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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스타트업은 인내자본을 원한다

[서초포럼] 스타트업은 인내자본을 원한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은 실패 위험이 크고, 투자이익을 실현하기까지 10년 이상 장기간이 소요되는 딥테크 스타트업이나 첨단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의미한다. 알파고의 딥러닝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인공지능(AI) 시대를 연 딥마인드도 인내자본의 투자가 있었기에 뚜렷한 수익모델 없이 10년여 동안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일론 머스크의 엔젤투자와 유명 벤처캐피털 파운더스 펀드는 AI 연구에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2010년 딥마인드 창립 직후 초기투자에 참여하였다. 2014년 4억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으로 딥마인드를 인수한 구글도 인내자본 투자를 한 것이었다. 이들의 투자에 힘입어 딥마인드는 AI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고,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 폴드와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탄생시켰다.

약 3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벤처투자는 연간 10조원 규모로 성장하였으며, 1조원 이상의 투자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벤처캐피털도 10개 이상이 되었다. 하지만 국내 벤처캐피털들의 투자행태는 인내자본이라기보다는 투기자본에 가깝다. 총 7~10년 정도의 운용기간을 갖는 국내 벤처투자 펀드는 통상 결성된 후 4~5년 동안 투자하고, 이후 3~4년을 회수기간으로 운용한다. 투자에서 회수까지 길어야 7년 정도를 내다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기술이 완성되어 시장성이 입증된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스타트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실험실 단계의 신약개발 스타트업이나 공정기술을 확립하지 못한 소재부품 제조 스타트업이 자금난을 겪는 이유이다. 독자적인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는 퓨리오사AI도 국내에서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자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벤처투자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모험자본 시장이 크게 발달한 미국을 제외하면 순수 민간자본이 인내자본 역할을 하는 나라는 없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정부의 정책자금 출연과 국책은행의 출자를 통해 스타트업에 장기투자하는 인내자본을 조성하고 있다. 영국의 국영투자은행이 설립한 BPC(British Patient Capital), 독일의 국영개발은행 KfW가 설립·운영하는 HTGF(High-Tech Grunderfonds)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벤처캐피털의 투자펀드 조성에 있어서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매년 7000억원 내외의 예산을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모태펀드에 출자한다.

모태펀드는 벤처캐피털이 조성하는 민간투자 펀드에 평균 30% 내외의 지분투자를 하고 있다. 모태펀드가 조성한 운용자산은 4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모태펀드의 출자를 받아 민간 벤처캐피털이 조성한 펀드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인내자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와 공동으로 출자한 금융권의 민간자본이 단기간에 수익실현을 원하고, 펀드를 운용하는 민간 벤처캐피털도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긴 안목을 갖고 장기간 투자하는 인내자본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모태펀드의 운용철학과 펀드 출자원칙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단기 수익성을 중시하는 민간투자 펀드에 대한 출자를 지양하는 대신 지방의 소부장 스타트업과 같이 수익성이 낮아 민간자본이 투자를 회피하는 스타트업에 장기간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인내자본에 출자하는 민간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개인이나 기업이 인내자본에 출자할 경우 그 금액의 일부를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에서 감면해 주는 비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셋째, 퇴직연금 운용규정을 개정하여 인내자본 출자를 유도해야 한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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