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중국에서 젊은층의 결혼과 출산 기피가 확산하는 가운데, 올해가 ‘과부의 해’라는 미신까지 퍼지자 당국이 “미신을 믿지 말라”며 단속에 나섰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중국 민정부(행정안정부 격)의 홈페이지 공공의견란에는 “‘과부의 해’는 상식과 과학에서 심각하게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하는 한 시민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사람들이 미신과 속설에 휘둘리지 않도록 민정부가 비이성적 믿음에 대응해 목소리를 낼 것을 요청했다. 이에 민정부는 지난달 22일 “당신이 제기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2024년이 결혼하기 적합하지 않은 이유”, “용의 해에 결혼하면 안 되나요?” 등의 글이 다수 공유됐다. 절기상 입춘이 설 전이면 음력 새해가 된 뒤 입춘이 없으므로 ‘무춘’이라고 한다. 올해 입춘은 2월 4일인데 설날은 2월 10일이라 ‘무춘년’인 셈이다. 중국 고대인들은 봄의 시작을 다산과 연결 지었고, 봄이 오지 않으면 번성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에 ‘무춘년에는 아이가 없다’는 미신이 생겨났다. 무춘년은 ‘과년’(寡年)이라고도 하는데, 이 때문에 ‘과부의 해’라고도 불린다. 민간에서 무춘년을 결혼 하기에도, 아이 낳기에도 불길한 해라고 말하는 이유다. SCMP는 “봄은 탄생과 재생을 상징하기에 1년 중 가장 활기찬 시기로 여겨진다”며 “‘과부의 해’로도 여겨지는 ‘봄이 없는 해’는 결혼하면 불운이 찾아오는 것으로 민간에서 믿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중앙TV(CCTV)도 대중을 교육하고 두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주 ‘봄이 없는 해’와 불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보도를 내보냈다”고 전했다. CCTV는 해당 보도에서 입춘이 없는 음력 해는 드물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무춘년은 2∼3년에 한 번꼴로 자주 돌아온다. 최근엔 2016년 원숭이해, 2019년 돼지해, 2021년 소의 해가 무춘년이었으며 2027년 염소 해도 무춘년이다. 한편 중국은 인구가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으로 감소하며 인도에 세계 1위 인구 대국 자리를 내줬다. 신생아 수가 2년 연속 1000만명을 밑돌면서 전체 인구도 내리 감소했다. 이대로라면 2100년에는 인구 수가 5억명대로 급감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중국 당국은 출산 장려금 지급, 육아 수당 지원, 주택 구매 우대 혜택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가 ‘청룡의 해’이기도 한 점이 ‘과부의 해’ 미신을 뛰어넘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고 SCMP는 전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05 16:51:32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사마르칸트는 타슈켄트에서 남서쪽으로 5시간가량을 가야한다. 우즈벡에 목화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가는 길 양옆에 끝도 없이 펼쳐진 목화밭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창 목화가 피어있으면 장관이었을텐데 철이 지나서 갈색 줄기들만 있는 것이 좀 아쉽다. 우즈벡 길가의 가로수 중에는 처음 보는 나무들이 있다. 밑둥은 굵고 짧은데 잔가지들이 공작새 깃털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양이 특이하다. 넓은 강과 마을도 자주 보이고 확실히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보다 땅이 비옥하고 살기 좋아보인다. 겨울이 다 되어가는데 길가 과일가판대에는 수박같은 것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다. 설마 수박일까 궁금해서 사먹어보고도 싶었는데 괜히 돈만 버리는거 아닌가싶어 호박일꺼야 하며 그냥 지나갔다. 안개가 뿌옇게 내려 시야가 안좋은 구간도 지나고 안개가 서리가 되어 길가 식물들에 앉았는지 눈꽃이 핀 풍경도 지나간다. 사마르칸트에 가까워 오자 여러가지 색색의 깃발들이 우릴 반겨준다. 도시 곳곳에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등 원색 깃발들이 계속 눈에 띄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나 환영받는 느낌이라 좋다. 도시 외곽에 낮은 토담같은 것이 이어져있다. 군데군데 동굴처럼 판 곳도 있다. 서울의 몽촌토성 같다고 하자 탄이가 "몽쉘통통이라고?"하며 익살을 떤다. 아.. 먹고싶어졌다. 사마르칸트는 사막의 모래색이 온통 도시를 덮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곳에 사는 몰리라는 20대 청년에게 카우치 요청을 보냈었다. 우리는 시내의 한 커다란 카페에서 만났는데 몰리 덕분에 예상 못한 다른 서퍼들을 한가득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온 마리나, 이란에서 사업차 온 메디, 자전거로 여행중인 중국의 이치까지 완전히 다국적인 모임이다. 국적과 나이와 모든 것이 다르고 처음 만난 사이지만 여행자라는 공통점이 만난지 몇분만에 즐겁게 이야기 나누게 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의기투합한 모두 다 함께 몰리네 집에 갔다. 계획에도 없었을텐데 이렇게 갑자기 다 같이 가도 되나 싶었는데 몰리는 방도 많고 음식도 많아 괜찮단다. 몰리는 부모님과 두 동생과 함께 시 외곽의 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여럿이 우르르 몰려왔는데도 부모님은 함박웃음으로 반갑게 환영해주셨다. 손님 접대에 열심인 이슬람가정답게 여러가지 음식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고 산더미같은 플롭(볶음밥)이 나오는데 고기와 레몬과 메추리알로 장식된 것이 무지무지 먹음직스럽다. 플롭은 손님 환대에 가장 중요한 음식이라고 한다. 기름진 볶음밥을 별로 안좋아하던 우리도 이곳에서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 중 갑자기 정전이 되었지만 흔히 있는 일인 듯 당황하지 않고 양초를 켜고 계속해서 먹는다. 다행히 곧 불이 다시 들어왔다. 몰리가 우리들을 아버지께 소개하는데 아버님이 러시아어를 하신다고 해서 마리나가 신이났다. 영어, 우즈벡어, 러시아어 등등 여러나라 말이 마구 섞여서 헷갈리고 난리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는 언어가 없어 통역에 난항이 있었지만 다들 유쾌하게 웃으며 어찌어찌 서로를 소개했다. 메디가 "이치는 made in China(중국산)"이라고 소개하자 다들 웃음이 터진다. 몰리의 남동생의 이름을 차홍길이라고 들어서 "어? 한국사람같은 이름이네?"했더니 다시 잘 들어보자 "차흐니르"와 비슷한 발음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차홍길이라고 불렀고 그 친구도 좋아했다. 한국말을 배우고 있으며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우즈벡에서는 한국말을 꽤 잘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남자, 여자 나뉘어 큰 방에 자리를 잡고 부모님이 제공해주신 이부자리를 덮고 푹 잘 잤다. 다음날 몰리네 가족앨범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외국사람의 옛날 앨범을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무척 흥미진진했다. 사진 한장한장이 역사의 증거이며 가족이야기가 들어있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정성스레 주시고 편히 묵게 해주신 가족분들께 몇가지 선물을 했다. 아버님은 특히 핫팩을 신기해 했는데 사용법을 알려드리자 일할 때 사용하면 좋겠다고 마음에 들어하셨다. 약과와 마스크팩 등 별거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정성으로 드렸다. 몰리네 집 마당은 매우 넓은데 한쪽에는 새로 짓고 있는 2층 건물도 있다. 지금 있는 집도 방도 많고 꽤 큰데 취미삼아 천천히 돈생기고 시간날 때마다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층고도 높고 만듦새가 매우 좋다. 혹 다음에 오게되면 이 곳에서 머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몰리네 가족이 모였을때 가족사진을 몇장 찍어드렸다. 산에 가보고 싶다는 마리나의 이야기에 다들 동조하며 갑자기 여행계획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까브리에 탄이, 시로, 마리나, 몰리, 몰리 남동생, 메디, 이치까지 총 7명이 타고 30분거리의 산으로 향했다. 나도 타봐서 아는데 주행중 캐빈에 있는 것이 승차감도 안좋고 이리저리 흔들려 결코 편하지 않을텐데 다들 젊어서 그런지 다행히 끄떡 없다. 장거리가 아니니 괜찮겠지 싶었다. 매일 둘만 타던 차가 바글바글 시끌벅적 완전 새롭다. 산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등산로를 따라 가볍게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산을 별로 안좋아한다. 