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인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폭증으로 의료장비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면서 외교부가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산소발생기를 현지로 조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27일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한인회 등과 협의해서 한국으로부터 긴급 조달하는 방안을 현재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산소발생기를 ‘외교행낭’을 통해 보내는 방식, 현지 구매를 돕는 방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사조력을 한다는 계획이다. 외교행낭이란 외교상 서류나 공공의 사용을 위한 물품 등을 수송하는 데 사용하는 가방을 일컫는다. 인도의 일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이날 약 32만명이란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우리 교민들의 수는 약 1만 명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날 기준 우리 교민 코로나19 확진자는 총 114명으로 아직 37명은 치료 중에 있다. 인도 내 의료시스템은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50대 한 교민은 산소호흡기를 갖춘 중환자실(ICU)를 구하지 못해 병상이 악화돼 사망했다. 현지 대사관과 한인회는 산소호흡기를 구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최 대변인은 “최근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인도에 대해서 방역, 보건물품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며 “우선적으로 인도 측과 산소발생기, 진단키트 등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구체 물품 지원과 관련해 즉시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기자
2021-04-27 16:21:28[파이낸셜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내 리설주 여사가 1년 반 만에 공개 행보에 나서 눈길을 끈다. 26일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4일 열린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리 여사가 김 위원장 및 딸 주애와 함께 있는 모습이 여러 구도로 담겼으며, 눈에 잘 띄는 새하얀 투피스 정장을 입은 딸과 달리 비교적 캐주얼한 바지 정장을 입고 있다. 특히 리 여사가 이탈리아 '구찌' 제품으로 추정되는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해당 제품은 구찌 공식 온라인몰에서 300만원 안팎에 팔리는 제품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일가가 고가품을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2023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 가방을 든 모습이 포착됐고, 주애도 같은 해 '화성-17형' 시험발사 참관 당시 디올 외투를 입은 바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1718호에 따라 북한으로의 사치품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교행낭 등을 통해 사치품을 들여와 권력층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리 여사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24년 1월 1일 신년경축대공연 관람 이후로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리 여사 대신 딸 주애를 다양한 활동에 데리고 다니며 부각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5-06-26 11:09:57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이디오피아의집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황실 커피 생두를 외교 행낭으로 보내 줘 한국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을 열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녁 무렵 들어간 카페가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처음 커피를 맛본 곳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그 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와 함께해 온 지 140년에 이르는 커피의 역사를 찾아 궤를 맞췄고, 북 적이던 탄광촌 고향 다방을 오가던 사람들과 커피 이야기를 바탕으로 '박물관에서 커피 한잔'이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커피 관련 자료를 분류해 메타데이터를 기술하면서 한국인이 즐기는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이 조화롭게 얽혀 있는 천변만화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커피를 두고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마시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는 '알고 마시는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맛의 커피는 언제나 친밀감의 표시였다. 한국 전쟁 시기 피란지 부산에서 달걀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가 생겨나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침밥 먹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 다방에 몰려들면서 생겨난 독특한 '아점' 메뉴였다. 휴전 후 가난했던 시절, "커피나 한잔할까요?"는 누구나 스스럼없이 하는 인사말이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커피도 한잔하며 얘기를 나누자는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정을 나누는 데 커피는 더없이 좋은 매개체였다. 1960년대를 지나며 전기밥솥이 가마솥을 대신하면서 누룽지가 점점 사라졌다. 