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해남(전남)=장인서 기자】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온 국민에게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 또 탐색의 즐거움을 일깨워줬던 교양도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올해로 발간 30주년을 맞았다. 저자 유홍준 교수(74)는 지난 1993년 발간 당시 "동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국토의 역사와 미학을 일상 속에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전 세계적인 K컬처의 인기, 그리고 지역관광 시대의 수혜를 받으며 분명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90년대 국토순례 열풍을 일으킨 답사기 1권은 강진·해남 등 남도 일대를 다루고 있다. 너무나 많은 여행지들이 각광받고 있어 잊힐 법도 하지만 유 교수가 보고 거닐었던 유적지들은 오늘도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검이불루(儉而不陋)'의 매력으로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정약용이 머물던 사의재 전남 강진읍에 위치한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온 뒤 처음 묵은 주막집이다. 사의재는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 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다산은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지난 2007년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현재는 동문매반가(주막)와 한옥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다산초당은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도암면 만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다산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집필하며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이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와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4경과 천일각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1㎞ 남짓이지만 산길이다 보니 도보로 30분가량 소요된다. 길의 경사는 비교적 완만하며 주변에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오솔길 중간 지점에 해월루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옛 선비들의 놀이터, 백운동 원림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성한 원림이다. 백운동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로 변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정원은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만들었다. 다산은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다. 현재의 건물은 이를 근거로 호남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영랑의 시혼' 숨 쉬는 영랑생가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이 태어난 강진읍 영랑생가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돼 있다.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 활동 시절 이 아호를 주로 사용했다. 영랑은 생전에 시 80여편을 발표했으며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을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등과 더불어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가 쓴 시 중 60여편은 광복 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들이다. 안채는 일부 변형된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했고, 문간채는 철거된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과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녹우당 전남 해남읍에 위치한 녹우당은 조선의 문신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살았던 집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건물로, 조선 중기 양반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덕음산을 뒤로하고 그 줄기인 성매산, 옥녀봉, 호산을 잇고 들어서 있어 풍수지리의 명당 요건을 모두 갖췄다. 녹우당 고택을 중심으로 고산 사당, 어초은 사당, 어초은 묘역 등이 둘러싼 형태로, 대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사랑마당 앞면에는 사랑채가, 서남쪽 담 모퉁이에 백련지(연못)가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유적지 내 고산박물관에는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과 보물 산중신곡집 등이 전시돼 있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2023-12-14 19:01:42【파이낸셜뉴스 나주=황태종 기자】2000년 역사문화도시 나주시가 빼어난 경관을 갖춘 누정과 숨은 관광 명소, 역사 속 인물을 찾아 여행할 수 있는 관광상품을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선보인다. 나주시는 광주지방조달청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나주 여행 관광상품을 등록·판매한다고 25일 밝혔다. 나라장터에 입점한 나주 여행상품은 △마한역사문화탐방 △근대역사문화탐방 △나주인물탐방 △나주누정탐방(1) △나주누정탐방(2) 등 5종으로 구성됐다. 이 여행상품은 인기 관광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 명소와 역사 유적,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누정 등을 버스를 타고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원스톱으로 탐방할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최초 근왕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김천일(정렬사), 거북선을 제조한 선박 과학자 나대용(소충사), 나주에 유배돼 조선 건국 이념인 민본 사상을 정립한 정도전(삼봉 유배지), 조선의 천재 시인 임제(백호문학관) 등 나주 출신 또는 인연이 있는 역사 인물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상품이어서 더욱더 눈길을 끈다. 