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윤석열 정부는 1일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을 발표했다. 비전과 목표, 전략과제들을 담았는데, 여기에는 사이버안보법 제정과 국가안보실 산하 국가사이버안보위원회 설치 계획이 포함됐다. 최근 안보실 3차장 신설의 연장선으로 신흥안보 강화에 나선 것이다. 안보실은 이날 국가정보원·외교부·국방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경찰청 합동으로 마련한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을 발표했다. 사이버 방어과 복원력 강화·신기술 확보·글로벌 공조체계 구축 등을 과제로 제시하면서, 이를 진행키 위해 사이버안보법 제정과 국가사이버안보위 설치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사이버안보 기반 되는 법·기구 마련..여야 법안 2건 계류 정부는 국가사이버안보전략에서 우선 “사이버안보가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해 사이버안보법을 제정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대응체계를 정립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이버안보 활동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버안보법은 현재 국회에 여야가 발의한 2건의 법안이 계류돼있다. 조태용 국정원장이 국민의힘 의원 시절 대표발의한 ‘사이버안보기본법’은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국가사이버안보정책조정회의와 국정원장 소속 국가사이버안보센터를 두고 사이버안보기본계획을 수립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기반으로 사이버공격 사전탐지 및 조기차단 등 능동적 대처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출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사이버보안법’은 국정원장 소속 사이버안보위를 두고 사이버안보기본계획을 수립해 능동적인 대처 수단과 절차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권한남용 방지를 위한 고등법원 수석판사 등의 통제를 받는 장치도 마련했다. 두 법안 모두 포함시킨 컨트롤타워 설치도 이번 국가사이버안보전략에 포함됐다. 정부는 “안보실 산하 국가사이버안보위를 둬 범국가적 사이버안보 정책 관련 사항을 조정하고, 정부 전체의 사이버안보 역량과 기능이 효과적으로 발휘되도록 여건을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사이버안보위는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을 원칙적으로 5년마다, 또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따라 필요한 경우 개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존 2019년에 마련된 국가사이버안보기본계획은 국가사이버안보전략에 맞춰 시행계획과 함께 수립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신설한 사이버·경제·과학기술안보를 담당하는 안보실 3차장과 함께 국가사이버안보위도 신흥안보 강화 역할을 맡게 된다. 국제 공조·北공작 대응·행정망 마비 방지·신기술 확보 이날 발표된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은 ‘사이버공간에서 자유·인권·법치의 가치를 수호하며 국제사회에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비전 아래 짜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유엔총회를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자유·인권·법치 등 보편적 가치와 글로벌 중추국가가 담겨있다. 이에 따른 3대 목표로 △공세적 사이버 방어 및 대응 △글로벌 리더십 확장 △건실한 사이버 복원력 확보 등을 제시하고, 전략과제들을 발표했다. 먼저 공세적 사이버 방어 활동 강화는 사이버공격 주체를 규명하고 공격 근원지 대상 탐지·분석을 통한 위협 사전포착이 가능토록 하는 과제다. 구체적으로는 사이버공간상 국론 분열과 사회·경제적 혼란을 유발하는 영향력 공작과 랜섬웨어 유포, 가상자산 해킹 등에 대한 대응 역량을 높인다. 이는 특히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과 핵·미사일 자금조달을 위한 가상자산 탈취를 겨냥하고 있다. 글로벌 공조체계는 주요국은 물론 유엔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국제기구와 공조해 국제표준·규범·통상협정 등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또 국내외 민간기업과 위협정보·정책·기술 교류를 넓히고 개발도상국 지원도 늘린다. 사이버 복원력은 지난해 행정망 마비 사태를 교훈 삼아 주요과제로 삼게 된 것으로, 정보시스템 장애 발생 시 신속대응체계를 수립하는 과제다. 기반시설의 경우 관리시스템의 최소 보안 요구사항을 마련하고 위협탐지체계를 구축토록 하는 등이다. 여기에 AI(인공지능)과 양자기술 등 신기술 R&D(연구·개발) 지원을 늘리고 정보보호제품 규제를 개선함으로써 사이버안보 핵심기술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전략산업화를 추진한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2024-02-01 15:45:39북한이 해킹과 사이버 공격으로 탈취한 금전이 전체 외화수입의 절반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불법적·음성적으로 끌어모은 자금으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재원의 40%를 충당했다는 평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20일(현지시간) 공개한 전문가 패널 연례보고서에 담긴 내용들이다. 이번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던진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북한이 사이버 공격으로 챙기는 자금이 어마어마한 데다 그 수법도 고도화됐다는 점이다. 사이버 공격은 북한이 불법자금을 획득하는 주요 수단이다. 나아가 우리국가 안보 및 경제활동에 직격탄이 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북한의 사이버 테러에 맞서 통합적 대응을 위한 사이버안보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보고서의 핵심은 북한이 가상자산까지 해킹해 끌어모은 불법자금을 핵개발용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비용의 40%를 차지한다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패널 보고서를 계기로 대북제재에 대한 더욱 견고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16년 이후 가해진 대북 경제제재는 북한 지도부에 큰 압박으로 작용해온 게 사실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고, 북한의 경제 전반과 지배층을 압박하는 다양한 제재가 취해졌다. 북한의 외화획득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도 강구된 바 있다. 석탄, 철, 철광석, 금, 희토류 등 북한산 광물 금수조치도 내려졌으며 중국과의 교역도 철저히 막았다. 