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한 우울증 치료 사례.
[파이낸셜뉴스]메타버스가 제조사와 발전사 등 기업분야의 경쟁력 확보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메타버스팩토리, 메타버스발전 등으로 디지털전환이 가속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와 미래산업'은 메타버스가 그려내는 최신 트렌드와 미래 변화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글입니다. <편집자주>
지난 4월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모바일·메타버스기반 MZ세대 정신건강 관리 기술개발’이라는 연구과제를 긴급 공고했다. 3년간 진행하는 연구내용에서 로블록스, 제페토 등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정신건강 증진 콘텐츠 개발이 눈에 띈다. 경희의료원과 같이 제페토에 센터를 만들어 방문자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콘텐츠를 제공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미간이 찌푸려진다.
과연, 만화 캐릭터와 같은 제페토 월드에서 불멍을 하고, 그네를 탄다고 해서 아픈 내 마음이 치유될까?
디지털 트윈 기반 의료 메타버스 솔루션이 개발되고, 메타버스를 접목한 의학교육, 인지행동 치료, 생활습관 교정, 복약 관리, 신경 재활 훈련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가 진행 중이다. 특히, 가상현실 기술은 정신건강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되었다. 미국은 베트남 참전 군인을 대상으로 PTSD 치료를 위해 VR을 접목한 ‘버추얼 베트남(Virtual Vietnam)’ 솔루션을 개발했다. 삼성전자도 2016년 유럽 및 중동에서 기어 VR을 이용하여 공포증을 경감시키는 ‘두려움을 없애자(Be Fearless)’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런 방식을 거슬러 올라가면, 2013년 보라매병원은 흡연 환자들을 대상으로 가상현실 금연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담배를 집요하게 권하는 아바타가 흡연 환자에게 담배를 피우고 싶은 극한의 상황을 유도하여 드디어 담배를 입으로 물려는 순간, 술집과 친구는 사라지고 눈앞에 평화로운 수족관이 펼쳐진다. 자극 상황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반복해서 동일 상황에 노출시켜 자극에 무뎌지게 하는 ‘지속적 노출 치료(Prolonged Exposure Therapy)’인데, 왜 필자는 고전적 조건형성방식인 '파블로프의 개'가 연상되는 것일까? 인간을 너무 자극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1차원적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트라우마 치료 관련하여, 정신과 의사들은 말한다.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트라우마를 치유할 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들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재난 상황이라고 느끼기에 증상을 악화시킨다고 한다. 또한, 트라우마로 인한 상한 감정의 고통감을 다시 한번 느껴야만 치료가 된다고 여기는 것도 잘못되었다. 이는 트라우마 환자의 안정화를 깨뜨리고 고통을 심화시킬 뿐, 고통을 완화하여 치유하지 못한다.
필자는 2013년 국내 5개 국립정신건강센터 의사, 간호사, 보건복지부 담당자와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견학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하였다. 영국의 청소년 정신건강센터(Corbon Centre for Adolescent Mental Health), 왕립정신의학회(Royal College of Psychiatrists), 국립정신건강센터(NCCMH) 등을 방문하였는데, 특히 OECD 자문의사인 Susan O’Conner 박사와 자선단체인 ‘Samaritans’와 함께한 워크숍이 인상에 남는다.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사마리탄즈’는 우울증 및 자살예방을 위해 자살 시도를 하거나 지속적으로 자살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연락을 취해 위험신호를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조밀하게 연결된 지역 네트워크의 힘으로 ‘자살위험자’를 꾸준히 관리하고, 전문가나 의료진 투입이 필요한 경우 바로 투입도 가능하다.
2016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컴퓨터공학과 및 심리학과 공동 연구팀은 실제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가상현실 기기를 활용해 우울증 치료를 시도했다. 모션캡쳐 장치가 달린 특수 의복을 적용했지만, 시나리오는 간단하다. 실험에 참여한 환자는 우울함에 빠져 울음을 터트린 가상의 아동 캐릭터에게 위로의 말과 동작을 했고, 아동 캐릭터는 점차 울음을 그치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 뒤 환자들은 성인 캐릭터를 마주하고, 캐릭터는 환자 본인이 방금 취했던 태도와 언사를 그대로 반복했다. 즉, 환자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위로를 얻는 체험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15명 중 9명에게서 우울증 완화 현상이 관찰됐다.
2030년에는 95조 메타버스 헬스케어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타버스의 활용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내 주위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향에서 기술이 접목되기를 바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이, 꺼질 듯 위험신호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떡볶이 한 접시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힘이 되지 않을까? 메타버스 기술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김호경 광명자치대학 도시브랜딩 학과장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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