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30)는 지난해 5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청년 봉사단체인 '코리아레거시커미티'였다. 홈리스를 위한 도시락 150개를 함께 제작해줄 업체를 찾는다고 했다. 코로나19 탓에 홈리스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가 기억났다. 김 대표는 흔쾌히 수락했다. 수익이 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해가 나지도 않았다. 식재료 비용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소녀방앗간도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상황이었다. 농산물을 보내주는 지역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매장을 일궈올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서울 어르신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시작한 '150개 도시락'은 곧 1만개 도시락 기부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캠페인을 시작한 뒤 배달의민족에서도 연락이 왔다. '방학 도시락' 사업을 같이하자고 했다. 방학 때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겨울 500명의 아이들에게 주 2회씩 총 7000번의 건강한 집밥을 보냈다. 소녀방앗간이 내놓는 모든 음식은 발효간장, 발효청 등으로 맛을 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자극적인 맛에 길든 아이들이 좋아할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아이들은 '집밥 같아서 좋았다' '엄마가 해준 밥 같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올 여름방학에도 아이들에게 집밥을 보내게 됐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도시락 사업이었는데 거꾸로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매장 판매가 급감했다. 케이터링 매출은 아예 제로(0)에 수렴했다.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까지 했던 그가 힘을 낸 계기였다. ■지역 농산물로 농가와 도시를 잇다 소녀방앗간은 2014년 성수동 1호점을 오픈한 뒤 현재 6호점까지 늘어났다. 어르신들이 지역에서 키운 농산물을 받아 건강한 집밥을 내놓는다. 케이터링, 도시락 사업을 통해 음식을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식재료도 판매한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소녀방앗간 6호점에서 만난 김민영 대표는 소녀방앗간을 "지역의 농산물을 서울의 도시 소비자에게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는 농산물 유통회사"라고 정의했다. 그는 "유통마진만 남기고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녀방앗간은 농산물을 한 번 더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며 "성수동에서 처음 시작한 소녀방앗간 1호점도 지역 식재료를 직접 맛보여드릴 수 있는 쇼케이싱 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소녀방앗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경북 청송에서 어르신들이 내어준 '집밥'이었다. 2년간 치열하게 일했던 회사를 그만둔 뒤 내려간 곳이었다. 시골에서 직접 키운 농산물로 만든 집밥은 어떤 음식보다 맛났다. 고봉밥을 뚝딱 비워냈다. 건강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만큼 마음도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 마음을 전한 농산물은 헐값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농가 소득도 들쭉날쭉했다. 어르신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농가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도시에는 건강한 식재료를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다. ■2주 만에 만들어지는 공장식 된장은 NO 2014년 시작한 소녀방앗간은 7년 만에 6개 매장으로 늘어났다. 외식업 트렌드는 보통 5년이다. 한 브랜드가 5년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다. 게다가 입점이 쉽지 않은 백화점과 대형쇼핑몰에 전체 매장의 절반인 3개점이 들어가 있다. 집밥과 백화점은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감사하게도 먼저 입점을 제안해주셨다"면서 "(입점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새로운 매장을 열면 식재료를 더 사용할 수 있어서 농가 소득이 올라가고, 그만큼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며 "재무적인 가치만 생각했다면 오히려 대형몰 입점을 선택하지 않고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가게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6개 매장을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칫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의 지향점이 흔들릴까봐서다.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보다 회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꾸려나갈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소녀방앗간은 이윤만 생각했다면 사용할 수 없는 비싼 식재료를 쓴다. 