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함안=오성택 기자] 고대 가야왕국 가운데 아라가야 지배층의 생활유적으로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경남 ‘함안 가야리 유적’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경남도는 21일 함안군 가야읍 일원의 ‘함안 가야리 유적’이 문화재청의 최종심의를 통과해 국가사적 제554호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가야시대 지배층의 생활유적으로, 남강으로 흘러드는 신음천(新音川)과 광정천(廣井川)이 합류하는 일대의 작은 구릉에 위치해 있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구릉 북쪽의 가장자리에서 토성(土城)과 고상건물(高床建物), 망루(望樓) 등이 확인됐으며,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에 조성돼 6세기 멸망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은 조선시대 함안지리지인 함주지(咸州誌, 1587년)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 또는 ‘옛 나라의 터’로 기록돼 있으며, 남문외(南門外), 대문천(大門川) 등 왕성·왕궁 관련의 지명이 남아 있어 그동안 ‘아라가야 왕궁지’로 전해져 온 곳이다. 또 주변에는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과 남문외 고분군(경남도 기념물 제226호), 기둥을 세워 만든 건물인 가야 최대 규모의 굴립주건물(掘立柱建物)인 ‘당산유적’ 등 주요 가야유적들이 1㎞ 남짓한 거리에 분포하고 있어 현재 가야읍 일대가 아라가야의 왕도(王都)였음을 잘 보여준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지난해 4월 경작지 조성 중 토(土)성벽 일부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조사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 건물지 등이 확인됐으며, 건물지 내부에서 쇠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 등이 출토돼 군사적 성격의 시설임이 밝혀졌다. 특히 잔존상태가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 유적과 연계된 경관이 잘 보존돼 있어 고대 가야 중심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류명현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이번 ‘함안 가야리 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은 가야사 연구복원이 국정과제로 채택된 이래 창녕 계성고분군에 이은 두 번째 쾌거”라며 “아직도 경남에는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가야유적들이 많다. 앞으로 더욱 철저히 조사하고 연구해 더 많은 가야유적들을 국가사적으로 지정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는 지난해부터 도내 주요 가야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을 위해 지표·발굴 등 학술조사는 물론, 학술대회와 사적 신청보고서 작성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김해 원지리 고분군, 함안 남문외 고분군, 창녕 영산고분군, 합천 삼가고분군, 합천 성산토성 등 도내 주요 가야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 중이다. 도는 이번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문화재청, 함안군과 협의해 종합정비계획 수립 등 보존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10-21 10:29:11[파이낸셜뉴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아라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배수 시설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연구소는 "함안 가야리 유적 일대를 발굴 조사해 과거 토성의 내·외부를 연결한 것으로 보이는 배수 체계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지난해부터 가야리 유적의 북서편 곡간지(谷間地) 일대를 조사한 결과, 성벽 축조 구조와 성 내부의 대지 조성 과정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곡간지는 좁게 움푹 패어 들어간 지형으로, 주변의 물이 모여 자연 배수되는 곳을 뜻한다. 곡간지 일대 성벽은 매우 정교하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흙을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다져가며 쌓아 올리는 판축 기법으로 중심 토루(土壘·흙으로 쌓아 둔덕지게 만든 방어용 시설)를 쌓은 것으로 파악됐다. 좁게 골이 진 부분의 지형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 바닥에는 나뭇가지 등을 깔았고, 토루 주변으로 경사지게 흙을 켜켜이 다져 쌓은 내벽과 외벽을 올려 성벽을 보강했다. 이렇게 만든 판축 토루의 너비는 5.5m, 판축 토루와 내·외벽을 포함한 기저부의 너비는 29.5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 지형의 특성을 고려한 축조 방식인 셈이다. 그 안에서는 짧은 목 항아리, 솥 모양 토기 등이 발견됐다. 이들 유물은 대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제사나 각종 의례를 지낸 흔적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성벽을 통과하는 석축 배수시설 흔적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길이가 16.5m에 이르는 배수 시설은 성 내부의 곡간지로 모이는 물을 성 밖으로 배수하기 위한 구조로, 성벽을 통과해 밖으로 이어진 양상이다. 