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에는 우물을 파다가 사람들이 죽기도 했는데, 깊은 우물 바닥에 이산화탄소가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 가장 빠른 응급처치는 서둘러서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ChatGPT에 의한 AI생성 그림).
옛날 어느 마을에 오래전부터 물이 말라버린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 근처를 지나가던 나그네 두 명이 돈주머니를 잃어버렸다. 우물 주위에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돈주머니를 봤다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나그네들은 아무리 찾아봐도 돈주머니가 보이지 않자 혹시 마른 우물 속에 빠졌을까 하여 한 사람이 먼저 우물 안으로 내려갔다. 우물은 깊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물 밖에 있던 나그네가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바닥까지 내려갔는가? 돈주머니는 찾았는가?” 그러자 우물 안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될 것 같네.”라는 대답이 동굴 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물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내려간 사내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이에 우물 밖에 있던 나그네는 걱정이 되어 직접 우물 안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 역시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이 나오지 않자 불안해졌다. 그들은 줄에 나무 널빤지를 묶어 마을의 한 젊은 남자에게 그것을 타고 내려가 보도록 했다. 그런데 그 젊은 남자 역시 한참을 내려간 후 갑자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줄을 끌어올렸다. 우물에서 건져 올린 젊은 남자는 정신이 혼미하여 의식이 없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급히 의원을 불렀다. 의원은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환자에게 찬물을 끼얹고, 웅황 가루 1~2돈을 개어 먹였다. 또 생강 1냥을 썰어 술 5잔에 진하게 달인 후 한 번에 마시게 했다. 그러자 젊은 남자는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사실 마른 우물 바닥에는 이산화탄소가 농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물 아래로 내려가자 질식하게 된 것이다.
의원이 먹인 우황(牛黃)은 열을 내리고 해독 작용을 하며, 진경 및 진정 효과가 있어 뇌신경을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또한 혈류를 원활하게 하여 뇌와 심장 기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중독의 경우 핵심 문제는 산소 공급 부족과 호흡성 산증이므로 우황이 직접적인 치료제가 되기는 어렵고 무엇보다 산소 치료 및 환기 확보가 최우선이다. 실제로 젊은 남자는 서둘러 밖으로 꺼내져서 살게 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 남자를 구한 후 닭과 개를 줄에 매달아 우물 속에 내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닭과 개가 모두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우물 속에 독이 있다고 확신했다. 결국 우물 둘레를 허물고 두 나그네의 시신을 끌어올렸다. 시신을 살펴보니 피부가 검푸른 색을 띠었지만 외상은 전혀 없었다. 이때 마을의 연로한 노인이 소식을 듣고 나왔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옛날에도 봄이나 여름철에 우물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이 종종 있었네. 깊은 우물 속에는 사기(邪氣)가 잠복해 있어 들어가면 정신이 혼미하고 숨이 답답해질 수 있네.”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마을 이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이 한 명씩 희생되어야만 독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겁니까? 아니면 닭이나 개를 희생시켜야 합니까?”
노인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네. 우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닭이나 오리의 깃털을 던져 보면 되네. 깃털이 곧장 떨어지면 독이 없는 것이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천천히 내려가면 독이 있는 것이네. 또 횃불을 던졌을 때 서서히 꺼지면 독이 없는 것이고, 즉시 꺼져 버리면 독이 있다고 볼 수 있지.”라고 했다.
노인은 그 사기(邪氣)의 실체가 이산화탄소인 것을 몰랐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아래로 가라앉아서 우물 바닥에는 가장 높은 농도로 쌓이게 된다.
이 기체는 무색무취이기 때문에 사람의 감각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깃털을 이용해 공기의 흐름을 확인하거나 횃불을 사용해 산소 부족 여부를 감지하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기 때문에 옛날에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과거 어머니들이 아랫목에 항아리를 두고 동동주를 빚을 때 성냥에 불을 붙여 항아리 안으로 넣어 봤는데, 이때 불이 바로 꺼지면 술이 덜 익었다고 판단했다.
발효 중에 나온 이산화탄소가 바닥에 농축되어서 불을 꺼뜨린 것이다. 만약 성냥의 불이 한참 동안 살아있으면 술이 모두 익었다고 여겼다.
또한 깃털이 곧장 떨어지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천천히 내려간다면, 이는 공기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고 서로 다른 기체들이 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법은 기체 밀도의 차이를 감지하는 간단한 실험적 기법으로, 옛날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라 할 수 있다.
현대에도 깊은 우물이나 수직 갱도를 팔 때는 정확한 이산화탄소 측정 장비를 사용하여 안전을 관리하고, 환기시설을 설치하고 있으며 작업자가 안전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옛사람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
* 제목의 ○○은 ‘깃털’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동의보감> 入井塚卒死. 凡入井塚, 須先以雞鴨毛投之, 直下則無毒, 若徘徊不下則有毒. 當先以酒數升, 灑其中, 停久乃入. (우물이나 무덤 속에 들어가서 갑자기 죽은 것. 우물이나 무덤 속에 들어갈 때는 먼저 닭이나 오리의 깃털을 던져 본다. 곧장 떨어지면 독이 없는 것이고, 왔다갔다하면서 떨어지지 않으면 독이 있는 것이다. 먼저 술 몇 되를 그 속에 뿌리고 한참 후에 들어간다.)
○ 新城縣人家, 有枯井一口. 有客人兩者, 於五月間, 因失鈔袋, 疑在井中, 一人先下井中. 寂然無聲, 又一人繼下, 亦久不出. 傍人怪之, 與家主議, 用繩弔縛木板, 令人登踏下井看之, 其人亦無聲. 卽牽上井則其人昏迷不省. 用冷水救甦, 更用雞犬縛繩下試, 亦皆死焉. 遂拆毁井畔, 見兩人身尸, 用繩弔縛, 上來看審, 則身尸靑黑了無傷痕. 此其中毒而死也. 治法同上.(신성현의 어떤 집에 물이 말라버린 우물이 하나 있었다. 5월에 지나가던 나그네 2명이 돈주머니를 잃어버렸는데, 우물 속에 빠졌을까 하여 한 사람이 먼저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 또 한 사람이 내려갔는데 또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곁에 있던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집주인과 의논한 후, 밧줄로 나무 판때기를 묶어 그것을 타고 내려가 보았는데, 그 사람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우물에서 끌어올려 보니 정신이 혼미하여 인사불성이 되어서 찬물을 끼얹어 깨어나게 하였다. 다시 닭과 개를 밧줄에 매어 시험해 보았더니, 그것들도 죽었다.
그래서 우물 둘레를 무너뜨리고 두 사람의 시체를 찾아 밧줄에 시체를 매어 올려보냈다. 살펴보니 시체가 검푸른데 전혀 상처가 없었다. 독기에 상해서 죽었기 때문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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