이 여행상품은 1주일에 5일(화·수·목·토·일), 코스별 최소 10명 이상의 개인·단체 예약이 접수되면 운영한다. 경비는 성인 1명 기준 4000원, 20명 이상 단체는 12만원으로 단독 버스를 제공한다. 청소년·장애인·경로·군인의 경우 50%를 할인해 준다. 체험료, 숙박·식비는 자부담이다. 구매 방법은 조달청 나라장터 누리집 종합쇼핑몰 서비스 카테고리 중 지역여행상품에서 여행서비스(나주시)를 클릭하면 된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관광뿐만 아니라 나주의 역사·문화, 인물을 배울 수 있어 학생들의 체험학습, 수학여행 등에 적합한 나주 여행상품을 출시했다"면서 "조달청 나라장터 등록을 통한 전국적인 홍보로 많은 관광객들이 역사문화관광1번지 나주를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나라장터는 국가 종합 전자 조달 체계로서 조달청에서 실시하는 업무인 입찰 공고, 물품, 시설, 용역 등의 업무를 온라인망을 이용해 입력·처리·공고하는 시스템이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3-10-25 17:31:53"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스타달라 붐바 스타달라 붐바 품품품…" 가수 김세환이 불러 유명한 동요 '목장길 따라'는 사실 작자 미상의 슬로바키아 민요를 번안한 노래다. 미국에서는 '워킹 앳 나이트 (Walking at Night)' 일본에서는 '목장의 작은 길 (牧場の小道)'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려졌다. 한국관광공사가 5월에 가볼만한 추천 여행지로 전국 곳곳의 목장 5곳을 엄선했다. 서울 인근의 원당목장을 비롯해 태백 몽토랑산양목장, 평창 애니포레, 증평 벨포레목장, 화순 무등산양떼목장 등이다. 싱그러운 5월,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목장길을 따라 걷다보면 김세환이 부른 그 노래가 문득 떠오를지 모른다.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 원당목장 경기 고양 원당목장은 서울 근교의 피크닉 명소로 유명하다. 이곳은 1984년 한국마사회가 경주마를 육성하고 사육할 목적으로 조성했는데, 이국적인 경치로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업무 시설이라 개방 구역이 제한되지만, 목장을 즐기기엔 불편함이 없다. 피크닉존, 포토존, 벤치 등이 있어 쉬엄쉬엄 돌아보기 좋다. 음식물과 돗자리 반입이 허용되며, 일반인 출입 구역에서는 어디든 피크닉이 가능하다. 바로 옆에 조선시대 왕릉인 서삼릉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또 멀지 않은 곳에 인현왕후와 장희빈 등이 묻힌 서오릉이 있다. 창릉·경릉·명릉·익릉·홍릉 등 조선시대 다섯 능이 있는 이곳은 나무가 울창해 봄날 피크닉 장소로 손색이 없다. 아이와 함께라면 일산신도시 개발 당시 가와지마을에서 발견된 볍씨를 테마로 꾸민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을 추천한다. 알파카농장, 비단잉어관, 고양민속박물관, 무박캠핑장 등을 갖춘 배다골테마파크도 아이들에겐 최고다. 유산양과 함께, 태백 몽토랑산양목장 강원도 태백에도 봄 피크닉 장소로 안성맞춤한 목장이 있다. 지난 2021년 문을 연 몽토랑산양목장은 해발 800m에 자리해 맑은 공기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유산양은 온순하고 친화력이 좋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금방 잘 어울린다. 몽토랑산양목장은 먹이주기 체험을 초원에서 한다. 남다른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소품을 대여하는 피크닉 세트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선한 산양유 맛보기도 잊으면 안 된다. 몽토랑산양목장에서 자동차로 7~8분 거리에 태백 용연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920m)에 있는 동굴이다. 구문소(천연기념물)도 독특한 지형이 눈길을 끈다. 암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동굴 모양으로, 그 아래 깊은 웅덩이가 있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을 보여주는 철암탄광역사촌도 가볼만하다. "귀여운 알파카 만나자" 평창 애니포레 국내 최대 규모의 스키장으로 유명한 강원도 용평리조트가 모나용평으로 변신해 사계절 종합 웰니스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동물과 숲이 조화를 이루는 애니포레가 그 중심이다. 발왕산 중산간에 자리한 애니포레는 알파카, 양 등이 뛰노는 목장과 수령 50년이 넘는 독일가문비 군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알파카모노레일을 타고 올라 마주하는 애니포레에서는 가문비치유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의자와 선베드 등에 앉거나 누워 피톤치드 삼림욕을 할 수 있다. 숲 가장 깊숙한 곳에서 만나는 목장을 찾아 알파카와 교감하는 것도 잊지 말자. 발왕산 정상부에는 모나파크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핫플레이스, 발왕산 기(氣)스카이워크가 있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천년주목숲길이 조성돼 둘러볼 만하다. 애니포레와 분위기가 다른 목장을 찾아보고 싶다면 대관령양떼목장이 제격이다. 유럽 감성이 가득한 티롤빌리지에는 인형·피규어 전시가 열리는 비엔나인형박물관이 있다. 동물과 따뜻한 추억, 증평 벨포레목장 신록의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다면 충북 증평에 있는 벨포레목장으로 향하자. 이곳은 휴양관광단지 벨포레리조트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공간이다. 보어염소와 오리, 거위 등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너른 방목지엔 면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먹이주기와 승마 체험도 흥미롭지만, 양치기 개로 유명한 보더콜리의 양몰이 공연은 꼭 놓치지 말자. 늑대로 변장한 사육사가 새끼 양을 훔치는 퍼포먼스와 영특하고 민첩한 보더콜리의 양몰이 기술이 볼거리다. 거위와 오리, 염소가 런웨이를 누비는 듯한 동물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최근 개장한 네스트조류관과 야외가금류장에서는 청금강앵무, 공작, 금계 등 조류와도 교감할 수 있다. 보강천미루나무숲은 널찍한 꽃밭을 가꿔 사진 찍기 좋다. 건너편 독서왕김득신문학관에서는 조선 중기 문인 김득신의 일대기와 마을 주민이 참여한 공공 미술작품을 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미니어처로 꾸민 증평자전거공원도 사진 촬영지로 유명하다. 양떼가 뛰노는 화순 무등산양떼목장 무등산양떼목장은 안양산이 화순 땅을 향해 벌린 너른 품의 시작점에 자리한다. 호남을 듬직하게 끌어안은 무등산이 남쪽으로 줄기를 뻗어 이룬 산이 안양산이다. 양떼를 만나기 전, 당나귀·유산양·토끼 등 초식동물 몇 종이 사는 울타리와 축사를 볼 수 있다. 