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기업 인사팀에 근무하고 있는 최모 사원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바뀌고 있는 사내 분위기에 깜짝 놀라고 있다. 회사에서는 채용과정이 복잡한 정규직은 물론 소수의 계약직 사원을 뽑을 때에도 결정 근거를 꼼꼼하 남기는 업무 분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최씨는 "우리 기업이 보수적인 편이라 사원을 채용할 때, 특히 계약직 채용 과정에서는 임원 추천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부정청탁을 하면 안 된다는 부정청탁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채용 과정 하나하나에 합당한 근거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하 청탁금지법) 시행이 약 한 달을 앞둔 가운데 기업문화에도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각 기업들도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맞춰 클린경영을 시작하고, 기업윤리를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
기업 내부에서 감지되는 제일 대표적인 변화는 법 시행 초반인만큼 몸을 더 사려야한다는 우려감에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회식의 성격자체도 변화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회식문화 변화뿐만 아니라 인사, 영업 마케팅 전반에 영향을 미칠 태세다. 장기적으로는 입사과정뿐만 아니라 내부 인사에 있어서도 학연이나 지연, 뇌물 등으로 내부경쟁을 하는 분위기가 사라질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달라진 사회분위기로 인해 사내 분위기가 경직되고 있다는 우려감도 일부 나오고 있었다.
■회식 등 문화 변화 속 소통경직 마찰
23일 업계에 따르면 많은 기업들이 청탁금지법 시행 후 내부에서 이에 대비한 사내교육 등을 진행하며, 기업윤리 강화 방침등을 내놓고 있다. 민간기업 내에서도 법 시행 초반에 일단 '조심해야 한다'라는 수준을 넘어 이번 기회에 아예 기업문화내에 변화의 계기로 삼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S대기업에 다니는 김씨는 "전 임직원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음주문화 캠페인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면서 "관련법에 적용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언론에서 저녁있는 삶이 계속 보도되니까 회사에서도 회식 시간을 줄이거나 음주를 강권하지 않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라 전했다. 이처럼 최근 많은 기업들 사이에서는 음주없는 회식이나 영화보기 등의 회식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회식의 경우에도 1인당 3만원의 상한선을 지켜야한다고 내부 규칙을 변경한 사례도 있다. 임직원의 복리후생비를 과도하게 부풀려 불법자금으로 악용할 소지를 원천차단하겠다는 의지다. 김씨는 "영업사원의 접대뿐만 아니라 사내 회식에서도 1인당 3만원이라는 한도액을 정해 사회분위기를 빨리 익히라는 분위기"라면서 "금액제한이 생겼기 때문에 회식을 하더라도 끝나는 시간이 짧아져 좋아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내 문화를 경직시킨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 최씨는 "팀웍을 위해 회식을 하자고 해도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봐야한다"면서 "사내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고, 가족같은 분위기는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불평을 토로했다.
회식이 줄어들면서 저녁시간에 여유가 생긴 직장인들 중 일부는 취미생활을 새롭게 시작하기도 한다. 윤씨는 "꼭 김영란법 시행 직후 이런 분위기 때문은 아니지만,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우쿠렐레 수업도 매주 2회 퇴근 직후에 참석하게 됐다"면서 "저녁시간이 자유로워지다보니 눈치보지 않게 된 것 같아서 좋다"고 전했다.
■승진 등 인사평가 시스템도 영향 예고
장기적으로 청탁금지법이 자리잡고, 기업윤리가 더욱 강화된다면 사내 인사시스템 등에 있어서도 보다 투명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일명 '낙하산'등을 통한 입사가 원천봉쇄될 것이라는 기대감부터 학연이나 지연 등에 따라 영향을 받았던 인사평가나 승진 등의 기존의 관행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인사 순환 결정에서도 인사팀장, 임원들과 가까운 직원들이 누렸던 소위 '윗선 프리미엄'도 사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 모 기업 인사팀에 근무하고 있는 박씨는 "부서배치 시 임원들에게 잘 보였던 직원들이 인사 특혜를 받아 왔으나 비공식적인 인사 결정도 부정청탁에 포함돼 임원들의 입김도 줄어 들었다"고 전했다.
■외국계 기업도 영업관행 변화
외국계기업의 경우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영향이 국내 기업에 비해 충격이 덜한 편이다.그럼에도 영업파트 일선에서는 영업 관행 변화에 따른 영향을 받는 분위기다. 해외본사의 윤리경영을 준수해왔지만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거래처 접대뿐만 아니라 일반적 관행으로 용인되는 리베이트 거래도 암암리에 허용해왔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영업 관행에도 큰 변화가 밀려왔다는 분위기다.
국내 굴지의 외국계 기업인 H사 모 임원은 "한국 기업의 저녁 회식문화라든가 접대 문화 등 불편한 관행에 대해 외국계 기업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면서 "그럼에도 청탁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영업 부문에서 당장 타격이 올 것으로 보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전반 윤리경영 속속 도입 바람
경영진들도 앞다퉈 청탁금지법에 맞춰 '윤리경영'에 더욱 고삐를 죄고 나섰다. 지난 19일 허창수 GS 회장의 경우도 계열사 임원 모임에서 청탁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GS 그룹의 윤리경영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허 회장은 "청탁금지법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며 "경영 성과가 좋더라도 윤리 경영에 실패하면 한 순간에 고객 신뢰를 잃고 기업의 존망이 위태롭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업에서는 내부 윤리경영강화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도 한다. NH농협금융지주는 '제1차 농협금융지주 내부통제위원회'를 열고 윤리경영 실천력 제고방안 등을 논의했다. 청탁금지 시행에 따른 윤리경영 문화정착을 위한 활동내용 등 내부통제 관련 주요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농협금융은 적은 금액이라도 서로 나누어 계산하는 'NH-페이(PAY)문화' 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11월2일을 '농협금융 윤리경영의 날'로 지정하는 등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활동도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조성일 수석연구원은 "청탁금지법에 따라 기업의 윤리경영이 강조되면서 기업문화 역시 발맞춰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라면서 "다만 문화라는 것이 단기간에 확 바뀌지 않고 보통 변화에 있어 10~15년이 걸린다고 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에 따라 연착륙하기 위한 다양한 성장통들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별취재팀(조창원 팀장 박지영 김경민 윤지영 한영준 홍예지 장민권 김가희 이태희 기자)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
이 시간 핫클릭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