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달 말 중국 장쑤성에서 발견된 쇠사슬에 묶인 여성이 인신매매로 농촌에 팔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신매매로 팔려온 이 여성의 남편이 그녀와 사이에 자녀 8명이 있다고 자랑하는 영상은 중국 내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오늘 24일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어제 23일 '펑(豊)현 8자녀 출산 여성'으로 이름 붙인 이른바 '쇠사슬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건이 중국인의 공분을 불러일으키자 중국 당국은 인신매매 사실을 인정하고 관련 공직자 17명을 처벌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26일 한 블로거가 장쑤성 쉬저우(徐州)시 펑현의 한 판잣집에서 쇠사슬에 목이 묶여 있는 40대 여성 양모 씨를 촬영한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지난 17일 꾸려진 장쑤성 특별 조사팀은 양 씨가 두 차례 인신매매를 당했고 조현병을 앓고 있어 현재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펑현 검찰은 지난 22일 양 씨의 남편 둥 씨를 학대죄 혐의로 체포했다. 양 씨는 1998년 6월 둥 씨의 부친이 돈을 내고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수사팀은 그동안 네티즌이 의문을 제기한 양 씨와 둥 씨의 결혼증명서 사진 속 여성과 양 씨는 동일 인물이며 양 씨가 쓰촨(四川)성에서 실종된 여자 어린이 리잉(李瑩)은 아니라고 밝혔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2022-02-24 08:09:39[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때는 조선 전기, 1431년 세종대왕이 집권하는 시대였다. 세종은 집현전과 내의원 학자들에게 의서를 편찬할 것을 명했다. “조선 땅에서 나는 향약으로 백성을 치료할 수 있는 의서를 편찬하도록 하라”라고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의서에서 부르는 약초명과 조선의 백성들이 부르는 향약(鄕藥) 명이 서로 달라서 정리할 필요성이 절대적이었다. 이미 시골 마을에서는 향약으로 많은 병을 고치고 있었던 터였다. 이러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무엇보다 중국에서 약초를 비싼 값을 주고 수입하지 않아도 되기에 절실했다. 세종은 먼저 의관들을 선발해서 사신들을 따라서 북경으로 보냈다. 그래서 당시 북경에서 구할 수 있는 중국의 의서들을 모두 구해 와서 정리하도록 명했다. 특히 중국의 약초명과 조선의 향약명이 서로 다른 오류를 바로 잡아서 매번 보고를 하도록 명했다. 의관들은 세종이 불쑥불쑥 내의원(內醫院)으로 행차를 해서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세종의 관심은 그만큼 각별했다. 1431년 가을, 집현전 학자인 유효통, 전의감(典醫監)의 노중례와 박윤덕을 주축으로 해서 중국의 의서와 조선에서 출간된 방서를 모두 빠짐없이 모아서 증상과 치료별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집현전은 궁중에 있는 조선 최고의 학문 연구기관이었고, 전의감은 의약의 공급과 임금이 하사하는 의약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던 관서다.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제법 많은 양의 방제와 증례가 모였다. 이전에 출간되었던 '향약제생집성방'의 증례, 처방 그리고 침구법들이 수배에서 수십배가 늘었다. 학자들은 이것을 모두 모아서 본초와 향약의 정리, 약제들의 포제법(炮製法)을 첨부하여 모두 85권을 만들어 세종에서 올렸다. 세종은 신하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직접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라 명명하고, 책으로 엮어 간행하도록 명했다. 그런데 아직 미완성이었다. 아직 서문이 없었던 것이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인 신하 권채(權採)에게 명하여 서문을 쓰게 하였다. 권채는 당시 세종의 스승으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 중 한 명이었고 세종의 총애를 받은 신하였다. 그런데 집현전 학자들은 권채가 서문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술렁거렸다. 몇 년 전 권채는 여종을 학대해서 죄를 지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명이기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고, 권채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서문을 썼다. 권채의 서문을 보면 “.... 저 권채가 간절히 생각건대, 임금의 도는 인(仁)보다 큰 것이 없고 인도(仁道)가 지극히 큼에 또한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 주상전하께서 성대한 덕으로 지극한 정치를 펴서 자리를 지켜 정사를 발(發)함에 인도(仁道)의 큰 것을 온전히 체득하시어 의약으로 백성을 구제하는 일과 같은데, 이르러서도 정성스러움을 이와 같이 하시니 어진 정치의 본말(本末)과 크고 작은 것이 모두 극진해서 빠진 것이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선덕(宣德) 8년(1433년) 6월 통정대부 성균관 대사성 직수문 전지제 교 신하 권채는 삼가 서문을 씁니다.”