축사를 지나면 초원이 펼쳐진다. 언덕 저편으로 관리사가 보이는데, 이곳을 기점으로 길은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길 끝이 양떼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장이다. 무등산양떼목장에는 현재 양 150여마리를 방목한다. 그중 태어난지 1년 남짓한 양들이 건초먹이주기 체험장에 있다. 화순에는 가볼만한 유적지도 많다. 16세기에 지어진 영벽정은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운치 있는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정암조광조선생유배지는 중종 때 활약한 조광조가 생을 마감한 장소다. 또 화순고인돌유적지에서는 선사시대 돌무덤을 확인할 수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3-05-11 18:42:52"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스타달라 붐바 스타달라 붐바 품품품…" 가수 김세환이 불러 유명한 동요 '목장길 따라'는 사실 작자 미상의 슬로바키아 민요를 번안한 노래다. 미국에서는 '워킹 앳 나이트(Walking at Night)', 일본에서는 '목장의 작은 길(牧場の小道)'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려졌다. 한국관광공사가 5월에 가볼만한 추천 여행지로 전국 곳곳의 목장 5곳을 엄선했다. 서울 인근의 원당목장을 비롯해 태백 몽토랑산양목장, 평창 애니포레, 증평 벨포레목장, 화순 무등산양떼목장 등이다. 싱그러운 5월,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목장길을 따라 걷다보면 김세환이 부른 그 노래가 문득 떠오를지 모른다.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 원당목장 경기 고양 원당목장은 서울 근교의 피크닉 명소로 유명하다. 이곳은 1984년 한국마사회가 경주마를 육성하고 사육할 목적으로 조성했는데, 이국적인 경치로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업무 시설이라 개방 구역이 제한되지만, 목장을 즐기기엔 불편함이 없다. 피크닉존, 포토존, 벤치 등이 있어 쉬엄쉬엄 돌아보기 좋다. 음식물과 돗자리 반입이 허용되며, 일반인 출입 구역에서는 어디든 피크닉이 가능하다. 바로 옆에 조선시대 왕릉인 서삼릉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또 멀지 않은 곳에 인현왕후와 장희빈 등이 묻힌 서오릉이 있다. 창릉·경릉·명릉·익릉·홍릉 등 조선시대 다섯 능이 있는 이곳은 나무가 울창해 봄날 피크닉 장소로 손색이 없다. 아이와 함께라면 일산신도시 개발 당시 가와지마을에서 발견된 볍씨를 테마로 꾸민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을 추천한다. 알파카농장, 비단잉어관, 고양민속박물관, 무박캠핑장 등을 갖춘 배다골테마파크도 아이들에겐 최고다. ■유산양과 함께, 태백 몽토랑산양목장 강원도 태백에도 봄 피크닉 장소로 안성맞춤한 목장이 있다. 지난 2021년 문을 연 몽토랑산양목장은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800m에 자리해 맑은 공기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고, 초원에서 하얀 유산양이 노니는 목가적인 모습이 평온하다. 유산양은 온순하고 친화력이 좋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금방 잘 어울린다. 몽토랑산양목장은 먹이주기 체험을 초원에서 한다. 남다른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소품을 대여하는 피크닉 세트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선한 산양유 맛보기도 잊으면 안 된다. 몽토랑산양목장에서 자동차로 7~8분 거리에 태백 용연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920m)에 있는 동굴이다. 구문소(천연기념물)도 독특한 지형이 눈길을 끈다. 암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동굴 모양으로, 그 아래 깊은 웅덩이가 있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을 보여주는 철암탄광역사촌도 가볼만하다. ■"귀여운 알파카와 만나자" 평창 애니포레 국내 최대 규모의 스키장으로 유명한 강원도 용평리조트가 모나용평으로 변신해 사계절 종합 웰니스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동물과 숲이 조화를 이루는 애니포레가 그 중심이다. 발왕산 중산간에 자리한 애니포레는 알파카, 양 등이 뛰노는 목장과 수령 50년이 넘는 독일가문비 군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알파카모노레일을 타고 올라 마주하는 애니포레에서는 가문비치유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의자와 선베드 등에 앉거나 누워 피톤치드 삼림욕을 할 수 있다. 숲 가장 깊숙한 곳에서 만나는 목장을 찾아 알파카와 교감하는 것도 잊지 말자. 발왕산 정상부에는 모나파크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핫플레이스, 발왕산 기(氣)스카이워크가 있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천년주목숲길이 조성돼 둘러볼 만하다. 애니포레와 분위기가 다른 목장을 찾아보고 싶다면 대관령양떼목장이 제격이다. 유럽 감성이 가득한 티롤빌리지에는 인형·피규어 전시가 열리는 비엔나인형박물관이 있다. ■동물과 다정한 교감, 증평 벨포레목장 신록의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다면 충북 증평에 있는 벨포레목장으로 향하자. 이곳은 휴양관광단지 벨포레리조트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공간이다. 보어염소와 오리, 거위 등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너른 방목지엔 면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먹이주기와 승마 체험도 흥미롭지만, 양치기 개로 유명한 보더콜리의 양몰이 공연은 꼭 놓치지 말자. 늑대로 변장한 사육사가 새끼 양을 훔치는 퍼포먼스와 영특하고 민첩한 보더콜리의 양몰이 기술이 볼거리다. 거위와 오리, 염소가 런웨이를 누비는 듯한 동물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최근 개장한 네스트조류관과 야외가금류장에서는 청금강앵무, 공작, 금계 등 조류와도 교감할 수 있다. 보강천미루나무숲은 널찍한 꽃밭을 가꿔 사진 찍기 좋다. 건너편 독서왕김득신문학관에서는 조선 중기 문인 김득신의 일대기와 마을 주민이 참여한 공공 미술작품을 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미니어처로 꾸민 증평자전거공원도 사진 촬영지로 유명하다. ■ 양떼가 뛰노는 화순 무등산양떼목장 무등산양떼목장은 안양산이 화순 땅을 향해 벌린 너른 품의 시작점에 자리한다. 호남을 듬직하게 끌어안은 무등산이 남쪽으로 줄기를 뻗어 이룬 산이 안양산이다. 양떼를 만나기 전, 당나귀·유산양·토끼 등 초식동물 몇 종이 사는 울타리와 축사를 볼 수 있다. 축사를 지나면 초원이 펼쳐진다. 언덕 저편으로 관리사가 보이는데, 이곳을 기점으로 길은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길 끝이 양떼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장이다. 