강화된 대북제재가 북한에 큰 타격을 주면서 김정은이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협상 테이블로 나왔던 것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대북제재 수단의 하나인 경제적 제재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는 점이다.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은 핵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고, 한반도 주변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어서다. 제재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쓸만한 대북제재 카드는 거의 다 써 추가로 내놓을 카드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탈취한 자금이 핵개발에 사용된 게 확인된 이상 더 동원할 제재수단이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유엔 결의를 위해서는 대북제재를 이끌어 낼 증거물을 확보하는 활동도 더 촘촘해야 한다. 자금탈취 근거가 없다면 제재 결의를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기존 제재가 실행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활동도 중요하다. 결의만 하고 지켜지지 않는 허울뿐인 제재도 많다. 북한은 이런 점을 노린다. 나아가 북한의 사이버 도발에 맞서 국제사회와 공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과 해외 노동자 파견 등 핵미사일 개발에 악용되는 자금줄을 차단하려면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부터 사이버 보안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해 방어역량을 높여야 할 것이다.
2024-03-21 18:10:42[파이낸셜뉴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와 기술의 강제적 이전 요구 등 부당한 관행 조사를 명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싱가포르 기업(최고경영자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금지,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금지, 동영상 게시 애플리케이션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와의 거래 금지 등 국가안보나 개인정보 이슈, 지식재산권의 유출·침해 이유 등으로 일련의 대중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국가 주도 지식재산 전쟁의 서막이었다. 일본은 지난해 경제안보법을 통해 핵심기술의 특허출원 비공개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외국에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 일본에서 먼저 출원하도록 강제했다. 최근 중국이 국가기밀보호법을 개정했다. 과학기술 보호를 명분으로 AI기술의 핵심 하드웨어를 취급하는 반도체업계 종사자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을 것이다 특허는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기 위해 발명가(특허권자)에게 부여하는 헌법에 보장된 배타적 권리이자 사유(私有)재산이다. 이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민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형사법적인 범죄행위가 되고 고의성이 입증될 경우 침해금액의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액을 물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특허는 제도를 운용하는 목적과 같이 산업기술의 발전과 국가산업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허침해 행위는 중요한 범죄다. 반도체, 배터리, 모바일(통신), 방산기술 등은 국가의 경제는 물론 안보적인 문제까지 엮여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의 사적 분쟁 차원을 넘어 국가적 분쟁의 대상이 된다. 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중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바로 트럼프 전 행정부다. 올해 미국 대선의 유력후보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하니 다시 한번 새로운 방식의 지식재산, 기술안보 전쟁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주요 기술선진국들은 자국의 안보나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산업기술(국가 기밀이 포함된 기술이나 방산 등 국가 핵심기술 등) 못지않게 일반 산업기술 분야도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제한 대상의 범주에 직접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가입된 193개 회원국 중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비밀특허제도를 운영하거나 해외 특허출원을 제한하는 국가는 모두 28개국에 달한다. 미국 내에서 이루어진 발명은 국내에 먼저 특허출원을 하도록 하고 있는 미국은 특별히 승인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허출원 6개월 이내에는 해외 특허출원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국민 보안에 유해할 수 있는 내용은 특허청장의 허가 없이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 특허출원을 신청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도 마찬가지로 국가 기밀을 포함하는 특허출원을 비밀로 취급하게 하거나 자국 특허청에 우선 출원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 또한 국가 기밀에 관련되는 발명을 외국에 출원하고자 하는 경우 국무원 특허행정부서(전리국)에 먼저 특허출원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수출관리법을 통해 기술자료와 데이터의 해외 반출도 제한하고 있다. 기술의 범위나 보호 분야에 대한 차이가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모두 국내에 먼저 특허출원을 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운영 사례를 보면 통제의 목적 이외에도 국내의 산업기술 발전을 우선하고 기술을 통한 대외 안보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전략이 내재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비밀특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모든 기술분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국방상 필요한 발명에만 한정되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기술선진국들과는 달리 주요 산업기술에 대한 적용이 어렵다. 