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권채가 쓴 서문을 보면 ‘인(仁)’이란 단어가 나온다. 인(仁)은 어질다는 말이다. 권채는 서문에서 당연히 주상인 세종이 인(仁)하고, 세종이 어진 길인 인도(仁道)를 행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권채의 붓끝에서 인(仁)이란 단어가 쓰여졌다는 것에 대해 신하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로부터 6년 전의 이야기다. 당시 형조판서 노한(盧閈)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노복이 어떤 물건을 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언뜻 보니 등에 이고 있는 짐은 사람의 형상을 띠었고 가죽과 살은 모두 말라 살에 붙어 있었으며 마치 미라와 같았다. 노한은 깜짝 놀라 물었다. “지금 등에 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노복은 “집현전 응교 권채의 가비(家婢)입니다.”라고 했다. 노한은 다시 “아니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냐?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것 같은데, 사실대로 고하라?”라고 호통을 쳤다. 노복은 권채의 후한이 두려웠지만, 권채보다 권세가 높아 보이는 관리가 묻기에 벌벌 떨며 사실대로 말했다. “권채 대감은 이 여종이 도망한 것을 미워하여 광에 가둬서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노한은 ‘권채가 어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하고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노한은 길에서 본 사건을 세종에게 고했다. 사실 권채는 세종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기에, 권채의 실체에 대해 반드시 고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형조에서 이미 조사를 시작했지만 방해가 심해서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해 미처 계달(啓達)하지 못했다고 했다. 세종은 “나는 권채가 품성이 편안하고 세심한 배려를 하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그가 그렇게 잔인했더란 말이냐. 반드시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된 것인지 끝까지 조사하여 고하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의금부에서는 왕의 명을 받아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그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1427년 경, 집현전 학자인 권채는 일찍이 여종 덕금을 첩으로 삼고 있었다. 덕금은 어느 날 병든 조모를 문안하고자 하여 휴가를 청했다. 권채는 허락하는 듯했으나, 권채의 아내 정씨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덕금은 조모가 위독하다니 잠시 다녀올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덕금이 있느냐?”라고 정씨 부인이 덕금을 찾았다. 그러나 덕금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정씨는 몰래 집을 나선 덕금이 괘씸하다 여기고 대감에게 “덕금이가 방금 전 다른 남자와 간통하고자 하여 도망갔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부인 정씨는 덕금이 첩인 것에 질투심이 있었고 항상 미웠던 것이다. 덕금이 돌아오자 권채는 부인이 시키는 대로 덕금의 머리털을 자르고 매질을 했다. 그리고 왼쪽 발목에는 고랑을 채워서 광 속에 가뒀다. 자초지종도 없이 당하는 터라 덕금은 뭐라 변명도 못했다. 부인 정씨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덕금을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정씨가 부엌에서 식칼을 가지고 와서 광에 들어가려고 하자, 여종 녹비가 부인을 막아서며 “마님, 만약 덕금이의 목 베신다면 여러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마님은 살인자라는 오명 쓰게 됩니다. 그러니 고통을 주어 저절로 죽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덕금은 그날 죽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덕금은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어서 밖을 나올 수가 없었고, 대소변은 어떨 수 없이 광의 구석에서 해결해야 했다. 부인 정씨는 물과 음식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주면서 핍박했다. 심지어 덕금이 싸 놓은 오줌과 똥을 먹게 했다. 한번은 덕금이 똥에 구더기가 생겨 먹지 않으려 하자 정씨는 침으로 덕금의 항문을 찔렀다. 