무등산양떼목장에는 현재 양 150여마리를 방목한다. 그중 태어난지 1년 남짓한 양들이 건초먹이주기 체험장에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먹이주기에 여념이 없다. 화순에는 가볼만한 유적지도 많다. 16세기에 지어진 영벽정은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운치 있는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정암조광조선생유배지는 중종 때 활약한 조광조가 생을 마감한 장소다. 또 화순고인돌유적지에서는 선사시대 돌무덤을 확인할 수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3-05-09 11:29:11몇 해 전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시가 골목에서 악기 반두라를 처음 보았다. 기타처럼 생겼으나 목은 짧고, 몸통은 얇은 우크라이나 민속 현악기가 반두라다. 우크라이나 출신 건장한 청년이 이 악기로 한없이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노래하던 또 다른 청년은 저음의 굵은 목소리였다. 그 민요풍 노래 가사가 우크라이나 민족시인의 시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 알게 됐다. '울부짖으며 신음하는 넓은 드네프르 강이여!/ 성난 바람 불어와 버들가지 땅으로 휘감고/ 집채만 한 파도 들어올리는구나.' 시인이자 화가, 사상가였던 셰브첸코(1814~1861)가 나이 스물셋에 쓴 그의 첫 시 '광인(1837년)'의 앞부분이다. 우리의 '아리랑'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는 슬라브족의 첫 통일국가 키예프 공국의 후계자다. 러시아는 키예프 귀족들이 몽골 침략을 피해 모스크바로 달아나 거기서 세운 공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날로 번성한 모스크바와 달리 키예프 일대는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이웃의 침략을 두루두루 받는다. 1654년 폴란드 압제를 벗어나려 우크라이나가 끌어들인 상대가 로마노프 왕조였다. 300여년 러시아 속박의 출발점이 된 최악의 카드였다. 조국의 울분을 담은 셰브첸코의 시는 악명 높은 차르 니콜라이 1세 막바지 더욱 격해진다. '이 흡혈귀들아 이 살인마들아 너희들이 우리의 살아있는 피를 빨지 않았더냐'(1843년 '꿈' 중 일부). 이 시로 그는 우랄산맥 근처로 유배까지 갔다. 러시아문학의 아버지 고골을 겨냥한 시도 있다. 고골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면서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 셰브첸코는 '고골에게(1844년)'라는 시에서 '고골, 당신은 웃지만 나는 통곡한다'고 썼다. 러시아는 그 반대로 우크라이나에 집착했다.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러시아의 머리를 잃는 것과 같다"고 말했던 이가 혁명가 레닌이다. 비옥한 흑토, 넘치는 자원은 수탈을 면치 못했다. 스탈린 시대 혹독한 공출로 우크라이나인 1000만명이 굶어죽은 '홀로도모르(대기근)'가 그 적나라한 예다. 셰브첸코가 염원하던 조국의 독립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갑작스럽게 왔다. 준비를 못했던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친러에 급급하다 두 차례 시민혁명을 불렀다. 지금의 친서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적극 추진해온 것은 안보를 위한 고육책이다. 이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려 나라가 통째로 침공 위기에 놓였으니 약소국의 비극이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제국적 욕망을 억제할 지정학적 급소로 봤던 이가 미국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다. 그는 '거대한 체스판(1997년)'에서 러시아의 유럽적 정체성 기반이자 러시아 부활의 조건으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 편입될 경우 유라시아 재건 멤버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정도로 쪼그라든다. 침공 명분을 찾던 푸틴이 지금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중국과 격렬한 패권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유럽에 또 다른 대립전선을 끌고 가기 쉽지 않다. 러시아에 이 역시 나쁘지 않다. 서방과 러시아는 지금 담판을 벌이는 중이다. 12일(현지시간, 브뤼셀), 13일(오스트리아) 협상이 남아있다. 여기에 정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없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2022-01-12 18:07:59【파이낸셜뉴스 순천=황태종 기자】전남 순천시에서는 누구나 책을 펴내는 시민작가가 될 수 있다. 순천시가 도서관 정책 목표를 '전 시민 책 쓰기 문화 조성'으로 정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책 출판 지원과 책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다. 실제 순천에선 지난 11월 11일 하루 동안 시민 1540명이 책을 출간했다. 이는 '단일 지방자치단체 거주 시민 최다 동시 출판' 분야의 최고 기록으로 공식 인증(기네스 기록)을 받았다. 순천시가 작가의 문턱을 크게 낮추는데 힘쓰면서 순천이 '누구나 책 쓰는 시민작가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순천시는 내년 상반기에 미국 WRC(World Record Committee, 세계기록위원회)의 세계 기록 도전도 앞두고 있다. 2023년에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신청을 할 계획이다. ■문학적 자산이 많은 도시, 순천 순천시는 문학적 자산이 많은 도시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달은 많은 한학자를 배출했는데, 특히 순천지역은 1500년 이후 유학적 지식을 갖춘 지식층과 유배객들에 의해 시문학이 발달했다. 지역 출신으로 승평사은과 승평팔문장 및 '강남악부'의 저자 조현범(1716∼1790)이 있다. '강남악부'는 순천지역 인물·역사·문화·전설·설화 등을 악부시의 형식으로 정리해 지역사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조위(1454∼1503)가 쓴 '만분가'는 유배가사의 효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선 순천지역 근현대문학의 출발을 알린 임학수(1911∼1982)시인이자 평론가를 시작으로 어른 동화시장을 개척한 정채봉(1946∼2001), 소설 '무진기행'의 김승옥, 1000만 스테디셀러 작가 조정래, 리얼리즘의 대가 서정인 소설가와 허형만 시인, 서정춘 시인, 순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순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곽재구 시인 등 수많은 문호를 배출했다. 