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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새로 출범한 정부가 구조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급하다고 경기부양 정책에만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사후적으로 더 큰 부작용이 있다"며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투자를 용인해 온 과거의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12일 한국은행 창립 75주년 기념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한국의 통화정책 여건에 대해 "올해 예상되는 성장률은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제외하고는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3개월 만에 연간 성장률전망치를 0.7%p나 낮춘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높은 대외 의존도와 일부 산업에 집중된 수출 구조로 인해 역성장 확률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올해 1·4분기와 같이 분기별 역성장이 발생할 확률은 2024년 약 14%로서 10여년 전에 비해 3배나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단기적인 경기부양책보다 경기 침체에 대응할 국내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현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위한 부양책이 시급한 것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성장잠재력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고 경기변동에 강건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부동산 과잉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을 경계했다. 건설투자가 2·4분기까지 5분기 연속 역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가장 큰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히 증가했던 부동산 관련 부채가 조정국면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으로 약 7% 상승하였으며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대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유럽의 사례도 소개했다.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 심화, 글로벌 공급망 분절화로 인한 피해 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한 점이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는 분석이다.
그는 “유럽의 경쟁력 약화 원인을 중장기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며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응하여 역내자본시장 통합을 통해 국제통화로서 유로화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구조개혁은 항상 이해관계의 충돌을 피할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승자와 패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당면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뜨거운 감자로 오른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관계 기관과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기존 입장 재표명했다. ‘프로젝트 한강’ 등 기관용 CBDC와 예금토큰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 인프라의 경우 올해 말 예정된 후속 테스트를 통해 예금토큰의 편익을 점검하고, 상용화 단계로의 추진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은 내부적으로도 인공지능(AI) 활용을 강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은행도 국내 업체가 구축한 ‘소버린 AI’를 기반으로 당행에 특화된 AI를 개발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자체 AI 도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협력해 ‘망개선 파일럿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한은 직원들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위에서 내려온 과제를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보다 적극적인자세로 업무에 임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선하려면 변해야 하고, 완벽해지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는 윈스턴 처칠의 격언을 소개했다.
이 총재는 “시끄러운 한은을 향한 변화에 분명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총재님 말씀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직원은 많지 않다”며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제 집무실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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