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니 사춘기가 끝나면 남자 아기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거의 여자 아기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와 동시에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도 활동을 멈춘다. 이 상태로 거의 10년을 보내다가 갑자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치솟기 시작하는 시기가 온다.
바로 사춘기다. 사춘기가 언제 오는지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보통 9~14세에 시작하는데 더 빠르거나 느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5~6학년의 교실에 가면 보송보송한 아기 얼굴을 한 아이부터 콧수염 자국이 있는 아이까지 함께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래 친구들보다 사춘기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린 경우 아이가 감정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데 매우 정상적인 것이고 중학교 2~3학년쯤 되면 결국 비슷해진다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사춘기의 신체변화는 고환과 음경이 커지고 털이 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발기도 시작하게 된다. 더불어 얼굴의 모양도 달라진다. 턱과 눈썹, 광대, 코 등의 골격이 커져 소년의 티를 벗고 남자의 얼굴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변화에는 성장호르몬도 함께 작용한다. 근육과 근력이 증가하고 어깨와 흉곽도 넓어진다.
목소리가 갈라지는 변성기가 찾아오고 ‘아담의 사과’이라고 불리는 목젖이 불룩 튀어나온다. 목젖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테스토스테론이 성대 주름을 두껍고 길게 만들고 후두에 연골이 자라 부피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후두가 약간 기울면서 튀어나오게 된다. 남자의 목소리가 굵고 우렁찬 것은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여성보다 굵어진 후두 때문이다.
음모가 나기 시작한 후 2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는 얼굴과 겨드랑이에도 털이 난다. 수면 중 무의식적으로 정액을 배출하는 몽정도 시작된다. 이것은 발기와 사정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아이의 생식 기능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뜻한다.
또한, 사춘기에 여드름이 폭발하는 이유는 피지샘과 테스토스테론의 관계 때문이다. 피지샘에는 테스토스테론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으로 전환되는 데 필요한 모든 효소가 있다. 이로 인해 얼굴 피부에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이 과다하게 만들어지게 되고, 이것이 안드로겐 수용체와 강력하게 결합하여 피지샘 세포의 양을 늘린다. 이렇게 해서 피지샘이 비대해지면 더 많은 피지를 분비하고 이것이 모공을 막아 염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춘기 여드름 폭발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여드름이 가장 심한 시기는 10대 중반인 사춘기 중기인데 이때는 성장호르몬이 전생애에서 가장 많이 분비되는 때다.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면 간에서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의 분비도 늘어나는데 이 호르몬 역시 피지 분비를 증폭시킨다. 게다가 청소년기는 탄수화물과 당의 섭취가 높아 인슐린과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가 더욱 높다. 이 호르몬들은 피지 분비를 높이면서 동시에 염증 작용까지 촉진하기 때문에 여드름균이 번식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만들게 된다. 이처럼 사춘기의 여드름은 테스토스테론, 성장호르몬, 인슐린,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합작품이다.
여드름을 다스리고 싶다면 얼굴을 하루 두 차례 잘 씻고, 피지를 수시로 잘 제거하고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여드름균을 제거하는 약을 잘 발라주어야 한다. 아울러 당분 섭취를 줄이는 노력도 큰 도움이 된다.
사춘기에 남자 아이의 가슴이 여자처럼 볼록 튀어나올 수 있다. 의학용어로 유방비대증, 혹은 여유증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고 정상적 과정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사춘기소년의 50~70% 정도가 여유증을 경험한다.
여유증 나타나는 이유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불균형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은 남자 아이의 몸에서도 소량 분비되지만 사춘기에는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워낙 많아서 그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시적으로 떨어지면 에스트로겐이 효과를 발휘하여 가슴이 발달하게 된다. 가슴이 봉긋하게 솟거나 젖꼭지가 부풀거나 쓰리고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6개월~2년 안에 대부분 사라진다.
사춘기가 계속 진행되면서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계속 높은 상태로 안정이 되고 에스트로겐은 정상 범위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예외적으로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약 2년이 가깝도록 가슴이 커지고 여성형 유방에 더 가까워진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물을 단기간 복용하여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사춘기 아이가 신체적 변화를 잘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부모의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 또래보다 성장이 느리거나 혹은 너무 빠른 아이들은 종종 놀림감이 된다.
이로 인해 활달하던 아이가 내성적이고 어두운 성격으로 바뀔 수도 있다.
아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감정에 공감해주고 다른 아이들과 비슷해지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는 것이 좋다. 아버지의 사춘기 시절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도 아이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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