온 집안에 덕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덕금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똥과 구더기까지 억지로 삼켰다. 부인 정씨의 침학(侵虐)은 수개월 동안 이어졌고, 그 잔인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권채는 이를 익히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었다. 덕금은 결국 고문을 당하면서 거의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죽었다. 그러자 죽은 덕금을 노복이 등에 지고 묻으러 가다가 길에서 형조판서를 만난 것이다. 의금부에서는 이와 같은 조사결과를 왕에게 고하면서 “원컨대, 권채의 직첩(職牒)을 회수하고 그 부인 정씨와 함께 모두 잡아 와서 국문(鞫問)하여 징계할 것입니다. 형률에 의거하면 권채는 곤장 80대, 부인 정씨는 곤장 90에 해당합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서서.”라고 고했다. 그러자 세종은 “그들의 잔인 포학함이 이 정도니 어떻게 그를 용서하겠는가. 그렇게 하도록 하라.”라고 하면서 윤허했다. 그러나 의금부에 끌려온 권채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고 모두 부인이 자행한 일이라고 하면서 변명으로 일관했다. 덕금의 고문을 부인 정씨가 주도했다고 하지만 권채 또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권채는 집현전 동료 학자들에게 탄원서를 올려 자신의 죄를 감해 줄 것을 요청하도록 부탁까지 했다. 세종은 결국 권채의 관직을 박탈하는 선에서 죄를 가볍게 묻고, 부인 정씨는 곤장을 때리도록 했고 정씨는 곤장을 맞다가 죽었다. 그런데 권채는 얼마 후 다시 관직에 복직했다. 관직박탈 또한 없던 일이 된 것이다.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이라고 칭송되는 세종이 잔인한 사건에 연루된 권채를 다시 복직시켰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그를 특별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세종은 권채에게 '향약집성방'의 서문까지 쓰도록 명했다. 신하들은 ‘권채는 글을 배울 줄은 알아도 부끄러움은 알지 못한다’고 수근거렸다. 권채가 서문에서 인(仁)이란 단어를 쓴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죄를 가볍게 물었던 세종의 인자함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권채는 서문을 쓴 이후 4년 후, 만 40세의 나이로 죽었다. * 제목의 ○○은 권채(權採)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序. 전략. 臣採切念컨대 君上之道는 莫大於仁하고 而仁道至大에 亦有幾多般乎아 今我主上殿下가 以盛 德으로 興至治하사 守位發政에 全體此道之大하사 至如醫藥濟民之事히 拳拳若此하시니 可見仁政本末巨細가 兼盡而無遺矣라. 중략. 宣德八年六月 日通政大夫 成均大司成 直修文殿知製 敎 臣 權採는 謹序하노라. (향약집성방 서문. 전략. 저 권채가 간절히 생각건대, 임금의 도는 인보다 큰 것이 없고 인도가 지극히 큼에 또한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가? 지금 우리 주상전하께서 성대한 덕으로 지극한 정치를 펴서 자리를 지켜 정사를 발함에 인도의 큰 것을 온전히 체득하시어 의약으로 백성을 구제하는 일과 같은데 이르러서도 정성스러움을 이와 같이 하시니 어진 정치의 본말과 크고 작은 것이 모두 극진해서 빠진 것이 없음을 알 수가 있다. 중략. 선덕 8년 1433년6월 일 통정대부 성균관 대사성 직수문 전지제 교 신하 권채는 삼가 서문을 쓰다.) < 세종실록(세종9년·1427년)> 刑曹判書盧閈啓曰: “臣路見一僕負一物, 稍似人形, 而皮骨相連, 憔悴莫比, 駭而問之, 曰: 集賢殿應敎權採家婢也. 採疾其逃亡囚之, 以至於此。 本曹覈之未畢, 未卽啓達, 其殘忍之甚, 不可勝言.” 上曰: “予以權採爲安詳人也, 其殘忍如是乎? 此必受制於妻而然也, 須窮覈之.” (형조판서 노한이 계하기를, “신이 길에서 한 노복이 무슨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의 형용과 비슷은 하나 가죽과 뼈가 서로 붙어 파리하기가 비할 데 없으므로 놀라서 물으니, 집현전 응교 권채의 가비인데, 권채가 그의 도망한 것을 미워하여 가두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본조에서 이를 조사했으나 마치지 못하여 즉시 계달하지 못했사오니, 그의 잔인이 심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겠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권채를 성질이 안존하고 자세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그가 그렇게 잔인했던가. 이것은 반드시 그 아내에게 제어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니 모름지기 끝까지 조사하라.”라고 하였다.) 刑曹啓: “集賢殿應敎權採, 曾以其婢德金作妾, 婢欲覲病祖母, 請暇不得而潛往. 採妻鄭氏訴於採曰: 德金欲姦他夫逃去. 採斷髮榜掠, 加杻左足, 囚于房中. 鄭礪劍擬斷其頭, 有婢祿非者曰: 若斬之, 衆必共知, 不如困苦, 自至於死. 鄭從之, 損其飮食, 逼令自喫溲便, 溲便至有生蛆, 德金不肯, 乃以針刺肛門, 德金不耐其苦, 幷蛆强呑, 數月侵虐. 其殘忍至於此極, 乞收採職牒, 與其妻幷拿來, 鞫問懲.” 