밥을 먹고 입가심으로 마시던 숭늉이 사라질 무렵 커피가 일상이 되는 세상이 됐다. 믹스커피가 나오고 커피 자판기가 대세가 되면서 입가심으로 마시던 숭늉 후식이 자연스레 커피로 넘어갔다. 숭늉 맛이나 커피 맛이나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898년 유길준이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서양 사람들이 차와 커피를 우리네 숭늉 마시듯 한다"고 했는데, 60여 년이 지나 커피를 숭늉 마시듯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한국인은 밥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전국의 카페 수가 10만 개를 돌파했으며, 우리만의 독특한 커피 문화를 만들어 낸 커피 공화국이 됐다. 책의 제목처럼 커피는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가 됐다. 19세기 후반 천주교 신부와 선교사, 외교관, 상인을 통해 한국에 처음 들어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미군정과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일상이 됐고 역사의 일 부가 된 커피. 이제는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다독이고, 미래를 잇는 커피를 친구 삼아 또 다른 역사의 일부를 함께 써내려 가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고종의 커피와 일제 강점기 이후 문인들의 커피에서부터 인스턴트커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140년 커피의 사회사를 담으려고 했다. 온통 커피 이야기뿐인 책을 읽다 보면 커피 한잔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이 책이 역사가 깃든 커피를 음미하며 잔향과 '감칠맛', '매끄러운 여운'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
2025-03-06 18:13:50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개발도상국 중 70여년 만에 인구 2000만명 이상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최빈국에서 출발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경제발전을 이룩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그런 나라를 건국한 대통령이 쫓기듯 망명해버렸다는 역사를 버젓이 기록하고 있는 나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승만이 거주했던 이화장에는 모든 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망명객의 텅 빈 집이 아닌 것이다. 그는 망명 간 적이 없었다. 다만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오해는 매우 많지만 가장 큰 오해는 그가 망명했다는 주장이다. 장기집권을 해온 자유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창당한 채 권력이양 경험도 없었다. 당시 우리 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각기 선출함으로써 서로 정당이 다를 수 있었으며, 대통령 유고 시 권력은 부통령에게 이양되도록 해 자칫 대선을 치르지도 않은 채 권력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었다. 특히 1960년 3·15선거에서는 이승만의 경쟁자인 조병옥 대통령 후보가 신병 치료차 도미했다가 의료사고로 사망하게 됐다. 이로써 자유당은 단독후보가 되어 당선이 기정사실화된 이승만의 4대 대통령 선거에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였다.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44.03%)와 민주당의 장면 후보(46.43%)의 경쟁은 이미 1956년에도 있었지만 이기붕 후보의 경쟁력은 약했다. 선거에서 민주당이 부통령 선거를 이길 경우 84세로 이미 고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임기 내에 유고가 발생하면 권력은 자연히 민주당으로 이동하게 된다. 1957년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노쇠현상을 보이고 있었고 치매 초기 증상도 겪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자유당은 조직적으로 관권을 동원해 가며 부통령 선거에 개입하게 됐다. 그 결과 부통령 선거의 결과는 이기붕 79.19%, 장면 17.51%였다. 유권자들은 수긍하지 못했다. 개표소에서 유권자보다 많은 기표용지가 발견돼 유권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특히 마산에서는 1만여명이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유혈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무차별로 최루탄과 실탄을 발포하는 중에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군이 실종됐다. 그의 시신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인 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 시위는 삽시간에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를 반공청년단이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4월 19일 오전부터 3만여명의 대학생과 중고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4·19혁명이었다. 총포 소리가 경무대에까지 들리자 대통령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각하의 당선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는 겁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비극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 때는 경무대 발포 이후의 일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각 총사퇴(4월 21일)가 있고, 허정 외무장관이 과도정부 수반(4월 24일)이 되었다. 그사이 4월 23일 대통령은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부상 학생을 찾아 손을 어루만지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장하다…장하다…젊은이들이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다. 어떻게 백성을 죽일 수가 있어? 