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日 디즈니랜드를?북한 정권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과거 한 때 일본 디즈니랜드를 몰래 방문하기 위해 사용한 위조 여권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3일 한 해외 트위터 계정에 따르면, 최근 "1990년대에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과 그의 아들이자 (당시) 차기 지도자인 김정은이 (일본의)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 브라질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며 이들이 사용한 여권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유했다. 사진 속 인물을 보면, 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어린시절 모습이고, 아버지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얼굴 모습도 젊은 시절 사진으로 돼 있다. 이 계정은 "브라질의 안보 소식통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이 여권들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브라질 대사관이 1996년에 발행했으며, 진짜인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김씨부자 브라질 위조 여권 발급설, 트위터 확산 브라질 안보 소식통에 의하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90년대에 일본 및 서방 국가들을 방문하기 위해 해당 여권을 발급받았다고 돼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종 토치(Ijong Tchoi)', 김정은 위원장은 '요셉 프라그(Josef Pwag)'라는 가명을 쓴 것으로 돼 있다. 출생지는 두 명 모두 브라질 상파울로로 표기돼 있다. 김씨 일가의 위조 여권 의혹이 주목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선 지난 2018년 일본 극우지인 산케이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형 김정철 씨와 노동당 비서실 인사인 박영무 부부장과 함께 여러 차례 일본을 비밀리에 방문했으며, 방일 기간 도쿄 디즈니랜드를 찾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의 경우, 이들은 1991년 5월 12~22일, 1992년 4월2~12일 일본에 머물렀다고 보도했다. 누리꾼 "김씨 부자에 불가능은 없다" vs "왜 브라질 위조 여권을?" 반응도 제각각 다만 브라질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는 내용을 놓고선 누리꾼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무소불위의 북한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김씨 일가에게 특정 목적의 불법 위조 여권 발생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의견에서부터, 굳이 브라질발(發) 위조여권을 사용한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까지 가지각색의 반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96년에 발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위조 여권이 추가로 공개된 것에 대해 한 누리꾼은 "부정한 방법으로 여권을 취득하는 일은 김씨 일가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반면 다른 누리꾼들은 "브라질이 북한 땅이었냐",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한 것 아니었냐", "그들에게 불가능한 건 없다", "김정은은 사실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등 다양한 댓글을 통해 김씨 부자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한 누리꾼은 "당시 김정일은 이미 북한의 지도자였고 전세계가 이미 그를 알고 있는데 1996년에 어떻게 위조 여권으로 다른 나라를 여행했겠냐"며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2023-05-12 14:57:244일은 '10·4 선언' 15주년이다. 2007년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남북은 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첫머리로 모두 5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매번 화려했던 합의문은 늘 공수표로 끝났다. 북핵 해결도 회담의 단골 메뉴였지만, 단 한 번도 이행되지 않았다.문재인·김정은 간 3차례 회담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얼마 전 자신의 작품인 9·19 군사합의 4주년을 맞아 윤석열 정부를 겨냥했다. "정부가 바뀌어도 남북 간 합의는 이행돼야 한다"면서. 그러나 과녁이 빗나간 메시지였다. 그 직전에 김정은 정권이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하는 등 합의를 확실히 사문화시켰으니…. 2018년 9월 김정은이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가 최근 공개됐다. 그 속엔 "향후 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바란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트럼프가 러브레터로 부른 서한을 보낸 시점은 문·김이 '9·19 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틀 뒤였다. 김정은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라고 해놓고 문 전 대통령의 뒤통수를 친 격이다. 4년 전 평양 능라도 경기장. 동원된 15만 군중 앞에서 문 대통령은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으로 낮추며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다"라고 했다. 이는 대화 상대를 배려하는 수사라 치자. 하지만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라는 대목이 배를 곯고 있는 북 주민들에게 무슨 위안이 됐겠나. 핵도, 세습독재도 포기할 의사가 없던 김정은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겠지만. 이후 남북 관계의 본질은 그대로였다. 문 전 대통령이 "진실 되고, 경제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했던 김정은은 최근 본심을 드러냈다. "절대로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면서. 문 전 대통령의 공허한 연설이 잠시 환심을 샀을진 모르나, 북의 실질적 변화를 전혀 이끌어내진 못한 꼴이다. 이와 달리 지도자의 영감 어린 한마디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사례는 적잖다. 1987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 앞에서 행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 대표적이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향해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던진 그의 '돌직구'는 동서냉전 해체의 신호탄이 됐다. 