그저 이 친구들과 함께 하고싶은 마음에 왔는데 막상 와보니 걷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 20대들의 체력을 못따라가고 기온이 뚝뚝 떨어져 너무 추워서 잘 다녀오라고 하고 차로 돌아가서 기다렸다. 이치와 차홍길은 정상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산에 다녀와서 우리는 메디가 살고있는 집으로 갔다. 차에서 내리는데 다들 머리도 헝클어지고 몰골이 초췌해 보여 걱정이되어 괜찮냐고 물어보니 좋은 경험이었다고 웃는다. 메디는 사업차 사마르칸트에 와있다고 하는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집하나를 통채로 렌트해서 살고있었다. 중정 마당이 있고 방이 여러개 있는 좋은 집이었는데 이미 이치는 방하나를 차지해 손님으로 있었다. 첫날 만났을 때부터 메디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계속해서 졸라댔다. 원하는 만큼 있으라고 인심이 좋다. 메디의 집에 묵은 첫날 마당에 소복이 눈이 쌓였다. 까브리를 안에 주차할 수 있을만큼 마당이 넓다. 그런데 메디의 손님 유치 욕구에 비해 방이며 시설이 따라주질 않았다. 방문의 유리창은 유리 없이 뚫려있고 라디에어터가 고장나 물이 샌 것 같았는데 돈이 있어도 사람이 부족한지 고치는데 여러날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추울까봐 메디는 새 전기히터를 사서 방에 넣어주었는데 우리는 이렇게까지 하며 손님을 데리고 있고싶나 의아했지만 그의 친절을 감사히 받았다. 또 길쪽으로 난 창문은 커튼이 없어 사생활보호가 전혀 안되어 우리차에 있던 흰 천을 가져와 가려야했다. 세탁기는 고장나 있어 쓸 수가 없었고 그래도 부엌에서 가스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것은 좋았다. 접이식 작은 자전거 하나로 세계여행한다니.. 존중감이 절로 생겼다 접이식 작은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다니 게으른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평소 중국사람에 대해 썩 좋은 인상이 없었지만 이치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에 대해 깊은 존중감이 생겼다. 10여년간 호주에서 일을 해서 영어도 꽤 잘하고 자기 삶에 분명한 방향을 갖고 있는듯 했다. 이치는 우리에게 중국식 토마토계란볶음과 가지요리를 해주었는데 매우 맛있었다. 우리도 소고기뭇국과 밥을 해서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다. 정전이 되어 차에서 전기를 끌어다 조명을 켰다. 아랍풍의 노래를 틀어놓고 탄이와 메디가 이상한 춤을 춘다. 술을 잘 못마시는 탄과 종교때문에 안마시는 메디. 술도 안 마시고 저러고 노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히터를 사온 날 전기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였을까 정전이 되었고 밤늦도록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추위에 떨 것을 각오하고 둘이 꼭 안고 자면 죽지는 않을거야 라며 잘 준비를 하고있을때 메디가 간단히 짐을 싸서 나오라고 한다. 전기가 들어오는 호텔을 찾아 우리를 재워주는 것이었다. 이치도 다른 호텔을 잡아주었다고 한다. 아니 돈내고 묵는 손님도 아닌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하다니. 참 이슬람의 손님접대는 대단한 것 같다. 아니 메디만 대단한 것일까. 메디와 꽤 친해진 것 같아 평소 이슬람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너희는 아내를 여러명 가질 수 있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봤는데 메디의 대답은 의외로 심각하고 진지했다. 그는 코란을 여러번 읽고 많은 고민과 깊은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코란에 의하면 오직 두가지 이유만으로 아내를 두명 이상 둘 수 있는데 하나는 과부가 생존을 위해 재혼하는 경우, 또 하나는 두명 이상의 여자에게 완전히 똑같이 대할 때라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이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두번째 조항은 하지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대답이 의외였고 참 놀라웠다. 메디는 우리가 만난 첫 이란친구인데 앞으로 다른 이란인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와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서 자고 온 다음날도 계속해서 정전과 누수가 발생하자 우리는 미안해하는 메디의 집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우리때문에 괜한 돈을 자꾸 쓰는 것이 부담되었다. 메디는 집이 부실한 것을 속상해하며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떠나보내주었다. 메디네 집에서 나와 우리는 시내의 Aishia라는 작은 호텔에서 몇일 더 묵었는데 폭설에 강추위가 와서 실내기온이 16도도 안되었고 이곳도 정전이 되기 일수였지만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맘편히 있을 수 있었다. 한국말을 조금 하시는 친절한 사장님이 계시고 맛있는 조식도 포함되어 있어서 꽤 만족하며 머물 수 있었다. 하루는 관광가이드를 꿈꾸는 몰리의 안내로 유명한 "레기스탄"에 갔다. 레기는 모래, 스탄은 장소라고 한다. 즉 모래땅이라는 의미이다. 이슬람 특유의 정교한 타일로 장식된 탑과 건물들이 무척 이국적이고 멋있었다. 광장 한구석에 무덤이 있는데 이곳을 지을때 큰 역할을 한 일꾼의 무덤이라고 한다. 왕이 그의 공로를 치하해 소원을 묻자 여기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는데 살아서 부와 명예를 마다하고 광장에 묻히기를 선택한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몰리는 좌우의 비슷하게 생긴 건물중 어느쪽이 더 오래되었을까 퀴즈를 냈다. 열심히 관찰하고는 찍었는데 틀렸다. 잘 보면 양식이 다르다고 한다. 몰리 덕분에 좋은 관광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침에 차를 몰고 나와보니 이럴수가! 앞유리에 금이 가있다. 최근 큰 충격을 받거나 위험한 곳에 둔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일까. 전에 키르기스에서 하도 금간유리로 다니는 차가 많아 유리를 갈지 않고 때우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어서 분명 이곳에서도 해주는 데가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기로 했다. 사마르칸트의 현대자동차매장을 우선 찾아갔다. 영업소 대표님이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더니 이곳저곳에 전화하며 알아봐주셨다. 돈내는 손님도 아닌데 이렇게 친절하시다니 참 감사했다. 사마르칸트에 있는 동안 밥먹으러 오라고도 하셨다. 소개받은 곳을 찾아가니 말은 안통해도 손짓과 깨진 유리창을 보고 의사소통이 된다. 젊은 청년이 유리창 크랙 진행방향 앞쪽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주사기로 무언가를 넣어 메우는 것 같다. 완전히 굳을때까지 한동안 히터를 쓰지 말것을 당부했다. 앞유리 금이 점점 커지는 것이 불안했는데 이제 안심이다.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여러나라의 친구들과의 좋은 기억을 뒤로하고 부하라로 출발했다.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 https://youtu.be/G85qdMHDuHM?si=iKCbW47_29vK5aVG>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7-25 13:04:10[파이낸셜뉴스 = 전상일 기자] 롯데 자이언츠에 서서히 김태형 감독의 색깔이 덧입혀지고 있다. 롯데가 5강 대열에 합류했다. 무려 5연승이다. 롯데는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홈 경기에서 한화에 6-4로 역전승했다. 6년 만에 재개된 '사제 대결'에서 김태형 롯데 감독이 김경문 감독에게 판정승을 거두면서, 롯데는 한화를 밀어내고 7위로 올라섰다. 5위 SSG 랜더스와 격차도 2게임으로 좁히며,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키웠다. 김경문 한화 감독과 김태형 롯데 감독은 1991년 두산의 전신인 OB에서 함께 포수로 뛴 선후배 사이다. 이후 코치와 선수, 감독과 코치로 인연을 이어갔다. 한화는 2회초 4안타를 몰아치며 먼저 3점을 뽑았다. 롯데는 3회말 선두타자 손성빈의 우익수 쪽 2루타로 반격을 시작했다. 황성빈이 스윙 삼진을 당할 때, 한화 선발 하이메 바리아의 폭투가 나오면서 '스트라이크 낫아웃'이 선언됐고 롯데는 무사 1, 3루 기회를 잡았다. 황성빈이 2루를 훔쳐 무사 2, 3루를 만들자 윤동희가 2루수 땅볼로 타점을 올리고, 2사 3루에서 빅터 레이예스가 중전 안타를 쳐 또 한 점을 추격했다. 롯데는 4회에 전세를 뒤집었다. 1사 후 최항이 좌전 안타를 치자, 박승욱이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다음 타자 손성빈의 좌전 적시타로 롯데는 4-3 역전에 성공했다. 한화는 6회말 수비 때 상대 선두타자 손성빈을 1루수 김태연의 포구 실책으로 내보내며 위기를 자초했다. 황성빈의 내야 땅볼과 전준우의 볼넷으로 이어간 2사 1, 2루에서 레이예스는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2타점을 올리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롯데는 롯데는 어느덧 팀타율에서 무려 0.284까지 올라가며 리그 2위로 자리잡았다. 