된장이 대표적이다. 지역에서 직접 1년 이상 발효한 것을 쓴다. 공장에서 제조하는 된장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공장식 된장의 대다수는 중국산 콩을 사용해 1~2주 만에 완성된다. 직영 방식을 포기하고 무리하게 확장하면 이 같은 가치를 지켜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다. 김 대표는 "외식업에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중국산을 쓰면서 국내 농산물이 소외당하고 있다"며 "국내 농산물의 판로를 만들겠다고 나온 청년들인데 비용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맛과 가치를 함께 담은 음식 소녀방앗간이 6호점까지 매장을 내면서 7년간 생존해온 비결에는 회사의 사회적 가치에 공감해준 고객들 몫이 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철저한 품질 관리와 회사의 가치를 담은 브랜딩에 힘쓴 결과이기도 하다. 외식업의 세계는 냉혹하다.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해 매장을 찾는 고객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고객도 만족시켜야 한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찾는 대형몰 매장은 더욱 그렇다. 쇼핑하러 왔다가 적당한 식당을 찾아 끼니를 때우려는 고객에게 맛과 가치를 모두 전해야 한다. 김 대표는 사업 시작 4년차에 현장운영 워크북을 만들었다. 하루 단위, 보름 단위, 월 단위 평가 양식을 담았다. 김 대표가 고민해 만든 현장 운영 관리시스템이다. 매장 직원들이 하루를 돌아보며 잘된 점과 부족했던 점 등을 적는다. 보름마다 모여 중간점검 회의를 연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다. 메뉴마다 준비하는 과정과 상차림 하는 방법도 사진을 곁들여 자세히 설명해뒀다. 6개 매장에서 동일한 맛과 상차림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현장 직원이 음식을 내면서 손님에게 전할 먹는 방법과 식재료 설명 멘트도 넣어뒀다. 예를 들어 산나물밥의 경우 현장 직원들은 아래와 같이 안내한다. "오늘 산나물밥은 취나물과 어수리나물로 밥을 지었습니다. 직접 짜온 들기름과 재래식 간장으로 살짝 간이 되어있는데 드셔보시고 간이 부족하시면 함께 준비해드리는 들기름 간장양념으로 간을 더해드시면 됩니다." 이런 김 대표에게 주변 사람들은 '밥집 하는 데 뭐 그렇게 유별나게 하느냐'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정성 들여 농산물을 키우신 어르신들의 땀과 매일 새벽 부지런히 움직이는 물류팀의 노고, 매일 성실하게 밥을 짓는 조리팀의 노력이 모두 담긴 한 상"이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맛있게 드세요' 정도만 말하면서 서빙을 하면, 그 순간 그 가치가 사라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소녀방앗간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라벨링"이라고 설명했다. ■해썹인증 준비…가공식품 판매도 진출 소녀방앗간은 총 네 가지 방식으로 지역 농산물과 소비자를 연결한다. 식당, 온라인몰, 케이터링, 도시락이다. 지역 농산물이 예상보다 덜 생산되거나 더 생산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 구조를 갖추는 데 4년이 걸렸다. 김 대표는 "매일 만드는 반찬이 다르다"며 "예상보다 많이 생산된 농산물은 반찬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적게 생산된 농산물은 케이터링이나 도시락 쪽으로 돌린다"며 "케이터링은 50명 또는 100명의 작은 단위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역 농산물을 소개할 강력한 플랫폼을 하나 더 마련하고 있다. 지역 식재료로 가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유통하려 한다. 이를 위해 내년 해썹(HACCP) 인증을 목표로 가공시설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지난 5년간 외식업을 플랫폼 삼아 지역과 도시를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 5년은 지역 농산물 유통 플랫폼이라는 지향점에 맞게 외식업 이외의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전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2021-07-20 18:03:58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쟁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캘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덜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산맥, 미국 남서부의 애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의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 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 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8 18:34:22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장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칼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델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 