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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코노미스트 입에 재갈 물린 이재명 지사

지역화폐의 유용성을 놓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국책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충돌했다. 이 지사는 15일 페이스북에서 조세재정연을 "근거 없이 정부 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 연구기관"으로 규정했다. 이어 "정부 정책 훼손하는 국책 연구기관에 대해 엄중 문책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지역화폐는 이재명표 정책이다. 성남시장 시절에 시작해 지금은 경기도에서 적극 활용 중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정책을 조세재정연이 깎아내렸다. 연구원 소속의 두 부연구위원은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국가·지자체 보조금이 들어가는 지역화폐 정책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적 순손실을 초래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전국 229개 지자체에서 총 9조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순손실이 22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8쪽짜리 보고서를 찬찬히 훑어보면 이 지사의 감정적인 반응이 못내 아쉽다. 보고서는 경제원리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준다. 지역화폐를 인근궁핍화 전략과 비교한 대목은 탁견이다. 어떤 나라가 자기만 살겠다고 관세장벽을 쌓으면 이웃나라들도 줄줄이 보복관세를 매긴다. 1930년대 대공황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결국 모든 나라가 피해자다. 경기도가 도(道) 안에서만 쓰는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다른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찍을 수밖에 없다. 실제 올해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229곳(94%)이 지역화폐를 찍는다. 자기만 가만 있으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전국에서 쓸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이 오히려 지역화폐보다 낫다고 본다. 이 또한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이 지사의 언어는 거칠다. 국책 연구원을 상대로 얼빠진, 훼손, 혈세낭비, 엄중문책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쏟아냈다. 유력 정치인이 위협적 언사를 구사하면 이코노미스트들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 주류 경제학자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밀어붙였다. 지금 소주성은 껍데기만 남았다. 이 지사가 소주성의 교훈을 되새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