리그에서 2루타가 가장 많은 팀이 롯데다. 155개로 1위다. 여기에 포기를 모르는 타선은 롯데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14-1에서 경기를 뒤집어 엎은 장면은 부산 사직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무엇보다 롯데의 장점은 젊다는 것이다. 야수 선수들 대부분이 김태형 감독의 색깔이 입혀졌다. 황성빈, 나승엽, 고승민, 박승욱, 손호영, 윤동희, 손성빈 등은 윤동희를 제외하고는 모두 김태형 감독 부임 이후 주전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선수들이다. 특히, 황성빈이나 손호영은 작년과 같은 선수인가 의심이 갈 정도의 맹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내야에서 고승민이 2루수로, 박승욱이 유격수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준 것이 크다. 이들의 수비가 완전히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타선에서 톡톡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 크다. 여기에 이들중 상당부분은 군필이라서 롯데는 이 타선을 5년 이상은 거뜬히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다. 과거 두산 베어스와 같은 상위권 팀으로 가기 위한 기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롯데는 용병 3명이 모두 괜찮다. 월커슨과 반즈는 충분히 리그에서도 준수한 선발이고 레이예스는 호세이후 롯데의 역대급 외인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클리치 능력이 리그에서 탑 오브 탑 수준이다. 롯데는 내년에도 부상 변수만 없다면 이들을 함께 하며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투수진이다. 나균안이 선발진에서 탈락한 이상 이민석, 김진욱, 홍민기 등의 투수들을 어떻게 키워내느냐가 롯데의 관건이다. 여기에 김상수, 진해수, 김원중 등에게만 의존하고 있는 불펜의 과부화도 문제다. 전미르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숫자가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최준용을 키워내는 것도 김태형 호의 지상과제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2024-06-29 01:41:04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한 사직서 수리금지명령,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을 4일자로 전격 철회한다. 2025학년도 1509명의 의대 증원이 확정돼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자 이탈 전공의들에게 내려졌던 사법적 절차를 모두 철회해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전공의에 대한 법적 조치 모두 철회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을 열고 "그동안 전공의들에게 내려졌던 법적 조치를 모두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전공의들은 지역 및 필수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정책 시행에 반대하며 지난 2월 말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다. 이탈 전공의는 1만명이 넘었다. 이에 정부는 수련병원 병원장들에게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내리고, 전공의에게는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바 있다. 조 장관은 "정부는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며 "이번 정부의 결정은 환자와 국민, 의료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진료 공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공백이 3개월을 넘기고 그동안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황 장기화로 현장 의료진이 지쳐가고 중증 질환자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 변경은 불가피했다"며 "정부는 비판을 각오하고 이번에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조 장관은 "이날부터 병원장들은 전공의의 개별 의사를 확인해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도록 상담·설득을 해달라"며 "정부는 전공의의 복귀에 걸림돌이 없도록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해 법적 부담 없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전공의 복귀 규모와 의료 현장에서 비상진료체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국민들의 여론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방안을 만들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연속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본격화해 전공의의 과중한 근무시간을 확실하게 줄일 예정이다. 또 전공의에 대한 병원들의 의존도를 낮춰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의 운영구조도 혁신할 예정이다. ■전공의 얼마나 복귀할지 '미지수'이번 정부의 결정은 전문의 자격 취득을 앞둔 3~4년차 레지던트들에게는 당근책이 될 수 있지만 저연차 전공의들에게는 복귀 이점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수리되면 전공의들이 개원을 하거나 피부·미용 등 필수·중증의료와 관련 없는 분야의 일반의(GP)로 대거 취업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복귀하는 사직 전공의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커리어 일정대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수련기간을 단축하거나 전문의시험, 자격시험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든지 최대한 원래 계획대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얼마나 많은 전공의가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조 장관은 "정확한 복귀 규모를 예상할 수 없는데,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때 의료공백 사태 해소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며 "다만 준비 상황을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탈 전공의에 대한 법적 처벌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의사 집단행동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례가 생겼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00일이 넘도록 전공의 90% 이상이 이탈해 미복귀하면서 비상진료체계에 과부화가 걸리고 있고 진료공백 최소화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총파업 찬반 투표를 이날부터 7일까지 온라인으로 실시한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집행부와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이 모여 긴급회의를 가지고 집단 휴진에 대한 전 회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총파업 찬반 투표 이후 오는 9일께 전국 대표자 회의를 열고 총파업 시기·방식을 논의할 방침이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2024-06-04 18:47:53[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한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 진료유지 명령, 업무개시명령을 4일부로 전격 철회한다. 2025학년도 1509명의 의대 증원이 확정돼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자 이탈 전공의들에게 내려졌던 사법적 절차를 모두 철회해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전공의에 대한 법적 조치 모두 철회 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을 열고 "그동안 전공의들에게 내려졌던 법적 조치를 모두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전공의들은 지역 및 필수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 정책 시행에 반대하며 지난 2월 말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다. 