순천시는 특히 지방도시의 인구 규모에 비해 도서관이 많다. 제1호 기적의 도서관을 비롯해 공공도서관 8개소와 작은도서관이 91개가 있으며, 현재 건립 중인 공공도서관도 2개소가 된다. 시민 1인당 장서 수는 4.1권이다. 도서관 이용자 수는 연간 90만여명이다. 도서관 프로그램 이용자 수는 연간 9만5000명에 이른다. 이러한 순천시의 문학적 기반과 역량이 시민의 삶 속에 문학적 감수성을 자리잡게 했다는 평가다. ■전국에서 작가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순천 순천시의 도서관에서 책 쓰기 사업은 지난 2017년 그림책도서관에서 '시민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비롯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순천 소녀시대'가 탄생했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 20명으로 구성된 '순천 소녀시대'는 2019년 에세이집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출간했다. 가난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고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1만9000권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가 됐다. 순천시는 이어 2019년부터 1인 1책 쓰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린이부터 시작해 청소년, 성인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책 쓰기 프로그램과 책 출판 지원 사업을 실시하며 시민 작가들을 양성했다. 지난해에는 시민과 직원에게 출판 비용 일부와 출판 원고 교정 등 출판 지원을 했고, 시립도서관 6개소, 작은도서관 7개소, 지역서점 5개소, 초·중·고 17개교에서 책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 시는 지난 11월 11일 1540명의 시민들이 인쇄본 911종, 전자책 252종 총 1163종의 책을 동시 출판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연소 시민 작가의 나이는 만5세, 최고령 시민작가는 만87세로 거의 모든 연령의 시민들이 책 출판에 참여했다. ■도서관에 시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도시, 순천 순천시립삼산도서관은 '순천사람들이 쓰고 함께 읽는 책' 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순천에 살고 있는 사람, 순천이 고향인 사람들이 출판한 책을 모아든 공간이다. 현재 520여명이 쓴 1400여종의 책이 비치돼 있다. 삼산도서관은 순천사람들이 쓴 책 외에도 전 시민, 유관기관·단체, 출향인사 등을 대상으로 순천 인물에 관한 자료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순천시는 내년 준공 예정인 신대도서관에 별도의 인물자료실을 조성해 보관할 계획이다. ■2023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목표 도시, 순천 순천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문학 분야 도전을 준비 중이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는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문화 다양성을 위한 국제연대 사업이다. 현재 문학 분야는 세계 27개국 39개 도시가 가입해 활동 중이며, 우리나라 도시로는 부천, 원주가 가입했다. 순천시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가입이 순천의 문학 전통을 세계에 알리고 문학공동체 육성, 문학관광 발전과 문학 대중화, 국제 네트워크를 증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석 순천시장은 "책 읽는 도시, 도서관의 도시는 많지만 시민이 책을 쓰는 도시는 많지 않다"면서 "누구나 책을 쓰는 시민작가를 배출해 순천 시민이 쓴 책으로만 돼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1-12-04 11:04:46【파이낸셜뉴스 강진=황태종 기자】전남 강진군 강진읍 탑동마을에 위치한 영랑 김윤식 생가(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252호)에서 새로 만든 이엉으로 안채 지붕을 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매년 교체되는 초가이엉은 긴 볏짚을 계약재배로 확보하고 사라져가는 이엉 잇기 전통 기술을 보전·양성하는 차원에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 진행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갔을 때 처음 머물렀던 조선시대 주막집인 사의재(四宜齋), 영랑 김윤식의 시적 동반자이며 시문학파 시인으로 활동한 김현구 시인의 생가에서도 이엉 잇기 작업이 추진된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1-10-26 13:17:50[파이낸셜뉴스] 수양대군 "대감의 얼굴을 보면 일흔까지 장수할 상인데. 올해 춘추가 어찌 돼요" 김종서 "올해 일흔입니다" 수양대군 "제가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김종서 "어떤 소원입니까" 수양대군 "왕이 되는 것이오" 김종서 "네 이놈, 네 무슨 수작이냐" -영화 '관상' 中 조선 초기, 왕조 역사의 큰 물줄기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정변이 일어났다. 계유년(癸酉年)인 1453년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과 그 일파들이 여러 대신들 및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계유정난은 조선 초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후 조선 역사의 향방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선 적장손 왕위 계승 등 조선의 헌정질서가 흔들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세종, 문종, 단종으로 이어지면서 자리를 잡아가던 유교적 헌정질서를 왕실 종친이 앞장서 무너뜨린 사건은 당대의 유학자는 물론 후대의 역사가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더욱이 계유정난을 계기로 조정에 '공신(功臣) 세력'이 득세하면서 태종 때처럼 왕권이 오롯이 서지 못하고 되레 공신 세력을 의식하는 모습이 나타났고, 조선 건국의 명분을 제공했던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한 특권 문화가 조선 공신 세력에게 고스란히 전수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후 조선에서는 사화, 환국 등 유혈 정권교체가 있을 때마다 승리자의 자축 세리머니라고 할 수 있는 '공신 인플레이션'이 일반화 됐다.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이 기필코 타파하고자 했던 문제점이 조선의 정치 및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비극의 씨앗, 문종의 죽음 1452년 5월, 세종대왕의 아들이자 단종의 아버지, 그리고 수양대군의 친형이었던 문종이 세상을 떠났다.