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게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녀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녀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 산맥, 미국 남서부의 아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 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6 16:46:08[파이낸셜뉴스] 이마에 뿔이 자라고 있는 107세 여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마에 10cm 길이 뿔이 난 여성 지난 29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 더 미러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에 사는 첸이라는 여성의 이마에 최근 몇 년 동안 뿔이 자라기 시작했다. 현재 뿔은 약 10cm 길이까지 자랐다. 첸은 SNS 더우인에 자신의 뿔을 보여주는 영상을 올렸고, 그의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건강한 107세 할머니에게 뿔이 생기니 장수의 상징처럼 보인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의료진들은 첸에게 생긴 뿔이 '피부뿔'(Cutaneous horn)이라며 자외선에 노출돼 발생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건강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했다. 첸은 "뿔 외에 별다른 건강 문제는 없다"라며 "앞으로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뿔을 제거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자외선 노출이 심한 신체 어디에서든 발병할 수 있다 '피각'으로도 불리는 이 피부 질환은 피부의 가장 바깥층인 표피의 과도한 성장으로 뿔 모양의 돌기가 생기는 병이다. 신체 어디에서든 발병할 수 있는데 주로 자외선 노출이 심한 얼굴, 손, 팔 등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길이도 다양하다. 1588년 영국 웨일스에서 처음 보고됐고, 16세기 덴마크 해부학자 토마스 바르톨린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 과거부터 존재한 병이지만 전 세계의 환자 수를 정확히 집계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피부병이다. 피각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60~70세 노인들에게 발병할 확률이 높다. 뿔은 대부분 직선, 곡선으로 단단하고 노랗게 생겼다. 뿔이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하면서 염증이 동반되는 일도 잦다. 염증이 생기면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피부암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일단 피각이 발견되면 조직검사를 빨리 받는 것이 좋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진 바 없지만 지루성 각화증, 바이러스성 사마귀 등이 영향을 준다고 알려졌다. 편평상피암 등 피부암의 합병증으로도 잘 발생한다. 피각을 막는 뚜렷한 방법이 없는 만큼 평소 자외선 노출을 줄이고, 피부에 못 보던 돌기가 생기면 검사를 받는 게 좋다. 피부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조직검사 받아야 지난해 10월 중국 산시성에 사는 92세 여성도 이마에 뿔이 나 병원을 찾은 바 있다. 조직검사 결과 이 여성의 피각은 피부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각질가시세포종인 것으로 밝혀져 제거 수술을 받았다. 2019년 인도에서도 74세 남성의 머리에 ‘10㎝짜리 뿔’이 생겨 제거하는 수술이 이뤄진 바 있다. 이 환자는 5년 전 머리를 다친 뒤 뿔이 생겼다고 한다. 그 후 뿔이 자라면 정기적으로 지역 이발소에서 잘라냈다. 하지만 이 뿔은 제거할수록 더 빠르고 크게 자라 결국 이 환자는 병원을 찾았고, 수술로 제거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31 20:03:00[파이낸셜뉴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중심 도시 휴스턴을 찾아 낙태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가장 제한적인 낙태 금지법이 있는 주 중 하나다. 해리스는 "우리는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옹호하고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우리는 미국에서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 얻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바로 여기 텍사스는 생식권 자유를 위한 싸움의 시작점"이라며 "텍사스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의료 위기이고, 도널드 트럼프가 그 설계자"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것에 대해 자랑한다"고 공세를 펼쳤다. 