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30)는 지난해 5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청년 봉사단체인 '코리아레거시커미티'였다. 홈리스를 위한 도시락 150개를 함께 제작해줄 업체를 찾는다고 했다. 코로나19 탓에 홈리스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가 기억났다. 김 대표는 흔쾌히 수락했다. 수익이 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해가 나지도 않았다. 식재료 비용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소녀방앗간도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상황이었다. 농산물을 보내주는 지역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매장을 일궈올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서울 어르신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시작한 '150개 도시락'은 곧 1만개 도시락 기부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캠페인을 시작한 뒤 배달의민족에서도 연락이 왔다. '방학 도시락' 사업을 같이하자고 했다. 방학 때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겨울 500명의 아이들에게 주 2회씩 총 7000번의 건강한 집밥을 보냈다. 소녀방앗간이 내놓는 모든 음식은 발효간장, 발효청 등으로 맛을 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자극적인 맛에 길든 아이들이 좋아할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아이들은 '집밥 같아서 좋았다' '엄마가 해준 밥 같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올 여름방학에도 아이들에게 집밥을 보내게 됐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도시락 사업이었는데 거꾸로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매장 판매가 급감했다. 케이터링 매출은 아예 제로(0)에 수렴했다.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까지 했던 그가 힘을 낸 계기였다. ■지역 농산물로 농가와 도시를 잇다 소녀방앗간은 2014년 성수동 1호점을 오픈한 뒤 현재 6호점까지 늘어났다. 어르신들이 지역에서 키운 농산물을 받아 건강한 집밥을 내놓는다. 케이터링, 도시락 사업을 통해 음식을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식재료도 판매한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소녀방앗간 6호점에서 만난 김민영 대표는 소녀방앗간을 "지역의 농산물을 서울의 도시 소비자에게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는 농산물 유통회사"라고 정의했다. 그는 "유통마진만 남기고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녀방앗간은 농산물을 한 번 더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며 "성수동에서 처음 시작한 소녀방앗간 1호점도 지역 식재료를 직접 맛보여드릴 수 있는 쇼케이싱 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소녀방앗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경북 청송에서 어르신들이 내어준 '집밥'이었다. 2년간 치열하게 일했던 회사를 그만둔 뒤 내려간 곳이었다. 시골에서 직접 키운 농산물로 만든 집밥은 어떤 음식보다 맛났다. 고봉밥을 뚝딱 비워냈다. 건강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만큼 마음도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 마음을 전한 농산물은 헐값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농가 소득도 들쭉날쭉했다. 어르신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농가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도시에는 건강한 식재료를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다. ■2주 만에 만들어지는 공장식 된장은 NO 2014년 시작한 소녀방앗간은 7년 만에 6개 매장으로 늘어났다. 외식업 트렌드는 보통 5년이다. 한 브랜드가 5년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다. 게다가 입점이 쉽지 않은 백화점과 대형쇼핑몰에 전체 매장의 절반인 3개점이 들어가 있다. 집밥과 백화점은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감사하게도 먼저 입점을 제안해주셨다"면서 "(입점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새로운 매장을 열면 식재료를 더 사용할 수 있어서 농가 소득이 올라가고, 그만큼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며 "재무적인 가치만 생각했다면 오히려 대형몰 입점을 선택하지 않고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가게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6개 매장을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칫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의 지향점이 흔들릴까봐서다.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보다 회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꾸려나갈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소녀방앗간은 이윤만 생각했다면 사용할 수 없는 비싼 식재료를 쓴다. 된장이 대표적이다. 지역에서 직접 1년 이상 발효한 것을 쓴다. 공장에서 제조하는 된장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공장식 된장의 대다수는 중국산 콩을 사용해 1~2주 만에 완성된다. 