앞서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동독 정권과 소련의 봉쇄 위협에 떨던 서베를린 시민들 앞에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외쳤다. 이 연설은 베를린 장벽 너머 동독 주민들에게도 큰 울림을 줘 독일 통일의 씨앗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 방문 후 '이전투구 정국'이 그래서 딱해 보인다. 통찰력 있는 외교적 수사로 국격을 높이긴커녕 비속어 사용 시비를 부른 윤 대통령의 무신경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자막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영상녹취 보도를 근거로 대뜸 미국 의회를 비난했다며 악의적 '외교 참사'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야당도 용렬해 보인다. 해당 녹취록은 전문가들도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인 데다 전후 맥락상 우리 국회를 겨냥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면 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2022-10-03 18:45:21[파이낸셜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둘째 딸 김주애(9)가 북한 국가행사에서 처음으로 포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둘째 김주애로 추정되는 소녀가 지난 9일 북한 정권 수립 74주년 경축행사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중국 전문가들이 주장했다. 해당 소녀는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를 위한 공연에서 노래하던 여러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소녀에게서 눈에 띄는 몇 가지 특징을 찾아냈다. 첫째로 중국 내 북한 전문 여행사 InDPRK 블로그의 분석가 샘히어로(Samhero·가명)는 해당 공연이 끝날 때 리 여사가 소녀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를 주목했다. 리 여사는 공연이 끝난 뒤 이 아이의 등에 손을 얹고 개인적으로 말을 건다. 샘히어로는 “김 위원장이 다른 아이들에게 환영받을 때 리 여사는 곧장 소녀에게 다가가 소녀 등에 손을 얹고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 이후 김 위원장이 에스코트를 받아야 할 때까지 소녀를 챙겼다”면서 “소녀도 김 위원장에게 너무 바짝 따라붙는 다른 아이의 팔을 잡아 제지하는 등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 국영 방송의 카메라는 노래가 시작되자 이 소녀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또 카메라가 이 소녀를 수시로 클로즈업해 화면에 비중 있게 비췄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할 요소로 꼽혔다. 소녀의 외모 또한 전문가들 눈길을 끌었다. 소녀는 무대에 선 아이들 중 유일하게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단발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혼자 흰색 양말을 신었다. 또 다른 분석가들은 소녀가 김 위원장이 참석한 이날에만 단 한 번 공연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 밤 같은 공연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마이클 매든 스팀슨센터 객원연구원은 “김 위원장의 딸이 올해 거의 10살이 됐을 것인데, 이는 방송 영상에 나온 소녀와 비슷한 나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들은 자녀의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매든 연구원은 “김 위원장 역시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와 가까운 가족, 개인적 관계를 지닌 북한 최고 엘리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서 격리돼 있었다. 북한 엘리트들 사이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적들이 지도자 자녀의 신원을 알면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위험성은 특히 김 위원장이 자녀들의 TV 출연을 허용할 가능성을 줄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주애는 김 위원장 부부의 세 자녀 중 둘째로 알려졌다. 2013년 북한을 다녀온 NBA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은 당시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설주가 그들의 예쁜 딸 얘기만 했다. 딸 이름은 김주애”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의 첫째와 셋째 자녀의 이름은 알려진 바 없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첫째는 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출산 이후 리 여사의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보아 셋째도 아들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
2022-09-26 06:48:39【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거 과정에서 '친미와 반중' 성향을 보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예상밖의 유화적인 축전을 보내면서 향후 한중관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윤 당선인은 중국이 극도로 경계해왔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뿐만 아니라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혀왔다. 이처럼 윤 당선인의 대중 정책이 강경해질 것이란 전망속에서도 시 주석은 예상밖의 유화적인 축전을 보냈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진심 어린 축하와 따뜻한 축언을 표하는 바", "양국은 가까운 이웃"이라면서도, '초심'을 언급하면서 '우호협력 심화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의 축전 내용은 표면적으로만 해석하면 우선 갈등이나 마찰보다는 유화적인 태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그동안 대중 제재 수위를 올려왔던 미국을 겨냥해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질 것"이라면서 직설적인 언행을 해왔던 것과는 다르다는 평가다. 하지만 중국이 아직 속내를 감추고 있다는 우려감이 적지 않다. 시 주석은 박근혜정부 시절 한중 정상회담 와중에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뜻의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언급했고 이후 사드 보복은 시작됐다. 