그러면서 "그(트럼프)는 여성이 죽어가는 것이 자랑스럽고, 의사와 간호사가 생명을 구하는 치료를 했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오늘날 미국의 젊은 여성이 그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보다 더 적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승리한다면 그는 전국적으로 낙태를 금지할 것"이라며 "오늘 밤 우리는 텍사스에 있지만, 다른 주인 미시간이나 펜실베이니아, 네바다, 뉴욕, 캘리포니아의 유권자들이 생식의 자유를 보호하는 주에 살고 있어서 트럼프의 낙태 금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그리고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네바다를 포함한 전국 10개 주에서 생식의 자유가 투표용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노력으로 자유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오는 11월 5일 미 대선일에 미국 10개 주에서 낙태권을 주 헌법에 명시하는 안을 놓고 주민 투표를 벌이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해리스는 "이제 선거일이 11일 남았다"며 "이제는 여러분이 투표를 시작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유세장에는 팝스타 비욘세와 그의 어머니인 티나 놀스도 참석해 해리스를 지지했다. 휴스턴 출신으로 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나온 비욘세는 "나는 유명인으로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걱정하는 엄마로서 여기에 왔다"며 "내 아이들과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자기 몸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세상, 분열되지 않는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딸들이 (유리) 천장이 없고 한계가 없는 세상에서 가능한 것들을 보면서 자란다고 상상해 보라"고 덧붙였다. 비욘세는 "우리는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라고 해리스를 소개했다. 다만 비욘세는 이날 공연은 하지 않고 짧은 연설을 마친 뒤 무대 뒤로 들어갔다. yon@fnnews.com 홍요은 기자
2024-10-26 14:12:47드라마 ‘전원일기’로 스타덤에 올랐던 ‘일용엄니’ 김수미가 25일 별세했다. 김수미는 이 드라마에서 32세의 젊은 나이에 60대 노모 ‘일용 엄마’를 연기해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주목받았다. 특히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를 구축해 김수미만의 당찬 연기, 걸걸한 입담의 코믹 연기로 드라마, 영화를 종횡무진했다. 요리 실력도 뛰어나 지난 1982년에는 요리 프로그램 ‘오늘의 요리’를 진행했으며, 2005년에 ‘김수미 간장게장’이란 이름으로 홈쇼핑 등을 통해 간장게장을 판매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요리 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을 론칭했다. 생전에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김혜자는 “김수미요? 걔 정말 좋은 배우”라고 칭찬했다. 이어 “한국 아니고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됐을 거예요. 난 걔 어떨 때는 너무 불쌍해요. 너무 많은 걸 가졌는데, 그걸 표현해 줄 역이 없었다는 게... (그 시대에) 제일 표현해 줄 수 있는 역이 일용 엄마였어요”라고 말했다. 김수미는 오히려 60대부터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마파도’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 시리즈, ‘맨발의 기봉이’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스크린에서 맹활약했다. 2015년엔 '전국의 욕 달인들이 모여 TV쇼에서 욕 배틀을 펼친다'는 내용의 영화 ‘헬머니’의 단독 주연을 맡았다. TV에서는 ‘수미네 반찬’ ‘밥은 먹고 다니냐?’ ‘수미산장’ ‘회장님네 사람들’ ‘익스큐수미: 일단 잡숴봐’ 등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젊은 세대까지 사로잡았다. 74세 나이에도 홈쇼핑, 뮤지컬 등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최근 피로 누적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한양대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김수미는 이날 오전 8시께 김 씨가 자택에서 심정지로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 성모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사망판정을 받았다. 이날 아침 방배동 자택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가족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의 빈소는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10-25 10:39:19[파이낸셜뉴스] 충청남도 아산의 한 주택에서 30대 친모의 지속된 학대로 지적장애를 갖게 된 6세 아이는 엄마가 열흘 동안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결국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문 앞에는 4개월 동안 연체된 전기료의 경고문과 복지서비스 안내문들이 붙어있었다. 젊은 애인과 여행을 떠난 엄마가 묶어 놓은 쇠사슬을 끌고 배고픔에도 어떤 도움의 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6세 아이는 보름 동안 엄마를 기다리다 싸늘하게 죽어갔다. 이 같은 내용의 영화 '울지 않는 아이'는 지난 2022년 발생한 아동 학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 영화는 301호의 남자 정민이 새벽마다 거슬리는 신발 소리와 소음을 내는 302호 여자가 여행가방을 들고 돌아오지 않는 집에 혼자 남겨진 여자 아이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정민은 열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여자와 어쩌면 집에 혼자 갇혀있을 아이가 걱정되지만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어른의 책임을 방임한다. 