직영 방식을 포기하고 무리하게 확장하면 이 같은 가치를 지켜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다. 김 대표는 "외식업에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중국산을 쓰면서 국내 농산물이 소외당하고 있다"며 "국내 농산물의 판로를 만들겠다고 나온 청년들인데 비용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맛과 가치를 함께 담은 음식 소녀방앗간이 6호점까지 매장을 내면서 7년간 생존해온 비결에는 회사의 사회적 가치에 공감해준 고객들 몫이 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철저한 품질 관리와 회사의 가치를 담은 브랜딩에 힘쓴 결과이기도 하다. 외식업의 세계는 냉혹하다.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해 매장을 찾는 고객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고객도 만족시켜야 한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찾는 대형몰 매장은 더욱 그렇다. 쇼핑하러 왔다가 적당한 식당을 찾아 끼니를 때우려는 고객에게 맛과 가치를 모두 전해야 한다. 김 대표는 사업 시작 4년차에 현장운영 워크북을 만들었다. 하루 단위, 보름 단위, 월 단위 평가 양식을 담았다. 김 대표가 고민해 만든 현장 운영 관리시스템이다. 매장 직원들이 하루를 돌아보며 잘된 점과 부족했던 점 등을 적는다. 보름마다 모여 중간점검 회의를 연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다. 메뉴마다 준비하는 과정과 상차림 하는 방법도 사진을 곁들여 자세히 설명해뒀다. 6개 매장에서 동일한 맛과 상차림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현장 직원이 음식을 내면서 손님에게 전할 먹는 방법과 식재료 설명 멘트도 넣어뒀다. 예를 들어 산나물밥의 경우 현장 직원들은 아래와 같이 안내한다. "오늘 산나물밥은 취나물과 어수리나물로 밥을 지었습니다. 직접 짜온 들기름과 재래식 간장으로 살짝 간이 되어있는데 드셔보시고 간이 부족하시면 함께 준비해드리는 들기름 간장양념으로 간을 더해드시면 됩니다." 이런 김 대표에게 주변 사람들은 '밥집 하는 데 뭐 그렇게 유별나게 하느냐'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정성 들여 농산물을 키우신 어르신들의 땀과 매일 새벽 부지런히 움직이는 물류팀의 노고, 매일 성실하게 밥을 짓는 조리팀의 노력이 모두 담긴 한 상"이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맛있게 드세요' 정도만 말하면서 서빙을 하면, 그 순간 그 가치가 사라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소녀방앗간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라벨링"이라고 설명했다. ■해썹인증 준비…가공식품 판매도 진출 소녀방앗간은 총 네 가지 방식으로 지역 농산물과 소비자를 연결한다. 식당, 온라인몰, 케이터링, 도시락이다. 지역 농산물이 예상보다 덜 생산되거나 더 생산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 구조를 갖추는 데 4년이 걸렸다. 김 대표는 "매일 만드는 반찬이 다르다"며 "예상보다 많이 생산된 농산물은 반찬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적게 생산된 농산물은 케이터링이나 도시락 쪽으로 돌린다"며 "케이터링은 50명 또는 100명의 작은 단위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역 농산물을 소개할 강력한 플랫폼을 하나 더 마련하고 있다. 지역 식재료로 가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유통하려 한다. 이를 위해 내년 해썹(HACCP) 인증을 목표로 가공시설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지난 5년간 외식업을 플랫폼 삼아 지역과 도시를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 5년은 지역 농산물 유통 플랫폼이라는 지향점에 맞게 외식업 이외의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전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2021-07-20 18:03:58'개그콘서트'가 웃음은 물론, 특별한 감동까지 잡았다. 27일 방송한 KBS2 '개그콘서트' 1119회는 '아는 노래'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믿는 우리 새끼', '오스트랄로삐꾸스' 등으로 웃음보를 터트렸다. '아는 노래'에서는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선곡해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아는 노래'의 주인공은 노년의 남녀였다. 송필근은 벤치에 앉아 있는 나현영에게 다가갔고, 첫눈에 반했다며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이어 송필근은 젊은 사람들처럼 놀이동산에 가보고 싶다는 나현영의 말에 곧장 그의 손을 잡고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즐거웠던 놀이동산 데이트가 끝나고 송필근은 나현영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며 "우리 한번 같이 살아보는 건 어떠냐. 오늘처럼 웃게 해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나현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거 기억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고 곧이어 반전이 드러났다. 송필근은 이미 나현영의 남편이었으며 치매에 걸린 그는 매일 나현영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며 고백을 이어왔던 것. '아는 노래'는 이별 후 다시 만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기억을 잃은 남편이 아내에게 또다시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용으로 재해석하며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믿는 우리 새끼'에서는 '심곡 파출소'의 '미아' 윤승현이 등장했다. 