국내에서 개발된 특허기술을 해외에 먼저 출원하는 것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 특허를 출원하는 것은 기술을 공개하는 행위라 산업보안 분야에서도 출원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안보·기술안보가 국가 성장의 핵심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이에 대한 규정과 대안이 필요하다. 특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방상 필요한 발명을 ‘국가의 이익과 관련되는 발명(또는 기술)’으로 확대하고 이를 비밀취급 할 수 있도록 하거나 별도의 출원 심사를 진행하도록 하는 절차를 둘 수도 있다. 미국과 같이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개발 건에 대해서는 국내출원을 우선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나라의 안보와 관련되거나 국가핵심기술에 준하는 기술이 부지불식간에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고 산업발전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규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실장(융합보안학 박사)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24-03-10 01:46:58[파이낸셜뉴스] 약 2년 동안 러시아의 침공을 막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위기에 몰렸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내년에 미국의 정권 교체를 기다린 다음 서방의 지원이 끊기면 손쉽게 우크라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본다. 美 상원부터 지원안 표류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매체들에 따르면 미 상원은 6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와 이스라엘을 함께 지원하는 1105억달러(약 145조원) 규모의 안보 지원안을 절차 투표에 올렸다. 절차 투표는 목표 법안을 표결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사전 투표다. 상원은 절차 투표에서 의원 100명 가운데 60명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및 토론 종결에 동의하면 절차 투표 가결 이후 30시간 안에 목표 법안에 대한 실제 찬반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6일 절차 투표는 찬성 49표에 반대 51표로 부결됐다. 여당인 민주당은 현재 상원에서 51석을 차지하고 있으나 절차 투표를 넘기 위해서는 공화당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법안은 상원 문턱을 넘는다고 해도 공화당이 과반인 하원을 통과해야 한다. 공화당은 민주당 정부가 우크라를 돕고 싶다면 먼저 멕시코 국경에서 유입되는 불법이민자 규제를 강화하고 관련 예산을 늘리라는 입장이다. 공화당은 지난 9월 바이든 행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 우크라 지원 예산을 넣자 국경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현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정부는 내년 1~2월까지 유효한 임시 예산안으로 버티고 있다. 공화당 강경파는 지난 10월 민주당과 임시 예산안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같은당 하원의장까지 몰아냈다. 바이든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같은달 20일 미 의회에 이스라엘(143억달러)·우크라(614억달러) 군사지원과 대만 등 인도·태평양 국가 지원, 국경관리 강화 등을 패키지로 묶은 1050억달러(약 138조원) 규모의 안보 예산을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이든이 요청한 금액에서 일부 변경된 6일 지원안에는 우크라 정부 운영비 120억달러와 군수 지원 150억달러, 우크라 난민 지원금 23억달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6일 발표에서 우크라에 1억7500만달러(약 2300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는 "의회가 대통령의 국가안보 관련 추경 예산안을 승인하지 않으면, 이번 지원이 우리가 우크라에 제공할 수 있는 마지막 안보 지원 중 하나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은 바이든의 요청을 무시한 채 지난달 2일 이스라엘에 단독으로 143억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하는 예산안을 가결해 상원으로 보냈다. 공화당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루이지애나주)은 이달 발표에서 우크라 지원 예산에 대해 "미국의 국경 안보법을 바꿀 수 있는 법안 제정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6일 연설에서 "나는 국경 문제에서 중대한 타협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유럽도 돈줄 말라...기회 노리는 푸틴미국과 함께 우크라를 돕던 유럽연합(EU)은 이달 14~15일 정상회의에서 우크라 지원을 위해 500억유로(약 70조9000억원)의 추가 예산을 배정할 계획이었다. 동시에 EU 27개 회원국들의 잠정 합의를 통해 우크라의 EU 가입 절차를 본격 개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4일 EU에 서한을 보내 이달 정상회의 의제에서 우크라 EU 가입 협상 개시 안건 및 추가 예산 배정을 빼라고 요구했다. 2004년 EU에 가입한 헝가리는 2010년 오르반의 재집권 이후 EU와 마찰을 빚었다. 오르반 정부는 2011년 사법부를 무력화하면서 EU의 민주주의 요구 사항을 위반하기 시작했으며, EU 지속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패와 권력 편향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이에 EU는 2020년부터 회원국에게 주던 코로나19 지원금을 동결하는 등 헝가리를 압박했다.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전부터 러시아 쪽에 기울어 있던 오르반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 지원 및 러시아 제재에 끊임없이 반대했다. 일부 외신들은 헝가리의 돌출 행동이 동결된 EU 지원금을 받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른 유럽 국가와도 불화를 빚고 있다. 우크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폴란드 정부는 지난 9월 자국의 농업 보호를 위해 우크라 농산물 수입을 금지했으며 이에 우크라가 반발하자 무기 지원을 중단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6일 영국 언론들은 폴란드에서 우크라로 향하는 각종 자선단체와 비정부기구(NGO)의 물자 트럭 수천대가 약 1개월 동안 국경을 넘지 못했다고 전했다. 