내가 그만두면 사람들이 더 안 다치겠지…." 이승만이야말로 전제정치의 불의를 보고 일어나 자유를 향해 평생을 달려온 투사였다. 60여년 뒤 자신이 세운 나라의 청년들이 자신을 향해 불의를 외치며 달려들고 있을 때 이승만은 "장하다"며 격려했다. 이승만은 주변 여러 인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퇴성명서를 작성했다. "국민이 원하니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 3·15 선거를 다시 하겠다. 이기붕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하고자 공산군이 호시탐탐 기다리는 것을 명심하라." 4월 26일 이승만은 12년간 머물렀던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이화장까지 승용차로 이동했다. 이승만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4·19혁명은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호헌혁명이었다. 이화장 가는 길의 시민들은 그런 이승만과 이미 화해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노후에 편안하시라" "리박사 하야-만수무강"이라는 벽보를 내걸었다. 이화장 담장 너머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승만은 "놀러들 오시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과 반정부 지식인들은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이승만이 머지않아 망명을 떠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승만과 함께 이화장으로 돌아간 프란체스카 여사는 "일요일에는 정동교회에 가서 교우들과 예배를 봤다. 대통령 건강을 위해 하와이로 가서 몇 주일 쉬고 오는 게 좋지 않으냐는 측근의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것이 하와이로 가게 된 계기였다. 그녀는 "우리는 2주일 내지 한 달 정도 하와이를 다녀올 수 있는 짐을 챙겼다"고 자서전 '대통령의 건강'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5월 중순경 프란체스카 여사가 하와이 출국을 위한 비자 문제로 주한 미대사관과 협의가 마무리되자 이승만의 제자이기도 했던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은 하와이의 오중정 총영사에게 외교행낭 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 박사님 부부가 3주가량 요양하실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지였다. 이승만의 제자 윌버트 최, 최백렬, 그리고 오중정 총영사가 모여 초청장을 보내고 조경사업을 하던 윌버트 최의 별장으로 모셔서 임시로 지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5월 28일 저녁 동아일보는 다음 날인 29일자 신문을 발행하면서 "이박사 부처 해외망명설"이란 제하의 기사를 1면에 크게 내걸었다. 가판에서 많이 팔릴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경향신문 윤양중 기자는 새벽에 이화장에 가면 큰 기사를 건질 수 있을 거라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달려갔다. 정치 담당 기자가 아니어서 동아일보 기사를 참고했다. 망명할 것이란 기사였다. 윤양중 기자가 사진기자와 함께 신문사 지프를 타고 이화장 밖에서 잠복대기하던 중인 오전 7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는 보름이나 길어야 한 달 정도 다녀올 짐을 챙긴 채 마당으로 나섰다. 대통령의 옷을 담은 트렁크, 여사의 옷가지와 소품을 담은 트렁크, 점심과 약품 상자가 든 가방, 그리고 평소에 사용하던 타이프라이터가 전부였다. 마당엔 경호관들과 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대통령은 "늦어도 한 달 후에 돌아올 테니 집을 잘 봐 줘"라고 부탁했다. 대통령을 태운 검은 세단이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김포공항으로 달려갈 때 경향신문 기자를 태운 지프만이 뒤를 따라갔다. 공항에는 허정 수반과 이수영 외무차관이 나와 이승만을 배웅했다. 이승만은 허정에게 "나, 하와이에서 잠시 쉬고 아이크가 오기 전에 돌아오겠소"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두고 한 말이었다. 허정은 "염려 말고 푹 쉬고 오십시오"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시 비행기는 하와이의 교민들이 비용을 모아서 자유중국 민항기를 전세 낸 것으로, 대통령이 도착했을 때 승무원들은 공항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다. 출발이 지연되는 사이, 윤양중 기자와 사진기자는 비행기에 올라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날 오후 경향신문은 호외를 뿌렸다. 저녁의 경향신문 석간은 4면 중 3면 전체를 망명 특집기사로 다뤘다. '이승만 부처 돌연 하와이로 망명' '주인 잃은 이화장, 싸늘하고 빈 무덤 같아' '책상 위엔 펼쳐놓은 성경 한 권만' '저 개 좀 봐 저것만 남았군' '온돌방에는 파리채만 뒹굴어'. 이중 기내에서의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당시 일간지 85개, 주간지 376개, 월간지 200개로 언론의 자유가 구가되던 시대였다.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윤양중 기자의 기사를 따라 쓰며 이승만 망명을 보도했다. 1896년 협성회회보를 시작으로 최초의 주간 신문사를 창간했고 1898년 4월 최초의 민간 일간지 매일신문을 창간·운영한 언론의 선구자 이승만이었다. 그로부터 60년 뒤 자신의 후배 기자들에 의해 이승만은 필화를 겪게 됐다. 그리고 역사가 돼 버렸다. 이승만은 이역만리 하와이에서 90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5년2개월간을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고국을 그리다 눈을 감았다. 자신이 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지, 사람들이 왜 자신을 망명객이라 부르는지 잘 모른 채로. 이동욱 전 KBS 이사 ■ 이동욱 전 KBS 이사 △1959년생 △부산 △서강대 물리학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석사) △월간조선 기자 △한국갤럽 전문위원 △KBS 이사 △저서 '우리의 건국대통령은 이렇게 죽어갔다' 외