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의 일이었다. 문종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준비된 왕'이었다. 실록에 따르면 문종은 과학, 천문, 병법, 무예, 음악, 음운 등 다방면에 통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세종 때 발명된 측우기와 화차(이동식 대포)는 문종이 제시한 생각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더욱이 외모도 매우 출중했다.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왔을 때 문종을 보고는 "이 나라는 산천이 아름답기 때문에 인물도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며 감탄을 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치세 마지막 7년 정도는 사실상 문종의 치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종대왕 말기엔 문종이 대신 정사를 돌보기도 했다. 그러나 문종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건강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세종 말기 때 과도한 업무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연이은 3년상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군으로 칭송을 받았던 아버지에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아버지를 능가할 수도 있었던 전도유망한 왕이 죽자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록은 "임금이 승하하자 이를 슬퍼하는 것이 선왕(세종) 때보다 더하였다"라고 전하고 있다. 문종의 뒤를 이어 그 아들인 단종(이홍위)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 단종은 그 나이 만큼이나 정치적 기반도 취약했다. 보통 어린 임금이 즉위하면 가장 서열이 높은 대왕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지만, 당시 단종 곁엔 수렴청정을 할 대비도 없었다.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 권씨가 단종을 낳은 직후 산욕열로 죽었고, 문종은 다시 세자빈을 들이지 않았다. 후궁으로 귀인 홍씨, 양씨만을 뒀다. ■조정의 세력구도 문종의 죽음과 단종의 즉위를 계기로 조정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세종이 일궜던 태평성대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다시금 불길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당시 조정의 세력구도를 보면 크게 고명대신파와 대군파로 나뉜다. 고명대신파는 왕의 유언을 받은 대신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가 있었다. 문종은 죽기 전에 이들을 불러 단종을 잘 보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좌의정 남지가 죽자 김종서가 좌의정, 정분이 우의정으로 임명됐고, 김종서와 황보인 두 고명대신이 조정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모양새를 나타냈다. 반면, 다른 한쪽엔 단종의 숙부인 대군들이 있었다. 대군들은 총 7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두드러졌다. 문인보단 무인의 기질이 엿보인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권람 등을 책사로 두고 서서히 무인 중심으로 세력을 모으고 있었다. 안평대군은 기본적으로 문인의 기질을 타고났다. 문학·예술 등에 능했고, 자연스레 이 방면의 인사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했던 단종은 잠재적 대권주자가 될 수 있는 대군들보단 아버지 문종이 신뢰했던 최측근들인 고명대신들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대신들의 합의체인 의정부가 국왕을 보필하고 정사를 협의하는 최고 정무기관으로서의 본래 임무를 넘어서는 듯한 모습도 나타났다. 이는 추후에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키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고명대신들이 야심을 품고 권력을 넘보거나 국정을 농단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단종의 신임을 받은 김종서 등 고명대신들은 특별히 혈기왕성한 수양대군을 경계했고, 수양대군 역시 고명대신들 및 안평대군의 세력화를 경계하며 상호 간 세력경쟁 양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수양대군의 야심 당초 수양대군은 왕위를 꿈꿀 수도 없는 위치에 있었다. 친형인 문종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수양대군은 상대적으로 가려진 존재였었고, 단종이 즉위한 이후엔 고명대신파 및 다른 형제들의 견제가 심화됐다. 아울러 왕조 국가에서 왕의 형제들은 숨죽이고 살아야만 하는 비운(悲運)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수양대군은 단종 즉위 직후부터 왕권을 향한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단종이 즉위한 후 2개월이 지나 수양대군은 자신의 집에서 권람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국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논했고, 이후 야심을 갖고 권람, 한명회, 홍윤성 등을 심복으로 만들었다. 특히 한명회는 추후 계유정난 및 세조 치세의 설계자가 된다. 왕권을 향한 수양대군의 거사 계획이 구체화된 것은 1453년 4월부터다. 이는 수양대군이 단종의 즉위를 알리는 '고명사은사(誥命謝恩使)'로 명나라를 갔다 온 직후다. 수양대군이 고명사은사로 가기 전 권람 등은 이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 김종서 등이 수양대군파에 대한 제거를 획책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수양대군은 웃으면서 "김종서 등은 그럴만한 호걸이 아니다"라며 명나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실제로 수양대군이 부재할 때 고명대신파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명나라에서 돌아온 수양대군은 한편으론 고명대신파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있던 신숙주 등 집현전 출신 문인들을 끌어들이고, 또 다른 한편으론 홍달손, 양정 등 심복 무사를 양성하며 거사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거사 직전 수양대군 휘하엔 30여 명에 이르는 정예 무인들이 모여있었다. ■계유정난 1453년 10월 10일 밤, 마침내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조선 왕조 역사의 큰 물줄기가 변화되는 밤이었다. 