폴란드 트럭 운전사들은 우크라 운전사들이 허가증 없다 EU에 들어와 운송 영업을 한다며 국경 봉쇄 시위를 하고 있다. 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의 샬란다 영 국장은 4일 존슨에게 서한을 보내 "의회의 조치가 없을 경우 올 연말까지 우크라에 무기와 장비를 보낼 재원이 바닥난다"며 "돈도 떨어지고 시간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 대통령 비서실장도 5일 "미 의회에서 지원이 연기된다면 해방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쟁에서 패배할 위험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 외무장관은 6일 발표에서 "우리에게 100달러가 있어도 싸울 것이며 1달러 밖에 없다 하더라도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러시아의 푸틴이 내년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공약으로 우크라 지원 종료를 주장했다. 푸틴은 지난 10월 연설에서 우크라가 “매달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지원”에 고무돼 있다면서 “한번만 끊겨도 1주일이면 (우크라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달 서명한 내년 러시아 정부 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9%로 옛 소련 붕괴 이후 가장 높았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12-07 09:58:58[파이낸셜뉴스]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경제가 자유로운 국가에 등극했다. 평가가 처음 시작된 지난 1970년 이후 1위를 지켜온 홍콩은 53년 만에 정상에서 밀려났다. 21일(현지시간) 캐나다 싱크탱크인 프레이저 연구소가 공개한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홍콩을 2위로 밀어내고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제 자유국으로 평가됐다. 경제자유지수는 국제무역과 시장 진출 및 경쟁의 자유, 사업 규제를 포함한 분야를 평가해서 산출된다. 이번에 나온 순위는 2021년 경제를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연구소는 홍콩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에 대한 제한과 경영 비용 상승, 입국 규제 강화가 강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매슈 미첼은 “정부가 민간 기업을 통제하려 하면서 홍콩의 경제적 자유가 침해되면서 그 결과로 번영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홍콩은 50년간 자치를 약속받았으나 2020년 중국이 홍콩에 국가안보법을 선포하면서 위반할 경우 종신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싱가포르가 정부 규모와 규제 관련 개선으로 점수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순위에서 3위는 스위스가 차지했으며 뉴질랜드와 미국이 그 뒤를 이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23-09-22 14:07:51[파이낸셜뉴스] 공급망 위기 관리를 위한 '공급망 안전화 지원 기본법'이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재정준칙 법제화를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이날도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는 이날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고 공급망 기본법, 한국수출입은행법, 조달사업 개정안을 의결했다. 공급망 기본법은 정부가 공급망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초 류성걸 의원이 발의한 원안은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소속을 대통령으로 정했으나, "실무 중심의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재부 의견에 따라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으로 소속을 수정해 의결됐다. 위원장은 기재부 장관으로 하며, 위원회 및 분야별 전무위원회 위원에 민간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통과된 수은법 개정안은 공급망 기본법의 보조 법안이다. 기본법은 한국수출입은행에 공급망안정화기금을 설치하고 수은이 기금을 관리·운용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이를 수은법에도 규정한 것이다. 기재위 여당 간사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소위가 끝난 후 "관련 기금은 정부가 보증을 하게 돼있다"며 "기금심의회 운용은 내부 기준에 따라서 하고, 기금 조성하는 기간은 5년으로 부칙에 명시했다. 필요하면 다시 법을 개정해 추가 연장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기본법은 지난 5월 통과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산업) 특별법 개정안과 논의를 앞두고 있는 자원안보법과 함께 공급법 3법으로 불린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치기업위원회는 오는 정기국회에서 자원안보법 제정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조달기업공제조합의 설립 근거를 마련한 조달사업법 개정안도 이날 기재위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에는 공공혁신조달사업 업무를 체계적·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전문기관의 지정 근거도 담겼다. 이날 의결된 세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국가재정법도 이날 안건에 올랐으나 후순위에 배치돼 논의조차 못해 8월 임시국회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정부여당이 마련한 국가재정법은 예산안·추경안 편성 시 관리재정수지 적자규모가 GDP의 3%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며,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할 경우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2%이내로 편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내용의 국가재정법은 지난 2020년 9월에 해당 제정안이 기재위에 상정된 후 4년째 공회전 중이다. 류 의원은 "이날 본회의와 의원총회가 있다보니 시간적 제약이 있어 공공기관 운영법과 국가재정법은 논의할 수 없었다"며 "재정소위에서 논의해야 할 안건이 현재 700건 정도 되는데 모든 안건을 (9월에) 한번이라도 최소한 심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소위에서) 했다"고 전했다. 