依允而以判府事卞季良, 提學尹淮, 摠制申檣之啓, 遂改命除收職牒, 下義禁府鞫. (형조에서 계하기를, “집현전 응교 권채는 일찍이 그 여종 덕금을 첩으로 삼았는데 여종이 병든 조모를 문안하고자 하여 휴가를 청하여 얻지 못하였는데도 몰래 갔으므로, 권채의 아내 정씨가 권채에게 호소하기를, ‘덕금이 다른 남자와 간통하고자 하여 도망해 갔습니다.’하니, 권채가 여종의 머리털을 자르고 매질하고는 왼쪽 발에 고랑을 채워서 방 속에 가두어 두고 정씨가 칼을 갈아서 그 머리를 베려고 견주니 여종 녹비란 자가 말하기를, ‘만약 이를 목 벤다면 여러 사람이 반드시 함께 알게 될 것이니, 고통을 주어 저절로 죽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하므로, 정씨가 그 말대로 음식을 줄이고 핍박하여 스스로 오줌과 똥을 먹게 했더니, 오줌과 똥에 구더기가 생기게 되므로 덕금이 먹지 않으려 하자 이에 침으로 항문을 찔러 덕금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구더기까지 억지로 삼키는 등, 수개월 동안 침학하였으니, 그의 잔인함이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원컨대 권채의 직첩을 회수하고 그 아내와 함께 모두 잡아와서 국문하여 징계할 것입니다.”하니 그대로 윤허했는데, 판부사 변계량, 제학 윤회, 총제 신장의 계에 의하여, 드디어 고쳐 명령하여 직첩은 회수하지 말게 하고 의금부에 내리어 국문하도록 하였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05-04 17:16:52[파이낸셜뉴스] 중국 법원이 ‘작은 꽃’이라고 기록된 한 여성을 인신매매해 감금한 남성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고 CNN이 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이 여성이 목에 쇠사슬을 감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온라인에 돌면서 공분을 일으켜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다. 장쑤성 쑤저우 중등인민법원은 7일 주범인 동지민에게 고문과 여성 불법 감금으로 9년형을, 나머지 범인 5명에게는 각각 8~13년 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여성 납치, 인신매매, 감금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에 따르면 이 여성은 납치된 뒤 수 차례 팔렸고, 그를 마지막으로 감금한 남성의 아이 8명을 낳았다. 중국 남부 윈난성 출신인 이 여성은 25년 전인 1998년 윈난성에서 납치돼 1180달러(약 155만원)에 중국 동부 해안 지역인 장쑤성에 사는 한 농부에게 팔렸다. 1998년 중반 사라진 이 여성은 중국 중부 지역인 허난성에서 목격됐다. 법정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 여성은 700달러에 인신매매범들에게 팔렸다. 이들 인신매매범은 그해 말 다시 장쑤성으로 그를 돌려보내 이번에 선고를 받은 동지민과 동지민의 아버지에게 1180달러를 받고 팔았다. 이 여성은 1999~2017년, 18년 동안 “기본적으로 자신을 돌보고,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고 법정 기록에 나와있다. 그러나 이후 동지민은 그를 해도 들지 않고, 전기나 물도 없는 방에 쇠사슬을 채워 감금했다. 1999년 동지민에게 끌려간 이 여성은 2020년까지 8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이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조현병이 심해지자 목에 쇠사슬을 채워 어두운 방에 감금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당국은 이 여성의 사진이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공분을 일으키자 수사에 들어갔지만 인신매매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중앙정부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이 문제를 다시 팠고, 결국 지난해 인신매매로 범인들을 기소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2023-04-09 08:13:35[파이낸셜뉴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둔 중국의 인권문제가 또 다시 제기됐다. 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 감금돼있는 중국 여성의 영상이 확산되면서다. 오늘 3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 동부 장쑤성의 한 작은 마을에서 촬영돼 공개된 영상을 보면 쓰레기로 가득 찬 판잣집 같은 건물에 한 여성이 갇혀 있다. 영상에서 이 여성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외투 없이 스웨터로 보이는 옷만 입고 움츠리고 서 있다. 또 콘크리트벽으로 고정된 쇠사슬이 여성의 목을 휘감고 있다. 영상 촬영자는 이 여성에게 따뜻한 옷을 건네며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영상에는 누군가가 여성에게 준 것으로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도 포착됐다. 