배수 시설 구조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성벽 밖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너비가 최대 3.5m까지 벌어지는 나팔 모양인데,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이런 형태를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내부의 배수 문제와 습하고 연약한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성벽과 배수 체계를 조성한 고대 가야인의 뛰어난 토목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소는 오는 13일 오후 2시 발굴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연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11-11 11:12:23[파이낸셜뉴스] 문화재청은 내달 7일까지 전국 23개 대학 참가자 50명을 대상으로 여름 발굴 캠프를 운영한다고 21일 밝혔다. 여름 발굴캠프는 문화재청 ‘매장문화재 제도개선’의 하나로 현행 대학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고고학 현장 실습 기회가 부족한 점을 고려해 202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원이 한국고고학회와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올해 세 번째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전국 고고학 관련학과 대학생 3·4학년 97명이 지원했다. 한국고고학회의 심사를 거쳐 참가자 50명이 선발됐다. 첫째주는 공통 교육 과정으로 매장문화재 제도의 이해, 발굴보고서 작성의 이해, 수중고고학의 이해, 발굴현장 출토 인골·미라 등 연구·조사,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이해와 활용, 고고자료 분석을 위한 GIS 활용, 동물 및 목제유물 관련 고환경 분석, 발굴현장 안전 관리, 명사 특강, 진로 교육 등 이론 교육이 진행된다. 둘째주와 셋째주는 지역별 중요 유적 발굴현장 12곳에서 실습 교육이 진행된다. 지역별 중요 유적은 경주 월성과 쪽샘 유적, 부여 왕릉원과 부소산성, 관북리 유적, 김해 봉황동 유적과 함안 가야리 유적, 나주 복암리 유적과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 충주 칠금동 제철 유적, 서울 풍납토성,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 등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3-06-21 15:44:51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가야 문화유적지를 활력 있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오는 17일 경남지역 초·중·고 교원들과 함께하는 '2018년 가야 문화유산 알아가기 팸투어'를 시행한다고 16일 밝혔다. 내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는 김해·함안 등 가야 고분군은 최근 국가적으로도 관심이 커지고 있는 유적지로 이번 행사는 이런 우수한 가야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살아있는 역사문화교육의 장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팸투어는 올해 일단 경남지역 교원 20명을 대상으로 시작해 내년에는 타 지역 교원까지 확대하면서 매년 교사, 학생,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시켜 나갈 예정이다. 올해에는 경남 교원들과 함께 문화재 전문가의 안내와 해설을 들으며 김해 대성동고분 박물관, 김해 봉황동 유적, 함안 가야리 유적, 그리고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 등을 다양하게 살펴볼 계획이다. 특히 이번 팸투어 일정에는 일반인들이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현장'과 최근 아라가야 왕궁 추정지로 확인된 '함안 가야리 유적 발굴현장'이 포함되어 있어 과거 고대인들의 토목기술, 방어체계, 생활 문화 등의 다양한 역사적 삶의 모습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행사에 참가한 경남지역 교원들이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야 유적을 답사함으로써 유서 깊은 문화재와 그 속에 깃든 풍부한 역사 이야기 등을 다양하게 익히고 이를 교육 현장으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18-10-16 09:17:38【함안=오성택 기자】 경남 함안에서 1500년 전 아라가야(阿羅加耶) 왕성의 실체가 처음으로 발견돼 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7일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대규모 토성과 목책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아라가야 왕궁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인 1587년 편찬된 함안지리지인 함주지(咸州誌)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로 기록돼 있을뿐 최근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혀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함안군청이 지난 4월 11일 왕궁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경지정리 작업 중 드러난 성토 흔적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경남도와 함안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현지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긴급발굴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문화재청의 허가를 얻어 지난달 11일부터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발굴조사는 성토 흔적이 드러난 곳을 중심으로 약 1300㎡에 대해 실시했으며, 이곳에서 토성과 목책, 건물터 등 아라가야 왕성과 관련된 시설이 대거 확인됐다. 이 중 토성은 전체 높이 8.5m, 상부 너비 20~40m 규모로 동시대 가야권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성곽으로 확인됐다. 