이날 본회의에서 8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은 민주당 요구에 따라 25일로 결정됐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해 9월 정기국회에서 재정준칙 법제화를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날 기재위 전체회의에서는 기재위 소관 부처인 기재부·국세청·관세청·조달청·통계청의 지난해 회계연도 결산과 예비비 지출의 건이 의결됐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2023-08-24 17:21:37[파이낸셜뉴스] 국가정보원 수사관이 기자인 것처럼 속이고 23일 오전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노동자 등 민간인들을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당시 민주노총 경남본부 안에서는 국정원이 국가안보법 위반 혐의로 안석태(54) 금속노조 경남지부장과 강인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을 압수수색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이날 오전 8시20분쯤 경남 창원시에 있는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실에 들이닥쳐 안 지부장의 책상·휴대전화·컴퓨터·케비닛 등을 압수수색 했다. 또 같은 시각 대구 출장을 가기 위해 거제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던 강 부지회장을 붙잡아, 강 부지회장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 했다. 경찰은 7개 중대 500여명을 동원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제지했다.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오전 10시30분 긴급 기자회견을 사무실 앞에서 진행했다. 국정원 직원이 기자회견을 몰래 촬영하다 적발된 것은 이때였다. 한 노조원 간부는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고 있는 A씨를 보고 "기자인가"라고 물었고 국정원 직원 A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여기에 더해 A씨가 직접 '기자'라고 얘기했다는 현장 기자들의 증언도 나왔다. 노조측이 A씨에게 기자증을 보여달라고 재차 신원 확인을 요구하자 A씨는 이를 거부하며 현장을 이탈하려 했다. 이에 노조원들이 A씨를 붙잡고 신원을 밝히라고 재차 요구했다. 결국 노조원들이 A씨가 들고 있던 단말기와 가방, 신분증 등을 빼앗아 국가정보원 자켓 등을 통해 국정원 직원임을 확인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노조에게 폭행을 당해 가벼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금속노조는 “기자회견 중 기자로 신분을 속인 국정원 직원이 카메라로 민간인을 사찰하는 게 발각됐다”며 “해당 직원은 지속적인 신분 확인 요구에도 거짓말과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이후 신분증 확인을 통해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적발된 직원은 현장 촬영은 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몰려와 당황해서 기자라고 말했다고 한다"며 "노조에게 폭행 당해 부상으로 병원에 다녀왔다"고 전했다. 앞서 국정원은 북한 지령을 받아 반국가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지난 1일 경남지역 통일운동 활동가 3명과 서울지역 활동가 1명을 구속하는 등 이른바 ‘창원 간첩단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3-02-23 16:29:37'반도체를 지배하라'. 반도체가 패권전쟁의 중심에 섰다. 기존 패권의 질서는 석유의 힘에 움직였다. 그러나 21세기의 패권은 반도체를 지배하는 자다. 인류의 기술은 인공지능(AI)·자율주행의 초연결사회, 초음속 전투기·극초음 미사일과 같은 첨단무기 개발과 우주 개척으로 빠르게 확장한다. 이를 실현하려면 손톱만 한 칩이 없어선 안된다. 반도체가 '미래의 유전'이 된 것이다. 반도체 패권전쟁의 제1전선은 G2(미국, 중국)다. 그 뒤에 일본·대만·미국의 합종연횡이다. 미국은 일·대만과 강력한 반도체 동맹을,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유럽은 탈(脫)아시아를 추구한다. 한국은 이들과 협력·경쟁 관계다. 성장과 동시에 미·중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섰다. 이들 패권국이 반도체 자립(미국·중국·유럽)-부활(일본)-확대(대만)에 투입하는 자금은 어림잡아 300조원을 넘는다. ■G2 갈등과 탈아시아 전략 반도체 패권 전쟁은 크게 두 갈래다. 강대국의 생산망 확보와 기술 확보·추격 경쟁이다. 그 중 반도체 밸류체인 재편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선 미국은 대(對)중국 봉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대만과 함께 한국에 반도체동맹 '칩(Chip)4'를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가 자국 경제·안보와 직결된다는 것. '실리콘 실드'(반도체 방패) 구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말 "미국은 더는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인질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도체 공급망이 되겠다고 했다. 이는 미국 우위의 세계 패권 불확실성과도 연관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벨트가 아시아에 집중돼 있는데, 소위 위험이 잠재된 국가들이다.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 높은 대만, 북한과 휴전 중인 한국이 그렇다. 이는 양면성을 갖는다. 위험국의 반도체 자산을 보호하는 명분의 대중국 방어 군사력 유지, 미국으로 반도체 집적벨트를 이전해야하는 이유를 갖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권역내 생산점유율을 2030년까지 20%(현재 9%)로 높이겠다고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 "칩, 메이드 인 아메리카" 바이든의 반도체 전략은 명확하다. 자국 내재화-공급망 집적화다. 세계에 분산된 공급망을 미국에 집약해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30년 전에는 미국과 유럽이 반도체 생산의 80%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아시아가 그렇다. 공급망을 한 지역에 의존하는 게 실패였다"고 인정했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비율은 현재 12%에 불과하다(중국은 15% 수준). 바이든이 지난해 8월 서명한 '반도체법'이 압박 수단이다. △반도체 시설 건립, 연구개발에 527억달러 투입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5년간 120억달러를 투입해 매년 반도체 인재 1만명 육성이 골자다. 대중국 견제는 구체적이다. 