전략적 동반자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갈등 국면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지리·경제적, 문화·군사적 측면에서 양국 모두에게 놓칠 수 없는 핵심 국가로 꼽히는 만큼 한국의 중립적 입장을 재확인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다. 외교 소식통은 "(축전을 전달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윤 당선인에게 '좋게 노력할 마음이 있다'고 한 것은 바꿔 말하면, 한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다만 여지는 남아 있다. 윤 당선인은 1992년 한중수교 때를 회상하면서 "한중관계가 더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고, 싱 대사는 "현재 3대 교역국이지만, 내후년에는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 사실 수교도 국민의힘 전신 정당이 집권할 때 맺은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측 모두 다른 한편으론 한중수교에서 우호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반복되며 현재의 난제를 풀 수 있는 명확한 교과서로 꼽힌다. 한중수교 30년 동안 양국관계가 어떻게 변하며 지금까지 흘러왔는지 살펴보고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도 들여다봤다. ■비약적 발전한 한중관계 30년 한중관계는 진보·보수 중 어느 한쪽이 집권했다고 일방적으로 발전했거나 퇴보하진 않았다. 외교는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냐 보다는 당시 정세에 맞춰 변해왔다. 진보·보수에서 긍정·부정적인 면이 공존했다는 의미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8월 24일 체결한 한중수교도 국제 정세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 후 오랫동안 친미국가를 적성국으로 간주하며 대립해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냉전시대 거의 30년 동안 공산국가들과 외교를 끊었다. 그러나 1970년대초 미중이 화해무드로 접어들고 한반도주변 정세도 변화가 생기면서 한국은 1973년 6·23 선언을 통해 이념과 체제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중국은 197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최고 권력기구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함께 '양회'로 불림) 제11기 3차 회의에서 개혁실용주의를 채택하고 대외개방정책을 전개했다. 양국이 곧바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자는 내용의 수료를 맺은 것은 아니다. 1983년 중국민항기가 공중 피랍돼 춘천에 불시착하는 사건으로 한중간 최초 공식 대면한 뒤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때 상호 선수단을 파견했고 관광과 이산가족, 친척방문 등 비정치적 영역에서 교류의 문을 먼저 열었다. 수교 이후에도 문화 측면부터 관계를 강화했다. 한중은 수교 2년 뒤인 1994년엔 문화 협정을 맺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당시 김 대통령과 장쩌민 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양국 외교장관이 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봤다. 초대 한국 주재 중국문화원장을 지낸 주잉제(65) 중국노인서화연구회 미술관 관장은 지난해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수천 년간 끊겼던 문화교류의 역사를 다시 회복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국제정세와 한반도 상황에 변화가 있으므로 문화교류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곳곳 불협화음, 갈등의 '골' 北 이후 한중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교역규모의 경우 1992년 63억8000만 달러(약 7조9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년 만인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35배에 육박하는 2206억 2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다시 9년 뒤인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엔 3624억 달러(약 448조3000억원)로 늘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여의도 당사에서 싱 대사에서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 중국이고, 중국의 3대 교역국이 우리"라고 말했고, 싱 대사는 "현재 3대 교역국이지만, 내후년에는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외교관계도 유대를 공고히 했다. 수교 당시 '우호협력 관계'에서 1998년 '협력동반자 관계'(김대중),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노무현)를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이명박) 등으로 빠르게 격상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은 존재했다. 한국은 미국이라는 열차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타야만 했고 이는 중국의 불만을 샀다. 중국 역시 북한과 관계에 신중히 접근하면서 한국의 우려를 가중시켰다. 2000년(김대중)엔 이른바 마늘 분쟁(한국이 중국산 냉동·초산조제마늘 관세율을 30%에서 315% 인상하고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폴리에틸렌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보복 사건)이 발생했으며 2002년(김대중~노무현)부턴 동북공정(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 한국 고대사 국가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부로 왜곡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중국이 주변 해역을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주장하면서 여러 해에 걸쳐 신경전도 벌였다. 북한 문제는 갈등과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만든 단골 쟁점이었다. 남북한과 모두 수교한 중국은 중요한 순간이 되면 대북 편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명박)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까지 넘어갔지만 중국이 '북한 편들기'로 일관해 결국 대북 제재를 무산시켰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부 9명이 일제히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하면서도 관련 정세 변화 논의를 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외교적 결례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 소집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북한 규탄 서명 채택을 중국이 반대했다. ■전승절 참석한 朴, 사드 '급랭' 2013년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중국의 전승절(2차 세계대전 승리 중국 기념일)에 참여할 만큼 상호 우호적이었다. 