보름이 지난 밤, 302호 앞을 서성이는 할머니에게서 그 집에 손녀가 살고 있음을 확인한 정민은 그제야 경고장이 잔뜩 붙어있는 굳게 닫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어린아이를 발견한다. 허리에 쇠사슬로 묶인 채 굶주림에 죽어있는 손녀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정민은 분노로 가득하다. 울부짖는 할머니의 눈물에 멈춰있던 아이의 숨이 가늘게 피어나기 시작하고 그렇게 씨앗은 죽지 않고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경찰과 함께 병원을 찾아 온 엄마에게 빼앗기다시피 손녀를 보낼 수 밖에 없는 할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학대로 죽어가는 손녀를 살리기 위해 위대한 희생을 선택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1년이 넘는 시간을 표류하며 완성조차 하지 못 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미술작품 IT경매전문 기업인 아트컨티뉴의 관심과 도움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됐다. 아시아 필름 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과 유바리 국제영화제, 하노이 국제영화제등의 공식 상영 작품으로 선정된 영화 '울지 않는 아이'는 내년 2월 국내 개봉될 예정이다. 최대철, 이칸희, 이슬아, 박정학, 김준현 배우가 출연하며 아역 배우 박은별양이 학대 받는 아이 수아역을 연기한다. 장편영화 '스케치'와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 합창단:또 하나의 꿈'을 연출한 이혁종 감독이 각본, 감독, 제작을 겸한다. 아트컨티뉴 측은 "이 작품은 손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할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그리며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한다"며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며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줄 것"이라고 평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10-24 15:15:59[파이낸셜뉴스] 국숫집에서 음식을 시키고는 포장해온 전어회를 내놓고 먹겠다는 한 노인의 막무가내 행동에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18일 '아프니까 사장이다' 카페에 '좋은손님, 진상손님' 코너에는 서울에서 국숫집을 7년째 운영하는 A씨가 최근 겪은 어처구니 없는 사연이 소개됐다. 국수가게 사장 A씨는 7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외부음식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처음에는 외부음식 먹는 것을 허용했지만 국수와 외부음식인 빵을 같이 먹고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 드러눕는 단골 손님이 있었고, 손님을 부축해서 병원으로 갔던 사태를 겪고 이후로는 외부음식 반입 금지를 써놓고 가게를 운영했다. 며칠 전 A씨 가게에 오후 2시가 넘어 한 할머니가 들어왔고 비빔국수를 시켰다. A씨가 국수를 삶고 고명을 얹어 음식을 내려는 사이 할머니는 보자기에서 전어회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A씨는 "혹시 전어회를 드시려고 꺼낸 것은 아니겠죠"라며 웃었지만 할머니는 "전어철이라 마트에서 산 전어를 비빔국수랑 같이 먹으려고 꺼낸 건데?"라고 답했다. A씨는 여기는 국숫집이고 전어회를 여기서 먹는 것은 불가능하고 집에 가서 먹으라고 안내했지만 할머니는 "비빔국수 값을 낼거고 여기서 같이 먹으려고 들어온 건데, 왜 안돼냐"며 비빔국수에 전어회를 먹고 다른 곳을 가야하기 때문에 같이 먹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A씨는 할머니가 반말로 일관하고 가게에 들어오면서도 중얼중얼 거리는 등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우리 가게는 외부음식 반입이 금지고 여기서 회를 먹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정 드시려거든 포장을 해라"라고 말했고 그래도 할머니가 듣지 않자 돈을 받지 않을테니 가게에서 나가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에 할머니는 기분이 상했는지 격분해 언성을 높이면서 반말과 욕설을 늘어놓았고, A씨는 가게에서 나가줄 것을 재차 요청했지만 할머니는 가게에서 버티기 시작했다. 나이든 손님을 강제로 가게 밖으로 내칠 수도 없어 A씨는 영업방해를 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경찰에 빽이라도 있냐"며 "대통령이 와봐라 내가 나가나"라고 대응하며 버텼다. 할머니가 큰 소리를 내면서 안에서 주방일을 보던 B씨도 홀로 나와 나가줄 것을 요구하자 할머니는 반말과 욕을 하며 싸우는 등 소동이 벌어졌고 결국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도 "회를요? 여기서요? 이 가게에서 회도 파나요?"라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 할머니는 경찰이 오고 나서도 10분 넘게 실랑이를 벌였다. 이어지는 욕설에 현장에 온 젊은 경찰도 "욕을 왜 합니까? 욕하지 마세요"라고 할머니를 말리는 입장이 됐다. 젊은 경찰과 함께 온 경찰이 할머니를 달래 가게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도 할머니는 가게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고 결국 일은 40분만에 일단락이 됐다. 점심 시간도 지난 오후 시간에 벌어진 소동에 대해 누리꾼들은 "회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어디에 화풀이를 하려고 저러는지..."