미국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10년간 진출(일정기술 이상의 투자)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중국 우회로까지 막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 기업(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램리서치)의 대중국 반도체 첨단 생산장비(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수출도 금지했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업체가 있는 네덜란드(ASML), 일본(도쿄일렉트론)에도 약속을 받아냈다. 일본은 반도체장비 해외 매출(2021년 2조9705억엔)의 3분의 1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타격을 감수한 안보 전략적 결정을 한 것이다. 미국의 힘은 즉각 확인된다. 2020년 이후 미국내 반도체 투자 유치(40여건)가 2000억 달러를 넘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와 SK그룹도 미국에 2000억달러 이상의 신규·증설 투자를 약속하고 추진 중이다. ■미국-일본-대만 삼각동맹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 장비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장비에서 강자(각각 세계시장점유율 1, 2위)다.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TSMC를 갖고 있다. 이들 3국의 반도체 동맹은 파괴력이 크다. 특히 중국의 군사 확장을 막아야하는 안보 면에서 단단히 묶여있다. ①원 팀 재팬 "부활하라 반도체"=1980년대 반도체 시장 50% 이상을 석권했던 일본은 현재 점유율이 10%에도 못미친다. 이런 일본이 자국의 반도체 공장 건설에 수조엔의 보조금을 투입, 부활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산업 기반 긴급 강화 패키지 대책(2021년 11월)이 그것이다. 지난해 말 반도체 관련 예산 1조3000억엔(약 12조4000억원)을 추가로 책정했다. 반도체 공급망 강화가 핵심인 경제안보법(2022년 5월)도 올 봄에 시행된다. 사실상 TSMC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TSMC는 2021년 10월 일본에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 첫 발표). 일본은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외국기업에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다. 정치권과 정부, 민간과 학계가 결집했다. 도요타·키옥시아·소니 등 일본 대표기업 8개가 합작해 반도체회사 '라피더스(Rapidus, 맹렬한·빠르다는 뜻)'를 설립했다. AI 차세대 반도체 생산이 목표다. 양산 시기를 앞당겨 2025년 상반기까지 2㎚(나노미터·10억분의 1m) 프로토타입 라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700억엔을 지원한다. 삼성전자와 맞붙겠다는 것이다. 대만·미국과의 반도체 협력은 긴밀하다. TSMC는 소니, 덴소와 합작으로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일본 정부가 4760억엔(건설비용의 40%)을 지원하는 조건이다. 내년 12월 생산, 일본 우선 공급이 목표다. 오타 야스히코 일본경제신문 위원은 저서(2030 반도체지정학)에서 "미국은 일본의 동맹국이지만 TSMC유치에선 라이벌이었다"고 했다. ②대만 "사수하라 반도체"=TSMC를 비롯해 UMC(파운드리 3위), 미디어텍(팹리스 4위) 등 글로벌 톱5 반도체 기업들이 대만에 있다. 그 중 TSMC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TSMC는 지난해 3,4분기 연속 매출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반도체 산업에서 단기적으로 대만을 대체할 나라가 없다"고 평했다. 2300만 인구의 대만이 중국을 상대할 수 있는 힘에는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만의 운명이 걸린 것이다. 필립 데이비슨 전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지난 2021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시진핑 주석 집권 3기(2022년~2027년)가 끝나는) 2027년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정치학과 교수 등이 쓴 책('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선 미·중 경쟁이 4~5년 내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대만 반도체 집적지인 서안 신주는 중국대륙과 가장 가깝다. 중국 군은 푸저우, 닝보 공군기지에서 초음속전투기로 5분이면 대만까지 날아갈 수 있다. 대만의 반도체기업이 미·일, 유럽 등 전략국가에 생산기지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안보 압박도 크게 작용했다. TSMC의 창업자 장중머우 전 회장은 "많은 대만 국민은 TSMC 등이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만든 '실리콘 실드'가 대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과 함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초대형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곳에서 내년부터 4나노, 2026년부터 3나노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독일 드레스덴에도 신공장 건설을 협의 중이다. 일본도 현재 착공한 구마모토 공장에 이어 TSMC 제2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 정부도 지난달 7일 반도체법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처리, 지원 대책을 강화했다. 세액공제 확대(R&D투자비 15%→25%, 시설투자의 5% 추가 공제)가 핵심이다. ■중국 "굴기하라 자립하라" 중국은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가 목표다. 반도체 설계·생산·사용의 완전한 자립(중국 제조 2025 전략)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핵심기술이다. 이를 확보하면 양산 능력을 갖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국이 화웨이를 필두로 중국 기업을 겨냥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하지만 중국 굴기의 성패에 관한 예측은 갈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달 초 네덜란드·일본이 중국 반도체 봉쇄에 동참키로 한 것을 두고 "외국 기술이 없으면 중국이 잃어버린 반도체 기반을 되찾는 데 최소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반면 AI 기술 등 개발 속도는 주춤해질지라도 굴기 자체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세계 최대 전기차시장, 전세계 반도체수요 35% 차지), 풍부한 고급 인력 공급이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SMIC(세계 5위), 화훙그룹(6위), 넥스칩(9위) 등 중국 기업들이 합쳐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두자릿수(10% 정도)로 높이고 있는 이유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을 4% 가까이 올렸다. 