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이맘때쯤 '새해 소망은 협(協)'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2020년 1월,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해를 맞으면서 쓴 글이다. 2019년은 이른바 '조국 사태'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해다. 사람들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고 갈라져 서로를 헐뜯고 비난했다. 그해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택했다. 공명지조란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머리가 두 개인 상상 속의 새다. 공동의 운명체이면서도 서로가 극렬히 반대하고 극단적으로는 상대방이 절멸(絶滅)하기를 바라는 세태를 비유한 말이다.
벌써 이태가 지났지만 협을 갈망했던 당시의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교수신문은 한 해 뒤인 2020년과 2021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각각 '아시타비(我是他非)'와 '묘서동처(猫鼠同處)'를 골랐다. 아시타비는 아시다시피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다. 우리가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내로남불'이 바로 아시타비다. 또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의미의 묘서동처는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들이 도둑과 한패가 돼 이전투구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사자성어 선정에 참여한 교수들은 "누가 덜 썩었는가 경쟁하듯 리더로 나서는 이들의 도덕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지금 이 현실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내놓는 사자성어가 대체로 사회비판적이라면, 새해 아침에 맞춰 내놓는 말은 앞날에 대한 희망을 담는 경우가 많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지난해 선정한 '개신창래(開新創來)'가 대표적이다. 코로나로 꽉 막힌 세상에 '새로운 길을 열어 미래를 열어가자'는 원대한 꿈을 담았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의 여호첨익(如虎添翼·세종시의회)이나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는 집사광익(集思廣益·대전시의회), 봄바람에 알맞게 내리는 비를 의미하는 춘풍화우(春風化雨·인천시), 어떤 일이든 강한 의지를 갖고 전력을 다하면 쇠와 돌도 뚫을 수 있다는 금석위개(金石爲開·경북의사회) 등도 비슷한 경우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둘로 나뉘고 갈라져 서로 으르렁대던 싸움을 멈추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치판은 여전히 혼탁하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전략이 점입가경이다. 유력 대선후보가 "네거티브 전략을 멈추겠다"고 선언했지만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협(協)은 여러 사람(十)이 힘(力)을 합쳐 밭을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물론 협력하고 화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노릇은 아니다. 글자 안에 힘 력자가 세 개나 있고 그것도 모자라 많다는 의미의 열 십자까지 더해진 까닭을 되새겨봐야 한다. 이번 대선이 두 개로 나뉜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축제가 되기를, 이 아침에 희망해본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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