이탈 전공의는 1만명이 넘었다. 이에 정부는 수련병원 병원장들에게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내리고, 전공의에게는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바 있다. 조 장관은 "정부는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며 "이번 정부의 결정은 환자와 국민, 의료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진료 공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공백이 3개월을 넘기고 그동안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황 장기화로 현장 의료진이 지쳐가고 중증 질환자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 변경은 불가피했다"며 "정부는 비판을 각오하고 이번에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조 장관은 "이날부터 병원장들은 전공의의 개별 의사를 확인해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도록 상담·설득을 해달라"며 "정부는 전공의의 복귀에 걸림돌이 없도록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해 법적 부담 없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전공의 복귀 규모와 의료 현장에서 비상진료체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국민들의 여론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 방안을 만들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연속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본격화해 전공의의 과중한 근무시간을 확실하게 줄일 예정이다. 또 전공의에 대한 병원들의 의존도를 낮춰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의 운영구조도 혁신할 예정이다. 전공의 얼마나 복귀할지 '미지수' 이번 정부의 결정은 전문의 자격 취득을 앞둔 3~4년차 레지던트들에게는 당근책이 될 수 있지만 저연차 전공의들에게는 복귀 이점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수리되면 전공의들이 개원을 하거나 피부·미용 등 필수·중증의료와 관련 없는 분야의 일반의(GP)로 대거 취업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복귀하는 사직 전공의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커리어 일정대로 전문의 자격 취득할 수 있도록 수련 기간을 단축하거나 전문의 시험, 자격시험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든지 최대한 원래 계획대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얼마나 많은 전공의가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조 장관은 "정확한 복귀 규모를 예상할 수 없는데,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때 의료공백 사태 해소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며 "다만 준비 상황을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탈 전공의에 대한 법적 처벌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의사 집단행동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례가 생겼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00일이 넘도록 전공의 90% 이상이 이탈해 미복귀하면서 비상진료체계에 과부화가 걸리고 있고 진료공백 최소화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총파업 찬반 투표를 이날부터 7일까지 온라인으로 실시한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집행부와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이 모여 긴급회의를 가지고 집단 휴진에 대한 전 회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총파업 찬반 투표 이후 오는 9일께 전국 대표자 회의를 열고 총파업 시기·방식을 논의할 방침이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2024-06-04 15:41:50【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서양에서는 10월의 마지막날을 '핼러윈 데이' 축제를 벌인다. 고대 켈트 민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어 11월 1일은 멕시코 최대의 축제인 '죽은 자들의 날'이 펼쳐진다. 두 축제 모두 '죽은 자'라는 공통적인 핵심 요소가 있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풍속이 오래전부터 내려져 오고 있다. 바로 '귀신날'이다. 울산박물관은 정월 열 엿샛날인 오는 25일 전통 세시 풍속인 '귀신날'을 맞아 ‘귀신이 곡할 노릇’ 문화행사를 운영한다고 19일 밝혔다. ■ 동국세시기에 기록... 대보름 숙취 해소 목적 이번 행사는 잊혀 가는 세시 풍속인 ‘귀신날’의 존재와 의미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울산박물관에 따르면 귀신날의 유래에 대한 뚜렷한 전거는 없다. 다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正月) 월내조(月內條)에 따르면, “16일(정월 보름 다음날)은 시골 풍속에 대체로 활동하지 아니하고 나무로 만든 물건을 받아들이지 않아 기일(忌日· 꺼리는 날)로 여긴다.”라는 말로 의한 유추 해석이 가능할 뿐이다. 구전 자료에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밥(쌀밥)을 해서 버리고 부럼도 버리기 때문에 이날 귀신이 많이 나온다고 여겨 생겼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해석은 대보름날 밤새도록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놀았기 때문에 다음날 머슴들이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이날 일을 하면 귀신에 의한 병이 들어 주인댁에 손해를 끼친다는 핑계를 대어 하루 더 놀기 위해서 생긴 날로 본다. ■ 귀신날은 집에서 쉬면서 귀신 퇴치 행위 '귀신날'은 이에 따라 귀신이 돌아다니는 날이므로 일을 하거나 남의 집에 가면 귀신이 붙어와 몸이 아프거나 우환이 생긴다고 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쉰다. 그래서 이날은 외출을 삼가는 것은 물론, 농촌에서는 산에 나무하러 가지 않고, 어촌에서는 바다에 출어(出漁)를 하지 않는다. 특히 여자들이 바깥출입을 하면 치마꼬리(또는 머리끝)에 귀신이 붙어 온다고 하여 외출을 삼가며, 또 이날 일을 하면 과부가 된다고 하여 집안에서 쉰다. 낮에는 이처럼 금기를 지키면서 집안에서 조신하게 보내지만 저녁 무렵이면 귀신의 범접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가 이루어진다. 귀신의 접근을 막는 방법에는 불에 의한 것과 놀이를 통한 주술적인 방법이 주로 행해진다. 먼저 불에 의한 방법으로는 불로 태워서 냄새와 연기를 피우는 것과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로 귀신을 퇴치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경북 지역에서 행해지는데, 저녁 해가 진 다음 대문간에서 고추씨·목화씨·삼씨·머리카락 등을 태워 귀신이 싫어하는 냄새를 피운다. 또 대나무와 뽕나무 폭죽은 타면서 나는 소리가 크기 때문에 귀신이 놀라 도망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에 의한 귀신 퇴치 방법은 냄새와 소리로 귀신의 접근을 막을 뿐만 아니라 불로써 귀신을 소멸시키는 이중성이 있기 때문에 귀신을 쫓는 기능이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 ■ 널뛰기, 윷놀이 "소리로 귀신 물리쳐" 놀이를 통한 귀신 퇴치 방법으로는 널뛰기가 있다. 이 방법은 주로 중부·영서 지역에서 행해지는데, 널뛰기와 함께 윷놀이를 하기도 한다. 정월 열 엿샛날 저녁에 '귀신 대가리 깨뜨린다'라고 하여 널을 뛰는데, 널빤지가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땅에 닿을 때 ‘쾅’ 또는 ‘탁’ 하면서 나는 소리로 널 밑 속에 들어가 있는 귀신 대가리를 깨뜨려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윷놀이 또한 귀신을 퇴치하는 놀이로 여기는데 윷가락을 던지면서 나는 소리로 귀신을 부서뜨린다고 한다. 이러한 귀신 퇴치 방법은 모두 유감주술적(類感呪術的)인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마다 귀신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법 다양하다. 그러나 귀신날은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으로 우리 민속사에 존재하고 있으며, 옛 조상들은 이 귀신날에 귀신의 범접으로 생기는 모든 재액을 퇴치함으로써 한 해를 더욱 무사하게 보내고자 하는 바람을 엿볼 수 있다. 