2025-01-01 19:12:03"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 매일 생각해요.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다섯살 때 실종돼 가족과 헤어졌던 박동수씨(45)는 지난 40년간 찾아 헤맸던 가족을 최근 화상통화로 만났다. 박씨는 1984년 어머니를 찾겠다며 경남 김해의 친척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박씨가 40년간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 이애연씨(83)는 화면 속 아들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봤다. 가족들이 박씨를 찾을 수 없었던 건 1985년 박씨가 미국으로 입양됐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가족들을 찾기 위해 대학생 시절인 지난 2001년부터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뿌리를 찾기 위한 방문이었지만 늘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던 박씨의 상황은 대구 달서구 소재 계명대 어학당을 다녔던 지난 2012년 경찰서에서 유전자 등록을 하면서 달라졌다. 등록 당시 일치하는 유전자 등록 정보가 없었지만 친형인 박진수씨가 지난 2021년 잃어버린 동생들을 찾겠다며 실종신고를 하게 되면서 헤어진 동생 박씨와 연이 닫게 됐다. 이처럼 해외로 떠난 입양인은 정부의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 덕분에 가족을 찾기에 용기를 내고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유전자 검사 제도를 통해 잃어버린 가족 찾기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는 한인입양인이 입양정보공개 청구, 재외공관 유전자 채취 등의 과정을 거쳐 채취된 유전자 검체를 외교행낭으로 경찰청에 보내 실종자 가족 유전자 정보와 대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관련 제도를 확대 운영할 예정이며 상봉 이후 행정 등 사후관리 지원 사업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아동권리보장원과 경찰청, 외교부는 지난 2020년부터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박씨의 사례처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가족을 찾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4세에 가족과 헤어지고 3년 뒤 입양된 김장미씨(58)는 성인이 되고 나서 30년 동안 가족을 찾았다고 한다. 김씨는 세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정보가 부족해 가족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김씨는 지난 7일 어머니인 김명임씨(80)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김명임씨가 지난 2017년 유전자를 등록한 덕에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들은 광주 남구 충현원에서 54년만에 마주했다고 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경찰청과 함께 '실종아동 등 사후관리 지원 사업'을 통해 가족들의 상봉 이후 행정절차, 비용 및 심리상담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 입양인 뿌리 찾기를 위한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4-08-19 18:13:03[파이낸셜뉴스]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 매일 생각해요.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다섯살 때 실종돼 가족과 헤어졌던 박동수씨(45)는 지난 40년간 찾아 헤맸던 가족을 최근 화상통화로 만났다. 박씨는 1984년 어머니를 찾겠다며 경남 김해의 친척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박씨가 40년간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 이애연씨(83)는 화면 속 아들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봤다. 가족들이 박씨를 찾을 수 없었던 건 1985년 박씨가 미국으로 입양됐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가족들을 찾기 위해 대학생 시절인 지난 2001년부터 여러 차례 한국에 방문했다. 뿌리를 찾기 위한 방문이었지만 늘 빈속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던 박씨의 상황은 대구 달서구 소재 계명대 어학당을 다녔던 지난 2012년 경찰서에서 유전자 등록을 하면서 달라졌다. 등록 당시 일치하는 유전자 등록 정보가 없었지만 친형인 박진수씨가 지난 2021년 잃어버린 동생들을 찾겠다며 실종 신고를 하게 되면서 헤어진 동생 박씨와 연이 닫게 됐다. 등록 당시 어머니의 유전자를 채취해 등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해외로 떠난 입양인은 정부의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 덕분에 가족을 찾기에 용기를 내고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유전자 검사 제도를 통해 잃어버린 가족 찾기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는 한인입양인이 입양정보공개 청구, 재외공관 유전자 채취 등의 과정을 거쳐 채취된 유전자 검체를 외교행낭으로 경찰청에 보내 실종자 가족 유전자 정보와 대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관련 제도를 확대 운영할 예정이며 상봉 이후 행정 등 사후관리 지원 사업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아동권리보장원과 경찰청, 외교부는 지난 2020년부터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박씨의 사례처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가족을 찾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4살에 가족과 헤어지고 3년 뒤 입양된 김장미씨(58)의 경우 성인이 되고 나서 30년 동안 가족을 찾았다고 한다. 