우선 수양대군은 삼정승 가운데 가장 지혜와 용맹이 뛰어난 김종서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양정, 임어을운 등을 대동한 채 돈의문 밖 김종서의 집으로 향했다. 수양대군이 방문하자 김종서와 그의 아들 김승규가 직접 맞이했다. 김종서와 정면으로 마주한 수양대군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뜸 "사모(紗帽)의 각이 떨어졌으니 좌상의 것을 빌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는 김종서 부자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 다음 수양대군은 청이 있다면서 김종서에게 편지 한통을 건넸고, 김종서는 달빛에 편지를 비춰봤다. 그 순간 임어을운의 철퇴가 김종서의 머리를 내리쳤다. 동시에 양정의 칼날이 김승규를 베었다. 미처 반격할 틈을 갖지 못한 채 세종 시절 천하를 호령했던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가 쓰러졌다. 9부 능선이었던 김종서 제거에 성공하자 수양대군과 정예 무인들은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이들은 곧바로 단종이 있는 궁궐로 쳐들어갔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단종 앞에서 수양대군은 김종서, 황보인 등이 난을 일으켜 안평대군을 추대하려 했기에 김종서를 척살했다는 거짓보고를 올렸다. 뒤이어 수양대군은 왕명을 빙자해 조정 대신들을 모두 입궐시키도록 했다. 한명회는 '살생부(殺生簿)'를 들고 입궐하는 대신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사전에 배치한 군사들에게 '살조(殺條)'로 분류된 대신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했다. 이때 대표적인 수양대군 반대파들인 황보인과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우찬성 이양 등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한편, 불의의 기습을 당한 김종서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철퇴를 맞고 쓰러진 김종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났고, 수양대군의 모반 사실을 인지한 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마에 올랐다. 단종을 지키기 위해 궁궐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양대군 세력에게 포섭된 숭례문, 돈의문, 서소문 등의 수문장들은 모두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진입로가 막힌 김종서는 사돈집에 숨어 있다가 이튿날 수양대군이 급파한 군사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공신 득세, 단종의 비극 하룻밤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조정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던 고명대신파 등은 온데간데 없고, 수양대군 및 그 일파들이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다. 수양대군은 스스로 영의정부사·영집현전사·영경연사·영춘추관사·영서운관사·겸판이병조·내외병마도통사 등 다양한 요직을 겸하면서 정권과 병권을 동시에 장악했다. 그리고 거사에 직간접적으로 공을 세운 한명회, 권람, 정인지, 양정 등 43인을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책봉했다. 앞으로 이들은 오랜 기간 세조 주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비극적인 피바람은 계속 휘몰아쳤다. 안평대군은 붕당을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사사를 당했고, 정분, 조수량, 안완경 등 수양대군 반대파들도 귀양을 간 후 교살당했다. 든든한 우군들이 사라진 단종은 그야말로 '사상누각'과 같은 존재가 됐다. 수양대군 세력에 대한 공포감을 못이긴 단종은 2년 뒤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단종은 상왕 자리에서도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등 집현전 학사 출신의 대신들(사육신)과 일부 무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된 후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게 됐다. (단종이 거처했던 영월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육로는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런데 유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세조'가 된 수양대군에게 있어 단종은 지속적인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단종이 살아있는 한 정통성 시비는 끊임없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았다. 더욱이 단종 복위운동이 또 다시 일어나면서 수양대군의 위기감은 높아져 갔다. 결국, 수양대군은 강원도 영월에 사람을 보내 단종을 죽이라고 명했다. 단종의 최후를 기록한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한)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심한 나머지 스스로 자결했다고 나와있다. 이어 세조는 단종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며 그 시신을 후하게 장사 지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선조실록'에는 단종이 사사(賜死)된 것으로 나와있고, 정황 상 그 시신도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야사'에 따르면 금부도사 왕방연이 세조의 명으로 사약을 들고 단종을 찾아왔는데, 왕방연은 차마 단종에게 사약을 건네지 못했고 그저 말없이 엎드려 통곡을 했다. 이를 본 단종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자결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때 단종은 자신의 목에 줄을 매고는 줄을 방 밖으로 빼내 하인에게 힘껏 당기게 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강원도 영월에서 한 많은 삶을 살던 어린 왕은 비정한 권력의 피비린내 앞에서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단종은 200년도 더 지난 1698년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복권될 수 있었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