울산에서는 정월대보름에 진행하는 큰줄당기기(마두희)같은 큰 민속 행사를 진행하고 난 뒤 하루 휴식을 가진 것이 관련 사례인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박물관에서는 이를 근거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층 로비에는 전통 귀신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설치돼 운영된다. 2층 역사실 앞에는 오전 10시~오후 5시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상징인 ‘도깨비 얼굴’을 그려보고, ‘도깨비 얼굴’이 그려진 투호놀이를 직접 만들어 보는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또 울산박물관을 배회하는 전통 귀신을 찾는 행사도 열린다. 행사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오후 1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 총 4위(位)의 전통 귀신을 찾아서 도장을 받으면, 귀신을 막아주는 팥으로 만든 간식이 제공된다. 모든 행사는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2024-02-19 16:14:07[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 송나라 선화왕(宣和王) 때 한 젊은 선비가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병을 앓았다. 선비는 다리가 약해서 걷지도 못하면서 아파했고 음경이 발기가 되지 않아 부부관계도 할 수 없었다. 병을 앓은 지도 여러 해 되었고, 결혼 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자식도 없었다. 많은 의원들이 치료를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비의 가족은 백방으로 치료해 봤지만 선비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선비의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병치레를 오래 한 통에 가세가 기울었다. 약값을 지불하기 위해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하징(何澄)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하징은 명의로 소문이 나 있었다. 선비의 부인은 수소문 끝에 하징에게 왕진을 부탁하게 되었다. 집안에 가진 돈은 없었지만 어떻게든지 남편의 병을 고쳐주고자 했다. 하징은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가리지 않았다. 하징은 진료의 청을 받고서는 곧바로 다음날 선비의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부인이 하징을 마중하더니, 하징의 팔을 잡아끌고서 으슥한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부인은 하징에게 나지막하게 말하기를 “의원님, 사실 남편이 병을 앓은 지 오래되어 약값으로 돈을 모두 써 버렸고 저당 잡히고 팔 것도 거의 다 쓰였습니다. 이에 약의 값을 치르지 못하니 원컨대 몸으로써 갚고자 합니다. 저를 맘대로 탐하셔도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하징은 깜짝 놀라며 정색을 했다. “부인은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저 마음 놓으십시오. 가진 돈이 없다고 해서 절대 이런 일로써 몸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저 또한 의원된 도리로서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의 벌이 있지 아니하더라도 반드시 귀신의 꾸짖음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부인은 약값으로 대신해서 자신의 몸을 허락한다고 했지만, 사실 부부관계를 하지 못해 마치 과부처럼 지내 수년 간 음욕(淫慾)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황당무계한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부인은 의원이 자신을 쉽게 탐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하징의 대답을 듣고서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이런 마음이 곧은 의원도 있구나.’하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하며 물러났다. 하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선비를 진찰하고 나서는 “진찰을 해 보니 남편분은 신허(腎虛)에 의한 하지무력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원들이 각기(脚氣)나 풍증(風症)으로 보고 치료했기 때문에 차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처방을 복용하면 차도가 있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서 약방문을 적어줬다. 하징이 처방해 준 것은 바로 두충(杜沖)이었다. 하징은 두충을 술에 넣어 우린 후 두충주를 마시도록 했다. 그러자 며칠 만에 다리에 힘이 들어왔고, 한 달 정도 되니 걷게 되었다. 허리와 무릎이 아픈 증상도 모두 사라졌고, 발기불능도 사라졌다. 두충은 근골을 튼튼하게 하는 약재로 간(肝)과 신(腎)을 기운을 강하게 한다. 간은 근(筋)을 주관하고, 신은 뼈를 주관한다. 그래서 신이 충만하면 뼈가 강해지고, 간이 충만하면 근이 튼튼해진다. 발기불능 또한 간신허(肝腎虛)와 관련이 높기 때문에 근골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회복이 된 것이다. 하징이 두충을 술에 넣어 복용하게 한 것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유효성분의 흡수를 높이며 보다 더 빠르게 효과를 보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선비의 부인이 몇 달 뒤 임신을 해서 아이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하징은 ‘참으로 잘 되었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징은 무릇 부녀(婦女) 및 과부(寡婦), 여승(女僧) 등을 볼 때는 반드시 시중드는 사람이 곁에 있도록 한 후에 방에 들어가 진찰했고, 혹시 곁에 사람이 없으면 이들을 혼자서 진찰하지 않았다. 자칫 아녀자를 진찰하면서 성적으로 오해를 살 일을 만들지 않고자 했다. 아녀자의 음부 주위의 회음혈이나 장강혈에 침을 놓거나 뜸치료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하징은 기생과 같은 창기(娼妓)가 진료를 청할 때에 조차도 몸과 마음가짐을 단정하게 하고서 양가(良家)의 귀부인이나 규수를 진찰하듯이 했다. 그래서 진찰을 할 때는 음심을 품거나 희롱하듯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료를 마치고 ‘약주라도 한잔 하고 가시라’ 하더라도 곧바로 돌아왔다. 그 후라도 일없이 방문해서 사음(邪淫)한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얼마 후 하징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서 신을 모시는 사당에 들어갔는데, 판관(判官)이 나타나서 하징에게 말했다. “너는 의약에 공이 있고, 환자와 그 가족이 어렵다면 어디든지 달려갔고 아녀자가 조급한 마음에 미혹한 말을 꺼냈을지라도 색욕을 탐하지 않았으니 상제께서 너에게 돈 5만 관과 관직 한자리를 내려주라 하셨다.”라고 했다. 하징은 잠에서 깨어난 후 ‘희한한 꿈도 다 있구나.’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의 왕세자가 병에 걸렸다. 궁의 내의(內醫)들이 치료에 임했으나 왕세자의 병은 나아지질 않았다. 궁에서는 조서를 내려 초야의 의사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를 않았다. 만약 왕세자의 병 치료를 실패하면 창피를 당할 것이고 설령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엄한 벌에 처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징이 조서에 응했다. 하징은 왕세자를 진찰하고서 약을 처방하자 왕세자의 병은 조금씩 회복이 되더니 아주 건강해졌다. 조정에서 이 답례로 하징에게 재물과 함께 관직을 하사했다. 하징은 ‘지난 번 꿈과 똑같구나. 마치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듯하다.’라고 내심 놀라워하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더욱더 진실되고 정성을 다하여 진료했다. 의사의 성윤리는 그 어떤 직업보다도 더욱더 고귀하게 지켜져야 한다. 환자가 아픈 몸과 마음을 모두 의사에게 허물없이 드러내고 맡기는 것은 의사를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를 불문하고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를 진찰하거나 치료를 할 때, 환자의 정신건강이 불안정할 때, 수술시 마취로 인해 의식이 없을 때라도 진료에 신중해야 한다. 한의사들 또한 복진과 촉진, 침치료시 혈자리를 찾을 때나 추나요법 시 환자와의 신체적 접촉이 빈번하게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옛말에 ‘군자는 신독(愼獨)하라’고 했다. 홀로 있음을 삼가라는 것이다. <중용>에는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의사는 군자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남들이 모두 훤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삼가야 한다. 