이 여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지난달 26일 중국 장쑤성의 한 마을에서 촬영된 것으로 전해졌고 이 영상은 해당 여성의 모습을 발견한 남성이 중국 동영상 공유 사이트 더우인(틱톡 중국버전)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은 중국 전역에서 공유됐고 많은 중국 누리꾼들이 여성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당국의 확인 결과 여성은 양모씨로 지금까지 자녀 8명을 출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여성의 남편은 지체장애인인 이 여성을 쇠사슬로 묶어뒀다. 자신과 나머지 가족들은 옆 건물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에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인권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한편 현지 온라인매체 왓츠온 웨이보에 따르면 웨이보에 이 사건 관련 해시태그(#)가 다수 올라오고 있지만 웨이보가 나서서 일부 해시태그를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에 이 문제가 부각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2022-02-03 14:36:07【베이징=정지우 특파원】신랑, 신부의 옷을 벗기고 쇠사슬로 묶고...신부나 신부 들러리와 강제로 키스하고... 중국 지방정부들이 저속한 결혼식 문화를 개선하겠다며 칼을 뽑아 들었다. 위반자는 형사 책임까지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22일 펑파이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산둥성 쩌우핑시 정신문명건설위원회는 부녀연합회, 공안국 등 3개 기관과 공동으로 지난 17일 ‘악질적인 결혼 풍습 개선에 대한 공고’를 발표했다. 쩌우핑시는 공고에서 7가지 금지 사항을 적시했다. 우선 신랑·신부, 기타 사람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쇠사슬을 채우거나 묶는 행위를 엄금했다. 또 신랑과 참석자들에게 음란한 옷을 입히거나 표지판을 착용시키는 것을 못하도록 했다. 신부나 신부 들러리에게 강제로 키스, 포옹, 기타 다른 방법으로 모욕하는 행위, 성추행하는 행위도 차단했다. 아울러 △신랑, 신부, 참석자에게 이물질을 강제로 바르거나 뿌리는 행위 △신랑, 신부, 참석자에게 음란하거나 모욕적인 공연을 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고의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저속한 웨딩 비디오, 사진, 텍스트를 제작·편집해 인터넷에 유포하는 행위 △기타 사회 관리를 방해하고 공공질서를 방해하는 행위 등을 규제한다고 경고했다. 쩌우핑시는 “위반자는 법률에 따라 공안기관이 처벌할 것”이라며 “형사 책임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독특한 결혼 문화에 대한 지방 정부의 대응은 산둥성이 처음이 아니다. 구이저우성 펑강현도 이달 초 비슷한 내용의 공고를 냈다. 이처럼 지방 정부가 잇따라 강력 조치를 천명한 것은 중국 내에서 저속한 결혼 풍습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인터넷 검색 포털 바이두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하면 구이저우성, 허난성, 충칭시, 광둥성 등 중국 곳곳에서 결혼 풍습을 고발하는 기사들이 매년 올라온다. 내용은 비슷하다. 신랑을 나무나 가로등 등에 묶은 뒤 계란을 던지고 신부 혹은 신부 들러리를 성추행했다는 게 골자다. 네티즌들은 쩌우핑시와 펑강현의 강경한 대응 방침을 대부분 환영했다. 한 네티즌은 결혼 축하라는 이름으로 고의적으로 악질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다른 네티즌은 이제라도 금지시킨 뒤 처벌해 다행이라는 글을 남겼다. 자신이 사는 도시의 빛나는 이미지가 저속한 결혼 풍습에 손상됐다고 비난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1-03-22 00:34:10[파이낸셜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협상이 노딜로 끝난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미국에 포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 인민앞에 강요해 온 고통은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며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도 대북제재 등 압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북미간 기싸움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정은 "美의 제재, 고통을 넘어 분노로" 16일 북한 로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삼지연 건설현장을 방문해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앞에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더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라며 "적들이 우리를 압박의 쇠사슬로 숨조이기하려 들면 들수록 자력갱생의 위대한 정신을 기치로 우리 힘으로 우리의 앞길을 헤치고 잘 살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미국을 거론해 비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8월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당시 "오늘 우리의 군사적 행동이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벌려 놓은 합동군사연습에 적중한 경고를 보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발언한 정도다. 