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과 유사한 사전규제는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디지털 플랫폼 산업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정 국가의 규제 형태를 따르기보다는 각 나라의 사정에 맞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와 고려대 ICR센터가 지난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기협 제공
12일 업계에 따르면 쥬세페 콜란젤로 바실리카타대 교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와 고려대 ICR센터가 지난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에 참석해 “DMA식 사전규제가 디지털 플랫폼의 산업 혁신을 저해하고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EU는 DMA를 통해 디지털 시장 규제 리더임을 자부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등 국가별 반독점 조항과 상충되어 효과적 규제인지 의문이 많다”고 덧붙였다. 즉 DMA는 EU 내 적용도 미흡한 상황이기 때문에 글로벌 표준 법안처럼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크리스토퍼 유 펜실베니아대 로스쿨 교수도 현재 플랫폼을 겨냥한 각국 정부 행태를 언급하며 “과거 통신 규제가 구조적 분리로 인해 소비자의 피해가 컸는데, 과연 입법을 하는 입장에서 과거 사례를 고심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또 “미국에서도 과거 대법원 판례를 통해 사전규제는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가 있는 만큼 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쌓기 전에 사전규제를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만이 플랫폼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시됐다. 대만 공정거래위원회 앤디 첸 부위원장은 “대만 경쟁당국은 플랫폼 기업 독과점 문제에 대해 사전규제 방식의 접근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으며, 각 이슈에 따라 개별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만은 별도 법을 만들어 디지털 플랫폼을 규제하지 않으며, 신중을 기해야 하는 사전규제는 대만에서도 입법이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추진되고 있는 EU의 많은 법 개정은 목표지향적”이라고 언급하며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으로 목표만 상정하고 법이나 규제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플법)’과 관련, 시장 획정에 대한 견해도 제시됐다. 남재현 고려대 교수는 “시장 획정은 경쟁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등 다양한 조사를 통해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플랫폼 생태계는 시장 획정이 매우 어려운 분야”라며 “우리나라는 기준 마련을 위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인데 예측만으로 대략 마련한 기준을 일반화해 법으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온플법이 ‘DMA 카피캣’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성환 아주대 교수는 “유럽의 DMA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다른 시장 경쟁상황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온라인 쇼핑 시장에 대한 정부나 연구기관에서 경쟁상황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진 연구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증권시장 자료를 인용하거나 전문적인 시장 경쟁상황 분석 없이 DMA를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박지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DMA법을 그대로 적용한 사전규제를 국내에도 적용하면 사실상 디지털 시장의 혁신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면서 “해외 국가들이 각국 상황에 맞춰서 규제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 기업만 표적이 돼 경쟁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는 규제의 섣부른 도입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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