2021-05-07 22:37:49'그래, 오랫동안 닦아왔다. 자고 나면 수북이 쌓이는 모래먼지. 얼마를 닦아내야 내 자리로 돌아갈까'(명재신 시인 '모래먼지' 중에서) 모래먼지, 폭염과 벌이는 중동 건설현장의 사투. 그 치열함을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주는 한 편의 시다.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2020 올해의 시인상'까지 받은 GS건설의 명재신 책임(사진)이 일기처럼 써낸 작품이다. GS건설 사우디아라비아시공법인에서 Q.HSE 업무 및 시공그룹 ISO인증 유지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명 책임은 시의 매력으로 '교감'을 꼽았다. 그는 3일 "오랜 시간 일상적으로 일기 쓰듯이 시를 쓰다 보니 이제는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많이 와닿고 교감이 된다"고 했다.고등학생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명 책임은 대학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뒤에도 틈틈이 국문학 강의를 듣고, '한놀문학회'라는 동호회 활동도 했다. 그는 "문학동아리 내에서 소설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저도 자연스레 시로 넘어왔다"며 "소설은 자료 수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반면 시는 일기처럼 적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1992년, 2011년에 이어 2020년까지 총 3번째 시집을 낸 시인이다. 1992년 첫 번째 시집인 '돌부처 도서관 나서다'는 고향인 전남 고흥 나로도 옆 '쑥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히 '제주해협'으로 동아대학교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2017년 출간한 두 번째 시집인 '겨울사랑'은 '월간시'의 추천시인상에 당선돼 정식으로 등단하게 만들어 준 시집이다. 명 책임은 "저와 아내의 이야기를 담아 이 시로 프러포즈를 했다"며 "아내에게 바친 100편의 시를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 엮은 시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발간한 세 번째 시집인 '아라비아 사막일기'는 GS건설의 동료들, 특히 현장 생활을 함께했던 분들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시집에는 특히 '아프지 말자'는 내용이 많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그는 "아부다비 RRW 프로젝트 당시 함께 일하던 필리핀 직원들이 열감기에 취약해 쓰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건강과 컨디션 체크를 위해 매일 아침 악수를 하며 인간적인 교감도 할 수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해외건설 현장의 치열함을 시로 풀어낸 '아라비아 사막일기'로 월간시가 수여하는 '올해의 시인상 2020'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를 하며 느꼈던 점도 시로 쓰고 있다. 해외현장에서 복귀하며 함께 있던 동료들 중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있던 격리시설이 마치 유배지와 같았다고 설명했다. "소록도 근처의 팔영산에서 머무르며 '한하운 시인도 이런 느낌으로 이 길을 내려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의 경험으로 '팔영산'이라는 연작시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기'를 쓰듯 써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오늘 내 기분이 어떤지, 오늘 내가 무슨 일을 겪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번 써보라"며 "부담감을 버리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시"라고 강조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2021-02-03 18:18:02[파이낸셜뉴스] 기차여행객들은 올해 최고의 국내 여행지로 ‘단양’을 꼽았다고 SR이 1일 밝혔다. SRT 차내지 ‘SRT 매거진’은 11월호를 통해 2020년 최고의 여행지를 가리는 ‘2020 SRT 어워드’를 선정해 발표했다. ‘2020 SRT 어워드’에 최종 선정된 10개 도시는 단양, 목포, 울산, 완도, 장흥, 대전, 강진, 신안, 공주, 제천이다. SRT 매거진은 국내 여행문화 활성화를 위해 2018년부터 ‘SRT 최고의 여행지 어워드’를 꼽았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1차 독자 설문(8022명) 및 2차 여행 작가, 여행전문기자 등 10인의 전문가 심사를 반영했다. 가장 많은 이들이 꼽은 단양은 액티비티, 언택트, 아름다운 풍경을 키워드로 코로나19에도 최고의 여행지로 꼽혔다. 단양에서는 경비행기부터 패러글라이딩, 래프팅을 즐길 수 있고, 남한강 절벽에 설치된 잔도를 걷는 트레킹도 가능하다. 2위로 꼽힌 목포는 목포9미를 찾아 떠나는 미식 여행과 국내 최장 길이의 목포해상케이블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목포근대역사관 1관 등 흥미로운 여정을 담고 있다. 3위는 전설 같은 고래 이야기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울산이 선정됐다. 4번째는 전남 완도가 꼽혔다. 크고 작은 265개 섬이 군도를 이루는 완도는 우리나라 해양치유 산업을 이끄는 선봉장으로서 오는 11월 21일까지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해양치유와 관련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5위를 차지한 장흥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관광기행특구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와, ‘축제’, ‘천년학’의 원작자인 이청준 작가가 바로 장흥 출신이다. 편백숲 우드랜드, 장흥 한우 삼합도 유명하다. 6위로 꼽힌 대전은 언택트 여행지로 주목받았다. 누구나 걷기 좋은 계룡산 수통골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적한 계곡을 따라 유유자적 걷는 길’ 5곳 중 하나다. 7위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이 차지했다. 강진에서는 겨울별미 짱뚱어탕이 기다린다. 갯벌의 소고기라 불리는 짱뚱어는 강진 10미 중 하나로 강진 시내의 전문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8위를 차지한 신안은 천사대교가 개통하며 더욱 가까워졌다. 지난 9월 문을 연 자은도의 1004뮤지엄파크와 1004섬 자전거길이 가족단위, 레저를 즐기는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9위 공주는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도시로서 디지털 디톡스 여행지로 에디터의 추천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제천은 제천시가 직접 운영하는 약채락 브랜드로 건강과 입맛을 채우는 여정을 담았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0-11-01 14:4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