전승절에 국가 원수가 참여한 서방국가는 한국과 폴란드, 체코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롯데, 현대차 등은 경제보족에 중국 내 사업을 철수하거나 조정에 들어갔고 매년 수백만명씩 한국을 찾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도 발길을 끊었다. 교민은 상당수는 한국으로 이삿짐을 꾸렸다. 이른바 한한령(한류제한령)도 이즈음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빠른 관계 회복에 들어갔다.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이해한다고 밝혔으며 한국은 사드 3불 정책(추가배치·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한미일 군사동맹화 불가)을 언급했다. 통화 스와프는 연장했고 양국의 최대 공통현안인 북핵은 해결을 위한 소통과 협력에 상호 공감했다. 그러나 청년 세대의 반중·반한 감정이 양국관계 악화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중국발 미세먼지와 중국 어선 불법 조업, 시 주석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 발언에 이어 김치, 한복 등 역사·문화에 대한 중국의 원조 주장에 한국이 들끓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한복이 중국 소수민족 문화로 소개됐다. 편파 판정 논란 끝에 중국 선수가 금·은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조정기·협력 확대 가능성 상존 오는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중정책 변화는 공통된 평가다. 윤 당선인은 미국과 EU에만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4강 파견 관행에서 탈피해 '선택과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이미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한중 관계를 '상호 존중'에 바탕을 뒀다. 그러면서 쿼드 가입, 사드 추가 배치, 완전한 비핵화 달성까지 국제적인 대북 제재 유지 등 반중국 혹은 한미동맹 강화로 기울어져 있다. 다만 후보 시절 공약과 실질적 대통령직 수행은 다른 점이 상당히 존재하는 만큼 협력 확대 가능성도 상존한다. 사드 이후 막아놨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중국 내 상영·방영 소식도 들려온다. 한 대기업은 한한령 해제를 대비해 중국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5월 말 예상)에 이어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도 아직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시 주석의 첫 해외 순방 국가로 한국을 지목해왔다. 추궈홍 전 주한중국대사는 지난해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진다면 한중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어떻게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새로운 경제 성장 거점을 만들 방안, 중장기적인 인문 교류 비전을 (방한) 준비단계에서 소통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2-03-20 18:25:15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 카드를 꺼낸 것은 대북제재에 따른 체제위기 탈출인지, 선대 김일성.김정일 유훈을 따르겠다는 것인지가 주목받고 있다. 유엔 안보리 등 대북제재가 다각도로 강화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적 옵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압박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대북특별사절단(대북특사단)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란 사실을 강조한 것도 주목된다. 하지만 북측은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했고, 김정은 정권은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강조하고 있어 향후 변수도 있다. ■비핵화 카드로 북·미 대화 창구 열리나대북특사단은 6일 청와대에서 공개한 방북 결과 언론발표문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북.미 대화를 위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특사단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란 사실을 언급했다고 했다.하지만 이 같은 북측의 비핵화가 진정성 어린 남북·북미 대화로 가는 전향적인 변화인지, 체제 불안에 따른 돌파구 모색인지 주목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북한이 대북제재가 강화돼 경제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화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2월 10번째 대북제재 결의인 2397호를 통해 북한에 원유 공급은 연간 400만배럴로 제한한 것이다. 이 같은 강력한 대북제재로 북한의 올해 경제 관련 기록은 반토막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과거 1994~1999년 고난의 행군 시절에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300만명(북측 주장 30만~50만명)이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북측은 아직 견딜 만한 위기수준이란 의견도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 귀순병사나 탈북자들의 사례를 보면 식량, 생필품 부족 등이 심각한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또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도 부담이었다는 분석이다.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항공모함 등 전략적 자산뿐 아니라 북측이 관측하기 어려운 미국 무기들의 움직임도 위협이었다는 분석이다. 북측은 레이더 등이 부실하고 인공위성이 없어 한반도 역외권에서 어떤 군사적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관측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파악해 이를 북측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측은 경제적 압박보다 군사적 압박이 훨씬 부담이 됐을 수 있다"며 "최근 미국의 한반도 전략적 자산 배치뿐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더욱 강력한 무력이 전개되는 것을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파악해 북측에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핵개발로 미국을 위협해 결국 큰 대가를 치렀던 사례가 있다"며 "한반도는 남측과 중국, 러시아 등이 주변에 있어 군사적 옵션이 실제로 전개되기 쉽진 않지만 북측에 충분히 위협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특사단 방북 성과 미.