하지만 이날은 미국의 제재로 북한 인민이 고통을 넘어 분노에 이르렀다고 질타하며 다시한번 자력 갱생을 외쳤다. 김 위원장은 "지금 나라의 형편은 적대세력들의 집요한 제재와 압살책동으로 의연 어렵고 우리앞에는 난관도 시련도 많다"면서 "적들이 아무리 집요하게 발악해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잘 살아갈수 있고 우리 식으로 발전과 번영의 길을 열어나갈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마 타고 백두산으로… 중대 결심 나오나? 한편 로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이 말을 타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새로운 웅략들이 결심되는 조선혁명의 책원지이며 무진장한 힘의 근원지인 백두산에서 최고 영도자께서 걸으신 군마행군길은 우리 혁명사에 진폭이 큰 의의를 가지는 사변"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과거 중대 결정이나 고비 때마다 백두산을 방문했다. 스스로를 '백두혈통'이라 부르는 만큼 백두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백두산은 김정은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간 곳이고, 이번 행보는 국내적으로 다잡으려고 한 것도 있지만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미국이 협상에 북한이 원하는 메시지를 들고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압박하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美 "비핵화 달성때까지 대북제재 유지" 오랜 기다림 끝에 열린 실무협상이 결렬로 끝났지만 미국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랜달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는 15일(현지시간) 워싱턴 민간단체 제임스타운 재단 연설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외교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면서도 "제재의 엄격한 이행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압박을 통해서야 북한이 미국과 해법을 도출하겠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중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을 당부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중국을 보면 안타깝게도 제재가 일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의 중요한 파트너인 중국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미국은 김정은이 비핵화 테이블에 앉은 것 역시 대북 제재의 효과라고 보는 시각"이라며 "연이은 협상 결렬 이후 효과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견인해내려면 국제사회의 일치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김주영 기자
2019-10-16 15:35:41[파이낸셜뉴스] 유엔군사령부의 역할 강화 움직임에 대해 북한이 또 발끈하고 나섰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군사적 지배를 영구화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제목의 정세론 해설에서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할 대신 오히려 그 지위와 역할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외세의 군사적 지배를 반대하는 남조선 인민들에 대한 우롱"이라고 밝혔다. 한미 군 당국이 추진 중인 전작권 전환이 이뤄지면,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전작권이 우리 군으로 전환되고 한국군 4성 장군이 전·평시 작전통제권을 모두 행사한다. 그런데 미측이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관이 전시 작전지휘권을 행사해야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한국군 사령관의 지휘관계가 애매해진다. 이같은 지휘관계에 대해 노동신문은 "남조선을 동맹의 쇠사슬로 계속 얽어매 놓고 남조선군에 대한 통수권을 영원히 거머쥐려는 미국의 본심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엔사는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일본에서 창설돼 1957년 7월 서울 용산기지로 옮겨온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현재 유엔사는 한국, 미국, 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터키, 영국 등 18개 회원국으로 구성돼있다. 