이광섭은 윤승현이 아이스크림을 훔쳐 먹어서 잡아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 김진곤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할머니한테 얘기하지 그랬느냐. 어릴 때부터 작은 거 훔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타일렀다. 윤승현은 "어떻게 되는데요?"라고 물었고, 김진곤은 절도로 감옥에 갔다 온 손자 홍순목을 말없이 쳐다봐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 윤승현은 홍순목에게 다가가 "범죄자란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지?"라며 "나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오줌싸개란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라고 조언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오스트랄로삐꾸스'에선 신윤승과 이종훈이 몸으로 웃겼다. 이날 신윤승은 '삐꾸스' 이종훈의 치아 악력을 강조하며 이종훈이 이의 힘으로 성인 남성을 들어 올리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자리에 앉은 신윤승은 머리 위에서 힘쓸 준비를 하던 이종훈을 바라봤고, 그의 가랑이 사이를 보더니 "안에 뭐 좀 입어!"라고 외쳐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개그콘서트'는 매주 일요일 밤 9시 20분 방송한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KBS2 '개그콘서트'
2025-04-28 11:14:54"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식들이 돈을 많이 주니까 수중에 재산이 좀 있어요. 그걸 알고 젊은 사기꾼들이 많이 몰려오지. 난데없이 구청 노인복지과를 사칭하거나 자식인 척 결혼식이라고 문자도 보내요. 이런 일이 하도 많으니까 의심부터 하게 되죠." 지난 11일 오전 찾은 서울 강남구 소재 대치경로당 담벼락에는 '보이스피싱 3GO! 의심하고(GO)! 전화끊GO! 확인하GO!'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었다. '무더위·한파 쉼터'라는 글씨를 보고 안에 들어갔지만 기자를 처음 본 어르신들의 눈에는 경계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피해 사례를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후에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경로당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모씨(86)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노인들한테 (젊은 사람들이) 조금만 살갑게 해주면 다 넘어가서 사고가 많이 터졌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의심해서 미안하다"며 누룽지를 한 움큼 쥐어줬다. 이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13일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보이스피싱 올해 통계를 살펴보면, 피해액은 지난해 9월 249억원에서 같은 해 12월 610억원으로 3개월 간 2.5배 증가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가 서울 전체의 약 30%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금감원이나 검찰청 등 정부 기관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60대 여성은 648명으로, 전년 동기(221명) 대비 3배가량 늘었다는 경찰청 통계도 있다. 최근 강남지역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모님이 가까운 곳에 거주하시면 보이스피싱을 주의하시라고 신신당부하라"는 취지의 글이 게재되는 등 보이스피싱 경계 기류도 여럿 포착된다.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정모씨(83)는 "노인네들이 연금 모아둔 걸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돈 더 늘려준다고 해서 사기 친다고 하더라"며 "우리 아들도 모르는 전화는 절대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강남 노인들이 쉽게 보이스피싱 타깃이 되는 이유는 '현금 동원력'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금 동원 능력이 몇백만원에 그치는 서민층의 경우 보이스피싱에 성공하더라도 큰 수익을 거두기 쉽지 않다"며 "사기범들은 생활 형편이 일정 수준 이상이고, 자금을 본인이 충당하거나 주변인 또는 대출 기관에 빌려 다량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소위 '돈 있는 사람'들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관건은 '예방 교육'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곽 교수는 "보이스피싱은 계절적 요인 또는 조의금과 부의금이 많이 나가는 시기,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범행 시나리오가 바뀌는 특성이 있다"며 "다양한 범행 수법에 대한 사전 교육과 홍보를 통해 피해 우려가 있는 계층으로 하여금 대응 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노인 대상 보이스피싱 우려가 증폭되면서 강남구는 이달 들어 신한은행 강남구청지점과 협약을 맺고, 관내 경로당을 순회하며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등 범죄 대비를 강화하고 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2025-04-13 18:26:58[파이낸셜뉴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뉴트로(복고풍)' 트렌드가 지속하는 가운데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전통 디저트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 디저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7일 밝혔다. CU에 따르면 지난달 쑥, 밤, 단팥, 옥수수, 약과 등을 활용한 상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1.5% 증가했다. 