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어피너티 풋옵션 분쟁 일지 /그래픽=정기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교보생명이 지난 8일 숙원사업이었던 지주사 전환을 공식 선포한 가운데 재무적 투자자(FI) 어피너티 컨소시엄(이하 어피너티)과 법적 공방이 재부각되는 모양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풋옵션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어피너티 측이 지주사 전환에 우호적일지 미지수다. 현재 신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은 36.91%, 어피너티 등 FI들의 보유분은 24.01%다. 지주사 전환 안건이 보고되는 이사회 당일인 9일 어피너티 측은 신 회장을 향해 "(어피너티가 무죄라는) 법원 판결에 승복하고 교보생명을 이용한 사법시스템 남용을 중단하라"고 촉구해 지주사 전환에 대한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풋옵션 가치 산정 적정성 두고 법적 공방 지속
어피너티 측이 이날 신 회장에게 '승복하라'고 요구한 법원 판결은 지난해 3월 서울고등법원이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딜로이트안진 임원 2명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한 내용이다. 함께 기소된 딜로이트안진 직원 1명과 어피너티 임직원 2명도 모두 무죄를 받았다.
교보생명은 이들이 2018년 10월 특정 가격에 주식을 다시 사가는 ‘풋옵션’ 행사 가격을 평가하면서 어피너티 측에 유리하게 가치를 부풀렸다고 주장하며 지난 2020년 4월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딜로이트안진 및 어피너티 임직원들에게 1심 무죄판결이 나오자 교보생명이 항소했지만 이번에도 1심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양 측의 갈등은 지난 2018년 10월 어피너티 측에서 보유하고 있는 교보생명 지분 24%를 당초 매입가격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신 회장에게 되사가라며 풋옵션을 행사한데서 시작됐다.
신 회장은 지난 2012년 9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어피너티를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어피너티 측은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의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5만5000원, 총 1조2054억원 규모에 인수했다.
당시 풋옵션을 포함한 주주간 계약서에는 3년 뒤인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피너티 측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약정이 포함됐다.
약속한 3년이 지나도 IPO가 이뤄지지 않자 어피너티 측은 주당 40만9000원의 풋옵션 행사 가격을 산정해 교보생명 측에 주식을 되사가라고 요구했다. 당시 교보생명의 IPO 공모 예정가 역시 주당 18만~21만원(크레디트스위스)에서 24만~28만원(NH투자증권)으로 어피너티의 매입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에 신 회장 측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라며 응하지 않자 어피너티 측은 풋옵션 이행을 요구하며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요청했다. 이에 신 회장 측은 풋옵션 가치를 놓고 회계사와 어피너티 측 임원 간 부적절한 공모가 있었다며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및 어피너트 측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엎치락 뒤치락' 법적 판결에 길어지는 갈등
ICC 중재판정부는 지난 2021년 9월 1차 중재에서 신 회장이 어피너티 등과 맺은 풋옵션 계약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단 어피니티 측이 주장한 가격으로 매수할 의무는 없다고 결정했다. 교보생명 측에 유리한 판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어피니티 측은 법률대리인을 교체하고 신 회장에게 평가기관을 통해 산정한 공정시장가격(FMV) 평가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2차 중재를 지난해 3월 신청했다.
교보생명이 딜로이트안진 및 어피너티 측 관계자들을 고발한 형사사건과 관련해서는 1심에 이어 이달 초 2심 재판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교보생명은 형사 재판 1·2심 판결이 이미 ICC가 판단한 풋옵션 가격의 적정성과 관련한 판단에 영향을 주는건 아니라며 IPO를 통해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치평가를 받아 적정한 풋옵션 가격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명보험업계가 급격히 위축된 데다 코로나19, 글로벌 통화긴축, 경기침체 등으로 상장 생보사들의 주가가 추락했다는 점 역시 교보생명 측이 어피너티의 입장을 받아 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생명,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의 주가는 4년 전에 비해 최대 40%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
다만 지난해 7월 한국거래소에서 양측의 분쟁을 이유로 교보생명의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에 대해 미승인 결론을 내린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갈등 상황이 지속되는 한 교보생명이 상장을 재추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거래소는 특허 또는 경영권 관련 소송이나 분쟁으로 인해 기업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 카드 돌파구 될까
이 점에서 교보생명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지주사 전환 카드를 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법적 분쟁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지주전환을 위한 주주 설득이 가능하겠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반면 지주사 전환으로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할 경우 FI들에게도 투자금 회수 통로를 열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해 어피너티가 납득할 만한 가격에 지분을 넘길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교보생명 측은 지주사 전환을 위해 FI들과 협의중이라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번 지주사 전환은 회사 가치 및 주주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주주 간 공감대가 필요한 사항으로 현재 협의가 진행중"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어피너티 측은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어피너티 관계자는 "교보생명 이사회에 올라간 지주사 전환 안건은 보고사항이지 의결사항이 아니다"라며 "아직 구체적인 지주사 전환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이와 관련된 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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