유엔사의 임무는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 가동, 중립국 감독위원회 운영, JSA 경비부대 파견 및 운영, 비무장지대(DMZ) 내 경계초소 운영, 북한과의 장성급 회담 운영 등이다. 아울러 한반도 유사시, 전력 제공국들로부터 병력과 장비를 지원받아 한미연합사의 작전을 지원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북한은 계속해서 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유엔사 해체를 요구해왔다. 유엔사가 실질적으로는 미군이면서도 유엔군의 이름을 빌려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국방부는 유엔사의 역할이 평시 정전협정에 따른 정전 유지와 한반도 유사시 전력을 통합해 연합사 작전을 지원하는 역할로 한정돼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왕래를 약속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 논의에서 유엔사를 배제하라고 요구하면서 자유왕래가 늦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엔사 역할 확대 움직임이 북한의 반발을 부추겨 향후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향후 유엔사가 외연을 넓혀 다국적군 형태가 된다면, 북한은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안전보장에도 위협을 느낄 것이라는 해석이다. 나아가 미국의 중국 견제 의도까지 포함된다면 동북아 지역 갈등이 심화되고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추진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ju0@fnnews.com 김주영 기자
2019-09-30 14:40:12일본 연극에 혁신을 가져온 스타 연출가 '노다 히데키'의 작품이 3년 만에 한국에 찾아온다. 국립극단은 연극 '밖으로 나왓!'을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여섯 차례 공연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내년부터 2022년까지 차례대로 올림픽을 앞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개국 예술가들이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문화올림픽' 일환으로 꾸려진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 연출가, 배우로 1인 3역을 소화하는 노다 히데키는 지난 2005년 '빨간 도깨비'와 2013년 '더 비(The Bee)', 2014년 '반신' 이후 3년 만에 한국 무대를 갖는다. 특유의 감각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찬사를 받아온 그는 한국 무대를 "중요한 홈그라운드"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난 2010년 일본어 버전으로 초연한 연극 '밖으로 나왓!'은 7년 만에 영어 버전으로 제작돼 이번 무대에 올려진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이번 연극은 지난달 29일부터 19일까지 일본 도쿄 프리미어 공연을 마친 뒤 바로 내한해 진행된다. '밖으로 나왓!'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과 '집착'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아빠 '보'와 엄마 '부', 딸 '피클'은 각자 외출 약속이 있지만 강아지가 임신을 해 한 명은 집 안에 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누가 나갈지를 두고 벌이는 가족 간의 다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 모두 집안에서 쇠사슬에 묶이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모두가 묶인 상황에서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관용의 부족과 집착으로 인해 소통과 이해가 불가능해진 현대인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이번 공연은 전 세계 10개 도시에서 뜨거운 반응을 받았던 '더 비' 팀의 캐서린 헌터와 글린 프릿차드 등의 배우들이 함께한다. 이번 작품은 남녀의 역할을 뒤바꾼 성별 파괴적 캐스팅을 통해 극단으로 치달은 우리시대의 모순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17-11-20 18:03:32양쯔강 중류지대를 거슬러 올라가던 중국의 대형 여객선이 지난 1일 후베이성 젠리현 인근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났다. 중국 해군은 140여명의 잠수부를 동원해 구조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458명의 승객과 승무원 가운데 구조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사고는 지난해 온 국민을 슬프게 한 세월호 참사를 생각나게 한다. 대형 선박이 허망하게 가라앉아 수백명을 순식간에 수장시켰다. 