지난해 6월 블룸버그는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를 인용해 "지난 1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곳 중 19곳이 중국 기업"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은 저부가 차량용 반도체 제조, AI 반도체 설계 등으로 미국의 봉쇄를 버티며 맞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역대 최대인 1조위안(약 184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입한다. ■한국, 정쟁과 규제에 발목 한국은 계산이 복잡해졌다. 미·중은 반도체 최대 교역, 일·대만은 경쟁 관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중에 반도체 공장이 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 40%가 중국 시장이기도 하다. 반도체 장비 수입의 70% 이상을 미·일·네덜란드에 의존한다. 반도체동맹 칩4 참여도 요구받고 있다. 한국은 대·중소기업이 많은 일·대만의 반도체 생태계와는 다르다. 삼성·SK하이닉스 등 몇몇 대기업 의존 구조다. 신속한 의사결정 등의 장점은 있으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대기업 특혜 프레임도 따라붙는다. 신규·증설에 필요한 토지·용수·전력 등에 관한 관계당국의 인허가도 복잡하다. 국가 주도의 대만과 비교하면 한국은 착수부터 공장 가동까지 적어도 5~6년은 더 걸린다는 분석이다. 앞서 가는 반도체 기술 격차를 지켜야 하고 고급 인력을 충분히 확충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경기 변동성이 큰 메모리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구조 탈피 △파운드리 경쟁력 확보 및 투자 확대 △수도권 신규 증설 인력·투자 규제 완화 등 전문가들의 제언도 쏟아진다. 그러나 반도체 강국의 여유일까 당국의 위기의식은 찾기 어렵다. 반도체 시설투자 인허가, 세액 감면 등을 지원하는 이른바 'K칩스법'은 다시 처리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는데, 반쪽짜리(설비투자 세액공제율 대기업 6%→8%)라는 비판이 컸다. 뒤늦게 정부가 8%에서 15%(대기업 기준)로 올리는 개정안(조세특례제한법)을 내놓았으나 국회는 소모적인 정쟁에 하세월 중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2023-02-12 19:01:55[파이낸셜뉴스] 에너지·광물 자원 안보가 흔들리고 있다. 탄소중립에 따라 광물 자원의 가치가 커져가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러시아의 자원무기화로 에너지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 해외 자원개발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적폐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 이 때문에 정권에서 자유로운 해외자원 개발 지원기구를 설립하자는 제안이 국회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해외자원 개발 '휘청', 에너지 안보 위협 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석유-가스 자원개발율은 지난 2015년 16%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 10.7%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등 탄소중립에 필수적인 ‘신전략광물(리튬, 희토류)’의 자원개발률도 지난해 2.4%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전략광물의 자원개발률은 지난 2013년 9.6%까지 끌어올렸지만 이후 자원개발률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특히 ‘희토류’ 자원개발률만 보면 2014년까지 24.9%로 꾸준히 증가하다 2015년 3.9%로 떨어지더니 최근 5년간 1%대 머물다 지난해 0.2%까지 추락했다. 자원개발률이란 우리가 확보한 해외 유전·가스전에서 생산하는 양이 전체 수입량의 몇%를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일종의 ‘에너지 안보’ ‘에너지 독립’ 지표다. 해외자원개발을 체계적으로 추진한 건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10년간 추진 방향을 설정하는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을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자원개발은 타격을 입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자원외교'를 내세우며 임기 내 최대 25%의 자원개발률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연계해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현 광해광업공단) 등에 목표치를 제시하고 공공기관 평가와 연계하는 등 앞뒤 가리지 않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당시 고유가 상황과 기관장 평가 등에 맞물려 부실인수라는 부작용을 야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해외자원개발을 이끈 공기업 사장들을 고발했다. 해외 광구를 지나치게 비싸게 인수해 손해를 끼쳤다는 죄목이었다. 이른바 ‘자원개발 비리’다. 해외 자원개발은 그렇게 졸지에 역적으로 몰렸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상황은 바뀌지 않아 '해외자원 개발'은 적폐로 몰려 계속 규모를 축소했다. 역대 정부들의 해외자원개발 예산을 보면 △김대중 정부 1조 2227억 원 △노무현 정부 3조 5205억 원 △이명박 정부 5조 5328억 원 △박근혜 정부 1조 23억원 △문재인 정부 3952억 원으로 계속 축소됐다. 해외자원 개발 컨트롤타워 ' KOMEGA' 제안 최근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해외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중국의 수출제한으로 촉발한 국내 요소수 대란,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제한으로 인해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 국내 산업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 리튬, 니켈 등 희토류는 탄소중립과 맞물려 세계적으로는 물론 국내 수요도 급증세다. 2017년 2만7810톤에 불과하던 리튬 국내 수요는 2021년 9만4910톤으로 241%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희토류도 21%가 늘었다. 반면 해외 광물확보 담당 공기업인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사실상 해체돼 지난해 9월 출범한 광해광업공단에 흡수됐다. 광해광업공단의 설립 목적과 기능을 규정한 광해광업공단법은 ‘해외 투자사업의 처분’을 주요 사업으로 명시했다. 광물자원공사법에 있었던 ‘해외 광물자원 개발’이란 문구는 삭제됐다. 앞으로 해외 광산에 대한 공기업의 신규 투자가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여기에 광해광업공단은 광물공사 시절 매각하지 않았던 15개 해외 자산까지 모두 매각할 계획이다. 