환자를 진료할 때는 자신의 뒤에서 120명이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의사는 군자처럼 처신해야 한다. * 제목의 ○○은 ‘여색(女色)’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명의잡저> 醫不貪色. 宣和間, 有一士人抱病纏年, 百治不瘥. 有何澄者善醫, 其妻請到, 引入密室, 告之曰 ‘妾以良人抱疾日久, 典賣殆盡, 無以供醫藥, 願以身酬.’ 澄正色曰 ‘子何爲出此言! 但放心, 當爲調治取效, 切毋以此相污. 不有人誅, 必有鬼神譴責.’ 未幾, 良人疾愈. 何澄一夜夢入神祠, 判官語之曰 ‘汝醫藥有功, 不於艱急之際, 以色欲爲貪, 上帝令賜錢五萬貫, 官一員.’ 未幾月, 東宮疾, 國醫不能治, 有詔召草澤醫, 澄應詔進劑而愈, 朝廷賜官賜錢一如夢.(의사는 여색을 탐하지 않는다. 선화 때에 어떤 선비가 병을 앓은 지 여러 해 되었는데, 백방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하징이라는 자가 의술에 뛰어났으므로 선비의 아내가 그를 초청하였는데, 도착하자 이끌고 밀실로 들어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남편이 병을 앓은 지 오래되어 저당 잡히고 팔 것도 거의 다 없어져서, 의약의 값을 치르지 못하니 원컨대 몸으로써 갚고자 합니다.’ 하징은 정색하며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저 마음 놓으십시오. 마땅히 조치하여 효과를 볼 것이니, 절대 이런 일로써 서로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사람의 벌이 있지 아니하다면 반드시 귀신의 꾸짖음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병이 나았다. 하징이 어느 날 밤 꿈에 신의 사당에 들어갔는데, 판관이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의약에 공이 있고, 어렵고 급한 때에 색욕을 탐하지 않았으니, 상제께서 돈 5만 관과 관직 한자리를 내려주라 하셨다.’라고 하였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동궁이 병에 걸렸으나 국의가 치료하지 못하므로 조서를 내려 초야의 의사를 불렀는데, 하징이 조서에 응하여 약을 바쳐서 나았으며, 조정에서 관직을 주고 돈을 하사함이 꿈과 똑같았다.) <본초강목> 按龐元英談藪, 一少年新娶, 後得脚軟病, 且疼甚. 醫作脚氣治不效. 路鈐孫琳診之. 用杜仲一味, 寸斷片拆. 每以一兩, 用半酒ㆍ半水一大盞煎服. 三日能行, 又三日全愈. 琳曰, 此乃腎虛, 非脚氣也. 杜仲能治腰膝痛, 以酒行之, 則爲效容易矣. (방원영의 담수에서는 “어떤 소년이 장가를 들었는데, 후에 다리가 약해지는 병에 걸렸고, 또 매우 아파하였다. 의원이 각기로 진단하여 치료하였지만 효과가 나지 않았다. 노검 손림이 진찰하고는, 두충 한 가지만 한 치[寸] 길이의 조각으로 잘라서 매번 1냥씩 술과 물 각각 1큰잔씩 넣고 달여 복용하게 하였다. 복용한 지 사흘이 되자 걸을 수 있었고, 다시 사흘이 지나자 완전히 나았다. 손림은 ‘이것은 바로 신이 허하기 때문이지 각기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두충은 허리와 무릎이 아픈 증상을 치료할 수 있으니, 술로 운행하게 한다면 효과가 쉽게 나타난다.” 하였다.) <외과정종(外科正宗)> 醫家五戒十要. ○ 二戒:凡視婦女及孀婦尼僧人等, 必候侍者在傍, 然後入房診視, 倘傍無伴, 不可自看. 假有不便之患, 更宜真誠窺覩, 雖對內人不可談, 此因閨閫故也. (의가오계십요. 둘째 계율. 무릇 부녀 및 과부, 여승 등을 볼 때는 반드시 시중드는 사람이 곁에 있도록 한 후에 방에 들어가 진찰하며, 혹시 곁에 사람이 없으면 혼자 보아서는 안 된다. 만약 익숙하지 않은 질환이 있으면 더욱 정성스럽게 살펴야 하며, 비록 내인을 대하더라도 이야기해서는 안 되니, 이는 규방의 일이기 때문이다.) ○ 五戒:凡娼妓及私伙家請看, 亦當正己視如良家子女, 不可他意見戲, 以取不正, 視畢便回. 貧窘者藥金可璧, 看回只可與藥, 不可再去, 以希邪淫之報. (다섯째 계율. 무릇 창기 및 개인적으로 일을 부리는 집에서 보아 주기를 청하거든 또한 마땅히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양가의 자녀 보듯이 할 것이요, 다른 마음을 품고 희롱하듯 보며 부정함을 취해서는 안 되며, 진료가 끝나면 곧 돌아온다. 빈곤한 자의 약값은 되돌려주는 것이 좋으며, 진료하고 돌아올 때 단지 약을 주기만 해야 하고, 다시 가서 사음한 보답을 바라서는 안 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2-19 10:39:29[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 어떤 과부가 있었다. 과부는 누에를 치면서 살았는데, 집에는 남자가 없어서 힘쓸 일이 많았고 가난하고 돈이 없어 일꾼도 부릴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자식도 없었다. 그녀는 집에 항상 혼자였기에 누에 치는 일을 마치고서는 대청 위에서 잠이 들곤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50세가 넘어가면서 숨이 찬 증상이 생겼다. 숨찬 증상은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나아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 겨울, 다시 숨이 찬 증상이 생기더니 그 이후로 팔이 매우 아프고 더러는 어깨가 빠질 듯했다. 아마도 며칠 전 겨울비가 내리던 날에 찬 대청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서 생긴 듯했다. 증상은 심해서 옆에서 부축해야 겨우 일어서고 팔이 아래로 뻣뻣하게 굳어 옷을 벗고 입을 때면 벗거나 입는 것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옷을 방바닥에 쌓아두고 기대어 앉아 지냈다. 통증이 하도 심해서 일상생활조차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과부는 어쩔 수 없이 여러 의원들에게 치료를 받아 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때 마을에 임상경험이 풍부한 노령의 한 의원이 나섰다. 과부는 의원에게 “목이 뻣뻣하고 아파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누워서 베개를 베지 못하며 앉아서 머리를 가누지 못하겠소.”라고 했다. 의원이 진맥을 해 보니 활(滑)하면서도 무력(無力)했다. 의원은 강활승습탕(羌活勝濕湯)에 인삼 3푼을 더하여 처방했다. 강활승습탕은 원래 목덜미가 뻣뻣한 것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습과 함께 찬 자극으로 인해서 태양경이 한습(寒濕)에 상하여 목덜미가 뻣뻣하거나 빠질 것 같고 뒤돌아보지 못하는 증상에 효과적이다. 강활승습탕은 소위 낙침(落枕)이라고 하는 베개의 문제나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고 일어난 이후에 나타나는 항강증에도 좋다. 뒷목이 뻐근하면서 나타나는 후두통에도 좋고, 어깨결림과 함께 근육뭉침을 풀어주기 때문에 고황통처럼 견갑골 사이에 나타나는 등통증에도 효과적인 처방이다. 과부는 의원이 처방한 강활승습탕 5첩을 복용하고서는 뻣뻣했던 뒷목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부축하지 않으면 여전히 앉거나 일어설 수 없었다. 과부는 “온몸의 관절이 아프면서 부은 듯한 통증이 있어서 잠도 잘 수가 없소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의원은 계속해서 소풍활혈탕(疏風活血湯)에 방기를 빼고 인삼 5푼을 더하여 5첩을 처방했다. 소풍활혈탕은 풍습(風濕), 담(痰), 어혈(瘀血)이 사지의 모든 관절로 돌아다니면서 찌르듯 아픈 경우를 치료하는 처방이다. 요즘에도 퇴행성 관절염에 의한 관절통,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통풍성 관절염에서 나타나는 심한 통증에도 자주 사용되는 처방으로 어혈(瘀血)을 제거하면서 기혈순환을 촉진하는 효능도 뛰어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부는 소풍활혈탕을 복용하자 팔의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했다. 의원은 “이것은 어혈이 풀리면서 어깨부위로 피가 몰리기 때문에 욱신거림이 심해진 것 뿐입니다.”라고 안심을 시켰다. 사실 마약이 아닌 이상 탕약을 먹자마자 증상이 사라지는 것도 이상할 노릇이다. 의원은 이어서 2첩을 더 복용하게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어깨의 통증은 절반으로 줄었다. 과부는 “통증이 많이 줄어서 이제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운이 너무 없고 윗배가 더부룩합니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의원은 소풍활혈탕의 복용을 중지시키고 육군자탕(六君子湯)으로 변경을 했다. 의원은 육군자탕에 길경, 지각, 건강을 더하고 또한 산약 더하여 처방했다. 육군자탕은 비기(脾氣)를 보해서 습담(濕痰)을 말리는 처방이다. 보통 비위가 약해서 생겨나는 담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담병(痰病)의 근본을 다스리는 처방이다. 인삼, 백출, 복령, 감초로 구성된 사군자탕(四君子湯)과 담음(痰飮)을 치료하는 반하, 진피, 복령, 감초로 구성된 이진탕(二陳湯)이 합방된 것으로 요즘에도 위장이 약해서 나타나는 구역감이나 위산이 역류해서 나타나는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도 다용된다. 