중.러.일 설득 주력이같이 경제적·군사적 위기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특사단과 만찬에서 선대 김일성.김정일의 비핵화 유훈을 잇겠다고 강조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하지만 북측은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했고, 김정은 정권은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박정진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이 비핵화하면 그동안 본인의 정책의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어서 쉽지만은 않다"며 "그동안 핵으로 북한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과학발전에 투자하고, 재래식 전력 투자를 줄여왔다.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 같은 이유로 일각에선 북.미 대화로 시간을 벌면서 체제안전 보장을 꾀할 것으로 관측도 나온다. 비핵화 의지 표명으로 당장 북핵을 포기하는 실무적인 절차를 가동하겠다는 것은 아직 아니며 북.미 간, 남.북 간 향후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 추가 핵무력과 탄도미사일 등의 완성을 위한 시간벌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특사단 언론발표문 6개항에서 북측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한 만큼 4월 한반도 위기설 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대북특사단의 방북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관계 발전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곧이어 미국 등 주변국에 설명하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은 이르면 8일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를 중개한다. 또 정 실장은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서 원장은 일본을 방문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2018-03-06 22:48:34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 카드를 꺼낸 것은 대북제재에 따른 체재위기 탈출인지, 선대 김일성·김정일 유훈을 따르겠다는 것인지가 주목받고 있다. 유엔 안보리 등 대북제재가 다각도로 강화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북한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적 옵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압박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대북특별사절단(대북특사단)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란 사실을 강조한 것도 주목된다. 하지만 북측은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했고, 김정은 정권은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강조하고 있어 향후 변수도 있다. ■비핵화 카드로 北美대화 창구 열리나 대북특사단은 6일 청와대에서 공개한 방북 결과 언론발표문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북·미대화를 위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특사단은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란 사실을 언급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같은 북측의 비핵화가 진정성 어린 남북·북미대화로 가는 전향적인 변화인지, 체제 불안에 따른 돌파구 모색인지 주목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북한이 대북제재가 강화돼 경제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화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2월 10번째 대북제재 결의인 2397호를 통해 북한에 원유 공급은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한 것이다. 이같은 강력한 대북제재로 북한의 올해 경제 관련 기록은 반토막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과거 1994~1999년 고난의 행군 시절에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300만명(북측 주장 30만~50만명)이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북측은 아직 견딜만한 위기수준이란 의견도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 귀순 병사나 탈북자들의 사례를 보면 식량, 생필품 부족 등이 심각한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또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도 부담이었다는 분석이다.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항공모함 등 전략적 자산 뿐 아니라 북측이 관측하기 어려운 미국의 무기들의 움직임도 위협이었다는 분석이다. 북측은 레이더 등이 부실하고 인공위성이 없어 한반도 역외권에서 어떤 군사적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관측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파악해 이를 북측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측은 경제적 압박보다 군사적 압박이 훨씬 부담이 됐을 수 있다"며 "최근 미국의 한반도 전략적 자산 배치뿐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더욱 강력한 무력이 전개되는 것을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파악해 북측에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핵개발로 미국을 위협해 결국 큰 대가를 치렀던 사례가 있다"며 "한반도는 남측과 중국, 러시아 등이 주변에 있어 군사적 옵션이 실제로 전개되기 쉽진 않지만 북측에 충분히 위협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사단 방북 성과 미·중·러·일 설득 주력 이같이 경제적, 군사적 위기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특사단과 만찬에서 선대 김일성·김정일의 비핵화 유훈을 잇겠다고 강조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하지만 북측은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했고, 김정은 정권은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수 도 있다. 박정진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이 비핵화하면 그동안 본인의 정책의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어서 쉽지만은 않다"며 "그동안 핵으로 북한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과학발전에 투자하고, 재래식 전력 투자를 줄여왔다.