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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비와 경제 그리고 비와 정부

[fn논단] 비와 경제 그리고 비와 정부
2020년은 자연이 한국 사회를 힘들게 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나쁜 일은 항상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연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경제가 휘청거렸던 와중에 이제는 거의 사상 최장기간의 장마로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인명 피해가 예상 밖으로 컸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는 당분간 수해로 인한 인프라 망실로 경제활동이 일정 부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점이다. 산사태로 인한 주택 붕괴, 하천 범람으로 유실된 농경지와 주거지, 교통망의 파괴 등과 같은 인프라는 복구에 상당 기간이 걸린다. 그래서 생산활동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분기별 GDP(원계열)를 보면, 3분기 값이 2분기보다 항상 낮은 수준이다. 3분기(7~9월)가 휴가 시즌이기도 하고 간혹 추석 연휴가 포함되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호우, 태풍, 폭염 등 자연재해가 집중되면서 경제활동이 위축되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또 다른 문제점은 9월 초에 통계가 나오겠지만 농산물을 포함한 신선식품 가격이 급등한다는 점이다.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물가가 상당히 불안해질 수도 있다. 경제활동 약화에 따른 소득의 감소와 체감물가의 상승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크게 하락시킨다. 이미 코로나의 공습으로 피폐해져 있는 민생이 이번 역대급 수해의 충격을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경제가 호황이었다면 모르겠으나 엎친 데 덮친 격인 이번 충격을 이겨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우선 거시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거시적 안목이란 정통적인 경기부양책이다. 수해 지역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겠으나, 제발 몇 달 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소모적 지출에 재정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인기영합적 정책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배가 가라앉는데 페인트가 벗겨진 곳을 다시 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배가 앞으로 나가면서 배수펌프가 작동될 수 있도록, 문제의 핵심인 엔진을 가동시켜야 한다. 특히 토건(土建)을 적폐로 생각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자. 경기부양의 정통적 수단은 토건이다. 올해만은 토건에 의지하지 않고는 경기부양은 어렵다. 더구나 국민 안전을 위한 인프라 재건이라는 좋은 명분도 있다. 둘째, 신속한 대응이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재원이 모자랄 것 같으니 4차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 8월이다. 언제 추경안을 만들어서 언제 국회를 통과하고 언제 집행을 하겠는가. 아직 3차 추경도 다 집행이 되지 않았을 터이다. 현실적으로도 우선 발 빠르게 예비비를 동원하고 모자란 것은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추경을 가지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동안 그만큼 경제 회생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셋째,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순수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지자체의 로비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또 퍼주기 식의 재정 지원을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정책 당국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말 민생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쯤이면 이미 피해복구 방안, 그것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 장마 이후의 물가안정 방안 등이 나왔어야 한다. 비가 그치고 나서 하자는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일까? 정권의 자존심이 걸린 것 같은 부동산시장 대책에 목매는 정부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정부가 절실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