, 소주 등의 주류는 통풍 발생의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섭취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통풍이 체내 요산 수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통풍은 우리 몸의 노폐물 중 하나인 요산이 적절히 배출되지 못해 관절 부근에 쌓이고 주변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요산은 퓨린이라는 체내 물질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데, 보통 혈액 내에 있다 대·소변과 함께 배출된다. 하지만 퓨린이 다량 함유된 음식을 섭취할 때 체내에 축적돼 요산 수치가 과도하게 증가하고 통풍을 일으킬 수 있다. 주로 엄지발가락 관절에 발생하는 통풍은 발등, 발목 등에 발생하기도 하며 극심한 통증과 부기와 저림, 열감 등이 나타나 심할 경우 걷기조차 어렵게 된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고 해서 ‘통풍(痛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통풍 환자 수는 2018년 43만953명에서 2022년 50만9699명까지 늘며 꾸준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남성 통풍 환자(47만2748명)가 전체 환자의 93%에 이른다.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단백질과 알코올 섭취가 많을뿐더러 남성은 신장의 요산 제거 능력이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은 여성호르몬의 영향으로 폐경 이전까지 요산 제거 능력이 유지된다. 김 씨와 같은 시니어 남성이 통풍 발생에 더욱 주의해야 할 이유다. 통풍은 증상 발생 후 1~2주 지속되다가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특징이 있으나 이를 방치할 경우 만성 통증과 관절 변형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엄지발가락 부근이 붓고 통증이 느껴진다면 조속히 전문의를 찾아 치료에 나서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통풍 치료를 위해 한약 처방과 침·약침 치료, 뜸 치료를 중심으로 체내 요산 수치를 낮추는 데 초점을 둔다. 주요 치료법인 한약 처방은 혈액순환을 촉진해 요산의 원활한 배출을 돕는다. 이후 대추혈과 신주혈, 곡지혈 등의 혈자리에 침을 놓아 통증을 완화하고, 순수 한약재 성분을 정제한 약침 치료를 통해 관절 주위에 발생한 염증을 해소한다. 이와 함께 뜸 치료를 병행하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더 높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통풍 예방을 위해서는 요산 수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검진 시 체내 요산 수치를 확인하고 평소 식습관을 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금주는 기본이며 퓨린 함유량이 많은 육류 섭취를 줄이고 요산 배출을 돕는 채소와 수분 보충에 신경 쓰도록 하자. 이와 함께 규칙적인 운동으로 적정 체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통풍 예방에 도움이 된다. 연일 날씨가 더워지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지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음주는 통풍과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둔 시점에서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도록 자신의 건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 안산자생한방병원 박종훈 병원장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2024-06-01 14:00:28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에키바스투즈에서 10시에 체크아웃한 후 남쪽을 향해 부지런히 이동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아주 원없이 본다. 높은 산도 언덕도 없고 나무조차 보기 힘든 벌판이다. 10년전 미국여행때 이렇게 길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길을 달려보고 싶었는데 코스를 잘못잡아 그런 기회가 없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카자흐스탄에서 내가 꿈꾸던 버킷리스트를 이루게 되었다. 하늘에 구름 한점 없이,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봐도 새파란 하늘만 머리위에 반구처럼 씌워져있는 신기한 경험이다. 10미터 넘는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러시아와 달리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어려운 광야같은 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변 풍경이 점점 변해가는 것이 모래사막이 아닌 자갈사막이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비해 체감상 주유소가 드물게 있는 것 같다. 주유소가 있더라도 휘발유만 팔고 경유는 없는 곳이 많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낭패를 당하기 십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러시아에선 4분의 1정도 남았을때 주유를 했었는데 카자흐스탄에선 웬만하면 경유 파는 주유소를 만날때마다 주유를 했다. 도로를 달릴 땐 앞차를 잘 만나면 편하다. 카자흐스탄서 만난 마티즈는 우리의 '드로그'(친구)가 됐다. "같이 가요 드로그~" 우리가 스페인어권을 다닐때는 선행차량을 "아미고(스페인어로 친구)"라고 불렀었다. 이제 러시아어권 나라를 다니니 "드로그(러시아어로 친구)"로 명칭을 바꿨다. 선행차량은 무척 중요하다. 특히 가로등 없는 밤길을 갈때 매우 도움이 되고 낮에도 처음 가는 길이라면 선행차량의 움직임을 보고 노면상태와 속도조절 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는 하루에 두세번 이상은 길에서 경찰을 볼 수 있었는데 이미 한번 나쁜 기억이 있는지라 경찰만 나타나면 초긴장에 숨까지 죽이고 지나가곤 했는데 이때 드로그가 있다면 바짝 붙어서 우리차를 가리며 함께 지나가 경찰을 피하기 좋았다. 