올해 2월과 비교하면 23.8% 늘어난 수치다. 이는 CU 디저트 전체 매출 증가율(12.8%)보다 높다. 기존에 할매니얼 트렌드를 이끈 떡이나 약과에 더해 최근에는 빵, 샌드위치, 붕어빵과 같은 새로운 메뉴의 신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며 유행이 이어진 것으로 CU는 분석했다. 편의점 할매니얼의 원조로 꼽히는 '이웃집 통통이 약과 쿠키'는 지난 2023년 3월 출시 이래 지금까지 1000만개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밖에 양갱, 식혜, 막걸리, 소보로빵 등의 다른 할매니얼 품목도 지난달 매출이 2월보다 10∼20% 늘며 변함없는 수요를 확인했다. 김명수 BGF리테일 MD지원팀장은 "약과에서 시작된 할매니얼 트렌드가 디저트를 포함한 다른 상품으로 점차 확산하는 추세"라며 "앞으로도 다채로운 상품으로 '디저트 맛집'이라는 명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2025-04-07 09:35:03[파이낸셜뉴스] 미국의 한 100세 할머니가 고령의 나이에도 직장에 출근해 일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사연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 켄터키 주 루이빌에 거주하는 조클레타 윌슨(100)은 생활용품 유통 체인 '홈디포' 매장에 일주일에 2~3회 출근한다. 매장 내 최고령 사원인 윌슨 할머니는 아흔을 훌쩍 넘긴 지난 2021년 7월부터 홈디포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꼼꼼하게 화장을 하고 직접 차를 몰고 출근한다. 윌슨 할머니는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매장 내 계산원으로 근무한다. 4시간 내내 서서 근무하지만 힘든 기색 없이 손님들과 기분 좋은 수다를 떨기도 한다. 윌슨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에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급여보다는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위해 일을 한다"며 "고객과의 대화도 인지 기능에 도움을 주고 감정적으로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어나서 움직이고 자신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유방암을 이겨냈고 현재도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몸을 계속 움직이는 것'을 비결로 꼽았다. 젊은 시절 무용수로 일했던 윌슨 할머니는 지금도 쉬는 시간이면 춤을 춘다고 한다. 윌슨 할머니는 식습관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무조건 절제하지 않되 과하지 않게 먹는다"며 "외식을 많이 하지 않고 직접 요리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윌슨 할머니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훨씬 쉽고, 나는 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며 낙관적 태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한편 보스턴 대학교의 데보라 카 사회학 교수는 "바쁘게 지내는 것이 노인의 정신과 신체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며 "바쁘게 지내는 사람은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데 외로움은 우울증과 치매, 심장병 등의 위험을 가져오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인이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경우 주변 사람들이 노인의 건강 이상 여부 등을 조기에 알아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5-03-03 09:04:26[파이낸셜뉴스] 설날이면 으레 떡국을 끓인다. 흰 가래떡이 동그랗게 썰려 맑은 장국에서 춤을 추고, 그 위로 계란 지단과 김가루가 고명처럼 얹힌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이자 세시 음식이지만, 요즘 설날 아침 풍경은 예전 같지 않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포장된 떡국 떡을 사다 끓이거나, 배달앱으로 완성된 떡국을 시키는 일이 흔해졌다. 왕십리 근처 재래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지인의 모친이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전엔 설 일주일 전부터 떡국 떡을 만들어도 모자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쑥쑥 줄어들더니, 이젠 하루 이틀 치만 만들어놔도 다 파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고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예년만 못하다. 대형마트까지 안 가더라도 동네 중소형 마트에만 가도 이미 썰어 진공포장된 떡국 떡이 산처럼 쌓여있다. 편리하고 깔끔하지만, 시장 떡집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기록에 정확히 나온 바가 없어 추측하긴 쉽지 않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떡국의 유래에 관해 '동국세시기'(1849)를 인용해 말한다. 여기에 나온 설명을 보면 '흰떡을 엽전과 같이 썰어 간장국에 섞어 쇠고기와 꿩고기를 섞어 익힌 것'이라고 묘사돼 있다. 누가 봐도 지금 떡국의 원형으로 봐도 무방한 모습이다. 사실 떡국은 오래전부터 전해온 만큼 지역별로 여러 갈래 다르게 발전해왔다. 과거엔 벼농사가 어려운 북에선 만둣국, 남에선 떡국을 먹는 것으로 구분됐던 시절도 있었다. 평양냉면집에 가면 항상 만두와 만둣국 메뉴가 나란히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안타까운 건 떡국 하나를 가지고도 지역별로 뚜렷하게 달랐던 색깔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영 굴떡국이나 강릉 두부떡만둣국 같은 향토색 짙은 세시 음식들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젠 일부러 만들어 전시하는 민속축제에서나 맛볼 수 있는 '전시 음식'이 돼가고 있다. 