또 성토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공정마다 나무기둥을 설치하거나, 널판을 대고 내부에 흙을 쌓아 올린 판축(板築)을 통해 점토와 모래를 켜켜이 다져 올리는 등 정교한 토목공사 흔적을 확인했다. 토성 상부에서 2열의 나무기둥으로 이루어진 목책이 확인됐으며, 내부에서는 건물터와 구덩이 등이 발견됐다. 토성의 축조 및 사용 시기는 유적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 조각들을 통해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아라가야는 말이산고분군에 대형 고총고분을 조성하고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교섭을 벌이던 전성기라는 점에서 왕성의 용도와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현장을 답사한 전문가들은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유적은 토성 등 방어시설과 건물지를 갖춘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왕)의 거주공간으로서 이번에 발견된 토성은 왕성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토성의 정확한 범위와 왕궁지의 흔적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아라가야 왕성의 발견을 통해 문헌기록과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아라가야 왕성의 실증적 증거가 확인된 셈이다. 특히 당대 최고 수준의 토목기술로 축조한 토성을 통해 가야 왕성 축조에 대한 기초자료 확보는 물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향후 가야 왕성 연구의 핵심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한편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기초조사와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오는 11일 주민을 대상으로 발굴성과에 대한 공개설명회를 가질 계획이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8-06-07 15:41:20그동안 문헌과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라가야 왕성이 경남 함안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달부터 경남 함안군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펼친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 시설과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 사이의 각종 토기 조각들을 찾아내면서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그동안 함안군 가야리 일대는 1587년에 제작된 조선 시대 읍지인 '함주지'와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에서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또 이곳은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도 아직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됐지만 최근까지 실질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실체를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토성과 목책, 건물터 등 왕성과 관련된 시설을 확인하면서 전성기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의 실체에 다가가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토성은 가야권역에서 발견된 동시기 유적과 비교할 때 그동안 발견된 사례가 없는 축조기법과 규모를 보인다. 흙을 쌓는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축조 공정마다 나무기둥을 설치했으며 판축 과정에서 흙을 쌓아 다지는 등 매우 정교한 축조기법을 사용했다. 성벽 상부에는 2열의 나무기둥이 확인되는데 방어시설인 목책으로 추정된다. 토성의 규모는 전체 높이 8.5m, 상부 폭 20m~40m 내외로 치면 동시기 가야권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로 추정된다. 토성 내부에서는 방어시설인 목책과 함께 건물터, 구덩이 등이 같이 발견됐다. 건물터는 현재 정확한 형태와 규모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상건물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반암을 인위적으로 파서 조성한 구덩이는 긴네모꼴이며 용도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구덩이 안에서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고 주로 고분 등 의례 공간에서 나오는 원통 모양 그릇받침이 출토돼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손잡이 달린 완, 붉은색의 연질토기 등이 구덩이에서 나왔는데 이 유물들은 건물터 내에서도 발견됐다. 토기 조각들은 대체로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의 유물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토성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 권력의 존재를 보여 주는 증거로 아라가야가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활동하였던 정치·경제적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 '일본서기' 흠명기 544년과 552년 기록에 등장하는 아라가야의 임금인 '안라왕'의 실제 거주 공간을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아라가야 왕성 발굴현장의 일반 공개설명회는 오는 11일 오후 3시에 개최한다.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로 문의하면 된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18-06-07 10:5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