과부는 육군자탕 가미방 10첩을 복용하고 뻣뻣했던 뒷목과 어깨와 팔의 통증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느글거림과 윗배가 불편한 것은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의원은 좀 더 처방을 복용하기를 권했다. “지금 증상이 많이 호전이 되었으나 아직 뿌리가 뽑힌 것은 아니니 육군자탕을 더 복용해서 그 근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요.”라고 했다. 그러나 과부는 가난하여 탕약을 더 이상 복용하기를 꺼려했다. 의원은 안타까워하면서 과부에게 약방문을 적어주면서 이 처방전대로 약재를 구할 수 있으면 만들어 복용하도록 했다. 그 과부는 그 이후로 돈이 생기면 의원의 처방대로 계속해서 육군자탕을 복용해서 남아 있는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노령의 의원에게 ‘명의가 인술까지 베풀었네.’라면서 칭찬이 자자했다. 어느 날 처음에 과부를 처음 치료했던 한 의원이 찾아왔다. “의원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이 그 과부에서 육군자탕 가미방의 약방문을 적어주셨고 그 처방을 복용하고서 완치되었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합니다. 그 처방 연유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요청을 했다. 치료를 담당했던 노령의 의원은 “과부의 병은 습담(濕痰)이 흉격 사이에 응체되어 숨이 차기도 하고 어깨와 목까지 증상이 번지기도 했던 것이오. 따라서 마땅히 육군자탕을 많이 복용시켜 흉격 사이의 습담을 치료했기 때문에 어깨와 목이 저절로 나아진 것이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다시 질문을 하기를 “그럼 처음부터 육군자탕을 처방하신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노령의 의원은 “그렇지 않소이다. 초기의 증상은 실증(實症)을 겸하고 있어서 사기(邪氣)를 깎아 내리고자 했을 뿐이요. 처음에 과부는 어깨와 목의 증세가 급박하여 한시도 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에 먼저 강활승습탕과 소풍활혈탕으로 말단(末端)을 치료했지요. 이 처방들은 관절과 근육의 통증을 잡는 명방들이요. 그런데 과부가 기운이 없다고 한 터에 소산(疏散)시키는 약재를 많이 쓰면 기운이 더더욱 소모될까 염려되어서 어깨와 뒷목의 증세가 모두 반으로 줄었을 때 두 처방은 중지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내경>의 ‘실(實)하면 사(瀉)하고, 허(虛)하면 보(補)한다’는 치법을 사용하신 거로군요.”라고 거들었다. 노령의 의원은 “맞소이다. 목과 어깨의 심한 통증이 줄면서도 과부는 비위가 약하고 몸이 허한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앞의 두 처방의 복용을 멈추고 이어서 육군자탕을 처방한 것입니다. 그래서 흉격의 담이 내려가고 기운을 차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비위와 관련된 복부증상도 좋아진 것입니다.”라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질문을 했던 의원은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자신은 변증(辨證)을 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비방(祕方)만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식처럼 했던 비방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별다른 처방을 할 수도 없었다. 의원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모든 처방은 때가 있는 법이다. 환자의 증상은 구름처럼 변화무쌍한데 한가지 처방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환자의 증상에 따라서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 명의일수록 환자의 증상을 유심히 살피고 고통스러워하는 바를 귀담아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제목의 ○○은 ‘처방’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경보신편> 婦人門. 一婦寡居家貧, 或多勞身, 養蚕時, 或臥廳上, 老境有膈間氣急症, 一朔自愈, 數三年來, 每一發作而自愈矣. 次年冬又發自愈, 其後兩臂苦痛, 或骨節如脫落, 衣服脫着, 扶而起立, 兩臂直垂, 艱脫艱, 項强且痛, 不得回顧, 臥不敢堪枕, 坐不勝頭, 積衣於壁上, 憑坐經過, 諸醫不治. 予進羌活勝濕湯, 加胡蔘三分, 五貼, 項强稍愈, 艱得扶扶坐, 繼用疏風活血湯, 去防己, 加胡蔘五分, 服五貼, 臂痛似添劇, 加用二貼, 肩臂痛半愈. 繼用六君子湯, 加吉更ㆍ只角ㆍ乾干, 人蔘代以胡蔘五分, 山藥一戈, 服十貼, 項强肩臂痛皆. 上腹微有妨碍, 因漸差效, 猶未得平復者, 貧不能多服子湯也, 可惜哉. 此病濕痰留滯膈間, 或氣急, 或延及肩項, 宜先多服六君子湯, 治膈間濕痰, 則肩項當自愈, 而肩項之症急迫, 時刻難支, 故先用勝濕湯ㆍ活血湯以治標, 而肩項之證, 皆半愈而止者, 多用疏散之劑, 恐或耗氣, 故只得救急而止, 繼用六君子湯而治膈痰, 膈痰因下, 腹部而愈. (부인문. 어떤 과부가 집이 가난하여 일을 많이 하였는데, 누에를 칠 때면 대청 위에서 잠이 들곤 하였다. 늘그막에 흉격에서 숨이 찬 증상이 생겼다가 1달 만에 저절로 나았고, 3년 동안 매년 1번씩 발작했다가 저절로 낫곤 하였다. 이듬해 겨울에도 증상이 발생했다가 저절로 나았는데, 그 뒤로 팔이 매우 아프고 더러는 뼈마디가 빠질 듯하여 옆에서 부축해야 겨우 일어서고 팔이 아래로 뻣뻣하게 굳어 의복을 벗고 입을 때면 벗거나 입는 것이 어려웠다. 또 목이 뻣뻣하고 아파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누워서 베개를 베지 못하며 앉아서 머리를 가누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벽 위에 옷을 쌓아두고 기대어 앉아 지냈으나 여러 의원들이 치료하지 못하였다. 내가 강활승습탕에 호삼 3푼을 더하여 주었더니 5첩을 먹고 뻣뻣했던 뒷목이 조금 나아졌으나 부축하지 않으면 앉거나 일어설 수 없었다. 계속해서 소풍활혈탕에 방기를 빼고 호삼 5푼을 더하여 5첩을 복용하자 팔의 통증이 더 극렬해지는 듯하였으나, 2첩을 더 사용하자 어깨와 팔의 통증이 반으로 줄었다. 계속해서 육군자탕에 길경, 지각, 건강을 더하고 인삼 대신 호삼 5푼, 산약 1돈을 더하여 썼더니 10첩을 복용하고 뻣뻣했던 뒷목과 어깨와 팔의 통증이 모두 나았다. 윗배에 약간 걸리던 것도 그 이후로 점차 나아졌으나 아직 평소대로 회복되지 못하였는데 가난하여 육군자탕을 많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니 애석할 따름이다. 이 병은 습담이 흉격 사이에 응체되어 숨이 차기도 하고 어깨와 목까지 증상이 번지기도 했던 것이니, 마땅히 먼저 육군자탕을 많이 복용시켜 흉격 사이의 습담을 치료하면 어깨와 목은 저절로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깨와 목의 증세가 급박하여 한시도 버티기 어려웠으므로 먼저 강활승습탕과 소풍활혈탕으로 말단을 치료하였고, 어깨와 뒷목의 증세가 모두 반으로 줄었을 때 멈춘 것은 소산시키는 약재를 많이 쓰면 기운이 소모될까 염려되어서였다. 그러므로 급한 증상만 구해낸 후 복용을 멈추고 이어서 육군자탕을 사용하여 흉격 사이의 담을 치료하자 흉격의 담이 내려가고 복부도 낫게 되었다.) <동의보감> ○ 必先度其形之肥瘦, 以調其氣之虛實, 實則瀉之, 虛則補之. (반드시 먼저 형의 비수를 헤아린 뒤에 기의 허실을 조절하는데, 실하면 사하고 허하면 보한다.) ○ 羌活勝濕湯. 項强. 諸痙項强, 皆屬於濕. 治太陽經中寒濕, 項强或似拔, 不得回顧. (강활승습탕. 목덜미가 뻣뻣한 것. 모든 경병으로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것은 모두 습에 속한다. 태양경이 한습에 상하여 목덜미가 뻣뻣하거나 빠질 것 같고, 돌아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 ○ 疏風活血湯. 治四肢百節流注刺痛. 皆是風濕痰死血所致, 其痛處, 或腫或紅. (소풍활혈탕. 사지의 모든 관절로 돌아다니면서 찌르듯 아픈 경우를 치료한다. 이것은 모두 풍, 습, 담, 어혈로 생긴 것으로 아픈 곳이 붓거나 붉게 된다.) ○ 六君子湯. 凡治痰, 用利藥過多, 致脾氣下虛, 則痰反易生而多. 法當補脾胃, 淸中氣, 則痰自然運下, 乃治本之法也. 治氣虛痰盛. (육군자탕. 담을 치료할 때 잘 통하게 하는 약을 지나치게 쓰면 비기가 처져서 허해지기 때문에 도리어 담이 쉽게 생겨 더욱 많아진다. 담을 치료할 때는 비위를 보하고 중기를 맑게 해야 담이 저절로 내려가게 된다. 이것이 근본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기가 허하여 담이 성한 것을 치료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12-15 16:57:09[파이낸셜뉴스] 이번 중국 국경절 연휴(9월 29일~10월 6일)기간에 결혼식을 올린 커플이 예년에 비해 훨씬 많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신문주간은 “도처에서 결혼식이 열리면서 국경절 연휴를 ‘하객 연휴’로 보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올해 국경절 연휴 기간에 결혼식만 7번 참석한 하객도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기존에도 국경절 연휴는 일주일가량의 긴 연휴로 인해 결혼 성수기로 꼽혀왔으나, 올해의 경우 코로나 여파로 결혼을 미뤄왔던 커플들이 ‘과부의 해’인 내년(2024년)을 피하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부의 해란 음력으로 따져 입춘이 없는 ‘무춘년’을 의미한다. 윤달이 포함된 2023년은 입춘이 두 번 들어 있는 ‘쌍춘년’이지만, 내년에는 입춘이 없다. 중국 사람들은 입춘이 없는 해를 ‘과년’이라 부른다. 