승객들은 대부분 숨진 반면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재빨리 탈출해 살아났다. 국내 인터넷 등에서는 '중국판 세월호'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양쯔강은 중국의 서북단 칭하이성과 시짱자치구 사이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6300㎞를 달려 동중국해로 흘러든다. 서부내륙의 산악과 협곡들을 휘감고 돌아 중부의 평야지대를 사행(蛇行)한다. 나일강과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중국 밖에서는 양쯔강으로 불리지만 중국인들은 창장(長江)이라 부른다. 양쯔강은 중국의 지중해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수운이 발달했다는 뜻이다. 수량이 풍부한 여름철에는 상하이에서 우한까지 1만t급 선박의 운항이 가능하며 700여개의 지류 곳곳에 작은 배들이 다니는 항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최근에는 싼샤댐이 건설돼 수심이 깊어지면서 대형 유람선의 통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사고 선박은 배수량 2200t, 길이 76.5m, 폭 11m인 대형 여객선이지만 초속 35m의 강력한 돌풍을 만나 1~2분 만에 뒤집혔다. 사고가 난 곳은 양쯔강의 중류 지역으로 '삼국지'의 적벽대전이 벌어진 곳과 가깝다. 당시 주유는 적벽에서 5만 군사로 조조의 100만 대군과 맞서게 된다. 이때 승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제갈량의 동남풍이다. 방통이 조조를 속여 선단을 쇠사슬로 연결하게 만들고 주유가 화공을 펼쳐 조조군의 선박을 모두 불태워 버림으로써 대승을 거둔다. 양쯔강 중류는 강폭이 4~5㎞ 정도로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처럼 보인다. 조조군의 선박을 일시에 불태울 만큼 강한 바람이 부는 지역이다. 양쯔강 협곡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비경과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은 중국인들의 꿈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4박5일 정도의 양쯔강 크루즈 여행상품이 선보여 인기라고 한다. 중국인들에게 양쯔강은 한강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 이상이다. 이번 사고가 중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일 것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5-06-03 17:24:25나쁜녀석들 박해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나쁜 녀석들’ 박해진의 캐릭터가 일러스트로 재탄생했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 배우 박해진이 열연중인 캐릭터 ‘이정문’이 각종 SNS 상에서 다양한 일러스트로 재탄생 돼 눈길을 끌고 있다. 매회 박해진의 돋보이는 연기력으로 그 존재감을 더해가고 있는 ‘나쁜 녀석들’의 이정문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사이코패스 캐릭터라는 평. 선과 악,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박해진의 이미지, 그리고 매력적인 이정문 캐릭터가 만나 폭발한 시너지에 각종 온라인상엔 그 인기를 증명하는 일러스트가 연달아 올라오고 있어 누리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정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표현한 그림은 빨간 핏자국과 쇠사슬을 이용해 연쇄살인범의 특징을 살린 섬뜩함이 돋보이는가 하면, 지금껏 이정문에게서 볼 수 없었던 귀여움을 끄집어내 깜찍한 이정문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하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박해진을 사랑하는 일명 ‘금손’(손재주가 있어서 이것 저것 잘 만드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말)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는 것. 이처럼 ‘나쁜 녀석들’은 이미 온라인을 점령함은 물론, 시청률의 사나이 박해진의 열연으로 지난 4부가 역대 OCN 드라마 시청률 1위 등극,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박해진의 중국 내 인기에 힘입어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선 3000만 뷰를 기록, 한류 드라마 등극을 예감하며 앞으로의 꾸준한 기록 향상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박해진은 지난 주 OCN ‘나쁜 녀석들’에서 칼에 찔리는 부상을 입으면서 인신매매 조직을 소탕하는데 성공, 새로운 사건 해결을 예고해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tjddlsnl@starnnews.com김성인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4-10-30 14:4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