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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오랜 풍화의 산물 '황토'… 한반도 기후와 역사가 고스란히

우리 국토의 자산, 황토
국토 남쪽·서쪽으로 갈수록 발달
철원 등 습지대에선 회색빛 띠어
산림·농업 지탱해주는 소중한 자원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오랜 풍화의 산물 '황토'… 한반도 기후와 역사가 고스란히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오랜 풍화의 산물 '황토'… 한반도 기후와 역사가 고스란히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오랜 풍화의 산물 '황토'… 한반도 기후와 역사가 고스란히
전북 고창 황토층(위 사진)과 '맨발걷기' 명소로 유명한 대전 계족산 황톳길 이민부 교수 제공·뉴스1
황토(黃土)는 우리나라 거의 전역의 표토를 이루는 오랜 풍화의 산물인 토양이다. 황토는 우리에게 친밀한 토양이지만 학술적으로는 '적색토'로 부른다. 엷은 노랑에서 아주 붉은색까지 다양하다. 남쪽과 서쪽으로 갈수록 잘 발달하고 있다. 그리하여 황토는 거의 한국, 한민족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되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 산-어떤 의사의 수기'는 고교 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소설이다. 만주 조선족 마을에서 불한당에 망나니로 살던 정익호(별명 삵)가 마지막 의로운 행동을 하고 죽어가면서 "저기 붉은 산이…그리고 흰 옷이…"라는 장면이 나온다. 붉은 산은 민둥산이 되어 황토가 드러난 식민지 조국을 상징했다. 그러나 황토밭에 핀 봄의 청보리는 또렷한 색채의 대비로 인하여 또 얼마나 싱그러운가.

한하운의 시 '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 일부를 들여다본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가는 길…"

'문둥이 시인'으로 불행한 삶을 시로 승화시킨 한하운의 시는 아름답고, 그냥 슬프다. 무슨 시의 해석이 필요할까. 북에서 멀리 남으로 소록도로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 길을 걸으며 눈에는 끝없이 펼쳐진 산과 들의 황토가 들어온다. 우리나라는 황토의 나라다.

김동리 단편소설 '황토기' 바로 첫머리에 나오는 글을 인용한다. 제목에도 황토가 들어간다. 왜 황토인가를 전설과 신화로 풀어 쓰면서 소설을 시작한다.

"솔개재에서 금오산 쪽으로 뻗쳐 내리는 두 산맥이다. 거기 황토골이란 조그만 골짝 하나를 낳은 것뿐으로, 상룡(傷龍), 또는 쌍룡(雙龍)의 전설을 이룬 그 지리적 결구(地理的 結句)는 여기서 끝을 맺는 것이다.

상룡설(다친 용에 대한 전설), 여의주를 잃은 한 쌍의 용이 슬픔에 못 이겨 서로 물어뜯어 피를 흘리니, 이 피에서 황토골이 생기니라.

절맥설도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어느 장사가 동국의 장사가 난다면 감히 중원을 범할 것이라 하여 이에 혈을 지르니, 이 산골에 석 달 열흘 동안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이 일대가 황토 지대로 변하니라."

김동리의 소설은 우리의 토속적 신앙으로 풍수지리설을 들어서 황토골을 해석하고 있으며, 그 의미가 주인공들의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황토가 우리 국토를 의미하면서 일제강점기 민족의 암울함을 황토의 운명으로 그리고 있다.

위에서 보는 소설과 시와 역사에서 황토는 색채적으로, 그리고 숲 옷을 벗어버린 암울한 국토로 그려지고 있다. 황토현(황토재)은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관군에게 승리한 곳으로 민중항거의 역사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붉은색을 띠는 적색토는 호남 지방 낮은 구릉지의 풍화층에서 잘 나타나지만 사실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 물론 서쪽으로 갈수록, 그리고 남쪽으로 갈수록 더 많이 분포한다.

황토는 대략 1~1.5m 두께의 토양층으로 짙은 노랑 혹은 붉은색을 띠는, 기반암의 풍화 토양이다. 남한에서는 해발 150m 이하의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를 덮고 있는 표층의 토양층이다. 그 아래에서도 기반암은 일반적으로 두꺼운 풍화층을 형성하고 있다. 암석의 구성 입자가 미립질인 편마암이 풍화하여 점토질 성분이 많다. 그리하여 비가 오면 매우 질어지는(걸쭉해지는) 특성을 가진다. 우리나라 지명에서 진골은 이러한 질게 된 지역에서 그 어원이 나오고 있다. 참고로 중국 서부의 황토는 바람에 날려와 쌓인 토양층을 말한다.

붉은색이 강한 경우에는 풍화와 침식에서 남은 산화된 금속성분(철, 알루미늄, 망간 등)의 색깔을 반영한 것이다. 적색토는 지금과 다른 환경, 말하자면 지금보다 기온이 높고 습도도 높은, 말하자면 아열대기후의 영향하에 있을 때 형성된 고토양(古土壤·paleosol), 즉 지금의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화석화된 과거의 토양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신생대 3기, 즉 몇백만년(대략 200만년 전후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 가는 고토양으로 보는 이도 있다. 아무래도 기반암(bedrock)이 화강암이면 모래질이 많고, 편마암이면 점토질이 많이 생산된다. 붉은 토양은 화강암과 편마암 외에 석회암에서도 나타나는데 기후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철원, 창녕과 같은 습지대 부근의 점토층은 회색, 청회색, 백색을 띤다. 그것은 습지에서 물에 잠기므로 대기의 산소가 차단되어 산화를 못하고 환원 환경에 놓이므로 붉은색보다는 창백한 색을 띠게 된다. 철원에서는 표면을 덮고 있는 청회색의 점토층을 '청갈매'라고 부르고, 쌀농사에 좋은 토양으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이들도 개발에 의해 대기 중에 드러나면 산소와 결합하여 빨리 붉은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우리의 황토는 중요한 국토자원이다. 농업, 임업, 지하수 등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일부 황토가 가진 다양한 광물질(미네랄)들의 다양한 기능으로 황톳길, 황토방, 황토찜질, 황토옷, 황토집, 황토팩, 황토매트 등 다양한 용도로 상업화돼 왔다. 국내에서 유명한 대전 계족산 황톳길 바닥 황토는 매년 전북 황토층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황토도 유한한 자원이며 표층을 형성하므로 황토를 훼손하면 표토 유실과 산사태 등을 유발한다. 황토층 위에서 농경과 취락에 의해 중금속과 유기물의 오염 등이 문제가 되었다. 높은 인구밀도와 엄청난 토지 이용의 결과다.
상업적으로 오염이 안 된 황토를 찾기 위해 더 깊게 토양층을 파면서 훼손도 심해진다. 황토는 삼림과 식생을 지탱하고 농업을 유지하고 지하수를 함양하면서 걸러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자원이며, 자산이다. 우리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황토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