정부도 지난해 발생한 요소수 사태를 계기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4000개 품목에 대해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주요 품목에 대해선 수입처를 다변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직접투자 없이 단순히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한정된 수입국을 일부 넓히는 것만으로는 주요 자원의 공급망 안정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정권과 관계없이 해외자원개발을 전담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에 정운천 국민의 힘 의원은 지난 4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해외자원개발 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을 주문하며 그 대안으로 KOMEGA(Korea Oil, Metals Gas National Corporation)를 검토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멈춰선 해외자원 개발을 다시 시작하되 그냥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며 "항상 진행돼 왔던 고유가 사업참여, 저유가 사업철수를 반복하는 엇박자의 사슬을 끊어야 하며 그 시작은 자원공기업의 실질적 정상화와 국가 자원안보법 제정에 있다"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2022-10-05 16:01:55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을 필두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 되는 가운데 각 나라들이 국가안보에 과학기술과 경제를 연계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에너지 자립과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노리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국가경제와 과학기술 안보 전략 차원에서 국내 기업 육성 등을 담은 '한국형 혁신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백서인 과학기술외교정책연구단장은 12일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안의 내용을 기반으로 국가 혁신을 위한 한국형 혁신법 제정 등을 통해 우리만의 경제 기술 안보 역랑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서인 단장은 '미·중·EU의 국가·경제·기술안보 전략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중·EU의 국가·경제·기술 안보 전략에 대한 비교 분석과 우리나라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미·중·EU '과학기술 안보' 강조 STEPI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체계적인 국가안보체제를 기반으로 가장 먼저 경제와 과학기술의 안보적 가치를 강조했다. 최근 들어 보다 공격적인 경제·기술안보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레이건 정부 때부터 과학기술의 안보적 가치를 강조했다. 최근 미국 상하원은 28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및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미국 내 첨단 기술 및 공급망 역량을 높이고, 강화된 수출 통제, 외국인 투자제재, 연구 안보 규정 그리고 배타적 기술 동맹 체제 구축을 통해 기술안보 역량 강화해 나가고 있다. 중국은 최근 들어 국가종합안보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는 내수 경기 활성화와 대외 확장, 기술적으로는 핵심 기술 자립과 인재양성을 최우선 안보과제로 설정했다. 시진핑 정부는 원천 기술 확보와 첨단 산업 자립, 전략 인재 육성을 과학기술안보의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또한 과학기술 국제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 인권 이슈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를 상호 호혜적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대외 의존도 완화와 대미·대중 균형을 추구하고 있으며, 기술적으로는 공격적 육성과 보호 전략을 취하고 있다. ■'K-혁신법'으로 세계 안보전략 대응 백 단장은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강국들의 국가·경제·기술 안보 전략 수립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혁신법' 제정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와함께 한국형 국가·경제·기술 안보에 대한 개념 정립과 중장기 전략 수립, 국가·경제·기술안보 거버넌스 조정과 대응 체계 고도화 등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형 혁신법을 △임무지향 과학혁신법 △첨단 전략 산업 경쟁력 유지 보호법 △대내외 경제 환경 안정화 및 투자 활성화법 △전략적 경제·과학기술 외교 추진 법 등 국가 혁신을 위한 법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국가첨단전략산업법과 유사·중복도가 높다. 또, 기술 개발에 집중돼 있는 이 법안을 한국과 글로벌 도전 과제 해결과 기초·원천 과학의 혁신 역량 확보를 목표로 하는 법안으로 개정이 시급하다. 또 첨단 전략 산업 경쟁력 유지 보호법을 신설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중 첨단산업 영역은 보호법에 통합해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첨단 전략 산업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대상 분야를 우리가 압도적 경쟁력을 보유한 영역의 핵심 공정·기술로 제한해야 한다. 이는 무분별한 확대를 지양해 신기술 분야의 국제 협력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유도할 수 있다. 또 최종 기술지정 권한은 대통령실로 이관하는 등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 이와함께 '대내외 경제 환경 안정화 및 투자 활성화법'을 통해 소부장, 공급망, 자원안보법 등 공급망 3법간 중복을 줄이고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연구소와의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국내 인재 고용 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재정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첨단기술의 국내 유치 강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전략적 경제·과학기술 외교 추진 법'을 통해 국가차원의 경제·기술안보 외교를 통한 첨단 과학 분야의 협력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2-09-12 1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