라고 반응했고, "비빔국수에 고명처럼 전어회를 넣어서 먹을 거라면 집에 포장해가서 먹으면 될 일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또 다른 소상공인은 "냉면집에 홍어를 싸가지고 와서 펼쳐놓고 먹는 손님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며 "몰상식에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2024-10-18 15:15:02[파이낸셜뉴스] 다양한 주종과 음료에 맞춰 음식을 매치하는 ‘푸드 페어링’이 젊은 층 사이에서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외식업계가 ‘와인 페어링’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8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매드포갈릭은 레드와인부터 로제와인, 샴페인 등 약 80여 종의 와인리스트를 갖추고 있다. 이와 함께 와인 주문 고객에게 바나나 크레이프 파우치, 밀 크레이프, 바스크 치즈 케이크 등 와인과 잘 어울리는 디저트를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와인 페어링 메뉴’도 같이 내놓고 있다. 매드포갈릭은 고객의 취향에 맞춰 메뉴에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유명 와인 생산지에서 생산된 최고 품질의 와인을 독점으로 수입해 선보이는 PB와인도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국내 최초로 단 1000병 독점 수입한 이탈리아 피에몬테 와인인 ‘엔조 바톨리 바롤로 부시아’와 ‘엔조 바톨리 바르바레스코 리오 소르도’ 2종을 최대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한정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보쌈 브랜드 원할머니 보쌈족발은 논현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한식과의 와인 페어링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원할머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기존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메뉴와 함께 한식과 조화가 좋은 와인들을 선별해 선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콜키지 프리 서비스 제공, 와인대학교와의 콜라보 행사 등 고객의 요구와 맞춰 다양한 프로모션을 이어가고 있다. 호텔업계도 와인 페어링을 앞세운 가을 프로모션이 한창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엑스트림 차이니즈’ 고메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전 세계 270여명 밖에 없는 마스터 소물리에 중 한 명인 ‘데니스 켈리’ 소믈리에가 손수 선정한 와인 페어링을 선보인다. 임피리얼팰리스 서울 뷔페 ‘패밀리아’는 가을 제철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어텀 시푸드’ 프로모션에서 별도 금액 추가 없이 하우스 와인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하우스 와인 무제한 제공’ 행사를 진행한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피자힐에서 4종의 와인과 5종의 신선한 샐러드, 2종의 피자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테라스 세미 와인 뷔페’를 마련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통상 와인은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부터 연말 행사가 이어지는 겨울까지 성수기로 꼽혀 이 시기 업계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한 것이 사실”이라며 “음식과 주류의 꿀조합을 의미하는 페어링이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잡음에 따라 외식업계에서도 와인과 잘 어울리는 메뉴를 다양하게 선보이는 한편 한정판 독점 와인을 소개하는 등 자체적으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10-08 10:09:34[파이낸셜뉴스] 중국의 한 젊은 여성이 어린 소녀와 함께 여행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영상 속 여성이 소녀의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최근 더우인, 웨이보 등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얼핏 봐서는 할머니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어려보이는 외모에 중국 누리꾼들은 ‘실제 할머니가 아닌 것 같다’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하지만 온라인 매체 오디티 센트럴에 따르면 중국 톈진에 사는 40대라고 밝힌 이 여성은 자신이 어린 나이에 딸을 낳았기 때문에 일찍 할머니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랑하는 손녀와 함께 영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화제가 된 점이 당황스럽다는 말도 남겼다. 동안 외모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피부 관리에 시간을 투자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균형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젊게 보이는 옷을 즐겨 입기 때문에 나이보다 어리게 봐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10-03 0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