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서 최근 울산, 인천 등 조례 잇단 위헌 판결
정치적 표현의 자유인가. 아니면 무분별한 난립인가
인천 등 향후 헌소 검토...이번 판결로 정치현수막 규제 어려워져
울산시, 각 정당 협의해 전용게시대 체계 유지키로
울산시는 지난해 10월 정당현수막 전용게시대 설치 운영 조례가 제정된 이후 최근까지 울산지역 134곳에 전용게시대를 설치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이 현수막 강제 철거가 단서가 포함된 해당 조례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전용게시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사진DB
"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정치권>
"여·야가 막말을 내뱉는 듯한 정치 현수막이 짜증 난다"<시민들>
【인천·울산=한갑수 최수상 기자】 인천시와 울산시, 부산시, 광주시가 시행하고 있는 정당 현수막의 무분별한 난립을 제한하는 지자체 조례가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자 이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7일 인천시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인천·부산·울산·광주 시의회를 상대로 낸 조례안 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서 상위법인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옥외광고물법)’에 위배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상위법 보다 엄격한 조례는 무효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이 문제가 된 건 지난해 6월부터다. 인천시는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고 각종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 게시하되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 이하를 게시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행안부는 인천시에서 의결한 조례가 상위법에 위배된다며 재의결할 것을 요청했으나 인천시는 재의결 요구를 안 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하고 조례를 공포했다.
결국 행안부는 인천시의 조례가 상위법의 위임이 없어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행안부는 본안 소송과 별도로 집행정지 신청도 했으나 기각됐다.
인천시는 지난해 7월부터 무분별하게 설치된 정당 현수막을 실제로 강제 철거에 나섰다. 지역 정치권에서 반발했으나 시민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정치권이 한발 물러서면서 물리적인 충돌은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 부산, 울산, 광주 등 전국 지자체에서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설치를 제한하는 조례를 잇달아 제정하면서 정당 현수막 정비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울산시는 시의회의 관련 조례 제정과 지역 정치권과의 협조를 통해 정당 현수막 전용 게시대 이용을 의무화했다. 최근까지 134곳에 2~6개까지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는 전용 게시대가 설치됐고 올해 안으로 169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에서 하위 법령인 조례가 상위법보다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법령에 위배된다며 지자체의 개정 조례에 무효 판결을 내렸다. 난립하는 정당 현수막을 방지하려고 제정한 관련 조례들이 효력을 잃게 된 셈이다.
대신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에 따라야 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실효성이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 인천시 "현행법 개정 필요해"
인천시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 옥괴광고물법에 맞춰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동시에 법률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헌법 소원까지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 정치권과 시도지사 협의회 등에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건의하겠다”라고 말했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5일 대법원의 정당 현수막 난립 방지 조례 무효 판결 관련 입장문을 내고 “국회는 다수 국민이 원하는 정당 현수막 난립 방지 요구를 반영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더라도 대승적 결단을 내려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인천 지역 정치권은 여야가 대체로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협력하겠다면서도 한편으로 무리하게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는 입장이다.
고남석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위원장은 “현수막이 주민들을 위험하게 하지 않는 한 법에 보장된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조례 개정을 무리하게 진행한 면도 없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고 위원장은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과도하지 않게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공청회 등을 열어 현수막 난립과 철거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손범규 국민의힘 인천시당 위원장은 “원외 당협위원장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은 현수막과 SNS 문자밖에 없다. 지역 원외위원 150명과 시민 불편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현수막을 달겠다고 협의했다. 인천시와도 협의해 빠른 시일 내 좋은 방안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 울산 여·야 시민안전 목적 지정 게시대 찬성
울산시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울산시, 정당 현수막 전용 게시대 현행 체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민들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최근까지 정당 현수막 전용 게시대 설치를 134곳으로 확대한 울산시는 지역 정당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현재 각 정당과 협의 중이다.
이에 울산지역 각 정당도 보행자와 차량 등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현수막 게재에 반대하고 정당 현수막 전용 게시대 설치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 비췄다. 다만 정당 현수막 전용 게시대를 통해 현수막 내용까지 규제하려는 시도는 허용하지 않겠다며 경계했다.
'울산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던 지난해 10월 울산시 관계자들이 울주군 범서읍 장검교차로에서 조례를 위반한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국민의힘 울산시당 위원장 김상욱 의원(울산 남구갑)은 "개인적으로 울산시의 정책에 공감하고 찬성한다"면서도 "시당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시당 입장을 정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도 내부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이선호 민주당 울산시당 위원장은 최근 지역 언론을 만나 "최근 김두겸 울산시장으로부터 불법 현수막 청정지역을 만드는 것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라고 밝히면서 "공감은 하지만 같은 여당인 국민의힘 울산시당의 동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야당인 진보당은 정당의 정치 활동 제한 여부를 꼼꼼히 따져서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
진보당 울산시당 고은아 대변인은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정당의 정치 활동을 제한한 조례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라며 “진보당은 정당 현수막 게시대 설치를 울산시에 먼저 요청했고, 울산시민들이 보행 불편과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마구잡이식 정당 현수막 게재는 지금도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최수상 기자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를 비롯한 당원들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김건희 수사' 현수막을 강제철거한 서대문구청과 송파구청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kapsoo@fnnews.com 한갑수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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