전라도의 닭장떡국이나 충청도의 날떡국 같은 독특한 요리법은 젊은 세대에겐 그저 향수 어린 '할머니의 레시피' 정도로만 기억된다. 우린 지난 수십 년간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설날 아침이면 떡국을 끓이면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게 어색하지 않은 세대가 됐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가는 건 단순한 '맛'이 아니다. 떡집 아주머니의 손맛이 사라지고, 시장 골목의 정취가 희미해지는 건 우리 삶의 결이 조금씩 메말라가는 것과 같다. 물론 모든 변화가 나쁜 건 아니다. 1인 가구도 편하게 설날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설날 음식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건 단순한 '전통 지키기'가 아니라, 우리 식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설날이면 떡국을 끓이던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 시장 떡집에 줄 서서 기다리던 설렘, 이웃과 나누어 먹던 세시 음식의 정겨움. 그것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우리 삶의 결을 이루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천편일률적인 배달 음식과 즉석식품이 범람하는 시대에, 우린 과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이 찾아왔다. 떡국을 먹으며 한 살을 더하는 풍습은 여전하지만, 그 맛과 정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편리함 이면에 숨은 상실의 그림자를 돌아보며, 우린 과연 어떤 설날 풍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하얀 떡국 그릇에 비친 우리의 미래가, 단순한 배고픔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2025-01-28 14:59:31[파이낸셜뉴스] 중국의 한 교수가 성공한 직장인 여성은 대체로 수명이 짧고 자녀를 10명 낳은 여성은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쳐 논란이 일고 있다.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현지 매체를 인용해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한 대학교수가 '10명의 자녀를 낳은 여성은 100세까지 살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교수는 강의 도중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신이 은혜를 베풀어 더 오래 살게 할 것이며 성공한 여성은 대개 수명이 짧다"며 "8~10명의 자녀를 낳은 시골 할머니들은 보통 90세 또는 100세까지 살고, 병에 걸릴 확률도 매우 적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연간 30만위안(약 6000만원)을 번다고 알려졌다. 다만, 그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교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해당 교수의 발언을 담은 영상은 현지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확산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정확한 과학적 증거가 있느냐", "분만 중 죽는 여성들도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냐",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주장이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인구 감소와 출산율 저하에 직면했다. 2022년에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2023년 출생 인구는 902만명으로 2년 연속 신생아 수가 1000만명을 밑돌았다.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평균 출생아 수)도 1.0명을 기록해 미국(1.62명)보다 낮으며 한국(0.72명)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자 중국 당국은 중국 지방정부가 20대와 30대 기혼 여성에게 전화해 임신 계획을 물어보고 부모들에게 현금을 지원하며 자녀를 두 명 이상 낳도록 장려하는 등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다만 주요 외신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공식적인 정책만으로는 젊은 세대가 가정을 꾸리도록 설득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업률이 높고 경제 성장이 부진한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왕펑 중국 인구 통계 전문 교수도 "중국 정부의 출산 장려 캠페인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면 높은 생활비뿐 아니라 심각한 불이익도 겪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1-13 07:09:59[파이낸셜뉴스] 젊음을 유지하는 데 억대의 비용을 써온 미국의 40대 여성이 20세 아들의 혈액을 수혈받아 '나이를 먹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공개해 화제다. 6일 더선 등 외신에 따르면 자신을 ‘인간 바비’로 칭하는 마르셀라 이글레시아스(47)는 23세 아들 호드리고의 혈액을 수혈받아 노화를 늦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약 8만 파운드(1억 4600만원)를 미용 성형 수술에 투자해왔다. 