김씨는 세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정보가 부족해 가족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김씨는 지난 7일 어머니인 김명임씨(80)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김명임씨가 지난 2017년 유전자를 등록한 덕에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들은 광주 남구 충현원에서 54년만에 마주했다고 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경찰청과 함께 '실종아동 등 사후관리 지원 사업'을 통해 가족들의 상봉 이후 행정절차, 비용 및 심리상담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 입양인 뿌리 찾기를 위한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입양인의 뿌리 찾기를 위해 과거 입양 정보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지속하는 등 관리 체계 구축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전후 60여년간 해외 14개국으로 입양된 아동은 약 17만명에 이른다. 이들 중 유기 등으로 친부모 정보가 남아있지 않은 '무연고 아동'은 약 3만명으로 추정된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4-08-19 13:14:01[파이낸셜뉴스] 대통령실은 12일 더불어민주당이 이종섭 주호주대사에 대한 특별검사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비판했다. 민주당이 주도해 출범시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 대사의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수사를 맡고 있음에도 특검을 남발한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사 특검 추진에 대해 “공수처라는 게 민주당에서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며 출범시킨 건데, 이제는 그 공수처를 믿지 못해 특검을 하자는 건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경찰이든 검찰이든 수사 결과에서 민주당 본인들이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고 해서 번번이 특검을 남발하는 건 소모적이고 낭비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 대사는 공수처가 내린 출국금지가 풀린 지 이틀 만인 10일 호주 캔버라로 출국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신임장을 수여받고 전임 대사가 먼저 귀국하는 등의 관례를 깨고 서둘러 호주로 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해외도피'라 규정하며 특검과 조태열 외교부·박성재 법무부 장관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수처가 이 대사에 대한 수사를 지난해 9월에 들어갔고 3월이 돼서 이 대사가 (7일) 4시간 조사를 받을 때까지 그 사이에 한 번도 소환하거나 조사를 받으라는 이야기가 없었다”며 “출국금지만 여러 번 연장한 것이라, 야당에서 수사방해를 위해 출국했다고 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대사는 캔버라에 도착해 주호주대사로 부임한 상태다. 신임장은 외교부가 조만간 외교행낭을 통해 송부할 예정이고, 윤 대통령의 신임장 수여식은 내달 열릴 것으로 보이는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키 위해 이 대사가 귀국했을 때 이뤄질 전망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통상 대사가 현지로 갈 때 분실 우려가 있어 원래 원본을 가져가지 않고 전문으로 사본을 보내 부임 후 출력해 쓴다”며 “주재국 정부인사를 만날 때 그곳의 절차에 따라 출력한 사본을 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피 논란에도 이 대사가 서둘러 출국한 데 대해선 이 당국자는 “김완중 전임 대사는 지난해 말 정년이 도래해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24억달러 규모 장갑차 수출계약이 체결돼 관련업무 종료 후에 후임자 임명 작업을 진행한 것”이라며 “(호주는) 인도태평양 전략상 매우 중요한 안보 파트너이고 이런 측면을 고려해 국방장관 출신의 중량감 있는 인물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2024-03-12 17:11:48[파이낸셜뉴스] 대통령실은 11일 이종섭 주호주대사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소환하면 귀국키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공수처의 해병대 채상병 의혹 수사에 차질이 빚어질 일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사는 공수처에서 소환한다거나 수사에 필요하니 와야겠다고 하면 언제든 오겠다고 약속하고 나간 것으로 안다"며 "(따라서) 수사를 방해한다거나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건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대사는 공수처가 내린 출국금지가 풀린 지 이틀 만인 전날 호주 캔버라로 출국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신임장을 수여받고 전임 대사가 먼저 귀국하는 등 관례를 깨고 서둘러 호주로 향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해외도피'라 규정하며 맹비난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출국금지 기간 동안 공수처는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는데, 언제 조사할 줄 알고 고발됐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못하게 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짚었다. 대통령 신임장에 대해선 외교부가 공관장들이 서울에 모이는 재외공관장회의를 계기로 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사가 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하면 수여식을 연다는 것이다. 재외공관장회의는 내달 열릴 공산이 크다. 향후 신임장 수여 계획과 별개로 외교부는 임명된 공관장 수가 적으면 수여식을 미뤄두고 출국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부임하는 공관장이 소수이면 부임 후에 외교행낭을 통해 별도로 (신임장을) 송부해 주재국에 제정한다"며 "이후 다수의 신임 대사가 국내에 모이는 자리에서 세리머니 차원의 신임장 수여식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또 국방부 장관 출신인 이 대사를 출국금지 논란에도 서둘러 부임시킨 이유에 대해 이 당국자는 "김완중 전임 대사는 지난해 말 정년이 도래해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24억달러 규모 장갑차 수출계약이 체결돼 관련업무 종료 후에 후임자 임명 작업을 진행한 것"이라며 "(호주는) 인도태평양 전략상 매우 중요한 안보 파트너이고 이런 측면을 고려해 국방장관 출신의 중량감 있는 인물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2024-03-11 17:17:09[파이낸셜뉴스] 음주가 금지되는 이슬람 국가로 순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류 매장이 들어선다. 