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로 일각에선 북·미대화로 시간을 벌면서 체제 안전 보장을 꾀할 것으로 관측도 나온다. 비핵화 의지 표명으로 당장 북핵을 포기하는 실무적인 절차를 가동하겠다는 것은 아직 아니며 북·미간 남·북간 향후 협상의 여지 남겨두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 추가 핵무력과 탄도미사일 등의 완성을 위한 시간벌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특사단 언론발표문 6개항에서 북측은 북측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는 일 없을 것을 명확히 한마큼 4월 한반도 위기설 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대북특사단의 방북이 한반도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의 중요한 전기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곧이어 미국 등 주변국에 설명하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은 이르면 8일 미국에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 북미대화를 중개한다. 또 정 실장은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서 원장은 일본을 방문해 국제사회 지지와 협력 바탕으로 남북관계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2018-03-06 21:45:1716일 서울 연세로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모친 김정일 여사 빈소에는 그룹 임원과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부인인 김 여사는 향년 93세로 지난 15일 인하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날 조양호 회장과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총괄부사장 등이 빈소를 지킨 가운데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서용원 한진 대표 등 그룹 임원을 비롯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이희범 평창조직위원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 등이 조문했다. 김 여사는 조중훈 선대 회장과 사이에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2006년 별세한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현숙씨 등 4남1녀를 뒀다. 둘째 며느리인 김 여사는 맏며느리 역할을 하며 살림을 도맡아 시어른을 봉양하고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피고 뒷바라지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김 여사는 깊은 불심을 바탕으로 견뎠고 항상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했다. 그런 아내의 정성은 조중훈 회장이 사업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데 바탕이 됐다. 1945년 11월 설립된 한진상사가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인 한진그룹으로 성장한 데는 김 여사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 조중훈 회장이 베트남전쟁 당시 현지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할 때 김 여사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전장에서 함께했다. 현지에 마련된 김치공장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고 여러 가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한 것이다. 또 평생을 검소하고 소박하게 지냈다. '식사는 아내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신조로 단 한 명의 고용원 없이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 청소를 직접 했다. 그럼에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나눠주는 삶을 살았다. 늘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삶을 산 김 여사는 임종을 앞두고도 다른 사람이 힘들지 않게 모든 장례절차는 당신이 조금씩 모은 쌈짓돈으로 소박하게 치러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장례는 조중훈 선대 회장 때와 마찬가지로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9일. 장지는 경기도 용인 하갈동의 선영이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2016-12-16 17:41:131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모친 고(故) 김정일 여사의 빈소에는 그룹 임원들과 정·재계 주요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부인인 김여사는 향년 93세로 지난 15일 인하대학교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날 조양호 회장과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등이 빈소를 지킨 가운데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서용원 한진 대표 등 그룹 임원들을 비롯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이희범 평창조직위원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 등이 조문했다. 김여사는 조중훈 선대회장과 1944년 5월 결혼해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2006년 별세한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현숙 씨 등 슬하에 4남 1녀를 뒀다. 둘째 며느리인 김 여사는 맏며느리 역할을 하며 살림을 도맡아 시어른을 봉양하고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피고 뒷바라지를 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김 여사는 깊은 불심을 바탕으로 견뎠다. 항상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지극 정성으로 기도했고 그런 아내의 정성은 조중훈 회장이 사업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데 바탕이 됐다. 1945년 11월 설립된 한진상사가 글로벌 종합물류 기업인 한진그룹으로 성장한 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 김 여사의 헌신이 있었다. 조중훈 회장이 베트남 전쟁 현지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할 당시 김 여사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전장에서 함께했다. 베트남 현지에 마련된 김치공장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고 여러가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한 것이다. 