한참 가다가 앞서가는 빨간 마티즈 한대를 만났는데 한국차가 반갑기도 했고 우리가 따라갈만한 적당한 속도로 잘 가기에 잘됐다 싶어 드로그 삼아 뒤따라 가기로 했다. 이 마티즈가 참 신통한 것이 속도제한표시가 나오면 그 속도를 철저히 지키고 추월금지구간에선 절대 추월하지 않는 등 아주 노련한 운전자가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따라가는 동안 운전하기가 매우 수월해 고마웠다. "같이가요, 드로그~~" 해가 뉘엿뉘 질무렵 도로 옆 까페 앞 공터에 차를 세웠다. 해가 지니 서쪽 하늘이 통째로 무지갯빛이 돼버린다. 구름 한점 없는 석양을 한참 감상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하필 길디 긴 냉동트럭이 우리 앞에 차를 세우고 자는 바람에 트럭엔진소리에 밤새 잠을 설쳤다. 잠을 푹 못자 힘들어 짜증이 좀 났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저 운전수는 매일 어찌 잠을 잘까 싶어 마음을 곱게 쓰기로 했다. 아침이 되니 이번엔 동쪽에서 찬란한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눈닿는 사방에 아~무것도 없기에 같은 곳에서 서쪽의 일몰을 보고 잠들고, 다음날은 동쪽의 일출을 볼 수 있다. 다시 길을 나선다. 해는 더 따갑고 주변 풍경은 더 황량하다. 생명이 스러져가는 풍경에 질려 기운이 떨어져갈때쯤 발하슈 호수 북쪽의 발하시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발하시에 단 하나 있는 중국식당을 인터넷에서 찾아냈다. 호텔의 지하라고해서 호텔에 들어가서 헤매다가 말도 안통하는 직원분의 친절한 안내로 옆으로 돌아 지하로 내려가는 식당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얼큰한 짬뽕과 바삭한 탕수육을 꿈꾸며 메뉴판을 번역기로 열심히 찾아봤지만 그런건 없다. 그나마 알겠는 볶음고기국수와 으깬감자, 상하이 스프라는 것을 주문해보았다. 잠시후 음식들과 함께 시키지 않은 빵도 함께 나왔는데 먹을까말까, 추가로 돈을 내야하는걸까 의심하다가 탄이 "내면 또 얼마나 더 내겠냐"며 그냥 먹자고 한다. 듣고보니 맞는 소리여서 "그래, 그러자" 하고 막 먹었다. 중국음식이라기엔 뭔가 태국, 우즈벡 등등이 섞인 퓨전스러운 여태껏 한번도 못먹어본 맛이었지만 한끼 든든하게 식사하고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길 떠날 힘이 생긴다. 발하시의 시내는 별다른 볼거리는 크게 없었지만 조각상이 있는 공원에서 소화도 할겸 산책을 했다. 사실 어제, 오늘 계속해서 남쪽으로 오면서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든 사막의 황량한 풍경이 지겨워져서 지도에서 남쪽의 커다란 발하슈 호수가 있는걸 보고 그래도 호수 근처는 푸르르고 나무도 많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호수 근처의 도시도 계속 쭈욱~황량하다. 도시를 나와 2시간 이상을 달려도 쉼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쉬려고 차를 잠시 세우고 있어도 땡볕아래라서 쉬는게 쉬는게 아니었다. 호숫가는 조금 나으려나 싶어 작은길로 들어가 호수로 갔다. 민트색의 잔잔한 물결이 이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하지만 물가에는 정체 모를 거품이 떠있어서 조금 꺼림직해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않았다.. 나중에 알게됐는데 이곳은 민물이 아닌, 염분이 많은 호수라고 한다. 동네 아이들은 튜브를 띄우고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호숫가에도 그늘은 없었지만 우리는 호수를 바라보며 허리도 펴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동했다. 또 다른 드로그를 따라가며 열심히 경찰을 피한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들이 하이빔을 켜며 경찰이 있다는걸 알려준다. 우리나라도 80~90년대에 교통경찰들이 단속을 하며 돈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서로 경고해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카자흐스탄의 몇몇 도시에서 카우치요청을 해보았지만 답도 없고 호스트도 별로 많지 않아 찾기가 힘들었다. 동남쪽에 소련시절 수도였던 알마티라는 큰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굳이 대도시를 가고 싶지도 않았고 카자흐스탄의 메마른 사막풍경에 지쳐서 이 나라는 그냥 빠르게 지나가기로 했다. 첫인상이 안좋았던 것도 큰 이유중 하나였다. 오늘도 아침 8시부터 저녁 7~8시까지 거의 12시간동안 운전한 셈이었지만 러시아때랑은 달리 노면 상태가 꽤 좋은 길도 많았고 2시간마다 잘 쉬어서 피곤하긴 했지만 버틸만했다. 7시가 넘고 발하슈 호수가 끝나는 지점이 다가오자 우리는 이왕이면 호숫가에서 차박을 하자고 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호수근처로 들어가는데 길이 울퉁불퉁 난리도 아니다. 깊이 패여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어 몇번을 차가 통과할 수 있을지 내려서 살펴보고 와야했다. 호수옆 작은 마을을 발견하고 여기가 좋겠다고 세우려다가 창밖에 그 주위를 가득채운 작은 날벌레떼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후퇴해야했다. 벌레를 피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결국 호수뷰는 포기하고 그냥 사막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기로 했다. 찻길에서도 한참 떨어져있는 곳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외진 곳이다. 평소에는 다른 트럭들이라도 있는 곳을 선호하긴 했지만 여긴 외져도 너무 심하게 외져서 누가 와서 시비 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저녁을 대충 먹고 잘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하늘을 보고 놀라서 한동안 입을 딱벌리고 쳐다보았다. "우와, 저것 좀 봐봐!" 달도 없는 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들이 촤르르르~ 탄이는 "장시간 운전에 피곤은 하지만 이건 참을 수 없지." 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아주 어릴적 시골에서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 차 앞자리에 거꾸로 누워서 한국에선 더이상 볼 수 없는 은하수며 별똥별들을 마음껏 감상했다. 