주류 매장은 수도 리야드에 만들어진다. 다만 술을 살 수 있는 이들은 무슬림이 아닌 외교관들로 제한된다. 24일(이하 현지시가) 파이내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MBS) 왕세자가 사우디의 석유이후 경제동력으로 역내 무역, 금융, 관광허브를 노리는 가운데 주류 매장이 들어서게 됐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좀 더 개방적인 사우디 이웃나라들은 호텔과 주류허가를 받은 식당에서 무슬림이 아닌 이들이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수년 전부터 허용해왔지만 완고한 사우디는 주류금지 정책을 지속해왔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는 그러나 MBS 집권 이후 경제성장을 위한 개방정책을 확대하면서 이제 주류 판매까지 허용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주류판매점은 외교관들이 외교행낭에 포함해 들여오는 알콜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와중에 출범하게 됐다. 또 이번 주류판매점 허용이 사우디의 술 판매 규정 완화로 이어지는 시발점인지 여부 역시 불분명하다. 국립 사우디 리서치앤드미디어그룹 산하의 아랍뉴스는 앞서 사우디가 "외교행낭에 섞여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특수 재화와 독주를 억제하기 위한" 규정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외교관들은 외교행낭에 넣어 들여온 술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파티에도 내놔 사우디 무슬림들도 알콜에 접근이 가능하다고 FT는 전했다. 또 외교관들이 들여온 술은 암시장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는 결국 사우디가 술 판매를 일부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한 것은 개방이라기보다 음주가 암암리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에 가깝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우디의 주류판매 전면 금지는 70년 전에 시작됐다. 당시 술에 취한 영국 외교관이 사우디 왕족을 총으로 쏴 살해한 뒤 주류판매 금지 조처가 취해졌다. 그러나 MBS 집권 뒤 사우디가 관광을 차세대 성장 동력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면서 홍해 인근에 리조트 등을 만들고, 새로 만들어지는 식당과 호텔에서 무알콜 주류 판매를 허용하면서 이같은 주류판매 금지 원칙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강화되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2024-01-25 03:15:24"가족과 재회하게 된 것은 큰 축복입니다. 마침내 나의 과거와 뿌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42년 전 실종돼 독일로 입양된 정명준씨(46세, 실종 당시 4세, 독일 거주)는 친모와 지난 3월 16일 극적으로 만나며 이같이 밝혔다. 정씨는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를 통해 가족를 다시 만났다. 정씨는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는 유전자 검사 결과서를 대사관에 전달해주고, 중간에서 한국 경찰 및 친가족과 소통하는 등 많은 역할을 해줬다"며 "해외 한인 입양인 유전자 분석 제도가 있었기에 친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연고 없이 해외로 떠난 입양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있다. 정부의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 덕분이다. 정부는 과거 입양정보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통해 제도를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유전자로 가족 찾아 15일 경찰에 따르면 아동권리보장원과 경찰청, 외교부는 지난 2020년부터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한인입양인이 입양정보공개 청구, 재외공관 유전자 채취 등의 과정을 거쳐 채취된 유전자 검체를 외교행낭으로 경찰청에 송부해 실종자 가족 유전자 정보와 대조해주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날 기준으로 보면 현재까지 입양인이 재외공관을 통해 유전자 등록을 한 건수는 251건이며, 상봉까지 이어진 사례는 정씨를 포함해 총 세 번째다. 경찰에 따르면 전후 60여 년간 해외 14개국으로 입양된 아동은 약 17만명이며, 이 중 유기 등에 의한 무연고 아동(친부모 정보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은 약 3만명으로 추정된다. ■입양 기록 전산화 확대 정씨의 경우 대표적으로 유전자 분석이 친모를 찾는데데 한 몫했다. 정씨는 지난 1981년 1월 수원버스터미널에서 실종된 이후 독일로 입양됐다. 이후 성인이 돼 지난 2009년 국내 입국해 '가족을 찾고 싶다'며 수원서부경찰서에 방문해 유전자를 채취했으나, 당시에는 일치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친모가 지난해 6월 여주경찰서에서 '헤어진 아들을 찾고 싶다'며 유전자를 채취했고, 이를 계기로 지난해 7월 두 사람의 유전자 간에 친자관계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이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원 감정 결과, 정씨가 친모의 친자임이 올해 1월 최종 확인됐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20년 미국인 A씨의 모녀와 지난 2021년 캐나다인 B씨의 남매의 상봉을 도왔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를 위해 과거 입양정보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지속하는 등 관리체계 구축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3-05-15 18: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