과년은 ‘과부’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과부의 해’로도 불린다. 무춘년에 결혼을 하면 남편이 요절하고, 여자가 과부가 되며 자식도 낳지 못한다는 속설로 인해 중국인들은 ‘과부의 해’라고 부르며 결혼을 피해왔다. 중국 웨딩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하반기에 과부의 해를 피해 가려는 커플들의 결혼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혼인 건수는 쌍춘년인 올해만 잠깐 늘어날 뿐, 내년부터는 다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혼인 건수는 결혼 적령기 인구 감소와 청년층의 결혼 기피 정서, 경제 침체 등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지난 2014년부터 2022년까지 9년 연속 감소해왔다. 이와 함께 출산율 역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출생아 수는 957만명으로 1949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100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3-10-06 08:55:39우리나라가 궁핍했던 시절 멀리서 찾아와 헌신 봉사한 의료간호 선교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이는 감동을 느낀다. 나는 의료간호 선교사 로빈슨(1904~2009)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지난 1974년 여름 간질환자를 위한 장미회에 깊이 관여해온 외숙 강우식 박사가 SOS를 보내왔다. 환자가 너무 많아 주말에도 진료해야 하는데 일요일 자원봉사 의사가 없으니 도와달라는 전갈이었다. 나는 의대를 졸업해 의사면허는 있었지만 기초의학에 몰입하고 있던 터라 망설이다가 상황이 급박해 매주 일요일 진료를 맡기로 했다. 새벽 5시에 모여 기흥휴게소에서 아침 요기하고 목적지에 8시반 전에 도착해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환자를 보는 일정이었다. 두 시간 이내 지역은 석 달마다 당일치기했고, 그 이상 거리는 여섯 달마다 토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다음날 새벽부터 진료하는 강행군의 여정이었다. 보통 300~400명의 환자를 보았고 어떤 지역은 800명이 넘기도 했다. 그 후 30~40회 넘도록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이런 봉사를 처음 시작한 로빈슨 할머니(당시 나는 20대였고 로빈슨은 60대였기에 할머니라고 불렀다)는 간호사와 의사 면허를 가진 특별한 분이었다. 자신의 연금과 교단의 지원금을 들고 전쟁 후 처참한 한국을 돕고자 찾아왔다. 원래 나환자봉사를 하려다가, 어느 날 버스 속에서 발작으로 쓰러지는 간질환자를 보고 이들을 돕기로 했다. 그래서 '가시있는 장미가 아름다운 것처럼 간질환자도 훌륭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취지로 장미회를 조직했다. 이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던 간질환자에게 사회복귀의 문을 활짝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전염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국은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에 당시 15만명이 넘는 간질환자들은 거의 장미회의 수혜를 받았다. 로빈슨 할머니는 진료받고 처방약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따뜻하게 서투른 우리말로 설명하고 주의를 주었다. 대한간질협회를 창립하는 데도 주역이 되었다. 한 사람의 사랑과 노력이 한 나라의 간질환자 모두에게 도움을 준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은 봉사 기간이 끝났는데도 귀국하지 않고 봉사를 하다가 아흔 살이 넘어 미국으로 돌아가서 천수(天壽)를 다하고 106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대로 유골 일부는 파주기독교인 묘지에 묻었다. 로빈슨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와 농담을 생각하면서 한없는 감사와 존경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소록도의 두 수녀간호사님과의 만남도 잊을 수 없다. 백세인 조사 과정에서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온 한센인의 수명 조사를 위해 2004년 소록도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40여년 돌보아준 오스트리아 수녀님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한센인의 생활상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하여 찾았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 수녀님이 살고 있는 허름한 집에 찾아가니 거실에는 장식품 하나 없고 벽에 십자가만 덜렁 걸려있을 뿐이었다. 손님이 왔다고 차를 대접해줘 마시면서 한센인의 삶과 고통, 종교에 귀의한 생활상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질병으로 사회와 격리되고 가족들과도 헤어져야만 하는 처지에서도 한센인이 일반인보다 더 높은 수명을 누린다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어 다음 해 연구진을 재정비해서 소록도를 찾았다. 인사도 하고 몇 가지 추가 질문도 하려고 두 분 수녀님을 찾았는데 이미 떠나버리고 없었다. 연유를 묻자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해가 바로 두 수녀님의 은퇴 시기였는데, 어느 날 새벽 첫 배를 타고(당시에는 연륙교가 없어서 소록도는 녹동항에서 배타고 들어갔다) 아무도 모르게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 동안 고마웠다는 감사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하고 폐만 끼칠 것 같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환송연도 거부하고 가방 하나에 그 동안 입고 지내던 옷가지 몇 벌만 챙겨 떠났다. 청춘을 바치고 평생을 봉사하고서도 혹시나 환우들에게 민폐가 될까 걱정되어 홀연히 떠나버린 두 분 수녀간호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멍해졌다. 아! 봉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깨닫게 해주었다. 최근 마리안느 수녀님이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 안타깝기 짝이 없다. 두 분 수녀님이 건강하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선친의 저술 '광주 일백년'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상세하게 소개된 간호선교사 이야기를 추가하고자 한다. '서서평'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던 엘리자벳 셰핑(1880~1944)이다. 미국에서 출생해 간호사가 되어 선교사로 우리나라를 찾아와 광주제중병원에서 나병과 결핵으로 고생하는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배워야 한다며 학교를 세웠고 우리나라 간호협회가 일본에 종속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최초로 조선간호협회를 창립한 선각자였다. 처참했던 나환자들의 복지를 위해서 환자들과 함께 총독부까지 행진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버려진 고아 14명을 입양하고 과부 38명을 모두 자신의 집에서 생계를 해결하도록 하기도 했다. 봉급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눠주었기에 막상 본인은 영양결핍으로 시달리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좁쌀 두 되 뿐이었다. 자신의 성격이 조급했기 때문에 반성의 의미로 서서(徐徐)히 하자는 뜻으로 성을 서(徐)씨로 하고 이름은 천천히 할 서(舒)자와 평평할 평(平)자를 붙여 서서평이라고 했다. 머리맡에는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라는 글귀를 붙여놓고 항상 자신을 다짐하는 삶을 살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조선의 예수'라고 불렀다. 장례는 시민들이 통곡하면서 광주 최초의 시민장으로 열흘에 걸쳐 진행됐고 양림동 선교사묘역에 묻혔다. 평생을 낯선 타국에서 혼신을 다해 헌신과 봉사를 하고서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고 오히려 조그만 사례도 피하며 떠난 간호선교사들의 삶을 보면서 한없는 사랑으로 가득한 거룩한 삶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분들이 우리 주변에 있어서 우리 사회가 이런 발전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그 분들에게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박상철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2023-07-27 18: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