주변에 빛이라곤 전혀 없는 이곳에 차를 세우게된 건 정말 '선물같은 우연'이었다. 트럭 지나가는 소리도 벌레 우는 소리하나 들리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별들을 지붕 삼아 푹 잘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XPBmxg3fgjY?si=gDOWze5v9IyhhmL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5-29 10:05:00눈을 떴을 때 주위가 깜깜했다. 침대에 누운 채 앞으로 펼쳐질 분주한 하루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조명 스위치를 탁 하고 켰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화를 확인해 보았다. 와이파이도, 데이터도 먹통이었다. 들쭉날쭉한 휴대폰 서비스로는 단전 알림이나 휴교를 알리는 이메일이 왔다는 걸 알 길이 없었다. 스웨터를 움켜쥐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손전등과 성냥을 찾아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커피 내릴 물을 끓였다. 눈이 내린 탓에 창이 흐릿해져 일출이 잘 보이지 않았다. 쌓인 눈이 7번 도로를 덮쳤다. 나의 업무 회의와 마감은 물론 아들들의 수업과 시험, 남편의 계획도 미뤄졌다. '하나님, 왜 하필 오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감사하게도 장작 난로는 아직 건재했다. 심호흡하며 생각했다. '필요한 건 다 가졌다고 생각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강아지를 꼭 끌어안았지만 집 안이 조용했다. 남편과 아들들이 한 명씩 아래층으로 내려와서는 악화된 기상 상황을 불평했다. 빛이 들어오도록 커튼을 열고 식탁에 모여서 시리얼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남편은 솔리테어(1인용 카드 게임)를 했다. 곧이어 아들들이 아빠와 함께 카드로 집짓기 게임을 했다. 가까스로 3층까지 올렸지만, 고양이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왔다가 쓰러뜨려 버렸다. 우리는 스크래블(단어를 짜맞추는 보드게임)을 한 판 하고, 눈 오는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심 메뉴를 먹었다. 치즈를 넣어서 구운 샌드위치와 토마토 수프였다. 우리는 집 뒤편 숲을 한참 동안 산책했다. 개울을 따라 쌓인 눈 속을 터벅터벅 걸었다. 사슴이 남긴 흔적을 찾고 큼지막한 솜털처럼 내리는 눈을 맞으며 놀았다. 돌아왔을 땐 집 안의 모든 시계가 깜박이고 있었다. 모든 게 평소처럼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저녁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평소보다 훨씬 좋았다. 정전 덕분에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시작된 하루는 핫초코와 전력 복구로 마무리됐다. 다 같이 보내는 하루라는 예상치 못한 선물로 재충전한 날이었다. Power RestoredI woke to darkness and lay in bed going over the busy day ahead of me. Finally I got up and flicked on the light switch-nothing happened. I checked my phone. No Wi-Fi, no data. With our spotty cell service, there was no way of knowing if we had received outage alerts or school cancellation emails. I grabbed a sweater and went downstairs, found a flashlight and a match to light the gas stove, then boiled water to brew coffee. Out the window, the falling snow obscured the sunrise. Snowdrifts covered the road.7 My work meetings and deadlines, my sons' classes and tests, my husband's plans-everything would have to wait. God, why did this happen today of all days-I asked. Thankfully, the woodstove was still going strong. I took a deep breath and thought, I suppose we have everything we need. The house was quiet as I sipped my coffee and cuddled our dog. One by one, my husband and sons came downstairs and groaned at the turn the day had taken. I opened the curtains to let in light. We gathered at the table and had cereal. After breakfast, my husband played a game of solitaire. Then my sons joined him in building a house of cards that reached three levels…until our cat jumped up to investigate and knocked it down. We played a round of Scrabble and had my favorite snow day lunch: grilled cheese and tomato soup. We took a long walk in the woods behind our house, trudging through the drifts along the stream. We spotted deer tracks and played in the snow that was coming down in big fluffy flakes. When we returned, all the clocks in the house were blinking. I started to make dinner, happy to have things back to normal-even better than normal. A day that began without electricity, cut off from the rest of the world, ended with hot chocolate and power restored. Recharged by the unexpected gift of a day together.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4-02-13 18:4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