주로 비침습적 주사 치료를 선호해왔지만, 올해는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더선은 “이글레시아스는 젊은 사람의 혈액 수혈이 세포 재생을 촉진하고 신체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특히 혈액 기증자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드리고는 “어머니 계획에 동참하게 돼 매우 기쁘다”면서 "75세인 할머니 그라시엘라에게도 혈액을 수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글레시아스는 올해 초 첫 수혈 수술을 계획 중이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의사를 물색 중이다. 혈액 수혈은 1~4시간, 혈장 수혈은 30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글레시아스는 혈액 수혈과 함께 엄격한 생활 관리도 병행하고 있다. 육류와 술, 설탕 등을 식단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매일 최소 1시간 이상 운동과 8시간의 수면을 취한다. 이글레시아스는 “사람들이 제가 23세 아들의 엄마라는 걸 알면 너무 젊어 보인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젊은 피가 노화 늦출 수 있다는 동물실험은 존재 한편, 이같은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노화 방지를 위한 ‘회춘 프로젝트’에 해마다 200만 달러(약 27억원)를 들이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47)은 2023년 17세의 아들, 70세의 아버지와 3대에 걸쳐 혈액 교환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각각 자기 몸에서 1ℓ에 달하는 혈액을 뽑았고, 아들의 혈액에서 분리된 혈장은 존슨의 몸에, 존슨의 혈액에서 분리된 혈장은 아버지에게 수혈했다. 현재 젊은 피가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는 존재한다. 197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은 젊은 쥐의 피를 늙은 쥐에게 전달했더니 수면이 연장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05년에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토마스 란도 연구팀이 젊은 쥐의 피가 늙은 주의 간과 골격을 재생시킨다는 사실을 네이처지에 공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젊은 혈액을 수혈하면 노화 방지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2024년 6월, Cell press에서 발행하는 '헬리온(Heliyon)'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젊은 혈액은 뇌, 간, 골격근과 같은 장기의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심장 근육을 강화하고, 인지 기능을 개선하며, 염증을 줄이고, 산화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거나 효과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현재 젊은 사람의 혈액 수혈이 실제로 나이를 되돌릴 수 있다는 임상 증거는 제한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젊은 기증자의 혈장을 사용하는 치료법이 충분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 안전성과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1-06 06:58:49[파이낸셜뉴스] 생리통을 심하게 앓는 여성이 고통을 참지 못해 지하철 교통약자석에 앉았다가 할아버지에게 욕설을 들었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여성 A 씨는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가 이 일의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지하철에서 겪은 일을 전했다. A 씨에 따르면 그는 출산 후 생리통이 더 심해졌다. 잠깐 서 있어도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는 정도다. 이번에도 지하철을 탔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도저히 서 있기가 힘들어 마침 비어 있는 교통약자석 한 군데에 앉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흠칫하는가 싶더니 창백해진 얼굴을 보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 역에서 탑승한 할아버지였다. A 씨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보자마자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생리통 때문에 아픈 것도 서러워죽겠는데 모르는 할아버지한테 욕까지 듣고 있으니 눈물 날 것 같았다. 결국 다음 역에서 도망치듯 내려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생리통이 심해서 노약자석에 앉은 게 그렇게 잘못인 건가. 원래도 생리 기간에는 외출을 꺼리는 편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힘들어질 것 같다. 생리통 하나 때문에 이게 웬 개고생인지도 모르겠고 속상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누리꾼들은 "아파서 그렇다고 말하지 그러셨나", "외적으로 보이는 거 말고도 몸이 너무 힘든 젊은 사람들도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11-28 08:32:31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쟁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캘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덜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산맥, 미국 남서부의 애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의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 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 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8 18: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