또 평생을 검소하고 소박하게 지냈다. '식사는 아내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신조로 단 한 명의 고용원없이 손수 식사를 마련하고 집안 청소를 도맡아했다. 그럼에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나눠주는 삶을 살았다. 늘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삶을 산 김 여사는 임종을 앞두고도 다른 사람들이 힘들지 않게 모든 장례 절차는 당신이 조금씩 모은 쌈짓돈으로 소박하게 치러 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장례는 조중훈 선대회장 때와 마찬가지로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9일이다.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의 선영이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2016-12-15 23:02:20▲ 사진=뉴스캡쳐 김정은 이모 고용숙과 이모부 리강 부부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언급했다. 고용숙과 리강 부부는 최근 위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과거에 대해 털어놨다. 고용숙 리강 부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어릴 적 보살으며, 20년 전 미국으로 망명했다. 김정은 이모 고용숙은 김정은 위원장의 나이를 1984년생(33살)이라고 밝혔다. 또한, 고용숙은 "김정은이 8살 때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어 권력을 세습할 조짐이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떠받들어지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말썽꾼은 아니었지만, 성질이 급했고 인내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leemh@fnnews.com 이민희 기자
2016-05-29 07:21:47北 상시 감시체계 구축, 어린나이에 지도자 올라 강압정치로 충성 요구, 향후 권력층 이탈할 수도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측근 숙청 효과로 공포정치를 강화하는 것은 비단 최근의 일뿐만 아니다.김 제1비서는 지난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후계자 시절에도 박남기 당계획재정부장, 홍석형 당 비서,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등 20여명을 숙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 제1비서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변인선 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을 숙청했다. 김 제1비서가 집권이후 처형한 측근 혹은 간부는 이들 외에도 여럿이 더 있다. 나이가 어린 김 제1비서가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최고위급 인사들을 해임하거나 처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연이은 숙청 잔혹사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3년 11월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고모부이자 김정은 체제의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숙청된 것이다.김 제1비서는 '유일영도체계' 확립을 위해 장성택을 숙청했지만 이는 북한과 중국의 사이가 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장성택에 대한 사형 집행 장면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면서 국내외로부터 거센 비난도 받았다.김 제1비서는 당시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와 리영수 당 근로단체 비서 등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 소위 '장성택 라인'을 정리하면서 모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보다 앞서 2012년 7월에는 군부 실세였던 당시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이 해임됐다. 이는 김 제1비서가 '직접' 칼을 빼들어 당시 실세를 정치적으로 숙청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지난해 10월에는 이송길 해주시당 책임비서 등 황해남도와 중앙의 당 간부 10여 명이 한국 드라마 시청 등의 죄목으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국정원은 이밖에도 지난달 북한이 올해 15명의 고위 관계자들을 처형했다고 전하면서 차관급인 임업성 부상과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은하수 관현악단 총감독 등을 예로 들었다. 국정원이 공개한 '북한 내부 특이동향'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 간부는 지난 2012년 3명, 2013년 30여명, 2014년 31명, 올해 8명 등 총 70여명에 이른다.■'공포정치' 배경은이처럼 김 제1비서가 간부들을 철저히 단속하고 나아가 처형하는 폭압정치를 이어가는 것은 권력 기반에 대한 김 제1비서의 불안감을 드러낸다.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 방식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측근들의 정책 조언에도 일일이 귀를 기울였으며 이견을 제시했더라도 함부로 처형하지는 않았다.반면 현재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는 고위간부에 대한 상시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수시로 조사하며 재판을 단행하는가 하면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이를 총괄, 김 제1비서에게 수시로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자존심이 센 김 제1비서의 성격도 공포정치를 부추기는 부분이다. 28세의 어린 나이에 최고지도자에 오르면서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에 대해 용납을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현 무력부장이 '불경죄'로 김 제1비서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이같은 김 제1비서의 무자비한 숙청 행태가 계속되면 권력층의 충성심 대신 공포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결국 이탈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강압정치로 권력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지만, 결국엔 권력이 파편화되고 만다는 것이다.일각에서는 현재 숙청이 체제 안정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충성심은 약해지더라도 이것이 체제 동요와 붕괴로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july20@fnnews.com 김유진 기자
2015-05-13 17:47:31